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장재용
  • 조회 수 4073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2년 7월 23일 07시 10분 등록

문명 이야기 르네상스 5-2’ (The story of Civilization)

* Will Durant 지음, 안인희 옮김, 민음사, 2011.05.20

 

1. ‘역사의 영웅(저자에 대하여)

 듀런트.JPG

Will Durant (1885~1981)

 

반세기에 걸친 집념의 노력에 우선 혀를 내 두른다. 그의 땀이 묻어나는 이 책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나는 이 골방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편안하게 읽어 내릴 수 있는가. 잠시 미안하고 숙연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 읽어 나가긴 한다.

 

들은 바에 의하면 1935년 듀런트는문명 이야기’ 1권을 발표하면서 요즘 같은 청각적인 시대에는 세계 시민이나 관심을 둘 법한 골치 아픈 내용에 값까지 비싼 책이 인기를 누릴 리 만무하다.’며 머리말을 통해 책의 성공을 걱정했다고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기우였다. 지금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그의 책을 펼쳐 놓고 있으니 그의 책은 이미 여러 사람들의 머리 속에 살고 있지 않겠나. 그는 미국에서 퓰리처상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보통 사람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로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의 찬란하고 거대한 파노라마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살면서 그의 경제사정은 어떠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는 1885 11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스 애덤스에서 태어났다. 노스 애덤스와 뉴저지 주 커니의 가톨릭 부설 학교에서, 그 다음에는 저지 시의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와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한 후, 뉴저지 주 사우스 오렌지에 소재한 세튼홀 칼리지에 자리를 잡고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기하학을 가르쳤다. 이후 그는 평온한 신학교에서 뉴욕의 가장 진보적인 자유주의 교육 실험 학교인 페레르 학교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학교에서 1898 5 10일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이다 카우프만이라는 제자와 사랑에 빠져 교직을 사임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이 대목은 내 주의를 끈다. 제자와 사랑에 빠진 역사학자. , 멋지지 않나. 거역할 수 없는 순리의 오랜 진행과정이 역사라 한다면 그 또한 그녀와의 사랑에 거역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후 4년간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물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17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쳤다. 1914년부터는 뉴욕의 한 장로교회에서 역사와 문학, 철학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이 강의는 이후 13년간 주 2회씩 계속 이어졌다. 1926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철학 이야기'의 성공으로 1년 후 교직을 떠날 여력이 생긴 듀런트 부부는 가끔씩의 평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시간을(매일 8시간에서 14시간)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 바쳤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1930년에는 이집트와 근동, 인도, 중국, 일본 등지를 직접 탐방하고 1932년에 다시 일본과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지를 방문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문명 이야기'시리즈의 제1 '동양 문명'(1935)이다. 이후 몇 번인가의 유럽 방문을 거쳐 제2 '그리스 문명'(1939) '카이사르와 그리스도'(1944)가 준비된다. 1948, 터키와 이라크, 이란, 이집트, 유럽 등지에서 체류하며 제4 '신앙의 시대'(1950)를 저술하고, 1951년에는 제5 '르네상스'(1953)를 출간했으며, 1954년부터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독일, 프랑스, 영국에 대한 추가 연구를 시작해 종교 개혁을 새롭게 조망한 제6 '종교 개혁'(1957)을 발표했다. 이들 저작을 준비하는 데 있어 듀런트 여사의 역할은 매년 그 비중이 더욱 커져 갔으며, 7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1961)에서는 그 기여도가 너무나 커 책 표지에 두 사람의 이름이 공저자로 나란히 오르게 된다. '루이 14세의 시대'(1963) '볼테르의 시대'(1965), '루소와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5년 제11 '나폴레옹의 시대'의 출간을 끝으로 50년에 걸친 이 대작은 완결된다. 에이리얼 듀런트(Arial Durant) 1981 10 25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윌 듀런트도 그로부터 13일 후 11 7일에 96세를 일기로 그녀를 뒤따랐다.

 

2. ‘문명 이야기(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 그의 후계자를 지명하기 위해 모인 비밀 추기경 회의 (p. 11)

 

Ü 우리는 지난 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뒤에 개최된 이 회의를 기억한다. 콘클라베라는 이름으로 치루어진 이 비밀회의에서 지금의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새로운 교황이 되었다. 나는 그 콘클라베가 열릴 무렵 콘클라베에 대한 글 하나를 읽었다. 조금 길지만 지면을 할애한다. 저널리스트 고종석의 글이다. 나는 그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읽었는데 이 책의 전개상황과 같은 맥놀이에 있다.

