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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2012년 8월 16일 16시 58분 등록

자주 안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쉽기도 하고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이별은 조금 다른 이별입니다. 직장인의 꿈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정년퇴직을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직에 한번도 계신적은 없지만 묵묵히 본인의 업무를 소화해내신 분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년을 4개월 앞두고 퇴임하셨지만 정년과 다를바 없으니 정년이라 하겠습니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회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했으니 특별한 경우가 맞습니다.


퇴임식도 원하시지 않았고 후배들의 축하도 받고 싶지 않다고 하신 이유가 여러가지 있었겠지만 그렇게 너무 조용히 보내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는 안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지금 그나마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된건 선배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기에 당연히 감사를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단한 절차를 거치니 출근 마지막날이셨기 때문에 시간의 여유가 없어 서둘렀습니다. 큰 이벤트는 아니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일단 팀원들에게 롤링 페이퍼를 돌렸고 회사옆 화원에서 꽃다발을 샀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그래! 만년필'


부담없는 가격이라면 괜찮은 선물이 될거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날무렵 대형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너무 튀지도 않으면서 고지식해보이지 않는 모델이 눈에 들어왔고 영문 이니셜 각인을 부탁 드렸지만, 휴가철이라 각인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방으로 알아봤지만 소용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후배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부장님 짐 다 싸셨어요. 지금 가신데요. 어쩌죠?'

퇴임하시는 날이라 일찍 짐을 싸실건 예상했지만 이대로 보내 드릴순 없었습니다. 각인 이용권이라는게 있다고 점원이 설명해 주었고,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한손에는 만년필을 다른 한 손에는 각인 이용권을 들고 불이나케 사무실까지 달려 왔습니다.


간소하지만 준비한 롤링 페이퍼와 꽃다발을 전달해 드리고 만년필까지 건네 드렸습니다.
'조용히 가고 싶었지만 후배들의 마음은 달랐나 봅니다'라는 말로 시작한 조촐한 퇴임인사는 후배들이 보내 드리는 박수로 끝이 났습니다. 저는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박수를 치면 보내드려야했기 때문입니다.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신 부장님은 평소와 같이 조용히 청춘을 받친 직장의 무대뒤로 내려가셨습니다.

 

두 가지 생각이 같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저 분은 은퇴 준비가 되셨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나도 저렇게 떠날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과 그전에 준비하지 않으면 원치 않는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 제 앞을 지나치며 살짝 웃었습니다.
 
저와는 나이와 경험 차이도 많이 나고 업무상 접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부장님이 퇴임인사 하시러 회의실로 등장하셨을때 바보같이 뒤로 돌아서 버렸습니다. 조금 담대해져야겠습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조촐한 선물이라도 드릴 수 있는 잔잔한 안녕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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