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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1일 12시 18분 등록

장 자크 루소, 돋을새김, 2008

1762 Emile

 

 

책소개

1726년에 출판된, 프랑스의 사상가 쟝 자크 루소(Rousseau)의 교육론. 전체 5편으로 되어 있으며 한 사람의 교사 밑에 에밀이란 이름의 어린이가 출생해서부터 25년에 걸쳐 받는 교육 과정이 이 책의 내용이다. 제1편에는 기존의 학교 교육이나 가정 교육을 비판했고, 출생에서부터 5세까지의 교육이 신체 교육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제2편에선 감각의 훈련을 중심으로 해서 5세에서 12세까지의 교육, 제3편은 12세에서 15세까지의 교육에 대해서 소유나 노동에 관한 학습이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가를 설명했고, 제4편은 15세에서 20세까지의 교육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도덕 교육•종교 교육 문제가 등장한다. 제5편에서는 에밀의 약혼자 소피아가 등장하여 여성교육이나 정치 교육에 대해 서술했다. 이 책은 교육상 매우 중요한 책이며 아동본위의 교육, 자연주의 교육, 체육의 중요성, 감각훈련의 중요성, 실물 교육, 자발성의 원리, 소극 교육, 심리관찰의 필요성 등 근대 교육의 방법 원리가 집약되어 있다. 에밀이 체육사에 끼친 최대의 공헌은 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를 사는 유덕(有德)한 인간을 키운다는 교육의 기본적 과제를 위해 기존 가치관이나 지식에 물들지 않은 무렵의 소년의 신체 활동, 자유 속에 담겨진 자연성에 바탕을 두어 교육 전체를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저자에 대하여

1712~1778

 

 

어린시절의 방황

장 자크 루소는 1712년 6월 28일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어머니 쉬잔느 베르나르는 출산 후 9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루소는 아버지와 고모 쉬잔느 루소에 의해 양육되었다. <고백록>에서 루소는 이 시기의 고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잊지 못하고 나에게서 그분의 모습을 다시 본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나를 껴안을 때마다 당신의 깊은 탄식과 발작적인 포옹에서 애정의 표시와 뒤섞인 사무치는 아쉬움이 깃들어 있음을 느꼈다.” 어머니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어린 루소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루소를 붙잡아 준 것은 독서였다. 루소는 시계수리공이었던 아버지가 일을 할 때마다 책을 읽었고, 책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722년에 퇴역한 프랑스 대위와 싸움을 하게 된 후 처벌을 피해 제네바를 떠나게 된 것이다. 어린 루소는 외삼촌에게 맡겨졌고, 아버지는 니옹(Lyon, Switzerland)에 정착한다. 외삼촌은 루소를 랑베르시에(Lambercier) 목사의 집에 맡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길지는 않았다. 목사의 여동생이 아끼던 빗이 부러진 채 발견 되었는데 랑베르시에 가족은 루소를 범인으로 몰았다. 루소는 자신의 결백함을 아무리 주장해도 믿어주지 않게 되는 억울한 일을 경험한 것이다. 이후 루소는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 재판소 서기 밑에서 필사 견습공을 하거나 조각가 아벨 뒤코맹의 집에 들어가 도제 일을 한다. 그 사이 니옹으로 도피한 아버지는 1726년 3월 5일 53세의 나이로 재혼을 한다. 14살의 루소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후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 루소가 <에밀> 이라는 교육론을 쓴 것은 이 시기에 자신이 겪었던 방황의 경험이 토대가 된 셈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본인 또한 그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기이한 유전은 루소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원천이었다. 2년 뒤 루소는 본격적인 방랑을 결심한다. 1728년 3월 14일 성문 밖으로 봄나들이를 나갔던 루소가 시간이 늦어 성문이 닫혀 버리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루소는 제때 안 들어왔다고 주인에게 매를 맞을까 두려워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그 길로 방황의 삶을 선택한다.

