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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10시 12분 등록
 

진나라의 승상 이사에게 보내는 편지


사기열전을 통해 그대의 일대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라고 부른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지 마소서.

나도 대국의 승상에게 ‘그대’라고 부르는 기회를 얻기 위해 <사기열전>을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기열전>에 나오는 인물들 중 그대를 가장 으뜸인물로 생각하여 편지를 쓰기로 했답니다. <사기열전>을 쓴 사마천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며 그에 대해 칭찬 한 줌을 보태는 것은 강물에 물 한 컵을 붓는 것과 같기에 그대를 선택했답니다.

그대에 대한 세간의 평은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질타가 호평보다 더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요. 저는 질타와 호평을 골고루 한 번 짚어보고 싶습니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한 진나라, 거대한 진나라를 통치한 시황제의 뒤에 그대가 있었소. 그대를 두고 진나라와 시황제를 조종한 최고의 경영자라고 칭하기도 한답니다. 이런 칭송이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마천은 그대의 일대기를 기록하면서 ‘그대가 네 차례 탄식한 일’을 자세하게 묘사하였지요. 화장실에서 사는 쥐와 창고 속에서 사는 쥐의 다른 방향을 보고 탄식했으며, 승상이라는 귀한 신분이 되었을 때 탄식했으며, 진시황이 남긴 조서를 고칠 때 탄식했고, 오형을 받을 때 탄식했지요. 저도 그 탄식의 순간들을 그대와 나누고 싶군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지만 역사는 훗날 사람들에게 거울이 되니까 되짚어보고 싶어요.

  나는 그대의 일대기 중 승상이 되기 위한 시발점에서 아주 감동했더이다.

초나라에서 곡식창고를 지키는 낮은 관직에서 일하고 있을 때, 어느 날 배가 아파 변소에 급히 뛰어들었다가 인분을 먹고 있던 쥐 한 마리가 무서워서 급히 숨는 것을 보았지요. 그에 비해 곡식창고의 쥐들은 쌓아놓은 가마니 속에서 곡식을 먹다가 인기척이 나도 도망가기는커녕 태연하게 먹는 것을 익히 보아온 터라 많이 놀랐지요. 알곡을 먹으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쥐와 더러운 인분을 먹으면서도 큰 죄를 지은 양 놀라는 쥐를 비교하면서 “사람의 팔자도 환경에 달렸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그대는 그날로 관직을 그만두고 스승을 찾아 세상을 떠돌기로 했습니다. 아니 <제왕학>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아주 우연한 사건 하나가 그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소. 이미 그대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기에 사소한 것에서 존재의 의미와 그 가치를 발견한 것이며, 그런 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거지요. 저는 이 점에 아주 감동했답니다.

  먼저 순자를 찾아갔지요. 그 당시 공자는 3000명의 제자를 두고 가르쳤고, 순자는 1800명 정도의 제자를 두고 가르쳤다고 하지요. 순자도 그대의 총명함은 인정을 했습니다. 삼사년 정도 순자 밑에서 공부하다 이만하면 <제왕의 기슬>을 웬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여 스승을 떠나옵니다. 그대는 제일 강성한 나라 진나라를 선택했습니다. 닭부리가 되기보다는 쇠꼬리가 더 낫다고 생각한 거지요 진나라에 들어가면 벼슬할 확률이 높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승부수를 던진 그대의 결단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진나라의 승상 여불위를 찾아가서 기회를 얻습니다. 여불위 또한 그대를 현명하고 능력있다고 인정하여 왕에게 천거를 합니다. 이미 출세의 발판은 마련이 되었습니다. 빨리 출세의 기틀을 닦은 것 같습니다.

  진나라에서 타국의 사람을 내쫓아야 한다고 논의가 되었고, 그대가 논의의 대상이 되었을 때 시황제에게 올린 글은 아주 감동적이었답니다. 타국에서 온 진기한 보물과 사물 하나하나를 예로 들어가면서 조곤조곤 써내려간 글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를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물론 그대의 박학다식하고 논리적인 글에 감동했고요. 시황제는 그대의 글을 보고 빈객들을 내쫓으라는 명령을 거두고 그대도 관직을 회복하게 되었지요.

