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키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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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는 다산 정약용을 전방위적 지식경영인이라 부른다. 그는 다산이 18년 유배생활 중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완성한 것은 한국 지식사의 불가사의라고 정의한다. 다산은 경전에 통달한 걸출한 학자인 동시에 역사를 손금 보듯 꿰고있던 해박한 사학자, 목민관의 행동지침을 명쾌하게 정리해낸 행정가, 형법의 체계와 법률적용을 검토한 법학자이자 지리학자였다. 또한 화성 축성을 설계한 뛰어난 건축가이고, 기중가와 배다리, 유형거를 제작해낸 토목공학자, 기계공학자였으며 의서를 펴낸 의학자인 동시에 독보적인 시인, 날카로운 비평가이기도 했다. 정민 교수는 다산이 지식이 기초를 닦고 정보를 조직화하는 법을 연구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펴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워킹맘이 벤치마킹해야 할 휴식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자, 그럼 타임머신을 타고 18세기 조선으로 날아가보자.
아무리 봐도 다산은 대단한 욕심쟁이였던 듯싶다. 그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리면 이를 버리겠느냐며, 이 작업을 하다가 저 작업에 착수하고, 저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정민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그는 언제나 동시에 7~8가지 이상의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작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런 작업들이 중간에 중단되거나 흐지부지 되지 않고 500권에 이르는 저서로 완성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제자들과의 집체 작업에 있었다. 다산은 목표와 지침을 내리고 작업은 아들과 제자들이 했다. 정리가 끝나면 다산은 그 내용을 감수하고 서문을 얹어 책으로 묶었다. 다산은 지식을 편집하고 경영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다산은 지식경영의 실체를 가르쳤고, 제자들은공부의 방법을 배웠다. 나중에는 제자들도 스스로 자신의 관심에 따라 독자적인 저술을 펴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엄청난 양의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비결은 명확한 목표 관리와 체계적인 단계 수립, 효율적인 작업 진행, 조직적인 역할 분담이었다. 21세기 워킹맘이 다산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모든 일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하는 워킹맘들이 있다. 이런 심리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완벽주의 때문이다. 아이를 넷이나 낳고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다산의 여왕 개그우먼 김지선은 모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의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실내화를 빨고 3학년 때는 깍두기를 담글 정도로 맏딸 노릇을 톡톡히 하며 자랐다. 그러나 이러한 어린 시절의 책임감과 성격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져 아침 프로그램 4개를 하면서도 그 사이 30분이라도 틈이 생기면 시장에 갔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가사 도우미도 믿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야만 만족하는 성격때문에 삶이 너무 힘들어 어느 날은 운전을 하다가 벽에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말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여기 또 한 명의 완벽주의자가 있다. 이미지 컨설턴트이자 에세이스트 이종선은 10년 넘게 한 달 평균 100시간 강의를 하고 500시간 넘게 일하는 일벌레였다.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한 회사가 300평 규모로 확장되고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회사 경영자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커질수록 그녀는 자신의 역할에 빈틈없이 충실 하려고 자신을 더욱 채근했다. 그녀는 집안일도 전부 혼자서 했다. 대전에서 6시에 강의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와 저녁상을 차려 남편과 저녁을 먹고 청소를 했다. 2주에 한 번은 주말마다 시댁 식구들 20여 명과 집에서 식사를했고, 명절 때는 연휴 기간 내내 시댁에서 일을 했다. 자기일을 하면서도 꾀부리지 않는 완벽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00점짜리 며느리로 살림도 잘하고 경제적 지원까지 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새벽에 출근하여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건강에 탈이 나 일을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다. 20년 만에 안식년 휴가를 맞고 나서야 그녀는 인생에서 놓친 것들 것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며 최근 『성공이 행복인줄 알았다』를 출간했다.
완벽주의 때문에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 시대의 워킹맘들에게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은 완전함에서 온전함으로 삶의 지향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완전’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상태로 작은 부족함이나 흠조차 없는 상태이다. 그에 비해 ‘온전’은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히’라는 의미로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본질은 불안전함인데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존재를 부정하는것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심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는 내가 힘들 때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구차하다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아이처럼 징징거리는 거라고 치부했다. 또한 그런 것을 이야기해봐야 상황을 바꾸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믿었다. 감정적 공감보다는 솔루션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남에게부탁하는 것보다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 더 쉽다.
문요한은 이런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아동기 시절, 자신이 힘들 때 진심으로 위로를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쿨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이들은 감정이 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억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문요한은 감정 조절을 못하고 감정이 과잉 되어 있는 것도 정서장애지만 자신의 정서를 지각하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결핍도 심각한 정서장애로 진단한다. 그는 이러한 ‘정서표현 불능증’ 환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처방한다. 감정은 구름 같아 무한정 커지지 않는다. 커지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면 비가 되어 뿌려진다. 비온 뒤에 하늘은 다시 쾌청하게 갠다. 그러니 울고 싶으면 실컷 울라는 것이다.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이 글에서하고 싶은 말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을 부탁하라’는 것이다. 성공적인 워킹맘 생활을 위해서는 필요한 자원을 외부에서 구하는 아웃소싱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미 많은 기업에서 아웃소싱은 일상화되어 있다. 경영 효과와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이름 하에 다양한 방면에서 아웃소싱이 진행되고 있는데 내가 일하고 있는 서치펌역시 채용 아웃소싱 업체라 할 수 있다. 기업체에서는 내부 인원을 최소화하고 영업, 인사, 재정,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외부 자원을 활용한지 오래다. 사실 워킹맘은 육아 문제에 있어서는 아웃소싱이 아니고서는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시어머니든 친정 엄마든, 조선족 이모든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겨야 일터로 나설 수 있지 않은가? 초반부에 등장한 두 명의 여인은 가사 도우미를 믿지 못하고 가사일까지 직접 하다 결국 탈이 났다. 사람을 써봤자 나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팁을 주고 싶다.
어떤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두 가지에 주의해야 한다. 첫번째는 대상 선정에 신중해야 한다. 나는 지인보다는 전문업체를 활용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가사 도우미의 경우 시어머니 교회 사람이나 친정 엄마 친구 네트워크 보다는 믿을 만한 알선업체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나는 양쪽 방법을 다 써봤는데 아는 사람일 경우 처음에는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지만 문제가생기면 체면 때문에, 또는 미안해서 할 말을 하기가 더 어렵다. 우리집은 시어머니가 육아와 가사일을 전담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는다. 할 일이 없으니 부르지 말라던 시어머니는 요즘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신다. 일주일에 단 하루지만 집에 들어서면 향긋한 냄새와 함께 잘 정돈된 집을 보는 것은 나의 기쁨이다. 얼굴이 비치는 반짝반짝 빛나는 수도꼭지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내가 활용하는 YWCA에는 3만원의 연회비를 내면 각종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데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않다고 말하면 즉각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준다. 분실이나 사고 등의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면 보험처리까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는 눈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차라리 내가 하고말지’ 싶은 경우가 있다. 아웃소싱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없다. 가사도우미의 경우도 청소를 기막히게 잘 하는 사람은 다림질이 엉망이다. 보이는 곳만 대충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시키지 않아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를 잘 해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프로패셔널리즘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마음에 꼭 들지 않아도 그냥 그러려니 해라. 가사일 자체가 해도 그다지 표가 나지 않고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일이 아닌가? 얼마간은 그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면서도 버텨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힘들면힘들다고 말하고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라.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워킹맘 생활은 마라톤이다. 그러니 함께 가라. 그래야 멀리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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