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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1일 07시 5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일연(1206~1289, 희종2~충렬왕15)

 

일연이 태어난 해는 징기즈칸이 몽골족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하던 해이며, 최씨 무인정권과 몽골의 고려 침입을 함께 겪는 세월을 살았음. 14세에 설악산아래 양양의 진전사로 출가하여 78세에 국사國師가 된 고승. 1277(충렬왕3)부터 충령왕의 명에 따라 운문사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에 착수하며 인각사로 은퇴하여 완성함.

 

속명은 김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 호는 무극無極 목암睦庵

경주 장산군(현 경산시)출신으로 아버지는 지방향리 출신인 언필이다. 어머니는 이씨다.

 

9살에 광주 무등산의 무량사에 공부하러 들어간다. 당시 무인 집정자들의 횡포를 피해 지식인들이 절에 숨어든 경우가 많아 공부를 하기 위해서 산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5년간 무량사에 지내면서 유교경전과 한문학에 대한 기초를 닦은듯하고 불교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시절이기도 했다. 일연이 출가한 진전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첫 승려인 도의가 은거하며 수행하던 곳이다. 22세에 과거시험 승과에 합격, 몽골전란기의 상황속에서 경상도의 달성의 비슬산을 중심으로 수행함. 44세에 경상도 남해의 정림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세상에 이름이 드러난다.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첫 직장 인셈이란다. 55세에 남해에서 <중편조동오위>를 저술. 삼국유사와 함께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의 저술. 이책은 일연의 수행과 학문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고 함. 78세에 국사가 된 그는 개성에 머물러야 하지만 일년후 고향에 돌아온다. 당시 96세인 어머니와 마지막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1289 84세의 나이로 입적함. 20세기에 들어서 삼국유사와 함께 유명해지기 시작하지만 당대에 꽤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불교가 국교인 고려사회에서 국사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다. 삼국사기를 정사라 한다면 삼국유사를 야사라고 불리우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던 세월이 길었다는 이야기이다. 일연은 불교의 다양한 면모를 접하고 익혔을뿐만 아니라 유교에도 익숙했으며 특정신앙이나 종파에 얽메이지 않고 여러계통의 신앙과 사상에 정통했다. 

 

<삼국유사>

 

일연은 불교의 다양한 면모를 접하고 익혔을뿐만 아니라 유교에도 익숙했으며 특정신앙이나 종파에 얽메이지 않고 여러계통의 신앙과 사상에 정통했음. 종합지식인으로의 면모가 삼국유사가 특정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을수 있었던 근간이 되었을 것임.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등 9개의 편으로 구성. 전체적인 구성은 연대기로서의 왕력, 준역사서로서 기이, 불교 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한 흥법이하의 여러편으로 삼대분 할 수 있다. 일연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이야기속에 풀어넣는 방식으로 삼국유사를 기록했다. 한 왕대에 대표적인 사건을 서술하고 그 사건을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낸다. 삼국유사는 시대별나열방식이 아니라 주제별로 분류하여 정리한다. 그는 역사를 왕 중심이 아니라 이야기와 주인공 중심으로 생각했으며 신분의 높고낮음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삼국유사가 유독 신라 중심적 서술이 된 것은 일연의 거주지역과 상관이 있을듯하다. 경북이 출생지이고 강원도와 전라도 경기도 각 9,10,5년을 제외하면 60년가량을 경상도에서 생활한 것이 자연스럽게 신라중심적 기술이 된듯하다.

 

<나의 의견>

다시 읽는 <삼국유사>에서 찾아낸 소중한 한 가지, 사랑을 담아내고 싶었다. 황룡사 터를 배경으로 하얀 별빛과 노란 가로등 불빛에 처연히 빛나던 분황사 당간지주에 서린 원효의 고독한 사랑. 점점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부석사 석등에 묻어 있는 온갖 번뇌에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켜 내는 의상의 순결한 사랑. 몸통만 남은 깨진 불상을 위해 촛불을 밝히는 촌노의 손끝에 실린 욱면의 순박한 사랑, 낭산 너머로 지는 해를 아쉬워하며 먼발치에서 까치발로 서성대는 익모초에 담긴 지귀의 짝사랑_ 양진 님의 글중에서. 솥 안의 국 맛을 책임지는 특별한 한 점 고기를 희망한다는 분의 말이다. 

2012년 상반기를 그리스신화를 읽으며 보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무지의 소치로 나이 오십이 다 되어가서야 신화를 접하게 되었다. 늦게 접한 신화이기에 그것들 읽는 코드를 젊은이들보다 더 잘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필두로 변신이야기 그리스인 이야기 그리스비극 문명이야기등등고대와 중세에 걸친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의 욕망은 변한 것이 없으며 날 것은 똑같음을 알아가는 기분좋은 한 해에 그리스 신화보다 더 재밌는 우리의 이야기를 접한다. 누구는 그리스로마신화 부럽지 않다라고 하는데 내가 원문을 읽어낼 능력이 된다면 그러겠다 싶다. 우리가 나고 자란 우리네 고장을 두루두루 다니면서 읽는 재미도 좋을듯하다. 이번 여름 신화의 고장을 다녀오느라 기백만원을 쓰고 물론 그 값 이상을 느끼고 보고 왔지만 정작 우리 것에 대한 무지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다행이 근래에 삼국유사를 자신만의 글로 다시 펴 내는 작업들이 활발하다. 반가운 일이다. 우리의 역사, 야사를 읽어내는 코드는 기본적으로 탑재 되어 있지 않을까몽고의 침입을 받는 어려운 시기에 일찍 출가한 일연이 늙으막에 삼국유사를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이미 삼국사기라는 역사서가 출간되었으나 그 내용의 미흡함과 동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똑 같은 비중의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며 글을 적는 저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직 이 고승의 깊이를 파악하지 못한 중생은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참조 : 우리가 알아야할 삼국유사 운기/현암사

http://blog.daum.net/helimkim/11763994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8a1602a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66455&CMPT_CD=P0001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89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iver9100&logNo=30139929457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625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6729&mobile&categoryId=200001079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0128&mobile&categoryId=958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기이(紀異) 

이 땅의 첫 나라

 

11 단군 신화(檀君神話)를 실었다는 것 그 하나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왔다.

