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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1일 11시 39분 등록

우리가정말알아야할 삼국유사

고운기 지음 / 양진 사진 (현암사)

 

 

I. 저자에 대하여 / 고운기

 

일연

 

일연.jpg

 

출생-사망 : 1206 ~ 1289

: 회연·일연

:  무극·목암

시호 : 보각

본명 : 견명

활동분야 : 종교, 문학

출생지 : 경북 경산

주요저서 : 삼국유사

  

민중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승려, 일연

[출처] 일연과 삼국유사|작성자 졸참

일연은 속성이 김씨이며, 현재의 경북 경산지역의 향리집안에서 태어났다. 9세에 출가한 다음 승과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후 불법을 닦는 과정에서 몽고병이 침략해왔을 때는 문수보살이 감응하여 피난처를 알려주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40대에 최우의 인척이었던 정안의 초청을 받고 남해분사대장도감에서 대장경 조판사업에 참여하면서 정계와 관련을 맺었다. 최씨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원종과 충렬왕의 존숭을 받았다. 77세 되던 해에는 충렬왕이 그를 국존으로 책봉하였으며, 임금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절하는 의례를 행할 정도로 일연을 후대하였다. 만년에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에서 선문을 총라하여 구산문도회를 두 번 개최하는 등 불교 교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일생동안 전국 각지의 절에서 승려생활을 하면서 일반민의 생활모습과 그들이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는 <삼국유사>를 편찬하는 데 상당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출처] 일연과 삼국유사|작성자 졸참

 

속성 김(). 이름 견명(見明). 자 회연(晦然)·일연(一然). 호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 보각(普覺). 탑호 정조(靜照). 경상북도 경산(慶山) 출생. 1214(고종 1) 9세에 전라도 해양(海陽:현 광주)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대웅(大雄) 밑에서 학문을 닦다가 1219년 승려가 되었다. 1227년 승과(僧科)에 급제, 1237삼중대사(三重大師), 1246년 선사(禪師), 1259대선사(大禪師)가 되었다. 1261(원종 2) 왕명으로 선월사(禪月寺) 주지가 되어 목우(牧牛)의 법을 이었다.

1268
년 운해사(雲海寺)에서 대덕(大德) 100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조직, 그 맹주가 되었다. 1277(충렬왕 3) 운문사(雲門寺) 주지가 되어 왕에게 법을 강론,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圓經沖照)의 호를 받았다. 1284년 경상북도 군위(軍威)인각사(麟角寺)를 중건하고 궁궐에서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열었다. 탑과 비는 인각사에, 행적비는 운문사에 있다.

저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한국 고대 신화와 설화 및 향가를 집대성한 책으로,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 《어록(語錄)》 《계승잡저(界乘雜著)》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 《조도(祖圖)》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제승법수(諸僧法數)》 《조정사원(祖庭事苑)》 《선문점송사원(禪門拈頌事苑)》 등이 있다.

 

고운기

 

고운기.jpg

 

고운기 : 교수, 시인

출생 : 1961 12 15 (전라남도 보성)

나이 : 52 (50)

별자리 : 사수자리

: 소띠

소속 : 한양대학교 (교수)

데뷔 :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경력사항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07.04~2008.03 일본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객원교수

2004.11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2002.09~2004.08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연구원

1999.09~2002.08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문학부 방문연구원

1996.03~1999.03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학력사항

1986 ~ 1994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1984 ~ 1986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 

1980 ~ 1984 한양대학교 국문학 학사 

1977 ~ 1980 숭문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하여 등단하였으며,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조교수와 일본 게이오(慶應)대학교 문학부 방문연구원,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고 시인의 저서로는 1997일연’, 1998새로 읽는 한국고시가’, 2001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 2002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2003북경거지’, 2006길 위의 삼국유사’, 2007한국 고전시가의 근대’, 2010삼국유사 글쓰기 감각’, 2011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등이 있다. 최근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을 펴냈다. 고운기는 평생의 작업으로스토리텔링 삼국유사시리즈를 15권으로 기획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에 상상력을 덧붙여 독자들이 역사서에 쉽게 다가가도록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첫 권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에서는 삼국유사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전리품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최남선에 의해 새롭게 알려지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 문화 연구는 많은데 비해 정작 텍스트로 연구한 경우는 드물다며 삼국유사에 천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두 번째 책인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은 일연의 글쓰기를 분석하는데 주력했다.

[출처] 북No.6 고운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삼국유사'|작성자 jackieyou

 

시집으로는 1987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1995섬강 그늘’, 2001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2008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등을 발간했다.

 

고운기는 삼국유사 전문가로 불린다. 그는 1986년 석사 논문을 쓸 때부터 시작해, 700년 전에 쓰인 역사책 한 권을 붙잡고 25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우린 이런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유사만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그는 삼국유사를한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책이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꼽는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길 위의 삼국유사> <일연을 묻는다>는 그의 삼국유사 3부작이다. 삼국유사 3부작은 독자들이 삼국유사에 접근하는 길을 크게 넓혀 놓았다. 또 텍스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텍스트를 생산한 현장을 담아냄으로써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고전의 현장에 가서 고전 속의 문구를 다시 떠올리는 자신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 대해고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고운기 작가 인터뷰중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우린 이런 사람이다라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유사만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고 교수는 삼국유사를한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책이라며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꼽는다. 지난 2002년 출간한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통해 삼국유사 읽기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최근길 위의 삼국유사’(미래M&B)일연을 묻는다’(현암사)를 잇달아 펴냈다. 앞의 책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의 현장을 밟아가며 쓴 기행문이고,나중 책은 비문으로만 남아있는 저자 일연의 일대기를 복원한 평전이다.

