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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03시 24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 司馬遷 (BC 145 ?~BC 86 ?)

 

중국 전한(前漢)시대 역사가

《사기(史記)》의 저자

: 자장(子長)

용문(龍門: 현재 韓城縣) 출생

 

사마 천의 사마 가문은 대대로 주나라의 역사가 집안이었다. 사마 천의 아버지 사마 담(司馬談)은 사마 천이 7세가 되던 해에 전한(前漢)의 태사령(太史令)이 되었는데, 이 직위는 천문, 달력, 기록을 맡아 처리하는 부서의 장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문의 직업적 소명 의식과 함께 천문과 달력, 고전에 능통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마 천은 어릴 때부터 역사가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태사령을 수행하는 무릉(武陵)에 거주하며 각종 고문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20세가 되었을 때, 사마 천은 낭중(郎中)이 되어 한나라 황제 무제를 수행하면서 강남(江南) ·산둥[山東] ·허난[河南]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BC 111년에는 파촉(巴蜀)에 파견되었고, 36살이 되던 BC 110년에는 태산에서 거행된 무제의 봉선(封禪) 의식에 수행하여 장성 일대와 하북 ·요서 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들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었고, 훗날 《사기》를 저술하는 데 쓰일 귀중한 사료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사마 담은 이 봉선 의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기다가 병이 도져 죽게 되었다. 사마 담은 죽으면서 자신이 시작한 《사기》의 완성을 부탁하였고, 사마 천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었다. BC 108년 아버지의 벼슬을 물려받아 태사령이 된 사마 천은 <사기> 편찬을 위해 황실 도서에서 자료 수집을 시작하였다.

42살이 되던 BC 104년에 사마천은 천문 역법의 전문가로서 역법을 개정하여 태초력(太初曆)을 완성하였고 이 해가 바로 태초 원년이 되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사기》 저술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5년 뒤 무제의 명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떠났던 장군 이릉(李陵)이 전투에서 패한 후, 투항하여 포로가 된 것이다. 무제는 진노하여, 이릉의 처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중신 회의를 열었다. 신하들은 모두들 황제의 노기를 살펴 이릉을 비난하고는 그 가족들을 모두 능지 처참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사마 천은 이릉의 충절과 용감함을 찬양하고 두둔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되어 태사령의 직책에서 파면 당함과 동시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후 1년 뒤, 사마천은 세 가지 형벌 중 하나를 고를 권리가 주어졌다. 첫째 법에 따라 주살될 것, 둘째 돈 50만 전을 내고 죽음을 면할 것, 셋째 고환을 제거하는 궁형(宮刑)에 처할 것 이었다. 중인이었던 사마 천은 50만 전을 구할 수 없었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궁형을 받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풍조였다. 그러나 사마 천은 《사기》의 완성을 위해 궁형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사마 천의 초상화에는 수염이 없다. 그의 옥중 서신인 <보임안서(報任安書)>에서 사마 천은 당시 《사기》의 완성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던 심정을 술회하였다.

 

옛날부터, 부귀하였으나 그 이름이 마멸된 자는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기개가 있고 평범치 아니한 사람만을 후인이 일컬을 따름입니다. 대저 문왕은 갇힌 이후에 <주역>을 풀어 썼고, 중니는 화를 당한 이후에 <춘추>를 지었고, 굴원은 쫓겨나서 <이소>를 지었습니다. 좌구()은 실명을 하고 <국어>를 지었고, 손자는 다리를 잘리고서 병법을 편찬하였습니다. ()불위는 촉으로 쫓겨가서 여람을 지어 세상에 전했고, 한비는 진에서 감옥에 갇혀 세난, 고분을 지었습니다. 시경의 시 삼백편은 무릇 어진 성현께서 분함을 드러내어 지으신 것입니다. 이는 사람은 모두 맺히고 펴지 못한 뜻이 있고, 세상에 그 도를 펴지 못하여, 고로 과거의 일을 저술하여 자신의 뜻을 알아주는 후인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좌구명이 눈을 잃고 손자가 다리를 잘려 끝내 쓰일 곳이 없어 물러나 서책으로 논하며 그 분함을 펴고, 자신의 사상을 공문에 드리워 스스로를 드러낸 것과 같습니다.

 

저는 공손치 못하게도 근래에 쓸데 없는 글에 스스로를 맡겼으니, 천하의 산실된 오래된 이야기들을 망라하여 그 일을 대략 고찰하고 그 시말을 종합하며 일의 흥망성쇠의 대강을 헤아렸습니다. 위로는 헌원씨로부터 아래로는 우자에 이르기까지를 10, 12본기, 8, 30세가, 17열전 등 모두 130편으로 만들었으니, 또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천을 통달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초고도 미처 완성하기 전에 이러한 화를 당하니 그 책을 완성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니, 이것이 극형을 받고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저는 이 책을 성실하게 써서 이름난 산에 그를 보관하여 기인(其人: 후세에 그 뜻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전하여 통읍대도에 퍼뜨리게 한다면, 제가 받은 전일의 욕됨에 대한 사람들의 질책을 보상하는 것이니, 비록 만 번을 주륙을 당한다 한들 어찌 후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으나, 속인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http://blog.daum.net/bloody01/2

 

사마 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였다. 궁형을 당한지 4년 뒤, 그는 변덕스러운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버지 사마 담으로부터 <사기>를 물려받은 지 18년 만인 기원전 90년에 마침내 《사기》를 완성하였다.

 

《사기(史記)》에서 사마천은 유동적인 시대적 영향으로 여러 학파의 철학과 가르침을 수용했다. 이 점이 특정 학파의 의도적인 누락을 방지하였고 역사서로서의 가치를 더하였다. <사기> 이전까지의 역사서들은 분리된 제후국에서 유래한 모순된 자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마 천은 이들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한 공이 크다. 그는 단순한 연대순으로 정리가 아닌 기전체(紀傳體), 즉 다음의 5부분으로 분류하여 기술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본기(本紀)         핵심 권력의 이야기, 왕실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의 연대순 기록

()              연표(年表), 여러 독립적인 제후국들의 역사

세가(世家)         각 제후국의 상세한 역사

()              행정적 역사

열전(列傳)         다양한 유형의 유명 인물들의 전기

 

이처럼 역사의 정리에 세운 사마천의 공은 지대하였지만, 그는 세세한 객관성을 중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 작업에 심취하였으며 역사서의 방향도 이 목적을 위해 합목적적으로 쓰여진 감이 있다. 가령, 서로 대조가 되는 인물을 한 장에서 다룸으로써 사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마 천은 각 장의 끝부분에 태사공의 이름으로 역사에 대한 비판적 논평을 첨가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 역시 "과거에서 얻는 영감"이라면, 사마 천의 <사기>는 매우 친절한 역사서라 불릴 만하다.

 

 

 

 

 

 

 

 

 

 

 

 

 

 

 

 

사기열전 1

 

1 백이열전

 

62 공자는 "백이와 숙제는 지나간 원한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라고 했고, "인을 구하여 그것을 얻었는데 또 무엇을 원망하였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백이의 심경이 슬펐을 것으로 본다.

 

63 그러나 백이와 숙제만은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지조를 지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를 뜯어먹으며 배를 채웠다.

 

64 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백이와 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했어도 굶어 죽었다.

 

65-66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기의 뜻을 좇아서 행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어찌하여 [세속 사람들은] 그토록 부귀한 사람을 중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ㅇ르 하찮게 여길까?