애써 이시기를 눈감아버린 [삼국사기]의 태도와 견주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삼국유사]의 다른 곳이 아닌 그 책의 첫머리에 단군 신화를 실었다는 점으로 더욱 호들갑을 떨고 싶다.

 

12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꿈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큰 나라야 제 일을 제 방식으로 쓰면 된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늘 큰 나라가 만든 규범을 좇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 잡는다.

시대적 상황이나 전해지는 형태에 따라 상징은 필요할텐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상징을 풀어내는 코드가 필요해지겠다.

 

13 공룡이 살던 곳은 사람살기에도 좋았던가보다. 공룡이 놀던 바로 그 자리에 석기인이 살았는데, 그들은 병풍처럼 서 있는 커다란 바위를 도화지 삼아 무언가를 잔뜩 그려 놓았다. 또 한참이 흘러 이 바위는 신라 화랑들의 낙서로 가득채워졌다.

공룡이 살기 좋은 곳이 사람살기에도 좋은 곳.

 

14 세 부분으로 된 고조선

첫번째 부분은 <위서>라는 책에서 인용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2000년 전쯤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세웠다. 나라를 열러 조선이라 불렀는데, 요 임금과 같은 때이다.

 

15 두번째 부분은 <고기>에서 인용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몸통은 여기서 나온다.

 

옛날 환국의 아들 환웅은 하늘 아래 사람이 사는 세상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뜩을 알고, 아래로 세 봉우리가 속은 태백산을 굽어보니,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의 증표 세 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다. 환웅은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 곳을 일러 신시(神市)라 하였고, 스스로를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風伯, 雨師, 그리고 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운명, 질병, 형법, 선악을 주관하는 등 무릇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보고, 세상에 있으며 교화를 베풀었다.

 

16 홍익인간은 단군이 나라를 세우기 전 곧 그의 아버지 환웅과 할아버지 환국의 생각을 보여주는 말이다.

 

16 다음은 아들 단군을 낳는 이야기다

 

그 때 곰과 호랑이가 굴에 같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늘 환웅 신에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빌었다. 환웅 신은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므 낱을 주고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아라.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될 게야라고 말했다. 곰과 호랑이는 받아서 그것을 먹고 21일을 꺼렸다.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재대로 꺼리지 못해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곰 아가씨는 누구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다. 잉태하고 싶어 늘 신단수 아래에서 빌었다. 이에 환웅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 혼인하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이라 불렀다.

 

17 꺼린다는 것은 민간 신앙적 의식에서 특별히 조심한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21 단군 신화는 건국 신화다.

 

25 13세기 이 나라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당대의 문장가인 이규모가 [동명왕편]이라는 장편 서사시를 쓴 것은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고구려인의 기개를 한껏 살리면서, 고주몽의 생애를 장황히 읊은 이규보 [동명왕편]은 기실 민족의 발견이었다. 또 다른 문장가 이승휴는 시로 쓰는 이 나라의 역서 [제왕운기]에서 단군 신화부터 시작하였다. 이승휴는 일연과 동시대 사람일뿐만 아니라, 함께 시를 지으며 즐긴 가까운 벗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줄을 잇는 13세기였다.

 

29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은 일단 이 위만조선에서 끝난다. 위만조선이 세원진 것은 한나라 초기 곧 기원전 195년경이다.

 

33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위만조선까지 조선의 시대는 강력한 한나라의 침공 앞에서 막을 내린다. 그리고 한나라에 의해 세워진 4군과 그 밖의 작은 나라들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없어지는, 한반도판 전국시대가 당분간 이어진다.

 

34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중국 쪽 역사서에서 조선에 관한 기사를 모두 찾아보고, 그것을 인연 나름대로 정리해 크게 두 개의 제목을 써서 정리한 것인데, 일관성과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조 와 위만조선조를 나란히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구려와 북방계

 

북방계의 시작, 부여

37 [전한서]에서는 선제 신작 3년은 임술년(기원전59)인데, 48일에 하늘님이 흘승골성(訖升骨城)에 내려와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도읍을 정한 다음 왕이라 불렀다. 나라의 이름은 북부여요 스스로 해모수라고 불렀다. 아들을 낳아 부루라 하였는데, 해라는 글자를 성으로 삼았다. 부루왕은 뒤에 옥황사제 곧 하늘님 해모수의 명을 받들어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동명왕이 북부여를 이러 졸본주에 도읍을 세우고 졸본부여라 하였으니, 곧 고구려의 시초이다.

 

43 [삼국사기] [고기]의 신이한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아싿. 그것을 받아들인 일연의 [삼국유사]에 와서 주몽은 [삼국사기]에서보다 더 확실히 하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삼국사기]가 금기시하는 것들이 이미 무너졌을 때, 그 존재를 회복한 것은 단군만이 아니다. 이렇듯 주몽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3 난생신화(卵生神話)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44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신라와 남방계

 

[신라라는 이름] 일연은 신라라는 나라 이름에 대해 서라벌 또 서벌 이라 하였고, 어떤 이는 사라 또 사로라고도 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서 서벌이 나중에 서울로 바뀌어 나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다음 이어서, 처음에 왕이 계정에서 태어났으므로 어떤 이는 계림국이라고도 하는데, 계룡이 나타나는 것을 상서롭게 여긴 까닭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가 태어나던 밤, 닭이 숲 속에서 울었으므로 나라 이름을 고쳐 계림이라 했다고 한다. 뒷날 마침내 신라 라는 이름을 정하였다고 정리하였다.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91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꺼어들면 곤란하다. 이런 주장들이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는다는 그럴듯하면서 거창한 명제 아래 시작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대목에 이르면 김일 선수 박치기를 보듯이 흥분하고, 흥분하다 보면 사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나아가 그렇게 흥분하는 심리란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에 지나지 않아 보여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살아 있는 역사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93 해와 달의 정령이 우리 나라를 버리고 지금 일본으로 가 버린 까닭에 이 같은 변괴가 일어났습니다. 왕은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찾아오게 하였다. 연오는 말하였다. 내가 이 나라에 이른 것은 하늘이 시켜서 된 일이다. 지금 어찌 돌아가겠는가? 그러나 왕비가 짠 가는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 지낸다면 될 것이다.

