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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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명함 만들기
모닝페이지 08년 송년모임은 인사동 자콥에서 있었다. 거기서 쿠바님이 미래명함을 만들어주었다. 미래의 일을 이미 된 것처럼 상상해 자신을 위한 명함을 디자인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날의 드레스 코드는 레드 & 그린이었다. 나는 한참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린색 인주로 엄지 지장을 찍어 내 나무를 무성하게 만들고, 내 이름자 앞에 '<천일간의 자기사랑기> 저자' 라고 붙여주었다.
천일은 변화를 위한 기틀을 닦는 시간이랬다. <천일간의 자기사랑>은 내가 앞으로 3년, 천일 동안 집중할 주제라고 스스로 정했다. 현재의 나에게 가장 절실한 것. 그 언저리에서 책을 읽고 웍샾에 참석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실험들을 할 거니까 사전 사후의 것을 기록으로 남기면 어떨까. 그 과정에서 마흔을 잘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언젠가는 시작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던 일. 결국은 똑같은 날일 뿐인 어느 하루를 잡아 설날이라는 이름을 주고 새 해를 기념하듯, 나도 <천일 간의 자기사랑>을 시작하는 특별한 의례가 필요한 것 같기도 했다. 절에 가서 기념 삼천배를 해볼까, 부산에 계신 스승님을 만나본 후 그걸 계기로 삼아볼까
시작은 2009년 3월 14일 화이트데이였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사탕을 준다는 날. 이건 아무래도 유래와 신빙성이 없는 제과회사에서 만든 날 같으다. 쓰고 보니 화이트데이를 기념해서 '나에게 사랑을 주는 의미로' 이 꼭지를 시작한다는 거창한 의미부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좀 생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만들어낸 것이고 그냥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날이 하필 화이트데이였다. 마지막 문장은 거짓말이다.
자기사랑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김중술 저 <사랑의 의미> 책을 읽은 후 부터다. 뭔가 뚫고 나갈 과제가 생겼을 때 맴만 돌뿐 내 안에서 힘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후천적으로 만들어낼까 고민하다가 만난 책이다. 아하, 자기사랑이 부족해서 그랬구나. 부족하면 채우면 되지. 나는 콩두라고 온라인 닉네임을 지었다. 이것은 콩두의 두꺼비라는 뜻이다. 밑빠진 독을 메우는 두꺼비. 나는 자신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부터 밑빠진 독처럼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은 착한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어서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노력해 왔다. 서른 다섯을 넘긴 이제는 그 믿음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이지만, 쉽지 않은 작업을 하는 때, 안할 수 없는 때인 듯 했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알지 못한 채 시작했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치유>, <나를 사랑하기-자기존중감 향상법> 이런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느낀 점을 쓸 수도 있고, 이분정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을 적을 수도 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직접 입히고 먹이고 데리고 다니는 과정을 적을 수도 있고, 묵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있겠다. 처음 생각하던 것과는 완전히 엉뚱한 곳을 헤맬 수도 있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처럼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다. 두려움과 궁금함을 지닌 채 길을 나섰다. 스스로 생각하는 규칙은 한 가지다. 매일 1시간씩만 이 주제에 대해 써 보자는 거. 그래서 계속 걸음의 주행기록을 남기기. 멈추지만 않으면 나는 얼어죽지 않고 어딘가에 닿을 것만 같았다. 히말라야를 어떻게 넘어왔냐는 질문에 80된 티벳의 노 스님이 '한 걸음씩 걸어서 왔다' 고 대답하던 것처럼.