 

저로서는 삼국유사 3부작을 완성한 셈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삼국유사에 대한 책을 쓰겠지만 일단 매듭 하나를 지은 것이죠.”

삼국유사 3부작은 독자들이 삼국유사에 접근하는 길을 크게 넓혀놓았다. 또 텍스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텍스트를 생산한 현장을 담아냄으로써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는 고전의 현장에 가서 고전 속의 문구를 다시 떠올리는 자신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 대해고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고운기 교수에 따르면 삼국유사는 20세기에 재발견되었다. 조선 500년간 이 책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 책이 다시 발견된 것은 식민지 시대. 일본 학자들은 조선인을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반면 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국유사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13세기의 삼국유사가 20세기에 이르러 부활한 것이다. 고 교수는 삼국유사를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교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신화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18세기경에 와서야 정립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죠. 우리의 삼국유사도 계속 진보해야 합니다. 삼국유사가 좀더 친근하고 보편적으로 된다면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우리가정말알아야할 삼국유사

 

 

들어가며

 

P4 도저히 일어나라라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고정관념이 깨진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된다. 무인 정권 이후 고려는 전반기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P4 ‘”새로운 분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P4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P5 1206년에 태어나 13세기환 온전히 살다 간 일연은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시대의 변화를 겪었던 사람이다.

 

이 땅의 첫 나라

 

P12 정권 담당자도 바뀌고, 크나큰 나라 몽고와 20여 년에 걸친 전쟁도 겪었다. 곤고(困苦)한 세월이었다.

 

P21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군 신화는 건국 신화다. 이 땅 에서 첫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일연이 ‘고조선조를 시작하기 전에 서문을 붙었는데, 거기서 중국의 이러저러한 나라가 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음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P25 천자의 나라를 넘보자는 것 은 아니지만 적어도 눈치는 보지 않아도 되었고, 무인 정권이 내세웠던새로운 진서라는 대의명분에 상당한 힘이 실렸다.

 

고구려와 북방계

 

P36 하나의 체제가 무너진 다음 일정 한 혼란기를 거처 새로운 센서가 잡혀지는 것 또한 중국의 고대사가 그랬듯이 매우 자연스럽다.

 

P44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P52 백제의 지배층이 우세한 세력을 형성한 끝에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는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에 설명하겠거니와,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는 그 선조들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 다시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고구려에서 시작한 북방계 이동의 끝으로 보인다.

 

신라와 남방계

 

P59 박혁거세가 열세 살 떼인 기원전 57년에 신라가 섰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일연이 모두 같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신라는 삼국시대를 열었던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다 고구려의 동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P82~83 탈해는 여섯 부 족의 신임을 얻기에 그 근본이 너 그런 어려움을 물리치는 데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나마 약했다. 그런 어려움을 물리치는 데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나마 그가 타고난 재주에다 출중한 지략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다. 왕이 된 다음 그는 지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황위 에 오른 지 3년 만에 신라와 일본이 맺은 우호조약은 그 같은 사정을 말해준다.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P89 우리의 영웅 김일 선수는 몹쓸 병마저 얻어 만년을 쓸쓸히 지내고 있지만, 링에서 김일 선수를 괴롭히던 안토니오 이노키 선수는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대부 가 되어 그 인기를 느긋하게 끌어 나가고 있다.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P109가까운 사이라고 함부로 대하다 보면 틀어지기 마련이다. 왜의 잦은 침략을 받는 신라로서는 더 이상 그들을 가까이 하기 힘든 존재로 굳혀 갔으리라 보인다.

 

P111~112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 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축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 렴지 못히-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퓨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아겠습니다.”

 

P115 “차라리 신라 땅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을 것이 오. 차라리 신라 땅에서 갖은 매를 맞을지언정 왜나라의 벼슬은 받지 않겠노라”

 

밤에 찾아오는 손님

 

P120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P124 사량부에 사는 백성의 딸이 자태가 요염하고 얼굴이 예뻐 도화랑 (挑花娘) 이라 불리고 있었다 왕이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관계를 가지려 했다. 여 자가 말했다.

“여자가 지켜야 할 바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지아비가 있으면서 다른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비록 황제의 위력으로도 끝내 빼앗지 못합니다."

 

p134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면, 설화가 지난 내적 의미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조화(造化).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p137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엄 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신란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p140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p141 신라의 후진성을 인정하고 그 극복을 처음으로 꾀한 왕은 아무래도 법흥왕(514~539)일 것이다. 법제 정비와 불교 공인은 그의 가장 큰 업적이지만, 이 두 가지가 곧 후진성 탈피에 기치를 든 일이나 다름 없다.

 

P150~ 152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성기되 효성스럽게 할 것이요, 셋째 , 천구와 사귀되 믿음으로 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요,다섯째, 산 것을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P153 한반도의 한 쪽에 치우쳐 농토도 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서는 일본으로부터 안으로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려야 했던 신라다. 시련 속에서 연단되는 것일까, 그같이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살아나갈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p172 드디어 춘추의 나이 51, 진덕여왕이 승하하자 기회는 그에게 아왔다. 자신의 오른팔 김유신은 이제 누구도 거역 못하는 군부의 고 실력자가 되어 있었다. 유신은 신이(神異)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사비강에 이르렀을 때의 일 하나를 일연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p189 문무왕은 바다를 지키는 용이 , 김유신은 하늘을 지키는 벌이 되어 , 신라와 거기 사는 백성을 영원토록 평안히 해준다는 믿음 또한 거기 가세한다.