 

95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에 처음으로 일연은 [삼국사기]를 떠나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는데 매우 자신만만한 태도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96 일연은 승려다. 승려 생활을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운수행각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일연은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자기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승려라 해서 불교적인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미 앞서 단군 신화의 경우와 앞으로 소개할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의 관심은 광범하게 퍼져있다. 오늘날의 민속학자가 따로 없다.

 

96 영일은 한자어로 뜻을 풀었을 때 해를 맞는 고장이다. 동네 이름에서부터 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법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신라와 일본의 교통에서 영일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당연히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 두 가지가 자연스레 결합되어 나온 것이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다. 해와 달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우주의 그 어느 별보다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것은 고대인에게 더욱 절실했다 무당들이 모시는 가장 높은 신은 해와 달 별 곧 日月星辰이다. 고대 삶의 모습을 지금까지 충실히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고대인이 지녔을 사유방식의 틀을 읽는다.

 

102 문득 그 정령은 먼 다른 나라로 갔다. 그런데 정령의 존재를 알고 서둘러 따라온 신라 사람들을 우리의 아리따운 정령들은 맨손 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런 것이 우리 설화의 기본적인구조다. 그리고 그것은 누천 년을 이 땅에 자리잡고 살아온 우리네 사람들의 심성이기도 하다.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106 경상도에서는 해류만 타고도 일본 서쪽 해안에 쉽게 닿는다. 옛날로 올라갈수록 육로보다 해로를 통한 교통이 더 활발했다. 고대 사회에 이룩된 일본의 문물 대부분이 백제를 통해서 들어와 만들어진 것들이지만, 사회의 밑바닥을 흐르는 교류는 역시 좀더 가까운 경상도 쪽 곧 신라와 더 빈번했으리라 보인다. 그것이 탈이었을까, 너무 가깝고 너무 쉽게 갈 수 있으니, 좋은 사이로 지내기도 하려니와 싸움도 잦았다.

 

107 일본열도에 단일 국가로서 고대 왕조가 성립된 때를 대개 4세기이후로 보고 있다. 그 이전은 각 지역마다 작은 부족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삼구사기]와 같은 우리 쪽 역사서는 이들을 통칭하여 왜라고 불렀던 것 같다. 신라를 괴롭혔던 왜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왜는 친교를 하고, 어떤 왜는 침공을 했다.

 

109 가까운 사이라고 함부로 대하다 보면 틀어지기 마련이다.

 

110 박제상이 첩보원 같은 신분으로 일본에 들어가고, 왕자를 구출한 다음 모진 고문을 받으며 끝내 목숨을 잃는 사건의 전말, 거기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 쪽에 있다.

 

111 제상은 왕명을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112 왕이 보해를 보고 미해를 생각하는 마음 더한 것을 보자 제상은 그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바로 가서 율포 해변가에 이르렀다. 부인이 이를 듣고 말을 달려 율포에 이르러 보니, 남편은 이미 배에 올라타 있었다. 부인이 부르는 소리 간절하건만, 제상은 다만 손을 흔들 뿐 머물지 않았다.고 일연은 쓰고 있다.

 

114 저는 공의 생명을 구하여 대왕의 마음만 위로한다면 족합니다. 어찌 살아남기를 바라겠습니까?

 

116 한반도의 가장 가까운 신라가 그들과 적대 관계로 정착되는 상징적인 사건, 나는 그것을 박제상의 죽음으로 본다.

 

118 신라 왕실 내부의 갈등이 아닌 왜의 비인도적인 처사 쪽에 더 치중한 일연의 기술에서 우리는 어떤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고구려 사람들은 화살촉을 뽑아 내고 쏘는 시늉만 한 데 비해, 발바닥 거죽을 벗기고 갈대 위를 걷게 하는 왜왕의 고문은 처참하기만 하다. 이렇듯 처참한 장면을 집어넣은 일연의 의도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시점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몽고와 고려 연합군의 일본 정벌을 나섰던 때와 시기를 같이 하고 있다.

 

119 두 차례의 정벌 사업이 끝난 다음, 개성으로 돌아가는 왕을 따라가서 국사의 자리에 오른다. 그의 나이 77세 때의 일이다. [삼국유사]는 이 무렵을 전후로 쓰여졌다.

 

만파식적에 대해서는 이 신령스런 피리가 단순히 외적을 막는 데만 쓰이지 않고,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치료되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때는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진다고 하였다. 일연의 눈은 보다 더 크고 궁극적인 데로 향하여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도 걸리게 했다는 점만 유의하기로 하자.

 

밤에 찾아오는 손님

 

120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 사람이 이씨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121 도화녀와 비형랑조는 전형적인 야래자 유형의 설화다.

 

125 봄꽃이라면 뭐든 아름답다 하나 복사꽃을 따를 만할까? 희다면 희고 붉다면 붉은 꽃, 그 두가지 빛이 어우러져 먼 데서 보면 뾰족하게 이제 막 피어나는 소녀의 맑고 붉은 볼을 연상시키는 꽃이다. 그것은 도연명이 묘사한 무릉도원이라는 이상향을 장식한 꽃이기도 하였다. 도화랑은 그렇게 어여쁜 여자였던가 보다.

 

126 왕은 7일간 머물렀다. 늘 다섯 빛깔의 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했다. 7일이 지난 다음 홀연 자취를 감추고, 여자는 그로 인해 태기가 있었다. 달이 차서 출산을 하려할 때 천지가 진동하였다. 남자 아이 하나를 낳아 이름을 비형이라 하였다.

 

130 그가 밤에 나가 귀신들과 논 곳을 일연은 황천의 언덕 위라고 했다.

 

131 하천 세 줄기가 합치는 황천은 더욱이 주변 지역의 지형을 많이 바꿔 놓았다고 하는데, 황천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연유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이 상주하기가 어려웠고, 자연 귀시니들의 놀이터로 알맞았던 듯하다.

 

133 귀신은 사람을 돕는 존재이면서, 그것을 어겼을 경우 엄정한 벌을 받는다는 데까지 나가 있는 것이다.

 

134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造化다.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만 있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어쩌면 귀신의 세계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가 역설적으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듯하다.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147 석가모니가 열반하고 647000만년 뒤에 오신다는 부처님이 미륵이다.

