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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4일 03시 3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이순신(1545-1598)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이다.

22세에 무인이 될 것을 결심하여 무예를 닦기 시작했으나 28세때 응시한 훈련원 별과시험에서 낙마하여 실격되었고 32세가 되어서야 식년 무과에 합격하였다. 관직에 오른 뒤에도 파직과 복직거듭하다 47세때 전라좌도 수군절제사가 되어 왜의 침략에 대비, 병기를 정비하고 거북선을 제작한다. 이듬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이순신도 왕명에 따라 참전한다. 경상도 옥포, 합포 적진포해전에서 왜선 수십 척을 격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였고 이듬해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군공을 세우지만 1597년 원균의 모험으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된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권율의 막하에서 백의종군하던중 원균이 죽고 칠전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다. 그리고 곧이어 치른 명랑해전에서 이순신은 열세 척의 배로 왜선 백삼십여 척과 싸워 섬멸하는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1598년 퇴각하는 왜군을 맞닥뜨려 싸운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서 그는 적탄에 맞아 전사한다. 정도 19(1795)왕명으로 <난중일기>가 포함된 이순신의 문집 <이충무공전서>가 간행되었다. –민음사-

 

<난중일기>

진중陳中일기다. 임진년(1592)11일부터 무술년(1598)1117일까지 7년 동안 부득이 출전한 날은 쓰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날짜마다 간지 및 날씨를 빠뜨리지 않고 틈나는 대로 적었다. 일기내용은 그의 전반적인 활약상이 담겨있고, 가족과 관계된 일은 물론 상관과 장수 및 부하들 간의 문제를 비롯,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다루어짐. 전쟁을 수행하며 느낀 심중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음. 무능한 조정에 대한 탄식과 전쟁에 시달리는 민중에 대한 사람, 그리고 국난 극북에 대한 강한 염원등이 드러남.

 

<난중일기>란 이름은 정조때 초고본을 해독하여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할 당시 편찬자인 규장각 문신 윤행임과 검서관 유득공에 의해 붙여진 것. 원래는 연보별 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을미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무술일기란 이름으로 각각 분책되어 있음.

을미일기는 초고본이 저하지 않고 전서본이 있으며 <충무공유사>일기초에 일부 초록된 내용이 있다. 정유일기는 1.2 두책으로 되어 있음.

1959 1 23일 초고본 <난중일기> <임진장초> <서간첩>과 함께 총 아홉 책이 국보76호로 지점되었다. 이때 지정된 문화재 명칭은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李忠武公亂中日記付書簡帖壬辰狀草 이다

 

옮긴이 노승석/충무공이 직접 초서체로 작성한 것. 조선 정조 19(1795)에 이 초고본을 정자로 해독하여 <이충무공전서> <난중일기>(전서본)가 나왔다. 초서체로 흘려있어서 원문에 상당한 누락과 오독이 있게됨. 그후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를 다시 해독하여 <난중일기초>가 나옴. 이는 전서본보다 진전된 작업이었으나 해독상의 문제점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함. 2007 <충무공유사>를 해독하여 <난중일기>초록 내용이 들어 있는 日記抄일기초에서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찾아내었고 이 내용으로 초고본 및 전서본과 <난중일기초>의 문제점을 상당수 해결할수 있다는 것을 발견, 이러한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오류를 교감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여 2008년 초고본과 異本이본의 오류를 종합 검토하고 교감하여 정본화된 원문을 만들어 박사학위받음.

 

나의 의견

 

충무공이 쉬는 날은 나라의 제사가 있는 날. 집안에 제사가 있는 날이다. 맑은 날보다는 비가 오늘 날이 많았다. 한 겨울에도 눈 구경을 하기 어려운 지역이라 비가 많았던 것 같다. 비와 더불어 충무공의 몸은 아픈 나날이 많았다. 왜 그렇게 몸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변방을 떠돌며 생긴 병일 수 도 있고 타고나 지병일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적지는 않았지만 몸이 불편했다가 많이 있고 오한과 발열로 늘 고생했던것 같다. 특별히 치료행위를 한 흔적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가끔 침을 맞는 정도. 바다와 함께 해야 하는 수군의 장수라 그런지 날씨에 매우 민감했다. .날씨와 바람에 대한 묘사가 디테일하다. 전장에 있으면서 함께하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자주 눈이 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이야기하는 따뜻한 가장이었지만 일에 있어서는 단호한 장수가 였보인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사리분별이 확실한 면이 곳곳에 묻어난다. 일을 미루거나 정에 이끌리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다. 일터에서는. 자신의 무예를 닦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활쏘기를 누구와 몇 번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보인다. 일기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그림일기이다. 방학숙제로 해야 하는 것이 일기였다. 하루의 날씨를 기록하고 무엇을 하며 소일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일기이다. 말미에는 반성과 다음날의 계획을 주로 쓰게 되어있다. 그림일기에 그렇게 구분되어있어서 자연스러운 폼이 형성되었지 싶다. 난중일기는 그야말로 전쟁중의 장수의 일기이다. 하루의 생활이 잘 나타나있고 공무는 어떻게 보았고 그날그날의 특징적인 일들을 짧게 기록해놓았다. 그러면서 그 일을 접하는 자신의 심경도 적어 놓았다. 하루 하루를 지병과 궂은 날씨속에 열악한 환경에서 외로움에 시달렸을 한 남자를 생각하게 하는 일기이다. 내게는 대단한 충무공의 면을 보기보다는 외로운 남자를 보게 하는 일기이다. 유난이 비 오는 날이 많은 기록. 그냥 조금 오는 것이 아니라 삼대같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홀로 앉아 있는 거인이기도 하고 촌부이기도 한 장수의 기록을 본다.

 

참조 : 난중일기. 민음사. 노승석옮김

 

2.     내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임진년(1592)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맑음. 종일 비가 내렸다.

종일 가랑비가 내렸다.

궂은비가 개지 않았다.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맑았지만 춥기가 한 겨울 같다.

맑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맑았지만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맑고 바람도 고요하다

비바람이 몹시 불었다.

흐림

가랑비가 산에 가득히 내려 지척도 분간할 수 없었다.

 

아산에 문안 갔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다행이다.

아산으로 문안 보냈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공무를 본 뒤 활을 쏘았다.

활 열 순巡을 쏘았다.

공무를 본 뒤 활 열여덟 순을 쏘았다.

정오에 활을 쏘았다.

동헌에서 공무를 보고 활 열 순을 쏘았다.

