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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3일 09시 32분 등록



God bless you 




 일요일 아침, 나는 일어나고자 했던 시간보다 3시간이 지난, 7시에 눈을 떴다. 시칠리아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읽어야 하는 책, 문명이야기가 내 머리맡에 펼쳐져 있다. 펼쳐져 있는 책을 보며, 생각했다. ‘아, 오늘도 밤 새야겠구나.’ 나는 일단, 교회를 가기 전 확보된 시간에 책을 최대한 많이 읽었다. 9시까지 읽고, 버스를 타고 가면 교회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을 맞출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30분 더 책을 읽고, 택시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조금이라도 더 읽고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연구원 동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세린아, 연구원 생활할 땐 예배만 드려. 시간 너무 많이 뺏긴다.” 


 사실 나는 연구원 활동을 하기 전에 일요일에 교회에서 오랜 시간을 쓰고, 교회 모임이 끝난 다음에도 교회 친구들과 같이 놀거나, 저녁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연구원을 시작하면서는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것만 하고 돌아오는데도 예배만 드리는 것보다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나도 많은 시간을 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 특히 과제를 많이 못했을 경우에는 더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과제를 미리 못한 나를 탓했다. 하반기에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과제를 미리 해놓는 습관 기르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은 그 좋은 습관을 들이지 못한 결과로 시간을 쪼개서 책을 더 읽고, 택시를 선택했다.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는 아저씨에게 가야하는 길을 설명했다. 덧붙여서, “그 신발 가게 많은 곳이요.” 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장사를 하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 거기 왜 가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교회에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이렇게 질문하셨다. 

 “Are you Christian?”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또 질문하셨다.

 “Real Christian?”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 뭐, 그런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또 질문을 하셨다. 

 “Are you re-born?” 

 나는 “예?” 하고 반문하면서, 아주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뭐, 계속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아요.” 했다. 

 아저씨는 한 번 다시 태어난 경험이 있으면, 그 기억을 지울 수 없으며 오래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뭐 사람마다 다른 것 같고, 죽을 때까지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여러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 의견을 이야기 했다. 


 난 그동안 신앙이 뜨거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연구원을 하면서 조셉캠벨을 만나고,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고, 보카치오, 오비디우스, 단테, 괴테 등을 만나면서 나는 나의 신앙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나로부터 분리시켜,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의문점 생기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인지 택시 아저씨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기 싫고, 사람마다 각각 다르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저씨와의 대화를 외면하고, 읽어야 하는 책과 써야하는 컬럼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아저씨는 30년 전 미국에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 옆에 앉은 미국인 목사님이 자신에게 세가지 질문을 하셨단다. 그게 바로 내게 했던 위의 세가지 질문이다. 그때 만난 그 목사님과 인연이 되어 매년 교류하고, 많은 도움을 받으셨단다. 올 패밀리가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은 잠깐 자녀들을 위해 한국에 나와 계신다고 했다. 미국에서 열 세명의 아이들을 키웠는데(입양 인 것 같다.) 그 중 두 명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 이년 동안 보살펴 주려고 잠시 한국에 나오셨단다. 중국에서 여덟 명의 아이들과 선교했던 이야기도 하시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나는 처음엔 듣고 싶지 않고, 어쩌면 사이비 같은 이야기를 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아저씨는 이야기에 약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아, 미국에서 계속 사신거에요?” 라면서 말이다. 

 20분이면 교회에 도착하는데, 아저씨가 계속 이야기를 하셨으니 꽤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택시 아저씨와의 대화는 내게 그냥 소일거리로 잊기엔 그동안의 택시 아저씨와의 대화와는 뭔가 달랐다. 기독교를 나무라고, 탓하는 택시 아저씨는 많이 봐왔는데, 또 그런 택시를 타면 해명을 좀 해보거나, 들어드리는 게 일이었는데, 오늘 아침 택시 안은 분위기가 달랐다.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내가 내려야 하는 신호 앞에 택시가 도착했다. 카드를 꺼내 계산을 하고 내리려는 순간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목사님 보지 말고, 교회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 그 분, 한 분 보고, 신앙 생활해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나는 내리려고 문을 열었다. 닫으려는 틈바구니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God bless you.” 

 문이 닫혔다. 나는 잠시 택시를 바라보며 웃었다. 

 ‘God bless you, too.’


 연구원이 된 후, 그동안 줄기차게 읽어왔던 책들은 내 사고 영역의 확장이라기 보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의 충돌을 일으켰다. 나는 내 안에서 갈등하고, 대립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여러가지 개념들, 주장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교회 안에서 나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르게 점점 위선적이 되어 갔다. 사실 내가 가진 신앙과 책을 읽고 난 뒤 떠오르는 의문점이나 기존과는 다른 생각들을 분리하지 않고, 스스로 납득 할 수 있게, 하나의 논리로 일치시키려다 보니 무리를 일으켰다. 

