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이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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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이야기 르네상스
5-2
윌 듀런트 지음 / 안인희 옮김, (민음사)
I. 저자에 대하여 / 윌 듀런트
문명이야기 5-1 내용으로 대체합니다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문명 이야기 5-2
로마 르네상스 1378~1521
14장 교회의 위기:
1378~1447
1. 교황의 분열: 1378~1417
P11
그레고리우스 11세는 교황청
다시 로마로 옮겼다.
P13
그의 죽음도(1389) 타협을
가져오지 못했다.
2. 공의회와 교황들: 1409~1418
P15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모임이다. 그
전체가 다른 어느 부분보다 더욱 우세한 권위를 갖는다. 전체는 자산의 귄위를 제공의회에 위임한다.
P17
“사크로상타(Sacrosancta)”를
발표했다. 어떤 역사가는 그것이 “세계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공식 문서”라고 불렀다.
P26
바젤 공의회에 맞서 승리를 거두는 그 시간에 유게니우스는 이교적인 르네상스를
로마로 가져왔던 것이다.
3. 교황청의 승리: 1418~1447
15장 르네상스 로마를 사로잡다: 1447~1492
1. 세계의 수도
P27니콜라스 5세 교황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좌에 올랐을 때* 로마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시대(270~275)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던 로마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넓이였고, 또 그 지역과 주민(8만 명) 베네짜아, 피렌쩨, 밀라노의
주민 수보다 적었다.
P30
민주주의란, 지성 안전, 평화가 널리 퍼지면서 생긴 사치품이다.
P33
즐거운 백 년 동안(1447~1534)
교회는 이탈리아의 정신에 아주 넉넉한 자유를 주었고 ‘필렐포는 이를 믿을 수 없는 자유
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예술에 그토록 대단한 후원과 기회와 자극을 주어 로마는 곧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고, 이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대 하나를 즐겼다.
2. 니콜라스 5세: 1447~1455
P33
사르짜나에서 가난하게 자란 토마소 파렌투첼리는 어떻게 해선지 볼로냐
대학에서 6년간 공부할 돈을 마련했다.
P36
그는 학자이자 건축가였으며, 재임
이후로는 로마를 세계의 주도적인 도시로 만들기로 굳게 결심했다.
P37
그는 낡아서 부르서지는 성 베드로 성당을 허물고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세계에서
가장 위풍당당한 교회를 세울 계획을 세웠다. 율리우스2세가
이 대담함 목표를 넘겨 받았다.
P39
그는 교회 안에 평화를 회복하고, 로마에
질서와 영광을 회복했다. 또 가장 큰 도서관을 세우고 교회와 르네상스를 화해시켰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고, 친척 등용을 피했으며, 이탈리아 내분을 계속하는 것을 막기 휘해 투쟁했다.
3. 칼릭스투스 3세: 1455~14589
P40
이탈리아의 분열이 이어지는 교황 선출의 결과를 결정했다. 이탈리아 사람으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기에 그들은 스페인 주기경인 알폰소 보르지아를 선출했고 그는 칼리스투스 3세가 되었다.
P41
그는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었다. 그들은 그를 음모에서 보호해 줄 것이다. 특히 그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십자군 전쟁에 나가고 없을 때 그를 보호해 줄 것이다.
4. 피우스 2세: 1458~1464
P41
그는 시에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그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문학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법학은 그의 정신에 빈틈없는 통찰력과
질서를 부여해서 뒷날 행정과 외교 업무를 위한 토대가 되어 주었다.
P42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교회가 요구하는 질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데도
그는 그것을 피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금욕의 능력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P42
이런 무질서한 행동을 한가운데서 학문에 대해서만은 정절을 지켰다. 도덕성을 망가뜨린 것과 동일한 아름다움에 대한 민감성으로 그는 자연에 매혹되고, 여행을 좋아하고, 또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었기에 15세기의 가장 열성적인 작가이지만 능변을 구사하는 웅변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라틴어로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썼다. 픽션, 시, 격언시, 대화편, 에세이, 역사, 여행기, 지리학, 주석, 회고록, 한 편의
희극 등이다.
