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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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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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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8일 00시 53분 등록

결혼을 앞두고 그녀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요양원에 계신 외숙모를 찾았습니다. 외숙모는 오랫동안 허리가 아팠고, 상태가 악화되어 1년 전부터는 요양원에 있습니다. 백발에 살이 빠진 외숙모를 처음 본 순간 나는 놀랐습니다. 나의 무정함이 슬펐고, 세월의 무상함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나는 외숙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최대한 담담한 눈길로 그녀를 보고, 눈을 맞추고, 간간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존경하는 몇 사람으로 외숙모를 꼽곤 했습니다.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살았지만 그만한 사람을 본 적 없다면서요. 아버지와 외숙모는 말로 하기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거의 십 년만의 해후였습니다. 외숙모는 “젊어서 고생해서 골병들었다”는 의사의 말을 전하면서도 여전히 고운 모습 부드러운 심성 그대로였습니다. 삶에 대한 미련은 없어보였지만, “다른 건 다 견딜 수 있는데, 걷을 수가 없어서 그게 가장 힘들다”는 말에는 서글픔이 묻어있었습니다. 휠체어라도 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살면서 두 번째로 보는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나도 눈앞이 희미해졌지만 울 수 없었습니다. 울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등을 슬며시 손으로 문질렀습니다.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을 정도로 나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외숙모는 몇 년 만에 나를 보고 그녀를 처음 봄에도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병치레에 심신이 지친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 특유의 부드러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봤습니다. 외숙모는 그녀를 보며 연신 “색시가 참 예쁘다. 곱다”면서, “남편이 아니라 애 하나 키운다고 생각하라”고 또 여러 번 말합니다. 아마 당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씀인 듯합니다. 아버지는 “여자보다 남자가 철이 늦게 든다. 그래서 애 하나 낳아서 키우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것 역시 아버지의 경험에서 나온 듯합니다. 아버지를 닮은 나이니, 그녀가 이 말에 귀 기울이면 좋겠지만 젊은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외숙모에게 “결혼식 올리고 다시 올게요”라고 인사드리고, 아쉬운 마음에 “선물 사 가지고 올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괜히 말했습니다. 선물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 동안 무심했던 내 마음의 짐 덜어보려는 수작에 불과하지요. 생명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홀로 걷을 수 있는 것’, 이 평범한 일이 어떤 상황 속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될 수 있음에 생각이 미치자 삶이란 게 뭔지 아련해졌습니다. 문득 예전에 읽은 시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호시노 도미히로의 시 ‘일일초(日日草)’입니다. 그는 중학교 교사로 부임한지 2개월 만에 끔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방과 후 체육활동 시간에 기계체조를 가르치다가 철봉에서 떨어져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것입니다. 그 후부터 그는 수년간 노력하여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구족화가이자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이에게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부드럽게 감쌀 수 있는 것은 소소한 평범한 일밖에 없음을 알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게 외숙모와의 만남은 슬픔과 눈물이었습니다. 그 슬픔과 눈물을 닦아준 일상의 부드러움에 감사합니다. 외숙모에게 나와 그녀의 방문이 기쁨이나 희망이기 보다는 그저 ‘평범한 일들’ 중 하나였으면 합니다. 시를 읽고 나서 생각합니다, 그녀 손잡고 꽃 한 송이와 함께 외숙모를 찾아가는 어느 날의 평범한 방문을.

 

20120821.jpg

* 류시화 엮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오래된미래, 2005년 3월

 

 

IP *.122.2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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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2 05:30:54 *.116.142.123

글 참... 너무 좋다.^^ 마음이 참.. 따뜻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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