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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7일 11시 40분 등록

문명 이야기  르네상스 5-1

윌 듀런트 지음 / 안인희 옮김, (민음사)

 

 

I. 저자에 대하여 / 윌 듀런트

 

윌 듀란트

 

 윌 듀런트.png

 

윌 듀런트 (Will Durant | William James Durant) 사학자, 전 교수

출생-사망

1885 11 5 (미국) - 1981 11 7

성별 : 남성

본명 : William James Durant

별자리 : 전갈자리

:닭띠

명언 : 자신의 무지를 점차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윌 듀란트, 공부명언)

[출처] 공부 명언- 듀란트,헬렌 켈러, 게이츠,다빈치,니체,포브스,우팅팡|작성자 떡판

 

 

윌 듀란트는 1885 5월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North Adams 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캐나다인 Joseph Durant Mary Allard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뉴저지에 있는 가톨릭 교구의 부속학교에서 선생님 수녀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종교에 열정이 강한 그였기에 그가 성직자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떤 이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1900년 그는 성 베드로 학교에 입학을 하고, 1903년에 학교의 도서관에서 다양한 철학자와 무신론자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확고하게 가졌던 종교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종교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19세 나이에 이르러 <<영국 문학사>>를 써서 뉴욕에 있는 카톨릭 출판사인 벤치거 브라더스로 원고를 보냈지만, 하찮을 정도로 미숙 하다고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1년 후에 1905년 다윈의 <<종의 기원>> <<인간의 혈통>>, 헤켈의 <<창조의 역사>>,, 그리고 스펜서의 <<철학의 종합적 체계에 있어서의 제1월리들>> 탐독했다. 윌 듀란트는 신앙을 잃고 철학을 얻었다. 1907년에 졸업을 하고 뉴저지의 South Orange의 세튼 홀 대학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와 기하학 등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1909년 그가 속해 있던 비밀조직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칼 마르크스를 통합하려는 연구를 시작한다. 이 때 스피노자를 만나면서 그의 삶에 철학자로서의 길이 열렸다. 신학교를 떠난 후 그는 자유 교육 실험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유주의 교육을 실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때 알덴 프리먼은 윌의 서포터 역할을 했고, 그의 유럽 여행을 도왔다. 그 유럽 여행에서 윌 듀란트는 13살 연하였던 에이리얼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후, 그들은 Etherl을 낳고, Louis를 입양한다.

1917년 그는 박사 학위를 따고, 첫 번째 저서인 ‘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을 출간하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지만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수업이 순조롭지 않아 교수 자리를 내놓게 된다. 이 때 그는 한 교회에서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예술의 역사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강의가 윌 듀란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철학 이야기><문명 이야기>의 밑거름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1926년에 <철학이야기>를 썼다. 그는 1935년과 1375년 사이에 그의 아내 Ariel Durant와 함께 <문명 이야기>의 공저에 집중하면서도, <Our Oriental Heritage>에서 <The Age of Napleon>까지 총 11권의 책을 집필했다.

 

1933년 그는 러시아의 비극을 출간했다. 책이 출간되고 몇 년 후, 사회비평가인 윌 로저스가 그 책을 읽고, 훗날, 듀란트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해 쓴 최고의 작가다. 그는 가장 용감한 작가이다. 그는 가장 재미있는 강의를 해 줄 수 있는 사람 중 한명이다.;

 

듀란트가 말년에 병원에 입원한 후, 에이리얼은 식음을 전패했다. 1981년 윌의 나이 96세에 세상을 떠났고, 그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녀도 윌이 세상을 떠난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LA에 있는 Westwood Village Memorial Park Cemetery에 나란히 묻혔다. 철학사에서 보기 드문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윌 듀란트였다.

 

 아내와.jpg

 

<문명이야기>를 쓰기 위해 그의 생에 절반인 50년이상의 시간을 쏟으며, 자료 수집 등을 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내와 끈기를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여생을 마치면서 보여준 윌 부부의 애정은 두 사람의 저술 활동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윌듀란트 혼자 저술한 책보다 Ariel과 공동저술한 책이 훨씬 많다. 당시 여성의 사회참여가 쉽지 않았을텐데, Ariel 이 이렇게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윌 듀란트가 당시 진보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도 그가 살아있다면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넘어 남성페미니스트라는 타이틀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윌듀란트의 저서>

철학이야기, he story of Philosophy(1926), Transition(1927), The mansions of Philosophy(The pleasure of Philosophy 으로 재출간, 1929), The Case for India(1930), Adventure in Genius(1931), The pleasures of Philosophy(1953)

 

<Ariel 과의 공동저서>

The Lessons of History(1968), Interpretations of Life(1970), A Dual Autobiography(1977), The Story of Civilization(1935, 1권발행), The Life of Greece(1939), Caesar and Christ(1944), The Age of Faith(1950), The Renaissance(1953), The reformation(1957), The Age of Louis XIV(1963), The Age of Votaire(1965), Rousseau and Revolution(1967; Pulitzer Prize, 1968), The Age of Napoleon(1975)

 

<사후 출판 도서>

The Greatest Minds and Ideas of All Time(2002), Heroes of History : A Brief History of Civilzation from Ancient Times to the Cawn of the Modern Age(2001)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문명 이야기

 

서곡: 1300~1377

 

1장 페트라프카와 보카치오으 시대 1304~1375

 

1. 르네상스의 아버지

 

P47 2년 뒤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tarca, 그는 페트라코라는 성을 듣기 좋게 이렇게 바꾸었다.)가 세상에 태어났다.)가 세상에 태어났다.