 

147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에 씌운 我相은 그토록 완고한 법이다.

 

150 귀산과 추앙이라는 화랑이 원광과 나눈 대화다.

저희들은 꽉 막혀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한 말씀 주셔서 죽기까지 계를 삼기를 바랍니다.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따로 열 가지가 있다. 자네들은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감당할 수 없을 듯 싶다.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섬기되 효성스럽게 할 거시요. 셋째 친구와 사귀되 믿음으로 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요. 다섯째 산 것을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152 원광이후 신라 불교를 일으킨 삼총사라면 역시 자장, 원효, 의상이다.

자장은 황룡사 구층탑을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153 신라의 고승 세 사람이 모두 국가의 중대사에 참여하고 있다. 신라인의 사상적 무장은 이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것은 곧 국력의 신장으로 이어졌다.

 

한반도의 한 쪽에 치우쳐 농토도 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서는 일본으로부터 안으로는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려햐 했던 신라다. 시련 속에서 연단되는 것일까. 그같이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살아나갈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153 진흥왕은 나라의 흥망은 하늘에 달린 것이오.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감히 넘보겠소. 이 말은 고구려 쪽에 전해졌다.

 

159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177 동생의 처지가 처량해서만 그랬을 리 없다. 일은 제가 벌여 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 있다. 남자의 정치적욕망에 희생양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184 엣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고 말아, 꼴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 갓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방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금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면서 화장을 하라고 유언한다. 문무왕-

 

186 문무왕이 왜병을 무찌르고자 이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바다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개요2(682)에 일을 마치고, 금당의 아래를 밀어 동쪽으로 구멍하나는 뚫었거니와, 이는 용이 절에 들어와 돌아다니게 마련한 것이다. 유언대로 뼈를 묻은 곳을 대왕암이라 이름하고, 절은 감은사라 하였다. 뒤에 용이 나타난 모습을 본 것을 이견대라 이름지었다.

 

189 이 산이 대나무와 함께 쪼개지기도 하고 오므라지기도 하니 어쩐 일입니까?

비유컨대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라는 물건은 오므라진 다음에야 소리가 나지요. 훌륭한 임금이 이 소리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황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신 왕은 바다 가운데 큰 용이 되어 있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서, 두 분 성인이 한 마음으로 이런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내어놓고, 날더러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놀라 기뻐하며, 다섯 가지 색깔이 칠해진 비단이며 금과 옥으로 제사를 드렸다. 신하를 시켜 대나무를 잘라 바다에서 나오자, 산과 용은 어느덧 하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권력의 끝

 

토사구팽 그 비정한 원칙

 

196 권불십년이라, 거기에 예외가 될 사람 또한 없다. 최소한 그 권력을 좋아하고 함깨 쫓아 다닌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사냥개 신세로 바꿀지 아무도 모른다.

 

212 득오의[모죽지랑가]는 인생의 무상함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인 동시에 삼국 통일 후 당해야 했던 화랑출신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가 버린 봄을 그리워하자니

모든 것이 울어야 할 슬픔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눈 돌릴 사이

만나보리 어찌 이류랴

님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 있우리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226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이오리라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 꽃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선물은 노래이다. 손에 잡은 암소도 놓고 그렇게 정중히 꽃을 바치는 노인의 태도야말로 헌신하는 자의 상징이다. 꽃을 탐내는 여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모름지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 바꾸는 사랑이라면 최고의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227 용의 우리 옛말은 미르이고 미르과 같다. 용은 물에서 살며 바다의 왕은 용왕이다. 그래서 [삼국육사]에서도 숱하게 나오는 용은 항상 바다, 연못, 천둥번개등 물과 관련되어 있다.

 

232 1호선이 목포에서 서울을 지나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서쪽선이고 7호선은 부산을 출발해 우너산까지 이어지는 동쪽선이다. 35는 그 중간에 놓인다. 1.3.5호선이 모두 태백산맥의 서쪽에 놓인 데 비해, 오직 관동지방의 유일한 길이란 점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첫 성전환증 환자

 

235 경덕왕때 두 사람의 뛰어난 향가 시인이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물론 충담사와 월명사이다.

 

241 죽은 누이를 위해 부르는 노래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왕이 되는 자

 

262 기이편의 48대 경문대왕조에서 20살 국선 응렴에게 헌안대왕이 물으니낭이 국선이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며 어떤 재미있는 일을 보았느냐? 좋은 일 세가지를 보았난이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267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서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갈 사람이라도 시대의 운이 뒷받쳐 주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비극을 향해 간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소용돌이의 중심에 던져진 사람은 그 세계관이 비극적이다. 경문왕이야말로 그런 비극적 세계관의 주인공이다.

 

나라가 망하는 징조

 

270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 옳은 충고란 쇠귀에 경 읽기도 아니다.

 

271 백성이야 어차피 어떤 나라가 서도 백성, 제 정권 지키자고 혈안이 된 자들에게 당하는 백성의 희생을 우리는 진정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272 어떤 메시지를 표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객관적 사실만 나열시켜 놓고 읽는 이들에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일종의 상징적 기술임을 알 수 있다. 무엇을 상징하는 가는 명약하다. 자연의 이상 변동을 기록하는 사관의 뜻은 그것이 사람의 잘못으로 구체적으로 정치의 불안정이겠지만,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어려움이 닥친다는 경고에 있을 것이다.

 

286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무슨 신나는 일이라고 장황히 적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기미를 보아 사리를 판단하는 법이다. 시절은 바뀌었어도 사람이 세상에 사는 한 언제든 잘 되고 잘못되는 징조가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거기서 기미를 읽어내라는 간절한 충정으로 보인다 

 

지는 해 뜨는 해

 

289 억울한 일을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박에 하늘이라도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간절해도, 끝내 가슴에 품어야 할 답답한 현실이 엄연하지 않던가? 사필귀정이요 새옹지마라 하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는 아니, 다만 그 말대로 이뤄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쪽이다.