 이 말에 혹하고, 저 말에 혹하다 보니, 나의 생각이나 신념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흔들렸다. 그런 상황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내게 오늘 택시 아저씨는 힌트를 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 것 같다. 그 택시 아저씨가 어떤 분인지, 그 모든 이야기가 사실인지의 여부를 떠나 내게 들어온 이야기들은 내 사고에 긍정적인 소스를 제공했다. 


 예배를 드리고, 청년부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선택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신앙관과 새롭게 배우게 되는 어떤 개념들 사이에서 오는 혼돈 가운데서, 혼란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혼란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섣불리 어떤 하나를 선택하여 억지로 생각을 몰고가거나, 변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사고를 확장해보기로 했다. 갈등과 대립의 시간을 겪고 난 후, 내 나름대로의 신념과 철학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지금 좀 정신이 힘들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정신적 충돌의 상황 안에서 균형을 잡아보기로 한다. 무조건적 반문, 비판, 의구심들을 좀 조정하고, 또,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과 기존의 개념 사의 간극을 좁혀보며, 선택의 자유를 누리기로 한다. 


 윌 듀란트는 말했다. ‘모든 시대와 민족에서 문명이란 소수의 산물이며 특권이고 책임이다. 어떤 세대든지 오직 적은 비율의 사람들만이 경제적 고민에서 벗어나, 조상이나 주변의 사고방식 대신 자신만의 사고를 펼칠 여가와 에너지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략) 단순한 보통 사람들은 주변의 분위기에서 자신의 의견, 종교, 삶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변 등을 얻거나, 아니면 조상들의 오두막집과 함께 그것을 그냥 물려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노동을 시키는 판이니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들을 위해 생각하도록 했다.’ 


 소수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물론 되면 좋겠지만 오늘 그것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현재 나는 그냥 남의 생각을 물려 받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보고, 내 안에 질서를 잡아보기로 했다. 그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결론이 밝을지, 어두울지, 올바른 것일지, 그른 것일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고 싶어졌다. 두려워 않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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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3 12:02:11 *.118.21.151

하하 세린아 감동이야. 나도 성빈에게  '오직 적은 비율의 사람들만이 경제적 고민에서 벗어나, 조상이나 주변의 사고방식 대신 자신만의 사고를 펼칠 여가와 에너지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학원 데려다 주면서 했지....며칠 전

 

예배만 드리렴 하는 부분은 읽어보니 찔린다.  내가 신앙에 자유롭게 된 계기가 있는데...정말 새벽 예배도 한번도 걸르지 않고 다닐 때 였어. 하나님은 그런가 하면 이뻐하시고 그런거 안하면 사랑하지 않고 하시는 분이 아니란 거지...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ㅎㅎ 넘 좋지 않니?

 

이번컬럼에도  썻고 리뷰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교황들을 좀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던 거 같다. 난

힘내고 우리 로마에서도 이야기 많이 하자...화이팅요~

 

너만큼 나도 여전히 혼란 스럽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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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01:18:06 *.229.239.39

세린아,

 

이번에도 좋은 글 올려줬네^^ 읽는 즐거움이 쏙쏙...

연구원 생활에서 읽은 책들이 대부분...기존의 신념과 믿음에 대한

'제고' 가 필요 해 보인거지....나도 같은 생각인데... 변치 않는 생각은

딱 한지 !!!

책을 통해 만나본 모든 저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 하지 않았고, 이성과 생각의 사유를 넓혀

인간의 본성을 찾고져 했던 것 같구나.

 

나는 연구원 생활 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가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것 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방하여 탁월한 삶을 추구 하는것

이 우리의 문명이야기 이고, 흔적을 남기고 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 한다.

아는게 적을 때는 신념이 강한 거야!! 왜냐면 그것만 알고 있으니까?  내 이야기 인데, 넌 어떠니?

생각의 폭이 넓어지니까...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더 넓은 세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다양한 사고를 하게 하신거지^^

그래서 하나님에대해서....

쓸려고 하면  '바다를 먹물 삼아도 부족 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 하면서

좋은 스승들을 만나고 있는거겠지.

 

좀 더 지내면서 더 단단한 믿음을 소유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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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06:13:45 *.194.37.13

너의 그런 열린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

 

나의 마음을 열어준 그분께서는  항상 나를 잊지 않고 보살펴 주신다는

믿음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어디가나 웃으면서 지낼 수 있고, 그런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도

그 분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하는게, 나의 소박한 바램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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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6:10:34 *.154.223.199

위의 세 분은 열렬한 크리스찬, 또는 신앙이 삶의 중심에 있는 분들이군요.

세린신, 저는요 교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있었던 이런 우연한 만남이,

어쩌면 주변에 흔하게 있는데도 모르고 지나쳤을 만남이 특별한 기회로 다가오는게 신기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만남들이 세린신의 책과 주변에서 일어날까 궁금합니다.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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