P43
저의 무(無)에서 출발한 에네아스 실비우스가
펜을 움직여 교황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는 영속하는
깊이나 가치는 없었지만 그래도 유순한 프리드리히 3세 손에서 계관 시인의 관을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P43
그는 자신을 가리켜 “많은
것을 보려는 열망에 빠진”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구두쇠는
많은 돈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을 그는 자주 하고 있다. 가벼운 펜대를 역사 분야로 돌려서
유명한 동시대 사람들의 짧은 적기, 프리드리히 3세의 전기와
후스 전쟁 이야기, 그리고 인류사의 윤곽을 썼다.
P45
그는 이제 쉰 다섯 살이었다. 그러나
모험 많은 삶이 그의 건강에서 많은 세금을 거두었기에 이미 늙은이처럼 보였다.
5. 파울루스 2세: 1464~1471
6. 식스투스 4세: 1471~1484
P57
쉰세 살에 그는 식스투스 4세가
되었다. 그는 가르침과 성실성에서 단연 뛰어난 학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교황의 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변신 하나를 통해 그는 거의 하룻밤 만에 정치가이며 전사로 변했다.
7. 인노켄티우스 8세: 1484~1492
P70
그이 죽음의 수간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들이 퍼졌다. 추기경들은 프란체스케토 치보가 쳄을 차지하지 않도록 그를 특별한 장소로 옮겨 보호했다. 또 보르지아 추기경과 델라 로베레 추기경은 죽음의 침상 곁에서 거의 주먹질이 오가는 싸움을 벌렸다. 죽어 가는 교황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피를 공급하다가, 피를 너무
많이 빼내는 바람에 소년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는 가장 오래 된 출전은 바로 저 수상쩍은 인페쑤라의 보고이다. 인노켄티우스는 4만8000두카트(60만 달러?)의 돈을 친척들에게 남기고 죽었다. 그는 성베드로
성당에 묻히고, 안토니오 폴라유올로가 화려한 무덤으로 그의 죄를 덮어주었다.
16장 보르지아 사람들:
1492~1503
1. 보르지아 추기경
P72
1466년에 그는 바노짜 데 카타네이와
어느 정도 항구적인 결합을 하게 된다.
2. 알렉산더 6세
P81
온갖 장애물을 극복한 것으로 보였을 때 그는 핀투리키오에게 천사성의
교황 거처의 벽에 교황이 왕을 누르고 승리하는 벽화를 그리라고 주문했다. 알렉산더는 절정에 이르렀다.
3. 죄인
P82
그의 신앙심은 가짜였던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의 편지들은, 심지어는 쥴리아와 연관된 편지들조차도
개인적인 서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 신앙심을 나타내는 구절들로 차 있다.
4. 체사레 보르지아
P93~94
그의 자부심은 이런 외모와 맞먹는 것이었다. 그의 반지에는 이런 구절이 새겨 있었다. “Fays ce que dois,
advien que pourra.” 곧, “어떤 일이 일어나든 네가 해야 할 바를 하라.”라는 말이다. 그의 검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생애에서 나온 두
가지 구절이 새겨 있었다. 한 면에는 “Aut Caesar aus
nullus. 카이사르이거나 아무도 아니거나.” 라는 글귀였다.
P97
마키아벨리라면 그 섬세함에 스릴을 느끼겠지만 이것은 역사상 가장 비열한
배신의 한였다. 승리자는 주민들을 음흉한 너그러움으로 대했지만 도망친 공작의 값진 미술 수집품을 자치하고
그것을 팔아서 군대에 월급을 주었다.
P103
그는 로마냐의 통치나 로마의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로 누군가가 자신의
지시를 필요로 할할 때 언제나 시간을 내서 만나 주었다.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그의 날카로운 지성과, 사태의 핵심을 직접적으로 찌르는 능력을 깊이 존경했다. 또한 우연히
주어진 모든 기회를 잡고, 재빠르고 단호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가졌다.