 

권력의 끝

 

p205 화랑은 바로 전쟁 영웅 그들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신라 통일의 ’할’ 은 화랑이 차지해 마땅하다. 그런 그들이 예인이며 남창이라니? 믿지 못할 일이지만 통일 이후 화랑 출신들이 걸어갔던 쇠락의 길 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한판 수긍이 가기도 한다. 화랑가운데 우두머리는 실권을 잃은 종이 호랑이로, 무리들은 주안을 잃은 처량한 신세로 이리저리 내쳐졌다. 철저한 토사구팽이다.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p219 신문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성덕왕과 경덕왕에 이르는 3대의 출궁 사건은 진골 세력들 사이에 벌어진 끊임없는 권력 투쟁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p219 문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성덕왕과 경덕왕에 이르는 3대의 출궁 사건은 진골 세력뜰 사이에 벌어진 끊임없는 권력 투쟁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끝내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은 바로 그 반역의 칼날에 목숨마저 잃는다. 신문왕 즉위년에서 시작해 혜공왕 폐위에 이르는 동안 그치지 않은 반역의 칼날, 그것은 김춘추 직계 후손의 쓸쓸한 종막을 불러 왔다.

 

P226 자주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라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 꽃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선물은 노 래이다. 손에 잡은 암소도 놓고 그렇게 정중히 꽃을 바치는 노인의 태도야말로 헌신하는  자의 상징이다. 찾을 탐내는 여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마, 모름지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 바꾸는 사랑이라면 최고의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P228 너무 아름다운 여자와 살아도 억울하다. 아름다운 이의 자태는 언 제나눈도둑들에게 노출되어 있어서, 홈쳐가도 잃은 줄 모르기 때 문이다. 그렇다고 감춰 놓고 있겠는가? 훔쳐간들 닮지 않는 것이라며 적선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그런데 순정공은 그 이상의 일을 당했다. 아예 부인을 빼앗긴 것이 다. 여기에 한 노인이 나타난다. 그가 앞서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 던 노인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세상을 살며 경험해 터득한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는 점이 같다. 그가 알려 준 방법은강원도의 힘이 아니라 한마디로여론의 힘이었다. ‘뭇입은 쇠라도 녹인다는 말은 원문에서중구삭금(聚口鍵金)’ 이라 표현되어 있다. ‘중구란 곧 오늘날의 여론, 또는 민중의 소리라고나 할까? 사람들의 일치된 생각 과 거기서 나오는 힘이 저 신물의 가공할 위셰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은 그렇게 힘을 모을 방법으로 노래를 권하였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그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슬러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쳐서 끌어내 구워서 먹을 테다

 

첫 성전환증 환자

 

P235 거기에다 한 가지 더 이유를 붙이자면, 경덕왕 때 두 사람의 뛰어난 향가 시인이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물론 충담사와 월명사다.

 

p241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라리

 

왕이 되는자

 

P257 왕은 이 피리가 진평왕 때 만들어졌다고 했으나 실은 신문왕이 그의 아버지 문무왕의 해중능 곧 대왕암에서 받아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P257 원성왕이 아버지로부터 만파식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앞서 나왔다. 그런데도 왕은 두 번씩이나 시치미를 떼고 있다. 금을 싸들고 찾아오는 사신들을 도리어 은을 주며 돌려세운다. 왕이 한 선의의 거짓말은 국보를 지키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지만 거절하되 어떤 다른 외교적 분쟁이 야기되지 않도록 섬세히 배려하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의 조섬스런 성격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P261~262 원성왕 사후 신라 왕실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기에 빠진다. 왕의 자리를 놓고 벌인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란 결국 정권을 잡고자 하는 진골 귀족 계급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이었는데, 특히 소성왕부터 헌안왕까지 9 6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세 명의 왕이 살해되면서 혼란은 극도에 달한다.

 

P264 “제가 말씀 드린 세 가지 좋은 일이 지금 나타났습니다. 큰딸을 맞아 들였으므로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하나요, 예전에 미모에 끌렸던 동생을 이제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둘째요, 언니를 맞아들였으므로 왕과 부인께서 기뻐하였음이 셋째입니다 .”

 

P267 우리는 어려서부터 서양의 동화를 들으면서 컸다. 거기에 따르는 구구한 해석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니 여기서 거들 일은 아니고, 설화가 지닌 우연한 일치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고자 하는 자리도 아니어서, 다만 우리 이야기가 해석의 여지에서 더 넓은데 어찌 그다지 철저히 외면당했는가 그 아쉬움만 표명해 두기로 하자.

 

나라가 망하는 징조

 

P272 자연의 이상 변동을 기록하는 사관의 뜻은 그것이 사람의 잘못으로, 구체적으로는 정치의 불안정이겠지만,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어려움이 닥친다는 경고에 있을 것이다.

 

P272 시절은 봄이 오고 여름이 왔으되, 어지러운 세상은 뜻밖에 펄펄 휘날리는 눈 속에 잠겨 간다.

 

P277 장보고는 8~9세기에 걸쳐 청해진 곧 지금의 진도, 완도, 신안 지방을 근거로 해상 왕국을 건설한 사람이다. 대체적으로 이 지역이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요충지였으므로, 여기를 장악한다는 것은 바로 동지나해의 해상권을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장보고의 죽음도 죽음이려니와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가져온 해상 왕국의 붕괴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최후가 어이없게도 권력다툼의 일개 희생양에 불과했다는 데에서 더욱 안타깝다. 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P286 기미(機微)를 보아 사리(事理)를 판단하는 법이다. 시절은 바뀌었어도 사람이 세상에 사는 한 언제든 잘 되고 잘못되는 징조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거기서 기미를 읽어내라는 간절한 충정으로 보인다.