 

 

바랑부인과의 인연

루소는 북부 이탈리아, 프랑스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마치 피카레스크 소설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귀부인들, 사기꾼들, 친절한 성직자와 한심한 귀족들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이 과정에서 루소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인물은 프랑수아즈-루이즈 드 바랑(Françoise-Louise de Warens) 부인이었다. <고백록>에서 바랑 부인과의 경험은 여러 번 상세하게 진술되어 있는데, 어머니라 부르던 바랑 부인과 시간이 흘러 갖게 된 육체관계는 루소에게 근친상간과 같은 충격을 준다.

방황하던 루소가 파리에 정착하게 된 것은 음악 악보의 필경사(筆耕士)일을 하면서부터이다. 근래 개봉된 음악 영화 중 <카핑 베토벤>과 같은 영화에서도 묘사되고 있듯이 악보를 베끼는 일은 신중함과 신속함을 요하는 직업이었다.

한편으로 루소는 당대의 계몽주의자들인 디드로, 달랑베르, 콩디야크 등과 교류를 하였다. 디드로는 달랑베르와 함께 <백과전서>의 공동 편집자가 되었고, 루소는 음악 관련 항목을 집필하는 필자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루소에 대한 연구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루소가 음악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덜 지적되는 편이다.

 

 

다섯 아이를 낳고 모두 고아원에 맡긴 교육론자

파리에서 만난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은 젊은 세탁부였던 테레즈 라바쇠르였다. 루소는 테레즈와 관계를 맺으며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고아원에 맡겨 버렸다. 근대적 교육론인 <에밀>의 저자가 어떻게 해서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맡겨 버렸는지는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는 주요한 전기적 사항이다. 그 시대를 들여다보면, 파리에서 공립 고아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라 할 수 있다. 파리 시의 통계를 보면 1740년에서 1749년 사이에 파리에서 버려진 아이들의 숫자는 3만 2917명이었고, 1750년에서 1759년 사이에 숫자는 6만 7033명에 이른다. 신생아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달랑베르와 같은 인물도 사생아로 버려진 아이였다. 하지만, <에밀>이라는 저작을 쓴 이에게 이러한 관행은 변명이 되지를 않는다. 당시 귀족들은 아들은 콜레주로, 딸은 수녀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자격미달의 가정교사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다반사였다. 루소가 무엇보다 강조했던 것은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에밀>을 펴내자 어머니들은 육아의 바이블로 삼았다. 상류 계급의 부인들은 유모에게 수유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영향력 있는 저자가 행한 일치고는 너무나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훗날 루소는 이에 대한 죄책감과 변명을 곳곳에 남긴다. <에밀>을 통해서도 루소의 죄책감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한 일도 체면도 자식을 키우고 직접 교육시키는 일로부터 그를 면제 시켜줄 수 없다. 독자들이여, 그 점에 대해서는 나를 믿어도 좋다. 누구든 인간으로서의 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토록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자에게 예언하건대,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잘못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쏟게 될 것이며 결코 그 무엇으로도 위로 받지 못하리라.” 이 구절은 루소의 속죄처럼 들린다.

 

 

우리의 나약함으로부터 덧없는 행복은 시작된다

불가리아 출신의 인문학자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루소에 관한 소책자인 <덧없는 행복>에서 루소의 세계를 세 가지로 해부한다. 루소는 사회와 개인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갈림길을 가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이다. 시민의 길과 개인의 길은 동시에 가기 힘든 모순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토도로프는 개인의 길을 좀 더 세분화하여 루소에게는 인간에게 열린 제 3의 길에 대한 탐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루소 스스로 항상 그 길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그가 전적으로 권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 길은 ‘도덕적 개인’의 삶이다. “도덕적 개인은 사회 속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회에 완전히 종속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도덕적 개인이 자신의 보편적 정신, 즉 자신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개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이로부터 루소 특유의 태도가 등장한다. 인간들이 이루는 관계의 어려움과 끝없는 인정 욕구는 인간이라는 모순된 존재와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에밀>을 통해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약함이다. 우리의 마음에 인간애를 갖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바로 그 비참함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처럼 우리 자신의 나약함으로부터 우리의 덧없는 행복은 생겨난다.” 루소의 생애만큼, 루소의 저작만큼 인간의 덧없는 행복에 대한 통찰과 상념을 보여주는 경우가 또 있을까. 우리는 루소의 생애가 모순됐다고 단순히 비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온 몸으로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살다간,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또한, 나약함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지성이었다