  후세사람들은 ‘진나라의 이사’하면  ‘분서갱유’를 제일 먼저 떠올리면서 분노합니다. 지식의 보고인 책을 불사르고 수많은 선비들을 죽인 정책은 두고두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답니다. ‘민중들이 현정치에 대해 갑론을박하거나 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금지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지요. 독재자들의 전형이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지요. 그대는 무엇이 겁이 나서 그런 정책을 시행했던가요? 분서갱유는 하나의 우민정책 이었지요. 그대의 정치적 야욕 때문에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몰수하고 불태워버린 진나라 전체를 암흑의 시대로 만들어버린 그 죄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 모든 일을 그대의 힘으로 가능했다는 것에 생각이 멈추는 군요. 똑똑한 인재등용을 미리 막기 위한 그대의 농간을 시황제는 어찌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그만큼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대의 일대기 중 인간적으로 감동을 주는 장면이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으면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그 장면입니다.


  이사의 집에서 술자리를 벌였는데, 대문 앞과 뜰에는 수레와 말이 수천 대나 되었다. 이사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아! 나는 순자가 ‘사물이 지나치게 강상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나는 상채에서 태어난 평민이며 시골마을의 백성일 뿐인데 주상께서는 내가 아둔하고 재능이 없는 줄도 모르고 뽑아서 오늘날 이 지위까지 오르게 하였다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구나.”


  달이 차면 기운다는 이치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의 영웅호걸들도 올라갈 줄은 알았지만 내려올 때를 몰라서, 멈추어야 할 때를 몰라서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욕심이 넘치지 않고 세상을 보는 통달한 안목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사기열전> 칠십 명의 인물 중 범저와 채택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 천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천하를 벌벌 떨게 만든 한나라의 회음후 한신도 과욕을 부렸다가 말년에 삼족을 멸하는 가문멸화를 당하게 됩니다. 나는 그대가 하늘을 보면서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한다’는 그 생각을 좀더 깊이했더라면 오형(五刑)을 당하지 않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긴 그때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서 진나라의 내노라하는 사람들과 사돈을 맺었으니 하늘인들 눈에 들어왔겠습니까? 세세생생 그런 권력을 휘두르면서 살 줄 알았겠지요. 지금 그대가 나에게 ‘한 번이라도 그렇게 호의호식하면서 살아보았느냐고’ 타박을 놓는군요. 이래도 저래도 한 세상인데 나물밥에 김치해서 먹고 좁은 집에서 아옹다옹 사는 것보다야 으리으리한 집에서 육고기 먹으면서 세상을 호령하면서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변소의 쥐보다는 곡식창고의 쥐가 훨씬 낫다고요? 나도 갑자기 혼란스럽네요.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판단하는 것은 뒤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일인치만 낮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하지만 다 일종의 재밋거리에 불과한 것이지요. 역사나 인생에는 만약은 없습니다. 진시황의 조서를 고치자는 환관 조고의 유혹을 물리칠만한 힘이 그대에겐 없었나요? 그만큼 권력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많았기에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없어진 것이지요. 그때 만약 조고의 유혹을 뿌리치고 벼슬자리를 내놓고 시골에 은둔하여 살았다면 편안한 노후가 되지 않았을까요? 좀더 깊이 생각해보니 조고의 유혹을 물리쳤다면 조고가 그대를 가만두지 않고 암살했을 겁니다. 그때 승상은 손에 이미 나쁜 패들을 쥐고 있었네요. 나쁜 패를 좋은 패로 바꿀 방법이 없을까요? 그때는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을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정치인들은 손에 쥔 것을 놓지를 못하더라고요. 놓아버리면 살 수 있는 목숨인데 움켜쥐어서 죽음을 앞당겨 맞이하더라고요. 이것이 권력자와 비권력자, 정치인과 비정치인의 생각차이인가요?

