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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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19. 총정리
총정리를 하며 거의 백일을 보냈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나의 애착은 질기고도 지겨웠다. 하루 종일 내가 앉은자리 팔 휘저어 만들어지는 공간, 바로 “그것만이 내 세상”이었다.
공연 관람 티켓, 박물관 , 미술관, 여행지의 팜플렛, 맛집 명함, 그리고 지도...그 위에 끌적거려 놓은 “그 때 그 느낌”
옛날에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면 언제나 연필 깍아 잘 다듬어놓고. 책 반듯하게 올려 잘 쌓아놓고, 새 노트에 출사표를 반듯하게 써내려가던 그 버릇들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 왔나보다. 출발에 앞서 총정리가 필요했다. 올핸 어찌되었든 마무리를 하자고 결심에 결심을 더하여 우선 책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는데....세상에 읽지 않은 책이 팔 할이다. 내 책에 가족들의 책을 더하면 ...서점을 차려도 될 만큼 새 책이 많다. 우리 집 사람들은 모두 쓸쓸한 가 보다. 친구대신 매일 책을 서 너 권씩 데리고 들어온다. 그리고 한쪽으로 밀어놓고 영상매체에 몰두한다. 쉽고 편한 길은 언제나 인기가 많다.
그래서 책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흥미가 지나가버린 책들은 누구에게 나눠줄까를 생각하다가 한뭉치 두뭉치 묶어놓고 또 책을 보러 나간다. 그리고 또 새 책을 사오고....서 너장 보다말다...바쁜 마음에 또 먼 훗날을 기약하며 먼지에게 뒤처리를 맡긴다.
이런 일을 평생 해오다가 이젠 내가 책 생산자가 되어보려고 나머지 인생을 다 걸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에너지를 다 모아보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며 서서히 기운도 빠지고 김도 새는 것 같다. 지난 가을부터 땅에 가두어 숙성시키고 있는 생각들이 봄에도 계속 땅속에서 지내고 있더니 여름에도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에잇, 이젠 다 퇴출이다. 더는 못 참아 주겠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후반생을 마감하기는 싫다. 그래서 총정리를 한다. 매우 거칠게 .
만약 이러다가 내가 죽으면 내 책과 내 글은 물론 , 육신까지 흔적없이 사라지고 내가 세상에 다녀간 역사라는건 그저 자궁과 무덤사이에 한순간 행인 1 로 끝난다. 그것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고 눈이 밝은 사람의 눈에나 보여 질 한 장의 그림이다. 백일동안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내 인생을 총정리하고 있는데 그것만이 내 세상인 공간이 너무나 좁아서 어제 밤에는 잠이 다 오질 않았다. 이게,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어차피 사람의 흔적이 동시대인들의 공동 기억에나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인데 무얼 그리 열심히 정리를 해서 남기려고 하는가? 이 쓰레기 더미에서 총정리는 무슨... 총정리 같은 소리를 하고 있구나 ....
그래서 오늘 총정리를 끝내기로 했다. 어차피 총정리는 없다. 내 뒤에 서있는 사람이 몽땅 갖다 시원하게 다 버려줄 것이다. 그렇게 아끼고 그렇게 간직했던 “그것만이 내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제 눈에 보이는 세상의 총정리는 끝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바로 쳐들어가야겠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그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총정리 하다가 글 빨 마저 잃어버린 나는 글 한 꼭지를 옛 칼럼에서 찾아다 덧붙인다. 지난 주말 연구원 팔기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며 이번엔 앵두 대신 내 마음을 열어 보이고 싶어서이다.