 

 

프랑스를 뒤흔든 <에밀>

인간의 교육법을 주제로 한 교육소설로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 일체는 선이지만 인간의 손에 있어서는 일체가 타락한다"는 원리에서 출발하여, 소설의 형식을 빈 교육론이다. 추상적인 미사여구로 교육의 이상을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구체적 이론으로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시도한 것이 〈에밀〉이다. 때문에 이 책은 이상적인 한 쌍의 남녀의 탄생에서 결혼까지가 생생하게 "황금의 붓"으로 묘사되어 있는 한 편의 로망이며, 그 성장을 이론에 근거해 정열적으로 써내려 갔다는 점에서 하나의 교육 원리이다. 출판된 것은 1762년이며,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고 한 〈에밀〉 속의 예언대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것은 1789년이다.

"사람은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생 있는 자의 목적이다. 그러나 행복은 어디 있는가. 누가 그것을 알고 있는가." "문명은 태어나면서 담요에 싸이고, 죽으면 관 속에 못질 당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모든 제도의 쇠사슬로 결박되어 있다. 아무 곳에도 자유는 없다. 그러나 자유야말로 인간의 본질인 것이다."

15세까지 에밀은 오직 사물과 경험만으로 교육받는다. 언어가 아니라 경험만이 교육의 원리인 것이다. 12세가 될 때 에밀에게 비로소 책이 주어진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 한 권 뿐이다. 에밀은 15세가 된다. 그때는 교육의 원리가 경험에서부터 이론으로 바뀌는 시기다. 그의 생활과 교육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뒤이어 사춘기가 온다. 이성과 정욕이 격투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성교육이며 연애 지도다. 에밀은 순박한 소녀 소피를 만난다. 첫눈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 청결한 입맞춤, 아름다운 오해. 에밀은 '여자'를 배우고 소피는 '남자'를 배우게 된다. 이리하여 청년기의 문제로서 종교론이 등장하게 된다. 그의 자연 종교의 사상이 전개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는 존재라면, 인간인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다. 또한 신부나 교회의 증서 없이 직접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다만 이 질서에 넘친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인 것이다."

 

 

참고자료

네이버 캐스트,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95

지식백과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89144&mobile&categoryId=1696

네이버 지식백과, 에밀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452174&mobile&categoryId=1090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 귀

 

 

1부 유아기

12. 식물이 재배를 통해 성장하듯 인간은 교육을 통해 성장한다.

☞ 계몽주의자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느껴진다.

12. 교육은 세 가지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자연.인간.사물이 그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내적으로 성장시키고 인간은 그 성장을 활용하도록 돕니다. 반면 사물은 그것과 부딪쳐 얻는 경험의 측면에서 교육을 돕니다.

☞ 이게 뭔말이다냐.

15. 자연과 사회제도는 양립돼 있으므로 우리는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인간을 만들 것인지 시민을 만들 것인지를.

15. 다섯 명의 아들을 군대에 보낸 스파르타의 한 여인이 있었다. 전장에서 돌아온 한 노예에게 여인이 소식을 묻자 노예가, "다섯 아드님은 모두 전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인은 얼굴을 붉히고, "천한 인간 같으니, 내가 그것을 물었더냐?" 하고 말했다. 노예는 다시, "우리가 승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여인은 신전으로 달려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것이 시민의 실체이다.

19.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기에만 급급한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죽지 않도록 하기보다는 아이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어쩌면 '외동아이' 이렇게 키우지 마라에 나오는 얘기랑 비슷하냐.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고전에 들어있구나.

20. 가장 오래 산 사람은 가장 나이 들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잘 느끼다 죽은 사람이다.

21.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이라는 정신적 자양분은 아이에게 있어 모유를 먹이는 일보다 그 가치가 결코 작지 않다.

☞ 애착형성의 중요성까지 인식하고 있구나.

