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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4일 03시 21분 등록
 

원칙중심으로 살아간다면 흔들림이 없다


붓다는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계율에 관한 설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카샤파 비구가 몹시 불쾌하고 생각하여 참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불쑥 한 마디 하였다.

“붓다는 계율을 몹시 엄하게 만들었고, 계율을 찬탄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허물을 뉘우친 카샤파는 붓다를 찾아갔다.

붓다는 카사파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비록 카샤파가 고참 비구일지라도 계율을 배우려 하지 않고 계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런 비구를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율을 귀히 여기지 않는 그런 사람을 내가 찬탄하고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이 옳은 법 인줄 알고 그를 따를 것이다.

그들은 계율을 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나쁜 생각을 같이 할 것이요, 좋지 않은 일을 하고 함께 할 것이며 그것은 다 함께 오랜 밤 동안 이롭지 않은 고통을 받는 것과 같다.”

(아함부 붕가사경)


수행자들에겐 계율은 목숨과 같은 것이다. 속(俗)으로부터 떠나와 승(僧)의 세계에 몸담는다는 것은 계율을 지키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붓다는 제자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지켜야 할 필요성도 느꼈고, 수행을 위해서도 필요한 규칙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나갔다. 어떤 이는 붓다가 정한 계율이 너무 엄격하다고 불만을 품었다. 개인이든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되었든 그 테두리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지켜낸 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규칙이란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이라면 원칙이란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규칙과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중심을 올바른 원칙에 둔다면 탄탄한 기초 위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원칙은 지름길이나 임시방편을 제공해 줄 수도 없다. 오늘날 원칙을 무시하려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원칙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사회적 관행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음을 지난 수천 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난중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이순신은 자신이 정한 원칙을 철저히 지킨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이순신 자신이 정한 원칙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난중일기>를 보면 날마다 새벽에 활쏘기를 한다. 활쏘기 한 횟수도 낱낱이 기록해 두었다. ‘공무를 본 뒤에 활 15순(75발)을 쏘았다.’ ‘활 10순을 쏘았다.’ 등의 기록이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놀란 것은 ‘이순신은 장군의 위치에 있는데도 날마다 활쏘기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장군으로서 가장 첫 번째 원칙으로 정한 것이 날마다 활쏘기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순신은 무과에 급제했지만 10개월이 다 되도록 보직이 주어지지 않았다. 인품과 실력은 남보다 뛰어났지만 아무런 벼슬자리도 내려지지 않자 이를 애석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제때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이순신에게 은근히 높은 벼슬아치를 찾아가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권세가를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나이가 세상에 태어나 쓰이면 충성으로써 목숨을 바칠 것이요, 쓰이지 않는다면 들에 나가 밭갈이를 하는 것도 뜻있는 일이다”면서 묵묵히 기다렸다. 22년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이런 정신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충실했다. 어찌보면 무작정 기다리는 이순신은 낙관주의자인 것 같다. 그 이면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청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일화를 통해서 이순신의 원칙주의를 볼 수 있다. 이순신은 서울에 있는 훈련원 봉사로 승진 전보되었다. 훈련원에서는 군사들의 인사, 시험, 훈련, 교육 등에 관한 일을 담당했다. 이순신은 인사 업무를 주로 보았는데 종종 상관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은근한 압력을 받았고 동료들로부터의 청탁도 심심찮게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정해진 규정대로 일을 처리했고 어떤 사람의 청탁도 들어주지 않았다.

