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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7일 06시 03분 등록

신화에 물들어

 

이번 시칠리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이전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여행기를 쓰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출근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틈만 나면 졸았다. 서너 정거장 지나치기 일수였고, 회사출근 첫날부터 지각을 했다. 휴가 동안 나의 일을 대신해준 동료들에게 고맙다며 밥을 산 자리에서는, 나올 때 계산하지 않아 핀잔을 받았다.  시칠리아에 정신을 두고 온 상태가 지속되었다.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다. 주차를 하려다 브레이크를 놓는 순간, 차가 앞으로 나가더니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기아가 파킹에 있지 않고 드라이버에 있었던 것이다. ''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금년 5월에 터키를 다녀왔을 때도 이렇게 적응하는데 힘들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이 꽤나 즐거웠던 모양이다. 완전히 나 자신을 그곳에 몰입시켜서 인지 헤어나오질 못했다.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써 내려간 여행기 탓인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든 시칠리아가 떠올랐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기억이 시라쿠사에서 보았던 어두운 구멍 속으로 들어가버린 도마뱀 모습이었다. 그냥 쏙 들어가 버렸으면 잊혀졌을 텐데, 한참 동안 꼬리를 내밀고 있어서 낯설게 느껴졌다. 영혼이 구멍에 꽉 끼어버린 채 어둠 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나의 현실이 느껴지더니, 자연스럽게 신화의 세계로 안내해주었다. <변신이야기>에도 도마뱀이 등장한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버린 뒤에 대지의 신 '데메테르'는 딸을 찾아 온 세상을 헤매고 있었다. 건방진 아이가 지나가다가 여신을 보고는 놀리게 되는데, 몹시 화가 난 여신은 그 아이를 도마뱀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이처럼 신화 속에 나오는 동물이어서 그런지 무언가 새로운 신화 이야기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처럼 여행 과정에서 경험한 낯설은 기억들은 의미가 부여되고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게 된다. 얼마 전에 방영되었던 EBS의 ‘그리스 신화의 뿌리’를 보았다. 서양 문학의 뿌리이자 현대 대중문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그리스 신화의 형성과정을 추적해보니, '에보이아' 사람들이 지중해를 탐험하고 여행하면서 고대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선사시대에 활동했던 큰 동물의 뼈(화석)가 발견된 곳에서 거인족에 대한 신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장면이었다. 자신들의 키와 비슷한 뼈를 만지면서, 거인족들이 신과 싸우고, 인간들을 괴롭히는 장면들을 상상했을 것이다.

 

광복절 날, 가족과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중인 루브르 박물관 '신화와 전설'이라는 주제로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을 보았다. 큰 아들은 헤라클레스가 리카스를 집어 던지는 장면을 그린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었고, 작은 아들은 아폴론이 다프네를 잡으려는 순간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 인상 깊었다고 하였다. 평소 책에서만 보았던 신화이야기가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표현된 작품을 보면서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신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그림과 조각으로 표현하였다. 신화는 인간의 상상력 통해 생명을 얻고, 인간은 이미 내면의 존재하고 있는 신화를 순간의 느낌으로 끄집어 내고 있었다.

 

"우리는 신화에 의해 살고 신화 안에 살며, 또한 우리 안에 신화가 산다. 우리가 그것을 재창조하는 방식이 특이할 뿐이다" 마이클 아이르턴, <미다스의 결말>중에서

 

여행 이후 부터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내면의 자신을 깊게 들여다 보았다. 이전에 가졌던 수 많은 의문들이 나의 신화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여행에서 보았던 낯선 기억과 위대한 작품 속에서 얻은 영감들이 내 안에 새롭게 녹아 들어갔다. 그리고, 뼈 속까지 신화에 물들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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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11:29:36 *.51.145.193

신화에 빠져 있는 행님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그림 앞에서 한참 동안 생각하는 행님 모습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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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08:59:35 *.194.37.13

이번주 사기열전을 읽고 있는데, 글이 잘 들어오지 않네...

아마도 신화에 너무 빠져버린 탓일까? ㅎ ㅎ ㅎ

다른 동료들은 지난 주에 봤는데, 네 얼굴이 무지 보고 싶구나~

9월 8일 언능 와라, 재미난 하루가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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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8 10:57:48 *.142.242.20

오빠도 신화의 매력에, 신화가 곧 우리들의 이야기임에 빠져들어버렸군요. 

저도 괜히 계속 다시 읽고 싶은 책 중 하나가 되어버렸어요. <변신이야기>가. 

처음엔, 아! 왜 이 책을 읽으라고 하셨는지... 내가 고생이구나, 했었는데.. ㅋㅋ


그나저나 벽에 '쿵' 부딪히고 괜찮으신지? 

전 여행 다녀와서 일주일 있으니까 그나마 몸이 좀 가뿐해져서 살만해졌어요. 

다녀와서 일주일은 좀 힘들었었다는.. ㅎ


시라쿠사에서의 도마뱀은, 앞으로 남은 우리 팔팔이들의 기억속에 

오래 남을 듯. 오빠에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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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9 05:04:08 *.39.134.221

도마뱀의 꼬리는 잘리면 또 자란다.

식물이 아닌 동물이 자신의 신체일부가 잘리고 다시 자라는 것은 거의 없는듯하다.

게가 위함하며 자신의 다리를 자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시 자라지는 않지. 없는 상태로 살아갈 뿐...

아메바같은 단세포원생동물이나 가능할법한 일을...

그러니 도마뱀은 특별한 동물이고 신화에도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다.

맹수들은 대소변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고 하지...인간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영역을 표시하는 것 같다.

시라쿠사에서 우리들 마음속에 커다란 영역을 표시해놓은 그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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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30 16:36:56 *.114.49.161

한젤리타의 가족 이야기는 항상 미소를 머금게 해요.

방금 레몬이 쓴 언브레이커블 여행기를 읽었는데 참 한젤리타 스럽다 생각했어요.

그녀가 쓴 글을 읽으니 더 신기해요.

어떻게 그 많은 사고 속에서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 지를 말이예요.

한젤리타 2학기도 강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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