칼럼 38 - 소주와 사이코드라마 - 꼭지 글 2
소주를 한잔 마시고 사이코드라마의 주인공을 한 적이 있다. 두려워서 도저히 사람들 앞에 나를 다 내보일 수가 없었다. 사이코드라마는 마음의 극장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고 싶은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기가 꿈꾸던 세상 하나를 만들어보는 일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서면 그 공간과 그 시간은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때와 장소가 된다.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역할을 바꾸어 주인공에 맞먹는 악역을 해줄 수도 있고, 책상, 만년필, 일기장 같은 사물이 되기도 하고, 마음속에 깊이 감추고 있어서 제정신으로는 잘 말할 수 없었던 속마음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입고 걸친 옷들을 벗어버리고 , 나만의 색깔과 나만의 향기를 품은 참사람이 되어 한판 드라마를 펼쳐보는 것이다. 100가지가 넘는 이유로 미처 살아내지 못한 나의 인생을 내 마음대로 펼쳐보는 묘미가 있다. 그러나 용기가 없으면 도저히 뛰어넘지 못하는 벽이다. 상상력이 춤을 춰야하고 사회의 꼭두각시이던 내가 그 자리를 좀 떠나 줘야하는데, 세상에서 쓰고 있는 가면이 너무 단단해서 “참 나”를 꺼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한참 상담에 열중해 있을 때 우리는 팀을 이루어 사이코드라마 수업을 했다. 매주 수요일에 모여서 한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우리는 그를 위해 그의 무엇이든 되어주던 사이코드라마를 하고 놀았다. 디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 주인공이 되어보아야 했다. 그렇게 초급부터 과정을 충실히 밟아나갔다. 고급반을 마치고 수료를 앞둔 시점이었다. 워낙 주인공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양보를 하다 보니, 나의 사이코드라마가 없이 그냥 끝을 내는 시점까지 왔다. 나는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이 있어서 자꾸만 보따리를 쌌다. 먼저 집에 가겠다고 나왔다. 물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편은 공부하러 또 독일에 가 있었고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국내 유학중이었다. 덩그러니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 큰 아파트 구석방에서 내 영혼은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시이버님이 시월 어느 날 돌아가셨고 그 한 달 뒤 우리 가족의 정신적인 지주와도 같이 늘 우리와 삶을 함께 나누시던 프란치스코 신부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이 두 사람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 온전히 아이의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사랑이었다. 갑자기 나의 삶을 이끌어가던 실타래가 풀려버렸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세상 한복판에 버려진 심정이었다. 죽고 싶었다. 늘 내 어깨를 누가 끌어당기는 듯한 힘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무력감에 휘말렸었다. 수시로 눈물이 났고 그 어떤 명료한 생각도 해낼 수 없었다. 마치 때 되면 밥 먹고 때 되면 잠을 자는 자동인형같이 살고 있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염려를 하지 않았다. 나는 늘 일상을 씩씩하게 꾸려나가고 있는 당당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공허한, 자존심 하나로 실속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집으로 가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두서너 번... 드디어 주인공으로 나섰다. 교육과정의 끝에, 막판 1시간이었다. 시아버지를 모셔오고 신부님을 모셔오고 죽어서도 내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냈다. 그리고 질문을 시작했다. “이 여인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그렇게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끝내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냥 참고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 상처입어 피흘리는 새끼 짐승처럼 울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죽음의 그림자를 그리 깊이 안고 겨우겨우 숨을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하루하루 말없이 그렇게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차디찬 무대 위, 맨바닥에 엄마 뱃속의 어린아이처럼 쪼그리고 누워서 울었다. 그냥 “어어~ ”하고 울었다. 사이코드라마의 디렉팅을 하고 있던 우리 선생님은 음악이 흐르게 하고, 오리털 파카를 덮어주고 주인공을 불쌍히 여겨 돌보셨지만 주인공인 나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남아있는 힘을 다 끌어내어 울었다. 어른이 된 후로 남 앞에서는 한 번도 울어보지 못했던 그런 울음을 토해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곳엔 조그만 틈새도,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히 애를 쓰며 살던, 상담 선생이라 불리던 나는 사라지고, 죽음의 힘에 이끌려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지칠대로 지쳐서 풀 한포기라도 지푸라기라도 붙잡아 삶의 기운을 얻고 싶었던 “참 나” 만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정신을 차려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아마 그때 나는 울면서 스틱스 강의 시퍼런 물을 보았을 것이고 카론에게 마지막 동전을 막 건네주려 했는지 모른다. 퀴블러 로스의 말을 빌리면 나는 아직 이 세상에서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어서, 나의 성장을 위해서 다시 이 세상으로 되돌아 왔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의 사이코드라마는 막을 내렸고, 우리는 서로 진정한 마음을 나누고 느낌을 나누고 헤어졌다. 말없이 마주잡은 손이 최고의 말이었다.