  드디어 그대는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잘리는 오형(五刑)을 받게 됩니다. 형이 집행되기 전, 함께 집힌 둘째아들을 돌아보며 한 그대의 말에서 진한 인간미를 느껴답니다.

  “내 너와 함께 다시 한 번 누런 개를 끌고 상채 동쪽 문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

 아들과 토끼사냥을 하며 부자간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했던, 대국의 승상이 작은 행복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에 마음이 짠해집니다. 왜 진즉에 그런 작은 행복에 눈뜨지 않았을까요? 망나니가 춤을 추고 있을 때 그대는 청운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함양으로 올라오던 그때를 생각했겠지요. 함양 땅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첫 출발을 했던 그대인데 이렇게 함양시장 바닥에서 참형(慘刑)으로 마지막을 장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은 소리 내어 울고, 삼족이 모두 죽음을 당하는 가문멸화로 그대의 화려했던 일대기는 막을 내립니다. 저도 가슴이 에리고 아픕니다.

  ‘인생은 흰 망아지가 작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매우 짧다’고 했건만 그대의  인생은 장편소설처럼 길게만 느껴져요. 

  사마천은 그대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리더군요.

  “이사는 육경의 근본 뜻을 잘 알면서도 공명정대하게 정치를 하여 군주의 결점을 메워주려 힘쓰지 않고 높은 작위와 봉록을 누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아첨하고 좇으며 구차하게 비위를 맞추기만 했다. 조칙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였으며 조고의 간사한 의견을 따라 적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그러면서 사마천도 그대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더군요.

   “제후들이 이미 뒤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충고하려 했으니 때가 너무 늦엇구나! 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겨룰 만하였을 것이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더군요.

  세상 사람들은 진시황의 은혜를 가장 많이 입은 조고와 이사가 철저히 시황제의 은혜를 저버렸다고 비난합니다. 그래도 시황제를 도와 법령을 제정하고 도량형을 통일하여 중국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그대가 아니던가요? 만리장성을 쌓고 시황제의 병마용갱을 만들어 현대 13억 중국인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이제 펜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이름 없는 촌부가 대국의 승상에게 한 번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대에게 이 편지가 꼭 전해졌으면 합니다.

그대의 일대기를 거울삼아 바른 길로 나아가는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서민들이 나물밥이라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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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09:07:56 *.50.161.54

아마도 누님께서 사기열전을 가장 재미있게 읽으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기열전의 주인공에게 편지까지 썼으니 말입니다.

사기열전의 '이사'가 아주 오래전 사람이라고 느껴졌다면,

이 편지 속의 '이사'는 내 주변에 가까이에 함께 살아가는

현존 인물처럼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만큼 누님의 글에 푹 빠져서 읽어 내려 갔습니다. 

누님이 공감하신 내용에 저도 함께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주인공들에게 편지를 한 번 써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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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9.04 11:08:27 *.85.249.182

진시황에 대한 전기를 읽으면서 진나라승상 이사와

조금 친해졌거든,

그래서 편지를 써보았단다.

이번에 나도 편지형식의 글을 써면서

이런 방법으로 책 주인공 혹은 저자를

연구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단다.

이번 주도 행복한 한 주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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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18:10:34 *.51.145.193

지나쳤던 이사의 이야기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

깊은 생각 끝에 나온 칼럼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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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20:52:09 *.39.134.221

시간에 좇기어 상황에 내몰려 읽어내는 사람과 차원이 다른 컬럼을 대합니다.

좋을 글에 감탄하며...

인생에는 if가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건데? 너는?  자문자답하는 시간입니다. 토욜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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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9.05 19:04:09 *.85.249.182

칭찬 감사합니다.

어떻게 살건데?

저는 그냥 아득해집니다.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머리가 휭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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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17:32:31 *.114.49.161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내내 행복하였다고 하시더니...음, 역쉬...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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