순천 부사가 환선정에 술자리를 베풀어 겸하여 활도 쏘았다.

늦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활 열 순을 쏘았는데, 다섯 순은 잇따라 맞고, 두 순은 네 번 맞고, 세 순은 세 번 맞았다.

정오에 동헌으로 옮겨 앉아 활 열 순을 쏘았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늦게 활 쉰 순을 쏘았다.

 

임진년(1592)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49 11일 맑음. 어머니를 떠나 두 번이나 남쪽에서 설을 쇠니 간절한 회한을 이길 수 없다.

 

52 선창으로 나가 쓸 만한 널빤지를 고르는데, 때마침 水場 수장안에 피라미 떼가 몰려들기에 그물을 쳐서 이천여 마리를 잡았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대로 戰船전선위에 앉아서 우후 이몽구와 더불어 술을 마시며 새 봄의 경치를 구경하였다.

 

54 순찰사의 편지를 보니, 통사(통역관)들이 뇌물을 많이 받고 명나라에 무고하여 군사를 청하는 일까지 했다. 그뿐 아니라 명나라에서도 우리나라가 일본과 더불어 딴 뜻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하였으니, 그 흉포하고 패악함은 참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다. 통사들은 이미 잡아 가두었다 한다. 해괴하고 분통함을 참을 수 없다.

 

54 석공들이 새로 쌓은 해자 구덩이가 많이 무너졌기에, 이들에게 벌을 주고 다시 쌓게 했다.

 

55 비 온 뒤라 산꽃이 활짝 피었는데 빼어난 경치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침에 갖가지 바비와 전선을 점검해 보니, 모두 새로 만든 것이고, 무기도 역시 어느정도 완비되어 있었다. 늦게 출발하여 영주에 이르니 좌우의 산꽃과 교외의 봄풀이 마치 그림 같았다. 옛날에 있었다던 영주(瀛州)도 역시 이와 같은 경치였던가영주/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중 하나.

 

        60 반나절 동안에 내나로도, 외나로도와 태평도 소평도를 모두 수식, 검토하고 그날로 포구에 돌아왔다고 하니

            이일은 너무도 거짓된 것이다.

 

        61 327일 맑고 바람도 없었다. 일찍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에 갔다. 쇠사슬을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

            고, 종일 기둥 나무 세우는 것을 보았다. 겸하여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했다.

 

63 413일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이날이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이다.

       

415일 해 질 무렵에 영남 우수사(원균)가 보낸 통첩에 왜선 구십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에 정박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또 수사(박홍)의 공문이 왔는데 왜적 삼백오십여 척이 임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즉각 장계를 올리고 겸하여 순찰사(이광)병마사(최원)우수사(이억기)에게 공문을 보냈다. 영남 관찰사의 공문도 왔는데 역시 이와 같은 내용이었다.

 

67 여의 수군 황옥천이 왜적의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도망갔는데, 잡아다가 목을 베어 군중 앞에 내다 걸었다.

 

계사년(1593)

만 번 죽어도 한 삶을 돌아보지 않을 계책을 내고 보니 발분한 마음 그지 없네.

 

계사년 2월은 대길하다.

 

종일 비가 내렸다.

늦게 갬.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더니 늦게 비로소 갰다.

아침에 흐리더니 늦게 갰다.

아침에 흐렸으나 늦게 맑아졌다.

비가 퍼붓더니 술시에 비가 그쳤다.

아침에 맑더니 저녁에 비가 내렸다.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고 하루 종일 동풍이 불었다.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새벽에 구름이 검더니 동풍이 크게 불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맑고 바람도 없다.

잠깐 맑다가 저녁에 비가 왔다.

온종일 비가 왔다.

비로소 갰다.

맑았지만 바람이 매우 사납다.

아침에 비가 왔다.

하루 종일 궂은비가 내렸다.

거센 바람이 종일 불었다.

비가 많이 오다가 늦은 아침에 갰다.

비가 내려서 사람들의 바람을 크게 흡족시켰다.

새벽에 흐리고 비가 오지 않더니, 늦게 비가 오락가락했다.

비가 오락가락 했다.

비가 내렸다.

이날을 맑았다.

종일 비가 내리니 긴 밤이었다.

종일토록 비가 쏟아져 사람들이 머리조차 내밀지 못했다.

잠깐 맑더니 바람이 순하지 못했다.

비가 오다가 개다가 했다.

큰 비가 오고 남풍이 세게 불었다.

큰비가 종일 내렸다.

식후에 큰비가 오고 거센 바람이 저녁 내내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의 편지도 왔는데, 평안하시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조카 봉도 왔다. 그 편에 어머니가 평안하심을 알았다. 매우 다행이다.

아들 회가 들어와서 어머님이 편안하심을 알게 되고, 또 염의 병도 나아진 것을 알게 되니 기쁘고 다행한 일이다.

본영의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아침에 맑다가 늦게 흐리더니 저녁에 소나기가 와서 농사에 대한 바람에 흡족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비가 내렸다. 몸이 많이 불편하였다.

몸이 불편하여 앉았다 누웠다 했다.

몸이 불편하여 온종일 앉았다. 누웠다 했다.

몸이 불편하여 간신히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종일 누워서 신음했다. 식은 땀이 때도 없이 흘러 옷을 적시어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77 2

3일 이날 영남에서 옮겨 온 귀화인 김호걸과 나장 김수남 등이 명부에 오른 격군 팔십여 명이 도망갔다고 보고하면서도, 뇌물을 많이 받고 붙잡아 오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군관 이봉수, 정사립 등을 몰래 파견하여 칠십여 명을 찾아서 잡아다가 각 배에 나누어 주고 김호걸, 김수남 등을 그날로 처형했다.

 

85 2

30일 종일 비가 내렸다. 배의 뜸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86 3

2일 온종일 비가 왔다. 배의 뜸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속에 치밀어 올라 마음이 어지럽다.

 

105 5

6일 늦게 큰비가 퍼붓듯이 내리더니 온종일 그치지 않았다. 내와 개울에 물이 불어나더니 곧 가득 찼다. 농민들이 바란 것이니 매우 다행이다.

 

107 5

12일 늦게 영남(경상)수사가 왔고 선전관 성문개가 와서 만나니, 피난 중에 계신 임금의 사정을 자세히 전하였다. 통곡을 참지 못했다.

