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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0일 01시 08분 등록

살기위해 오르는도시 , 타오르미나

 

1.     44, 산끝의 무대, 그리고 타오르미나

 

타오르미나를 사람들은 시칠리아의 파라다이스로 부른다고 한다. 모파상은타오르미나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타오르미나의 모든 것들은 마치 인간의 눈과 정신, 그리고 상상력을 유혹하러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체팔루를 거쳐 타오르미나로 향했다. 길수와 점심을 먹은 레스토랑 주인이 친절하게도 타오르미나는 현재 44도라고 알려준다. 44! ...불볕더위에 그리스극장을 둘러볼 일이 두렵다.

태양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타오르미나, 시작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고대 그리스 원형 극장에 앉아 무너진 무대 사이로 연기를 내뿜는 에트나 화산과 푸른 지중해를 바라 볼 수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타오르미나다. 44도라 한들 어찌 마다하겠는가?

타오르미나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가 구불 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아슬아슬 곡예하듯 올라가야 한다. 올라 갈수록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마피아로 잘 알려진 시칠리아, 이 섬의 관문 메시나에서 버스로 1시간 남쪽으로 떨어진 아름다운 해안 도시 타오르미나가 있다. 이 도시는 영화 <그랑 블루>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영화에서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다가왔던 바다와 강열한 햇살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여행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곤 한다. <그랑 블루>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배경이 된 푸른색 바다, 주인공자크가 꿈꾸는 바다의 환상적인 이미지가 오버랩 되어 펼쳐진다. 끝내 바다와 하나 이지 못함을 자책하며 심연 속으로 사라진 엔조의 마음이 아리게 다가 온다.

타오르미나는 메시나와 카타니아 사이의 타우로 산 기슭에 바다에서 거의 수직으로 솟아오른 가파른 구릉 위에 서 있다. 옛 이름은 타우로 산에서 유쾌한 타우로메니움이다. 이곳에는 원래 시칠리아의 고대 부족인 시쿨리족이 살았었다.

기원전 403년 시칠리아에 있던 그리스 식민 도시 낙소스가 멸망하면서, 추방당한 이들은 북쪽으로 5㎞ 떨어진 타우루스 언덕의 가파른 바위투성이 언덕에 새로이 정착했다. 언덕에는 요새화된 도시가 세워졌고, 마침내 시칠리아가 로마의 주가 되자 이 도시 타오르미나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특권적인 위치를 누리게 되었다. 지중해 일대를 지배하던 비잔틴 제국이 시칠리아를 지배할 때 이 섬의 수도 역시 타오르미나였다.

 

중세 전기에 해당하는 서기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시칠리아 섬은 사라센 해적들에게 철저히 농락 당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출항한 해적선들이 시칠리아 해안을 비롯, 이탈리아 해안까지 노략질을 일삼았던 곳이다. 그래서 바닷가보다는 산 중턱에 도시를 세웠고, 산정에 성채를 구축한 것이다. 끈질긴 약탈과 침입으로 고단해진 이 곳의 사람들은 살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위치를 옮겨 삶을 살아내었다. 그래서 타오르미나는 다른 도시와는 다르다. 이 곳 사람들은 성곽 안에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성 밖으로 나가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래서 성곽 안에서 아주 좁은 길만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서로 살아가는 공간을 확보하여 집을 지었다. 해적의 침입이 다소 완화되면 그리스 극장에 모여 연극을 즐겼고, 로마시대에는 원형 경기장으로 모여 삶을 공유 했다.

 

<해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바다가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성곽을 쌓아 도시를 건설 했다>

 

타우로 산 중턱에 고요히 둥지를 틀고 있는 이 아름다운 도시는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곳이다. 수 많은 제국과 왕조가 거쳐간 타오르미나는 인간의 문명이 흥망성쇄를 반복한 역사의 무대이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풍부한 문화적 깊이가 골목마다 풍겨져 나온다. 험준한 산과 눈부신 바다를 곁에 두어 천혜의 요새였던 이 곳에 지금도 시계탑이나 프로타메시나, 포르타 카타니아, 다양한 성당과 팔라초 등 도시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올라갈 수 있는데 까지 올라가 성을 쌓고, 성당을 짓고 자신의 삶을 보존 했던이들>

 

2. 타오르미나 원형 극장 Taormina Amphitheater

 

타오르미나에는 오래된 역사를 일깨워 주는 유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오래된 성벽의 잔해, 로마의 '나우마치아'(고대 로마인들이 해상 전투를 재연하며 즐기던 물을 채울 수 있는 건물), 13세기의 산 니콜로 대성당 등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타오르미나에는 가장 큰 규모는 아니지만,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자랑 삼을 수 있으며 뛰어나게 보존 상태가 좋은 원형 극장이 있다. 지름이 106m인 이 극장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이 점으로 보아 로마 시대에 지어진 듯하다. 그러나 그 설계 구조를 보면 그보다 전에 이 자리에 있었던 그리스 극장의 토대 위에 지어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경에 지어진 이 야외 극장은 원래  5400명이나 되는 관객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객석에 앉아 산 아래 굽이치는 이오니아 해안과 멀리 에트나 산을 바라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 극장은 이렇게 수세기 동안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묵묵히 타오르미나를 지키고 있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셰익스피어 맥베쓰의 한 장면이 내 눈에 어른거리며 대사가 들리는 것  같다.