 

지는 해 뜨는 해

 

p287 신라의 멸망의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성골과 진골들로만 채우는데, 그들이 나라 일을 맡아 해낼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졌을 때, 신라는 탄력성을 잃고 둔해지기 시작했다.

 

p289 하늘이 감옥을 흔들었다는 대목은 사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억울한 일을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박에 하늘이라도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간절해도, 끝내 가슴에 묻어야 할 답답한 현실이 엄연하지 않던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새옹지마(之馬)라 하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는 아니요, 다만 그 말대로 이련 선 경험을 해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쪽이다.

 

p289 이쯤에서 일연이 거타지의 이야기를 집어넣은 것은 참으로 절묘한 수순(手順)이다. 한 편의 아름다운 드라마 같은 이 이야기에서 거타지는 사실 새로운 나라가 준비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거타지는 『고려사』의 「세계(世系)』에 나오는 왕건(王建)의 할아버지 작제건(作帝建)과 닮은 인물이다.

 

P302 나 또한 앞서 비슷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교체라면, 어느 개인의 사유물처럼 정권을 휘둘러 무고한 희생만 초래하는 것에 비길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늘의 뜻이요, 왕조 사회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백성의 힘이다.

 

P303 김부식의 사론으로 넘어가 보자. 조선조에 들어 김부식은 사대주의 각에서도 민족적 주체성에서도 모두 공격을 받았다. 완벽한 중국 중심에 빠져든 한편의 유학자들은 그를 얼치기 사대주의자 정도로 보았고, 실학의 바탕에서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보려 했던 다른 한편 유학자들은 민족의 주체성을 모르는 지식인 정도로 보았다. 살아 있다면 김부식의 처지는 참으로 난처하겠다. 특히 이런 사론에서 밝힌 자신의 견해가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니, 차라리 쓰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었다.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P309 부여를여주라고도 부른다는 일연의 기록은 매우 값진 것이다. 일연 자신이 직접 자복사라는 절에 가 보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 다. 거기서 본 글을 바탕으로 지명의 유래를 확실히 고증해 놓고 있는 이런 대목이 『삼국유사』가 지닌 매력 가운데 하나다.

 

P315 일본 특히 왕실의 뿌리가 한반도라고 해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거나,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하는 따위의 생각은 참으로 난센스다. 한반도니 일본열도니 하는 말은 모두 후세가 만들어 낸 관념이다. 그들은 먹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던 당대의 생활인일 뿐이었다. 그 무렵 사람이 지금 살아온다면 그는 한반도라는 말도 일본열도라는 말도 모를 것이다.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P327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 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한 사회가 발전한다.

 

P330 영웅은 자기가 타고난 비범한 재주로 고난을 극복해 낸다. 서동은 이웃나라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고 있다. 첫발치고는 통도 크다.

여기에 「서동요」가 나온다. 물론 이 제목은 요즈음 학자들이 만든 것이다. 이런 종류의 노래를, 어린 아이들이 불렀다는 데에서 동 요, 그리고 그 내용이 어떤 목적한 상황을 이미 이룬 것처럼 상정하고 있다는 데에서 참요 또는 예언요라고 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동요요 참요라고 할 수 있다.

 

P337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나 전파되기 마련이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야기가 서로 비슷한 경우마저 있기도 하다.

 

P346 ‘미륵상 셋과 회전(會願), , 낭무(厭魔)를 각기 세 군데에 세웠다는 미륵사의 가람 구조는 미륵 사상의 삼론(三論)을 그대로 반영 한 것이다. 이 같은 구조는 황룡사의 조성으로, 다시 일본 나라의 동대사(東大츄)의 조성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견휜, 비운의 영웅

 

P347 실상 견훤은 백제 땅에서 나온 마지막 왕이다. 신라가 경순왕을 끝으로 왕의 역사를 마감했다고는 하나, 그의 외손자들이 고려조의 왕 }에 올랐고, 경주 출신의 지식인들이 상당수 고려 왕실의 요직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된다, 고구려 또한 고려로 그 정신사적 계승을 해주 었고, 고려조 중반에는 묘청이 평양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며 반란까지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러나 백제는 견훤으로 모든 것이 깨끗이 끝나고 말았다.

 

P363 능환만은 "왕을 가두고 그 아들을 세운 것은 네 꾀다. 신하된 도리에 마땅히 이라야 하단 말이냐,” 하고 목을 베었다.

 

신비의 왕조, 가야

 

P364 일연의 삼국유사에 실려 있기에 오늘날 소중한 자료로 남게 된베스트 3’를 뽑으라고 하면 무엇을 들겠는가? 내가 존경하는 어떤 선생님은 단군신화향가가락국기 이 세 가지에다 점을 찍었다.

 

P372 심지어 구워먹겠다는 불경스런 표현을 서슴지 않는 데에서 우리 옛 노래의 특이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삶을 개척하는 매우 강한 의지나 다름없다.

 

P378 먼 뱃길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서 석탑, 그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또 때로 찬란한 태양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으며 건너는 고해가 있다. 그 길을 지켜 주는 석탑.

 

불교로 보는 역사

 

P385 전반부와 달리 여기서부터 후반부의 『삼국유사』는 완연히 불교적 성격을 띤다. 처음 불교가 전래된 일, 탑과 절을 만든 경위, 고승들의 전기 등이 누벼지는데, 일연 자신이 승려 출신이기에 그랬을까, 전반부에 비해 이야기도 다채로울 뿐만 아니라 인용한 책도 다양하다.