 

라틴어 형태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이탈리아어 콘클라베(conclave)는 어원적으로열쇠(clavis)를 가지고(cum)’라는 뜻이다. 라틴어 클라비스(clavis)는 열쇠 외에 걸쇠나 빗장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러니까 콘클라베의 본디 뜻은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 ‘걸쇠로 문을 잠근 방이었다.

침실이나 식당, 외양간, 새장, 비밀회의장 등 닫혀 있거나 자물쇠로 잠겨있는 공간을 두루 일컬었던 콘클라베는 9세기 들어 종교적 함의가 짙어져 교회의 성기실(
聖器室)이나 제의실(祭衣室) 또는 수도원 경내를 뜻하게 되었고, 14세기 들어서는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뽑는 방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마지막 뜻이, 환유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교황을 뽑기 위한 비밀회의로 번진 것은 한 세기가 지난 15세기에 이르러서다
.

여든 살 아래의 전세계 추기경들은 18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후계자를 뽑기 위한 콘클라베를 시작한다. 직전 콘클라베는 1978년에 열렸다. 이 해에는 콘클라베가 두 차례 열렸는데, 요한 바오로 2세의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1세가 즉위한 지 33일 만에 선종했기 때문이다
.

새 교황은 예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성 베드로로부터 쳐 265번째 교황이다. 교황청의 정의에 따르면 교황은 로마 주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이자 사도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의 후계자이고,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우두머리, 서유럽 총대주교, 이탈리아 수석대주교, 로마관구 대주교, 수도(
首都) 대주교, 바티칸의 주권자다.

이 여러 겹의 직책에 이탈리아나 로마와 관련된 사항이 포함돼 있기도 하지만, 교황은 이탈리아 출신이 맡는 것이 관행이었다. 폴란드 크라코프 출신의 카롤 보이티야가 요한 바오로 2세로 즉위한 것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출신 하드리아노 6세 이래 이탈리아 이외 지역 출신으로서는 455년 만이었다
.

그 전에도 프랑스 사람말고는 유럽인이라 하더라도 교황이 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교황청 일각에는 새 교황으로 이탈리아인이 뽑히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있는 모양이다. 반면에 가톨릭교도의 인구분포를 반영하거나 지금까지의 인종적 치우침을 교정하기 위해 제3세계 출신 성직자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도 한다
.

요한 바오로 2세는 낙태나 이혼, 동성애, 여성성직자 서품 문제 등에서 매우 보수적이었지만, 교회의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다른 종교에 화해의 손을 내밀고 평화주의를 실천하는 데서는 진취적 태도를 보였다. 그런 진취적 태도는 그가 약소국 출신의 교황이었다는 사실과도 조금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

여기서 더 나아가 검은 피부의 교황을, 적어도 유럽 출신이 아닌 교황을 이번에 볼 수는 없을까? 그것은 가톨릭교가 바로 이름 그대로 보편적 종교라는 것을 처음으로 온 세상에 드러내는 길이기도 할 텐데 말이다.

 

□ 교회는 이제 경쟁 진영들 사이의 정치적 노리개가 되고 말았다. (P. 13)

 

□ 각기 아주 한가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모이는 데만 1년이 걸렸다. (P. 17)

Ü 이 무슨 거들먹인가

 

□ 산타 마리아 마죠레 교회와 교황궁에 속하는 성 요한 교회에 벽화를 그리라고 젠틸레다 파브리아노, 안토니오 피사넬로, 마사쵸 등을 고용했다. (p. 20)

 

Ü 이 사람들 그림 안 볼 수가 없다.

파브리아노.JPG

젠틸레다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 [1370-1427] 콰라테시 다폭 제단화

피사넬로.JPG
피사넬로 Pisanello(1395~1455) (본명은 Antonio Pisano).성 조지와 트레비존드 공주

 

마사초.JPG

마사초 그리스도의 책형나폴리 국립카포디몬테미술관 소장

잘 알려진 성삼위일체외 마사초의 특이한 그림이 있어 소개한다.

 

15장 르네상스가 로마를 사로잡다 1447~1492

 

□ 귀족들은 브라비(그들이 고용해서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도록 훈련을 시킨 튼튼한 깡패)를 이용해서 반란을 진압하고 (p. 28)

Ü 마피아의 원류?

 

□ 교황들이 자기들의 국가를 절대 군주제로 통치했다면 그들은 시대의 유행을 따른 것이었다.