 

2 /안 열전

 

69 환공은 옛 원수인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72 그는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73 (관중)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74 가에서 제후들을 만나 맹세할 때에도 환공이 노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기로 한 노나라 장수 조말과의 약속을 어기려고 하자, 관중은 이 약속을 지켜 신의를 세우도록 하였다. 이 일로 해서 제후들은 제나라로 귀의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게 정치의 비책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3 노자/한비 열전

 

79 도가 사상은 끊임없는 전쟁과 불안정 및 권력과 지위 다툼으로부터 벗어나 은둔과 도피를 일삼는 철학이다. 그래서 도가 사상은 군주 권력의 전제정치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저항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80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82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

è 이해가 안된다는 말을 이리도 장황하게 하다니

 

83 노자는 하지 않는 것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84 (장자)의 말은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으므로 왕공이나 대인들에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84 첨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어찌 교제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조묘로 끌려가게 되오. …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87 (한비)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87 (한비) 대체로 일이란 은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88 (한비)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89 재상 이윤이 요리사가 되고, 백리해가 포로가 된 것은 모두 군주에게 등용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성인이면서도 이처럼 자기 몸을 수고롭게 하고 천박한 일을 겪은 뒤에 세상에 나왔다. 그러므로 재능 있는 인재라도 이러한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

 

90 이웃집 사람과 관기사가 한 말은 모두 옳으나 심한 경우는 목숨을 잃고 가벼운 경우는 의심을 받았다. 이는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

 

91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4 사마 양저 열전

 

100 장수란 명령을 받은 그날부터 집을 잊고, 군영에 이르러 군령이 확정되면 친척들을 잊으며, 북을 치며 급히 나아가 공격할 때에는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103 양저는 온힘을 다해 작은 나라를 위해서 군대를 움직였으니, 어찌 한가하게 [사마병법]에서 말하는 겸양의 예절을 지킬 틈이 있었겠는가?

 

5 손자/오기 열전

 

109 왕께서는 한갓 이론만 좋아하실 뿐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è 손무가 궁녀의 손실로 실의에 빠진 오나라 왕에게 한 말

è 이론이 아닌 감정적 대가도 각오해야 실제 사용이 가능하다.

 

111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대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è 그러므로 지금 가장 약한 부분(급소)가 어딘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112 손빈은 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삼진의 위나라 병사들은 원래 사납고 용감하며 제나라를 무시하고 제나라 군사들을 겁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그 형세를 잘 이용하여 유리하게 이끌어 나갑니다."

è 형세 그 자체를 활용한다. 형세에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114 그러자 오기는 이름을 얻기 위해 자기 아내(제나라 여자)를 죽여 제나라 편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오기는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자기 팔을 깨물어 '저는 대신이나 재상이 되기 전에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맹세하였다.

 

116 한번은 종기 난 병사가 있는데 오기가 그 병사를 위해 고름을 빨아 주었다. 병사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는 소리 내어 울었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다

 

"이 아이도 어느 때 어디서 죽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리 내어 우는 것입니다."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행에 있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

 

118 전문이 대답했다.

"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백성은 그분을 믿지 못하과 있소. 이런 대에 재상 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소, 안이면 내게 맡기겠소?"

è , 오기와 같은 힘있는 자가 재상에 오르면 분명히 왕좌를 노릴 것이므로

 

121 태자가 즉위하자, 영윤에게 오기를 죽이려고 왕의 시신에까지 화살을 손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하였다. 오기를 소아 죽인 일에 연루되어 일족이 모두 죽은 자는 칠십여 집안에 이르렀다.

è 아마 주변 세도가들을 숙청하는 명분이 되었으리라.

 

6 오자서 열전

 

123 당시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는 군주 아래에서 군주가 부르면 신하는 가야 했고, 만일 신하가 감히 가지 않으면 어떤 일일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 그래서 사마천은 비분강개한 필치로 오자서를 위한 열전을 만들어 오자서야말로 작은 의를 버리고 큰 부끄러움을 씻었다고 칭찬했다.

 

127 왕은 오사에게 사신을 보내 말했다.

"네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살려 주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일 것이다."
그러자 오사는 이렇게 말했다.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내가 부르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오운은 사람됨이 고집스럽고 굴욕을 견딜 수 있어 큰일을 해낼 것입니다."

è 큰 일을 해내는 자는 어진 사람이 아니다.

 

128 그러자 오상이 말했다.

"나 역시 그곳으로 가더라도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서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았다가 나중에 원수도 갚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가려고 한다."

è 도망갔을 때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후,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으므로 도망을 선택하지 않는다.

 

130 한 어부가 오자서가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고 그를 건네주었다. …

 

"초나라 법에 오자서 당신을 잡는 자에게는 좁쌀 5만 석과 집규라는 벼슬을 준다고 했습니다. [내게 욕심이 있었다면] 어찌 이까짓 백금의 칼이 문제이겠습니까?"

 

131 오자서는 공자 광이 오나라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는 속셈이 있어, 아직은 나라 밖의 일을 이야기할 때가 안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공자 광에게 전제라는 사람을 추천하고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초야에 묻혀 농사를 지었다.

è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잘 파악해야 한다. 뒤에 나오지만 공자 광은 왕이 될 명분이 충분하였음.

 

135 신포서는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당신의 복수는 너무 지나친 것 같소.(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거내 300번이나 채찍질) 나는 '사람이 많으면 한때 하늘도 이길 수 있지만, 일단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깨뜨릴 수도 있다.'라고 들었소. 일찍이 평왕의 신하가 되어 평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니, 어찌 이보다 더 천리에 어긋난 일이 있겠소?

è , 아무리 대세라 하더라도 천리를 어긋나면 반드시 사람은 망한다.

 

137 오나라 왕이 이 요청을 받아들이려고 하자 오자서가 간언했다.

"월나라 왕은 아무리 힘든 고통도 잘 견뎌 내는 사람입니다. 지금 그를 없애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7 중니 제자 열전

 

148 안연이 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바른 예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공자는 또 안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질구나, 회여!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뒷골목에 살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견뎌 내지 못할 텐데, 안회는 자기가 즐겨 하는 바를 바꾸지 않는구나!"

 

149 "안회라는 자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151 중궁의 아버지는 미천한 사람이었으나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불이 곧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제물로 쓰지 않으려고 하여도 어찌 산천의 신들이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152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153 자로는 좋은 말을 한 가지 듣고 아직 실행하지 않았는데 또다시 좋은 말을 듣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자로의 학문은 지고한 경지에 올랐지만 아직 오묘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160 자공이 물었다.
"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168 이처럼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라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170 자공이 물었다.

" 중 누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사는 지나친 데가 있고, 상은 미치지 못하는 데가 있다."

자공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사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공자는 자하에게 말했다.
"
너는 도에 힘쓰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명성을 좇는 소인의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이렇데 대답했다.
"
많이 듣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자장은 공자에게 물었다.

"선비는 어떠해야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되물었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슨 뜻이냐?"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에서도 이름이 알려지고 집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명망이지 통달이 아니다.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

è 정말 탁월한 지견이다.

 

176 원헌이 말했다.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자공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언짢게 떠났다.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말이 지나쳤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177 남궁괄은 자가 자용이다. 어느 날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예는 활을 잘 쏘고 오는 땅에서도 배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모두 제 목숨대로 살지 못했고, 우왕과 후직은 몸소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천하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공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용이 나간 뒤에야 비로소 이렇게 말했다.
"
자용은 군자로구나! 자용은 덕을 소중히 하는구나!"

è 덕의 효용이 천하를 차지하는 것인가? 덕이 우선일까, 천하가 우선일까? 물론 덕이 우선인데 덕의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왜 천하를 차지한다는 것을 드나? 모순이다.

 

178 그리고 공자는 자용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그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등용될 것이고, 나라에 도가 없더라도 적어도 형벌만은 면할 것이다."자용이 [시경]을 읽다가 "흰 옥의 티는 갈 수 있지만, 말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몇 차례 되풀이하여 읽자, 조카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è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

 

178 "네 뜻을 말해 보아라."

그러자 증점은 이렇게 말했다.