P54 고대의 힘과 장엄함이, 버려진 중세의 수도 로마의 빈곤과 더러움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P54 정치가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고전 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광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는 아비뇽의 성직 매매에 분노했고, 교회 고송의 느림, 추기경과 고급 매춘부들이 놀아나는 것, 그리스도교의 세속화 경향 등에 분노했다.

P55 여행할 때는 고전 텍스트들이 아라비아이나 중국 상인들이 제공하는 어떤 물건보다도 더 값진 상품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찾고 사들였다. 살 수 없는 사본들은 손수 베꼈다. 그는 그리스에서 보내온 호메로스 한 권을 자랑으로 삼았고, 그것을 보내 준 사람에게 에우리피데스의 필사본 보내 달라고 청했다.

P56 단테가 죽었을 때 페트라르카는 이미 열일곱 살이었지만 그들의 감정에 거대한 차이가 나타난다. 일반적인 동의에 따르면 페트라르카는 최초의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인간이 지상의 삶에 관심을 가질 권리를 명백하게 묘사한 최초의 작가이며, 또한 지상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증가시켰고, 부유함을 얻기 위해 노동한 최초의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그네상스의 아버지였다.

 

2. 나폴리와 보카치오

 

P57 죠반니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는 피렌체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이름과 도덕성의 의심스러운 프랑스 아가씨 사이에 맺어진 친분 관계의 뜻하지 않은 결과로 삶을 시작했다.

P57 그는 어릴 때 피렌쩨 근처에 체르탈도로 옮겨 와 계모 밑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P58 페트라르카가 법을 싫어했듯이 그는 사업을 싫어했다. 빈곤과 시()를 선택하면서 오비디우스에게 마음을 뺏겨 버렸다. 그러면서 그의 『변신 이야기』와『유명한 여성들의 편지(Heroides)』를 즐기고, 『사랑의 기술(Ars Amandi)』 대부분 마음으로 배워 익혔다.

P58 아버지는 그가 아름다움보다 돈을 더 사랑하도록 만들 수가 없었기에, 그가 교회법을 공부한다는 조건으로 사업을 그만두는 일을 허용했다. 보카치오는  동의 했지만 이미 사랑을 할 정도로 자라 있었다.

나폴리의 가장 쾌활한 숙녀는 마리아 다튀노(Maria d’ Aquion)였다. 그녀는 현명왕 로베르의 사생아였다. 그러나 어머니 정식 남편이 그녀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였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은 그녀는 열다섯 살에 아퀴노 백작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그녀의 마음에 맞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애인들을 연달아 만들오, 그들의 자신의 장신구를 사느라 돈을 다 쓰게 만들었다.

P58~59 5년 동안이나 그렇게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녀는 다른 주머니들이 바닥날 때까지 그를 기다리게 했다. 그런 다음 그가 주머니를 비우는 일을 허락해 주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밀회의 한 해가 지나가자 간통의 결렬함이 무뎌졌다. 그가 다른 여자들을 쳐다본다고 그녀는 불평했다. 그 밖에도 그는 어차피 주머니가 바닥났다. 작은 불꽃은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섰고 보카치오 물러나서 시에 전념했다.

P55400행에 이르는 이 작품의 절정은 크리세이드가 옷을 벗어 던지고 벌거벗은 채 애인의 품으로 뛰어드는장면이다.

 

3. 계관 시인

 

P63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 형태와 소리로 드러난 아름다움, 자연관 여자와 남자의 아름다움에 민감해야만 했다. 음악을 사랑한 그는 특히 류트 연주에 능했다. 그림도 숭상했는데 친구들 중에는 시모네 마르티니도 있었다. 여자들도 그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 분명하다.

P63 마은이 넘은 뒤로 여자를 육체적으로 건드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문학적 활동과 아내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신체와 정신의 힘이 대단히 커야만 한다.

P65 요한나 1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헝가리 왕의 아들이며 자신의 사촌인 안드레아스와 결혼했다. 안드레아스는 여왕의 배우자일뿐 아니라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요한나의 애인 타란토의 루이가 그를 죽이고 (1345) 여왕과 결혼 했다. 헝가리 왕좌를 물려받은 아드레아스의 동생 루트비는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쳐들어와서 나폴리 자치했다.

 

4. 리엔쪼이 혁명

 

P68 리엔쪼는 콜론나와 다른 귀족들에게 도시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분노했지만 무장한 현명군에 맞서지 못하고 시골 영지로 물러났다. 리엔쪼는 성공에 도취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따라 신성로마공화국을 구제하는사람이라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P68 그의 행정은 탁월했다.

P69 리엔쪼의 이 고귀한 꿈의 붕괴 과정은 놀랍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자유가 그렇듯이 권련도 오지 냉철한 판단력을 지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다.

리엔쪼는 현실정치가 되기에 웅변가로서 지나치게 위대했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위대한 무구, 약속, 주장들을 스스로 믿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위대한 문구, 약속 주장들을 스스로 믿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의해 중독되었다. 연합의회가 열렸을 때 (13748) 이회가 자기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는 것으로 회의가 시작되도록 만들었다.