 

민주주의란, 지성, 안전, 평화가 널리 퍼지면서 생긴 사치품이다. (p. 30)

 

□ 인문주의의 위세는 이미 높디 높고 새로운 이교 운동의 자극도 강하고 또 교회의 지도자들도 이미 거기 하도 깊이 물들어서 교회는 그리스도교도의 삶에서 인문주의의 발전을 위한 자리를 찾아내든지 아니면 이탈리아나 뒷날 유럽의 지식인층을 잃어버릴 위험을 각오해야만 했다. 니콜라스 5세 치하에서 교회는 인문주의를 향해 팔을 활짝 벌렸으며 교회 자신이 새로운 문학과 예술의 편에 아예 그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즐거운 백 년 동안(1447~1534) 교회는 이탈리아의 정신에 아주 넉넉한 자유를 주었고 필렐포는 이를 믿을 수 없는 자유라고 말했다. 또 이탈리아 예술에 그토록 대단한 후원과 기회와 자극을 주어 로마는 곧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대 하나를 즐겼다. (p. 33)

 

□ 세계의 모든 학자들이 니콜라스 교황의 시대에 로마로 왔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일부는 그의 요구를 받고 왔다. (p. 35)

 

□ 필렐포는 그리스는 멸망하지 않고 이탈리아로 이민을 왔다. 이 지역은 어차피 옛날에 대 그리스라고 불렸던 곳이다라고 했다. (p. 36)

 

□ 거의 무에서 출발한 에네아스 실비우스가 펜을 움직여 교황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많은 것을 보려는 열망에 빠진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구두쇠는 많은 돈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p. 43)

 

□ 나는 내 의무에서 시간을 빼내지 않고 잠자는 시간을 글 쓰는 데로 돌렸다. 그리고 노년의 시간에 휴식을 취할 시간을 훔쳐서 내가 지금 기억할 만한 것으로 여기는 모든 것을 후세를 위해 적어 두고자 한다. (p. 44)

 

□ 그는 자신을 가리켜 실바룸 아마토르’(숲을 사랑하는 사람)라 불렀다. (p. 45)

 

□ 로마 인문주의자들의 지도자 율리오 폼포니오 레토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경멸하고 그 설교자들을 위선자라고 비난하고 자신의 학자들을 그리스도교 도덕보다는 스토아 도덕으로 가르쳤다. (p. 55)

 

□ 식스투스 자신의 수입 상당 부분이 예술과 공공사업에 쓰였다. (p. 61)

 

□ 그는 시스티나 성당을 지었다. 죠반니노 데 돌치가 설계한 것으로 단순하고 뽐내지 않은 건축물이다. 그러나 북쪽 벽의 벽화는 페루지노, 시뇨렐리, 핀투리키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보티첼리, 로쎌리, 코시모 등 당시 가장 위대한 대가들이 그린 벽화다. (p. 62)

 

 

시스티나1.JPG 시스티나2.JPG

Ü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16장 보르지아 사람들 1492~1503

 

□ 새로운 교황은 살인자를 붙잡아서 하나의 예를 보였다. 이런 엄격함으로 범죄가 꼬리를 감추었다. 미술과 문학의 발전은 없었다. (p. 75)

 

□ 줄리아 파르네제, 그녀가 머리를 풀면 그것은 발치까지 굽이쳐 흘러내렸고 이것은 알렉산더보다 덜 정력적인 남자라도 온몸의 피를 흔들어 놓을 만한 모습이었다. (p. 83)

 

□ 알렉산더는 열쇠와 제단과 그리스도를 판다네.

그 또한 옳지, 그 자신도 그것을 위해 돈을 냈으니 (p. 87)

 

□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이 젊은이가 에로스(사랑)를 위해 만들어졌지 마르스(전쟁)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p. 88)

 

□ 체사레 보르지아, 그의 반지에는 이런 구절이 새겨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네가 해야 할 바를 하라.’라는 말이다. 그의 검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생애에서 나온 두 가지 구절이 새겨 있었다. 한 면에는 주사위는 던져졌다.’가 새겨져 있었고 다른 면에는 카이사르이거나 아무도 아니거나라는 글귀였다.

 

□ 체사레 보르지아는 레오나르도의 전쟁 기계 일부를 사용했다. (P. 101)

Ü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발명이 살상의 교두보가 될 것임을 알았을까.

