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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앙드레 보나르(1888-1959)
1888년 스위스 로잔에서 탄생.
1915-28년 로잔중학교와 고전 김나지움에서 학생을 가르침
1928-957년 30년 동안 로잔 대학 그리스어, 그리스문학 교수를 지냄
1949년 ‘스위스평화운동’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평화활동을 계속함.
1952년 냉전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 ‘국제평화수호자대회’참석차 동베를린으로 가던 중 스위스경찰에 체포되어 기소됨. 집행유예로 풀려남.그 후 그리스 문명사 연구와 집필에 매진.
앙드레 보나르는 파시즘과 나치즘에 저항하는 ‘참여하는 인문주의자’였다. 자신의 작품 <프로메테우스>와 <안티고네>등에서는 주인공에게서 저항과 참여의 정신을 찾고자 했음.
그리스인이야기는 한평생 그리스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은퇴한 뒤에 심혈을 기울여 쓴 노작이다. 일단 책의 분량이 만만치 않다. 1400쪽이 넘는 책이다. 1954년 1권 1957년 2권 1959년 3권 그가 작고하기 며칠 전에 출간되었다. 스위스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영국, 미국, 러시아, 일본등 일찍이 각국어로 번역 출간됨. 그리스 문명사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음.
나의 의견
그리스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신화의 고장이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학문이 태동한 곳. 민주주의가 태동한 곳. 유목민에서 농민, 상인으로 또 뱃사람으로 척박한 현실을 타게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이다. 물론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앙드레 보나르는 노예제도를 많이 이야기한다. 1.2.3권에 걸쳐 중간 중간 이야기를 한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몰락원인도 노예제도로 꼽는다 . 우수한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도 노예제도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맞는 말이다 싶다. 인간은 눈앞에 방법이 있을 때 한치 앞을 내다보는 것을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 삶의 지혜이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한다. 후대의 어느 순간에 플라톤이 이겼지 싶다. 기독교와 맞물리는 사상. 혹시 정치적인 목적과도 부합되었을지도, 제일 마지막에 에피쿠로스를 배치한 것.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쇠락과 새로운 발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메데이아>
11 문명은 발전 과정에서 자연적인 존재들, 이를테면 식물들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씨앗이 배테되어 싹이 나며, 성장하고, 흔히 문명의 고전시대라고 하는 시기에 만개했다가 피었던 꽃이 시들고, 노화하며, 쇠락기에 접어들어 결국 죽는다. 어쩌면 문명은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문명은 다음 세대에 올 인간들을 위해서, 마치 귓가를 맴도는 과거에 대한 추억처럼 아련히 남아 있게 마련이다.
문명은 실패속에서도, 다시 말해서 특정 시기까지는 출산에 이르지 못하고 유산만 거듭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무화無化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희망의 불씨로 남아 있으면서 인규의 기억 속에서 다시 타오를 날을 위해서 끊임없이 몸을 뒤채고 있는 것이다.
12 문명의 쇠락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첫째, 무슨 이유로, 또 어떠어떠한 조건들이 결합했을 때 인류 공동체가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게 되며, 그 가치가 사라져갈 때 무엇을 상실하게 되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화기에 접어든 공동체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호흡이 힘들어지면서 숨이 가빠오며, 행동이 둔해진다. 요컨대 삶의 몸짓이 버거워진다.
13 그리스 문명은 쇠망하멵서, 이와 동시에 사회와 사상의 격변을 통해 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것이 기원전 4세기와 3세기에 나타나게 된 본질적인 지향점이라고 하겠다.
16 노예제도나 여자의 생존조건, 남녀평등, 인간의 삶에 대한 신들의 역할, 신 또는 우연의 본질 등에 관심을 가졌다. 에우리피데스는 인간이 대면한 문제라면 모든 것에 대해서 개방적이었다. 그는 인간의 비참한 삶, 약점, 고독 등 자기시대와 그 시대를 동요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에 관심을 보였다.
17 에우리페데스는 인간을 쥐고 흔들며, 때로는 파멸의 길로 이끄는 인간 내부의 비극적인 요소, 인간적인 열정이 지니는 비극적인 면을 통해서 인간을 설명하고자 했다.
18 에우리 피데스는 비극적인 요소를 우리들 마음속에 들어 있으나(우리 자신의 마음보다 우리와 더 가까운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알려지지는 않은 심연 속에 위치시킨다. 그 때문에 그는 우리와 휠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폭탄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폭발한다.
19 그 여자에 대해서는 몹시 격렬하고 사나운 불 같은 영혼을 가졌다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 여자에게 몰아 닥친 운명은 여자의 안에, 다시 말해서 여자 자신도 우리도 알지 못하는 어느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21 “아이를 한 번 낳느니 차라리 방패를 들고 전쟁터에 세 번 나가는 편이 나으리!”
31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정념을 다루다. 메데이아는 누구인가? 그녀는 물론 괴물이다. 하지만 우리와 너무도 가까운 괴물이다. 우리중의 누구라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녀는 잃어버린 사랑과 상처 입은 자존심이라는 단계를 밟아가며 이아손을 증오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그녀는 자신에게 모욕을 주는 이아손, 자신의 힘을 무시하는 이아손을 증오할 뿐이다.
32 지배에 대한 끔찍한 갈망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악마로 변해버렸으며, 그 악마를 그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나머지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이 ‘악마’는 그녀의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힘일까?아니면 도저히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존재의 비이성 속에 늘 깃들어 있던 분노일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며, 오직 그 힘이 자신의 의지보다 강하다는 것만 안다.
우리는 과연 우주와 구분되는가? 에우리피데스가 발견한 심리적 사실주의는 결국 우리를 이 질문으로 이끈다. 에우리피데스는 메데이아의 악마적인 정념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소속감, ‘코스모스’에의 복속을 강조한다. 이것을 의식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비극적 진실은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힘이다.