나는 그 후 보름을 몹시 앓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고 그냥 쉬었다. 목소리조차 쉬어버려서 사실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목 놓아 울었던 목은 실핏줄이 다 터져서 마치 녹이 슨 철조망처럼 얼룩져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마음을 살펴주지 않으면 몸이 이렇게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고집쟁이는 결국 몸으로 겪어야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서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원점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에서는 결코 꺼내놓지 못할 마음의 비밀을 가슴에 깊이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욱 세심하게 마음을 쓰게 되는 것 같았다. 즐겁게 웃고 이야기하고 맛있게 먹고 마시고, 그리고 집에 가서 운다. 가끔 길을 가다가 홀로 눈물을 주르륵 흘려보기도 하지만 웬만한 자의식이 없으면 계속 울지 못한다. 애써 휴가를 내어 “통곡의 장”을 찾아가 보지만 사람의 발길이 멈춘 곳이 없다. 언제나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그렇게 흐르지 못하고 쌓인 눈물들이 등으로 흘러 들어가서 언제나 등이 아프다. 사실, 등을 두드려 주는 사람은 사람에 대해 깊은 연민이 있는 사람이다.
내게 다가와 크고 작게 마음을 흔들고 생각을 일깨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엮어서 정리해 두고 싶었다. 인생의 어느 한 단계를 마무리 하고 새롭게 걸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 묵상을 시작했다. 자료조사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이미 나와 비슷한 체험을 하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의 책이 많이 있었다. 사람의 한 생애가 본래 삶과 죽음의 연속이고 삶의 기쁨을 노래할 때 언제나 죽음도 함께 노래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애써 죽음을 외면한다. 죽을 힘을 다해야 죽음을 마주 볼 수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제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삶을 마주보려 한다. 아니, 살 힘을 다해서 삶을 노래해 보려고 한다. 노래방의 노래 수준을 보면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미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니 글이 노래처럼 엮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노래가 강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가주면 좋겠다.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흘러가 새 봄의 언덕에서 풀 한포기의 생명으로 돋아나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밥잘 슨상님
'총정리'에 출군의 결연함이 느껴집니다. 북소리, 함성소리 들리고 휘몰아치는 깃발이 보이는데요.^^
저는 얼마 전에 밥잘 슨상님의 미래의 책을 한 페이지 인용했어요.
6월달을 넘기기 힘들다는 어르신을 모신 분이었는데요, 7월 중순 들면서 고기, 탄산음료를 드시겠다 해서
이분은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막고, 어르신은 몰래 드시는 싸움을 하셨다는 분께요.
그 글은 아마 작년에 연구원 칼럼을 숨어서 볼 때요, 쌍코피 르네상스에서 외국 묘지의 재미난 묘비명을 지나 피바다 사이 어디에서 봤나봐요.
돌아가신 아버님이야기인가? 마지막 가시는 분이 원하시는 음식을 드시게 해서 마음을 채워주라는 내용으로 기억해요.
지금 출격해서 무찌르러 가는 책이 그 때 그것인거지요?
게시판에서 밥잘슨상님을 뵈니 많이 반갑습니다.^^
ps 이번에 여행 가서도 물만 보면 뛰어드실까요?
저는 고향 동네 개울가에서 배운 게헤엄만 칠 줄 아는데요, 바다수영에서는 이런 영법이 먹힌다고 해서 궁금해하고 있어요.
콩쥐팥쥐 두꺼비....
내가 좌슨생..이라꼬, 밥사줄라꼬 문짜 보냈는데...누구세용? 이라꼬 대답하는 우리 콩두,
오늘은 오래동안 아픈 남편을 보살피고, 손주도 보살피고....땅도 보살피고 돈도 보살피며...다소 힘들게 사는
어여쁜 여인을 위로하러 함께 안동을 다녀왔다오.
차로 가면 밀리고 에둘러 한참이 걸리는 길을
고속버스는 직선으로 용건만 간단히 2시간 40분에 주파하더군요.
안동 간고등어에 요즈음 재조명 받으며 뜨고 있다는 도로묵에....버버리 떡 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고 돌아왔지요. 제대로 죽기도 전에 배터져 죽을뻔 했다오..........
미안......슨상님이 원색적으로 표현해서.... ㅋㅋ
내일, 아니 오늘 만나 ... 이번엔 배터지게 웃고 놀아 보십시다요. 클났다. 그전에 숙제먼저 해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