 

“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건데 소음, 광기 가득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 - 맥베스 중에서

 

객석을 계단형으로 점진적으로 올라가게 설계된 이유는 마이크가 없던 그 시절 육성을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또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작은 목소리도 관중들에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연극과 콘서트가 열리는 타오르미나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매년 타오르미나 영화 축제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며, 영화제 때면 극장에 스크린이 세워져 영화가 상영된다. 극장 안 어느 곳에서도 무대가 잘 보이는 반원형 극장은 자연을 배경으로 무대 쪽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그리스 연극이 공연 될 때는 자연을 배경으로 삼는다.

우리는 그리스인들처럼 둘러앉아 한 연구원 선배의 하모니카 연주를 들었다. 그리스 극장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일은 평소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가 기원을 넘나드는 극장에 앉아서, 서서, 21세기를 사는 사람들 간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어떤 의미일까? 극장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죽었지만, 그들이 사용했던 시설은 아직도 남아 후대에게 역사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유한성을 더 각인시켜주는 것은 아닐까?

 

<타오르미나의 그리스 극장 그들은 지금도 여름이면 극장에서 공연을 즐긴다.>

 

 

 

 

3. 코르소 움베르토 거리

 

또 하나의 볼거리는 움베르토 거리이다. 마을 입구인 메시나 문에서 서쪽의 카나니아 문까지가 움베르토 거리로 타오르미나의 중심가이다. 이 거리를 따라 늘어선 화려한 가게들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도시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쇼핑을 즐길 수 있어서인지 활기가 넘쳐 보인다. 거리를 거니노라니 저기 저 쪽에 바다가 보인다고 동료들이 알려준다. 바다로 향하는 길목 사이사이로 아주 좁은 계단 골목길에 조그만 장식품들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계단에 놓여진 항아리와 창의적인 방법으로 꾸민 계단 장식이 여간 멋진 것이 아니다.

일찍이 독일의 대 문호 괴테는 그의 유명한 기행문 [이탈리아 기행]에서 타오르미나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며작은 천국의 땅이라고 묘사했다. 19세기 후반부터 타오르미나는 인기 있는 관광지였는데, 처음에는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주로 찾아왔다. 괴테뿐 아니라 뒤마, 클림트, 클레, 브람스, 모파상, D.H. 로렌스, 바그너등 뛰어난 예술가와 유명 인사들에게 영감을 주고 혼돈스러운 삶으로부터 도피처가 되어 준 곳이 바로 타오르미나였다.

중세풍의 거리를 걷다 보면 탁 트인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은 아름다운 이오니아해를 바라보며 거닐 수 있는 광장이다.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노천 카페들이 즐비하다. 진한 커피 향으로 유혹하는 카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날씨가 많이 덥기 때문에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데, 상점에 들어가 얼음과 함께 컵을 얻어 큰 물병을 나눠 마시는 것도 시원함을 주기에 제격이다. 이 곳의 명물은 젤라또 아이스크림으로 맛이 아주 좋다.

< 보이는 성당 건물 왼쪽으로 움베르토 거리가 이어진다.>

 

 

저녁 715분 경 에드리나 해안이 보이는 해변 가까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 곳은 저녁 식사가 참 풍성한 메뉴이기도 했다. 셀러드와 에피타이져를 먹고 배가 불러오는데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계속 들어 온다. 거기에 다 시원한 맥주 까지 한 병 들이키면 배는 더 이상의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게 된다.

저녁 9시 넘은 시간 이지만, 아드리나 해안에서 멀리 보이는 타오르미나의 야경을 보면서 밤 해수욕을 즐겼다. 물 온도가 내려가 약간 차가웠지만 즐거웠다. 하루 만에 타오르미나를 떠나야 한다면 반드시 야경을 보러 자르디니 낙소스 해변으로 나오자.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운이 좋으면 양해를 구할 수 있다. 성공한다면 어느 여행지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중해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있는 것도 짜릿한데, 아름다운 야경과 별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니,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타오르미나의 자르디니 낙소스 해변에 꼭 밤에 들어가보길....... 그러면 시칠리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 에드리나 해안에서 바라보는 앞 산이 타오르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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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01:23:24 *.38.222.35

타오르미나. 이름이 마음에 들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글로써 접하는 것도 무척 낭만적이네염~!^^

 

특히 타오르미나의 야경을 보며 즐긴 해수욕은.. 엄청. 부럽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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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8.21 08:57:56 *.85.249.182

웨버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살기 위해 오르는 도시'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글입니다.

천혜의 요새를 지닌 타오르미나는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타오르미나'를 두고 작은 천국이라 불렀다고 하니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상상하게 됩니다.

야외극장, 노천까페, 커피향, 저녁노을, 시원한 맥주 이런 단어들이

함께하지 못한 저를 가슴 설레게 합니다.

책으로 엮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시칠리아를 보고 타오르미나를 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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