33 그가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즉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복잡다단함이다. 또한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이 힘은, 우리 자신이 그 힘에 대항할 수 없고, 그 힘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나타난 비극성
47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는 다름 아닌 부재가 우리를 농락하며, 이 가공할 만한 부재의 이름이 바로 우연이다.
49 악의에 찬 인물처럼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독가스처럼 공기 중에 둥둥떠다니다가 인간 영혼의 모공을 통해 몸속으로 스며들어 몸을 부패시키는 식이다.
51 모름지기 인간의 모든 성공엔 재앙이 뒤따르는 법이다.
53 비극을 통해서, 비극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살기를 배우며, 신들뿐 아니라 우리자신, 인간인 우리 자신의 약한 마음으로부터 기인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야 하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배운다. 그리고 크고 작은 부침이 끊이지 않는 그 운명의 끝에는 언제나 피할 수 없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비극<박카이>
66 왕은 다짜 고짜 화를 내는 성마른 성질과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숭배를 막기 위해서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붓는 경솔함으로 인하여, 분별 있는 종교의 제사장에 대해서 성급한 판단을 내린다.
67 “정신이 가난한 자들은 행복하도다!” 정말로 놀라운 에우리피데스가 아닐 수 없다. 신비에 관한 그의 감수성은 여러 세기를 앞선다.
68 펜테우스는 잠시 흔들린다. 신성한 것에 대해 그가 좀 더 유연한 영혼을 가졌다면 이처럼 평온한 위엄 속에서 재빨리 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해 왕 앞에 선 예언자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71 한순간 신은 인간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런데 인간은 오히려 더 완강하게 저항하는 것이 아닌가. 디오니소스는 그러니 이제 인간을 장악하려고 마음먹는다. 선의의 증표였던 온화함은 감언이설이 되어버렸다.
76 모든 비극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존하는, 또는 현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계에 대한 반항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모든 비극은 또 다른 의미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가상 뒤에 시에 의해서 드러나는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세계, 아니 시에 의해서 드러난 세계에 대한 믿음행위라고 할 수 있다.
79 신의 신비에 대해 마음을 닫는 것은 인간인가? 아니면 신이 인간의 접근을 방해하는 것일까? 기적이 난무한다. 그런데 펜테우스만이 그 기적을 보려고 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신 때문에 그는 기적에 대해서 무감각한 걸까?
80 편테우스처럼 에우리피데스도 신을 갈구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기보다는 상대방 즉 신이 문을 닫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82 “지혜는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 앞에 나오는 지혜(소위 인간의 지혜)에 중성적이며 매우 지적인 단어, 지혜에 인위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단어 소폰(sophon)이 쓰인 반면, 두 번째 지혜에는 소피아(Sophia), 즉 인간이 비판정신을 버림으로써 되찾게 되는 지혜가 쓰였음에 의미심장하다. 두 번째 지혜로 쓰이 ㄴ단어는 특히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오래된 여성단어로, 살아 있으면서 생산적인 지혜를 가리킨다.
83 박코스를 알게 되는 것은 기쁨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의 주요 테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기쁨, 피리 소리와 포도주를 즐기는 기쁨, 아프로디테와 뮤즈들의 즐거운, 이것이 지적인 지혜를 단념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디오늬소스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열리는 삶이다. 자연, 즉 고대인들의 정서에 따르면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신성 그 자체인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려는 이 같은 종교를 우리는 범신교라고 부른다.
88 그는 그의 신이 너무도 확연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마 그 신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어쩌면 그는 또 다른 신을 기다리는 걸까?
투퀴디데스와 도시국가들 간의 전쟁
97 그가 행동에 나선다면, 그건 언제나 한 발 늦었을 때였다.
103 행복은 자유 안에 깃들어 있고, 자유는 용기 안에 깃들어 있음을 안다면, 전쟁의 위험과 당당히 맞서라.
104 ‘한순간의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의 저술은 ‘영원을 위한 산물’, 즉 미래 세대를 위해 제공하는 재산이다.
104 투퀴디데스는 아테나이 시민들을 위해, 아테나이의 주권자들을 위해, 정치가들에게 역사라고 하는 틀 위에서 개인과 민족을 행동하게 만들어주는 법칙을 알려주기 위해 글을 썼다. 이것이 그의 미래의 인간들에게 제공하는 미래의 인간들이 그들의 이성에 따라, 도시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게 될 ‘영원을 위한 선물’, ‘계산’, ‘보물’이다.
모든 학자는 무신론자일 수밖에 없다. 신을 살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그가 주장하는 유용한 역사의 저변에는 하나의 가설이 깔려 있으며, 그 가설은 합리주의적인 가설이다. 역사의 법칙은 원칙적으로 우리의 이성의 법칙과 합치한다는 가설이다.
106 결구 역사를 설명하는 열쇠를 쥐고 있은 것은 항상 인간,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한 변주를 펼치는 인간이다.
109 투퀴디데스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만 죽음과 맞선다.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복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유하는 것이다. 소유와 지속, 이것이 생존 본능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 두가지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익’이 될 것이다. 이익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활동을 좌우하는 동기다.
113 역사란 살고자 하는 의지의 전개, 살고자 하는 의지 사이의 투쟁이다.
116 비난받아 마땅한 일로 간주되던 행동들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늘 사용하던 단어의 일상적인 의미를 바꾸어버린다.
데모스테네스와 도시국가 시대의 몰락
129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박이 떨어지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그저 그 우박이 자신들의 밭이 아닌 남의 밭에만 떨어지기를 비는 사람들 같다. 우박의 방향을 바꾸는 일, 누가 도대체 그 일을 생각한단 말인가?”