 

302 경순왕이 항복할 때 향기롭게 장식된마차가 30여리에 길을 가득 메우고, 태조는 바깥까지 나가 맞이하여 동쪽 한 구역의 궁을 내려주었으며 큰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삼게 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두 아들의 출가는 한층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버지 경순왕은 새 나라 고려의 부마가 되어 40여년을 더 살다가 죽었는데 말이다.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327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28 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서울의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다 그 못의 용과 정을 통해 그를 낳았다. 어려서 이름은 서동인데, 재주와 도량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늘 마를 캐서 팔아다 생활했으므로, 이곳 사람들이 이름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전형적인 영웅의 일생첫머리다. 기이한 출생, 특이한 능력의 소유자, 그 때문에 받는 고난 등의 배치가 그렇다.

 

338 등오랑은 마를 캐는 곳의 흙이 모두 황금이었는데도, 그것이 보물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어느 날 부인이 아버지의 심부름꾼에게서 받아 온 한 보자기의 사금을 가지고 밭에 나간 등오랑은 기러기에게 뿌려 주고 돌아올 정도였다. 부인에게서 그것이 보물임을 알게 된 다음, 산에 들어가 엄청난 황금을 가지고 돌아와, 두 사람은 큰 부자가 된다. 한편 중국에서 자기 복을 자기가 타고 났다고 말해 쫓겨난 공주의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왕이 세 딸을 모아 놓고 누구의 덕으로 행복하게 사느냐고 물었다. 위의 두 딸은 아버지 덕이라고 말했으나, 막내딸은 자기가 타고난 복이라고 말해, 화가 난 왕에게 버림을 받았다. 공주는 가난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가난한 남자는 돈의 가치를 공주에게서 배워, 결국 두 사람은 큰 부자가 된다. 왕의 막내딸의 말이 맞았음을 알았다.

 

338 백제는 발전된 항해술을 이용해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교를 그때 그때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화해서 토착시키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충청남도 예산의 사면석불이다. 서는 미타불을 동은 약사불을 남은 석가불을 북은 미륵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사면석불의 배치에서 우리는 백제의 독자적인 불교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방은 아미타 정토이고 동방은 약사불이어서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남과 북은 석가가 태어난 남쪽의 인도와 견주어 미래불인 미륵은 북쪽인 백제에서 태어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342 [불설미륵하생경]의 한 구절이다. 대소 인민의 차등이 없고, 남녀간에 대소변을 보고자 하면 땅이 저절로 열렸다가, 보고 나면 문득 도로 합쳐지며, 껍질 없는 찹쌀이 저절로 달리는데, 지극히 향기롭고 아름다워 먹으면 병이 없다. 금은 진보와 차거, 마노, 진주, 호박등 각종 보배가 땅에 흩어져 있으나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고, 가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집어 들고 서로 이렇게 말한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물건 때문에 서로 해치고, 옥에 갇혀 무수한 고뇌를 받았다 하는데, 지금은 기왓장이나 돌과 같아서 아무도 지키려 하지 않는다.미래불로 오시는 미륵보살의 세상이 이렇기에 시대가 혼란해질수록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빨리 오기를 바라는 신앙이 만연하게 되었다. 이것은 중국에서 남북조시대의 혼란한 시기에 먼저 생겼고, 후백제의 견훤이 자신을 미륵의 하생이라 선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대체적으로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

 

견원, 비운의 영웅

348 하지만 포악하다고 말하는 것과, 투쟁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신비의 왕조, 가야

 

370 가야는 규모 면에서 작은 나라였다. 나라의 이름만 아니라 임금과 신하의 호칭 또한 없었으며, 다만 아홉 사람의 9간이 다스리는 100호에 75000명의 인구가 전부였다.가락국기의 시작과 끝은 작은 나라만큼 그렇게 소작하다.

 

372 상상의 동물로서 거북이는 왕왕 용의 다른 모습이거나 똑 같은 역할을 한다. 분명 신성한 동물의 하나다. 그러나 존대보다는 위협을 가하면서 심지어 구워먹겠다는 불경스런표현을 서슴지 않는 데에서 우리 옛 노래의 특이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삶을 개척하는 매우 강한 의지나 다름없다.

 

374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저는 곧 바다에 떠 멀리 신선이 먹는 대추를 찾고, 하늘로 가서 신선이 먹는 복숭아를 좇으며, 하챦은 사람이 외람되게도 왕을 모시고 용안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로 보는 역사

흥법(興法) 삼육유사의 후반부를 여는 첫 편이다. 세 나라가 솟발처럼 선 다음 처음 불교가 어떻게 들어왔는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가를 설명한 부분이다. 전반부와 달리 불교적 성격을 띤다. 처음 불교가 전래된 일, 탑과 절을 만든 경위, 고승들의 전기등

 

386 일연은 고대 삼국의 역사를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불교를 받아들여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가 나라의 흥망성괴와 곧바로 연결된다는 생각이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록 뒤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면서도 그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운 신라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나라라고 보는 것이다.

 

386 이 땅에 처음 온 승려 순도

이 땅에 가장 먼저 온 승려는 누구인가? 그는 바로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순도이다.

 

389 기록으로 놓고 보건대 고구려는 불교를 그다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것 같다. 잠시 뒤에 소개할 신라와 비교한다면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어떤 이유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고구려가 지닌 대륙적 기질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가 한다. 고구려라고 해서 민간 신앙이 없었을리 없고, 4세기 후반에 이르면 그것이 나름대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대륙과 연결된 큰 나라를 경영하는 고구려라면 어떤 새로운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굳이 막거나 감시할 만큼 자잘하지는 않았으리라.

 

백제에 이른 마라난타

고구려에 첫 승려가 온지 꼭 12년 뒤, 백제에도 중국의 승려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하러 온다.

 

398 금교에 눈 덮여 아니 녹으니

계림의 봄빛은 아직도 먼데

영리한 봄의 神 재주도 많아

모레네 집 매화꽃에 먼저 피었네

 

405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 피를 뿌려 목숨을 재촉할지라도 일곱 마리 짐승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내 뜻이 남을 이롭게 하는 데 있는데, 어찌 죄 없는 이를 죽이리요. 네가 비록 공덕을 쌓고자 하난 내가 죄를 피하는 게 낫지.