 

P386 흥법은 곧 흥국이었다. 처음 불교를 받아들였으면서도 도쿄에 빠져 불교를 배척한 고구려는 멸망의 길을 걸었고, 우여곡절 끝에 불교의 세계에 접했으면서도 날로 번창한 신라는 그에 따라 나라도 번창해 갔다. 물론 일연은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흥법 편의 여선 가지 이야기에 숨어 있는 메시지야말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일단 이것을 인연이 지닌 불교역사주의라고 명명해 본다.

 

P394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차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 과.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 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P399 봄빛이 아직 두루 돌지 못했을 때 매화는 핀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곧 인간 세계의 그것으로 원용되고 있다. 눈 덮인 땅에 봄빛은 돌 지 않았지만, 매화꽃과 같은 존재로 모례는 등장한다. 산불(信佛)이 생명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스런 상황에서 꿋꿋한 믿음을 지킨 그녀다. 겨는 고구려나 백제에서 볼 수 없는 신라 불교의 독특한 면이면서, 완고한 신라사회에 뿌린 불교의 첫 씨앗이었다.

 

순교의 흰 꽃 이차돈

 

P401 비처왕 다음은 지중왕이고 그 다음이 법흫왕이다 그러나 비처왕 과 법흫왕 사이가 불과 15년이다. 아마도 법흥왕의 불교 공인은 전적 전적으로 그 개인의 신십(信心)에서 나온 것만은 아닐 터였다.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도 한몫 거들지 않았을까?

P404~405 신은 듣건대, 옛 사람들은 나무꾼에게도 대책을 물었다 합니다. 바라건 뀌 외람되이 죄를무릅쓰고라도말씀을올릴까합니다 .. 'À}인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버립이 큰 절개요. 임금융 위해 목숨을 다함이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그릇되게 말씀을 전했다 뼈 신에게 목을 베는 형벌을 주시면, 옹 백성이 모두 복종하고 감히 명령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 피를 뿌려 목숨을 재촉할지라도 일곱마리 짐승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P417 황룡사는 옛 경주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신라 의 한가운데였고, 지리상으로만 아닌 마음 속에서는 신라인이 상상 하는 세계의 한가운데였다.

 

P430 순도의 불상도 장륙존상도 모두 없어져 버린 지금, 한반도라는 작 은 공간에 함께 머물렀던 세계 불교 문화의 두 중심을, 우리는 안타까운 냄으로 그리워할 뿐이다

 

P434 작륙존상과 구층탑은 신라를 지키는 세 가지 보배 중 두 가지에 해당 된다. 나머지 하나는 진평왕이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옥대(玉帶)

 

P436 나는 들었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번지는 불길 속에서 한 쪽은 무간지옥을 보여 주더라고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P440 문수보살을 흔히 출가(出家)의 보살이라 한다. 저 유명한 『화엄 영』의 이야기에서, 문수 스스로 남쪽을 두루 돌며 깨닫고 동쪽으로 오는데, 거기서 만난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남쪽으로 갈 것을 권하 는 대목이 있다. 곧 선재의 출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길에 동기를 부여하는 상정으로 읽힌다. 누구든 수행의 첫 길은 문수보살로부터 시작한다

조는 문수보살을 비유해서 세상의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있는 것처럼, 문수는 불도(佛道)를 닦아나가는 데 부모라고도 한다. 부모는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돋는 자다. 문수도 성불(成佛)의 그 같은 절대적 조력자라는 뜻이라라. 나아가 문수 신앙은 대체로 이런 문수 &살의 성격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444 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 .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 고 말한다.

 

P454 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고 헤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 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니까?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P455 나는 사실 불교신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교와 가까워진 것은 전 1으로 『삼국유사』 연구 때문이었는데, 신자이건 아니건 오랜 전동 속에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된 불교의 뿌리는 암암리에 깊다 더욱이 절은 성소(聖所)이면서도 낯익은 우리 건축의 한 틀을 고스란히 간직 한 것이라, 특히 조그만 암자에 들렀을 경우, 마치 고향 마을의 옛집/ 에 찾아온 듯한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P456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 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P456~457 “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化身), 누구도 한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끊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P476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P481 중생의 뜻을 따르자고 박절히 내쫓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 것 아이를 닿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 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을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려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 그 자체가 관음보살의 현신인지도 모른다.

 

낙산사의 힘

 

P495 참으로 치밀하고 정성들인 노력 후에 얻은 만남이다. 그런 노력으로 얻지 못할 무엇이 있겠는가 웅변하는 듯하다. 나는 이것을 치밀하고 정성스런 만남이라고 명명한다.

 

P496~497 의상이 치밀하고 정성스럽게 진신을 만나는 과정은 하나의 전법을 보여 주지만, 세상에 보통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같은 경지에 오르기 어렵고, 그럴 계기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달라질 뿐.

나는 이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 명명하였다.

 

P498 의상이건 원효이건 어떤 하나의 삶의 방식대로 살다 간 무수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모델일 뿐이다.