130 필핍포스와 마케도니아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부상하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그리스의 변경 지대를 중심으로 왕정체제가 슬며시 정착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스 최초의 민주적인 도시국가 아테나이, 그리고 아테나이와 더불어 도시국가라고 하는 모범적인 정치체제에 충실했던 그리스의 모든 도시국가의 수호자는 오직 데모스테네스 한 사람 뿐이었다. 아니, 백 번을 양보해서 거의 한 사람뿐이었다고 해두자. 도시국가란 자유롭고 대등한 지위를 가진 시민들의 공동체이며, 최고 주권을 지닌 공동체로서 무었보다도 자주 독립 수호를 소중히 여긴다. 데모스테네스에게 도시국가의 민주주의 체제란 그리스 문명이 낳은 가장 높은 수준의 가치였다.
132 아테나이 민중들을 국가가 제국으로 군림하며 축적한 부를 이용해서 용병을 사고, 그 용병들이 자신들의 대신해서 자유시민들의 특권을 지켜주기를 원했다.
132 그는 아테나이 민중들의 정치에 관한 무관심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그런 일은 자신들이 선택한 ‘주인들’에게 맡겨버리는 편을 선호했다. 이 주인들이란 그들의 마음에 들려고 애를 쓰는 아첨꾼에 불과했다. 일상생활에서는 허구한 날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언론이 민회에서는 포플리즘을 구사하는 아첨꾼들에게만 언론의 자유를 허락했다.
136 뇌물을 받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고백한 사람을 비웃는다.
137 데모스테네스는 마흔여덟 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개 병사로 전투에 참가했다.
플라톤의 정치적 대망
플라톤 이저에 그리스 문학은 詩시가 중심이었다. 기원전 5세기경에 시인은 젊은 층은 물론 도시국가 전체의 교육을 담당했다. 플라톤 이후에 그리스 문학은 지혜, 과학, 철학이 중심이 되었다.
149 “그런데 저 아름다움에 아주 사소한 한 가지 요소만 덧붙여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가지 요소라니, 그게 뭡니까?” 라고 크리티아스가 묻는다. “영혼의 아름다움이라네.” 소크라테스가 대답한다.
153 마치 죽음이 이제까지 영위해온 삶보다 훨씬 더 명료하게 그가 아테나이 민중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보여준다고 믿는 것 같았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마셨다.
155 “철학자들이 국가의 황이 되지 않는 한, 또는 현재 왕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진정하고 충분히 자격 있는 철학자가 되지 않는 한, 정치 권력과 철학이 동일 인물 안에서 결합하지 않는 한…국가를 좀먹는 해악은 물론, 인류의 해악마저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156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며,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유일한 재화다.
157 고대를 계승하게 될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다. 이 새로운 시대란 기독교 세계를 의미한다.
158 비참함과 배고픔으로 가득한 삶에서 오르페우스주의는 이들에게 팍팍한 삶을 잊게 해주는 피난처이자 죽음을 약속해주는 일종의 꿈이었다.
160 그는 그이 목숨을 앗아간 자들의 고약함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들의 어리석음, 변태성, 탐욕성이 그 정도로 깊었음은 짐작하지 못했다네.
162 역사에서 새로운 시작이 아닌 실패나 종말은 없다.
164 플라톤은 전쟁이라면 악성 전염병만큼이나 혐오했다. 하지만 그는 “평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마저도 상실한 나머지 제일 먼저 쳐들어오는 적 앞에 무릎을 끓는 무기력함도 경계했다. “
165 말이나 소의 종자를 개량하는 생산자들의 방식에서 받은 영감과 짐승과의 허무맹랑한 비교를 통해 작성한 우생학적 고려가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
167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플라톤의 철학이 인간의 마음을 가장 심각하게 소외시키는 이론 중의 하나로 보인다.
169 인간은 부동의 낙원에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역사는 배려하려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인간을 만든다. 안정된 세기들이란 겉보기만 그럴 뿐이다. 플라톤이 <국가>를 쓰면서 민주주의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세기로부터 여러 세기가 지난 후, 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는 안정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코뮌과 더불어 보란 듯이 재게된데. 이러한 움직임은 1789년 …1848년에도…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를 뒤흔든 열흘…”로 이어진다. 인규의 역사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다.
플라톤식 아름다움과 환상
173 플라톤은 실재, 즉 상식이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감각적인 것, 색채 형태, 소리의 세계를 사랑하는 시인이었다. 플라톤은 일생 동안 줄곧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이 물리적인 세계에 열렬하게 매료되었다. 그의 저작은 이를 화사하게 보여준다. 그는 태양과 별을 사랑했으며, 하늘과 바람결에 실려가는 구름, 미풍에 흔들리는 나무, 푸른 초원과 강물, 물과 수면에 비쳐서 늘 바뀌는 존재와 대상의 그림자를 사랑했다.
174 플라톤은 무엇보다도 물리적인 자연의 걸작품으로서의 인간의 정밀한 아름다움, 성년이 되면 무르익게 될 청소년들, 체력 단련장에서 운동하는 청소년들의 우아함을 사랑했다. 단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그들 신체의 우아함 속에 배움으로 불타오르며 선해지려는 의지로 가득한 영혼이 자리하고 있어야 했다.
181 플라톤은 우리에게 육체의 감옥에 갇히기 전에 천상을 주유하던 영혼을 보여준다. 여기서 영혼은 날개 달린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비유된다. 두 마리 말 중에서 한 마리는 흰색이며, 영광과 덕성, 진실을 모두 겸비했다. 이 백마는 우리의 고귀한 정념, 아름다움과 선함을 향한 우리의 본능적인 노력을 상징한다.
185 “나는 저승에서 왕으로 지내는 것보다, 지상에서, 태양 아래에서 가난한 농부를 돕는 날품팔이 일꾼으로 사는 편이 더 좋다.”
