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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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든 세월 이기기
피네오스는 다나에의 아들 페르세오스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는 페르세오스가 자기 약혼자를 훔쳐간 도둑이라고 소리치며 그를 처단하러 잔치에 창을 던졌다. 사건의 전말을 이렇다. 어머니가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뽐낸 죄값을 치르고 있던 안드로메다를 하늘에서 본 페르세오스가 그녀에게 반해 날갯짓 하던 것도 잊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페르세오스는 안드로메다에게 쇠사슬에 묶여 있는 이유를 묻고, 그녀의 이름과 나라 이름을 물었다. 처녀는 처음 보는 남정네에게 대답하기를 부끄러워 하다가 오해 받을 것을 걱정하여 자신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이유를 말한다. 안드로메다의 어머니는 자기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해신 넵투누스의 딸들보다 자기가 더 아름답다는 말을 했었다. 이에 화가 난 넵투누스는 케토스라는 괴물을 보내어 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신관들이 암몬 신의 뜻을 풀어보니, 그 어머니의 딸을 이 케투스에게 바쳐야 넵투누스의 노여움이 가라앉겠다는 괘가 나왔다. 그래서 공주 안드로메다가 희생 제물로 바위에 묶여 괴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의 사정을 알고, 멀리서 딸이 묶인 바위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그녀의 부모에게 갔다. 그리고 그녀를 구할테니 딸을 달라고 한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살려주겠다는데, 이 부분에서 망설이겠는가! 그녀의 부모는 딸뿐만 아니라 왕국까지 결혼 선물로 주겠다고 한다. 페르세오스는 안드로메다를 구하고 잔치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때 싸움을 걸어온 피네오스는 안드로메다의 삼촌이자 약혼자였다. 안드로메다가 바위에 묶여 있을 때 멀거니 서서 바라본 것밖에는 한 것이 없는 그는 그의 약혼녀 안드로메다가 페르세오스의 여자가 된 것을 납득할 수 없었기에 이런 싸움을 벌였다. 페르세오스에게 투창과 화살이 겨울 싸락눈같이 흩날리면서 그의 귀를 스치고 눈을 스쳐갔다. 하지만 페르세오스에겐 메두사의 머리가 있었다. 피네오스의 동료들은 메두사의 머리의 전설을 믿지 않고 페르세오스에게 덤비려고 하였지만, 창 한번 제대로 날리지 못하고, 굳어져갔다. 피네오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 판단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페르세오스에게 용서를 빈다.
“그대의 공훈은 내 약혼자를 취하기에 넉넉하나 내게는 약혼자와 버릇든 세월이 있오. 이제 이렇듯이 그대에게 항복하나, 나는 부끄럽지가 않소. 그대 같은 전능한 영웅에게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수가 없겠소. 영웅이시여! 내 소원은 하나. 목숨이오.”
하지만 페르세오스는 피네오스를 용서해주지 않는다. 피네오스는 손으로는 싸움에 진 것을 인정하고 얼굴로는 굴종의 순간을 증언하는 돌로 변했다.
나는 이번 여름에 시칠리아를 다녀왔다. 나는 시칠리아를 사랑하게 됐다. 그곳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은 날짜가 아무리 길어도 짧게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시칠리아에서의 6일이 하루처럼 느껴졌다. 시칠리아에 있는 내내 나는 인간의 변화와 성장에 대해 생각했다. 시칠리아가 내게 계속 더 성장하라고 귀뜸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속삭였다. 나는 그렇게 시칠리아와 사랑을 나누고 왔다.
그곳에 다녀 온 후 나는 2주 동안 변화와 성장에 대해 생각했다. (계속 생각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요즘 내게 인간의 변화와 성장 만큼 매력적인 주제는 없다. 변화와 성장에 대해 생각하며 <<변신이야기를>> 읽는데, 피네오스가 ‘버릇든 세월’ 때문에 페르세오스에게 도전장을 낸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위기의 순간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다가 페르세오스가 목숨을 걸고 안드로메다를 구해놓으니, 그제서야 도전장을 내민 부분이 내 마음을 머물게 했다. 피네오스가 도전장을 내민 이유 때문이다. ‘버릇든 세월!’ 난 ‘버릇든 세월’이 피네오스를 얼마나 무모하게 만들었는지, 또 그것이 그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안드로메다가 바위에 묶여 있을 때는 멀거니 바라만 보다가 자신의 것을 뺏기고 나서야 싸움을 거는 피네오스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약한 인간의 일면을 보는 것 같고,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지 않은 모습 때문에 그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가련해 보였다.
내가 무엇인가를 원하고, 그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나는 버릇든 세월에 묶여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만 그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 간절하게, 목숨을 걸고 얻으려는 경쟁상대가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 해서, 나태해져서도 안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페르세오스의 메두사처럼 나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 즉 필살기를 길러내야 한다. 피네오스는 가질 수 없었던 메두사. 나에게도 페르세오스의 메두사처럼 나만의 메두사가 필요하다. 나만의 메두사를 가지려면 나는 먼저 자아 탐색 시간을 가져야한다. 내가 남과 다르게 가지고 있는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나만의 필살기로 만든다면, 페르세오스의 메두사가 내게도 생기게 되지 않을까? 삶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이루고 싶은 것,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등은 버릇든 세월에 안주하며 살아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시칠리아에서 얻고 온 열정과 계획들에 대한 생각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았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성실이 주는 성취를 맛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컸는데, 애트나가 선물해 준 열정을 불태우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생활습관이 변화하지 않았다. 그동안 해오던 대로, 편하게 살기 바라는 것을 끊어낼 장치가 필요하다. 나의 페르세오스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어딘가에서 열심히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성실한 습관을 길러야겠다. 버릇든 세월에서 새로운 세월로 나의 삶을 바꿔야겠다. 누구라도 버릇든 세월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월 속으로 들어가려거든 치뤄야 할 홍역이 있을 것이다. 새벽 기상, 매일 2시간의 자기 혁명, 매일 글쓰기, 매일 책읽기, 매일 영어 공부하기 등 매일 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하려면 나의 마음, 몸, 습관 모두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한번 해봐야겠다.
페르세오스가 되든지, 변화한 피네오스가 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