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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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1883~1957)를 이해하고 싶다면, 단적으로 그의 책 <영혼의 자서전>(1956)을 읽어보면 된다.
73세 때 출판된 이 책은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 정도 되는 책이다. 이 책은, 크레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린 카잔차키스가가, 청년기를 거치면서 이탈리아, 예루살렘, 시켈리아노스, 파리, 빈, 베를린을 거쳐, 다시 그의 고향인 크레타로 돌아오는 여정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에 카잔차키스가 소개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지만, 실제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80년 번역가 이윤기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하면서였다. 60세 때 출판된 이 소설로 카잔차키스는 일약 가장 유명한 그리스의 작가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고 세계적인 작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이 한국에서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에 하나로 수용되어 온 것은, 어쩌면 시대의 관습에 역행하며 자유와 투쟁하며 살다 간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라는 이름이 갖는 신비감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아직 ‘그리스 문학’에 대한 소개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번역가 이윤기가 마법 같은 손길로 주문을 외워 한국어로 버무린 작가와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스테디셀러가 된 이 책이 명성을 얻게 되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라는 두 이름은 자주 연관되곤 한다. 왜 카잔차키스는 수 많은 작품들의 주인공 중 조르바에 애착을 가졌을까. 그의 자전적 기록인 <영혼의 자서전>에도 ‘조르바’에 대한 섹션을 따로 분류했을 정도로 그의 조르바에 대한 애착은 강렬했다. 그는 당시 터키로부터의 독립 전쟁에서 참담한 피난 생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의식에 몹시 염증을 느꼈고, 소설과 ‘정신’의 결합을 그 누구보다도 갈망하고 동경했다.
카잔차키스는 말한다.
"보라, 조르바는 거덜 난 사업을 춤으로 변화시켰다. 이것이 메토이소노다. '거룩하게 만들기'다. 나는 조르바라고 하는 자유인을 책 한권으로 변화시켰다"
조르바도 카잔차키스에게 말한다.
"두목, 음식을 먹고 그 음식으로 무엇을 하는 지 말해 보시오. 두목의 창자에서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 말해 보시오. 그러면 나는 두목이 어떤 인간인지 말해주리다."
조르바는 조르바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순간에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뭘하고 있나.'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은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 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p.309)
이러한 갈망은 삶에서 동떨어진 추상적인 영역에 대한 동경이 아닌 ‘자유’그 자체에 대한 강렬한 충동과 연관된다. 그러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자유인’의 삶이 오히려 삶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느낄때마다 카잔차키스의 절망은 깊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카잔차키스의 자유와 삶에 대한 열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일생이란 짤막한 섬광이지만, 그로써 충분하다. (p.21)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내 어린 마음속에서는 모든 것이 마술처럼 새로 빚어져서 타당성을 넘어 광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광기는 훌륭한 의식이 썩지 않게 해주는 자극이었다. (p57)
글을 쓰는 사람은 억압되고 불행한 숙명을 산다. 그것은 그가 맡은 일의 본질이 어휘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내적인 격렬한 흐름을 정체시켜야 함을 뜻한다. 모든 어휘는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려면 인간은 내면에서 폭탄처럼 그것이 터지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안에 갇힌 영혼이 해방된다. (p113)
하지만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쓰러지지 않았다. 이제 나는 자유였다.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당장 크레타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곳의 흙을 밟고, 산들을 다시 만져 봄으로써 기운을 얻고 싶었다.(p604)
80년대에 한국 땅에서 살면서 자유를 갈망한다는 것은 하나의 ‘금기’에 해당했다. 문인들가 지식인들이 ‘정신’이 녹아든 삶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결국 그 누구보다도 생에 대한 자유의 열망이 강했던 카잔차키스는 스스로의 생을 크레타에 옭아매는 역설적인 삶을 살게 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학세계가 사실은 한국에 수용되면서 ‘자유’만으로 국한되어 들어온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80년대 자유화의 열망과 일맥 상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위 말하는 ‘출세작’이 아닌, 그의 ‘문학적 대표작’을 꼽으라면 아마도 <오디세이아>를 꼽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카잔차키스가 그의 문학적 영감을 얻은 작가들 중 가장 먼저 꼽는 사람은 오디세이아의 작가 ‘호메로스' 였다. 그리스의 고전이자 전 세계적인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그의 고향 크레타이자 그리스 자체이기도하다. 그는 청년 시절,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을 오르내리면서 그의 저서 <오디세이아>를 읽고 또 읽었다. 이는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를 이은 연작시로 고전을 완전히 분해하여 호메로스가 도착한 그 이후의 일들 - 이타카에 도착한 이후의 일들-을 고전 형식으로 창조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고전을 재창조 하려는 노력은 여기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그의 나이 24세때 등단을 했는데, 그의 등단 작은 <동이 트면> 이라는 희곡이었다. 이 희곡은 출판되자마자 아테네에서 공연이 되었는데, 그만큼 그의 희곡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희곡 사랑에 대한 기본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있었다. 그는 괴테가 쓴 <파우스트> 1, 2부에 덧붙여 3부를 기획했으나, 그의 전작들에 대한 과도한 반응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의 저서 <최후의 유혹>은 종교 재판 같은 열기에 그의 다른 작품들을 시도도하지 못한 채 펜을 꺽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카잔차키스의 해석에 교황청은 당황했고, 결국 이 책은 로마 교황청에 의해서 금서 목록에 오르게된다. 