죽음은 여러 번 씩 현자를 육체적 삶의 어려움으로부터 행방시켜주어야 한다. “철학을 하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 이라고 오래전에 죽음을 맞은 소크라테스, 즉 플라톤 안에 살아 있는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186 인간의 끈질긴 희망, 가장 확실한 존재 이유는 내세에 있다. 이처럼 이제부터는 우리 영혼의 불멸성이 필연적으로 죽게 되어 있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며, 이를 내포한다.
186 육체는 우리를 사랑과 욕망, 두려움, 수천 가지의 공상, 수많은 경박스러움으로 채운다. 너무도 가득 채우기 때문에 속담에도 있듯이 우리에게는 좋은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다. 전쟁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혁명이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육체와 육체가 품는 정념에서 온다. 모든 전쟁은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부를 축적해야만 하지 않는가? 그 때문에 우리는 육체의 노예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철학을 생각할 시간이 없는 이유다!
187 육체의 광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순수한 우리는 우리만큼 자유롭고 순수한 물체들과 더불어 살게 될 것이며, 우리 자신의 힘으로 순수한 본질을 깨닫게 될 것임을 나는 소망한다. “육체의 광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순수한” (그리고 그보다 앞서서 나온) “부패…염증….육체의 오점”등 육체에 대한 모멸적 표현, 육체와 감각적인 삶에 대한 경멸적 표현으로 채워진 이 대목을 보라.
191 “영혼이 육체와 분리된다면, 순수해진 영혼은 육체로부터 아무것도 끌고 가지 않는다네, 육체와 더불어 일생 동안 자발적인 그 어떤 교류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와 반대로 늘 육체를 멀리하며 자체로서 숙고하며, 그것만을 유일한 소일거리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지…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영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철학을 하는 것이라네, 다시 말해서 궁극적으로 고통없이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지. 그것이 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192 보고, 만지고, 먹고, 마시고, 사랑의 쾌락을 맛보는 것 외에는 실재가 없다고 믿게 된다면, 보이지 않고 우리에게는 모호하지만 지혜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얼마든지 이해 가능하고 파악 가능한 것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피하게 된다면, 그런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게 될 때, 자신의 본성이 온전함과 자유로움을 되찾게 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195 죽어서 우리의 무덤인 육체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삶,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그 삶은 이미 죽음이며, 우리에게 온갖 부조리한 행동을 저지르게 만들며, 정념의 방탕을 가져오는 무분별이다.
197 “불의가 이 세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영혼을 벌거벗기는 죽음의 순간이 오면 고약한 자들의 내면의 비참함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임을 확신하자, 영혼이 지금이라도 치유 가능하다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영혼이 영원히 불의 속에서 살게 하는 자들은 불행하도다!”
203 정당하건 과도하건 욕심이 모든 사회 계층에서 분출되어 나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정의를 약속했던 비인간적인 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항상 바닥을 응시하거나, 짐승들처럼 식탁 쪽으로 몸을 숙이고서 그들은 허겁지겁 음식을 삼키거나 서로 교미했으며, 누가 가장 많은 쾌락을 차지할지를 정하기 위해 발길질을 해대며 머리를 들이받거나,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뿔 또는 쇠편자를 서로에게 죽도록 공격을 가했다.
205 그리스 문명 전체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던 균열을 잘 살펴보기로 하자. 공동체(비록 유사 민주정 체제의 고동체라고 할지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앟는다)내에 노예제도가 마구잡이로 성행하게 만든 고대인들의 무분별을 새삼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노예제도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들이 세운 문명을 파괴하고 그들의 실존마저 위협했다. 그런데 솔직히 이와 같은 무분별함은 전혀 놀라운 것이 없다. 당시 사람들은 전방위로 무차별적으로 성장해나가야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었다. 새로 정복한 땅에 새로운 신전을 건립하고 극장을 짓고,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탐험하기 위해 항해에 나서야 했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교환하고, 도처에 인간들이 살고 있음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은 훗날 과학과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인간을 위해 봉사하게 될 적절한 도구 땨위는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에게는 도구와 기계의 부재가 특별히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무제한적이라고 믿을 정도로 많은 다른 도구들과 기계들, 즉 노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8 “생명 있는 기계”, 즉 노예가 많으면 “생명 없는 기계”의 제작이 불필요하다.
거의 대부분의 고대인들은 이 같은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풍부한 노예 노동력은 기계의 발명을 불필요하게 만들며, 기계의 부재는 노예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213 <고백록>의 다음 장면은 너무도 유명하다. 정원에서 기도 중이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늘에서 노래를 부르는 어린아이의 음성을 들은 것 같았다. 아이는 “이걸 집어서 읽어봐, 이걸 집어서 읽어봐”라고 노래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얼마 전부터 그의 손을 떠나지 않던 바울 사도의 책을 집어 들고 아무 데나 펴서 읽었다. “진수성찬이나 요란한 연회, 성관계, 난봉질을 금하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고 더 이상 육욕을 만족시키려고 애쓰지 말라!
214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의 엄청난 양의 저술을 통해서 우리는 “플라톤 학파의 글’로 무장한 그를 매개로 하여, 기세등등한 이단 사상과의 논쟁을 거치면서 카톨릭교회의 가장 순수한 교리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218 최초의 철학은 신들의 원초적인 언어다.
220 한입 깨물면 깔깔한 입안에 달콤한 즙이 흥건히 고이는 잘익은 과일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생생한 그리스어가 주는 관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플라톤의 문장이 상상을 뛰어넘는 희열로 자신의 마음을 파고들며 자신의 안에서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언약을 일깨우며, 자신의 존재 전체를 사로 잡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불멸을 만들어내고, 천사를 만들어내는 그의 문장만이 인간의 부조리한 몽상(영원한 삶)을, 마치 배고프면 한입 깨물어 먹는 빵조각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로 만들어준다는 것도 느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생명체
225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 두 사람은 비단 철학사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를 통틀어도 매우 위대한 인물들이다. 둘 다 단연 천재급이다.