뭐라 해도 제 목숨만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커다란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지면, 부처님의 날이 다시 설 것이요, 임금께서 길이 평안하시리다.난새와 봉새의 새깨는 어려서도 하늘을 솟구칠 마음을 가지고,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도 파도를 헤쳐 나갈 기세를 품는다 했지. 네가 이와 같구나. 큰 선비의 행실이라 할 만하다.

이차돈이 스물 둘의 사인舍人이라는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왕(법흥왕)을 찾아가 이야기는 나누는 대목

 

411 의에 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

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 뒤

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일연이 이차돈의 죽음을 노래한 찬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417 황룡사는 옛 경주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신라의 한가운데였고, 지리상으로만 아닌 마음 속에서는 신라인이 상상하는 세계의 한가운데였다.

 

그 때 동행했던 후배 한 사람이 금당의 돌무더기 위에 올라가더니 한참을 누워 있는 것이었다. 여름 해가 어느덧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이었지만, 따가운 햇볕은 아직 꼬리가 남아있는 시간이었다. 모자로 얼굴을 덮고, 나중에는 오른발을 왼발 위에 턱 올려놓은 아주 편안한 자세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후배는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등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근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너의 등을 덮여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

 

420 아도가 와서 처음 지었다는 절이 바로 천경림의 흥륜사와 삼천기의 영흥사다.

 

430 황룡사 구층탑의 경우 철로된 받침대부터 높이가 42척이고, 그 아래로 183척이다고 적었을 뿐이다. 전체 높이가 225척이라는 것인데, 학계에서는 요즈음의 단위로 70미터 정도라고 추정한다. 불가사의한 높이다. 과연 얼마만한 건축 기술을 가졌기에 20층 아파트 높이의 탑을 세울 수 있었을까?

 

434 구층탑 찬한 시

이에 올라 보라, 어찌 九韓구한만의 항복을 보겠는가

비로소 천지가 특별히 평화로움을 깨닫겠네

 

라고 노래한다. 싸움이나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워지는 꿈, 그것은 일연이 구층탑을 보며 꾼 것이다.

 

436 일연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선배 승려 무의자가 쓴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자신의 마음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나는 들었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번지는 불길 속에서 한 쪽은 무간지옥을 보여 주더라고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일연이 탑상(塔像) 편에서 오대산과 월정사의 사적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잇는 데에는 그 생애와 관련해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다. 그 까닭으로부터 왜 일연이 황룡사를 다룬 것과 버금가게 월정사에다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게 된다.

 

440 문수보살을 흔히 出家출가의 보살이라 한다. 저 유명한 [화엄경]의 이야기에서, 문수 스스로 남쪽을 두루 돌며 깨닫고 동쪽으로 오는데, 거기서 만난 善財童子선재동자에게 남쪽으로 갈것을 권하는 대목이 있다. 곧 선재의 출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길에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누구든 수행의 첫 길은 무수보살로부터 시작한다. 또는 문수보살을 비유해서 세상의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있는 것처럼, 문수는 佛道불도를 닦아나가는 데 부모라고도 한다. 부모는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자다. 문수도 成佛성불의 그 같은 절대적 조력자라는 뜻이리라. 나아가 문수 신앙은 대체로 이런 문수보살의 성격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44 지난번 게를 번역해 주던 승려가 곧 문수지신입니다.

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성인인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 이라고 말한다.

 

448 문수보살은 매일 아침 서른여섯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일이 나열한다.

 

어떤 때는 부처의 얼굴로 나타나고

어떤 때는 보배스런 구슬로

부처의 눈 형태로

부처의 손 형태로

보배스런 탑의 형태로

부처의 머리 형태로

온갖 등의 형태로

금빛 나는 다리 형태로

금빛 나는 북의 형태로

금빛 나는 종의 형태로

신통한 모습으로

금빛 나는 누각의 형태로

금빛 나는 바퀴의 형태로

금강저의 형태로

금빛 나는 옹기 형태로

금빛 나는 비녀의 형태로

다섯 빛깔의 광명 형태로

다섯 빛깔의 원광 형태로

길상초의 형태로

푸른 연꽃의 형태로

금빛 나는 밭의 형태로

은빛 나는 밭의 형태로

부처의 발 형태로

번개 치는 형태로

여래가 솟아오르는 형태로

지신이 솟아오르는 형태로

금빛 나는 봉황의 현태로

금빛 나는 새의 형태로

말이 사자를 낳는 형태로

닭이 봉황을 낳는 형태로

푸른 용의 형태로

흰 코끼리의 형태로

까치의 형태로

소가 사자를 낳는 형태로

어린 돼지의 형태로

푸른 뱀의 형태로 나타났다.

 

450 忉利天도리천의 신이 하루 세 번에 걸쳐 설법을 들었고, 정거천의 무리들이 차를 끓여 바쳤으며, 40명의 성인들은 10척쯤 공중에 떠서 언제나 지켜 주었다. 가지고 있는 지팡이가 하루에 세 번 소리를 내며 세번씩 방을 둘러싸고 돌아, 이것을 종과 경쇠로 삼고 때를 따라 수련했다. 어떤때는 문수보살이 물을 길어 보천의 이마에 붓고 [成道記]을 주었다.

 

452 신효거사

들에서 학 다섯 마리를 보고 쐈다. 그 중 한 마리가 깃털 하나를 떨어뜨리고 가 버렸다. 거사가 그 깃털을 집어 눈을 가리고 사람을 보니, 사람이 모두 짐승들로 보였다. 그런 까닭에 고기를 얻지 못하고,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어머니에게 드렸다.

 

454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455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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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 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름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마음이 찾아갈 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472 부득은 이 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마저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오.” 라고 말하며 여자를 들인다. 게다가 부득은 여자를 자고 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밤이 깊어 여자에게 산기가 있자. 이 난처한 경우에도 정성스레 시중을 들어준다. 이 때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지극해서였을 뿐이다. 그런데 낭자의 출산을 위해 준비해 준 목욕물이 금빛으로 변한다. 낭자는 스스로 자기가 관음보살이라 밝히고, 스님의 대보리가 이루어지도록 돕겠다고 말한다.

 

481 중생의 뜻을 따르자고 박절히 내쫓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 것.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 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을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 그 자체가 관음보살의 현신인지도 모른다.