5. 루크레찌아 보르지아:
1480~1519
6. 보르지아 집안의 붕괴
P118
알렉산더의 정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의 목적과 수단을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목적은 전적으로 적절한 것이었다. 곧 '베드로의 재산' (특히 고대 라티움 지방)을 무질서한 봉건적 남작들에게서 되찾는 것과, 교황(교회)국가들을 찬탈한 폭군들에게서 되찾는 일이었다. 알렉산더와 체사레가 이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들, 즉
전쟁, 외교, 속임수, 배신, 조약 위반, 동맹국 버리기 등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국가들도 모두
사용하는 방법이다.
17장 율리우스 2세: 1503~1513
1. 전사
P131
율리우스는 건강이 망가진 채 로마로 돌아갔다. 재앙에 의해 압도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패배에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귀치아르디니는
이렇게 말한다.
교황은 자신의 희망에 대단한 실망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태도는 전설적인 작가들이 안테우스에 대해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안테우스는 헤라클레스의 힘에 의해 기운을 잃고 땅에 떨어질 때마다 더 큰 힘과 활력을
얻었다고 한다. 역경이 교황에게 동일한 효과를 냈다. 그가
극도로 실망하고 낙담한 것으로 보일 때면 그는 정신을 되찾고, 더욱 확고하고 한결 같은 정신과 더욱
굽히지 않는 결단으로 다시 일어서곤 했기 때문이다
P133
자신의 큰 죄인임을 고백하고 추기경들에게 작별을 고하고서 살았을 대와
똑같은 용기로 죽음을 맞이했다.
2. 로마의 건축: 1492~1513
P135 그의 업적에서 가장 지속적인
부분은 미술 후원이였다.
3. 젊은 라파엘로
4. 미켈란젤로
P163
성모가 무릎에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이 위대한 그룹 조각상에서 몇가지
흠을 찾아낼 수는 있다. 의상은 과도하게 보이고 성모의 머리는 몸에 비해 너무 작고 그녀의 왼손은 적적하지
못한 방식으로 뻗어 나와 있다. 그녀의 얼굴은 분명 아들보다 더욱 젊은 영인의 그것다. 콘디비의 보고에 따르면 이 마지막 불만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강렬한 여인들은 그렇지 못한
여자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신선함을 보존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P176
그는 위대한 교화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새로운 레오 교황이 미술의 고귀함에 대해 율리우스와 똑 같은 본능을 갖고 있을까 궁금하게 여겼다. 그는 사진의 집에 틀어 박혀서 자산의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18장 레오 10세: 1513~1521
1. 소년 추기경
P177로마 역사에서 가장 빛나고 부도덕한 시대 하나에 자신의 이름을 주었던
교황은 아버지의 정치적 전력 덕분에 성직의 경력을 시작했다.
2. 행복한 교황
P184
행운의 삶을 타고난 레오의 기본적인 특성은 선량함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기쁨을 주는 말을 하고, 개신교도만 빼고는 모든
사람에게서 가장 좋은 면을 보았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베풀어 주었기에, 이런 너그러운 자선 행위는 그리스도교 재원에 대한 무거운 어음 발행과 더불어 종교 개혁을 만들어 내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3. 학자들
4. 시인들
P197
이 시대의 핵심적인 영관은 문학이었다.
사무라이 시대 일본에서 농부로부터 황제까지 모두가 그랬듯이, 레오 시대 로마에서 교황으로부터
그의 어릿광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시를 썼다.
P200
가장 감동적인 시는 죽어 가는 아버지를 위해 쓴것이다.
아버지 당신은 훌륭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게, 충분히 배우고, 충분히 능변이고,
언제나 튼튼한 몸과 건강한 마음으로.
상냥하고 비할 바 없는 경건함으로.
이제 팔십 평생을 마치고
당신은 신들의 은총이 내린 물가로
떠납니다.
가십시오. 아버지. 당신의 아들도 곧
하늘의 높은 자리로 데려가 주십시오.
6. 미켈란젤로와 레오 10세
P210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회화, 가장
위대한 조각, 그리고 가장 위대한 건축 일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신이 나를 도우신다면 나는 이탈리아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7. 라파엘로와 레오 10세
P213
레오가 미켈란젤로를 소홀히 한 것은 일부는 그가 균일한 성질을 지닌 남자와 여자들을 좋아했던
탓이고, 일부는 그가 건축이나 강력한 예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대성당보다 보석을 좋아했고, 기념비보다 세밀화를 더 좋아했다.