 

13일 이날 저녁 달빛은 배에 가득 차고 홀로 앉아 이리저리 뒤척이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자려 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닭이 울고서야 선잠이 들었다.

 

17일 적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분탕과 약탈을 일삼고 있으니 통분하고도 통분하다. 종일 바람이 세게 불어 마음이 또한 어지러웠다.

 

18일 새로 협선 두 척을 만드는데 못이 없다고 한다.

 

116 6

2일 저녁에 송아지를 잡아 나누어 먹었다.

 

3일 새벽에 맑더니 늦게 큰비가 내렸다. 상선에 연기를 그을리기 위해 좌별선에 옮겨 탔다. 막 활쏘기를 하려는데, 비가 많이 왔다. 온 배에 비가 새지 않는 곳이 없어 앉을 만한 마른 곳이 없었다. 한심스럽다.

 

5일 종일토록 비가 쏟아져 사람들이 머리조차 내밀지 못했다. 오후에 우수사가 왔다가 날이 저물어서 돌아갔다. 저물녘부터 바람이 불더니 매우 거세져 각 배들을 간신히 구호했다.

 

8일 옥과의 鄕所향소는 전년부터 군사를 다스리는 일을 신중히 하지 않은 탓에 결원을 많이 내어 백여 명에 이르렀는데도 매양 거짓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오늘은 사형에 처하여 효시했다. 거센 바람이 그치지 않고 마음이 괴롭고 어지러웠다.

 

12일 비가 오다 개다 했다. 아침에 흰 머리카락 여남은 올을 뽑았다. 그런데 흰 머리카락이 난 것을 어찌 꺼리랴만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25일 연일 비가 내려서 적들이 물에 막혀 독기를 부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하늘이 호남 지방을 지극히 돕고 있는 것이다. 매우 다행이다.

 

125 7

1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고 홀로 뜸 밑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9일 서늘한 바람이 선듯 불어와 홀로 뱃전에 앉았는데,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130 가을 기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가 산란해지고

홀로 베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달빛이 뱃전에 들자 정신이 맑아져

잠도 이루지 못했거늘 벌써 닭이 울었구나.

 

139 8

26일 원 공이 술을 마시자고 하여 조금 주었더니, 잔뜩 취하여 흉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함부로 지껄였다. 매우 해괴하였다. 낙안 군수(신호)가 풍신수길이 명나라 황제에게 상서한 초본과 명나라 사람이 고을에 와서 적은 것을 보내왔다. 통분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30일 맑음. 원 수사가 또 와서 영등포로 가기를 독촉했다. 참으로 음흉하다고 할 만하다. 그가 거느린 배 스물다섯 척은 모두 다 내보내고 다만 칠팔 척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니, 그 마음 씀씀이와 일하는 것이 다 이따위다.

 

145 추악한 적에게 함락된 지 장차 두 해가 되어 가는데 국가를 회복할 시기는 바로 오늘에 달려 있다. 한창 명나라 군사의 車馬거마소리를 기다리느라 하루를 일 년 같이 여겼지만, 적을 쳐서 무찌르지 않고 화친을 위주로 하여 우선 흉악한 무리를 퇴각만 시키고 우리나라라가 수년 동안 침입 당한 치욕을 씻지 못했으니, 하늘에 까지 미친 분함과 수치가 더욱 간절하다.

 

갑오년(1594)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비가 그쳤으나 흐렸다.

비가 계속 내렸다.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맑았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한 살을 더하게 되니, 이는 난리 중에서도 다행한 일이다.

어머님께 가서 배알하려 하니 어머님은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큰 소리로 부르니 놀라 깨어 일어나셨다. 숨을 가쁘게 쉬시어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듯하니 감춰진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데는 착오가 없으셨다.

 

149 112일 맑음. 아침 식사 후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라고 분부하여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 선창에 돌아오니,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아 바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156 25일 맑음. 새벽꿈에 좋은 말ㅇ르 타고 곧장 바위가 첩첩인 큰 산마루로 올라가니 산봉우리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구불구불 동서로 뻗어 있었다. 봉우리 위의 평평한 곳이 있어 자리를 잡으려고 하다가 깨었다.

 

159 213일 유시에 첫 나발을 불자 출항하여 한산도로 돌아오니, 그때 경상 군관 제홍록이 삼봉으로부터 와서 말하기를, “적선 여덟 척이 춘원포에 들어와 정박하였으니, 들이칠 만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장 나대용을 원 수사에게 보내어 상의케 하고 전하게 한 말은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아직 가만히 두었다가 다시 적선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회를 엿보아서 무찌르기를 서로 작성하자.”는 것이었다.

 

314일 비가 내였다. 몸은 나은 듯하지만 머리가 무겁고 상쾌하지 못했다. 종일 몸이 불편했다.

15일 종일 신음했다.

16일 몸이 매우 불편하다.

17일 몸이 상쾌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18일 몸이 몹시 불쾌했다.

19일 몸이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20일 몸이 불편하다

21일 몸이 불편하다.

22일 몸이 약간 나아진 것 같다.

23일 몸이 여전히 불편하였다.

24일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25일 어머님이 평안하시다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다만 선산이 모두 들불에 타 버려 끌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몹시 애통하다.

 

179 4

4일 흐리다가 저물녁에 비가 내렸다. 장흥부사가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종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9일 큰비가 왔다. 조방장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16일 경상 수사의 군관 고경운과 도훈도 및 변고에 대비하는 색리, 영리를 잡아와서 지휘에 응하지 않고 적의 변고도 급히 보고하지 않은 죄로 곤장을 쳤다.

17일 저물녘에 거제에서 왜군에게 포로로 잡혀갔던 남녀 열여섯 명이 도망쳐 돌아왔다.

18일 새벽에 도망쳐 돌아온 사람들에게 왜적의 정세를 자세히 물으니, “평의지(대마도주)는 옹천 땅 입암에 있고, 평행장은 웅포에 있다.”고 했다. 저녁에 비가 오더니 밤새로록 내렸다.

19일 비가 내렸다. 첨지 김경로가 원수부로부터 와서 적을 토벌할 대책과 대응에 관한 일을 논의하고 그대로 한 배에서 잤다.

20일 종일 가랑비가 걷히지 않았다.

21일 미가 오다 개다 했다. 혼자 배의 봉창 아래 앉아 있었으나 저녁 내내 아무도 도지 않았다. 어머님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참으로 다행이다.

23일 곤양 군수가 몹시 취해서 미친 소리를 마구 해 대니 우습다. 나도 잠시 취했다.