천재라는 말은 그러니까 뛰어넘기, 새롭게 발견하기, 즉 창조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철학이 일종의 처세술이라면, 플라톤과 아이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변화시킴으로써 이 기술을 구체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므로, 두 사람 이후(알렉산드로스는 같은 시대에 활약한 세 번째 천재라고 할 수 있다)의 인간들은 그전의 인간들과 같을 수가 없게 되었다.
227 “나는 플라톤을 좋아한다. 하지만 진리를 더 좋아한다” 아이스토텔레스의 비판에 대해 플라톤은 “어린 망아지가 엄마 엄덩이에 발길질 해대는 격”이라고 평했다.
스승과 제자의 우정은 이처럼 수렴되거나 상충하는 비판을 통해서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229 중용을 전파하는 사도, 실현 가능한 것에 토대를 둔 상식을 설파한 철학자와 불가능한 것에 집착하며,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만든 대담무쌍한 청년 사이에 이루어진 이 놀랍고 역설적인 결합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알렉산드로스(14세)담당스승 아리스토텔레스
232 이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과 그 안에서 서식하는 모든 존재를 알고 이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욕망, 이 세계의 의미를 꿰뚫어 간파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려는 불 같은 지적 호기심이었다.
235 그에게 영혼이란 모든 동물의 생명의 원칙이다.
237 밀이 잘성장하라고 제우스 신이 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차갑게 식게 되며, 일단 차가워진 수증기는 물로 변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50 “인간은 직립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데, 그것은 인간으이 본성과 본질이 신성하기 때문이다. 뛰어나게 신성한 존재(즉 인간)의 기능은 사고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능은 인간의 하체가 무거웠더라면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게는 합리적인 사고와 상식의 유연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영원토록 엎드려 있어야 할 운명”이다!
251 식물은 ‘머리’가 땅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감수성을 상실함은 물론 지능도 완전히 소멸해버린다.
256 “자연은 불필요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263 이상하고 비인간적인 동시에 친근하고 익숙한 실존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이상하고 비인간적인 생명체를 통해서 우리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근원. 즉 욕망에 따라 자손을 번식해나가는 삶, 배고픔을 느끼는 삶, 허기를 달래고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는 치열한 삶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엔 멀게만 느껴졌던 동물의 세계는 책장을 넘길수록 이상한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감정들이 전혀 아무런 과장 없이 펼쳐지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 아니 우리의 오장육부를 한층 더 강력하게 휘어잡는다. 살아 있는 생명체 각각으로 보자면 일시적이지만 지구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 전체를 놓고 보면 영속적인 삶은 그렇게 우리 앞에 펼쳐진다.
생명은 인간과 식물에게 공통적인 재화임에 틀림없다.
265 우리의 동류성, 풀과 꽃, 나무, 새, 물고기, 야수들의 세계와 우리 사이의 형제애를 한층 더 공고하게 다져주며,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알렉산드로스의 천재성 또는 우애에 관하여
269 아무리 참을성 많고, 아무리 능란한 손가락으로도 절대 풀 수 없다고 여겨졌던 이 매듭을 앞에 두고 알렉산드로스는 그걸 풀기 위해 씨름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 단칼에 그 매들을 ㄹ잘라버렸다.
272 그는 밥 먹듯이 그럴듯한 거짓말을 뿌렸으며, 약속을 어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자신의 운을 드러내고 말고는 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승리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하면 그는 곧장 그의 열정이 식어버리기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그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281 오래된 신전들을 복구하고 새 신전을 건축하였으며, 축제를 신설하고 행사 행렬을 이끄는가 하면 굴복한 도시들에게 과거의 특권을 되돌려주기도 했다.
297 알렉산드로스가 “인간이 사랑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수행자들 중의 한 사람이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권능 있는 자가 된 후에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자”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데 대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평생 동안 과일 열매를 맺는 인도의 대지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죽고 난 후에는 번거로운 동반자인 육체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307 헤로도토스의 호기심과 즐거움, 열정은 인간 지성의 결정판이나 에너지 넘치는 활약상, 여러 나라와 민족의 진기한 풍습과 만날 때마다 자유롭게 폭발한다.
324 알렉산드로스는 누가 뭐래도 공간의 정복자였다. 그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영원히 파괴했으며, 그 대신 이집트. 페르시아, 인더스강, 펀자브 지역까지 제국을 넓혔다. 그는 후계자들에게 그 당시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질서라는 탈을 쓴 무질서, 두 명의 프톨레마이오스
331 예술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책의 전성시대, 알렉산드리아:도서관과 박물관
357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하늘을 이 등대의 불빛보다 찬란한 두 개의 빛으로 수놓았다. 시와 과학의 불빛이었다.
361 박물관은 말하자면 최초의 대학이었다.
362 그 중 한 도서관에는 이집트 문자로 ‘정신의 피난처’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364 필라텔포스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레르게테스는 귀중하고 희귀한 책들을 구입하기 위한 지출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엄청난 액수의 보증금을 물고 아테나이에서 기원전 4세기에 필사되었으며, 아테나이의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이 총망라되어 있는 공인된 비극 전집을 임대했다. 일단 책이 손에 들어오자 그는 보증금을 포기하고 그 책을 두고두고 보관했다.
알렉산드리아의 과학:아리스타르코스의 천문학
389 아낙사고라스는 아테나이법정에서 태양은 불타는 암속이며 달은 흙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리학:퓌테아스와 에라토스테네스
397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은 바야흐로 탐험의 시대, 지리 연구의 시대를 열었다. 대중들의 호기심과 상인들의 돈벌이 욕심 또한 알렉산드로스 원정에 참가했던 동반자들의 이야기 덕분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대지의 면적이나 바닷길, 육로 등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얻으려는 학자들의 탐구욕도 이에 못지 않았다. 기원전3세기 무렵에 이루어진 수많은 여행 중에는 상거래를 위한 여행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목적을 위한 여행도 적지 않았다. 지리학자들은 이 같은 여행을 토대로 정확한 세계 지도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각 지역 주민들의 풍습과 알려진 지역들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야심도 감추지 않았다.
