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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1일 10시 15분 등록

쥐덫

 

 

쥐덫을 본 적이 있다. 끈끈이나 쥐약보다 잔인하다. 산짐승을 잡는 것과 똑같이 생겼는데 좀 작았다. 거기 미끼를 얹어두면 쥐가 발목이 물려서 밤새 찍찍거렸다. 발목이 잘린 것도 한 번 보았다. 얼마 전에 태풍 볼라벤에 갖혀서 집안에 있었다. 학교도 휴업을 했다. 나를 난파시키고 낙과시키고 가두는 것을 생각했다. 나를 잡히는 쥐덫, 태풍은 주로 내 생각의 틀인 것 같다. 거기 사로잡히면 몸이 아프거나, 깔아진다. 나는 건강한 편이고, 먹고 입고 자는데 그다지 걸리지 않고 까다롭지 않은데 어떤 생각이 내 시스템에 탑재되면 시스템이 불량상태가 된다. 3가지를 잡아본다

 

 

1. 남의 시선을 신경씀

 

집성촌에서 타성붙이로 살아남으려는 관점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는 남씨집성촌이었다. 남씨가 아닌 사람은 몇 집 되지 않았다. 일가붙이가 없는 상태에서 외지에서 들어와서 살아야 했다. 그러자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남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말없이 실속을 다져나가야 했다. 그런데 우리집은 며느리가 집을 간 집이었다. 그건 추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비스무리 한 것이 있었던 것 같다. 학생이 연애를 하면 안된다는 불문율도 있었고, 남 입에 절대 오르내리지 말아야 하고, 옷차림이 단정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종가도 아닌데 4대 봉사를 했다. 가족이 적고 친척이 적어서 죽은 조상이 의지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남의 시선에서 조금 더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또 현직교사이기 때문에 나는 움츠러든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많다. 옷차림에서부터 까치집을 지은 머리로 슈퍼에 술 사러 가면 안되고... 내 안에 천지삐까리로 빽빽하다.  

 

2. 아버지의 사랑에 묶임, 기대대로 하려고 함.

 

사람을 가장 강하게 묶는 것은 미움보다는 사랑인 것 같다. 나는 그런데 부모님 중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의견, 기대, 그리고 아버지의 꿈에 대해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아버지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를 생각했었다. 생각이라기 보담은 이심전심으로 아버지의 관점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강하기 때문에 좀 어긋나가 보려고 한다.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좀 문제라고 생각한다

 

3.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다, 버림받을 거라는 해석

 

이번에 극심하게 배가 아팠다. 만나는 사람이 나를 버릴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모른다. 이 생각에 묶인 나는 거의 자멸 직전이었다. 손톱이나 머리카락이 자라나오듯 나는 이런 걸 가지고 있다. 방학 때는 내 부모님이 나를 내어쳤다는 마음이 많이 올라왔다. 이 마음에 사로잡혀서 나는 삐진 상태로 오래 간다. 다운된다.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쥐덫이라 표현하고 며칠이 지났다. 생각을 해둔건 좀 되었으나 정리를 제 때 하지 않아 오프수업을 가서 다른 이의 수업을 기록하면서 중간중간 타이핑을 했었지. 이거 많이 해보던 짓이군. 깜지를 매일 아침에 가서 헐레벌떡 하던 기분이 새록새록 재생된다. 팔팔이 레몬이 쥐덫이라고 표현하면, 자신을 지나치게 탓하게 되고, 거기 빠지는 걸 나쁘게 보는 듯 하니 좀 긍정적으로 보면 어떨까 제안했었다. 그말이 맞다. 그 길로 갈 수도 있고 안 갈수도 있는데 하필 가면 내가 다친다는 의미였지. 밟아서 발목이 잘리면 문제긴 하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제 꼬리를 잘라놓고 도망가도 새로 꼬리가 나는 도마뱀, 허물을 벗어놓고 변태하는 나비나 매미가 아닌 다음에야 불구가 되는 거지. 영구치가 빠지면 보험을 들어 임플란트를 해야하고, 전쟁이나 교통사고로 팔이 하나 나가고, 지뢰를 밟아 다리가 없어져도 손끝과 발가락 사이가 가려울 때도 있는 인간인데 좀 생각이 극단적이긴 하다. 벽에 그림으로 그려진 쥐덫과 주름 많은 치마를 입은 어떤 여자의 허리춤에서 달그락거리는 장신구 형태의 칼과 쥐덫을 상상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적합하지 않은 비유였던가 보네. 자유를 제한당하는 거지 목숨이 위태로운 건 아니니까.     