"봄옷이 새로 만들어지면 젊은이 대여섯 명과 어린아이 예닐곱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 밑에서 바람을 쐰 다음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고 싶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서 감탄했다.

"나도 너와 같이 하고 싶구나!"

 

182 공백료는 자가 자주이다. 자주가 계손에게 자로를 헐뜯었다. 자복경백이 이 사실을 공자에게 말했다.

"계손은 자주의 말에 속아 자로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자주 정도는 제 힘으로도 사형에 처하여 그 시체를 저잣거리에다 내걸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말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가 행해지는 것도 천명이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도 천명이다. 자주 같은 인물이 그 천명을 어찌할 수 있겠느냐? 내버려 두어라."

 

사마경은 자가 자우이다. 자우는 말이 많고 성질이 조급하였다. 한번은 공자에게 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물었는데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진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러자 자우가 다시 물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을 실천하기란 어려운데 그것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느냐?"

è 나에게 도움이 될 구절

 

184 번지가 나가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AFKGOTEK.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만 한다면 사방의 백성이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찾아올 텐데 농사짓는 법을 배워 어디에 쓰겠는가?

 

번지가 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
사람을 아는 것이다."

 

상군열전

196 공숙좌는 공손앙을 불러 이렇게 사과했다.

(왕에게 재상으로 공손앙을 추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차라리 죽이라고 함. 그러니 공손앙에게 도망치라고 함)

공손앙이 말했다.

"왕께서 당신 말을 듣고도 저를 임용하지 않는데, 또 어찌 당신 말을 들어 저를 죽이겠습니까?"

 

199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대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서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옛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악 제도를 좆지 않습니다."

 

210 [시경]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라고 했습니다.

 

211 상군의 법에 의하면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그 손님과 관계되어 처벌을 받습니다.

상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소진열전

 

217 대체로 선비가 머리를 숙여 가며 배우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책을 askg이 읽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고는 (소진은) [주서] [음부]를 찾아내어 머리를 파묻고 읽었다. 일 년쯤 되어서야 [유세할]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내어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
이 방법만 있으면 이 시대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è 어찌 보명 왕정체제이기는 하였으나 누구라도 공부를 하면 출세할 수 있던 시기였다.

è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는 출세의 문턱이 낮으나 나라가 안정되면 계급이 정교해진다.

 

225 잠시 왕을 위해서 계책을 세워 보면 한, , , , , 조나라가 일치단결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228 왕께서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나라는 왕에게 의양과 성고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지금 그 땅을 바치면 내년에는 또다시 다른 따을 떼어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 요구대로 땅을 떼어 주면 결국에는 더 잇아 줄 땅이 없게 될 테고, 땅을 주지 않으면 전에 땅을 바친 공은 버려지고 뒤탈만이 안겨질 것입니다. … "차라리 닭 부리가 될 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237 한나라와 위나라는 진나라에 침략의 위협을 받고 있으므로 그들과는 큰 일을 깊이 꾀할 수 없소. 만일 그들과 큰일을 깊이 꾀한다면 우리의 계책에 반대하는 사람이 진나라에 알리게 될까 두렵소. 그렇게 되면 꾀한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오.

 

238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이 한 몸도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면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일 나에게 낙양성 주변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 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을까?

 

239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았다. 너는 나를 따라 연나라로 갔을 때 역수 가에서 여러 차례 나를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그때 나는 매우 곤란한 처지라서 너를 깊이 원망했다. 그래서 너에 대한 보답을 맨 뒤로 미루었을 뿐이다. 너에게도 이제 보답하겠다.

è 죽이는 것과 보답하는 것. 남에게 원한을 사지 않으면서 자신의 원한을 푸는 방법.

è 소진은 대인배

 

240 제나라왕이 물었다.

"축하하자마자 조의를 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소진이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굶주린 사람이 굶주리면서도 오훼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까닭은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굶어 죽는 것과 똑 같은 해독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è 유세를 위해서는, 먼저 전략이 그럴 듯 해야 한다.

è 말을 꺼내기 전에 청자의 흥미를 끌고 두려움을 야기시킨다.

 

242 신이 듣건대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 행동하고, 나아가 이루는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합니다. … 신이 늙은 어머니를 동주에 버려두고 이 나라에 온 것은 본래 자기를 위해 행동하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나아가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è 뒤에 이어서, 증삼(효성), 백이(청렴), 미생(신의)의 인물들은 그 덕으로는 큰 일을 해낼 수 없음을 자신과 대조하여 피력.

è 죄를 짓는 것에 대하여. 뒤의 일화. 주인을 살리기 위해 술잔을 엎는 죄를 짓는 첩.

 

252 그러나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258 연나라를 꾸짖을 때는 교동을 빼앗은 것을 구실로 삼고, 조나라를 꾸짖을 때는 제수 서쪽 지역을 빼앗은 것을 구실로 삼으며, 위나라를 꾸짖을 때는 섭과 채를 빼앗은 것을 구실로 삼고, 초나라를 꾸짖을 때는 맹액의 요새를 막은 것을 구실로 삼으며, 제나라를 구짖을 때는 송나라를 깨드린 것을 구실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진나라왕이 남을 구짖는 말은 둥근 고리처럼 돌고 돌며,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나는 새처럼 재빠르므로 태후도 막을 수 없고 양후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장의 열전

 

267 장의는 천하에서 현명한 인물이니 나(소진)는 그를 뛰어넘을 수 없네. 지금은 운이 좋아 내가 먼저 등용되었을 뿐이지. 진나라의 실권을 잡아 휘두를 사람은 장의뿐일세. 그러나 그는 가난하여 다른 사람에게 등용되지 못했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북돋운 것일세.

 

268 그 뒤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되어 격문을 써서 초나라 재상에게 알렸다.

 

지난날 내가 당신과 술을 마셨을 때 나는 당신 구슬을 훔치지 않았건만 당신은 나를 매질하였소. 이제 당신 나라를 잘 지키시오. 나는 당신 나라의 성읍을 후칠 것이오.

 

270 지금 저 촉나라를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오랑캐 무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다라서 촉나라를 치는 것은 군사를 지치게 하고 백서을 고달프게 할 분 명분을 얻기에는 부족합니다.

 

277 진진이 대답했다.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시하고 어려워하는 까닭은 제나라와 사이가 좋기 때문입니다. 이제 관문을 잠그고 제나라와 맺었던 합종 약속을 깨면 초나라를 고립될 것입니다."
è 제안을 해오는 상대가 얻고자 하는 진짜 실리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è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278 장의는 진나라에 도착하자 일부러 수레에 오를 때 잡는 줄을 놓쳐 수레에서 떨어져, 이것을 빌미로 세 달 동안이나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초나라 왕은 그 소식을 듣고 말했다. "장의는 과인이 제나라와 완전히 교류를 끊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초나라 왕은 날랜 군사를 송나라로 보내 송나라 통행증르 빌려서 북쪽으로 가서 제나라 왕을 구짖게 하였다. 제나라 왕은 몹시 화를 내면서 초나라와 약속할 때 나눠 가진 부적을 꺾어 버리고 진나라에 화친을 청했다.

è 속단하기, 그것도 상대에게 저의를 확인하지 않고 행동하면 화를 자초하게 된다.

 

285 이 말을 들은 초나라 왕은 이미 장의를 데려왔기 때문에 다시 검중 당을 떼어 진나라에 주기가 아까워 장의의 말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è 과거의 손실을 잊지 못하여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더 큰 우를 범한다.

 

291 왕께서 합종을 신뢰하신 것은 소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제후들을 현혹시켜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제나라를 등지려다가 저잣거리에서 거열형으로 다스려지는 결과를 자초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의 힘으로 천하가 하나로 묶을 수 없음은명백한 일입니다.

