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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12시 00분 등록

주말이야기

 

주말에 뭐 했어? 쪽배를 타고 저주지의 그물을 살펴보러 가는 민물매운탕집 남자가 된 느낌으로 나는 묻는다. 월요일 오전 주말이야기는 두 탕이다. 한 탕은 1교시에 6학년들과, 한 탕은 급식을 먹은 후에 4학년들과 한다. 6학년은 모두 남자아이고, 4학년은 모두 여자아이다. 금요일에 집에 갈 때 나는 무한 반복해서 묻는다. 내일 학교 오니 안 오니? 요일 개념이 없는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웃으며 간다. 그래 놓고는 눈 뜨자마자 식전부터 학교 간다고 가방 메고 3층 계단참으로 기어 나가서 온 식구를 기겁하게 한다. 그 아이는 한 번 계단을 굴러서 이마에 딱지를 이고 왔었다. 그 후론 금요일날 확인이 더 길어졌다. 에버랜드 언니처럼 손을 흔들며 나는 주말동안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어오라고 보낸다. 예상답안이 아이들 별로 있다. 쏘가리, 꺽지, 메기에 해당하는 것, 이마트에 아빠랑 가서 햄버거 먹고 왔어요, 교회 가서 떡볶이 먹었어요. pc방 가서 게임 2시간 했어요.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특수학급에서 일한다. 우리 반은 모두 7명이다. 1명만 빼고 모두 복지카드가 있다. 복지카드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처럼 생겼다. 보건복지부에 장애인으로 등록하면 나오는 쯩. 우리반 아이들의 복지카드에는 발달지체, 지적장애가 적혀있다. 주말 이야기는 국어, 말하기 수업이다. 내가 교사가 된 후 10여년 이 수업을 월요일마다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간단한 것을 반복해서 한다. 이 시간에 가르치는 건, 첫 번째 손을 들어서 자기 순서를 정할 때까지 기다리기, 둘째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 한 번에 한 가지씩 말하기, 셋째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는 가만히 듣고 있기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는 귀가 아프다고 말한다.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집게 손가락을 세워서 ‘쉿’ 한다. 내가 하는 말은 반은 몸짓인 것 같다. 내가 읽는 것도 반은 몸이다. 모든 사람이 발표를 하는데 잠자거나 잠자코 있는 아이에게는 손을 들어서 “저는요 할 말 없어요. 다음에 할께요.”를 연습하게 한다. 이 말은 “생각나면 할께요.”가 될 때가 있다. 손을 들고, 말로든 행동으로든 자기를 표현한 아이에게는 “잘 들었습니다. 오늘도 아주 잘 말해주었어요. 수고했어요.”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아이가 표현하는 걸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있다

6학년은 모두 말을 할 줄 안다. 4학년은 한 아이만 말을 할 수 있다.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는 두 아이는 혼자서 학교에 올 수 없기 때문에 부모님이 모두 아침마다 아이를 데려다 주신다. 보통 아이는 1학년 3월 한두 주만 데려다 주면 되는데, 이 어머님들은 6년 내내 등하교를 같이 하신다. 직장을 다니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자라지 않는 아이’라고 펄벅여사는 말했는데 내 생각에는 '더디 자라는 아이‘인 것 같다. 어떤 특수교사 겸업 동화작가는 '손톱만큼 자란다'고 말했다. 손톱만큼 자라다가 어느 정도에서 멈추는 것 같다.      

아이에게 말대신 행동으로 표현하는 걸 가르칠 때가 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아이는 손을 모으고 교회 글자를 한 글자씩 따라 말한다. 이 아이는 아빠와 오빠의 발음이 헤깔린다. 숫자 5를 읽을 때 인디언처럼 입에 손을 대고 오오오 해야 한다. 우리 교실에 지금 오빠가 여럿인게 좋다. 나는 오빠라는 대답이 나올만한 질문을 많이 해서 오빠를 발음하게 한다다른 아이는 잠을 잤다는 의미로 귀를 손에 댄다. 고기를 쌈에 싸서 먹었다는 의미로 손바닥에 놓인 것을 입에 넣어 냠냠 씹는 흉내를 낸다. 여전히 할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의미로 할아버지의 엉덩이를 콕 찌르는 모양을 낸다. 아이를 데려다 주고 가시는 엄마에게 미리 물어본 내용이 나오면 그걸로 내가 행동을 해독하고 안 나오면 아이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6학년 아이 중에는 주말동안 스카우트 마당야영에 참여한 아이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 치고 자는 거다. 라벤 후속 태풍 때문에 지난 주 내내 비 올까봐 아이가 아침마다 걱정말 했었다. 다행히 개었다. 나도 밤과 새벽에 와 보았다. 지역주민답게 월남치마에 민낯에 고무신 신고 왔었다. 자기네 텐트는 6호였단다. 알았으면 텐트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컵라면 먹는지, 3분 카레 먹는지 염탐했을건데 못했다. 의기충천한 아이가 보기 좋다.