 

□ 마키아벨리는 알렉산더를 말하기를

속임 수 외에 다른 일은 하지 않았으며 평생동안 다른 것은 생각한 적도 없었다. 아무도 나중에 깨뜨릴 약속을 그보다 더 강하게 맹세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모든 일에 성공했다. 그가 세계의 이 부분을 그토록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 115)

 

□ 체사레는 단 한 명의 동료와 더불어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싸우다가 칼에 맞아 죽었다. 그의 나이 서른 한 살이었다. (P. 122)

 

17장 율리우스 2 1503~1513

 

□ 라파엘로가 그린 율리우스 2세의 탐색하는 듯한 심오한 초상화 (P. 125)

율리우스2.JPG

 

□ 그가 브라만테,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그 밖에도 100명의 미술가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는 것, 그리고 12번의 전쟁을 치르고도 교황청의 국고에 70만 플로린의 돈을 남겼다는 사실은 역사의 기적 중의 하나였고 종교 개혁의 원인 중의 하나였다. (P. 135)

 

□ 라파엘로가 겨우 열한 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죽었다. (P. 141)

 

1503년에 그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위해 성모의 대관식을 그렸다 (P. 142)

성모대관식.JPG

성모 대관, 1502-1503, 라파엘로 산치오, 캔버스에 유채, 로마 바티칸궁 회화관, 바티칸

 

□ 어떻게 레오나르도는 그러한 선의 우아함, 표정의 섬세함, 명암의 그런 구조를 획득한 것일까? (P. 145)

Ü 말하기를 레오나르도는 스푸마토기법을 활용했는데 윤곽을 희미하게 녹여버리는 기법이라고 한다.

 

□ 율리우스2세는 라파엘로에게 서명의 방에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했다. (P. 149)

 서명의방.JPG

□ 율리우스가 사랑하던 화가이며 조각가, 성급한 기질과 무시무시한 성격, 그리고 정신의 힘과 깊이라는 면에서 그와 경쟁할 만한 사람, 인류의 기록에 남은 가장 위대하고 가장 슬픈 예술가 (P. 157)

Ü 미켈란젤로를 말하고 있다.

 

□ 그는 자주 생선 시장으로 가서 지느러미의 모양과 색깔을 살펴보고 또 그 눈의 색깔과 몸의 모든 부분을 자세히 탐구했다. 모든 세부 사항들을 그림에서 극단적인 근면함으로 재생하였다. (P. 158)

 

□ 그는 개념에서는 개인적인 상상력을 디테일에서는 사실적인 모습을 그려 내는 편이었다. (P. 162)

 

□ 인체를 향한 관심이 그의 신앙심을 누르고 승리하고 있다. (P. 167)

 

□ 늙은 교황이 허약한 받침대를 올라와서 예술가에게 경탄을 표현하면서 언제나 거듭 언제 끝나나?’하고 묻는 모습을 그려 보라. 답변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훈이었다. ‘내가 이 예술을 만족시키기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모두 다 하면 끝납니다.’ (P. 173)

 

18장 레오 10 1513~1521

 

□ 교황이 되는 것보다 키케로처럼 말하는 편이 훨씬 낫다.

라파엘로가 그린 초상화는 그의 한 면만을 잡아냈다. (P. 195)

 레오10.JPG

□ 레오 시대 로마에서 교황으로부터 그의 어릿광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시를 썼다. (P. 197)

 

□ 가장 감동적인 시는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쓴 것이다.

 

아버지 당신은 훌륭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게 충분히 배우고 충분히 능변이고

언제나 튼튼한 몸과 건강한 마음으로

상냥하고 비할 바 없는 경건함으로

이제 팔십 평생을 마치고

당신은 신들의 은총이 내린 물가로 떠납니다.

가십시오. 아버지. 당신의 아들도 곧

하늘의 높은 자리로 데려가 주십시오. (P. 201)

 

□ 미켈란젤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이 나를 도우신다면 나는 이탈리아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P. 210)

 

□ 어떤 사제가 미켈란젤로가 결혼하지 않고 자식도 두지 않는 것이 유감이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예술만 해도 마누라가 너무 많아요. 그게 충분히 말썽을 만들어 냅니다. 자식을 얘기하자면 내가 앞으로 만들 작품이 내 자식입니다. 이 작품들이 그리 큰 가치가 없다고 해도 어쨌든 한동안은 계속 살아갈 테니까요.’ (P. 211)

 

□ 라파엘로는 레오와 기질이나 취향이 잘 맞았다. 두 사람 다 그리스도교 세계를 즐겁게 만들고 이 세상을 낙원으로 삼은 상냥한 괘락주의자들이었다. (p. 213)

 

□ 레오는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벽걸이 장식을 해서 자신의 시대를 기념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p. 219)

 

□ 갈라테아의 승리 (p. 225)

갈라테아의승리.JPG

Raphael, The Triumph of Galatea, Fresco, villa Farnesina, Rome, c.1512)

 

□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p. 227)

십자가를지고가는그리스도.JPG

Raphael. The Hill of Calvary. C.1515 Oil on canvas.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Ü 이 그림이 팔레르모에 있다고 하는데 볼 수 있을까. 에트나 산보다 더 유명한 그림이라고 한다.