P73 재산이 없는 계층은 그가 이제 유토피아에서 치유된 조심스러운 보수주의자인 것을 알자 그에게 등을 돌렸다. 콜론나 가문이 그에 맞서 전쟁을 선포하고 팔레스트리나에서 그를 포위하자 보수를 받지 못한 그의 군대는 난동을 일으키려고 했다.

P73 수많은 가짜 영웅들이 그의 죽은 몸에 칼을 찔러 넣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시신은 길거리를 통해 끌려 다니다가 죽은 짐승의 곡기와 같은 꼴로 정육점 창고에 매달렸다. 시체는 이틀이나 그곳에 그대로 매달려 대중의 모욕과 개구쟁이들이 던지는 돌을 감당했다.

 

5. 떠돌이 학자

 

P75 여기에 천재적인 죠토가 50점에 이르는 벽화, 원형화, 메달 등을 그렸다. 성모와 그 아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심 벽화 주변을 예언자와 성인들의 머리가 둘러싸고, 인류의 미덕과 악덕을 나타내는 큼직한 여성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P76 쉴 줄 모르는 이 시인은 1348년에는 만토바에, 이어서 페라라에 모습을 나타냈다. 1350년에 그는 로마 기념의 해(희년) 행사를 향해 떠나는 순례자의 물결에 합류했다. 가는 도중 처음으로 피렌체에 들렀다. 그곳에서 보카치오와 확고한 우정을 맺었다. 페트라프카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그 이후로 한마음을 나눈 사이가 되었다.

 

6. 죠토

 

P78 시대의 정신에 따라 장엄함과 높이와 탁월함에서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그 위대성의 절정에 도말 했을 때 이룩했던 것을 능가하는 종탑이 건설되어야 한다.” 는 포고문이 나왔다.

P82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넉넉한 재산이 있었지만 너무나 헌신적인 사람이었기에 자부심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P83 오르비에토와 시에나 교회의 정면부는 정직한 건축이라기보다는 조각과 모자이크를 탁월하게 배치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옮다. 교회의 의미는 기도나 찬양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것이어댜 하는데, 검은색과 흰색 대리석이 수평으로 층을 이루어 교차하는 것이 눈과 영혼을 피곤하게 만든다.

P84 상인들의 황금은 예술로 바뀌고, 상인과 장인들의 시끄러운 가게들도 변화하고, 산업적이고 반항적이고 격하기 쉽고 지적인 대중의 주택들로 변했다. 자아의 격렬함 속에서 르네상스가 태어났다.

 

7. 열흘 이야기 (데카메론)

 

P87 흑사병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는 폐를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고열에 시달리다가 피를 토하고 보통 사흘 만에 죽음에 이르렀다. 다른 하나는 임파선을 통한 전염으로 열이 나고 종기와 등창이 일어났다가 보통 닷새 만에 죽었다. 이 질병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면서 1348년에서 1356년 사이에 이탈리아 인구의 절반 가량이 죽었다. 시에나이 연대기 기록자 1354년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P90 보카치오의 인간 희극 (commedia umana)”이 즐거운 이야기로 대구를 이루게 되었다. 이 그룹의 구 누구도 즐거운 소식 이외의 다른 소식은 가져오지 않기로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평균 6쪽 길이에 이르는 이야기들은 보카치오가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드물다. 이들은 고전 문헌, 동양의 작가들, 중세의 이야기, 프랑스의 우화, 혹은 이탈리아의 민담 등에서 끌어모은 것들이다.

P90 5일의9번째 이야기이다. 페데리고의 이야기로서, 그의 매와 그의 사랑 이야기로서 그리셀다 이야기만큼이나 자기희생적인 이야기다.

P90 “바빌론 술탄

P93『열흘 이야기』는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남았다. 그런 명성을 얻는 것은 기법보다 오리려 그 도덕성에 힘입었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도덕성이 완전히 순결한 것이었다 해도 분명 보존될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구성이 완벽하다. 이점에서 『캔커베리 이야기』를 능가한다. 이 작품의 산문은 이탈리아 문학이 다시 능가하지 못한 표준이 되었다.

 

8. 시에나

 

9. 밀라노

 

10. 베네찌아와 제노마

 

2장 아비뇽의 교활등 1309~1377

 

1. 바빌론 포로

 

P115 필립4세는 교황 포니파키우스 8세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체포하여 굴욕을 주고 거의 굶어 죽게 만들어서 그리스도교 세계를 깜짝 졸라게 만들었다.

P118 그는 드물게 조합된 능력을 보였다. 곧 학문적 탐구와 행정적 기술의 조합이었다. 그의 통치 아래 아비뇽 교황청은 부패하기는 했으나 대단히 유능한 관료 조직으로 발전했다.

P124 교회의 품 안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부터 가장 하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탐욕에만 힘쓰고 있다고 모두들 외치고 널리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P124 늙은 남자들이 뜨겁게 달아올라 비너스의 품속으로 뛰어든다. 나이도 품위도 권련도 잊고 마치 자기들의 영광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잔치와 술 취함과 음란함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온갖 수치 속으로 달려든…. 사통, 상피붙기, 강간, 간음이 교황청 놀이 음탕한 즐거움이다.