 

 

 

 

1 페이지 자기 소개 초안

 

 

소혹성 B601에는 바오밥나무라고 부르는, 잡념깡통을 매일 따면서 자신이 잡념총량보존의 법칙에 영향을 받는 사람임을 알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방법을 언젠부터인가 골똘히 생각해 왔다. 절에 간 깡패님들의 이야기, 달마야 놀자 영화에서 항아리 채 강물에 던지라는 노스님 대사를 들었고, 콩쥐팥쥐 동화를 읽다가 콩쥐가 원님 잔치에 가도록 항아리 바닥에 웅크리고 엎드리던 두꺼비를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다.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사명이 이 질문과 통할 것 같은 감이 있다고 우긴다구미호, 여우누이, 우렁각시, 뱀파이어, 시티 오브 엔젤을 연민하며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상태이지만 사람이 되려는 꿈을 가진 그들의 소망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서른다섯에 스스로 지은 이름 콩두는 ‘콩쥐의 두꺼비’에서 출발했다. 잡념 속에서 계속 덧붙이고 있는 콩두의 내 맘대로 동음이의어는 이렇다.  

 

‘콩닥콩닥 두근두근의 준말‘이다. 이건 Follow your bliss에서 따왔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싶으면 가슴 뛰는 삶을 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읽었다. 무엇에 내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두근 하는지 잘 귀 기울여 들어보고 냅다 쫒아가겠다는 선언

 

콩자반과 콩고물, 된장간장의 콩두다. 콩 또는 콩으로 만든 음식은 맛있고 값싸고 만만하고 영양 많고 소화가 잘 된다. 농부가 콩을 심으면서 콩 한 알은 내가 먹고, 두 번째 콩알은 니가 먹고 세 번째 콩알은 새와 짐승을 먹이자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히 찡해져서 갖고 왔다.   

 

콩새 두 마리다. 콩새는 참새처럼 작고 공원이나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이고, 텃새로 흔히 오인된다. 하지만 이 새는 열 마리 남짓 무리를 지어서는 그 작은 몸으로 자신의 하늘길을 날아가는 철새다. 제 길이 무엇이든, 속도가 어떻든 작고 평범한 날개로 완주한 뒤 시침을 뚝 떼고 어린 애들이 찧고 까부는 걸 콩새 두 마리에게 비유하듯 하하히히호호 유쾌하게 살아간다. 그 새를 닮고 싶다.  

 

새벽 푸른빛 속에 일어나 진한 커피 한 잔 짠하게 마시며 모닝페이지 쓰고, 108배 하고, 나무 아래를 달리는 걸 몹시 사랑한다. 노을 내리는 산책에 환장한다. 낮에는 인천의 공립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로 12년째 일하고 있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8기연구원으로 동서양 고전의 숲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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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3 03:42:23 *.72.153.115

9월 수업주제가 자기를 묶고 있는 세가지 였군요.

'사랑과 그에 따른 기대'.  아, 이거 쫌 무서워요. 하하하. 제임스 조이스도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기대로 옭아맨 '어머니'를 꼽았잖아요. 저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한 게 많아서 그 핑계로 안하고 못하고 그런 것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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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4 08:04:31 *.114.49.161

정화님은 저하고 비슷하시네요.

정화님 댓글을 읽으며 제임스 조이스의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요.

빌려두었다가 읽지는 않고 반납했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 그의 전기...

저걸 써놓고 안달복달했어요. 대부분의 칼럼이 그렇지만

가장 나를 사랑했던 분 마음에 들고자 하는 나의 자세를 덫이라 표현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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