25일 맑음. 새벽부터 몸이 몹시 불편하여 종일 고통스러웠다. 밤새도록 앉은 채 앓았다.

26일 통증이 극히 심하여 거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27일 통증이 잠시 그쳤다.

 

175 5

4일 흐리다가 바람이 거세게 불고 큰비가 내렸다. 종일 그치지 않더니 밤새 더 심해졌다. 왜적들이 바람을 따라 배를 몰고 본토(일본)로 향하다가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배를 조종할 수가 없어 떠다니다 이 섬에 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간교한 놈들의 말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5일 비바람이 크게 일었다.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님께서 평안하심을 알게 되니, 참으로 다행이다.

7일 기운이 편안한 것 같다. 침 열여섯 군데를 맞았다. 밤에 큰비가 왔다.

9일 계속 비가 내렸다. 하루 종일 빈 정자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 정신이 멍하기가 취중이고 꿈속인 듯, 멍청한 것도 같고 미친것 같기도 했다.

10일 비가 계속 내렸다. 아들 회가 바다로 나간 것이 걱정된다. 소비포 권관이 약을 보내왔다.

11일 비가 저녁때까지 계속 내렸다.

12일 큰비가 종일 내리다가 저녁이 되서야 조금 그쳤다.

13일 맑음. 이날 금모포 만호의 보고에, “경상 우수사 소속의 포작들이 격군을 싣고 도망하여 현장에서 포작들을 붙잡으려 하니, 원 수사가 주둔한 곳에 숨어 있다. “고 하였다. 그래서 사복들을 보내어 잡아오게 하였더니, 원 수사가 크게 성내면서 도리어 사복들을 결박했다고 한다. 그래서 군관 노윤발을 보내 이들을 풀어 주게 했다. 이경에 비가 왔다.

14일 종일 비가 계쏙 내렸다. 영이에게 시켜 종정도를 그리게 했다.

16일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저녁에는 큰비가 내려 밤새도록 지붕이 새어 마른 데가 없었다. 각 배의 사람들이 거처하는 데 괴로울까 매우 걱정이 되었다. 이를 보니 분통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17일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18일 종일 비가 내렸다.

20일 온종일 홀로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었다. 호남의 방백이 나라를 저버리는 것 같아 매우 유감이다.

21일 비가 계속 내렸다. 웅천 현감, 소비포 권관이 와서 종정도 놀이를 했다. 거제 장문포에서 적에게 사로잡혔던 변사안이 도망쳐 돌아와서 하는 말이 적의 형세는 그리 대단치 않다고 했다. 큰 바람이 온종일 불었다.

22일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오는 29알 정모의 제삿날이다.

25일 비가 계속 내렸다. 비가 조금도 그치지 않으니, 전쟁하는 군사들의 걱정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26일 비가 오다 개다 했다. 대청마루에 앉았는데 서쪽 벽이 무너져서 바라지 창을 고쳐 바람이 들어오게 하였더니 맑은 공기가 매우 좋았다.

 

180 6

3일 초복이다. 아침에 맑더니 오후에 소나기가 퍼부어 온종일 그치지 않았다. 바닷물도 변하여 흐려졌으니 근래에 드문 일이다.

11일 더위가 쇠라도 녹일 것 같다. 아침에 아들 울이 본영으로 가는데 이별하는 심회가 그윽하다. 홀로 빈집에 앉았으니 심정을 스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저녁 바람이 몹시 사나워저 걱정이 더욱 심해졌다. 충청 수사가 와서 활을 쏘고 그대로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달빛 아래 같이 이야기할 때 옥피리 소리가 처량했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

15일 맑더니 오후에 비가 내렸다. 신경황이 영의정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이보다 더한 이가 없을 것이다. 이날 밤 소나기가 흡족하게 내리니 어찌 하늘이 백성을 가엾게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아들의 편지가 왔는데, 잘 돌아갔다고 했다. 또 아내의 언문 편지에는 아들 면이 더위 먹은 증세로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마음이 애타고 답답하다.

186 7 6일 종일 궂은 비가 내렸다.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밤 이경 말에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는데, 빗발이 삼대 같아서 새지 않는 곳이 없었다.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았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189 13일 비가 계속 내렸다. 홀로 앉아 아들 면의 병세가 어떠한지 염려되어 글자를 짚어 점을 쳐 보니, “군왕을 만나 보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다시 짚어 보니 밤에 등불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두 괘가 모두 길하여 마음이 조금 놓였다. 또 유 상의 점을 쳐보니 바다에서 배를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또다시 점치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매우 길한 것이다. 저녁 내내 비가 내리는데, 홀로 앉아 있는 마음을 스스로 가누지 못했다. 비가 올 것인가 갤 것인가를 점쳤더니 점은 뱀이 독을 내뿜는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앞으로 큰 비가 내릴 것이니, 농사일이 염려된다. 밤에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14일 비가 계속 내렸다. 어제 저녁부터 빗발이 삼대처럼 내리니 지붕이 새어 마른 데가 없어서 간신히 밤을 지샜다.

 

194 8

1일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수루 방으로 옮겨 앉았다가 동헌의 방으로 돌아왔다. 비가 종일 내리더니 밤새 계속되었다.

2일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3일 아침에는 흐렸으나 저물녘에 갰다. 충청부사, 순천부사와 함께 활 서너 순을 쏘았다. 수루 방을 도배 했다.

4일 비가 계속 뿌리다가 늦게 갰다. 명나라 장수를 접대할 때 여자들에게 떡과 음식물을 이고 오게 한 일로 경상 수사의 군관과 색리들을 처벌했다.

7일 종일 비가 내렸다.

8일 비가 계속 내렸다.

9일 비가 계속 내렸다.

10일 종일 비가 내렸다.

11일 큰비가 종일 내렸다.

13일 달빛이 비단결처럼 고와 바람도 파도를 일으키지 못하였다. 해를 시켜 피리를 불게 했는데 밤이 깊어서야 그쳤다.

14일 아침에 흐리다가 저물녘에 비가 왔다.

30일 맑고 바람도 없었다. 아내의 병세가 매우 위중하다고 했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에 생각이 미칠 수는 없으나 아들 셋, 딸 하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김양간이 서울에서 영의정의 편지와 신충겸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분개하는 뜻이 많이 담겨 있었다. 원수사의 일은 매우 해괴하다. 내가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다고 했다니. 이는 천년을 두고 한탄할 일이다. 곤양 군수가 병으로 돌아갔는데, 보지 못하고 보냈으니 더욱 아쉬웠다. 이경부터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201 9

1  맑음.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여 촛불을 밝힌 채 뒤척거렸다. …이 역시 오늘 중에 좋은 소식을 들을 징조였다.