23. 자연을 관찰하고 그 길을 따라가라. 자연은 아이를 훈련시킨다. 온갖 종류의 시련을 겪게 함으로써 체질을 강화하고 고통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 북한산, 한라산, 백두산... 민호와의 약속

24. 안일함의 습관에 머물지 않도록 지옥의 강물에 빠뜨려라. 어린 나무줄기는 어렵지 않게 휠 수 있지만 굳은 나뭇가지는 견디지 못한다.

25. 교사가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정작 필요한 것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이며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25. 아이는 노예이거나 폭군처럼 자라난다.

26. 유능한 교사보다는 분별 있는 아버지가 아이를 더 잘 키울 것이다. 재능으로는 열성의 부족을 채우기 어렵지만 열성으로는 재능의 부족을 채울 수 있다.

27. 교사(하인)는 당신의 자식을 또 하나의 하인으로 만들 것이다.

30. 교사는 스스로를 학생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때론 친구처럼 지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30. 내가 말하는 교사는 단 한 명의 학생을 평생 한번 가르치는 선생을 의미할 뿐이다.

31. 가난한 사람은, 가난 그 자체가 그를 교육시키지만 부유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부유한 사람의 교육이란 대체로 결함투성이이기 십상이다.

36. 동물들은 병에 걸리면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참음으로써 그 아픔을 극복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조금만 아파도 견디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낫게 될 병인데도 걱정과 불안에 싸여 초조해한다.

38. 아이는 가급적 여러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야 한다. 여러 사람이 아이를 돌보다보면 아이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비교하게 된다. 비교는 언제나 지도자에 대한 아이의 존경심을 약하게 만드는 법이다.

40. 인간은 군집 생활을 하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여 살면 살수록 더 타락한다.

42.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태어난다. 아이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인식의 결과가 아니라 순수하게 기계적인 결과이다.

☞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전제.

43. 아이로 하여금 습관에 물들지 않도록 하라. 가장 좋은 습관은 어떠한 습관에도 물들지 않는 습관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자기 자신이 주인이라는 점을 각성시켜라.

43. 거미가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집에서 자란 아이는 거미를 두려워한다.

44. 신중하게 단계를 밟아 가르치면 어떤 일에도 대담해질 수 있다.

45. 보고 만지고 듣고, 뜨거움과 차가움을 느끼고, 딱딱함과 부드러움을 감별해내는 모든 것이 교육이다.

46. 아이가 응석을 부릴 때 그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48. 아이를 도울 때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에 국한하되, 엉뚱한 환상이나 까닭 없는 욕망에 호응해서는 안 된다. 환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므로 발동을 제한하면 고통도 생기지 않는다.

☞ 장난감, 비디오, 게임?

49. 아이를 도울 수 없다면 그냥 놔두어야 한다. 아이를 다래준답시고 비위를 맞추거나 어르지 말라. 그런다고 아픈 아이의 몸이 낫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러한 행동은 아이에게 잘못된 편견을 심어준다는 것을 명심하라. 어떻게 해야 자신을 달래주는지를 아이가 알게 되면, 그 아이는 이제 당신의 주인이 된다. 그러면 끝이다.

50. 은방울이나 금방울, 산호나 수정 등 온갖 종류의 값비싼 물건들을 아이에게 준다. 도대체 왜 이런 허영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 이 시대에도 이랬구나.

54. 때때로 아이가 뜻밖의 말을 함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아이의 의도라기보다는 우리의 관념이 덧붙인 오해이기 십상이다.

☞ 민호의 말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나의 오해일수도 있겠구나.

 

 

2부 아동기

59. 아이는 어른을 통해서 자신을 판단한다. 내가 두려워하면 아이도 두려워하고, 내가 침착하면 아이도 차분해진다.

59. 자유가 주는 즐거움엔 적지 않은 상처가 따른다.

61. 미래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현재의 불행 만들기!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63. 진정한 행복은 능력을 넘어서는 욕망을 줄이고 힘과 의지를 평형 상태로 유지하는 데 있다.

64. 무릇 만물은 본성에 충실할 때 강하다.

67. 얼마나 많은 군주들이 자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땅을 잃었다고 비탄에 잠겨 있는지 아는가.

☞ 봉건시대에 맞는 비유로고.