è 합종은 독립적인 사상이며 반드시 소진이 진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합종이 곧 소진인 것은 아닌데 소진의 개인사와 그의 됨됨잉에 기대어 합종 이론조차 깎아내리고 있다.

è 소진의 불행이 곧 합종 이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인과관계 부실.

 

295 제후들은 장의와 무왕 사이에 틈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연횡 약속을 어기고 다시 합종하였다.

 

305 태사공은 말한다.

"삼진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모둔 삼진 사람이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데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11 저리자/감무 열전

 

314 예산 효자로 유명한 증삼이 비읍에 있을 때 일입니다. 노나라 사람 가운데 증삼과 이름과 성이 똑 같은 자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 그 어머니는 베 자던 북을 내던지고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진 증삼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나 그를 의심하자 정말인가 싶어 겁을 먹었습니다. … 신은 왕께서 북을 내던진 증삼의 어머니처럼 신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12 양후 열전

 

334 조나라는 누완이 진나라 재상이 된 것이 자기 나라에 이롭지 않다고 여겨서 구액을 진나라로 보내 위염을 진나라 재상으로 앉히도록 요청하려고 했다.

 

 만일 진나라에서 당신 말을 듣지 않는다면 누완은 반드시 당신을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먼저 누완에게 '저는 공을 위하여 진나라 왕에게 서둘러 부탁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위염을 재상으로 삼아 달라는 조나라의 요청이 그다지 급하지 않다는 것을 진나라 왕이 알면 도리어 당신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재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당신이 말을 하여 그대로 되지 않으면 누완에게는 덕을 베푼 것이 되고, 그대로 되면 위염은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이오."

è 처신에서 가능한 상황 두 가지를 위한 방책을 한꺼번에 걸어둔다.

 

337 [주서]에 천명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이 것은 요행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è 그 뜻이 아닌 것 같은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13 백기/왕전 열전

 

353 무안군은 칼을 받아 들고 자신의 목을 찌르려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잠시 동안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그러고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귾은이 진나라 소왕 50 11월의 일이다.

 

356 그러나 왕전은 함곡관에 이른 뒤에더 다섯 번이나 사람을 보내 좋은 논밭을 청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장군의 요청은 너무 지나칩니다."

왕전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진나라 왕은 포악하고 다른 사람을 믿지 않소. 그런데 지금 진나라 군사를 모두 나에게 맡겼소. 내가 자손을 위한 재산을 만들려고 많은 논밭과 정원과 연못을 요청함으로써 다른 뜻이 없음을 보여 스스로를 안전하게 하지 않는다면 진나라 왕은 가만히 앉아서 나를 의심할 것이다."

è 이것이야말로 처세의 백미

 

358세상에 자에도 짦은 데가 있고, 치에도 긴 데가 잇다.

 

14 맹자/순경 열전

 

순자가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를 기초로 해서 계층 간의 불화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363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맹자]라는 책을 읽다가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 읽기를 멈추고 '! 이익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로구나.'라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라고 했던 것이다. 천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데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364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과 연횡에 힘을 기울이고 남을 침략하고 정벌하는 것만을 현명하다고 여긴느 때였다. 그런데 맹자는 요 임금과 순 임금과 하, , 주 세 대 성왕들의 덕치만을 부르짖으므로 가는 곳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è 그렇다면 지금은 왜 달라진 것이지? 왜 맹자는 살아남았나? 현재에도 정치판의 구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나라간의 싸움이 현재는 영토 싸움이 아닌 실익 싸움이 된 것이 다를 뿐이다. 결국 덕치도 여러가지 카드패의 하나인 것일까?

 

15 맹상군 열전

 

383 처음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울음 소리르 잘 내는 사람을 빈객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이 두사람이 그를 구하였다. 그 뒤 빈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마음속 깊이 맹상군을 따르게 되었다.

 

385 - 계략 : 엄청 복잡. 결국 사건의 실마리는 진나라와 초나라 간의 교환 가치가 있는 정치 상품이 있었던 것을 활용한 것이다.

 

393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당신은 의심나는 부분이 있습니까?

 

395 천하에 유세하는 선비로서 수레르 몰고 말을 달려 동쪽 제나라로 들어오는 자 치고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è 유세를 펴기 전의 서두. 맞는 말이지만 전제가 빠졌다. 제나라로 들어오는 자가 제나라에 계속 머물러 살려고 할 때만 참이다.

 

397 살아 이쓴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398 태사공이 말했다.

"나는 일찍이 설 땅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 풍속으 마을에 난폭하고 사나운 젊은이가 아주 많아 [맹자의 고향인] 추나라나 [ 공자의 고향힌] 노나라의 풍속과는 사뭇 달랐다. 그 까닭ㅇ르 물으니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들과 간사한 자들을 불러들여 설 땅으로 들어온 자가 6만여 가나 되기 때문이오.'라고 했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맹상군은 빈객을 좋아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했는데, 그 소문이 헛된 것만은 아니구나!

è 어진 사람을 골라 사귀는 것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의 장단점

 

16 평원군/우경 열전

 

406 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이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모수가 말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è 낭중지추의 고사를 잘 받아침

 

407 왕께서 저를 꾸짖는 것은 초나라 병사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왕께서는 열 걸음 안에서 초나라 병사가 많은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왕의 목숨은 제 손에 달려 있습니다.

è 번역 이상믿을 수 없습니다. 라니..

 

408 모수의 논리 :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일이지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è 명분만을 내세우고 있다. 결코 불가능한 논리를 내세움. 또한 왜 합종이 초나라에게 유리한지 설명하지 않음.

è 모수는 하수인 것 같다.

 

413 우경이 대답했다.

"왕께서는 화친할 수 없고 우리 군대는 반드시 깨질 것입니다. 지금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제후들의 사절이 진나라에 가 있습니다. 정주는 조나라에서 신분이 높은 분이므로 진나라로 들어가면 진나라 왕은 응후와 상의하여 그를 정중하게 대접하고, 그가 조나라의 화친 사절임을 천하에 알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초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가 진나라와 화친한다고 생각하여 틀림없이 왕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가 왕을 돕지 않을 줄을 진나라가 알면 화친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응후는 정말로 정주를 정중히 대우하여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러 온 천하의 사절들에게 보여 주기만 할 뿐 끝내 화친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나라 군대는 장평에서 크게 패하고, 마침내 한단까지 포위당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è 진나라 왕에게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조나라와 화친 or 불화친. 최종 목표는 천하통일이다. 그렇다면 나라를 하나씩 정복해가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한 나라를 쳤을 때 그 반작용으로서 실이 득보다 많은 경우를 제외(가령, 치려는 나라와 화친 관계에 있는 큰 나라가 이를 명분으로 진라나를 공격할 가능성 등)하고는 무조건 쳐야 한다. 또한 진나라가 현재 강한 상태여서 딱히 다른 나라와 화친할 필요가 없을 때는 더더욱 쳐야 한다. 나머지 국가는 진나라가 커지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

è 매우 탁월한 전략이다. 진나라!

 

415 우경과 조석의 유세전

우경 - 진나라는 싸움에 지쳐서 돌아갔으므로 성 6개를 주고 화친을 신청할 필요 없다.

조석 - 지금 진나라가 한나라, 위나라와는 친하게 지내면서 조나라를 친 이유는 왕이 진나라를 섬기는 것이 한나라나 위나라만 못하기 때문이다.

 

조석 - 국가간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나라(조나라)와 뻗어나가려는 나라(진나라)의 목표는 다르다. 누구라도 쳐야 하고 승산이 있는 나라를 치기 마련이다. , 가장 약하고 대외적 파장이 작은 나라.