3일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목숨 걸고 원수를 갚을 뜻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만, 다만 험한 소굴에 웅거하고 있는 왜적 때문에 가볍게 나아가지 않을 뿐이다. 더욱이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知彼知己 白戰不殆)고 하지 않았던가! 종일 큰 바람이 불었다.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스스로 생각하니 나랏일이 위태롭건만 안으로 구제할 계책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리오. 이경에 홍양 현감이 내가 호자 앉아 있음을 알고 들어와서 삼경까지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5일 맑음 닭이 운 뒤에 머리를 긁어도 가려움을 견딜 수 없어서 사람을 시켜 긁게 했다.

20일 새벽 바람이 그치지 않았으나 비가 잠깐 그쳤다. 홀로 앉아 간밤의 꿈을 기억해 보니, 바다 가운데 왼딴섬이 눈앞으로 달려와서 멈췄는데, 그 소리가 우레 같아 사방에서는 모두들 놀라 달아나고 나만 홀로 서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참으로 흔쾌하였다. 이 징조는 곧 왜놈이 화친을 구하다가 스스로 멸망할 상이다. 또 나는 준마를 타고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이는 임금의 부르심을 받아 올라갈 징조이다.

전장에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장수의 모습이 보인다. 외로운 리더의 모습이다. 한 나라의 수군을 책임지고 있으나 전쟁상태이고 모든 정황이 평안하지 않으나 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그것이 꿈에서 길을 안내하기도 하나보다.

213 26일 맑음. 장인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유시에 비가 오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29일 서풍이 불어 춥기가 살을 에는 듯하였다.

11 5일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송한련이 대구 열 마리를 잡아 왔다. 밤새도록 큰 비가 내렸다.

13일 밤에 달빛이 대낮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26일 소한. 맑고 따뜻했다. 방에 들어앉아 공무를 보지 않았다. 이날 메주 열 섬을 쑤었다.

 

219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고 안으로는 계책을 세울 기둥 같은 인재가 없으니 더욱 더 배를 만들고 무기를 다스리어 적들을 불리하게 하고 나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

 

을미년(1595)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는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했고, 입으로 교서를 외우고 있으나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229 114일 맑음. 동풍이 세게 불었다. 몸이 불편하여 누워서 신음하였다.

18일 흐림. 공문을 처리했다. 늦게 활 열 순을 쏘고 헤어졌다.

21일 종일 가랑비가 내렸다.

232 2 9일 비가 내림. 꿈을 꾸니 서남방 사이에 붉고 푸른 용이 한쪽에 걸렸는데, 그 형상이 굴곡져서 내가 홀로 보다가 이를 가리키며 다른 이들도 보게 했지만, 남들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돌린 사이에 벽 사이로 들어와 화룡이 되어 있었고, 내가 한참 동안 어루만지며 완성하는데 그 빛과 형상의 움직임이 기위(특이하고 웅장함)하다고 할 만했다. 기이한 상서로움이 많은 것 같기에 적었다(일기초)

10일 비가 뿌리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11일 비가 내리다가 늦게 잠깐 갰다.

12일 맑음. 바람은 일지 않았다. 윤엽이 들어왔다. 늦게 활 여남은 순을 쏘았다. 장흥 부사, 우우후도 와서 활을 쏘았다.

27일 한식 맑음. 원균이 포구에 있는 수사 배설과 교대하려고 여기에 이르렀다. 교서에 숙배하라고 했더니. 불평하는 기색이 많아 두세 번 타이른 후에 힘써 따르고 마지못해 행했다고 한다. 그 무지함이 심한 것이 우습다. 원균이 포구에 있는 배 수사에 교대하려고 여기에 도착했다….너무도 무지한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나는 또한 임시방편으로 손을 꼽으며 대비책을 묻다가 해가 저물어서 파하고 돌아왔다. 그의 꼴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일기초)

30일 비가 내렸다.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보았다.

3

237 10일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14일 비는 계속 내리고 바람은 그쳤다.

15일 늦게 활을 쏘았다.

16일 비가 내림.

19일 권언경 영공과 함께 활을 쏘았다.

20일 비가 계속 내렸다.

24일 흐렸으나 바람은 없었다. 공문을 처리하였다. 늦게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25일 종일 비가 내렸다.

26일 늦게 신호 두 조방장 및 우후와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245 5

1일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내렸다

3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4일 맑음. 오늘이 어머님의 생신인데, 몸소 나아가 잔을 드리지 못하고 홀로 멀리 바다에 앉았으니, 가슴에 품은 생각을 어찌 다 말하랴. 늦게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5일 비가 계속 내렸다. 유시에 잠깐 깼다. 활 석순을 쏘았다. 몸이 춥고 불편해서 앓다가 토하고 잤다.

6일 맑고 바람은 없었다. 늦게 활 스무 순을 쏘았다.

13일 비가 퍼붓듯이 오는데 종일 그치지 않았다. 혼자 대청 가운데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배영수를 불러 거문고를 타게 했다.

15일 궂은 비가 개지 않아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17일 늦게 활 스무 순을 쏘았는데, , 권 두 조방장이 잘 맞추었다. 오늘 쇳물을 부어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만들었다.

19일 동풍이 차게 불었다. 방답 두 첨사와 함께 활 서른 순을 쏘았다. 선수사도 와서 함께 참여했다. 저녁에 쇳물을 부어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만들었다.

29일 비바람이 그치지 않고 종일 퍼부었다.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뛰어넘어서 분에 넘쳤다. 몸이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는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했으며,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250 6

4일 탐후선이 오지 않아 어머니의 안부를 알 수 없었다.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났다.

5일 정오부터 비가 내려 활을 쏘지 못했다.

6일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불편하였다.

9일 저물녘에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이질에 걸리셨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난다.

19일 비가 계속 내렸다. 홀로 수루 위에 앉았는데 잠결에 아들 면이 윤덕종의 아들 운로와 같이 왔다. 이 편에 어머니의 편지를 보고 병환이 완쾌된 것을 알게 되니 천만다행이다. 신홍헌 등이 들어와서 보리 일흔여섯 섬을 바쳤다.

