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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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그녀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요양원에 계신 외숙모를 찾았습니다. 외숙모는 오랫동안 허리가 아팠고, 상태가 악화되어 1년 전부터는 요양원에 있습니다. 백발에 살이 빠진 외숙모를 처음 본 순간 나는 놀랐습니다. 나의 무정함이 슬펐고, 세월의 무상함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나는 외숙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최대한 담담한 눈길로 그녀를 보고, 눈을 맞추고, 간간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존경하는 몇 사람으로 외숙모를 꼽곤 했습니다.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살았지만 그만한 사람을 본 적 없다면서요. 아버지와 외숙모는 말로 하기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거의 십 년만의 해후였습니다. 외숙모는 “젊어서 고생해서 골병들었다”는 의사의 말을 전하면서도 여전히 고운 모습 부드러운 심성 그대로였습니다. 삶에 대한 미련은 없어보였지만, “다른 건 다 견딜 수 있는데, 걷을 수가 없어서 그게 가장 힘들다”는 말에는 서글픔이 묻어있었습니다. 휠체어라도 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살면서 두 번째로 보는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나도 눈앞이 희미해졌지만 울 수 없었습니다. 울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등을 슬며시 손으로 문질렀습니다.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을 정도로 나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외숙모는 몇 년 만에 나를 보고 그녀를 처음 봄에도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병치레에 심신이 지친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 특유의 부드러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봤습니다. 외숙모는 그녀를 보며 연신 “색시가 참 예쁘다. 곱다”면서, “남편이 아니라 애 하나 키운다고 생각하라”고 또 여러 번 말합니다. 아마 당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씀인 듯합니다. 아버지는 “여자보다 남자가 철이 늦게 든다. 그래서 애 하나 낳아서 키우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것 역시 아버지의 경험에서 나온 듯합니다. 아버지를 닮은 나이니, 그녀가 이 말에 귀 기울이면 좋겠지만 젊은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외숙모에게 “결혼식 올리고 다시 올게요”라고 인사드리고, 아쉬운 마음에 “선물 사 가지고 올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괜히 말했습니다. 선물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 동안 무심했던 내 마음의 짐 덜어보려는 수작에 불과하지요. 생명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홀로 걷을 수 있는 것’, 이 평범한 일이 어떤 상황 속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될 수 있음에 생각이 미치자 삶이란 게 뭔지 아련해졌습니다. 문득 예전에 읽은 시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호시노 도미히로의 시 ‘일일초(日日草)’입니다. 그는 중학교 교사로 부임한지 2개월 만에 끔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방과 후 체육활동 시간에 기계체조를 가르치다가 철봉에서 떨어져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것입니다. 그 후부터 그는 수년간 노력하여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구족화가이자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이에게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부드럽게 감쌀 수 있는 것은 소소한 평범한 일밖에 없음을 알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게 외숙모와의 만남은 슬픔과 눈물이었습니다. 그 슬픔과 눈물을 닦아준 일상의 부드러움에 감사합니다. 외숙모에게 나와 그녀의 방문이 기쁨이나 희망이기 보다는 그저 ‘평범한 일들’ 중 하나였으면 합니다. 시를 읽고 나서 생각합니다, 그녀 손잡고 꽃 한 송이와 함께 외숙모를 찾아가는 어느 날의 평범한 방문을.
* 류시화 엮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오래된미래,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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