 

□ 포르나리나 (p. 229)


포르나리나.JPG
[라 포르나리나]( La Fornarina)

Ü 라파엘로의 애인?

 

□ 레오나르도는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던지고 미켈란젤로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라파엘로는 우리에게 평화를 준다. 그는 질문하지 않고 의심도 만들어 내지 않고 어떤 두려움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우리에게 신의 음료와도 같은 삶의 자랑스러움을 제공한다. (p. 233)

 

□ 파올로 조비오는 지식, 미술, 일반적인 복리, 삶의 즐거움이 레오와 함께 무덤으로 들어갔다.’ (p. 240)

 

□ 에라스무스는 이렇게 썼다. ‘로마여, 내가 너를 잊으려면 레테의 강물에 몸을 던져야 하리라…’ (p. 241)

 

붕괴

 

19장 지식인의 반란 1300~1534

 

모든 시대와 민족에서 문명이란 소수의 산물이며 특권이고 책임이다.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완전한 국가들이 나올 것이란 기대도 하지 않는다. (p. 245)

 

□ 귀치아르디니는 이렇게 소리쳤다. ‘점성술사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백 가지 틀린 말을 하고 단 하나만 맞혀도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믿어 준다. 다른 사람들은 백 가지 진실을 말하고 단 하나만 틀리게 말해도 온갖 신뢰를 다 잃어버리는데 말이다. (p. 250)

 

르네상스는 미술에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작은 부분을 문학에 철학에는 아주 조금 그리고 과학에는 가장 조금 영혼을 바쳤다. (p. 252)

 

□ 현실을 두려움 없이 새로 검토하라는 자극을 주었다. (p. 262)

 

□ 플라톤주의자들은 그리스도교도로 남았다. (p. 263)

 

□ 플라톤의 아카데미 철학은 나폴리에서 죠르다노 브루노에 이르렀다. 브루노를 통해서 그것은 스피노자에게로 넘어가고 이어서 헤겔에 이르렀다. 이 사상은 아직도 살아있다. (p. 264)

Ü 서양 철학을 플라톤의 아류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서인가.

 

□ 말은 많은 사람들처럼 하되 생각은 극소수 사람처럼 하라. (p. 264)

 

□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존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자연적인 것을 경멸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현실성은 어떤 확실한 개연성으로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p. 267)

Ü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을 뿐.

 

□ 나는 기쁘게 떠난다.

어디로 갑니까?

모든 죽어야 할 존재들이 가는 곳으로 (p. 269)

 

□ 정직함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쓸모가 많다. (p. 275)

 

□ 민중은 혼란과 오류로 가득 찬 괴물이다. 세상일이란 다수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 것을 경험은 가르쳐 준다. (p. 276)

 

□ 숲을 떠나 샘으로 가서, 책 한 권을 팔 아래 끼고 말이야. 단테, 페트라르카, 오비디우스 같은 사람들..(p. 280)

 

□ 황금은 강한 국민에게로 흘러가지만 부유한 국민에게서는 힘이 떠나간다. 부가 손쉬움과 쇠약함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p. 284)

 

□ 마키아벨리가 이해한 정치학은 국가를 만들고 보존하고 보호하고 강화하는 고급 기술이다. (p. 287)

 

□ 통일은 정치력과 전쟁의 모든 수단을 다하여 그들에게 강요되어야 한다. 오로지 무자비한 독재자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p. 295)

 

□ 식민 도시는 처음에는 잔인하게 대해야 한다. 복종이 확립되면 더욱 온화한 수단으로 그들의 복종을 습관으로 만들 수가 있다. (p. 297)

 

□ 프란시스 베이컨 우리의 감사는 마키아벨리와 그 비슷한 저술가들을 향한 것이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전혀 위장하지 않고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데 익숙한가를 보여 주었다. (p. 301)

 

□ 마키아벨리의 솔직함에는 어떤 자극의 요소가 있다. 어떤 철학자도 감히 토론하려고 하지 않았던 질문에 마주치게 된다. (p. 303)

마키아벨리.JPG

마키아벨리 1469~1527

 

20장 풀어진 도덕 1300~1534

 

□ 르네상스의 지적 상승과 도덕적 쇠퇴에는 부의 성장이 주효했다.