P213
라파엘로는 레오와 기질이나 취향이 잘 맞았다. 두 사람 다 그리스도교 세계를 즐겁게 만들고 이 세상을 낙원으로 삼은 상냥한 괘락주의자들이었다.
8. 아고스티노 키지
9. 라파엘로: 마지막 시가
10.
정치가 레오
P240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자신만의 미적으로 파관괴되었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친절함과 인간애, 너그러움과 학식, 예숙에 대한 사랑과 후원을 올바르게 찬양했고, 또 레오의 재임 시절을
황금의 시대라고 불렀다.
P240
그는 예술 후원에서 가장 너그러운 사람이었지만 가장 깨인 사람은 아니었다.
P241
그를 이렇게 가혹하게 평가하기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붕괴
19장 지식인의 반란:
1300~1534
1. 비밀 종교
P245
모든 시대와 민족에서 문명이란 소수의 산물이며 특권이고 책임이다.
P246
인문주의자들도 자주 정령(genius)이나
자기들이 사는 지역의 미신에 굴복하곤 했다. 그들은 케케로 방식으로 쓰인 글에 자기 주변의 정령이나
어리석음을 뒤섞곤 했다.
2. 과학.
P250
교회의 반대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미신이 과학의 발전을 늦추었다.
P251~252
르네상스는 미술에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작은 부분을 문학에, 철학에는 아주 조금, 그리고 과학에는 가장 조금 영혼을 바쳤다.
3. 의학
P253
가장 번창한 과학은 의학이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식욕 빼고는 무엇이든 다 희생하려는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철학
P262
인문주의자들은 그리스 철학의 세계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철학적 혁명을 예비했다.
P264
폴라톤 아카데미 철학이 되었다. 이
사상은 나폴리에서 죠르다노 브루노에 이르렀다. 브루노를 통해서 그것은 스피노자에게로 넘어가고, 이어서 헤겔에 이르렀다. 이사상은 아직도 살아 있다.
P264
니포는 이 원칙을 무모하게 단순화시켜서 고백했다. “말은 많은 사람들처럼 하되 생각은 극소수의 사럼처럼 하라.
5. 귀치아르다니
6. 마키아벨리
P304
빛나는 정신의 해방이 도덕성에 대한 초자연적 존재의 승인을 없앴다.
20장 풀어진 도덕:
1300~1534
1. 불사(不死)의 원천과 형태들
P305 역사가가 한 시대의 도덕적 수준을 결정하려고 할 때처럼 자기가 가진 선입견에 오도되어 수위 경우도
없다.
P306 르네상스의 지적 상승과 도덕적 쇠퇴에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 했다. 기본적인 사실은 아마 부(富)의 성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 성직자의 도덕성
P321 간통이 널리 퍼져 있었다.
3. 성도덕
4. 르네상스 남자
P322 지적인 해방과 도덕적 해이가 결합되어 ‘르네상스의 남자’가 만들어 졌다.
P322 르네상스 남자의 특질은 두 가지 초점을 중심을 선회한다. 지적
용감성과 도덕적 용감성이다.
5. 르네상스 여성
P324 여성의 출현은 이 시대의 가장 밝은 측면의 하나이다.
6. 가정생활
7. 일반적인 도덕성
P336 사업가들은 서로에게 가혹하고 또 피고용인에게도 가혹했다.
P336 사회적 도덕은 폭력과 자비심과 혼합체였다.
8. 훌륭한 몸가짐 오락
P340 이탈리아는 이제 개인적 사화적 위생, 의상, 식탁의 예의, 요리, 대화, 오락 등에서 유럽의 맴 앞에 섰다. 의상을 제외하고 이 모든 것에서
피렌쩨는 이탈리아의 지휘권을 주장할
만했다.
P345 이탈리아의 쾌락에 대한 자신의 판결을, 곧 다가올 파면의
예언을 말했던 것이다.
9. 연극
P346 이탈리아 연극은 이런 가면극과 사육제가 일부였다.