 

483 [삼국유사]이야기 가운데는 그 무대가 되는 절이나 절터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곳들도 많다. 더듬거리며 근처까지는 가지만 사진에 담을 것도 별로 없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야기도 마찬가지로 그저 백월산 아래 지천에 깔린 감나무만 찍었다.

 

484 詩로 완성되는 삼국유사

 

푸른 빛 떨어지는 바위 앞, 문 두드리는 소리

날 저문데 누가 그름 속 빗장 문을 당기는가

남쪽 암자 가까운데 그리로 갈 것이지

푸른 이끼 밟고서 내 들을 더럽히지 마로.

달달박박을 두고 쓴 일연의 시다.

 

골짜기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어디로 가리

남창에 자리 나니 머물다 가오

밤 깊어 백팔 염주 염불도 깊어만 가는데

이 소리 시끄러워 길손의 잠 깰까 두려워라.

노힐부득을 두고 쓴 시다.

 

485 여자를 외딴 암자에 들인 부득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不動心만의 그것은 아니었으리라. 자꾸만 갈라지는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염불소리는 밤 깊을수록 높아갈 수 밖에 없다. 深深轉이라는 표현은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문득, 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고 있을 가련한 여자를 생각하니, 염불도 한낱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염불로 공덕을 쌓는다고는 하나, 이럴 때의 염불은 손님의 곤한 잠만 방해할 뿐인 것이다. 일연은 부득의 그런 마음을 읽어내고 있다.

 

낙산사의 힘

 

496 만났으면서도 만난 줄 몰랐을 뿐이다. 그런 뜻밖의 만남이 곧 보살과의 만남임을 영원히 모르고 지났다면 사정은 다르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

 

499 처녀가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이야기는 [신약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506-507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에는 얼굴색이 곱고 나이도 어렸으며….별 볼일 없으면 버리고 됐다 싶으면 들러붙는 것이 사람 마음으로 감당못할 일, 그러나 가고 말고 사람의 뜻대로 안 될 일이요. 헤어짐과 만남 또한 운수가 있으니, 청컨대 이쯤에서 헤어지자 합니다.” 강하기는 여자가 더할까? 냉정히 현실을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여자가 더 빠를까? 구구절절이 가슴을 친다. 조신은 조목조목 올바른 말을 하는 부인 앞에서 기뻐했다고 일연은 적고 있다. 속없기는 그저 남자다.

 

508 일연이 임종을 한 지금 경상북도 군위군의 인각사 앞에 일연 시비를 세운 것은 1985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을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의해(義解) 고승의 삶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530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530 의상의 관형어가 화엄을 전한 분, 자장이 계율을 정한 분. 성사는 무엇에도 얽매지 않는 불교의 최고 경지를 이룬 분이라 해야 할까?

 

535 전설은 대체적으로 주인공과 전승자 사이에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541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사복이 글이 번거롭군요하더니 고쳐서 말했다. 죽고 남이 괴롭구나

 

545 한마디로 말하면 원효는 이 나라 불교의 첫 새벽이다. 그로 인해 한국 불교가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546 분황사는 만년의 원효가 거처한 곳이다

 

일연의 시

각승을 지어 처음 삼매의 요점을 열었고

뒤웅박 들고 춤추니 온 거리에 유행하였다네

달 맑은 요석궁 봄 잠은 옛일이니

문 닫힌 분황사 顧影고영 자리만 비었구나

 

시인은 원효의 소상이 있는 분황사를 찾아 왔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낳은 아들 설총이 죽은 아비의 유해를 부수어 만들었다는 그 소상 앞이다. 문득, 거추장스런 敎儀교의의 탈을 벗어 버리고, 하늘을 괼 아들을 얻으려 세속의 인연도 마다 않은 원효의 큰 뜻을 생각하는데, 아들 설총마저 아비 따라가 버린 분황사는 문만 굳게 닫았을 뿐 이젠 아무도 없다. 오직 그들ㅇ르 추억하는 시인만이 서 있을 뿐이다.

 

563 또 서울에 성곽을 쌓으려고 이미 명령이 관리들에게 내려졌는데, 의상법사가 듣고 글을 올렸다.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으면, 비록 풀이 가득 덮인 언덕에 금을 그어 이게 성곽이다라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감히 함부로 넘지 못할 것이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지 못하면 아무리 장성이 있더라도 재해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곧 성 쌓기를 중지시켰다.

 

568 부석사 의상의 비문에서는 일연이 그를 찬한 시에서 무성한 꽃들 고국에 심었으니 종남산과 태백산 똑 같은 봄이로다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577 천축 길 하늘 너머 만첩 산인데

가련타 순례자들 힘써 오르네

외로운 배 달빛 타고 몇 번이나 떠나갔건만

이제껏 구름 따라 한 석장 돌아옴을 보지 못했네

 

580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용기도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 맥없이 스러진다. 그러나 그것을 마다 않았던 순례자들을, 일연은 아름답고도 슬프게 추도하는 것이다.

 

586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은 대지의 胎태 곧 땅 속에 묻어 있는 어떤 것이다. 땅이 지닌 덕을 의인화하였다고도 하는데, 지장보살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과 함께, 죽은 이들의 구제자가 된다. 특히 죽은 이들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이 보살에게 빌어야 한다. 지금도 절에 가면 명부전이라는 불당이 있는데 거기서 바로 이 지장보살을 주불로 삼는다.

 

596 무릇 미륵 신앙이란 민중들의 삶에 더욱 밀착되는 법이다.

 

신주(神呪)

 

감통(感通) 신라사회가 불교를 받아들인 다음 민간 대중들에게까지 얼마만큼 체화되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623 그런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분의 옷 한 벌 없이 살아가는 한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리제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 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이 바로 신라 사회의 고갱이였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650 호랑이는 결국 호랑이 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룻밤 풋사랑도 아니고, 제 몸으로 낳은 자식까지 버려 두고 돌아간 건 사람 아닌 동물이기에 그러려니하고 말기에는 못내 뒷맛이 쓰다.

 

653 절의 이름은 망덕사. 후에 제망매가의 시인 월명사가 거처한 절로도 이름난 곳이지만 본디 당나라 황실을 위해 복을 빈다는 명목으로 지으면서 당나라에서 온 사신에게 사천왕사라고 둘러댄 바로 그 절이다.