 

417 옛말에 '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 더욱더 강해지는 진라라가 더욱더 약해지는 조나라 땅을 떼어 받는 일이니 진나라의 요구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è 공격 ßà , 소실 ßà , 필요충분조건

è Vicious circle의 추세를 지양할 것

 

418 누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경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릅니다. 대체로 진나라와 조나라가 적이 되어 싸우면 천하 제후가 모두 기뻐하는데 왜 그럴까요? 제후들은 한결같이 강한 자에게 기대어 약한 자를 누르려 합니다. 지금 조나라 군대가 진나라 군대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승리를 축하하는 천하의 사절들은 틀림없이 다 진나라에 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땅을 떼어 주고 화친을 맺어 제후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진나라의 마음을 달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하 제후들은 진나라의 노여움을 이용하여 조나라가 지친 틈을 타 참외를 쪼개듯 조나라를 나눠 먹으려 들 것입니다. 조나라는 바로 망할 텐데 어찌 진나라를 도모하겠습니까? 그래서 우겨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한 것입니다."

è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바로 합의를 통해 조나라를 칠 궁리를 할 수 있다. 진나라보다 먼저 연합군이 조나라를 참외를 쪼개듯 나눠먹기. 근거 : 조나라가 약하다는 것을 들킨다.

 

419 우경

"누완이 조나라를 위해서 세운 계책은 천하 제후들에게 더욱더 조나라를 의심하게 할 뿐인데, 어찌 진나라의 마음을 달랠 수 있겠습니까?

è 조나라가 진나라 이외의 나라와 화친에서 빠지려고 한다. 도움이 안됨.

어찌 그러한 일이 천하에 조나라가 약함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è 누완의 논리의 근거를 정면으로 반박. 6개를 주는 것은 진나라와 친함을 보여서 강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강국에게 자기 땅을 떼어주는 약함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전략적 대외 이미지에 대한 상반된 의견.

신이 진나라에 땅을 주 말라고 한 것은 그저 주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나라가 여섯 현을 요구하니 왕께서는 차라리 여섯 현을 제나라에 뇌물로 주십시오. 제나라는 진나라에 깊은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제나라가 왕의 여섯 현을 얻는다면 조나라와 힘을 합쳐 서쪽으로 진나라를 칠 것입니다. 제나라는 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의 말을 다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왕은 여섯 현을 제나라에 주고 그 대가를 진나라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나라와 조나라는 진나라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갚고, 조나라의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남을 천하에 보일 수 있습니다. 왕께서 이러한 방침을 선언하면 제나라와 조나라의 군사가 진나라의 국경을 넘보기 전에 진나라의 많은 뇌물이 조나라에 이르고, 도리어 진나라에서 왕께 화친을 요청해 올 것입니다.

è 우경은 매우 탁월하다!

è 전략의 동선을 잘 짜서 제시함으로써, 실제로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서도 문제를 해결.

è 작은 나라(조나라)가 큰 나라(제나라)를 이용하여 더 큰나라(진나라)를 제압한 케이스.

 

421 신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함께 일을 하면 이로운 것이 있을 때에는 큰 나라가 그 복을 받고, 일이 잘못되면 작은 나라가 그 화를 입게 된다.' 지금 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스스로 화를 부르고 있고, 왕은 큰 나라인데 복을 사양하고 이습니다.

è 그러면 작은 나라는 큰 나라와 화친을 맺어서는 안 된다??

è 우경이 조나라와 진나라의 예에서 주장한 바와 상통하기는 한다. 그렇다면 작은 나라는 어떤 전략을 세울 수 있는가? 작은 나라끼리의 연대. 큰 나라를 이용한 큰 나라 간의 싸움.

 

17 위공자 열전

 

429 후영은 다 해진 옷과 모자를 걸치고 곧바로 공자(위나라 공자 무기)의 윗자리에 올라타고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았다. 후영은 이렇게 해서 공자의 태도를 살펴볼 속셈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말고삐를 잡은 채 더욱더 공손하게 대했다. …

 

430 그러나 저는 공자의 이름을 높여 드리기 위하여 일부러 오랫동안 공자의 수레를 시장 가운데 세워 두고 친구에게 들러 공자의 태도를 살펴보았더니 공자께서는 더욱더 공손했습니다.

è 마치 대선 기간에 시장통에서 악수를 청하는 정치인들 같다. 후영과 주해에게 공자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아마 그들은 진심으로 공자를 존경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그의 처세에 기가 질렸을 것이다. 공자는 아무 걱정 없이 자신들의 삶을 잘 살고 있는 후영과 주해를 찾아가 자신의 잣대에서 "좋은 것들"을 강요함으로써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434 공자는 주해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주해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시장에서 칼을 휘둘러 짐승을 잡는 백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께서 몸소 자주 찾아 주셨습니다. 일일이 답례하지 않은 까닭은 하찮은 예의 같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공자께서 위급한 처지에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제가 목숨을 바칠 때입니다."

 

436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18 추신군 열전

 

사실상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인재를 계속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446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면 힘이 약한 개가 그 기회를 틈타 이익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 더 낫습니다. 신이 그 까닭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신은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니지게 마련이다."라고 들었습니다.

è , 진나라 혼자 너무 커질 생각 하지 말라는 뜻인데 결국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였다. 한쪽 끝까지 가서 그 한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경쟁해야 한다. 지금 가장 강한 나라를 바로 칠 것인가, 아니면 약한 나라부터 먼저 도모할 것이냐? 만약 큰 나라의 성장세가 가파르다면?? 그를 먼저 견제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450 : 전략을 세울 때, 나라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이리저리 전략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맹점은, 말이 많은 경우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는데 이를 다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는 것.

 

456 그 뒤 휴가를 얻어서 고향으로 갔다가 일부러 정해진 날짜를 어기고 뒤늦게 돌아와 춘신군을 만났다. 춘신군이 늦어진 까닭을 묻자 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è 말을 꺼내기 위해 일부러 늦게 온다. 춘신군이 먼저 사건에 대해 묻게 되고 그러면 이원에게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춘신군에게 듣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것이 되므로 춘신군에게 "누이동생의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마치 자신이 먼저 원했던 것이 된다. 또한 말의 신빙성을 높이게 된다.

 

461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라고 하였다.

 

19 범저/채택 열전

 

470 평범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미워하는 자에게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아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 내린다.

 

475 과인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늘이 선왕을 아껴 그의 고아인 과인을 버리지 않아서입니다.

è 여기서 고아란, 선왕의 고아라는 뜻이지만 중의적으로 해석하여 "신의 고아"라고 본다면 매우 시적인 표현이 된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에 덧붙여 신의 고아들이 남겨진 세상 - 이라고 했다면 꽤 그럴 듯 했으리라.

 

475 백성은 사사로운 싸움에는 겁을 내나 나라를 위한 싸움에는 용감합니다.

 

485 범저가 수고에게 세 가지 죄를 물음 - 그러나 이 죄들은 모두 연결되는 죄들로, 네 개의 죄를 독립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498 성인이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덕이 있는 자를 만나기에 이롭다.'라고 말했고, '정당하게 얻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원한을 이미 다 갚았고 은혜도 이미 갚았습니다. 마음속으로 하고 싶던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물총새, 따오기, 코뿔소, 코끼리는 그들이 사는 곳이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하늘에서 내려준 수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잡혀 죽는 까닭은 먹이를 탐하는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502 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503 "좋은 말씀이오. 나도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라고 들었소. 선생께서 다행히 나에게 말슴해 주셨으니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소.

è 채택의 말을 듣고 바로 따르는 응후도 대단한 사람이다. 채택은 결국, 응후에게 이제 물러날 때가 되었으니 자신에게 재상의 자리를 내놓고 물러가라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20 악의 열전

 

519 태사공은 말한다.

"일찍이 제나라의 괴통과 주보언은 악의가 연나라 왕에게 보낸 글 [보연왕서]를 읽을 때마다 책을 덮고 눈물을 머금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21 염파/인상여 열전

 

533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한느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기 때문이오.