22일 맑음 할머님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28일 맑음. 나라 제삿날(명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256 7

 

1일 잠깐 비가 내렸다. 나라 제삿날(인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고 홀로 누대에 기대고 있었다. 내일은 돌아가신 부친의 생신이신데, 슬픔과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일기초) 나라의 정세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이슬과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동량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 잡을 추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종묘사직이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하루 내내 뒤척거렸다.

2일 맑음.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이다. 슬픔에 젖어 생각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늦게 활 열 순을 쏘았다. 또 칠전 다섯순을 쏘고 편당 세순을 쏘았다. 

7일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경상 우병사(김응서)에게 유지가 왔는데, “나라의 재앙이 참혹하고 원수가 사직에 남아 있어서 귀신의 부끄러움과 사람의 원통함이 온천지에 사무쳤건만, 아직도 요사한 기운을 재빨리 쓸어 버리지 못하고 원수와 함께한 하늘을 이는 분통함을 모두 절감하고 있다. 무릇 혈기 있는 자라면 누가 팔을 걷고 절치부심하며 그 놈의 그 살을 찢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경은 적과 마주하여 진을 치고 있는 장수로서 조정이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함부로 적과 대면하여 감히 도리에 어긋난 말을 지껄이는가. 또 누차 사사로이 편지를 보내어 그들을 높여 아첨하는 모습을 보이고 수호, 강화하자는 말을 하여, 명나라 조정에 까지 들리게 해서 치욕을 끼치고 사이가 벌어지게 했으면서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도다, 마땅히 군법으로 다스려도 아까울 것이 없거늘, 오히려 관대해 용사하고 돈독히 타이르며 경고하고 책망하기를 분명히 하였다. 그런데도 미혹한 것을 고집하기를 더욱 심하게 하여서 스스로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니, 나는 몹시 해괴하게 여겨져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이에 비변사의 낭청 김용을 보내어 구두로 나의 뚯을 전하니, 경은 그 마음을 고치고 정신을 가다듬어 후회할 일을 남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니 놀랍고도 황송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김응서란 어떠한 사람이기에 스스로 회개하여 힘쓴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는가. 만약 쓸개 있는 자라면 반드시 자결이라도 할 것이다.

9일 맑음. 오늘은 말복이다. 가을 기운이 서늘해지니 마음에 떠오른 것이 매우 많다.

10일 맑음. 몸이 몹시 불편하다. 늦게 우수사를 만나 서로 이야기했다. 군량이 떨어졌다는 말을 많이 하였으나 달리 계책이 없었다. 매우 걱정스럽다. 박 조방장도 왔는데 술 몇 잔을 마시고 몹시 취했다. 밤이 깊어 수루 위에 누웠더니 초승달 빛이 수루에 가득하여 갖은 생각을 이길 길이 없다.

 

262 8

1일 비바람이 크게 일었다.

2일 흐렸다

3일 맑음

4일 비가 내렸다

5일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6일 비가 크게 내렸다

7일 비가 계속 내렸다.

8일 비가 계속 내렸다.

9일 서풍이 크게 일었다.

10일 맑음. 몸이 불편한 것 같다. 홀로 수루 위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늦게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다섯 순을 쏘았다.

23일 호남 순찰사는 헐뜯어 말하는 기색이 많으니, 한탄스럽다.

 

268 9

11일 흐림.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못했다.

13일 맑음. 수루에 기대어 혼자 앉았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14일 늦게 나가 공무를 보았다. 우수사와 경상우수사가 함께 와서 이별주를 같이 나누고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선 수사와 이별할 때 짧은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북방에 갔을 때에 같이 힘써 일했더니.

남방에 와서도 생사를 함께 하네

한잔 술 오늘 밤 달빛 아래 나누고 나면

내일은 이별의 슬픈 정만 남으리

 

병신년(1596)

만일 서쪽의 적이 급한데 남쪽의 적까지 동원된다면 임금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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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1

4일 비가 몹시 퍼부어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5일 종일 비가 내렸다.

10일 맑았으나 서풍이 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다시 점을 쳤더니, “군왕을 만나 본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와 모두 길한 괘라고 기뻐하였다.

15이 이날 저녁 달빛이 매우 밝으니 풍년 들 것을 점칠 수 있다고 한다.

19일 오늘 메주를 쑤었다.

23일 맑음 바람이 찼다. 작은형님(요신)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심사가 몹시 어지럽다. 아침에 옷 없는 군사 열 일곱 명에게 옷을 주고는 여벌로 한 벌씩 더 주었다. 눈이 두 치정도 내렸다. 근년에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날 밤 몸이 몹시 불편했다.

28일 순찰사가 나와 상대하여 활쏘기를 하여 일곱 푼은 졌는데, 섭섭한 기색이 없지 않았다. 우스웠다. 군관 세 명도 다 졌다. 밤이 되어서 취하여 돌아갔다. 우스웠다.

 

294 2

13일 제주 목사에게 답장을 보내는데 청어, 대구, 화살대, 곶감, 삼색부채를 봉해서 보냈다.

14일 저녁에 물을 부엌가로 끌어들여 물긷는 일을 편리하게 해 주었다. 이날 밤 바다의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 빛은 비단결 같았다. 혼자서 높은 수루에 기대어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물긷는 일의 동선을 생각하여 부엌으로 물을 끌고 오는 것 쉬운 것 같지만 마음 쓰는 것이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17일 봄기운이 사람을 괴롭혀 몸이 몹시 노곤하였다.

27일 흐리다가 늦게 갰다. 이날 녹도 만호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둔전에서 받아들인 벼 이백스무 섬을 고쳐 담았더니 여러 섬이 줄었다.

 

303 3

2일 맑음. 몸이 노곤하고 땀이 흐르니 이것은 병의 근원이다.

9일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와 함께 잤다.

17일 흐리다가 종이 가랑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늦게 나주판관이 보러 왔기에 술을 취하도록 먹여 보냈다. 어두울 무렵에 박자방이 들어왔다. 이날 밤에 식은땀이 등을 적셔서 옷 두 겹이 다 적고 이부자리까지 젖었다. 몸이 불편했다.

18일 활 열 순을 쏘았다. 이날 밤 바다의 달빛이 어슴푸레하고 밤 기운이 몹시 찼다. 자려 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앉으나 누우나 편치 않았다. 다시 몸이 불편해졌다.

 

310 4

1일 큰 비가 내렸다.

16일 밤 바다에는 달 빛이 차갑게 비치고 티끌 한 점 일지 않았다. 다시 땀을 흘렸다.

