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614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8월 16일 00시 14분 등록

 

아버지의 박봉으로 오남매를 건사하기 어려웠던 탓에 어머니는 하숙도 치시고, 구멍가게도 경영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하루하루 할 일도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부모님 품을 떠나지 않았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종종 집안일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따금 부엌일도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이를테면 김에 기름을 발라 굽는 일, 마늘을 까거나 파를 다듬는 일, 깨를 볶는 일

 

그리고 종종 야단을 맞았습니다. 어머니가 시키신 대부분의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특히 깨를 볶는데 고루 볶지 못해서 태운다고 가장 많이 야단을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야단을 치시면서 깨를 볶던 나의 주걱을 얼른 빼앗아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잠시 휘휘 젓다가 다시 내게 건네주곤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손놀림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별로 힘이 들어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태우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리다보면 나의 팔은 금새 뻐근해졌고 뻣뻣하기까지 해서 깨가 프라이팬 밖으로 튀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어머니는 동작이 굼뜬듯하면서도 하루에 정말 많은 일을 척척 해내셨습니다. 한편 아버지는 장작을 그렇게 패셨습니다. 큰 힘들이지 않고도 나무를 쩍쩍 쪼개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마치 나무가 도끼를 무서워해서 스스로 발라당 쪼개지는 것처럼 늘 시원한 도끼질을 아침마다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도끼를 처음 잡은 것은 초등학교 5학 년 때입니다. 아버지가 형과 힘을 합쳐 아침마다 조금씩 장작을 패놓고 학교에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은 매사에 탁월했습니다. 도끼질 또한 그랬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부러워서 학교가 끝난 뒤 홀로 도끼질을 하다가 도끼로 발등을 찍어보는 경험을 한 것이 그때였습니다. 지금 나는 그때 경험 덕분으로 장작을 패서 구들방에 불 지피고 사는 일을 어렵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만큼 나이가 들고서야 비로소 물오른 삶이란 어머니가 프라이팬에 깨를 볶는 것과 다르지 않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장작을 패던 모습 역시 장작을 패는 일에 물이 오른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듯 모든 물오른 삶의 모습들은 부드럽습니다. 그것은 마치 멋진 춤을 추는 모습과도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춤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동작을 잘 익혀서 구분 동작을 하나하나 충실하게 연기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면 그 춤은 아직 아름답다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물 오른 삶은 새가 나는 것과 같은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날개 짓 한번 한번을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몸이 바람을 읽고 바람 위에 몸통을 싣지 못한다면 새는 그렇게 자유롭게 창공을 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숲을 읽되 숲을 느끼지 못한다면, 숲을 느끼되 숲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면 숲과 사는 나의 삶 역시 물오른 삶이 되지는 못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비 참 많이 오는 날입니다.

IP *.20.202.7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54 엄마, 자신, 균형 [1] 어니언 2024.12.05 1279
4353 삶의 여정: 호빗과 함께 돌아본 한 해 [1] 어니언 2024.12.26 1296
4352 [수요편지] 능력의 범위 불씨 2025.01.08 1318
4351 [수요편지] 발심 [2] 불씨 2024.12.18 1357
4350 목요편지 - 아내의 눈물 [2] 운제 2018.10.18 1394
4349 [일상에 스민 문학] 에필로그 [4] 정재엽 2018.12.26 1409
4348 [일상에 스민 문학] 휴가 책 이야기 1. 정재엽 2018.08.15 1421
4347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종종 2022.07.12 1422
4346 [금욜편지 89- 21세기에 프로로 산다는 것은] [4] 수희향 2019.05.24 1428
4345 목요편지 - 요가수업 [2] 운제 2019.05.09 1438
4344 누리는 걸까, 소비당하는 걸까 [1] -창- 2017.09.09 1443
4343 목요 편지 - 회상 [1] 운제 2018.11.01 1444
4342 목요편지 - 북수꽃이 피었어요 [3] 운제 2019.02.21 1447
4341 개들은 모르는 것을 보면 짖는다 옹박 2017.10.16 1448
4340 ‘1인 기업가’ 차칸양의 직업, 일, 미션 이야기 file [6] 차칸양 2018.06.12 1451
4339 [수요편지] 위대한 근대인 [2] 장재용 2019.04.03 1451
4338 [수요편지] 불안의 짐짝들에게 장재용 2019.10.23 1453
4337 핀테크는 왜 '개인금융의 미래'라 불리는가?(2편)-레이니스트 [2] 차칸양 2017.10.10 1454
4336 [내 삶의 단어장] 크리스마스 씰,을 살 수 있나요? [1] 에움길~ 2024.08.20 1454
4335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06] 삼국유사 (1부) 제산 2018.07.23 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