염파는 이 말을 듣고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543-544

만일 흉노가 들어와 도둑질을 하면 재빨리 가축들을 거두어 성안으로 들어와 지켜라. 감히 흉놀르 사로잡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리라.

è 아직 흉노에 대적할만한 형세로 자라지 못하였으므로 그 때까지는 철저히 방어하며 내실을 쌓는다.

 

22 전단열전

 

554 기이한 계책과 정공법이 서로 어우러져 쓰인느 것은 마치 끝이 없는 둥근 고리 갘ㅌ다.

 

555 왕촉 - 등용의 압박에 못이겨 자살함.

"왕촉은 벼슬도 없는 평민에 지나지 않는데 정의를 지켜 북쪽으로 얼굴을 돌려 연나라를 섬기지 않았다. 하물며 자리에 앉아 녹을 먹는 우리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도망치던 제나라 대부들을 자극함. è 죽음이 효용을 보았다.

 

23 노중련/추양 열전

 

566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 주고 재앙을 없애 주며 다툼을 풀어 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입니다. 저는 이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569 작은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

 

571 연나라 장군은 노중련의 편지를 읽고 사흘 동안 흐느껴 울며 망설이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가자니 연나라 왕과 틈이 생겨 죽을까 봐 두렵고, 제나라에 항복하자니 제나라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이고 사로잡았기 때문에 항복한 뒤에 치욕을 당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칼에 죽느니 차라리 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요성이 혼란에 휩싸이자 전단은 마침내 요성을 무찌르고 돌아와, 제나라 왕에게 노중련의 공적을 말하고 그에게 벼슬을 주도록 청하였다.

è 이해가 안 된다. 노중련은 중립의 선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었나? 연나라 장군을 위하는 듯한 편지를 보내었지만 이는 결국 연나라 왕을 파멸시키기 위한 도구였나? 그렇게 따지자면 현재 위기에 몰려 마음임 약해진 연나라 왕에게 차마 선택하기 어려운 제안을 두 가지 권함으로써 그에게 더욱 위기의식을 고조시킨 것일까? 노중련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24 굴원/가생 열전

 

583 전국시대 이래 문학 작품에는 당시 인간 운명의 극적인 성공과 실패라는 ㅂ준위기로 인해 심각한 회의와 절망의 정서가 깊숙이 배어 있다. 거기에는 인간사에 영원불변하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è 진리가 없다는 확고한 믿음. 모순된 표현이다.

 

591 "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그러고는 돌을 안은 채 마침내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598 가생은 상수를 건널 때 부를 지어 굴원을 조문하였는데 그 문장은 이러하다. …

 

법도 없는 세상을 만나

그 몸을 던졌구나!

 

600 저 작은 못이나 도랑이 어찌 배를 삼킬 만한 물고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랴?

è 멱라강에 몸을 던진 굴원을 연상시킨다. "받아들일 수 없어" 종말을 맞이함.

 

604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낮추고 자기를 귀하다 하네. 통달한 사람은 넓게 보고 무슨 물건이건 한결같이 보네. 탐욕스러운 사람은 재물을 위하여 죽고 열사는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법. 권세를 뽐내는 자는 권세 때문에 죽고 평범한 사람은 삶에만 매달리지. 이익에 유혹되고 가난에 쫓기는 무리는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네. 성인은 사물에 굽히지 않고 수많은 변화를 만나도 한결같다네. 세속 일에 구애받는 사람은 우리 속에 갇힌 죄수 같도다.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은 만물을 버리고 홀로 도와 함께하누나.

 

25 여불위 열전

 

614 그러자 자초는 웃으면서 말했다.

"먼저 당신 가문ㅇ르 크게 만든 뒤에 내 가문을 크게 만들어 주시오."

여불위가 말했다.

"당신이 모른느 모양인데,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

 

616 (자초)를 낳아준 어머니도 사랑을 받지 못하므로 스스로 부인에게 의지할 것입니다.

è 자초의 정치적 입지와 상황을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자초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622 소문이란 겉으로는 인덕을 좋아하는 듯하지만 실제 행동은 오히려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어진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면서도 그에 대한 의혹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관리가 될 때도 거짓으로 명성을 취하고, 집에 있을 때도 거짓으로 명성을 취한다.

 

26 자객 열전

 

631 예물을 바치고 남의 신하가 되어 섬기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주인을 섬기는 것일세.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까닭은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일세.

 

633 예양은 칼을 뽑아 들고 세 번 뛰어올라 그 옷(양자의 옷)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이것으로 나는 지백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러고는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예양이 죽던 날, 조나라의 뜻 있는 선비들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636 그런 뒤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죽었다.

è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하여

 

638 섭정은 제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제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동생의 장한 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è 춘추전국시대와 같이 살육과 적자생존이 만연하던 시기에도 중국에서는 이름을 드높이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이름을 얻고자 하는 보편적 열망이 공자 사상의 영향은 아닌 것 같다.

 

642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645 전광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형경을 격려하려는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부디 빨리 태자를 찾아가 전광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여 일이 새나갈 염려가 없음을 분명히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광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è ? 현경 대신 왕명을 받들 전광 역시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광은 현경의 억울한 마음을 달래고 연대 의식을 심어주어 그 비장한 각오를 다지게 했을 것이다.

è 그러나, 왕을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647 진나라의 대장들은 나라 밖에서 군사를 제멋대로 통솔하고 있으므로 안에서 변란이 일어나면 군주와 신하가 서로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 틈을 타서 제후들이 합종.

è 안에서 괴사시키기. 좋은 방법이다.

 

650 지금 태자께서 꾸물댄다고 하시니 하직하고 떠나겠습니다.

è 이미 형가는 마음에 갈등이 있다. 실패가 예상된다.

 

653 "일을 이루지 못한 까닭은 진나라 왕을 사로잡아 위협하여 반드시 약속을 받아 내 태자에게 보답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è 즉 형가는 진나라 왕을 죽였을 때, 자신 역시 죽게 되는 것을 감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è 진나라왕을 생포하여 그에게 약속을 받아내 자신의 목숨도 보전하고 연나라도 보전할 생각이었다. 매우 어리석구나. 연나라는 일이 실패할 경우의 파장을 고려했을가?

 

655 고점리는 오랫동안 숨어 두려움과 가난 속에서 살아 보아야 끝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 그가 다시 축을 타며 노래를 부르니 손님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 … 진시황은 고점리가 축을 뛰어나게 잘 타는 솜씨를 아까워하여 용서하는 대신 눈을 멀게 했다. … 진시황은 결국 고점리르 죽였다. 이 일로 해서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 제후국에서 온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655 노구천은 형가가 진나라 왕을 찌르려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 애석하게도 그는 칼로 찌르는 기술을 배우지 않았구나! 나는 왜 그토록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을까1 전날 내가 그를 꾸짖었을 때 그는 아마 나를 같음 부류로 생각지 않았겠구나!'

 

27 이사 열전

 

662 이사 -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669 청컨대 모든 문학과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삼십일이 지나도록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으로 삼으십시오.

è 왕이 지혜에 눈뜨는 것을 견제함. 자신들의 의견에 반박할 근거를 모두 제거함.

 

672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 또는 남을 지배하는 것과 남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어찌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675 당신은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나는 군주의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명에 따를 분이오. 어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겠소?

 

678 사자가 여러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재촉하자 사람됨이 어진 부소는 몽염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죽음을 내렸는데 어떻게 다시 용서를 청할 수 있겠소?"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è 몽염도 지나치게 성급하게 결단을 내렸다.

 

682 어진 사람이 천하를 소유하게 되면 오로지 천하를 자기에게 맞도록 할 뿐이다.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중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이른바 어진 사람은 반드시 천하를 평안하게 하여 모든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지금 제 몸조차 이롭게 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è 라고, 황제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였다.