P125 이전의 관습을 벗어난 교화가 설교자나 개혁가를 내놓지 못하고, 허풍이 센 남자들, 간교하고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남자들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니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리스도교도인 사람이 극소수가 되고 말았다.

 

2. 로마로 가는 길

 

P127 유명한 영국의 모험가 존 호크우두를 지혜로 이겨 포로로 만들고, 용병대장들에게 신에 대한 두려움까지는 아니라도 교화 사절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냈다. 또한 볼로냐를 반항적인 대주교에게서 탄환하고, 밀라노의 비스콘티를 설득해서 교회와 평화를 맺게 만들었다. 이제 교황이 이탈리아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3. 그리스도교도의 생활: 1300~1424

 

P137 성 베르나르디노는  가장 양심적인 이단 박해자였다.

 

 

피렌체의 르네상스 1378~1534

 

3장 메디치 가문의 떠오름 1378~1464

 

1. 무대 장치

 

2. 물질적 기반

 

3. “조국의 아버지코시모

 

P150 코시모의 고조할아버지인 아베라르도 데 메디치가 대담한 상업의 현명한 재정 운영을 통해 집안의 재산을 모았고, 1314년에 정의의 수호자로 뽑혔다.

P150~151 죠반니 디 비치는 1428년에 죽으면서 아들 코시모에게 훌륭한 이름과 토스카나 지역 최대의 재산을 남겼다. 17 9221폴로린(448525달러)에 달하는 재산이었다. 코시모는 이미 서른아홉의 나이로 광범위하게 펼쳐진 회사의 운영을 맡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은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광범위한 농장 경영, 견직과 모직물 제조업, 그리고 러시아, 스페인, 스코틀랜드, 시리아, 이슬람과 모든 그리스도교국가에 이르는 다양한 무역 등을 포함했다.

P151 그의 인기가 다른 부호들의 질투를 유발해서 1433년에 리날도 델리 알비찌(R.d.Albizzi)가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화국을 전복시키고 스스로 독재관이 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혐의였다.

P151 코시모는 굴복하고 베티오 궁전에 갇혔다.

P151 그곳에서 그의 온화함과 재산은 그에게 많은 치구를 만들어 주었다. 베네찌아 정부는 곧 그 영향력을 이용해서 그가 고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1434년에 선출된 시 의회는 그에게 호의적이어서 추방령을 취소했다. 코시모는 승리에 가득 차서 돌아왔고 알비찌오 그 아들들은 동망쳤다.

P153 코시모 자신이 공공사업과 개인적인 자선을 위해 40만 폴로린 (1000만 달러?)을 썼다. 이건은 구가 후계 자에게 남긴 것의 거의 두 배나 되는 액수였다. 그는 일흔다섯 생애 마지막까지 아주 근면하게 일하면서 자신의 재산과 국가의 사업을 동시에 보살폈다.

P154~155 그리고 12년 동안이나 피치노화 함께 그리스와 로만 고전들을 공부했다. 많은 돈을 들여 고전 텍스트들을 수집했고 그의 배에 실린 가장 값비싼 화물은 많은 경우 그리스나 알렉산드리아게서 가져오는 필사본들이었다.

 

4. 인문주의자들

 

P157 터키 사람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 전 반세기 동안 10면 이상의 인문주의자들이 그리스에서 공부하거나 여행했다.

P160 그래서 에네상스는 그리스에서 라틴으로, 아테네 에서 로마로 옮겨 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1500년 세월이 사라지고 키케로와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와 세네카의 시대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문체가 실질모다 더 중요해지고, 형식이 내용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다. 위대한 고대 로마의 웅변술이 다시금 왕자들과 교육자들의 홀에 올려 펴졌다.

P168 문학과 철학에서 변화는 인간의 정신에 지구의 일주와 탐색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인간을 교리에서 해방시키고, 또 죽음에 대해 명상 하기보다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유럽신의 정신을 해방시킨 것은 탐험 가들이 아니라 인문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5. 건축: 브루넬레스코의 시대

 

P174 그의 궁전은 1세기 동안이나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6 조각

 

P177 그의 천재성은 기베르티의 그것처럼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욱 큰 범위와 높이에 도달했다.

 

4장 황금시대 1464~1492

 

1. 통풍 환자 피에로

 

2. 로렌쪼의 발전 과정

 

3. 빛나는 사람 로렌쪼 일 마니파코

 

P211 그 시대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의 종교적 믿음이 삶의 즐거움을 가로막지 않았다.

P213 그는 영향력을 발휘해서 강한 국가에 맞서 약한 국가를 방어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나라들 사이의 추구와 싸움을 회해시키고, 모든 전쟁 원인을 싹부터 잘라내고 애썼다. 이 행복한 10년 동안 (1480~1490) 피렌쩨는 정치, 문한, 예술에서 그 영광의 절정에 도달했다.

 

4. 문학: 폴리찌아노의 시대

 

P216 그의 도움과 모범에 용기를 얻은 피렌체의 문인들은 차츰 이탈리아어로 작품을 쓰게 되었다.

P227 믿음은 사람이 얻는 것이야. 이것, 저것, 아니면 다른 것으로 말이지.

 

5. 건축과 조각 : 베로키오 시대

 

6. 회화

 

7. 로젠쪼의 시대가 저물다.