10. 음악
P348 발레, 무언극, 음악
연주 등이 연극의 막들 사이에 막간극의 형태로 제공되었다는 것은 이탈리아 희극을 보충해 주는 측면이다. 음악은
이탈리아의 모든 계층에서 사랑 다음으로 중요한 오락이며 위안이었기 때문이다.
P348이탈리아는 예나 지금이나 음악에 열광한다.
11 조망
1.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발견하다: 1494~1495
P361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외국과의 경쟁보다 더욱 심하게 자기들끼리 경쟁했다.
P362 그리고 정치적 운이 다했다.
2. 새로운 공격: 1496~1505
P368 “로마 사람들의 왕”, 그러나 사실은 도이치 사람들의 왕인
막시말리안은 막간극을 제공했다.
3. 캉브레 동맹: 1508~1516
P371 이탈리아는 이제 절반이 외국의 지배에 들어갔다.
P376 예술과 문학은 비극적 사건들의 자극을 받은 탓이었는지 아니면 번영을 누린 과거의 힘에 의해서였는지
한동안 더 번창했다. 가장 나쁜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4. 레오와 유렵: 1513~1521
5. 하드리아누스 6세:
1522~1523
6. 클레멘스 7세: 첫
번째 국면
7. 로마 유린: 1527
8. 승리자 카를 5세
9. 클레멘스 7세와 미술
바사리는 경쟁자가 그에게 독을 먹였을 것이라고 말한다음 “로마의 모든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무덤까지 그의 시신을 따라갔다.” 고 전한다.
10. 미켈란젤로와 클레멘스7세:
1520~1534
P407 1525년에 미켈란젤로는 무덤 제작을 시작했다. 클레멘스 7세는 그 전해에 미켈란젤로에게 상냥하게 안달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P408 하느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이 모든 일을 앞으로 밀고 나갈 생각을 불어넣어 주시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에게 주문이나 보상이 없어질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안녕히, 하느님과 나의 축복을 보냅니다. 줄리오
P412 나의 잠은 소중하다. 폐허와 불명예가 지배하는 한
잠은 단순한돌 이상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나의 큰 이점/
그러니 나를 깨우지 마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라.
11. 한 시대의 종말: 1528~1534
P414 클레멘스가 즉위할 때 모든 사람이 환호했고, 그가 죽었을
때 모두가 환호했다. 로마의 폭도들은 거듭 그의 무덤을 훼손했다.
종말: 1534~1576
22장 베네찌아의 황혼: 1534~1546
1. 다시 태어난 베네찌아
P417 이탈리아의 나머지 지역에서 속박과 쇠퇴가 이루어지던 이 시기가 베네찌아에는 황금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다.
P419 그는 젊은이를 몹시 사랑해서 그를 잘 가르쳤고, 야코포는
그를 아버지처럼 여기다가 나중에 스승의 별칭인 산소비노를 자신의 성으로 받아들였다.
2. 아레티노: 1492~1556
P429 그의 풍자문은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들의
힘은 대부분 그 시대에 너무 밀접하게 연관된 지역의 사건들을 암시하고 있기에 지속적인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P430아내들과 수녀들은 자신들의 맹세를 지키지 않지만 기생들은 자신의 직업으로 먹고살고 또 돈을 받고 정직한
밤의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P430~431 그는 궁정인들에게 요구되는 위선, 시류를
좇는일, 비굴, 아첨 등을 폭로했다.
P435여기 토스카나 시인 아레티노가 누워있다.
신만 빼고 모든 사람에 대해 고약한 말을 했던 사람,
변명으로는 나는 그(신)를 몰랐다 고 말하던 사람.
3. 티찌아노의 왕들: 1518~1594
4. 틴토레토: 1518~1594
5. 베로네제:
1528~1588
P466 베로네제는 탁월한 제자들을 두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영향은
여러 세대를 뛰어넘어 이탈리아, 플랑드르, 프랑스 예술의
형성에 동참하게 된다.
6. 조망
23장 르네상스가 이지러지다: 1534~1576
1. 이탈리아의 쇠퇴
P469
침입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이탈리아의 얼굴과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북부 주들이 얼마나 황폐했던지 영국 사절은 헨리 8세에게
이들을 형벌로 카를 5세에게 남겨두라고 조언했을 정도였다.