68.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도대체 이렇게까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68. 최고의 행복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 1인기업가를 위한 선언

69. 아이는 스스로의 약함을 느껴야 하지만 그 약함 때문에 고통 받게 해서는 안 된다.

71. 아이 스스로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의지를 심어주어라. 복종에 의해 행동하지 않도록 하고, 지배한다는 느낌으로 가르치지 말라.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고 도움을 요청할 때에만 그것을 보충해 줘라.

☞ 18세기 유럽 시대정신

72. 아이는 필요 없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뛰고 싶을 땐 뛰게 하고 울고 싶을 땐 울게 하라. 모든 행위는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한 신체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73.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지나치게 관대한 것은 모두 다 피해야 할 일이다.

74. 나는 보다 큰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작은 고통들을 많이 겪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 나는 얼마나 많은 고통의 산을 넘어야 하는가.

78. 선이나 악, 인간이 지켜야 할 의무 등을 이해하는 일은 아이의 영역이 아니다.

81. 아이에게 교훈을 줄 땐 말로만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얻도록 하라.

82. 본래 인간에게 악함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에 악이 깃들었다면 우리는 그 악의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

83. 여기서 교육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규칙 하나를 얘기하고자 한다. 시간을 낭비하라는 것이다.

84. 관례적인 악습에 물들지 않도록 하라. 이치를 내세워 따지지 말라. 아이의 신체와 감각을 단련시키는 데 힘쓰되 정신만은 한가하도록 내버려둬라. 너무 일찍부터 선을 가르쳐주려고 서둘지 말라. 천천히 가르쳐라. 늦으면 늦을수록 이득인 줄 알라.

☞ 아빠인 나는 신체와 감각, 몸놀이와 운동, 자연활동에 초점을 맞추자.

85. 아이의 어린 시절을 낭비하도록 하라. 장차 그것으로 아이는 더 많은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

86. 아이가 먼저 질문할 때까지 기다려라.

87. 아이가 집 밖에서 보고 듣는 것을 통제 할 수 없다면, 그의 내면에 그런 것들이 적절히 안치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데만 힘써라.

88. 아이가 당신에게 다가와 그 일에 대해 질문할 때까지 기다려라. 그러면 문제는 해결된다.

97.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99. 로크는, 가장 후하게 주는 자가 가장 후하게 얻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 황금률

103. 아이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 왜 문제인가? 즐겁게 뛰어노는 일이 그렇게도 가치 없다는 말인가? 아이의 어린 시절을 이성이 잠자는 시기로 생각하라.

109. 모든 기억은 관념을 필요로 한다.

111.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 독서는 하나의 재앙이다. 강요하지 않는 한, 아이는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112. 아직 학문을 사랑할 수 없는 아이에게 학문을 싫어하도록 만들지 않아야 한다.

127. 나는 아이를 건강 염려증 환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러느니 가끔씩이나마 아픈 게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한다.

129. 가장 좋은 침대란 가장 잠을 잘 잘 수 있는 침대이다.

136. 중요한 것은 밤과 관련된 추억, 즐거운 기억을 많이 갖는 일이다. 그래서 상상력 안에 어린 시절의 놀이가 가득 차 있기만 하다면 밤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 휴양림, 야영, 천문대...

138. 물체 하나를 볼 때도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 있다. 거리에 따라, 그리고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므로 판단은 항상 오류에 근접해 있다.

140.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시간 낭비란 없다. 오히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더 큰 낭비를 불러오는 것이 교육이다.

144. 집을 그릴 땐 집을 보며 그리고, 나무를 그릴 땐 나무를, 사람을 그릴 땐 사람을 보며 그리길 원한다.

149. 아이들이 이 모든 것을 놀이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놀이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152. 원시상태에서의 인간을 생각해보아도 가장 맛있는 음식이 건강에도 가장 좋았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60. 사람들은 종종, 아이에게서 대단한 것이 나오길 기대하곤 한다. 그래서 어쩌다 묘한 말이나 기지에 찬 말이라도 듣게 되면 그 말에 희망을 건다. 그러다가는 종내 듣고야 마는 어리석은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162. 그를 자유롭게 놔두어라. 그리고 지켜보라. 무슨 행동을 하는지 관찰해보라.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할 것이다.