   어느 날 직속상관인 병조정랑 서익이 자기와 친하게 지내는 한 사람을 순서를 무시하고 참군(參軍)으로 벼락출세시키고자 하기에 이순신이 담당관으로서 허락하지 않았다.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을 순서를 무시하고 벼락출세시키면 마땅히 올라가야 할 사람이 올라가지 못하게 될 테니 이는 공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규 또한 고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익은 크게 화가 났지만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붓다가  “계율을 귀히 여기지 않는 그런 사람을 내가 찬탄하고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이 옳은 법 인줄 알고 그를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부당하게 벼락승진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사람들도 뇌물을 주어서라도 청탁을 하려할 것이고 그러면 그 조직의 기강과 질서는 무너진다. 붓다는 자신의 정해진 규칙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향해 “그것은 다 함께 오랜 밤 동안 이롭지 않은 고통을 받는 것과 같다.” 고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이 청탁을 하지도 않지만 다른 사람의 부당한 청탁은 받아주지 않겠다는 이순신의 원칙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상사의 청탁을 거절하기는 분명히 힘이 들고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강직한 성품의 이순신은 그런 원칙을 지켜내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원칙을 정해놓았더라도 흔들리기 십상이다.

  이순신은 훈련원에 부임한지 겨우 8개월만인 10월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전출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일단 봉사 직책을 맡으면 2년 임기를 채운 뒤 다른 곳으로 진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순신의 전출은 법규를 어긴 것이었으며 보복성 좌천 인사였다고 볼 수 있다.

  원칙을 지켜낸다는 것은 어떤 불편함, 어떤 손해까지도 다 감수하겠다는 의지이다. 원칙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킬 때 의미가 있다. 이순신도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32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사의 길로 나았지만 ‘삼도수군통제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직하고 흔들림없는 공직생활은 그를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수많은 모함과 모략으로 결국 왕의 엄명으로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이순신은 사람들의 구명운동에 의해 사형에서 풀려났고, 이순신의 전투능력은 이미 인정받았기에 그는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노량진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영웅으로 추앙받고 잇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과감히 버리고 원칙에 충실하면 당장은 손해인 듯  보이지만 결국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음을 알게 되는 그런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겪게 된다. 비록 손해일지라도 원칙지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어떤 조직이든 개인이든 그런 일은 누구나에게 다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게 행해야 한다.

  자신의 원칙을 고수해나간다면 즉 내 안의 질서를 지켜나간다면 어떤 일 앞에서도 흔들림 없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신만의 원칙을 하나씩 세워나가는 것이다.



IP *.85.249.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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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4 23:28:52 *.2.60.37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원칙들을 어겼는지 모릅니다.

지금에서야 원칙의 소중함을 알고 하나씩 챙겨가고 있습니다.

 

'삶의 중심을 올바른 원칙에 둔다면 탄탄한 기초 위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꼭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싶은 글입니다.  

 

누님의 글이 다시 한 번 제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

같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저의 글을 써내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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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6 08:48:12 *.160.33.52

구성은 나쁘지 않다.  불경과  다른 것 (예, 이순신)의 연결은 네가 새로운  차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다만 평이하다.  감동과  임팩트를 높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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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9.26 20:50:56 *.85.249.182

아~~~~~~~~ 사부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이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진부한 내용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힐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새로운 것을 찾아 새롭게 각색하는 것도 능력인데요,

참 어렵습니다.

생각이란 것이 한 차원을 뛰어넘어야 하는데요....

감동과 임팩트, 어덯게 하면 그 수위를 높힐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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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6 15:00:43 *.114.49.161

이순신장군의 저 부분이 궁금했었어요.

파직과 좌천을 당했던 이유.

 

예화가 알기 쉽게 나오고

저것이 불교경전과 결합되어 있으니까 신기해요.

저는 불자여서 경전에 대한 존경이 있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순신장군의 일화가 더 와 닿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다 들어는 봤는데, 잘 모르는 사람의 인간적인 일화가 연결이 되니까

경전의 이야기를 덜 불교적이면서도 더 불교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아, 책을 어떻게 읽으시길래 저렇게 연결을 하셨을까요? 신기하고 부러워요.

다른 책들을 같이 읽으셔서 그런가요? 세 권 메모해 두었답니다.

직장과 연구원 과제, 그리고 살림살기 까지 일이 많으실텐데 어떻게 그 책들을 다 같이 읽으셨어요?

 

화이팅!! 깔리여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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