의학:아르키메데스, 헤론, 그리고 증기기관에 관하여
416 과학과 관련된 활동이 그리스에서 이집트로 옮겨오면서 생겨난 가장 놀라운 변화는 바로 시체 해부가 너무도 당연시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시체를 방부 처리하여 보존하는 전통을 유지해온 이집트에서는 관습적으로 가족 친지들의 해부를 일종의 장례 의식처럼 친근하게 여겼으므로, 박물관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을 위해서 인체 해부 금지라는 그리스적인 조항이 해제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423 유서 깊은 이집트의 경험주의와 그리스 합리주의의 만남(바닥을 치고 도움닫기를 하는 마지막 기회), 이질적인 것들끼리의 융합은 그리스 학자들의 기계 좋아하는 전통을 소생시켰을 것이다.
431 노예제도는 기계의 사용을 저해한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당시 노동력은 전혀 비용이 들지 않았으며, 노예제도가 존속하는 한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저장고를 보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435 희망이 있는 한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로의 회귀:칼리마코스,로도스의 아폴리니오스가 쓴 <아르고나우티가>
454 휘라스가 물병을 샘물에 담그자, 물이 맑은 소리를 내며 휠라스의 청동 물병 속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요정은 휠라스의 아름다운 입술에 입 맞추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왼팔을 그의 목에 두르고 오른손으로는 그의 팔꿈치를 잡고서 휠라스를 물속으로 이끌었다….
476 이 여자는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주듯이, 즉각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이 감정에, 이 마력에 바친다. 그러는 동시에 여자는 매 순간 내어주려는 자기 자신을 되찾아오거나 되찾아오려고 시도한다. 낭만주의란 이처럼 상반되는 가치들이 인간 존재의 마음속에서 서로 얽히고 뒤척이면서 상대방을 밀어내는가 하면 밀려나는 움직임의 연속이다. 첫눈에 반한 운명의 순간에 이어지는 밤중 내내 메데이아라고 하는 인물은 전적인 수줍음과 전적인 정념 사이를 헤아릴 수도 없이 여러 차례 오간다. 요컨데 메데이아는 빅토르 위고 식으로 말하자면 천당에 올라갔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죽음으로 돌진하는가 하면 어느새 한달음에 삶을 향해 뛰어오른다. 상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러 생을 마감하게 해줄 독약을 꺼내는 일화, 눈물이 흘러내리고, 죽음과 접촉하려는 순간 문득 솟아오르는 즐거웠던 순간들의 이미지, 죽음을 밀어버리고 기쁨을 향해, 이아손과의 사랑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그 이미지들, 이 장면은 문자 그대로 낭만주의의 결정판이다(결정판이라고 하면 완벽함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이 장면이 그리스 문학에서 유일무이한 장면이라고 확신한다. 정념과 정념으로 인해 파생되는 대조의 효과 외에, 아폴로니오스에게는 낭만주의적이라고 형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면모가 있는데, 바로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자연을 결부시킨다는 점이다.
테오크리토스의 낙원
484 취향을 살려 교양을 높이는 것을 휴식이라고 여기는 자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486 그는 사랑에 빠지면서 비로소 자신의 못생긴 용모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랑이 기운 센 그를 사납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유순하고 섬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갈라테이아에게 그는 그저 자신의 오두막으로 와서 곁에 앉아만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보기에 내가 너무 거칠고 퉁명스럽다면 나를 상대해줄 것도 없어요. 하지만 내가 참나무 장작을 마련해놓았으니 화롯불 곁에 앉아만 있어요. 나는 혼자서 슬픔을 견딜 테니까…난 당신이 입술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저 손등에나 키스할 겁니다….그는 순진하며, 그가 연인에게 주겠노라고 제시하는 선물들이 또 감동적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달의 흔적을 간직한 열한 마리의 암사슴과 네 마리의 아기 곰을 기를 겁니다….그리고 당신을 위해서 눈꽃을 따올 거예요. 나는 당신에게 양귀비 꽃다발을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런데 하나는 여름에 피고 다른 하나는 겨울에 나오니, 두 지를 동시에 당신에게 줄 수는 없겠군요…
487 우리는 삶과 꿈의 경계에 놓인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시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삶의 체험이라기보다는 삶에서 출발하는 아름다운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에 대한 몽상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시적인 변화를 통해 평온해지며 빛을 발하게 되는 사랑의 고통 같은 것들 말이다.
500 그 어떤 시의 세계도 우선 진실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 없다. 테오크리토스의 시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501 기후가 좋은 계절이면 목동들은 산을 떠나지 않으면서 이 초원 저 초원으로 옮겨 다닌다. 그럴 때면 주로 풀밭에서 별을 벗 삼아 야영을 하지만, 이따금씩 동굴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동굴에 부엌을 설치해서 반 혈거인들 처럼 산다는 말이다.
505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온 세상을 주고 싶은데, 실제로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노래밖에 없다. 그의 노래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음에 대한 탄식으로 끝난다. “당신의 자태는, 그건….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513 돈이면 만사형통인 이 세계에 그 자신도 심한 염증을 느꼈다. 그는 이 고단한 세계에서 나무와 풀밭, 맑은 물에 대한 향수를 길어 올렸으며, 양치기들의 소박한 생활에 대한 부러움을 전파했다. 그는 말하자면 청춘의 샘, 자연의 세계가 지니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천진함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는 일종의 환상을 선사했다.
