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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6일 21시 42분 등록
 

7월 off수업 

외적인 사건 5 가지


1.  노랗게 익은 탱자를 줍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안강이라는 소읍에서 살았다. 안강이라는 곳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뚜렷이 남아있다. 삼거리를 지나 언덕을 조금 오르면 붉은 색 벽돌로 지은 이층집이 나오는데, 그 집엔 나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빨강색은 나쁜 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빨갱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 탓이 아닐까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 5살인가 6살 이었을 것이다. 어느 가을 날, 탱자 울타리에서 떨어진 노란탱자를 주우면서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다. 해질 무렵이라 황금색으로 빛나던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 안강이라는 소읍에 대한 기억을 여러 번 일기장에 기록했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내내 글짓기상과 일기상을 많이 탔다.


2. 가톨릭여고 진학,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 가톨릭여고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부터 엄마와의 마찰,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과의 마찰이 있었다. 친구는 가톨릭신자였기에 당연히 가톨릭여고로 진학을 하는 것이지만, 내 경우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친구 따라 간 것처럼 보여졌다. 그때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무조건 경주여고로 진학하기에 교장실에 몇 번이나 불려가서 왜 가톨릭여고로 진학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김을수 교장선생님께서는 그 환한 웃음으로 ‘학교는 달라도 친구는 만날 수 있다’고 하신 것 같다. 아마 이 사건이 내가 태어나서 나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던 것이라 생각한다.

막상 입학을 하자, 가톨릭여고가 가지는 엄격함과 엄숙함에 질식할 것 같았다. 손수녀의 매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과 자신이 정한 방식으로 우리를 통제하려는 그 무모함, 남자 교련선생님의 무자비한 체벌과 벌세움 등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물과 기름처럼 떠돌았다.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내내 학교를 다녔다.

 

3. 서예를 배우다

대학교 때 방학이 되면 서실을 다녔다.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아, 서실을 다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어느 고등학교에 교사로 가기로 되어 있었고, 지인을 통해 얼마간의  돈을  건넜는데, 돈이 중간에서 공중분해 되었다.(그 당시는 사립고에 교사로 가려면 재단에 돈을 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었다.)

 어머니는 신사임당같이 멋지게 붓글씨를 써는 그런 딸의 모습을 그렸고, 여류서예가가 되기를 원했다. 엄마의 그런 뜻과는 상관없이 백수에게는 하루의 긴 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서예를 하면 하루해가 금방 가 버린다. 먹 가는 시간이 보통 40분에서 1시간은 족히 걸렸다. 벼루와 먹의 마찰로 인해 생기는 먹가는 소리에 귀기울이다보면 마음은 고요해지고 그 시간이 참으로 좋았다. 이런 시간에 빠져 내 청춘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서실에서 보냈다. 그때 나는 분명 무뇌였다.

나는 서예를 지도하시는 심천 한영구선생님을 존경했다. 아마도 선생님의 생일 파티 자리였을 것이다. 그때 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 서예를 배우러오는 것도 좋지만, 이 시대의 한 예술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정신을 배워가기를 원합니다.”

평생을 문방사우와  담요와 함께 한 선생님. 그때 이미 국전심사위원이었고, 대가로서 자리를 굳혔지만, 대가라고 해서 게으름피우거나 나타한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심천 한영구선생님은 놀기 삼아 서예를 배우러오는 사람은 단호하게 내쫓아버릴 정도로 엄격했다. 그런 꼿꼿하고 날선 선비적인 모습이 좋았다.

이 세 번째 사건은 아까운 내 청춘을 붓글씨로 묻어버린 것이 후회스럽고 안타까워서 외적인 사건으로 잡았다.


4. 엄마가 되다

91년 11월엔 아들을, 93년 6월엔 딸을 이 세상에 내놓았다. 나에겐 경이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이다. 미혼일 때 부모의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부모 노릇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 조금 극단적이긴 해도 정부에서 부모의 자격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했던 나였는데, ‘하나면 아이가 너무 외롭다’는 어른들의 말에 덜렁 동의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이다. 두렵지는 않았지만, 어떤 책임감같은 것을 느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방황하던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다. 가끔은 동네에 새로운 카페가 생기면  아이가 잠을 잘 때, 혼자 카페로 가서 음악 듣고 커피 마시곤 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자유방임적인 교육방법을 선택했다. 자유방임적인  교육방법은 거의 나의 게으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크게 강요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별로 강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아들 녀석은 억압당했다고 생각한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5. 인도여행을 하다

2003년과  2005년, 한 달 동안의 인도 네팔 배낭여행를 다녀왔다. 그 여행은 나를 변화시켰다.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좀더 따뜻해지고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좀 용감해졌다고나 할까.

인도여행의 백미로 꼽기도 하는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 화장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분명 대단한 체험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떠할까, 마지막 호흡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맴돌았다. 삶에 대해 어느 한 부분에 관해서는 집착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인도 네팔여행에서는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정전(政戰)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산을 지나다 보면 저 앞쪽에서 폭탄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들렸다. 버스는 가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승객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총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도 네팔>여행기를 썼다. 그리고 책을 출간했고, 글쓰기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내적인 사건 5가지


1. 첨탑 위의 악마, 검은색 휘장을 두른 공간

가톨릭여고의 권위적이고 엄격함에 거의 지식할 지경이었고, 내 심성이 황폐해지는 느낌이었다. 손수녀의 괴롭힘은 학교 인근에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폭력적이었다.

이런 학교가 너무나 싫었다. 밤엔 악몽을 시달릴 때도 있었다. 첨탑 위에 앉아있던 악마가 나에게 다가와 같이 놀자고 하거나, 내 뒤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악마란 영화 엑소시스터에 나오는 사탄을 말한다.