다음으로는 정치적 불안정이다. (p. 306)

 

□ 우선 남자는 천성적으로 일부다처를 지향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야겠다. 극히 엄격한 도덕적 형벌 체계, 적절한 가난과 힘든 일, 또 마누라의 끊임없는 감시만이 남자를 일부일처제로 안내할 수 있다. (p. 315)

 

□ 그녀는 자신의 매력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잘못을 저질렀다. (p. 319)

 

□ 르네상스 남자의 특질은 두 가지 초점을 중심으로 선회한다. 지적 용감성과 도덕적 용감성이다. (p. 322)

 

□ 피부는 밝고 깨끗해야, 눈은 짙고 크고 풍부해야, 입은 작고 입술은 풍성해야, 어깨는 넓고 가슴은 풍만해야, 다리는 길고 발은 작아야… (p. 326)

Ü 사고와 기준은 야만적이다.

 

산업은 크기가 커지고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개인적 관계가 사라지면서 더욱 무자비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자유 노동자는 일거리가 없을 때는 굶어 죽도록 방치되었다.

생산과 재정에 새로운 발명과 진보가 나타나면 그것이 이윤을 더 키워 줄뿐 임금을 키워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p. 335~336)

 

□ 전체적으로 보아 노동과 위험, 자연적, 초자연적 공포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삶이었다. (p. 344)

 

□ 이탈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음악에 열광한다. (p. 348)

 

피렌체에서 사람들은 여름밤이면 길거리로 나가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p. 349)

Ü 춤추고 노래하는 삶으로의 재편! 내 삶의 숙제다.

 

□ 르네상스 음악의 위대한 특징은 이론이 아니며 기술적 발전도 아니었다. 그것은 음악의 세속화였다. (p. 357)

 

21장 정치적 붕괴 1494~1534

 

□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외국과의 경쟁보다 더욱 심하게 자기들끼리 경쟁했다. (p. 361)


캉브레동맹지도.JPG

Ü시대에 맞는 지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캉브레 동맹 즈음한 열강 구도의 감은 잡힐 수 있겠다.

 

□ 프랑스 군대는 이탈리아가 갈래갈래 찢겨 정복자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루이 12세가 그 일을 다시 하게 된다. (p. 367)

 

□ 마치 춤판처럼 파트너(동맹국)들이 바뀌었고 (p. 376)

 

□ 어떤 교황도 그렇게 훌륭하게 시작한 적이 없었다. 혹은 그토록 비참하게 끝낸 사람도 없었다. (p. 384)

Ü 클레멘스 7세다.

 

□ 로마의 유린은 8일 동안 계속 되었다. 그동안 클레멘스는 천사성의 탑에서 그 꼴을 지켜보았다. 그는 고통을 당하는 욥처럼 신에게 소리쳤다. ‘어째서 나를 어미의 자궁에서 꺼내셨습니까? 내가 바싹 여위어서 아무도 나를 보지 않게 하소서!’ (p. 395)

 

□ 발다싸레 소도마 방 천장화, 그는 원근법을 건축에 적용하는 부분에서 전문가 (p. 404)

 

□ 페루찌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 남긴 평면도 (p. 405)

로마의 모든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무덤까지 그의 시신을 따라갔다고 전한다. (p. 406)

 

□ 나의 잠은 소중하다. 폐허와 불명예가 지배하는 한

잠은 단순한 돌 이상이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나의 큰 이점.

그러니 나를 깨우지 마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라. (p. 412)

Ü 미켈란젤로 이름을 이용한 자신의 해석

 

□ 클레멘스가 즉위할 때 모든 사람이 환호했고 그가 죽었을 때 모두가 환호했다. (p. 414)

 

종말 1534~1576

22장 베네찌아의 황혼 1534~1576

 

□ 이탈리아의 나머지 지역에서 속박과 쇠퇴가 이루어지던 이 시기가 베네찌아에는 황금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다. (p. 417)

 

□ 아레티노는 통치자의 문학적 머슴이 아니라 스스로 통치자가 되는 꿈이었다. (p. 426)

 

□ 나는 그를 숭배한다. 그러나 그의 감동적인 너그러움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기에 무라노의 용광로가 다 식을 정도이다. (p. 429)

 

□ 당신의 글을 잘 압니다. 그들은 당신의 글이 인쇄되자마자 모두 읽지요. (p. 429)

 

□ 아내들과 수녀들은 자신들의 맹세를 지키지 않지만 기생들은 자신의 직업으로 먹고살고 또 돈을 받고 정직한 밤의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p. 430)

 

□ 여기 토스카나 시인 아레티노가 누워있다.

