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샐리올리브
- 조회 수 3792
- 댓글 수 1
- 추천 수 0
변경연 2012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지 5일째다. 팔팔이들은 오자마자 시차적응도 하지 못한 채 글쓰기에 돌입했다.
지금은 초고와 두 번째 글을 다듬고 있는 시간. 우리의 원고는 레몬에게 넘겨졌고, 그녀는 이제 후속 작업을 하느라 혼자 바쁠테지?
그래도 우리 팔팔이들의 저력이 대단함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이탈리아를 떠나온지 닷새나 되는데, 이탈리아 기사가 여전히 반갑다. [저울질과 규칙의 달인들, '富네치아'를 만들다.] 라는 조선일보 토요일자 신문을 보며 지치고 힘들었던 내 마음과 몸에 생기를 다시 챙겨본다. 물론 이번 여행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베네치아지만 이탈리아 도시라는 점에 또 내 맘이 끌린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그랬고, 아직도 내 마음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 개인적으로 내 맘에 강력하게 다가왔던 주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썼듯이 '성한 자가 반드시 쇠하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
팔레르모를 샅샅이 볼 기회는 없었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쇠퇴와 영광이 공존하는 도시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팔레르모 사람들에게는 영화롭던 시절의 자부심도 느껴져, 그들의 삶은 고단해 보일지라도 영혼만은 아직 꺽이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오랜 세월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구시가지는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팔레르모의 도시를 둘러보면서도 그랬고, 나폴리 항구 산타루치아에서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탈리아 팔레르모 재래시장의 뒷골목 풍경. 시칠리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맨 얼굴'을 보고 싶다면,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곳이 부칠리아 시장이었다. 거기엔 우리네 일상처럼 삶의 고단함과, 인생의 열정, 활기참, 그리고 지중해 햇살을 머금고 자란 열정적인 과일과 야채들이 있었다. 우리는 어느 날 저녁에 택시를 탈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택시 운전사에게 당신은 이탈리아인이냐고 묻자
“ 난 시칠리아인이다.” 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여행 안내 책자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들은 분명히 본토와 시칠리아를 구분하고 있었다. 며칠 지내보니, 시칠리아 사람들은 특유의 느긋함이 느껴졌다.
여러 여행지 중에서도 우리를 은하수로 안내 해 준 장소가 있었다. [돈나푸가타 와이너리]
돈나푸가타는 ‘피난처의 여인’이라는 뜻으로 19세기 나폴레옹의 군대를 피해 시칠리아로 도망쳤던 낭만주의의 상징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가 머물던 곳이 돈나푸가타 와이너리가 되었으며, 특히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의 오너 조세 랄로는 현재 재즈 가수로 음악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알리고 있다. 이날 테이스팅 행사는 모든 와인들의 이름이 소설, 영화, 유럽의 아름다운 전설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돈나푸가타 와인과 올리브 나무의 전경에 흠뻑 취했던 아름다운 밤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지만 돈나푸가타는 우리를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쥬세페가 고생을 하긴 했지만 버스가 그 좁은 길을 빠져나오느라 기다리는 덕분에 우린 하늘의 아름다운 은하수를 감상 할 수 있는 선물을 덤으로 받은 것이다. 사부님도 그렇게 많은 별들을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씨네마 천국을 보며 마피아를 기대하지 않았나 싶다. 하하하. 그런데 마피아의 ‘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하다. 닷새정도 경험한 시칠리아인들은 순박하고, 착했고, 좀 느리긴 했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임이 분명하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에서 말하다’는 마피아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늘 변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 씁쓸한 대사는 시칠리아 상위층에 속한 사람들의 체념, 내지는 달관을 표현하죠. 그런데 밑바닥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사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마피아가 시칠리아에서 태어나게 된 거죠. 종교에, 공적 기관에 기댈 수도 없는 사회에서 달관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시칠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런 심경이 일종의 자구책이었던 거에요.”(34쪽)
내가 경험한 시칠리아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름다운 주요 도시들을 품고 있는 섬이었다. 시칠리아에 가서 아그리젠토,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옛 시절의 풍모를 간직한 도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그리젠토의 신전 계곡이나 시라쿠사의 극장 공연을 보면서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고대로의 여행이 가능했다. 시칠리아는 스페인과 프랑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파리에 와 있는 느낌도 문득문득 들었다. 섬 전체를 폐허로 만든 아랍 통치권하의 고된 시절도 있었다. 고대 도시들을 품은 축복 뒤에는 역사적 고난도 숨어 있는 것이다. 축복과 고난, 고난과 축복이 공존하는 곳의 첫째를 꼽으라면 단연 ‘에트나’였고 에트나는 생각지 않은 선물을 내게 안겨 주었다. 에트나의 융단 같은 화산재로 덮힌 산과 구릉의 모습이나, 그 곳에서 자라고 있는 그 노란 꽃 생명의 신비함을 잊을 수 없다.
시칠리아는 그야말로 이탈리아 역사와 예술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었다. 전 시대, 전 문화와 문명이 지나간 자리임을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특히 지중해 문화와 그 외 다채로운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은 여러 성당을 순례 해본 결과에서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예술적 풍모는 팔레르모, 체팔루, 타오르미나, 시라쿠사등과 같은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노르망디 성당으로 둘러싸인 체팔루, 바로크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혼재된 대성당이 있는 팔레르모, 몬레알레, 그레코로만 양식의 극장이 현존하는 타오르미나 같은 작은 도시들에서도 시칠리아 문화의 특색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중해의 자연 경관과 이탈리아 음식 특유의 풍성함, 고대 문명과 지역 문화의 어우러짐이 독특했음을 경험한 소중한 열흘이었다.
아침마다 외쳐대던 본 죠르노~가 귓가에 맴도는 시간이 되었다.
보나 ~쎄라 ~!!! 저녁 마다 울려 퍼지던 인사들.
미치지 않고서는 똑바로 쳐다 볼 수 없는 시칠리아
준이는 급기야 에트나에서 명언을 만들어 내었다. ‘시칠리아 미칠리아.’
팔레르모 여행기는 첨부합니다. 샐리올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