 

P251그가 죽은 이후로 피렌쩨는 차츰 쇠퇴했고 이탈리아에는 평화가 사라졌다.

 

 

5장 사보나롤라와 피렌쩨 공화국

 

1. 예언자

 

2. 정치가

 

P262 8년 뒤 이방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서로 마주보는 벽에 벽화를 그리는 그 유명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사보나로라의 영향력과 능변의 힘을 입어 이렇게 제안된 법안은 일반의 찬성을 얻었고 1495 610일 새로운 공화국이 출범했다.

 

3 순교자

 

4. 공화국과 메디치 가문 : 1498~1534

 

5. 혁명 시대의 미술

 

P290

서두르는 열렬함으로, 그것은 부유함이 곧 전쟁 소게 사라질 것이고 이탈리아의 자부심은 외국의 폭군 아래 비천한 상태가 될 것이고, 르네상스 인간의 놀랄 정도로 풍부한 정신에 맞서 다시 교리 감옥 문들이 정신을 닫아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탈리아의 축제 행렬: 1378~1534

 

 

6장 밀라노

 

1. 배경

 

P293 피렌쩌, 베네찌아, 로마에만 탐구를 집중시킨다면 르네상스를 제대로 본다고 할 수 없었다. 로도비코와 레오나르도가 함께 있던 밀라노의 10년은 피렌쩨보다 더욱 빛나는 곳이었다.

 

2. 피에몬테와 리구리아

 

3. 파비아

 

4. 비스콘티 가문

 

P305~306 그의 동생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는 아버지의 섬세한 지성관 끈질긴 노력, 야망, 머리 내다보는 정책을 등을 물려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 쟌갈 레아쪼에게서는 한곳에 앉아 있는 용기로 나타났던 것이 필리포에게서는 한곳에만 앉아 있는 소심함으로 나타났다.

P311 그런데도 그레상스 통치자들 중에서 자비심과 너그럼움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은 드물다. 자인성은 그의 기질에 맞지 않았고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그의 은총을 누렸다. 온화하고 예의 바르고 모든 아름다움과 예술에 민감한 감수성을 지녔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정적이고 그리면서도 전만을 잃어버리는 일이 드물고, 감정을 통제하고 회의적이고 미신적인 사람, 수백만 금의 주인이자 점성술사의 노예였던 사람. 로도비코는 바로 이 모든 것이었다. 전쟁하는 집안의 후계자로서 불안정한 절정에 이른 인물 이었다.

 

6. 학문

 

P323 르네상스의 시대에 학문은 정열이 되고, 문학은 전쟁이 될 수도 있었다.

 

7. 미술

 

P330 그네상스 이탈리아 미술은 하나의 정신을 이루려는 성향을 가지고, 그러면서도 페리클레스 시대 그리스를 능가하는 정도의 다양한 천재들 사이에서 꽃이피어났다.

 

 

7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 1452~1519

 

1. 발전 과정: 1452~1482

 

르네상스에서 가장 매혹적인 인물은 1452 4 15일에 피렌쩨에서 약 95킬로미터 떨어진 빈치 마을 근처에서 태어났다. 농부의 딸이었던 그의 어머니 카테리나는 그의 아버지에게 결혼해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그녀를 유혹했던 피에로 단토니오는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피렌쩨의 법률가였다. 레오나르도가 태어나던 해, 피에로는 자기처럼 부르주아 계층에 속하는 여자와 결혼했다. 카테리나는 농부 남편을 맞아들였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피에로와 그 아내에게 양보했다.그래서 레오나르도는 어머니의 사랑 없이 절반쯤 귀족적인 안락함 속에서 양육되었다. 아마도 이런 어린 시절의 환경에서 그는 아름다운 의상에 대한 취향과 여자에 대한 혐오감을 얻었을 것이다.

P333 당시 이탈리아에 동성애가 그토록 널리 퍼져 있었는데 오직 자신과 몇 명의 친구들만 그렇게 심문을 받는 것에 대해 레어나르도가 미심쩍게 여긴 것은 협당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을 가두었던 일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페런째를 용서하지 않았다.

P335 레오나르도는 그림을 시작하면서 너무 풍부한 상상을 했고, 세부적인 것들에 실험적으로 빠져들면서 자기를 잊었다. 원래의 주제를 넘어서 인간, 동물, 식물, 건축 형태, 바위 산, , 구름, 나무들의 끝도 없는 모습을 신비스러운 명암으로 바라보았다. 그림의 기술적인 완성보다는 그 철학에 빨려 들어갔고, 의미를 드러내느라 바빠서 이 인물들에게 색을 주는 일처럼 덜 중요한 작업은 다른 사람들 손에 넘긴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노동을 하고 나서, 그는 자신의 손과 물감이 구체화시킨 꿈의 불완전함에 절망해서 떠나갔다. 이것은 몇 가지 예외를 빼고는 마지막까지 레오나르도의 성격과 운명으로 남을 특징이었다.

 

2. 밀라노 시절: 1482~1499

 

P340 인물에 삶의 동작이나 감정을 불어넣어 줄 그 어떤 생생한 움직임도 끼워 넣을 수 없었다.