 

P504~505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 중국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은 이야기다. 밥이 끓는 솥 단지 앞에서 따듯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 사는 온갖 영고성쇠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운문사 이야기

 

의해」 편에다 들인 일연의 이 같은 노심초사가 승려로서 팔아 안으로 굽은 결과만은 아니다. 우리는 『삼국사기』의 「열전」 에 승려가 단 한 사람도 채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그다지 거론하지 않는다 원효도 의상도 없다. 아마 일연에게는 이것이 못내 아쉬운 한 가지였으리라 삼국시대를 특히 신라 중심으로 기술한다고 했을 째, 몇몇 승려들의 역할과 여할과 불교의 그것을 떠나서도 결코1무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아쉬움은 크다. 기록자가 자기 시 대의 이념만을 고집해 당대의 생생한 자취를 남겨 주지 못한 점 í'삼국사기』는 거기서도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의해」 편의 여러 기록들은 『삼국사기』의 이런 단점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도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원효, 해동 불교의 사랑

 

P530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라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 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P530 일연은 원효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무엇에도 얽매지 않은 사람 이라고I의해」 편에서 원효의 전기를 쓰며 지은 제목원효불기를 풀어보면 그렇다. 한 가지 더 있다면, 본문을 시작하는 첫머리에 원효를 관형 하기를 성사라 한 것이다. 같은 [의해] 편에서 일연은 의상에게 법사(法事)라 하고, 자장에게 율사(律師)라 했다.

 

P531 인간적 고뇌라 말하는 춘원의 저변에는 사실 사신의 모습을 투영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원효에게 파 게라면 이광수에게는 변절이 있다.

 

P535 자루 빠진 도끼를 달라함은 다름 아닌 과부인 요석공주를 가리키지 만, 그 주인공이 승려이기에 꺼림칙한 기분은나라의 이익으로 명분을 세운다. 그만한 여유와융통성이 신라를 신라이게 했던 것은 아닐까?

 

P537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 ()하는 것이면서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 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의상과의 중국 행에서 원효는 큰 깨달음을 얻어 돌아왔다. 그 때 벌써 원효는 윈효였다.

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의상, 화엄의 마루

 

P551 “지난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은 사는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 지 법이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닮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어 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P559 이로써 부처님이 돌아 가신 다음 부처님의 날을 빛내고 법륜을 다시 굴림을 알겠나이다. 오래도록 이 땅에 법을 머물게 할 사람 오직 법사(I’!;)이십니다.

 

P564 의상은 이에 열 군데 사찰에 가르침을 전했다. 태백산익 부석사, 원주의 비마라사(昆摩歸) ’ 냐의 해인사, q슬산의 옥천사(동츄). 금정의 범어사, 지리산의 화염사 등이 그 곳이다 또 『법계도서인(法系圖書印)과 「약소(略統) 를 지어, 만물이 모두 성불(成佛)하는 요체를 묶어 냈다 이 책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귀감이 되었으며, 다들 다투어 소중하게 여겼다. 나머지 찬술한 것들은 없지만,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한 것이다.

 

P565 원효가 현실주의라면 의상은 교조주의(敎條主義). 원효의 힘실주의를 앞서 소개했거니와 의상의 교조주의다. 원효의 현실주의를 앞서 소개했거니와 의상의 교조주의 요해하지 말기 바란다. 결코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닌 까닭이다.

 

P565 선묘를 의상이 다시 만난 것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서였다. 등주의 선묘 집을 찾자 그녀는 단 앞에 무릎을 꿇고 일심으로 합 깡 공경 예불하고 있었다. 의상은 선묘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만 보다 발길을 돌린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선묘는 선창가로 달려나가 보지 깐, 배는 이미 떠나고, 멀리 의상의 모습은 아스라하기만 하다. 이 때 선묘는· 다로 던진다. 그런데 순식간에 용으로 바뀌어 의상이 탄 호위해 신라까지 이르렀다

 

P568 결연이 의상을 법사라고 부른 까닭도 이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법사란 말속에는 의상의 교조적 신앙 태도가 함의된다. 그가 얼마나 원칙적이며 정통적이었나를 보여 주려는 듯, 일연은 의상의 전기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삽화를 붙인다.

의상이 황복사에서 지낼 때였다. 제자들과 함께 탑돌이를 하는데, 매번 허공을 딛고 올라갈 뿐 계단으로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탑에는 돌 사 리를 놓지 않았다. 제자들도 계단에서 세 자쯤 떠서 허공을 밟고 돌았다. 의상이 이에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세상사람들이 이를 보면 반드시 괴이하다 할 게야. 세상사람들에게 가르쳐 줄만한 일이 아니지.”

부석사 의상의 비문에서는장안 2년 임인년(702)에 돌아가시니 나이가 78세였다고 적고 있다. 일연이 그를 찬한 시에서무성한 꽃 들 고국에 심었으니 / 종남산과 태백산 똑 같은 봄이로다한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무성한 꽃들이란 화엄의 세계를 말한다. 지상 사가 있는 종남산이나 부석사가 있는 태백산이나, 의상의 전교로 인 해 같은 화엄의 세계가 펼쳐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P569 거기라고 사람 사는 세상인 바에야 왜 호사를 바라지 않고 다툼이 없겠는가 의문스러워 해본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을 쉽게 다스릴 목적으로 혹시 그렇게 길들여 놓지나 않았을까? 사실 인도를 어느 한 가지 잣대로 말하기는 어렵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P582 『삼국유사』 안의 다른 기사들에서 미륵 신앙의 편린은 여기저기 보이지만, 진표를 통해 본격적으로 보여 주는 것만은 못하다. 비록 통일된 나라로서 신라· 사람이 되었다고 하나, 진표는 제 땅의 본디 불교 아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그래서 아직 살아 있는 백제를 희미하게나마 전하는 인물로서 역할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P586 진표의 전기를 읽으며 그동안 나오지 않은 몇 가지 생소한 용어를 보 게 된다. 먼저 『점찰경』이다. 이 경의 본디 이름은점찰선악업보경 이며. 중국의 수나라 때 보리등(提燈)이 번역하였다고 한다. 지장 보살이 말세의 중생을 위해 지은 것으로, 자신의 업보가 어떤지 점치 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경은 지장보살 신앙과 깊이 연관된다.