19일 맑음. 습열 때문에 침 이십여 곳을 맞았더니 몸에 번열이 나는 것 같아 종일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24일 식후에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와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322 6

1일 궂은비가 종일 내렸다.

7일 아침에 흐리더니 늦게 갰다. 늦게 나가 충청 우후 등과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아닐 왜군의 조총 값을 주었다.

 

333 8

4일 맑았으나 동풍이 세게 불었다. 늦게 대청으로 나가 활 몇 순을 쏘다가 몸이 몹시 불편하여 활 쏘는 것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오니, 몸은 언 거북이처럼 움츠러들기에 바로 옷을 두껍게 입고 땀을 냈다.

16일 잠깐 갰으나 남풍이 크게 불었다. 막 갠 하늘에 달빛이 하도 밝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달빛이 하도 밝아서 잠이 들지 못하는 남자.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만 자연의 맛을 알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보인다.

 

339 8

12일 맑음. 종일 바삐 저어 이경에 어머님께 이르렀다. 백발이 성성한 채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시는데, 숨이 곧 끊어지려 하시는 모습이 아침저녁을 보전하시기 어렵겠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앉아 밤새도록 위안하며 기쁘게 해 드려 마음을 풀어 드렸다.

13일 맑음. 어머니 곁에서 모시고 아침밥을 올리니 기뻐하시는 빛이 가득했다. 늦게 하직을 고하고 본영으로 왔다. 유시에 작은 배를 타고 밤새 노를 재촉하였다.

 

343 9

8일 아침 식사에 쇠고기 반찬이 올랐는데 나라 제삿날(세조의 제사)이라 먹지 않고 도로 내 놓았다. 아침을 먹은 뒤 길에 올라 감목관에게 갔더니 감목관과 영광 군수가 함께 있었다. 국화 떨기 속에 들어가서 술 두어 잔을 마셨다.

 

13일 이중익이 군색하고 급하다는 말을 많이 하므로 내 옷을 벗어 주었다.

14일 맑음. 하루를 더 묵었다. 여진과 함께 했다.

15일 맑음. 체찰사가 현에 이르렀기에 들어가 인사하고 대책을 의논하였다. 여진과 함께 했다.

18일 비가 크게 내리더니 삼경에는 달빛이 대낮 같았다.

19일 비바람이 크게 불었다. 이날 아침 광주 목사(최칠견)가 와서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데 먼저 술을 들었기에 밥을 먹지도 못하고 취해 버렸다.

20일 종일 비가 내려 멀리 가지 못하고 화순에 이르러 잤다.

 

348 10

10일 맑음. 삼경 말에 뒷방으로 갔다가 사경에 수루방으로 돌아왔다. 오시에 어머님께 떠날 것을 고하고 미시에 배를 타고 바람 따라 돛을 달고 밤새도록 노를 재촉하며 갔다.

 

350 고기를 잡아서 군량을 계속 지원함.

 

정유년(1597) 1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펴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353 4

1일 맑음. 옥문을 나왔다. 남대문 밖 윤간의 여종 집에 이르니 조카 봉, 분과 아들 울이 윤사행 원경과 더불어 한 방에 함께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정으로 권하며 위로하기에 사양할 수 없어 억지로 마시고서 몹시 취했다.

3일 맑음. 일찍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나는 인덕원에서 말을 쉬게 하고 조용히 누워서 쉬다가 저물녘 수원에 들어가 경기 체찰사(홍이상)수하의 이름도 모르는 병사의 집에서 잤다.

5일 맑음. 해가 뜰 때 길을 떠나 곧장 선산에 이르렀다. 수목이 거듭 野火 야화를 겪고 말라 비틀어져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무덤 아래에서 절하며 곡하는 데 한참 동안 얼어나지 못했다. 저녁이 되어 외가로 내려가 사당에 절하고, 그 길로 조카 뇌의 집에 가서 조상의 사당에 곡하며 절했다. 또한 들으니 남양 아저씨가 제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저물녘 본가에 이르러 장인, 장모님의 신위앞에 절하고 바로 작은형님(요신)과 아우 여필(우신)의 부인인 제수의 사당에도 갔다가 잠자리에 들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11일 맑음. 새벽 꿈이 매우 심란하여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덕이를 불러서 대강 이야기를 하고 또 아들 울에게도 말했다. 마음이 몹시 언쨚아서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가눌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종을 보내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오게 했다. 금부 도사는 온양으로 돌아갔다.

13일 맑음. 일찍 식사 후에 어머님을 마중하려고 바닷가의 길로 나갔다. 도중에 홍찰방 집에 들러 잠깐 이야기하는 동안 아들 울이 종 애수를 보냈을 때는 배가 왔다는 소식이 없었다. 또 들으니 황천상이 술병을 들고 변홍백의 집에 왔다는 것을 듣고 홍 찰방과는 작별하고 홍백의 집에 이르렀다. 얼마 후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바로 蟹巖해암으로 달려가니 배는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가 없다.

16일 궂은비가 왔다. 배를 끌어 중방포 앞으로 옮겨대고, 영구를 상여에 올려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을 바라보니 찢어지는 아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집에 도착하여 빈소를 차렸다. 비가 크게 쏟아졌다.. 나는 기력이 다 빠진 데다가 남쪽으로 갈 길이 또한 급박하니, 부르짖으며 울었다. 다만 어서 죽기를 기다릴 뿐이다.

19일 맑음. 일찍 나와서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울부짖으며 곡하였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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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꿈에 돌아가신 두 형님을 만났는데, 서로 붙들고 통곡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장사를 지내기도 전에 천리 밖에서 종군하고 있으니, 누가 일을 주관한단 말인가. 통곡한들 어찌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두 형님의 혼련이 천리 밖까지 따라와서 이토록 근심하고 애달파 한 것이니 비통함이 그치지 않는다. 또 남원의 추수 감속하는 일을 염려하시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연일 꿈자리가 어지러운 것도 형님들의 혼령이 말없이 걱정하여 주는 터라 애통함이 더욱 간절하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원통한 마음에 눈물이 엉겨 피가 되건마는, 하늘은 어찌 아득하기만 하고 낵 사정을 살펴 주지 못하는가. 왜 어서 죽지 않는 것인가.

8일 뇌물로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 길을 연잇고 나를 헐뜯는 것이 날로 심하니, 스스로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21일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을 결정한다니 아직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이것이 이른바 백전의 돈으로 죽은 혼을 살게 한다는 것이리라.

