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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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칠웅가운데 가장 작고 약했던 한韓나라.
한비자는 한韓나라의 명문 귀족의 후예이다. 그는 눌변이지만 논리력을 필요로 하는 글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전란이 계속되는 불안한 상황속에서 약소국의 비애와 고통, 모욕과 굴욕, 굶주림등은 그에게 가혹한 고통이었다. 한나라 왕에게 해결책을 자주 간언하였으나 불행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비는 청렴하고 정직한 인물들이 사악한 신하들 때문에 쓰이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고 옛날 왕들이 시행한 정치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변천과정을 살펴 십여만자의 글을 남겼다. 그 중 <說難세난>편을 자세히 지었다. 그 중 일부를 보자.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내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한다.
대체로 일이란 은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그러나 유세자가 상대방의 비밀을 들출 뜻이 없었지만 우연히 상대방의 비밀을 말한다면 유세자는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유세자가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말을 하고 교묘한 주장을 내세워 그 잘못을 들추어내면 그 몸은 위태로워진다. [사기열전1. 민음사 86쪽]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유세자는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은 행위를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며, 군주와 같은 실패를 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며 두둔해 주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덮어 주어야 한다.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 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88쪽]
용의 비늘에는 역린이 있다.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다. 이것을 건드리면 사람은 죽는다. 유세자가 설득하고자 하는 군주의 역린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을 알아야 목숨이 위태롭지 않다. 용의 역린은 목덜미 아래에 고정된 장소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목덜미에도 있었다가 꼬리에도 있었다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군주는 어떠할까. 군주는 사람이다. 그것도 절대권력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 역린이 무엇인지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변하기도 한다. 사람이니까. 난세에 군주를 설득하고 그 안에서 밥벌이를 해야 했던 유세자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다른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리스신화이다. 올림포스신들 중, 최고의 신 제우스. 그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또한 심한 바람둥이이다. 신중의 신이니 다른 신들의 고민도 들어줘야 하고 신들간에 일어나는 다툼도 해결해 줘야 한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사랑도 해야 하니 많이 바쁠것이다. 어느 날 데메테르 여신이 제우스를 찾아온다. 용건은 사라진 딸을 찾아 달라는 것인데, 딸의 소재는 파악했으나 본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대이다. 바로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이다. 데메테르여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흠모하던 하데스는 어느 날 4마리의 흑마가 모는 검은색 사두마차를 타고 지상에 올라와 그녀를 납치해 지하세계로 데려가
버린다. 딸을 찾아 헤메던 여신은 그녀의 소재를 파악하고 제우스을 찾아온 것이다.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는 제우스의 형제이다. 어두운 곳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와 결혼을 하려 하지 않는다. 노총각 하데스가 사랑하던 여인을 납치해간 것이다. 내심 제우스는 노총각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자신의 고민거리 하나가 덜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딸을 찾아달라는 어미의 마음을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이때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부른다. 최고의 참모라고 불리우는 헤르메스이다. 그는 헤르메스에게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저항하고 있다면 데려오고 그렇지 않다면 하데스의 혼인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죽음의 땅에서 무엇이든 먹으면 산 자들의 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다. 전령을 받은 헤르메스는 곧장 지하세계로 가서 페르세포네가 아니라 하데스를 만나 제우스의 말을 전한다. 이에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찾아간다 “당신을 데려가려고 헤르메스가 기다리고 있다. 나를 조금이라도 용서해 준다는 의미로 이 과일이라도 들기를 바란다며 석류를 내민다. 얼떨결에 석류 한 알을 먹은 페르세포네….
이제 그녀는 지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된다. 이를 지켜보던 헤르메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남겨둔 채 그 자리를 떠난다.
한비가 유세자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說難세난>편을 지었다면,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참모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이래저래 머릿속이 복잡한 한 주였다. 나의 역린이 무엇인가도 생각해보고,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하여 내 역할은 잘 해내고 있는가!
고객의 마음을 읽고 고민을 들어주고 그것에 맞는 맞춤옷을 만들어야 하는 나의 일.
어려운 일이지만 보람도 있는 일이다. <세난>편을 참고로 헤르메스 같은 멋진 역을 하는 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