그렇다면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은 대지의 태() , 곧 땅 속 에 묻어 있는 어떤 것이다. 땅이 지닌 덕을 의인화하였다고도 하는데, 지장보살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과 함께, 죽은 이들의 구제자가 된다. 특히 죽은 이들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이 보살에게 빌 어야 한다. 지금도 절에 가면 명부전(府願)이라는 불당이 있는데 거기서 바로 이 지장보살을 주불(主佛)로 삼는다.

 

P587 점찰법회를 신라에 처음 소개한 이는 원광(圓光)이다. 원광이 중 국에 유학했을 때 바로 정찰경을 바탕으로 만든 점찰법회가 유행하고 있었다. 귀국한 다음 가서사(嘉植) 곧 지금의 운문사에 법회를 운영하는 기금인 점찰보(占察寶)를 설치하고, 이 법회가 정기적으로 열리도록 하였다.

 

P590 ‘삼베를 붙들고 황금을 버린다는 말은 『중아함경(中阿含經)』에 나오는 비유다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길가에 삼이 무성히 자란 것을 보고 캐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은이 널려 있었다. 사안용 산베를 버리고 은으로 바꾸어 들었다. 또 가다 보니 금이 널 이 있자, 온을 들고 있던 사람은 금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다른 한 사 처음의 삼베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들고 돌아왔다. 좋은 것을 보고도 취하지 않는 바보스런 사람을 비유한 이야기다.

 

P590~591 일연은 여기서 『점찰경』을 금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석 교록 『개원석교록』 (730)과 『정원석교록』 (800) 같은 정장에 들어 가기도 하였으니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마지막 에는하물며 이 경전이 가짜이고 망녕된 것이라면 미룩보살이 왜 진 표 스님에게 친히 주었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렇듯 일연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앞서 전기에 나온 젓처럼 , 두 번째 수행을 마친 진표가 미륵보살을 만났을 때 받은 것이 『점찰경』과 간 자였다r점찰경』은 미륵보살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P596 무릇 미륵 신앙이란 민중들의 삶에 더욱 밀착되는 법이다. 그들의 어려운 삶 속에 동참하는 데서 이 신앙의 진수가 드러난다. 성 해변의 고기가 그 전에 진표의 설법을 들었던 그 고기들일까? 따져보는 일은 무의미하다.

P599 감자는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이 때 신들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눈앞을 가리던 바위는 멀리 물러나

숯돌처럼 팽팽해지네

낙엽이 날아 흩어지니

앞은 밝아지네

부처의 뼈로 만든 간자를 찾아내

정결한 곳에 모시고

정성을 다하려 하네

 

밀교의 한 자락

 

P603어떤 사람이 승려가 되었는가

삭발한 승려를 보면 뭔가 알 없는 슬픔부터 느껴진다고 말하는 친 구가 있었다. 대기 그런 느낌은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다만 삭발한 모습 매문만은 아닐 것이다.

 

P604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Q는 동산에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 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P604 평범한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자(尊者)들은 얼마든지 있다. 불교의 출가자들 속에 연면히 내려오는 출가의 동기를 소 중히 여기자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동기 하나로 깨달음은 단박에 몰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607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평범함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P621 감통’ 이라는 용어도 중국의 고승전에 나오지만, 승려들이나 불교신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데에서 그렇다.

P62240대 애장왕 때였다. 승려 정수는 황룡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겨울철 어느 날 눈이 많이 왔다. 저물 무렵 삼랑사에서 돌아오다 천암사를 지나는데, 문밖에 한 여자 거지가 아이를 낳고 언 채 누워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스님이 보고 불쌍히 여겨 끌어안고 오랫동안 있었더니 숨을 쉬었다. 이에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벌거벗은 채 제 절로 달려갔다.

 

P623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불쌍한 어린 아이에게 베푼 덕이 곧 내게 해준 일이라고,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에게 말한다. 아마도 예수님의 입장에 서 그 사람을 위로하자는 차원의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크건 작건 실천의 문제다. 이론으로서 받아들인 철학을 넘어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실천 원리로 불교가 신라 사회에 자리 잡혔음을, 우리는 이 같은 짤막한 삽화에서 읽을 수 있다

 

P625 미타 신앙에도 미를 신앙에도 여러 부면이 있거니와, 그 가운데 뚜렷이 보이는 특정을 하나로 정리하자면, 전자가 평안한 시기의 부유한 층에, 후자가 혼란한 시기의 고통 받는 층에 왕성히 퍼져나간다는 정도로 이해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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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32 늦은 가을 경주의 석양은 늘 아름답다 매일매일 석양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붉은 빛만큼이나 따뜻하다고 한다. 오늘 같은 날에 광덕은 엄장을 남겨 두고 먼저 서방정토로 떠난다.