두 아내를 거느린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의 모습을 격하시킨 것이다. 그는 예수를 조르바와 마찬가지로 투쟁에 몸 바친 하나의 ‘자유인’으로 간주했다. 그의 인물들의 모습이 그렇듯이 예수까지도 그가 영향을 받은 니체가 주장했던 ‘초인’의 한 본보기로 묘사함으로서, ‘이단’ 과 ‘신성모독’ 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책은 ‘모두, 자유를 위한 투쟁은 두려움과 희망을 모두 배제하고 싸워야 한다’는 니체 사상에 영향으로 그가 1908년에 쓴 박사학위 논문 <프리드리히 니체와 권력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이 금서에는 예수의 최후의 일생을 묘사함에 있어서 ‘바라바’(책에는 ‘바라빠’로 기록되어있음) 와 ‘유다’를 가장 극적이고도 드라마틱한 영웅의 모습으로 부각시킨 반면, 상대적으로 예수의 모습은 우유부단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한다. 또한 예수가 행한 기적을 묘사하는 인물로 마태오를 내세우는데, 그의 묘사와 심리 방법은 ‘기적’을 ‘현실적인’ 이유로 해석하려는 인상이 강하다. 유다의 모습 또한, 획기적인데, ‘하느님’의 존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전지 전능하신 구원하는자’의 모습으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인간 스스로 투쟁하여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전투적인 모습으로 묘사한다. 결국, 무작정 초자연적인 기적과 맹목적인 구원자로서 일방적인 두각만을 조명하던 기존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다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이 이러한 반발을 가져왔다. 여기서 잠시, <최후의 유혹>의 내용을 보자.
목수인 나자렛 예수는 로마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만든다. 한낱 목수에 불과하지만, 예수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과 선천적으로 풍기는 고귀한 분위기가 있다. 그런 이유로 3년 동안 악마의 유혹을 견디고 하느님의 시험에 들어야하는 공생활에 접어들기 전에 ‘열혈당’의 주목을 받는다. '열혈당'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무력으로 쟁취하는 것. 이들은 가롯 유다를 예수에게 보내 열혈당 가입을 권유한다. 그러나 예수는 이에 응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독립에는 찬성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독립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그 방법은 '사랑'이었다. 유다는 이러한 예수의 모습에 감동받아 그의 방식을 따르기도 한다. 그리고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자 그의 제자가 된다.
3년 후, 예수는 성서의 기록대로 십자가에 매달린다. 이때 하느님이 보낸 수호천사라고 자칭하는 '천사'가 하느님의 명령이라며 예수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보통 인간'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하늘의 천사들마저도 인간 세상의 삶을 동경한다고 하며, 예수를 유혹하자 천사의 말을 사실대로 믿은 예수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을 해 아이들까지 낳고 살면서 인간의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예수가 나이가 든 후, 죽어가는 병상에서 그제서야 그것이 악마의 유혹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떤가? 충격적인가? 하나의 해석이라고하기엔 우리가 알고 있던 '구세주'인 '예수님'의 모습과 너무 다른가? 작가는, ‘유혹’의 개념이 바로 ‘정치적인 성향’ 이며, 또한 ‘독립’의 의미가 ‘사랑’이라는 것. 또한 인간적인 삶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실천한다는 것이 카잔차키스가 생각한 진정한 ‘자유’의 의미였던 것이다. 이 책은 그리스에서는 출간되지도 못했다.
1954년 교황이 이 책을 가톨릭 교회의 금서 목록에 올림으로서 이 책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었다. 그의 책 연보에 보면, 그는 가톨릭 교황청에 <주여, 당신에게 호소합니다>,라는 글을 로마 교황청과 아테네 그리스 정교회 본부에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성스러운 사제들이여, 여러분은 나를 저주하나 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나만큼 양심이 깨끗하시기를, 그리고 나만큼 도덕적이고 종교적이시기를 기원합니다.”
그의 대표작, <오디세이아>는 12년간 일곱 번의 개작을 통해 비로소 1938년에 완성된다. 이 책에 대한 그의 설명을 보면, 의도적으로 그리스 알파벳의 수를 뜻하는 24장과 총 33,333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자신이 ‘호메로스가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라고 하였듯이, 이 책은 오디세우스가 아타카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이 작품은 과거의 서사시를 현대에 맞게 각색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에서 주인공의 성품과 모험담을 빌려다 쓰기는 했지만, 이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작가가 이전의 작품과 처음부터 천착했던 ‘자유에의 갈망’ 이다. 초기작들부터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카잔차키스의 ‘자유를 향해 투쟁하는 인간’상이 이곳에 와서 하나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싯구로 되어있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불결하다. 다만,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이타카>란 시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카잔차키스의 <오디세이아>,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아우르는 교훈을 대신한다.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고한 감동이 깃들면
그것들은 너의 길을 가로막지 못할지니
네가 그들을 영혼 속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
너의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커다란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 설 때 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도 없으니
페니키아의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추고
어여쁜 물건들을 사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로부터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너의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고 나서야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 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 주기를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아름다운 모험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리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지혜로운 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가 가르친 것을 이해하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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