☞ 근대적 인간관

 

 

제3부 소년기

166. 강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욕망을 줄여라. 욕망을 줄이면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여분의 힘을 가질 수 있다.

169. 활력이 미미할 때 우리의 시선은 내부로 집중되지만, 기운이 충만하면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라도 시선을 외부로 향하게 된다.

☞ 근대, 제국주의가 떠오른다.

169. 책을 읽는 아이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읽기만 한다. 그래서 배우지 못하고 단어만 익힌다.

☞ 그래서 리뷰를 쓰고, 글을 쓴다. 체화시키고 표현하고 삶에 적용한다.

172. 잘못을 스스로 교정할 때까지 기다려라. 그가 오류의 샛길로 빠지면 빠질수록 더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173. 아이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보다는 학문을 사랑하도록 하라.

180. 주는 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정신은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남의 시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의 몸이 빨리 쇠약해지는 것처럼.

181. 줄자의 사용으로 눈대중의 감각이 떨어지며 저울의 사용으로 손이 지닌 무게감이 훼손된다. 도구가 정교하면 할수록 우리의 감각 기관은 더 퇴보한다.

☞ 목공, 뚝딱뚝딱... 뭔가 함께 만드는 건 어떨까?

184. '그것은 어디에 유용한가?' 이제부터 이 말이 우리의 관계를 결정한다. 그가 내게 질문할 때 나는 이 말로 반문한다.

185. 당신은 단지 그가 원하는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조언하고 의욕을 북돋우기만 하면 된다.

☞ inspiring

192. 가장 유용한 깃술이 가장 적은 소득을 낳는다.

☞ 농업VS예술

214.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생각하도록 훈련시켜라. 훌륭한 교육은 육체가 정신의, 정신이 육체의 피로를 풀어주도록 조율함으로써 서로를 휴식에 들게 하는 데 있다.

☞ 나에게도 필요한 말이구나.

217.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 절대 틀릴 일이 없을 것이다.



 

4부 청년기

226. 아이가 갖는 최초의 감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첫번째 감정에서 두번째 감정, 즉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온다.

233. 청년기는 복수나 증오의 시기가 아니다. 연민과 관용의 시기이다.

237. 당신의 학생으로 하여금 한 계층에만 속해 있게 하지 말고 전 계층에 있게 하라.

241. 인간의 얼굴은 단지 자연의 책임이 아니다. 습관화된 감정의 누적된 결과이다.

249. 만인을 위해 봉사한다는 특권 계층의 사람들은 실상 자신만을 위해 봉사할 따름이다.

251. 역사를 통해 그는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움직임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가면이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별다른 철학 교육 없이도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사마천의 사기, 그리스로마신화, 고전..., 변경연 커림큘럼

255.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삶을 다룬 전기물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257. 만일 에밀이 단 한번이라도 자기 자신보다 다른 타인이 되기를 원해 그 타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 타인이 누구이건, 소크라테스이건 카토이건 나의 교육은 실패이다. 자신을 낯선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자기 자신이 되어라. 참된 자신.

262.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므로 그가 실수했더라도 질책하여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행위를 절대 하지 말라.

262. 위로나 격려의 힘은 예상외로 크다.

266. 우리 모두는 인류의 일원일 뿐 개인의 일원이 아니다.

☞ 이기심의 영역을 넓혀 다른 존재에게까지 확대해야할 이유. '루소'를 당대의 사상가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271. 구원받기 위해서는 신을 믿어야 한다는 교리는 인간의 이성에 치명타를 가하는 헛된 가르침의 근본이다.

☞ 교회로부터 탄압받게되 이유를 알겠구나. <에밀>이 출판되자 마자 당시 사회 주도층은 루소를 적으로 규정했다. 법정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루소는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가야만 했다.

272. 신에 대해 왜곡된 인상을 가질 바에야 모르게 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273. 우리는 에밀을 어떤 종파에도 소속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이성에 따라 종파를 선택하도록 할 것이다.

274. 에밀은 야생마처럼 완전한 자유 속에서 성장했으므로 이제는 평온한 명상가로 변신할 것이 틀림없다.