 

P632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은 약속한 바가 있었다. 광덕이 그 악속을 지키는 사이 엄장은 한눈을 팔았다. 아미타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야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과 현실의 삶에 고단하 매인 사람은 마지막의 자리가 서로 멀다. 그러나 엄장은 부끄러움 아는 사내였다, 늦게나마 생각을 바꾸고 성실히 수행하여 마침내 는 친구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P637 절과 호랑이

절에 가면 산신각(山神聞)이니 칠성각(七星聞)이니 삼성각(三聖聞) 같은 이름을 붙인 자그마한 건물이 있다. 이름에서도 바로 알 수 있 지만, 전형적인 불교의 성격을 띤 건물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불교가 민간신앙과 만나 이룩된 특이한 면모다.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P656~657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자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 싸서 예수님은 그것을 도적같이 찾아온다 고 말한다 i

그렇다면 누가 그 성안을 만나는가? 의상 스님과 같이 치밀하고 정성스런 사람이 만날 것이며 효소왕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가에서 외치듯이 기도 하는 무리들을 보고 예수님은 말한다. “하늘 나라에 이르거든 하느님 i 은 저들을 결코 모른다 할 것이다.” 그리고 첨언하지 않았는가, 골방 에 숨어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눈물 흘리는 자에게 하느님은 다가올 것이라고.

그러나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도 만남은 만남이고, 나는 설명했다. 그 만남을 뒤에라도 만남인 줄 알면 그렇다.

 

숨어 사는 이의 멋

 

P671 ‘피은은 피세은거(避世隱居), 즉 세상을 떠나 숨어 사는 것이라는 말로 풀어볼 수 있다.

 

P672 숨어 사는 일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이 다르고, 같은 동양에서도 철학에 따라 다르다. 공자는천하에 도가 있으면 드러나고, 없으면 숨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숨음과 드러남의 매개체는()’. 『예기(禮記)』에서 도가 행해지는 사회를 대동 사회

 

불교가 보는 효도

 

P691아무리 효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사람을 그것도 자식을 죽여가면서까지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독후감을 쓰는 당사자들이 자식의 입장이어서 그랬을까, 정말로 자신들에게도 죽음으로 해야 할 효도가 온다면 무섭기도 했겠다. 굳이 그것만 아니라면서 손자를 죽여 자신의 배가 부르게 된 것을 안 할머니는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냐고, 넌지시 핑계를 할머니의 마음 쪽으로 돌리는 학생도 있다.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P712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 이것은 곧 신라 사회를 이룩한 미의 근본이다. 저 불국사 석굴암의 부처님이 남자로 보기에는 부드럽고 여자로 보기에는 위의(威儀)가 넘친다는 평처럼, 이 나라를 일으키고 지킨 조상들은 두 가지를 조화시켜 깊은 미의식을 창조해 냈다.

 

P714~714 호쾌한 기상이 서린 노래, 융천사의 『혜성가

예전에 동해 바닷가

건달바가 논 성을 바라보고

향가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열어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 구름 쫒아 떠난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쫒노라

, 잣나무 가지가 놓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P720~721 깨달음의 더할 데 없는 경재, 영재의『우적가』

제 마음의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일원조일(日遠鳥逸) 달이 난 것을 알고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 된 것은 강호(强豪),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병기(兵器)를 마다하고

즐길 법일랑 듣고 있는데

아아, 조그마한 선업(善業)은 아직 턱도 없습니다.

 

일연, 혼미 속의 출구

 

P724 그가 제기한 문제점은 세 가지다. 일연이 시대의 사조에 빠졌다는 것, 사상과 신앙 모두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가지산문의 현풍을 떨치기에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원인과 결과로서 서로 긴밀히 연결되지만, 사실 무엇을 가지고 이런 평가를 내렸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그런데 이후 일연에 대해 일부에서 운운; 까지 발전한 배경에는 누카리야의 근거 없는 이 한마디가 있을 뿐이다.

 

P726 일연이라는 이름은 그의 만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남아 있는 자료로는 개명의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옛 사람들의 작명 관습으로 보아, 세속에서 이름과 승려가 되어 처음 가진 이름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이름을 만년에 고쳤다. 이 개명에는 놀랍고도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일연은 처음 이름이 견명이었고 불교의 이름을 회연이라 지어 밝음과 어둠을 대조시켰다. 옛 사람들이 이름 다음에 자를 지을 때 흔히 하는 방법이다. 그러다가 만년에는 이 둘 곧 밝음과 어둠을 하나로 보겠다는 뜻에서 새로운 이름에 일()자를 넣었다.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III. 내가 저자라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시칠리아 여행을 다녀와서 새로 시작 하는 마음으로 읽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책에 두께가 나를 부담스럽게 했다. 그 부담은 잠깐 구성과 짜임이 책 읽는 속도로 말해준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의 구성과 고운기 자기만의 특색을 잘 살렸다.

 

머리말

들어가며

 

기이(紀異)

이 땅의 첫 나라 11

고구려 와 북방계 35

신라와 남방계 53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70

연오랑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88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_103

밤에 찾아오는 손님 120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139

문회,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159

만파식저 만만파파식적 178

권력의 끝 196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214

첫 성전환증 환자 234

왕이 되는자 252

 

흥법(興法)

불교로 보는 역사 385

순교의 흰 꽃 이차돈 400

 

탑상(塔像)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416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437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455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472

낙산사의 힘 487

 

의해(義解)

운문사 이야기 509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530

의상, 화엄의 마루 549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_ 569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581

 

신주(神呪)

밀교의 한 자락 603

 

감통(感通)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621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637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653

 

피은(避隱)

숨어 사는 이의 멋 671

 

효선(孝善)

불교가 보는 효도 687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704

일연, 혼미 속의 출구 723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책의 구성 방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내가 앞으로 책을 써 낳아감에 있어 구성방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내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지은이였다면…… 아직  수행이 더 필요다.. 배움도 중요 하지만 앞으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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