별 일 없었구나 그럼 잘 보낸거네. 주말 동안 잘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한 주가 잘 시작되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귀 기울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같다. "미안해 들으려 노력했는데 못 알아듣겠어.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 너 많이 답답하겠다. 어쩌냐?" 라고 말해주는 걸로 매번 끝나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보완대체의사소통을 가르쳐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할 수 있고, 글자를 보고 쓸 수 있는 6학년 아이들을 위해서 짧은 3개의 문장으로 발표를 정리해준다. "1.용현동에서 가족들이 밥 먹었다. 2. 고기 먹었다. 3. 막내동생이 태권도 은메달을 땄다" 이걸 아이가 한 글자씩 그림 일기장에 보고적는다. 그 후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면 거의 종칠 시간이다. 그림은 메달의 동그라미를 그리는 걸로 끝이다. 읽기 과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자신이 쓰고 그린 그림일기공책을 읽는 건 아주 좋아한다기 보담은 덜 싫어한다. 이게 이 아이의 국어, 작문 공부다. 나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별도장을 남발한다.     

이 아이들과 2학기 목표를 정하는 시즌이다. 2학기 넉 달 동안 노력해서 얼만큼 성취할 수 있을까? 지난 주에 뒷 게시판 나무에 달 오렌지를 만들었다. 거기다가 아이별로 사진과 이름, 목표를 적고 상을 적었다. 지금 이름을 쓰지 못하는 두 아이는 4달 후에 이름을 덮어 쓸 수 있을까없을 거다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는 그림일기의 수에 따라 문화상품권을 갖겠다 했고, 책 읽는 권수에 따라 같이 갈비 먹으러 가겠다고 한 아이도 있다. 이제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으니 아이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다.    

장애 있는 우리반 아이들과 어머님들은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최선을 다해 몇 년 째 선긋기를 하고, 최선을 다해 숟가락질을 하고, 양치질을 한다. 나는 종종 우리반 아이들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혼자 묻는다. 인구의 정상분포 곡선에서 정상범위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일정 부분 있는 게 '정상'이다. 이건 자연과 우주의 존재방식이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이 공동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지향하는 가치,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지를 측정하는 바로미터 같다고 느낀다. 나주에서 태풍이 불던 날 일어난 일에 대해, 여덟살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는 뉴스를 읽었다. 나는 대통령이 왜 사과를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마땅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그 여자아이도 우리 반 아이들 같은 경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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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20:28:11 *.39.134.221

사람은 저마다 세상을 살아내는 결이 있는것 같다.

콩두도그렇고 우리 연구원들모두...누가 누구에게 어떤영향을 주면서 살아가는지에대한

고민을 많이 한 주였어.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잘 알아들을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소통해야 하는 것이 일인 너와

그것을 곁에서 지켜봐야하는 사람들과의 또다른 소통.

인간은 왜 누군가와 소통하면서 살아야 하는걸까.

왜 식물처럼 자가생식하면서 이동도 하지 않으면서 살면 안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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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16:58:31 *.114.49.161

행님 저는 다음에는 식물이 되고 싶어요. 아님 개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시각장애인 안내견 한 번 되어 보고 싶어요.  

근데요,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특별한 강아지만 선발되어 훈련받을 수 있어요.

어미와 돌보는 사람 양쪽과 애착을 잘 형성해야하거든요.

그래야 눈 먼 이의 목줄을 매고 갈 수 있다네요.

형님네 강아지 잘 크지요?

두 달은 어미 젖 먹여서 분양보낼 거라 하셨지요.

 

행님 저도 요새 소통이 과제입니다. 어려운 과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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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21:47:50 *.194.37.13

승가원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 곳에 있는 아이들의 하루 일상이 어떤지 궁금했었는데,

누님 글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누님을 생각하니, 잠깐 동안 아이들 목욕시켰다고 

봉사활동 점수를 챙기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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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17:03:41 *.114.49.161

한젤리타, 이 글을 칭찬으로 읽을까 말까요?

저는 오늘 했던 많은 뒷담화와 이런저런 것들을 고백하며

저의 실상을 공개해야 하나 요러고 있어요. 딸꾹 

 

한젤리타, 단란한 가족 알흠다워요.  

우리반 아이들의 아빠 또래시죠. 더 이쁘게 보실 겁니다.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적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요즘 조금 해요.

재미난 것들, 찡한 것들, 화 나는 것들, 말도 안되는 것들,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들...

근데 일상을 세밀히 보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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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11:32:52 *.252.144.139

일곱 살 둘째 딸 한글 가르치면서 참 어렵네요. 

날 닮아서 금방 잊어버리고 크게 깨우치치 못하니 누굴 탓하랴 싶다가도

가르치치도 않았는데 저절로 알더라는 누구누구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이 나지요.

그래도 매일 저녁 딸 아이랑 학습지 풀면서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렇게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큰 그림을 보는 날이 오겠지요.

 

매일 남의 자식들을 그런 마음으로 돌보는 콩두언니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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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17:07:17 *.114.49.161

('언니'에 놀라 / 그리고 매일 남의 자식들을 그런 마음으로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며)

어머 재경선배님, 왜 이러시와요. 땀 뻘뻘뻘...

저는 재경선배님이 보이면 그 주변 공기가 착 안정됨을 느끼며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입니다.

 

지난번 반야네에서 본 그 아가씨 말이지요?

서로 닮은 두 분을 닮은...

일곱살이면 한창 이쁘겠습니다.  

벌써 공부해야 되고 아 불쌍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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