 

657 사실 바위를 믿는 것은 우리에게는 민간 신앙의 전통이다. 큰바위 앞에 정한수를 떠놓고 치성 드리는 할머니, 그것은 이 나라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광경이고,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민간 신앙의 한 형태이리라. 그런 바위에 불상을 새겨 넣은 것은 민간 신앙과 불교의 절묘한 만남이었다. 남산의 불상은 거의 磨崖佛마애불이다.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불상을 말한다.

 

659 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흐릿한 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나머지는 불상을 보러 온 사람이 완성시키라는 조각가의 배려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660 옛날 계빈에 큰스님이 한 분 있었다. 아란야법을 하며 일왕사에 이르렀다. 절에서는 큰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문지기가 그의 옷차림이 초췌한 것을 보고, 문을 닫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처럼 여러 차례 초라한 옷차림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자 다른 방법을 썼다. 좋은 옷을 빌려 입고 온 것이다. 문지기가 보더니 막지 않고 들여보냈다. 자리를 차지한 다음 여러 가지 좋은 음식이 나오면 먼저 옷에게 주었다. 여러 사람이 물었다. 어째 그러시오?

내가 여러 차례 왔으나 그 때마다 들어오지 못했소. 이제 옷 때문에 이 자리를 차지했으니, 여러가지 음식이 나오면 그것을 옷에게 주어야 마땅하지요.

 

668 신라의 멸망원인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삼국사기를 그대로 인용해 놓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법을 섬기면서 그 폐단을 알지 못하였다. 마을마다 탑이 즐비하게 서고, 여러 백성들이 중의 옷을 입고 숨자, 군대와 농업은 점차 줄어들어 나라가 나날이 쇠약해졌다. 어찌 어지러워 망하지 않으리요.

 

피은(避隱) 세상을 떠나 숨어 사는 것

 

686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결국 연회는 왕의 사신이 찾아오자 제 업으로 받아야 할 줄 알고, 부르심대로 궁궐로 가서 국사에 임명되었다고 일연은 마지막에 쓰고 있다.

 

효선(孝善) 효행이 뛰어난 사람들의 전기를 묶은 것.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열어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쳔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712 노동요의 원조<공덕가>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설움 많은가

설움 많네

도량공덕

닦으러 오다.

 

743 다시 읽는 <삼국유사>에서 찾아낸 소중한 한 가지, 사랑을 담아내고 싶었다.

황룡사 터를 배경으로 하얀 별빛과 노란 가로등 불빛에 처연히 빛나던 분황사 당간지주에 서린 원효의 고독한 사랑. 점점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부석사 석등에 묻어 있는 온갖 번뇌에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켜 내는 의상의 순결한 사랑. 몸통만 남은 깨진 불상을 위해 촛불을 밝히는 촌노의 손끝에 실린 욱면의 순박한 사랑, 낭산 너머로 지는 해를 아쉬워하며 먼발치에서 까치발로 서성대는 익모초에 담긴 지귀의 짝사랑.

 

3.       내가 작가라면

변신이야기를 읽으며 처음에는 오리무중이었다가 다른 책들을 덧입혀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조금씩 이해가 가는 나를 발견한 한 해이다. 조금씩 눈을 떠서 보니 주변에는 온통 신화가 아닌 것이 없었다. 이 땅에 나고 자란 사람으로 삼국유사를 이제 처음 접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는 한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삼국유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이야기만 있고 오리무중이다라고 하니 위안을 받아본다. 삼국을 무대로 적은 글이라고 하지만 일연이 나고 자란 DNA덕분인지 대부분의 이야기의 중심은 신라이다. 당대 지식인이었던 일연의 방대한 지식과 현장탐방을 통하여 쓰여진 한 줄도 버릴 것이 없는 글이라고 하니여기에 내 생각을 어떻게 덧붙여야 하는지 실은 잘 모르겠다. 당대의 특정사건을 제목으로 상징성을 가지고 기술한 일연의 순서에 따라 이 책의 역자는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불교를 근간으로 역사 문화 신화를 이야기를 풀어낸 삼국유사를 나만의 코드로 정리해볼 능력이 언제나 가능이나 할는지일단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마음으로 읽어낸 삼국유사를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먼저든다.

 

목차와 뼈대에 관하여

 

머리말

들어가며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일연, 혼미 속의 출구

사직 찍기는 참 재미있다/양진

찾아보기

 

감동적인 장절

 

448 문수보살은 매일 아침 서른여섯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일이 나열한다.

 

어떤 때는 부처의 얼굴로 나타나고

어떤 때는 보배스런 구슬로

부처의 눈 형태로

부처의 손 형태로

보배스런 탑의 형태로

부처의 머리 형태로

온갖 등의 형태로

금빛 나는 다리 형태로

금빛 나는 북의 형태로

금빛 나는 종의 형태로

신통한 모습으로

금빛 나는 누각의 형태로

금빛 나는 바퀴의 형태로

금강저의 형태로

금빛 나는 옹기 형태로

금빛 나는 비녀의 형태로

다섯 빛깔의 광명 형태로

다섯 빛깔의 원광 형태로

길상초의 형태로

푸른 연꽃의 형태로

금빛 나는 밭의 형태로

은빛 나는 밭의 형태로

부처의 발 형태로

번개 치는 형태로

여래가 솟아오르는 형태로

지신이 솟아오르는 형태로

금빛 나는 봉황의 현태로

금빛 나는 새의 형태로

말이 사자를 낳는 형태로

닭이 봉황을 낳는 형태로

푸른 용의 형태로

흰 코끼리의 형태로

까치의 형태로

소가 사자를 낳는 형태로

어린 돼지의 형태로

푸른 뱀의 형태로 나타났다.

 

<>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 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름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마음이 찾아갈 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음이 찾아갈 정처….

 

483 [삼국유사]이야기 가운데는 그 무대가 되는 절이나 절터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곳들도 많다. 더듬거리며 근처까지는 가지만 사진에 담을 것도 별로 없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야기도 마찬가지로 그저 백월산 아래 지천에 깔린 감나무만 찍었다.

삼국유사의 많은 곳은 눈을 감아야 보이는 곳이려니 생각하고 다니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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