22일 혼자 앉아 있노라니 비통하여 견디기가 어려웠다. 어두울 무렵 배 동지(배홍립)와 현감(이원춘)이 와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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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맑음. 다시 무씨를 심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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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이날 밤 가을 기운이 몹시 서늘하니 슬픔과 그리움이 어떠하겠는가.

9일 맑음. 내일 아들 열을 아산으로 보내려고 제사에 쓸 과일을 봉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 밤은 달빛이 대낮같이 밝으니 어머니를 그리며 슬피 우느라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21일 맑음. 경상 수사(배설)는 도망가 보이지 않았다. 우후 이의득이 보러 왔기에 패한 상황을 물었더니, 사람들이 모두 울며서 말하되,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뭍으로 달아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그를 따라 뭍으로 올라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대장의 잘못을 말한 것을 입으로는 다 말할 수 없고 그 살점이라도 뜯어먹고 싶다고들 하였다. 거제의 배 위에서 자면서 거제 현영(안위)과 사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해 눈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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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적에게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온 김중걸이 전하되, 이달 6일에 달마산으로 피난 갔다가 왜놈에게 붙잡히고 묶여서 왜선에 실렸는데, 김해에 사는 이름 모르는 한 사람이 왜장에게 청하여 결박을 풀어 주더니, 밤에 김해 사람이 중걸의 귀에다 대고 몰래 말하기를, ‘왜놈들이 하는 말이, 조선 수군 여남은 척이 우리 배를 추격하여 혹은 사살하고 혹은 불태웠으니 보복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배를 불러모아 조선 수군들을 모조리 죽인 뒤 경강으로 올라가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비록 다 믿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 없는 것도 아니므로 우수영으로 전령선을 보내어 피난민들을 즉시 육지로 올라가도록 일렀다.

 

정유년2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408 8

7일 길 옆에 싸리나무를 꺾어 펴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병사가 거느렸던 군사들이 모두 패전하여 후퇴하여 갔다.

21일 맑음. 사경에 곽란이 일어났다. 몸을 차게 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여 소주를 마시고 치료하려 했는데 인사불성이 되어 거의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구토를 여남은 차례 하고 밤새도록 고통스러웠다.

 

413 9

15일 맑음. 潮水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 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는데 이는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16일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기를,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더욱 심력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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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맑음. 아들 회를 보내서 제 어머니도 보고 여러 집안 사람의 생사도 알아오게 하였다. 마음이 몹시 불안하여 편지를 쓸 수 없었다.

6일 흐리고 가끔 비가 왔다. 진눈개비가 내렸다.

14일 맑음. 사경에 꿈을 꾸니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에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로 떨어지긴 했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는데, 막내아들 면이 끌어 안은 형상이 보이는 듯하다가 깨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늦게 배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이 와서 만났다. 배 조방장의 종이 영남에서 와서 적의 형세를 전했다. 황득중 등이 와서 보고하기를 내수사의 종 강막지라는자가 소를 많이 기르기 때문에 왜놈들이 열두 마리를 끌고 갔다.”고 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금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펴서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두 글자가 씌어 있어서 면이 전사했음을 알고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고하였다. 하늘이 어띠 이다지도 안자하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찍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겠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질이 남달라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 살아 있은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함께 지내고 함께 울고 싶건만. 네형, 네누이. 네 어미가 의지할 곳이 없어 아직은 참고 연명한다마는 내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은 채 부르짖어 통곡할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이날 밤 이경에 비가 내렸다.

15일 비바람이 종일 불었다.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하루 종일 뒤척거렸다. 여러 장수들이 와서 문안하지만 어찌 얼굴을 들고 대하라.

 

무술년(1598)

나의 임무는 철수하라고 호령함인데, 앞에 있는 배들의 함성이 하늘에 까지 울리고 대포 소리는 우레와 같아서 호령을 듣지 못하였다.

 

449 11

17일 어제 복병장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의 중간 배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하였다. 왜적은 한산도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고, 포획한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와서 보고했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와 뼈대

 

역자서문 5

해제 9

일러두기 46

완역 난중일기

교감본 난중일기

난중일기 교감기

참고문헌

충무공 이순신 연보

찾아보기

 

초고의 전체가 전해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고 또한 초서체로 전쟁중에 쓰여진 일기라 해독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정보를 넣으면 좋겠다. 각권(임진, 계사, 갑오, 을미, 병신, 정유, 무술)의 읽기 초입에 정치적 및 임진란에 대한 정보를 넣으면 충무공의 심적변화와 당시 정황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일기형식이라 일정부분은 반복적인 글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미묘한 차이를 읽을 수 있는 장치가 되지 싶다. 지도의 삽입이 없는 것 또한 아쉽다. 행정구역과 군사적 요충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임진란이 진행되는 상황을 지도로 표시하면 좋은 참고자료가 될듯하다.

 

감동적인 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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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비가 왔다. 배를 끌어 중방포 앞으로 옮겨대고, 영구를 상여에 올려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을 바라보니 찢어지는 아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집에 도착하여 빈소를 차렸다. 비가 크게 쏟아졌다.. 나는 기력이 다 빠진 데다가 남쪽으로 갈 길이 또한 급박하니, 부르짖으며 울었다. 다만 어서 죽기를 기다릴 뿐이다.

원균의 모함으로 옥살이를 하고 나와 며칠 되지 않은 상태. 어머니의 부고. 백의종군을 해야 하는 처지라 어머니의 상례도 제대로 치를 수 없는 형편이다. 삶을 생각하기 어려운 처지임을 충무공은 어서 죽기를 기다릴 뿐이다라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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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맑음. 사경에 꿈을 꾸니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에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로 떨어지긴 했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는데, 막내아들 면이 끌어 안은 형상이 보이는 듯하다가 깨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늦게 배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이 와서 만났다. 배 조방장의 종이 영남에서 와서 적의 형세를 전했다. 황득중 등이 와서 보고하기를 내수사의 종 강막지라는자가 소를 많이 기르기 때문에 왜놈들이 열두 마리를 끌고 갔다.”고 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금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펴서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두 글자가 씌어 있어서 면이 전사했음을 알고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고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안자하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찍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겠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질이 남달라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 살아 있은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함께 지내고 함께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가 의지할 곳이 없어 아직은 참고 연명한다마는 내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은 채 부르짖어 통곡할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이날 밤 이경에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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