280. "너는 나의 작품이다. 너는 나의 보물이며 아들이다.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므로, 너는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 네가 잘못된다면 너는 내 20년의 생애를 빼앗아가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나의 노년 또한 불행해질 것이다."

☞ 부모의 마음이 이런가. 아이에게 더 큰 굴레를 씌우는 것 같구나. 부모가 아이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는 점은 몰랐나보다.

286.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왜 모른단 말인가? 완벽함에서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5부. 성년기

302. 아름다움은 건강함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쇠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302. 남자아이들은 주로 북이나 팽이, 장난감 마차 같은 것을 좋아한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거울이나 보석, 인형 같은 것을 좋아한다. 즉 장식적인 것을 더 좋아한다.

☞ 성적인 차이는 타고나는 것인가? 이 시대나 지금이나 비슷하네.

306. 여성 특유의 기지는 그녀의 나약함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다.

308. 여자아이에게도 그 나이에 맞는 즐거움이 있다. 그녀에게 할머니처럼 살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309. 말하는 재능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기술 가운데에서도 으뜸에 속한다.

309. 삶에 생동감을 주는 것은 언제나 정신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를 통해 가장 빨리 전달된다.

311. 여자는 관찰하고 남자는 추론한다. 이러한 협력의 결과 인간의 정신은 그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지혜에 도달할 수가 있다.

☞ 사진으로 관찰하고 글로서 사색한다. 사진에세이의 힘이 그것 아닐까. 그로인해 밝은 지혜을 보여줄 수 있으리.

312. 공개적으로 아이들을 놀게 하라. 춤이든 연극이든 연회든 있는 그대로 보여줘라. 오히려 소란스러운 쾌락을 맛볼수록 훨씬 더 빨리 그것에 싫증을 느낄 것이다.

312. 가정의 평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가정을 평화롭게 꾸려가지 못한다.

345. "...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다 가는 사람은 별로 없어. 대부분 그것을 갈망하다가 죽지... 때로는 아무석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지혜로울 수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지를 모를 땐 말이야..."

352. "에밀, 소피를 떠나야 해. 그녀와 완전히 헤어지라는 말이 아니야. 더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라는 거야. 결혼할 자격을 더 갖추기 위해 떠나라는 거야. 가장으로서 네 임무를 완수할 태세를 마련하라는 거지."

"자신의 의도를 남의 도움 없이 행동으로 옮겼을 때만이, 진정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행복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내가 저자라면

 

 

최초의 육아 바이블

<에밀>이 나오고 나서 프랑스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기들에게 직접 수유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 유모를 통해 아이를 키우거나 삼분의 일 이상의 아이들이 고아원, 수도원에 버려지던 분위기를 바꾼 것이 이 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것에 멈추지 않고 <에밀>에서 말하고 있는 아이가 주체가 되는 교육, 자연의 원리대로 자라야 한다는 것, 육체 활동의 중요성, 실용주의적인 접근, 나이에 따른 교육법의 구분 등은 근대 교육의 기초로 평가받는다. 25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지금 읽어도 전혀 쌩뚱맞게 들리지 않는다. 이는 책의 주장이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연주의 교육이나 아이가 주체가 되는 교육, 감각훈련의 중요성 등은 현재의 공교육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대안교육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낭만주의자의 교육론

<에밀>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경계를 걷던 사상가 루소의 교육에 대한 이상이 담긴 책이다. 실제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겼다고 한다. 시대적으로 보편적인 일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경험과 실용을 강조하지만 자신이 육아에 대한 경험을 제대로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사상을 적용한 교육론을 쓴 것이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듯한 고뇌도 엿보인다.

 

 

내가 저자라면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어떻게 생생함을 줄까? 이 책의 단점은 이것이다. 루소의 사상과 상상이 결합된 설득력 있는 교육론 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진정성이 와 닿지는 못한다. 사상가도 문학가도 아닌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나의 일상을 통해 경험한 것들 속에서 건져올린 사색의 결정체다. 무엇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설명하지는 못한다 하더라고 공감할 수 있는 글, 위로가 되는 글은 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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