다른 형태의 도피:테론다스와 사실주의 풍자 희극, 그리스의 소설<다프니스와 클로에>
522 인간이 위대함에 다가가려는 욕망을 지녔을 뿐 아니라 약점(여기서 나는 비천함이 아니라 분명 약점이라고 말한다)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인 이 세계 속에서 그의 위치를 제대로 가늠해야 하며,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과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칙을 분명하게 인식함으로써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현실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제까지 그리스문학이 추구해왔던 목표였다.
525 온종일 당신은 나를 나무랄 거리를 찾고 있군요. 비틴나, 나는 노예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구려. 낮이고 밤이고 당신 심기를 살피며 불안해하느니 그 편이 나을 것 같소.
532 그리스 문학은 귀로 듣기 위하여, 몸으로 체험하기 위하여 존재했다.
540 햇빛에 환장한 매미도 기를 쓰고 목청을 높인다.
543 “벌거벗고 함께 자기”를 실천에 옮기는 장면을 상상해보라….두 사람이 첫날밤에 한 침대에서 “밤새도록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사냥에 나선 고양이들처럼 눈을 감지 못하고”실컷 사랑을 나눈 뒤 흡족해 하는 광경은 또 어떤가.
544 사랑은 더 이상 삽포나 에우리피데스의 시에 나타나는 것처럼 존재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얼음장 같은 죽음으로 몰아가는 질풍노도가 아니다. 사랑은 이제 서서히 저물어가는 맑게 갠 날에, 아름답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여인과 함께하는 시간,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남자와 더불어 보내는 시간이다. 다프니스, 너의 클로에는 우유를 살짝 곁들여 같은 잔으로 마시는 포도주처럼, 그의 입에서 너의 입술로 전해지는 피리 소리가 빚어내는 멜로디처럼, 아름답고 부드럽구나. 클로에. 너의 다프니스는 피어나는 꽃보다, 시냇물의 노랫소리보다 소중하고 아름답구나. 아! 그의 품에 안긴 너는 그의 새끼 염소로구나! 이런 식으로 사랑의 달콤함은 이 세계의 부드러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에피쿠로스와 인간의 구원
551 역사가 마무리 지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역사는 계속된다.
552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그저 친구가 되는 것으로 만족했다.
553 그른 인간들에게 가장 천박한 유물론, 즉 먹고 마시는 유물론을 제시했으며, 신에 대한 경멸을 가르치고, 세상에 ‘돼지들의 학교’를 선사했다.
그는 인간들이 쓸데없는 두려움과 고답적인 미신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온한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해방자이며, 치유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구해준 치료사다. 사실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이란 따지고 보면 인간의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음. 아니 얼마든지 치유 가능한 어리석음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루크레티우스는 ‘기품 는 열정’이라고 표현되는 문체를 빌려. 이렇게 선언했다. “그는 신이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지혜라고 일컫는 삶의 법칙을 최초로 발견했으며, 자신이 정립한 학문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수많은 폭풍과 수많은 암흑으로부터 끌어내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빛의 세계 속에 정착시켰다.”
560 노동자들의 삶은 제어가 불가능한 자본의 힘에 종속되게 마련이다. 그리스 사회에서 노예 노동의 본격적인 활용은 소규모 생산자들의 대대적인 몰락을 가져왔다. 요컨대 노예 노동은 자유노동자 계급의 왜곡과 소멸을 초래한 것이다.
566 인간은 불행하다고 에피쿠로스는 단언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기쁨을 위해 태어났다. 에피쿠로스는 기쁨의 필요성, 기쁨의 소박함. 기쁨의 즉각성에 대한 뿌리 깊은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기쁨은 언제나 우리가 손을 내밀면 잡힐 만한 곳에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은 현실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 의해 지배된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란 말인가? 우리가 가진 으뜸가는 두려움,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어디를 가나 따라다닌다. 그렇게 때문에 인간은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기분전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황당한 기분전환을 즐기고 있을 때에도 이 생각은 줄곧 인간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지 않도록 꽉 막아버린다. 죽음에 대한 생각 앞에서 인간은 마치 곧 끝 모를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와 현기증으로 가득 찬다.
3. 내가 저자라면
1.2.3권을 다 읽었으나 전체적인 내용이 짜임새있게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두번읽기에 조금 더 기대를 하고 있다. 2012년 지금 당장 그리스란 나라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터라 어떻게 이루어진 나라이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역할이 컸다. 저자는 그리스인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며칠되지 않아 삶을 마감했다. 평생을 업으로 삼았던 터전이라 애착이 많았을 테고 그 일을 마무리할 때 까지 열정을 다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심오함을 발치도 따라가기 힘든 독자로선 더 할말이 없지만 서양역사의 많은 부분이 기독교역사와 맞물리는 상황에서 마지막에 에피쿠로스와 인간의 구원이란 주제를 다룬 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
1. 쇠락과 새로운 발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메데이아>
2.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나타난 비극성
3. 비극<박카이>
4. 투퀴디데스와 도시국가들 간의 전쟁
5. 데모스테네스와 도시국가 시대의 몰락
6. 플라톤의 정치적 대망
7. 플라톤식 아름다움과 환상
8. 아리스토텔레스와 생명체
9. 알렉산드로스의 천재성 또는 우애에 관하여
10. 질서라는 탈을 쓴 무질서, 두 명의 프톨레마이오스
11. 책의 전성시대, 알렉산드리아:도서관과 박물관
12. 알렉산드리아의 과학:아리스타르코스의 천문학
13. 지리학:퓌테아스와 에라토스테네스
14. 의학:아르키메데스, 헤론, 그리고 증기기관에 관하여
15. 시로의 회귀:칼리마코스
로도스의 아폴리니오스가 쓴 <아르고나우티가>
16 테오크리토스의 낙원
17 다른 형태의 도피:테론다스와 사실주의 풍자 희극, 그리스의 소설<다프니스와 클로에>
18 에피쿠로스와 인간의 구원
감동적인 장절
263 이상하고 비인간적인 동시에 친근하고 익숙한 실존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이상하고 비인간적인 생명체를 통해서 우리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근원. 즉 욕망에 따라 자손을 번식해나가는 삶, 배고픔을 느끼는 삶, 허기를 달래고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는 치열한 삶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엔 멀게만 느껴졌던 동물의 세계는 책장을 넘길수록 이상한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감정들이 전혀 아무런 과장 없이 펼쳐지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 아니 우리의 오장육부를 한층 더 강력하게 휘어잡는다. 살아 있는 생명체 각각으로 보자면 일시적이지만 지구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 전체를 놓고 보면 영속적인 삶은 그렇게 우리 앞에 펼쳐진다.