 

685 독자적으로 결단을 내리고 죄상을 세밀히 살펴 반드시 엄한 형벌을 내림으로써 천하 사람들이 감히 죄를 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근본 원인에는 힘쓰지 않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들을 망치는 근원을 일삼는다면 성인의 이치를 살피지 못하는 것입니다.

è 국민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이코패스의 말이다. 조고는 책임은 오로지 황제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거기에서 파생되는 이득에만 눈이 어둡다.

 

686 신하들에게 간사한 마음이 없어지면 천하는 평안해지고, 천하가 평안해지면 군주는 존엄해지며, 군주가 존엄해지면 반드시 처벌이 실행됩니다.

è ? 인과 관계의 오류

 

687 조고 왈,

"천자가 존귀한 가닭은 신하들은 소리만 들을 뿐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자는 스스로 짐이라고 일컬었ㅇ습니다. 또 폐하께서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반드시 모든 일에 두루 능통할 수는 없습니다.

è 조고가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황제의 어리석음을 알기 때문이다. 조고가 시황제의 막내 아들을 통해 반역을 꾀할 생각을 한 이유는 그가 어리석고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만한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처음부터 막내아들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è 조고의 계책

1. 막내아들이 어리석다.

2. 이사가 탐욕스럽다.

3. 시황제의 죽음이 목전이다. à 생전에 시황제의 여명을 계산했을 것이다.

 

692 조고가 이사를 심문했다. 이사는 붙잡혀 묶인 채 감옥에 갇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 슬프구나! 도리를 모르는 군주를 위하여 무슨 계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695 조고는 열 명 남짓 되는 자기 식객을 시켜 거짓으로 어사, 알자 시중으로 꾸며 번갈아 가서 이사를 심문하게 했다. 이사가 번복하여 사실대로 대답하면 사람을 시켜 다시 매질을 했다. 나중에 2세 황제가 사람을 시켜 이사를 심문하자, 이사는 전과 같이 하리라고 생각하여 끝내 번복하여 말하지 않고 죄를 시인했다.

è 조고는 매우 주도면밀한 사람이다.

 

696 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무거운 줄 알고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2세 황제가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사슴이지?"

좌우에 있던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말입니다."

2세 황제는 놀라서 스스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태복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è 만약 이때라도 황제가 정신을 차렸더라면. 주변 사람들이 말이라고 이야기 할 때, 이는 조고가 두려워서 그런 것이지만 그 순간에는 황제가 조고의 지나친 권력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원체 2세 황제는 어리석었으므로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만약 그가 눈치를 챘고 일말의 용기라도 있었더라면 이 말 사건을 계기로 조고를 "황제를 능욕"했단 죄목으로 처단할 수도 있었으리라. 직접 베든지.

 

697 조고는 이틈을 타 2세 황제를 위협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조고는 황제의 옥새를 꺼내어 찼지만 곁에 있던 신하 가운데 따르는 자가 없고, 궁전에 오르자 궁전이 세 번이나 무너지려고 했다. 조고는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을 하늘이 허락하지 않고 신하들도 받아들이지 않음을 알고 시황제의 손자 자영을 불러 옥새를 주었다.

 

698 패공은 자영을 관리에게 넘겼으나 초나라 항왕이 와서 목을 베었다.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잃었다.

è 3대만에 멸망한 이유는, 아마도 조고 때문이 아니겠는가? 염문이 대를 잇기만 했어도 진나라는 조금 더 유지될 수 있었으리라.

 

28 몽염 열전

 

705 몽의는 법을 곡해하지 않고 조고의 죄가 사형에 해당하므로 환관 명부에서 그를 삭제하였다. 그러나 시황제는 조고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용서하고 그의 관직과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è 덕이 없는 자를 능력으로 평가할 때의 오류

 

709 그래서 [주서]에는 반드시 삼경에게 자문을 구하고 오대부에게 의견을 말하도록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711 태사공은 말한다. … 몽염은 이름 있는 장수로서 이러한 때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늙은이를 모시고 고아를 돌보며 모든 백성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찌 지맥을 끊은 탓으로 돌리랴.

è 통일된 국가에 대한 주인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황제의 손발이 되기만 했다.

 

29 장이/진여 열전

 

722 무신군은 그의 계책대로 하기로 하고, 괴통을 시켜 범양현 현령에게 제후의 인을 내렸다. 조나라 땅에서 이러한 소문을 듣고 대항하지 않고 항복해 온 성이 서른 개가 넘었다.

 

725 공께서는 이 두사람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시는군요. 저 무신과 장이와 진여는 말채찍을 흔드는 것만으로 조나라 성을 수십 개나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왕 노릇을 하고자 합니다. … 지금 공께서 조나라 왕을 붙잡아 두고 계시니 이 두 사람은 명분상으로는 조나라 왕을 구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연나라가 그를 죽여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729 장염과 진택이 (진여에게) 말했다.

"일이 이미 급박한데 함께 죽어 신의를 세워야지 어찌 뒷일만 생각하십니까?"

진여가 말했다.

"내가 죽는다고 무슨 보탬이 되겠소? 하지만 당ㅅ니 말에 따르겠소."

그리고 군사 5000명에게 장염과 진택을 따라 먼저 진나라 군대에 맞서게 하였으나 붙어 싸우자마자 전군이 죽고 말았다.

è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밀고 나가든가. 마지못해 나간 전투에서 전술이 있겠는가?

 

30 위표/팽월 열전

 

745 인생은 흰 망아지가 [작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매우 짧소. 지금 한나라 왕은 오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제후와 신하들을 노예처럼 꾸짖고 욕하며 위아래의 예절이 조금도 없소. 나는 그러한 골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소.

è 서두에 그의 진심이, 뒤에는 그의 명분이 쓰여 있다. 인생은 짧고 사람은 곧 죽을 것이므로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 결코 안주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31 경포열전

 

762 회남왕이 도착했을 때 마침 한나라 왕은 의자에 걸터앉아 발을 씻고 있었는데, 그 상태로 영포를 불러들여 만났다. 영포는 매우 화가 나서 이곳으로 온 것을 후회하고 스스로 목숨을 귾으려고 했은아, 물러나와 숙소로 가 보니 의복과 음식과 시종 등이 한나라 왕이 있는 곳과 같으므로 생각보다 좋은 예우에 매우 기뻐했다.

è 그러니 의분을 못이겨 순간적인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770 황상은 영포를 미워하여 그를 마주하고 바라보다가 멀리서 그에게 말했다.

"무엇이 괴로워서 반란을 일으켰소?"

영포가 말했다.

"황제가 되고 싶었을 뿐이오."

è 그는 신탁이 있기 전에는 황제가 될 욕망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32 회음후 열전

 

775 한신이 성 아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무명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 가운데 한 아낙이 한신이 굶주린 것을 알고 밥을 주었는데 빨래를 다할 대까지 수십 일 동안을 그렇게 했다. 한신이 기뻐하며 아낙에게 말했다.

"내 언젠가는 이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소."

그랬더니 아낙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제 힘으로 살아가지도 못하기에 내가 젊은이를 가엾게 여겨 밥을 드렸을 뿐인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소?"

