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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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야기
주말에 뭐 했어? 쪽배를 타고 저주지의 그물을 살펴보러 가는 민물매운탕집 남자가 된 느낌으로 나는 묻는다. 월요일 오전 주말이야기는 두 탕이다. 한 탕은 1교시에 6학년들과, 한 탕은 급식을 먹은 후에 4학년들과 한다. 6학년은 모두 남자아이고, 4학년은 모두 여자아이다. 금요일에 집에 갈 때 나는 무한 반복해서 묻는다. 내일 학교 오니 안 오니? 요일 개념이 없는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웃으며 간다. 그래 놓고는 눈 뜨자마자 식전부터 학교 간다고 가방 메고 3층 계단참으로 기어 나가서 온 식구를 기겁하게 한다. 그 아이는 한 번 계단을 굴러서 이마에 딱지를 이고 왔었다. 그 후론 금요일날 확인이 더 길어졌다. 에버랜드 언니처럼 손을 흔들며 나는 주말동안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어오라고 보낸다. 예상답안이 아이들 별로 있다. 쏘가리, 꺽지, 메기에 해당하는 것, 이마트에 아빠랑 가서 햄버거 먹고 왔어요, 교회 가서 떡볶이 먹었어요. pc방 가서 게임 2시간 했어요.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특수학급에서 일한다. 우리 반은 모두 7명이다. 1명만 빼고 모두 복지카드가 있다. 복지카드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처럼 생겼다. 보건복지부에 장애인으로 등록하면 나오는 쯩. 우리반 아이들의 복지카드에는 발달지체, 지적장애가 적혀있다. 주말 이야기는 국어, 말하기 수업이다. 내가 교사가 된 후 10여년 이 수업을 월요일마다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간단한 것을 반복해서 한다. 이 시간에 가르치는 건, 첫 번째 손을 들어서 자기 순서를 정할 때까지 기다리기, 둘째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 한 번에 한 가지씩 말하기, 셋째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는 가만히 듣고 있기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는 귀가 아프다고 말한다.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집게 손가락을 세워서 ‘쉿’ 한다. 내가 하는 말은 반은 몸짓인 것 같다. 내가 읽는 것도 반은 몸이다. 모든 사람이 발표를 하는데 잠자거나 잠자코 있는 아이에게는 손을 들어서 “저는요 할 말 없어요. 다음에 할께요.”를 연습하게 한다. 이 말은 “생각나면 할께요.”가 될 때가 있다. 손을 들고, 말로든 행동으로든 자기를 표현한 아이에게는 “잘 들었습니다. 오늘도 아주 잘 말해주었어요. 수고했어요.”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아이가 표현하는 걸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있다.
6학년은 모두 말을 할 줄 안다. 4학년은 한 아이만 말을 할 수 있다.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는 두 아이는 혼자서 학교에 올 수 없기 때문에 부모님이 모두 아침마다 아이를 데려다 주신다. 보통 아이는 1학년 3월 한두 주만 데려다 주면 되는데, 이 어머님들은 6년 내내 등하교를 같이 하신다. 직장을 다니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자라지 않는 아이’라고 펄벅여사는 말했는데 내 생각에는 '더디 자라는 아이‘인 것 같다. 어떤 특수교사 겸업 동화작가는 '손톱만큼 자란다'고 말했다. 손톱만큼 자라다가 어느 정도에서 멈추는 것 같다.
아이에게 말대신 행동으로 표현하는 걸 가르칠 때가 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아이는 손을 모으고 교회 글자를 한 글자씩 따라 말한다. 이 아이는 아빠와 오빠의 발음이 헤깔린다. 숫자 5를 읽을 때 인디언처럼 입에 손을 대고 오오오 해야 한다. 우리 교실에 지금 오빠가 여럿인게 좋다. 나는 오빠라는 대답이 나올만한 질문을 많이 해서 오빠를 발음하게 한다. 다른 아이는 잠을 잤다는 의미로 귀를 손에 댄다. 고기를 쌈에 싸서 먹었다는 의미로 손바닥에 놓인 것을 입에 넣어 냠냠 씹는 흉내를 낸다. 여전히 할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의미로 할아버지의 엉덩이를 콕 찌르는 모양을 낸다. 아이를 데려다 주고 가시는 엄마에게 미리 물어본 내용이 나오면 그걸로 내가 행동을 해독하고 안 나오면 아이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6학년 아이 중에는 주말동안 스카우트 마당야영에 참여한 아이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 치고 자는 거다. 볼라벤 후속 태풍 때문에 지난 주 내내 비 올까봐 아이가 아침마다 걱정말 했었다. 다행히 개었다. 나도 밤과 새벽에 와 보았다. 지역주민답게 월남치마에 민낯에 고무신 신고 왔었다. 자기네 텐트는 6호였단다. 알았으면 텐트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컵라면 먹는지, 3분 카레 먹는지 염탐했을건데 못했다. 의기충천한 아이가 보기 좋다.
별 일 없었구나 그럼 잘 보낸거네. 주말 동안 잘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한 주가 잘 시작되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귀 기울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같다. "미안해 들으려 노력했는데 못 알아듣겠어.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 너 많이 답답하겠다. 어쩌냐?" 라고 말해주는 걸로 매번 끝나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보완대체의사소통을 가르쳐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할 수 있고, 글자를 보고 쓸 수 있는 6학년 아이들을 위해서 짧은 3개의 문장으로 발표를 정리해준다. "1.용현동에서 가족들이 밥 먹었다. 2. 고기 먹었다. 3. 막내동생이 태권도 은메달을 땄다" 이걸 아이가 한 글자씩 그림 일기장에 보고적는다. 그 후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면 거의 종칠 시간이다. 그림은 메달의 동그라미를 그리는 걸로 끝이다. 읽기 과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자신이 쓰고 그린 그림일기공책을 읽는 건 아주 좋아한다기 보담은 덜 싫어한다. 이게 이 아이의 국어, 작문 공부다. 나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 별도장을 남발한다.
이 아이들과 2학기 목표를 정하는 시즌이다. 2학기 넉 달 동안 노력해서 얼만큼 성취할 수 있을까? 지난 주에 뒷 게시판 나무에 달 오렌지를 만들었다. 거기다가 아이별로 사진과 이름, 목표를 적고 상을 적었다. 지금 이름을 쓰지 못하는 두 아이는 4달 후에 이름을 덮어 쓸 수 있을까? 없을 거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는 그림일기의 수에 따라 문화상품권을 갖겠다 했고, 책 읽는 권수에 따라 같이 갈비 먹으러 가겠다고 한 아이도 있다. 이제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으니 아이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다.
장애 있는 우리반 아이들과 어머님들은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최선을 다해 몇 년 째 선긋기를 하고, 최선을 다해 숟가락질을 하고, 양치질을 한다. 나는 종종 우리반 아이들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혼자 묻는다. 인구의 정상분포 곡선에서 정상범위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일정 부분 있는 게 '정상'이다. 이건 자연과 우주의 존재방식이다. 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이 공동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지향하는 가치,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지를 측정하는 바로미터 같다고 느낀다. 나주에서 태풍이 불던 날 일어난 일에 대해, 여덟살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는 뉴스를 읽었다. 나는 대통령이 왜 사과를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마땅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아이도 우리 반 아이들 같은 경우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