364 필라텔포스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레르게테스는 귀중하고 희귀한 책들을 구입하기 위한 지출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엄청난 액수의 보증금을 물고 아테나이에서 기원전 4세기에 필사되었으며, 아테나이의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이 총망라되어 있는 공인된 비극 전집을 임대했다. 일단 책이 손에 들어오자 그는 보증금을 포기하고 그 책을 두고두고 보관했다.
476 이 여자는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주듯이, 즉각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이 감정에, 이 마력에 바친다. 그러는 동시에 여자는 매 순간 내어주려는 자기 자신을 되찾아오거나 되찾아오려고 시도한다. 낭만주의란 이처럼 상반되는 가치들이 인간 존재의 마음속에서 서로 얽히고 뒤척이면서 상대방을 밀어내는가 하면 밀려나는 움직임의 연속이다. 첫눈에 반한 운명의 순간에 이어지는 밤중 내내 메데이아라고 하는 인물은 전적인 수줍음과 전적인 정념 사이를 헤아릴 수도 없이 여러 차례 오간다. 요컨데 메데이아는 빅토르 위고 식으로 말하자면 천당에 올라갔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죽음으로 돌진하는가 하면 어느새 한달음에 삶을 향해 뛰어오른다. 상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러 생을 마감하게 해줄 독약을 꺼내는 일화, 눈물이 흘러내리고, 죽음과 접촉하려는 순간 문득 솟아오르는 즐거웠던 순간들의 이미지, 죽음을 밀어버리고 기쁨을 향해, 이아손과의 사랑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그 이미지들, 이 장면은 문자 그대로 낭만주의의 결정판이다(결정판이라고 하면 완벽함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이 장면이 그리스 문학에서 유일무이한 장면이라고 확신한다. 정념과 정념으로 인해 파생되는 대조의 효과 외에, 아폴로니오스에게는 낭만주의적이라고 형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면모가 있는데, 바로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자연을 결부시킨다는 점이다.
486 그는 사랑에 빠지면서 비로소 자신의 못생긴 용모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랑이 기운 센 그를 사납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유순하고 섬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갈라테이아에게 그는 그저 자신의 오두막으로 와서 곁에 앉아만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보기에 내가 너무 거칠고 퉁명스럽다면 나를 상대해줄 것도 없어요. 하지만 내가 참나무 장작을 마련해놓았으니 화롯불 곁에 앉아만 있어요. 나는 혼자서 슬픔을 견딜 테니까…난 당신이 입술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저 손등에나 키스할 겁니다….그는 순진하며, 그가 연인에게 주겠노라고 제시하는 선물들이 또 감동적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달의 흔적을 간직한 열한 마리의 암사슴과 네 마리의 아기 곰을 기를 겁니다….그리고 당신을 위해서 눈꽃을 따올 거예요. 나는 당신에게 양귀비 꽃다발을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런데 하나는 여름에 피고 다른 하나는 겨울에 나오니, 두 지를 동시에 당신에게 줄 수는 없겠군요
544 사랑은 더 이상 삽포나 에우리피데스의 시에 나타나는 것처럼 존재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얼음장 같은 죽음으로 몰아가는 질풍노도가 아니다. 사랑은 이제 서서히 저물어가는 맑게 갠 날에, 아름답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여인과 함께하는 시간,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남자와 더불어 보내는 시간이다. 다프니스, 너의 클로에는 우유를 살짝 곁들여 같은 잔으로 마시는 포도주처럼, 그의 입에서 너의 입술로 전해지는 피리 소리가 빚어내는 멜로디처럼, 아름답고 부드럽구나. 클로에. 너의 다프니스는 피어나는 꽃보다, 시냇물의 노랫소리보다 소중하고 아름답구나. 아! 그의 품에 안긴 너는 그의 새끼 염소로구나! 이런 식으로 사랑의 달콤함은 이 세계의 부드러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553 그는 인간들이 쓸데없는 두려움과 고답적인 미신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온한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해방자이며, 치유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구해준 치료사다. 사실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이란 따지고 보면 인간의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음. 아니 얼마든지 치유 가능한 어리석음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루크레티우스는 ‘기품 는 열정’이라고 표현되는 문체를 빌려. 이렇게 선언했다. “그는 신이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지혜라고 일컫는 삶의 법칙을 최초로 발견했으며, 자신이 정립한 학문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수많은 폭풍과 수많은 암흑으로부터 끌어내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빛의 세계 속에 정착시켰다.”
566 인간은 불행하다고 에피쿠로스는 단언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기쁨을 위해 태어났다. 에피쿠로스는 기쁨의 필요성, 기쁨의 소박함. 기쁨의 즉각성에 대한 뿌리 깊은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기쁨은 언제나 우리가 손을 내밀면 잡힐 만한 곳에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은 현실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 의해 지배된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란 말인가? 우리가 가진 으뜸가는 두려움,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어디를 가나 따라다닌다. 그렇게 때문에 인간은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기분전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황당한 기분전환을 즐기고 있을 때에도 이 생각은 줄곧 인간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지 않도록 꽉 막아버린다. 죽음에 대한 생각 앞에서 인간은 마치 곧 끝 모를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와 현기증으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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