P341 레오나르도 이 그림에서 손을 뗐을 때 작품이 어떤 결혼을 가졌든 간에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르네상스 시대가 만들어 낸 가방 위대한 그림이라는 것을 즉석에서 알아보았다.

 

3. 피렌쩨 시절: 1800~1501, 1053~1056

 

P344그는 마흔여덟 살이 되었을 때 약 17년 전에 끊어 버린 삶의 끈을 다시 이어 보려고 했다 그사이 그는 변했다. 그러나 피렌쩨 역시 많이 달라졌다. 그가 없는 동안 이 도시는 절반 민주적이고, 절반은 청교도적인 공화국이 되어 있었다.

P345 레어나르도 특유의 미소는 이후 50년 동안이나 레오나르도의 후계자들 사이에 계속 살아 유행이 된다.

P350 아니면 모나리자가 보여주는 것은 레오나르도 자신의 미소였던 것일까?

4. 밀라노와 로마 시절 : 1506~1516

 

5. 인간 레오나르도

 

P356 그의 장점은 그의 단점들의 더 나은 측면이다. 성적인 도착증은 아마도 그에게 일에 몰두할 여지를 남겨 주었던 겉 같다. 고통스러운 민감함은 보통 사람의 눈길에 보이지 않는 현실의 수만은 단면들을 그에게 열어 보였다.

P356 그이 호기심, 도착증, 민감성, 그리고 완전욕,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그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을 만들어 냈다.

P357 그는 5000쪽에 달아하는 그을 썼지만 단 한 권도 환성하지 못했다. 양만으로만 따지면 그는 화가라기보다 저술 자였다.

 

6. 발명가 레오나르도

 

P363 레오나르도는 잘못된 생각을 쫓고 있었다. 인간의 비행은 활강을 빼고는 새를 흉내 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7. 과학자 레르나르도

 

8. 프랑스 시절 1516~1519

 

9. 레오라느도 유파

 

P373 우아하지만 열등한 후배들과 더불어 밀라노의 찬란한 시대는 사라졌다. 로도비코의 긍정을 잠시 빛나게 만들었던 건축가, 화가, 조각가, 시인들 중에서 이 도시 태생은 드물었다. 그들 대부분은 신사적인 전제 군주가 몰락하자 다른 목장을 찾아 떠났다. 이어서 이 궁정에 나타난 혼란과 종속 상태 속에서 탁월한 재능은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한 세대가 지나자 성()과 대성당만이 남아서 밀라노가 이탈리아의 축제 행렬을 선도하던 저 화려한 10년 시절 (15세게 마지막 10)을 추억하게 만들었다.

 

 

8장 토스카나 움브리아

 

1.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380 그는 르네상스의 중심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았기에 자기 속에 잠재된 완전성을 얻지 못했다. 아니면 자기 예술의 완전한 영향을 보여 주시 못했다.

 

2. 시뇨렐리

 

P383 어찌 되었든 그는 구원받은 자의 평온함으로 이 난장판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P388 15세게 마지막 무렵에 시에나는 좋겐 나쁘건 그 이름이

 

3. 시에나 소도마

 

4. 움브리아와 발리오니 가문

 

5. 페루지노

 

P402 자신을 능가할 제자를 한 사람 키웠다. 라파엘로는 결점을 없애고 완벽해진 페루지노이다.

 

 

9장 만토바: 1378~1540

 

1. 비토리노 다 펠트레

 

그는 제자들이 그리스도교도의 행동과 이교도 지성의 날카로운 명료함, 또 르네상스 인간의 미적 감각 등을 하나로 합치기 원했다. 건강한 신체, 성격의 강인함, 정신의 풍부함 등을 갖춘 완전한 인간이라는 르네상스의 이상은 비토리노 다 펠트레에게서 첫 번째 형태를 잦추고 나타나고 있다.

 

2. 안드레아 만테냐: 1431~1506

 

3. 세계 제일의 여성

 

P416 그녀의 생애를 지배한 정열은 사본들, 조각상, 회화, 도자기, 고대의 대리석상 금세공사의 작품들을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친구들을 이용하고, 밀라노에서 로도스에 이르는 도시들에 특별한 심부름꾼을 고용해서 자신을 위해 흥정하고 물건을 사들이도록, 그리고 새로운 물건들에 항상 주목했다. 그녀는 극성스럽게 값을 흥정했다. 소박한 나라의 재정이 그녀의 생각을 받쳐 주기에는 너무 부족했디 때문이다. 그녀의 수집품은 작지만 물건마다 각 분야에서 소중한 것들이다.

 

10장 페라라

 

1. 에스테 가문

 

P426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는 정복할 수 없는 이 공작에게 영예로운 정착지를 주었고, 알폰소는 한동안 자신의 재능을 평화의 기술로 향할 수가 있었다.

 

2. 페라라의 예술

 

P426 페라라의 문화는 순수 귀족적이다.

P427 페라라 화가들은 겸손하게 죠토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니콜로 3세가 그들과 경쟁할 외국의 예술가들을 데레옴으로써 정체된 물이 흔들렸다. 베네찌아에서온 야포코 벨리니, 파도바 출신이 만테냐, 베로나의 피사넬로 등이었다. 레오넬로는 다시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을 환영함으로써(1449) 여기에 자극을 덧붙였다. 로히어르는 이탈리아 화가들ㅇ 오일을 사용하도록 한 사람이었다. 같은 해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코가 보르고 산 세폴크로에서 이곳으로 와서 공작 궁전에 (지금은 사라진) 변화를 그렸다. 페라라 유파를 이룬 것은 파도바에 있는 만테냐의 벽화를 코시모 투라가 열심히 연구한 데서 온 것이며, 또 파도바에서  프란체스코 스코르치오네가 가르친 기법의 연구에서 온 것이다.