P471
다른 불행이 이탈리아에 일어났다. 이것은
전쟁의 황폐화와 스페인에게 복종하는 것보다도 더욱 지속적인 재앙이었다.
P472
르네상스 쇠퇴에서 마지막 인자는 반종교 개혁이었다. 이탈리아의 정치적 무질서와 도덕적 추락, 이탈리아가 외국의 세력에
의해 종속되고 황폐하게 된 일, 또 대서양 국가들에 무역로를 잃어 버린 점, 종교 개혁으로 인해 수입을 잃었다는 점에 덧붙여서 교회의 분위기와 태도에 극히 자연스러운 (그러나 르네상스에 불리한) 변화가 나타났다.
P474 노예 제도를
주요 경제 수단으로 복구한 것도 이 시대의 일이다. 교황 파울루스 3세가 1535년에 잉글랜드에 대항하여 전쟁을 시작했을 때 교황은 영국 병사를 잡기만 하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노예로
삼는 것이 합법이라고 선언했다.
2. 과학과 철학
P476 신학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과학 분야에서 이탈리아는 예술과 문학에 주로 과심을 가진 민족에게서, 그것도 양심을 폐기한 지성에 대항한 반응으로 나올 수 있는 정도의 평범한 발전을 계속했다.
3 문학
4. 피렌체의 황혼: 1534~1574
5. 벤베누토 첼리니: 1500~1571
P499 그이 신학은 그의 도덕성만큼이나 독립적이었다. 언제나 옳았기
때문에 (한번만 빼고) 그는 신의 자기편이고, 자기 팔에 힘을 더해 주신다고 느꼈다.
6. 줄어든 빛
P504이탈리아가 쇠퇴하던 이 시대는 사부아가 부활하던 시대이다.
P580 이탈리아 미술의 위대한 시대는 끝나고 있었다. 라파엘로의
아류였던 페리노 델 바가와 죠반니 다 우디네는 장식 예술 쪽을 GIDGOTE. 조각은 바로크 양식으로
가고 있었다. 라파엘로 다 몬텔루포와 죠반니 다몬토리솔리는 스승 미켈란젤로의 과정을 더욱 과장했고, 독창적으로 뒤틀리긴 했지만 기묘하고 꼴사나운 자세의 팔다리를 가진 조각상을 만들었다.
7. 미켈란젤로: 마지막 국면:
1534~1564
P513 그의 종교는 본질적으로 증세적이고, 신비주의와 예언, 또 죽음과 지욱에 대한 생각은 어두워진 것이다. 그는 좋아한 책들은
성서와 단테였다. 생애 마지막 무렵 그이 시는 점점 더 종교를 향했다.
이제 나의 삶은 허약한 배처럼 폭풍우 치는
바다를 지나, 최후의 삼판이 내려
선한 행동과 나쁜 행동에 대해 대가를 치르기 전에
모두가 가는 그 넓은 항구에 이르렀다.
이제 나는 내 영혼을 지상의 예술의 숭배자와
노예로 만들었던, 저 좋아하는 상상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아노라, 모든 사람이 기꺼이
P519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제껏 존재한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다는 것이 당시 일부 사람들의 판단이었고, 또 시간의 판단이 되었다. 그는 러스킨이 말한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정의를 완전히 충족시켰다.
P521~522 마지막 말은 겸손의 말이 되어야 한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우리가 신들을 평가하는 자리에 않아 있다고 상상하는 동안에 그들의 신성을 인정할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감식안이 그들의 사당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영웅을 숭배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III. 내가 저자라면 / 윌 듀런트
이번 책을 읽기 전에 저자가 임종하기 5년 전에 그의 딸과 함께 케이블 TV에 토크 쇼 형식으로
‘문명 이야기’을 담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 했다고 한다.
그때 만들어진 책이 ‘ 역사 속의 영웅들’ 이였는데, 문명 이야기를 다른 시각으로 영웅들의
모습으로 기록 해 놓았다. 이 책과 문명 이야기를 비교 해 보면서 읽는 맛이 새로웠다.
인물 중심으로 쓰여진 내용과 시간, 역사성을 가미해서 기록해 놓은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갖게 해 주었다. 서평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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