내 생활 속에서 <천일간의 자기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1시간을 찾아내는 것이 첫번째 숙제였다. 그때 나는 남동생들과 9년째 같이 살고 있었고 왕복 3시간의 장거리출퇴근을 하고 있었고, 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를 편입했고 법회까지 주3일은 절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퇴근한 이후에는 안될 것 같다. 온라인 강의 들을 것이 있지만 듣다 보면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나마 사이버대학교의 출석인정 기간은 2주간이어서 한 주를 미뤄서 듣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집에 들어오면 꼼짝을 하기가 싫어진다. 저녁에는 집중도 잘 안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는 상태다. 머리 속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헝클어지고 무뎌져 있다. 빨리 자자,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날 거야 일찍 잔다. 하루 종일 밭일을 하고 돌아와서 짹짹거리는 새끼들 밥을 차려준 후 밥상 머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엄마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그 때 엄마에게는 쳐야할 밥상과, 빨래같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 푸른빛 속에 앉아 뭔가를 쓰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모닝페이지를 한 시간 쓰고, 정토회의 아침정진(108배와 명상 10분, 한 페이지의 경전을 읽고 수행일지를 쓰는)을 한 시간 하고, 한 시간 뭔가를 쓰면 어떨까? 그리고 화장을 하고, 밥상을 차리고...그러자면 출근 데드라인인 7시까지 4시간이 필요하니 나는 3시에 일어나야 한다. 운문사 비구니스님처럼. 저녁에 일을 나눈다면 식사준비를 모두 저녁으로 넘길 수 있다. 준비가 많이 되어 있다. 분까지 예약이 되는 압력밥솥을 구했으니까. 근데 관성이 있어서 저녁에 식사준비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이런 궁리로 머리가 복잡했다.
관성, 변화에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힘을 능가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뜻, 큰 변화의 초입 한 달은 입이 헐고 몸살 이 났던 걸 기억한다. 너무 막연해서 선뜻 산으로 들지 않고 빙빙 도는 기분이었다. 모닝페이지의 모토 중 하나인 '위대한 창조주여, 양은 제가 책임지겠으니 질은 당신이 책임지세요'라는 구절을 생각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뭔가를 할 마음이 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고마고 작업을 하는 훈련이지 않을까. 이 기회에 독립을 하면 어떨까. 직장 근처, 걸어서 20분 거리에 산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이토록이나 마음이 무겁지는 않겠지. 굳이 아침마다 밥을 해야 한다는 의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니까. 다른 이들에게는 쉬운 독립이 내게는 왜 이리 어려운 건지... 5시가 새벽정진의 시간으로 특별해진 것처럼 내가 매일 같은 시간에 그 주제를 쓴다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거는 사람에게 길들듯이 스스로 길이 들겠다. 1시간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1시간 어치 버려야하는 것은 아닐까? 밤새 바람이 많이 불었다. 변화를 실어오는 봄바람이었다.
3년도 더 지난 글 3일치를 모아서 서술어의 시제를 바꿔서 이 칼럼을 썼다. 그리고 3년 전 레알 로망이 지금은 많이 실현되었음을 발견한다. 나는 2009년 봄에 독립했고, 잘 되진 않았지만 혼자만의 천일을 완주했다. 바로 그 다음날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읽었다. 연구원 지원서에다 <천일 간의 자기사랑>을 쓰겠다고 썼었다. 2012년 3월 14일, 새로운 화이트데이였다. 그 후로 마감날과 마감 다음날에만 새벽에 읽고 쓰고 있다. 헐레벌떡 글을 만들던 나는 울랑말랑 한다.
오늘 <천일간의 자기사랑> 책의 저자를 향해 출발한다. 나를 가지고 하는 단일사례연구 같은 작업. 이걸 하면서 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례연구할 때 문헌연구 하듯이 좋은 책을 읽게 될거고, 쓰면서 많은 걸 다루고 정리할 수 있겠지? 그럼 내가 풍부해지겠구나. 아홉개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원님 잔치에 갈 수 있을까? 너무 늦지 않았기를. 꿈명함이 든 수첩을 놓고 와서 점심시간에 우산을 켜들고 남들이 사택이라 부르는 우리집에 다녀왔다. 힐 신고 전력질주했다. 스캔 뜰 걸 핸펀 카메라로 찍어 올린다. 연구원하면서 잔머리도 좀 진화했다. 꿈명함 만들기의 주술효과에 할렐루야 할까하다가, 다음 주에 또 똘창에 빠져 잉잉 울 값에라도 오늘 1시간 전에 북리뷰 올린 걸 자축하며 벙글벙글 웃는다. Yes, you'll make it come true Yes,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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