신만 빼고 모든 사람에 대해 고약한 말을 했던 사람,

변명으로는 나는 그()를 몰랐다 고 말하던 사람 (p. 435)

 

□ 티치아노 막달레나’ (p. 436)

막달레나.JPG

 

□ 티치아노 파울루스 3 (p. 437)

파울루스3세.JPG

Ü 사생활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성을 평가 받는다. 그림의 시선을 보라. 기가 막히다.

 

□ 틴토레토는 작은 염색공이라는 뜻 (p. 445)

 

□ 미켈란젤로의 도안과 티치아노의 색채 (p. 446)

 

□ 틴토레토는 자신이 작업장에서만 행복했고 그곳에서 문자 그대로 밤낮 일을 했다.

자기가 숭배하고 능가하려고 애쓰던 미켈란젤로만큼이나 고독하고 독립적이며 변덕스럽고 우울하고 신경질적이고 격렬하고 자부심이 강했다. (p. 453)

Ü 열등감 위에는 항상 열등감이 존재, 미켈란젤로도 열등감이 많은 사람.

 

□ 베로네제 에우로파의 납치’ (p. 461)

에우로파의납치.JPG

 

□ 베로네제는 여성에게 굴복하기 전에 자신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서른 여덟살이 될 때까지 여러 여성 모형들을 두루 살펴본 다음 엘레나 바딜레와 결혼했다. (p. 461)

 

□ 많은 활동적인 정신에 그냥 먹고 마시고 짝짓고 사라진다는 것보다 더 나은 철학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p. 467)

Ü 그 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 르네상스 쇠퇴에서 마지막 인자는 반종교 개혁이다. (p. 472)

 

□ 카르다노는 일흔네 살에 나 자신의 삶에 대하여를 썼다. (p. 479)

Ü 이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경의를 표한다.

 

□ 데카메론, 단순한 언어로 쓰이고 보통은 이탈리아 생활의 극적인 사건이나 친근한 장면들을 묘사한 단편 소설들은 모든 계층에게 환영을 받았다. (p. 484)

 

□ 코시모, ‘모든 예술가를 사랑하고 진정 모든 천재들을 사랑하는 사람’ (p. 490)

 

□ 코시모 공작이 좋아하는 예술가는 조르조 바사리였다.

 

□ 벤베누토 첼리니

어떤 종류의 것이든 상관없이모든 남자는 자기 손으로 자신의 생애를 서술해야만 한다. 그러나 마흔이 되기도 전에 이런 섬세한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p. 497)

 

□ 불행은 치수를 재어서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p. 499)

 

□ 미켈란젤로의 내면에 있는 조각가가 화가를 망쳤다. (p. 511)

 

□ 미켈란젤로는 여든 아홉 살까지 일을 계속 했다. (p. 518)

 

□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처럼 유파를 만들지 않았지만 몇몇 뛰어난 예술가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깊은 영향을 미쳤다. (p. 521)

 

□ 우리는 미켈란젤로에게 찬사를 바친다. 이 작품들이 이른바 살과 피를 찢고 나온 것임을 우리는 안다. 수십만 번이나 망치와 끌질을 통해 연필과 붓질을 통해서 형태를 얻는 것을 본다. 우리는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지성을 이루는 삶과 정신과 법칙에 아주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p. 522)

 

마치는 글

 

한 번 죽은 양식은 그것을 표현한 문명 자체가 복구되지 않는 한 적절하게 재생될 수 없다. (p. 525)

 

르네상스 문화는 노동하는 빈민의 등짝 위에 세워진 귀족주의적인 상부 구조다. (p. 527)

 

□ 르네상스 건축은 마음이 울적할 정도로 수평적이다. 무아지경으로 수직적인 고딕 양식은 우리의 지상의 삶을 영혼의 망명 상태로 여기고 희망과 신들을 하늘에 두는 종교를 반영했다. (p. 528)

 

육체는 충분히 오랫동안 구박을 당했다. 삶이 건강한 인간 형태의 사랑스러움을 다시 인정하고 예술이 그것을 강조한 것은 좋은 일이었다. (p. 528)

 

□ 고전 예술을 되살려 냄으로써 르네상스는 유럽에서 오리엔트 정신(그리스도교)이 천 년이나 지배한 것을 끝냈다. (p. 529)

 

혁명과 반혁명을 통하여 진보와 반동을 통하여 또한 전쟁에도 살아남아서 끈질기게 평화를 귀한 것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도처에는 정신적 자유, 미적 감수성, 친절하고 공감이 가는 이해력이라는 유산에 양분을 주고 그것에 따라 사는 도회지의 튼튼한 정신들이 있다. 바로 정신의 나라 친구들이다. 삶의 비극을 용서하고 감각과 정신과 영혼의 환희를 포옹하는 사람들. 미움의 찬가 한가운데서 그리고 대포의 굉음을 넘어 자기들의 가슴에 언제나 울리는 르네상스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다.