P429 화가들과 건축과들은 페라라의 행운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동하는 예술가들의 일부일 뿐이었다 세밀화 화가들은 열성에 넘치던 이 시대 다른 곳에서 그랬듯이 페라라에서 많은 유명한 그림들 보다 오히려 더운 오래, 더욱 만족스럽게 눈길을 유혹하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들을 생산했다.

 

3. 학문

 

P430 페라라의 지적인 생활은 두 가지 뿌리를 갖는다. 대학과 과리노 다 베로나 (Guarion da Verona)였다. 1391년에 세워진 대학은 자금 부족으로 곧 문을 닫았다. 네콜로 3세에 다시 문을 뎐 대학은 레오넬로가 포고령을 내려(1442) 재조직하고 재정 후원을 하기까지 절반쯤 굶주린 생명을 유지했다. 이 포고령은 기념할 만한 것이다.

P431 비토리노처럼 그도 자신의 개인 재산을 털어서 가난한 학생을 가르쳤다.

 

4. 아리오스토

 

P436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두 번째로  침입할 준비를 할 때도 (1496) 아리오스토는 호라티우스 방식의 찬가를 썼다. 그러면서 이 일을 자기에게 어울리는 관점으로 바라 보았다.

내게 샤를과 그의 군대가 온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림자 속에 쉬면서 부드럽게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추수하는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본다. , 그대 나의 필리스여, 너의 하얀 손을 가지각색 꽃들 사이로 뻗쳐 너 목소리가 만드는 음악에 맞추어 내게 화관 하나를 짜 주렴.

P441 아리오스토는 이 모든 것을 너무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글을 쓴다. 그는 자신의 시구의 마법을 통해 우리를 비현실적 세계로 끌어들인다.

P445 아리오스토의 언어를 완전히 아는 사람, 그의 유쾌함과 감상의 뉘앙스를 잡아낼 수 있는 사람, 그의 멜로디 풍부한 꿈의 음악에 완전히 반응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이다.

 

5. 이후의 영향

 

11장 베네찌아와 그 영토

 

1. 파도바

 

P447 카라라 집안의 전체 통치를 받던 시대, 파도바는 베네찌아에 맞서 경쟁하고 위협하는 이탈리아의 핵심적인 세력의 하나이다.

 

2. 베네찌아의 경제와 정책

 

P450 1495년 프랑스 대사 자격으로 이곳에 도착한 필립  드 코미네는 이도시를 가라켜 내가 본 중에서 가장 승리에 가득 찬 도시 라고 표현하고 있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적대국인 밀라노에서 온 피에트로 카솔라는 그 아름다움과 당당함과 부를 모샤할 길이 없다고 여겼다.

117개섬, 150개의 운한, 400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대운하(카날 그란데)의 유유한 물의 산책로가 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길을 보고 코미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고 표현했다.

P453 유럽은 베네짜아가 그리스도교를 배신 했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교황이 나서서 터키에 맞선 또 다른 십자군 전쟁을 제안했을 때 베네찌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도시는 무역이 그리스도교 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유럽과 의견이 같았던 것이다.

3. 베네찌아의 통치 방식

 

P457 도덕적으로 이 정부는 이 시대 다른 정부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 형법 분야에서 오히려 더 나빴다. 이익의 많고 적음에 따라 동맹을 맺고나 깨드렸다.

 

4. 베네찌아의 생활

 

P459~460 15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 그리고 16세기의 처음 몇 십 년은 베네찌아 생활에서 가장 화려한 광채의 시기였다. 터키는 평화를 이룩하고, 아프리카는 지역과 대서양의 입구를 둘러싼 지중해 지역에서 아직 심각한 위축을 겪기 전이라 세계 무역을 통해 얻은 이익이 베네찌아 섬들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P460 상류층은 노예들을 두었어도 게으름뱅이는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은 청소년이 되면 상업, 재정, 외교, 통치, 전쟁 등에서 활동했다. 우리가 가진 베네찌아 사람들의 초상화는 강하게 개성을 의식하고 있고, 자기들의 처소에 대해 자부심이 강하지만 진지한 의무감을 지닌 모습을 보여준다.

 

5버네찌아의 밀술

 

P495 프랑스 왕비는 베네찌아에서 염색된 공단 300조각을 주문했다.(1532) 베네찌아 가게에서 부드럽고 화려한 옷감 재료들이 제조되고 염색 되었다. 위대한  베네찌아 화가들은 자기들 그림의 절반을 이루는 화려한 의상을 위한 모델을 찾아냈다. 베네찌아 러스킨이 가졌던 경제의 이상을 거의 실현했다. 곧 모든 산업이 하나의 예술이 되어야 하고, 모든 제품은 기능공의 개성과 예술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6. 베네찌아의 학문

 

P496 베네찌아 여자들은 교육을 향한 가식이 적었다 그들은 유체적으로 매력적이거나, 아니면 어머니로서 자식을 많이 두었거나, 아니면 존경을 받는 것으로 만족했다.