때로는 검은색 휘장을 두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런 꿈을 꾸기도 했다. 검은색 휘장을 두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끝없는 추락으로 이어졌고, 그쯤에서 나는 벌떡 일어나 두려움에 떨었다.


2.소복을 입고 철로를 걷다

결혼을 한 후 일 년 동안 비슷한 꿈을 두 어 번 꾸었다.

하얀색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철로를 걷는 꿈을 꾸었다. 춤추던 철로를 걸어가는 나는 분명 슬픈 얼굴이었다. 이 꿈은 분명 악몽이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식은땀을 흘리면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 날은 소복을 입고 두 손을 벌린 채 철로를 걸어가는 꿈을 꾸었다. 한낱 개꿈으로 여기면서도,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내 수명이 짧음’을 의미하는 꿈이라 생각했기에 많이 슬퍼했다.

 그때 나는 내가 얼마 살지 못하리라 예감했었는데, 지금  결혼하고 20년 넘게 잘 살아오고 있다. 

정말 개꿈이었나 보다.


3. 작가들을 짝사랑하다

4~5년 동안 소설을 배우러 다녔다. 유재용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했다. 그때 한국소설은 사(私)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 있었다. 소설작법을 위해서 소설베껴 쓰기를 했다. 그러다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그 소설을 쓴 작가를 짝사랑하게 된다. 줌마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을 좋아하듯이 소설지망생들은 자기가 닮고자 하는 작가들을 흠모했다. 그 사람의 작품을 찾아서 읽고 인터뷰를 찾아서 읽어내는 일련의 일들이 마음에 오아시스가 되어주었다. 무라카미 하루끼는 너무도 대단한 작가라 흠모하기엔 좀 힘이 부쳤다.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는 작가는 윤대녕, 조경란, 심상대, 은희경, 정찬 등이다. 내가 그 작가들을 짝사랑했다고 해서 문장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지만, 그댄 그것도 멋으로 알고 있었다.


4. 문사수와의 만남

불교공부를 위하여 문사수 법당에 나갔다.

그곳에서 여여법사를 만났는데, 경전의 해박함도 좋았지만, 세상의 그 많은 책들을 섭렵한 해박함에 더욱 놀랐다. 이곳에서 불교경전을 어떻게 내면화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여기서 배운 <금강경>은 내 마음에 커다란 나무로 자리잡고 있다.


5. 에세이스트로 등단

그레이스 문화센터에서 수필쓰기를 배웠다.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공허감을 누를 길 없어 선택한 것이다. 불문학자인 정봉구교수님(정년퇴임을 하시고 문화센터에서 강의)의 지도로 수업은 재미있었다. 1998년 <에세이 문학>을 통해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름을 올렸다.

첫 책 <당신의 아침을 위하여>가 출간되고 나서 일 년에 책 한 권씩 내기로 결심했다.

2010년까지는 그 결심이 잘 이루어졌다. 2010년까지 7권의 책을 내었다. 그런데 2011년 내 글에 대해 내 책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읽어주지도 않는 책, 팔리지도 않는 책을 꼭 내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슬럼프에 빠졌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 열정과 노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글쓰기는 내 인생에 있어 아주 경이로운 일에 속한다. 커다란 내적사건이다. 글을 쓰는 것 그 자체로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 자존심과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지금 변경연에 들어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멋진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멋지고 훌륭한 사부님(아부성 절대로 아님)과 동기들을 만나  한 배를 타고 가는지 너무 경이롭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은 성년으로 자란 것이 너무 대견스럽고 행복하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가고 나이는 먹는 것이지만, 성년으로 자란 그네들이 자랑스럽다.


나는 지금 불행한가

상대적인 불행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인생이 전혀 내 뜻과는 반대로 흘러왔다는 것이다. 앞의 생에 대해서도 내 마음대로 흘러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생이 흘러 가는대로 맡겨놓을 뿐이다.

남편과의 결혼부터 내 생이 어긋났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난 태어날 때부터 어긋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고치고 싶은 점

나는 의지가 약하다. 아무리 결심하고 결심해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잠이 너무 많다. 잠에 대해 고민은 수십년간 이어져온 고민인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IP *.85.249.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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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6 22:40:15 *.41.190.211
깔리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 비슷 합니다.

특히 나도 잠이 많아 고민이 많은데, 영 ~ 해결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민 해결 .... 힘을 합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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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7.17 09:22:44 *.85.249.182

아! 웨버님께서  기분좋은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신다니....

잠을 적게 자는 방법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앞으로 힘을 합쳐 해결해 본다면 넘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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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7 11:38:42 *.252.144.139

칼리여신님, 제가 <휴식>을 주제로 연구를 하다 보니까요, 잠자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당오락이니 등등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강박을 심어 준듯 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제 잠=투자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개인의 체질에 따라 잠자는 시간은 모두 다르대요. 그래서 잠을 많이 자는 것은 그만큼 신체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처질은 매일 낮잠을 자면서도 뛰어난 성과를 이루어냈고 노벨 문학상도 받았대요.

그러니 잠이 오면 그냥 주무세요. 그리고 깨어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게 나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의지가 약하다고 하셨는데 그건 너무 욕심이 많은거예요.(저 또한 그렇다는 ㅎㅎ)

하고자 하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하고 싶은건 몇 개 되지 않아요.

그 몇가지에 집중한다면 의지가 약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거예요.

연구원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은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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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7.18 07:04:34 *.85.249.182

선배님께서 방문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말씀대로

저 같은 경우엔 깨어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되는데,

그것이 안되니, 밤의 시간을 탐내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집중해서 잘  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요.

변경연에 들어와서 느낀 점은 

사람들의 의지가 차돌같아서 나약한 말은 하지 않더라고요.

좀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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