 

독자 친구들이여, 고맙습니다. (p. 530)

 

 

3. ‘큰 붓과 세필(細筆)’ (내가 저자라면)

 

듀런트를 평한 어느 글에서 이와 같은 표현이 있었다. 아래에 인용한다.

 

비유컨대 큰 붓과 세필(細筆)을 함께 구사하는 방식이다. 일단 큰 붓을 들어 문명의 윤곽을 잡은 뒤 섬세한 터치로 디테일을 완성해나가는데, 하나하나가 리얼하게 다가온다. 이를 테면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인 남녀의 외모 지상주의 풍토 묘사가 그러하다. 여성은 계란 흰자위와 암모니아 고무를 섞어 속눈썹을 올리는 마스카라 용도로 썼고, 남자들도 반지를 하나씩은 꼈는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여러 개를 꼈다는 식으로 구체성이 살아있다.

그때 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울림으로 연결하는 솜씨도 눈여겨봐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두통거리였던 여성해방과 산아제한, 기득권의 보수주의와 정치부패 이야기를 읽노라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느낌을 새삼 준다.’

 

이 책의 힘은 구체성에서 나온다. 하마터면 구라가 될 수 있는 사실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의 글은 힘차고 간결하다. 직선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사실을 말해야 하는 역사가의 숙명과도 같은 문체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다른 역사서에 없는 핏기가 느껴진다. 그의 진한 반평생의 노력이 녹아있기 때문이겠다.

 

듀런트는 아내와 함께 매일 8시간에서 14시간 동안 작업에 매달렸다고 한다. 책을 위해 이집트와 인도,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등을 수 차례 직접 방문해 탐방했고, 현지에 체류하며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모두가 사실을 위함이리라.

 

사실을 위한 삶, 특히나 과거의 사실을 위해 현재의 삶을 바치는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 이 또한 아무나 함부로 갈 수 없는 삶이다.

IP *.51.145.193

프로필 이미지
2012.07.23 11:52:03 *.118.21.151

재용아 너 손 다친 덕분에..ㅋㅋ 우리 눈이 호강한다 .그림 올려줘서 고마웡~

많이 나았지? 고생했다 더운데...ㅎㅎ

프로필 이미지
2012.07.24 09:04:23 *.51.145.193

감사합니다 누님~ 덕분에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ㅋㅋㅋㅋ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92 [16]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르네 그루쎄 [5] [6] 써니 2007.07.06 4109
691 북리뷰 52 : 이미륵 평전 Dr. Mirok Li 범해 좌경숙 2010.10.07 4110
690 북 No.16 - 윌 듀랜트 ‘철학이야기’ file [2] 유재경 2011.07.18 4118
689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 신영복(完) [1] 손수일 2005.03.22 4119
688 #59_참선일기, 김홍근 [2] 서연 2013.08.30 4123
687 [39] 재무상담가를 위한 스토리 셀링 - 스콧 웨스트 거암 2009.02.08 4127
686 햄릿/리어왕/맥베드-윌리엄 셰익스피어 file 학이시습 2012.06.12 4127
685 [51] <신의가면1-원시신화> 인용문 [1] [1] 수희향 2010.04.16 4128
684 [17] 수소혁명, 제러미 리프킨 현웅 2008.08.04 4130
683 사기열전 -사마천- file [1] 장재용 2012.09.03 4130
682 백범일지 file 학이시습 2012.09.24 4132
681 트렌드 워칭 -미래를 읽는 9가지 기술, 김경훈 지음- [4] 문요한 2005.11.09 4133
680 그리스인이야기 -Andre Bonnard- file [2] 장재용 2012.07.02 4136
679 42. 가슴뛰는 회사 / 존 애이브램스 file 철학하는 인사쟁이 2012.02.14 4139
678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초프 카프라 [2] 書元 이승호 2009.11.30 4149
677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file 장재용 2012.11.05 4149
676 디자인 생각 - 박암종 혜향 2010.02.15 4150
675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신화 / 달이, 구만 리 저승길 가다 정야 2010.02.23 4153
674 [2-15] 농가월령가 - 정학유 타오 한정화 2013.08.13 4153
673 세계의 정복자 칭기즈칸의 생애/ 르네그뤼쉐 file 오미경 2013.08.19 4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