P497 책을 사는 대중이 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규모로 생겨나도록 해야만 했다. 그리고 저작권 법의 보호가 없는 상태에서 이 모든 것에 투자를 해야만 했다.

 

7. 베로나

 

P512 그들의 삶은 예술가로서 단정한 것이었고, 작품은 그들의 천성과 환경을 반영하는 평온하고 건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12장 에밀리아와 마르케 1378~1534

 

1. 코레죠

 

P514 16세기 처음으로 몇 십 년 동안 코레죠의 집안은 길베르트 10세 백작과 그의 아내 베로니카 밤바라가 이끌었다. 그녀는 르네상스의 위대한 여성들 중의 한 명이다.

P518 우리는 코레죠가 육체를 그리려는 감각을 가진 감각주의자라고만 결론지을 수는 없다. 이들 신화들에서 드는 인간의 표면만 특히 강조했다. 그러나 성모 그림들에서 그는 더욱 깊은 아름다움도 올바르게 처리했다.

 

2. 볼로냐

 

P528 온 마음을 다하여 내가 상신을 사랑하듯이 나를 앞으로도 계속 사랑해 주십시오

언제나 당신께 온전히 봉사할 각오로

 

3. 에밀리아 기도를 따라서

 

4. 우르비노와 카스틸리오네

 

P543 카스틸리오네가 생각했던 세련된 문화와 상호 존중의 상상적 세계는 잔인한 로마 유린으로 붕괴되었다. (1527) 이 책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한 이탈리아에서 부유함은 자주 큰 파멸의 원인이 된다.

 

13장 나폴리 왕국 1378~1534

 

1. 너그러운 알폰소

 

P548 그는 인문주의자들에게 완벽한 발언의 자유를 주었다. 심지어는 이달과 도색적 발언도 허용되었고, 종교 재판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P549 정말이지 자연과 신은 하나다. 따라서 우리의 본능도 선한 것이고, 쾌락과 행복을 향한 우리의 자연스러운 욕망도 인가의 갊의 적합한 목적으로서 그것의 추구가 정당한 것이다.

 

2. 페란테

 

P552 알폰소 나폴리 왕국을 자신으 아들로 추정되는 페란테에게 (재위 1458~1494)물려주었다. 그의 출생은 미심쩍었다.

P599 규모가 더 큰 예술들과 함께 이 모든 공예분야와, 또 이를 사랑스럽고 격렬한 폭발성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노동과 사랑, 속임수와 정치적 수와, 헌신과 전쟁 성실함과 철학, 지식과 미신, 시와 음악, 미움과 유머 등이 모두 합쳐져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만들어 냈고, 또 메디치가 이끄는 로마에서 르네상스를 완성하고 다시 파멸에 이르게 했다.

 

 

III. 내가 저자라면 / 윌 듀런트

 

지난번 그리스인 이야기를 보면서 일생의 천직으로 그리스인의 삶을 밝혀내는데 흥미를

느끼고 3권의 책을 남기고 사라진 저자 앙드레보나르의 글을 접한 뒤 저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었다. 평생을 한 가지 분야에 자신을 몰입하신 분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에 읽은 문명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 된다. 저자인 윌 듀런트는 부부가 평생을

인류의 문명에 대한 흥미를 잃지 많고 많은 사료 조사를 통해 인류의 문명이야기를 일궈낸

분이시기도 하다. 처음에는 미국 한 교회에서 강의를 하면서 철학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냈고,

문학 이야기도 책으로 편찬해 저자들에 대한 주옥 같은 이해를 얻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 서평은 그 중에서 가장 심혈을 기우려 만든 문명 이야기 중 르네상스 이야기 1’편이다.

이 책의 구성은 인물 위주로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고, 위대한 족적을 남긴 분들이 살았던 도시와 지배세력, 문학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루고 있다.

인물위주로 단락을 구분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르네상스의 아버지 '페트라르카'

2.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로렌쪼'

3. 르네상스를 완성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이야기 중 위 세 사람을 시대적 구분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특히 저자가 주목했던

이유가 뭘까?

페트라르카가 르네상스의 아버지라고 불려 질 만큼 이룬 공적은 무엇이 있었는가?

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르네상스의 아버지 페트라르카는 르네상스의

물 코를 트이게 하신 분이라는 걸 저자의 설명을 통해 이해 하게 되었다.

메디치 가문은 오래 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세계를 지배하는 가문들 중에 그 형성 과정을 보면

르네상스 시대에 메디치 가문이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 한다. 금융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 했지만 고객의 신용을 중시 여기고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신용을 지키는 일을 먼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피렌체 유수한 인문학자,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자선 행사나 지원은 르네상스 활동에 큰 활력을 불어 넣어준 계기가 된 것 같다. 이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아주 예리한

시각으로 문명이야기 에서 다뤄지고 있다. 단지 한 가문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고 문명의 중추에 선 가문의 역할 등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다빈치를 통한 예술을 통한 르네상스의 완성을 언급한다.

저자가 쓰고 했던 이야기는 시대적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이 발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고, 방대한 사료를 기반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비교적 이해 하기 쉬운 글로 설명을 해 줘서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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