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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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열흘간 시칠리아를 다녀 왔습니다. 에트나 화산에 올랐습니다. 3000 미터가 넘는 산의 정상 부근은 부드러운
화산재로 덮혀 검은 모래 사막처럼 보였습니다. 그 뜨거운 여름 여기에는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지요. 그곳은 지구가 아닌 다른 별처럼 보였습니다. 뜨거운 햇볕으로 자라난 포도주 Etna Rosso 한 모금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 다시 오지 않으리라. 오직 지금으로 끝을 내리라. 두 번이 없이 즐기리라.
에트나
이곳은 속이 타올라 참지 못하고
소리쳐 부르며 밖으로 치솟은 나의 내면
안 밖이 뒤집힌 곳
비옥한 검은 화산재가 사막의 모래 언덕처럼
부드러운 굴곡으로 누운 여인 같은 곳
지하의 하데스가 바위틈으로 어느 날 시칠리아를 굽어보다가
엔나의 평원을 거닐며 꽃을 따던 여인에게 달려가
단박 품에 안고 땅 속으로 꺼져 버린 곳 ( * 주 1)
가서 보니 에트나는 지하세상이 하늘을 만나는 곳
아직도 여전히 불과 연기로
오, 단 한번의 눈길이 영원한 사랑이 되었으니
사랑에는 두 번이 없는 법 미래도 없는 법
오직 지금 여기 한번 뿐
다시 에트나를 찾아 올 것이라 여기지 마라
여기서 사랑의 묘약을 살 수 있다 여기지 마라
오직 가슴 속에 죽은 듯 잠복한 불길을 스스로 살려낼 때
삶이 사랑임을 알게 되리니
비로소 화산재가 더없이 비옥한 풍요임을 알게 되리라
아래 녁에 사는 사람들이 으르렁거리는 화산을 떠나지 않고
일생을 여기서 바치는 이유는 용암이 덮치는 위험보다
사랑으로 활활 탄 재가 불러오는 풍요가 더 좋기 때문
나도 아노니 사랑은 용암처럼 위험하지만
사랑에 검게 타지 않은 인생은 쓸모없는 불모지
왜 하데스가 플루톤으로 불렸는지
그리고 왜 플루톤이 부유한 자라는 뜻인지 ( * 주 2)
나는 에트나에 서서
삼천 미터가 넘는 바람을 맞고 알게 되나니
* 주 1 시칠리아는 그리스 신화 속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의 땅입니다.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는 하데스가 가끔 지상으로 올라올 때 쓰던 통로 중의 하나 였지요. 어느 날 그는 시칠리아의 한 가운데 쯤 있는 엔나의 평원에서 꽃을 따며 놀고 있던 페르세포네를 보게 되고 반하게 됩니다. 그리고 단박 안아 지하세상으로 데리고 가서 왕비로 삼게 되지요. 이것이 하데스의 유일한 사랑이었습니다.
* 주 2 그리스 인들은 하데스를 풀루톤이라고 불렀지요. '보이지 않는 자' 라는 뜻을 가진 하데스라는 말을 잘못 입에 올렸다가 저승사자가 잡아갈 까 두려워서 였답니다. 그대신 '풍요로운 자' 라는 뜻의 플루톤라는 별칭으로 불렀지요.
기꺼이 검게 타겠다 해 놓고
막상 살아내기는 왜 이리 어렵답니까
깊은 밤 사부님 글 읽고 또 읽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pstY2qtTN8o
선관아,
나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것이 이 세상의 이야기들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느 날 너에게 언니들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인 듯 여겨져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시작하였을 것이다. 힘든 일은 기쁜 일과 함께 있다. 또한 기쁜 일은 힘든 일과 함께 있다.
다른 길도 있겠지만 그런 길들은 네 길이 아니고, 이 길만이 네가 이 세 상에서 맡은 네 역할인 모양이다.
나는 네가 징징거릴 때 마다, 네가 삶의 한 가운데 있음을 알 것 같다. 너는 매일 삶의 떨림 속에 있다.
불안해 하지 마라. 지금까지 처럼 막힌 곳에서 다시 길이 생기고, 막막한 곳에서 다시 빛이 보이지 않더냐.
너는 네 삶으로 견디고 모범을 보이고 이 곳에서 네 신화를 만들도록 해라. 삶으로 본을 보인 사람들은 모두 신화 속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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