 

776 회음의 백성 중에서 한신을 업신여기는 한 젊은이가 한신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키는 커서 칼도 잘도 차고 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겁쟁이일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한신ㅇ르 모욕하며 말했다.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이때 한신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이 일로 시장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784 (광무군) "지금 정형으로 가는 길은 폭이 좁아 수레 두 대가 나란히 갈 수 없고, 기병도 대열을 지어 갈 수 없습니다. 이렇나 길이 수백 리나 이어지므로 그 형세로 보아 군량미는 반드시 뒤쪽에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제게 기습병 3만 명만 빌려 주시면 지름길로 가서 그들의 군량미 수송대를 끊어 놓겠습니다. 군께서는 도랑을 깊이 파고 성벽을 높이 쌓아 진영을 굳게 지키기만 하고 한나라 군대와 맞붙어 싸우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면 적군은 앞으로 나아가 쌍루 수 ㅇ벗고 물러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 기습병이 적의 뒤르 끊고 적이 약탈할 만한 식량을 치워 버리면 열흘도 못 돼서 적군의 두 장수 한신과 장이의 머릴르 휘하에 바칠 수 있습니다."

성안군은 유자여서 언제나 정의로운 군대라고 일컬으며 속임수나 기이한 계책을 쓰지 않앗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듣건대 병법에 의하면 '병력이 열 배가 되면 적을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라고 했소. 지금 한신의 군사는 말로는 수만 명이나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천 명에 지나지 않소. 그것도 1000리나 되는 먼 길을 와서 우리를 치니 역시 지칠 대로 지쳐 있을 것이오. 지금 이러한 적을 피하고 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큰 적들이 쳐들어올 때는 어떻게 대처하겠소? 그렇게 되면 제후들은 우리를 겁쟁이로 여겨 쉽게 쳐들어올 것이오."

그러고는 광무군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è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성안군 = Old school. 죽음은 모두 다 같은 죽음이 아니다. 결투하다 베이는 것은 명예로운 죽음이지만 뒤에서 치는 것은 비겁한 죽음이다. 이것이 성안군의 생각. 그러나 만약, 아군의 병력에 거의 손상 없이 "영리하게" 승리한다면 이 역시 정의 아닐까?

è 시험 공부를 할 때 족보를 보는 것을 나는 끔찍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단 시험을 잘 보는 것이 목표라면 족보는 내게 고마운 존재였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했다.

è 나는 평소 성안군 스타일이었는데, 이제 광무군을 따를 때가 되었다. 그의 지략을 받아들여야지.

 

787 광무군을 죽이지 말라. 산 채고 잡아 오는 자가 있으면 1000금으로 사겠다.

 

788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아랴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잖소?

 

789 제가 듣건대, '쌍무에서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을 말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799 천하가 처음 어지러워졌을 때, 영웅호걸들이 왕이라고 일컬으며 한 번 외치자 천하의 인사들이 구름이나 안개처럼 모여들어 물고기 비늘처럼 겹치고 불똥이나 바람같이 일어났습니다. 이때는 어떻게 하면 진나라를 멸망시키느냐 하는 근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다투게 되자 천하의 죄 없는 사람들의 간과 쓸개로 땅을 바르게 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해골이 들판에 나뒹구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è 과거는 늘 미화된다.

 

804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당신께서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è 항상 먼저 지세를 읽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조언을 잘 살펴야 한다.

 

806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을 치워 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33 한신/노관 열전

 

819 고조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자, 한신은 곧 도읍을 마읍으로 옮겼다. 그 해 가을에 흉노 묵돌이 한신을 대규모로 포위하자, 한신은 흉노에게 여러 차례 사자를 보내 화해를 구하였다. 한나라는 군대를 보내 그를 도았으나, 한신이 사사로이 흉노에게 여러 차례 사자를 보내자 그가 딴 마음을 품지 않았나 의심하여 사람을 보내 한신을 꾸짖었다. 한신은 목이 베일까 두려운 나머지 흉노와 함께 한나라를 치기로 약속하고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한신은 마읍을 흉노에게 내주어 항복하고는 태원을 쳤다.

è 믿는 것의 미덕

è 의심하는 것의 미덕

 

34 전담 열전

 

837 조나라도 전각과 전간을 주깅며넛까지 제나라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제나라 사신이 이렇게 말했다. "독사에게 손을 물리면 손을 자르고 발을 물리면 발을 자릅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자르지 않으면 몸뚱이마저 해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가, 전각, 전간은 초나라와 조나라에게 손이나 발 같은 친분이 있는 것도 안인데 왜 죽이지 않습니까?"

è 이런 불안정한 정세에서 장군을 할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842 전횡은 그곳에 머물러 빈객들에게 말했다.

"나는 처음에 한나라 왕과 함께 남쪽을 바라보고 고라고 일컬었는데, 지금 한나라 왕은 천자가 되었고 나는 도망친 포로의 몸으로 북쪽을 향하여 그를 섬겨야 하오. 이 치욕스러운 마음은 정말로 참을 수없소. 나는 남의 형을 삶아 죽였는데 앞으로 그 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같은 군주를 섬겨야 하오. 비록 그가 천자의 조서를 두려워하여 나를 괴롭히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어지 스스로 마음속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없겠소? 또한 폐하께서 나를 보고자 하시는 까닭은 내 얼굴을 한번 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소. 폐하께서는 낙양에 계시니 지금 내 목을 베어 삼십 리르 말로 달려가면 모습이 썩지 않아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그러고는 마침 내 자기 목을 지르며 빈객에게 자신의 목을 받들고 사신을 다라 말을 달려가 고제에게 아뢰도록 하였다.

è 그리고 따르던 선비들도 함께 죽음. 남의 명분에 동조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è 한 번 따르기로 한자가 운명을 달리하면 그의 추종자들의 운명에도 명암이 드리워지는 모양. 내가 너무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걸까?

 

35 ///관 열전

 

850 번쾌가 패공을 구한 이야기

 

862 그는 대를 이은 지 십구 년 뒤인 원정 2년에 아버지가 황제로부터 물려받은 하녀와 간통한 죄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봉국이 없어졌다.

è 당시는 꼴리는 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던 것일까? 죽음이 너무 흔하거나, 혹은 평균 수명이 짧아 여명에 대한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던 모양이다.

 

869 내가 풍현과 패현으로가 서진나라 때부터 살아온 그곳 노인들을 찾아 소하, 조참, 번쾌, 등공의 옛집과 그들의 평소 사람됨을 물어보았는데 세상에 전해지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가듯이 한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 알았겠는가?

 

 

 

 

 

 

 

 

 

 

 

 

 

 

 

 

 

 

 

 

 

 

 

내가 저자라면

 

사마 천은 <사기>를 통해 여러 교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현대의 역사서들이 기본적으로 객관적 사료에 충실한 것에 비해 많은 분량의 역사관을 피력하는 것이 <사기>의 특징이다. 그러나 많은 사자성어들이 서로 모순된 교훈을 보이는 것과 같이 역사적 사건들은 서로가 상반된 교훈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 한 사람의 저자라 하더라도 두 가지 주장을 피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령 사마 천은 <백이 열전>에서 '선한 사람이 항상 복을 받는 것은 아니며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천수를 다 누리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을 들어, 사필귀정에 의문을 보인다. 그러나 뒤따르는 많은 일화에서 사필귀정이 실현되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 타당한 벌을 받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역사서의 구성은 참 친절하다. 특히 중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나라와 인물들에 대해, 당시의 역사사관이 아니라면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정리력과 편집력을 발휘하였다. 역사가로서 그가 모인 최고의 덕목이다. 사마 천이 자신의 의견을 주석으로 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이 편집본 하나 만으로도 역사를 통해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모두 전할 수 있다. 더불어 왜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가 역시 사기의 편집에서 드러난다. 그만큼 편집의 미덕이 크다.

 

더군다나 사마 천이 다룬 역사 시기는 춘추 전국 시대로 역사의 인과관계를 다룬 종적 상황보다는 퍼즐블록처럼 갈라진 나라들 간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한 단적 상황이 더 중요하였다. 나라 간의 전쟁에서 파악해야 할 요소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닌데 특히 춘추 시대에는 나라의 숫자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별 상황도 각기 각색이었다. 이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연대기적 배열보다 상황별 사실 포착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사마 천이 기전체를 따른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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