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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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몸 상태가 이상하더니 결국 응급실로 실려와서 입원했습니다. 과로와 급성 장염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병실에 누워 그동안의 생활을 돌아보니, 예정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방에 훅~ 가더군요.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는 병원을 묘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작가는 일반인들과 다른 특별한 눈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환자의 눈으로 병원을 보니, 그녀의 눈썰미와 재치있는 표현에 감탄했습니다.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일은 항상 비슷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해진 검사를 하고, 정해진 실망을 하는 것. ‘더 나빠졌군요’ 라든가 ‘계속 지켜봅시다’라든가 ‘장담할 순 없지만...’ 이라는 얘기를 듣는 것. 호기심과 혐오, 연민과 탄식이 깔린 긴 복도를 지나가는 것.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보고 내비치는 안도의 눈빛을 감내하는 것.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과 나누는 사소한 대화, 그리고 웃음에 귀 기울이는 것. 내 몸이 내게 거는 말에 일일이 답해 주는 것. 내 몸이 나의 주인처럼 구는 것에 굴복하는 것. 뜻을 알 수 없는 이름이 줄줄이 적힌 처방전을 연애편지 읽듯 뚫어져라 응시하는 것..
그런 게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일이었다.
과로와 장염치료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쉬면서 굶어야 합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퇴원까지 4일을 굶었습니다. 영양제 덕분에 배고픔은 없었지만 3일째가 되니, 음식들이 머릿속을 날아다닙니다. 김치찜, 순대국, 닭갈비, 콩나물국밥, 시원한 열무김치, 고추장 비빔밥 등.. 기억속에 있던 여러 음식들이 휙휙 날아다닙니다. 퇴원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인데도 그 순간에는 어찌나 간절한지 모릅니다.
몸이 아프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욕심이 줄어듭니다. 진수성찬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밥 한덩이만 맘껏 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감당못할 정도로 공부를 요구할 때도 있지만 아이가 아프면, 오직 건강하기만을 기원합니다. 내 팔을 움직일수 있고,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의 소중함에 눈뜨기도 합니다.
둘째는 외로움의 방문입니다. 가벼운 질병이라면 괜찮지만, 병문안과 따뜻한 위로로 해결될 수 없는 커다란 육체적인 고통은 철저하게 독자적인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이해받기를 원하고, 갈증이 채워지지 않으면 여러 종류의 외로움과 직면하게 됩니다. 외로움을 이기는 노하우를 가지는 것이 한층 수명이 길어진 삶의 경쟁력이라는 말도 들려옵니다.
‘병원은 무엇인가?’
먹을 수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병원은 병을 고치는 곳 입니다. 아파야 오는 곳이니, 사람들은 병원에 가길 꺼려 합니다. 그리고 꿈꾸는 곳입니다. 프랑스의 극작가 ‘앙리 드 몽테를랑’ 의 말입니다. 꿈은 불만에서 생겨나고, 사람은 배고프고 추운 곳이나 병원 또는 감옥에서 꿈을 꾼다는 거죠. 고픈 배가 채워지고 아픈 몸이 기적처럼 낫기를 바라니, 병원은 꿈꾸기에 좋은 곳이 맞습니다. 그러나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더 커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병원이 ‘R’ 이면 좋겠습니다. ‘R’ 은 제 컴퓨터의 바탕화면 암호입니다. ‘Restart’, 혹은 ‘Redesign’ 을 뜻하죠.
매일 아침 부팅하면서 잠깐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은 참 좋은 겁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하루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지루했던 어제의 부부싸움을 끝내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사업의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사람을 믿었다가 치명적인 손해를 봤던 아픔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병원에서 퇴원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는 것,
다시 인생을 디자인하고, 의미를 잃어버린 삶을 다시 노래할 수 있는 것...
그렇게 바램이나 소망같은 것이죠.
그래서 저는 병원이 ‘다시 시작하는 곳’ 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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