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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2년 9월 28일 08시 34분 등록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 마음의 밖에 법(法)이 없는 것을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네"

 

창가의 감나무 하나, 나는 이 나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 왔습니다. 10년도 더 넘게 식당 앞 창가에 서서 점점 커지더니 올해는 다른 해의 두 배도 더 되는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습니다. 초여름 꽃 진 자리에 손톱만하게 생겨나던 푸른 열매가 장마에도 떨어지지 않고 점점 커 올라 서서히 익어 붉어지면서 깊어가는 가을 길을 기쁘게 따라 나서는 것을 나는 날마다 창가에 앉아 밥을 먹으며 바라보았습니다. 부디 내 삶도 저러하기를.

 

창가에 앉아 감나무를 보다 어떤 열매를 가졌느냐에 따라 그 나무의 이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었습니다. 감을 달고 있으니 감나무고, 포도를 달고 있으니 포도나무고, 사과를 달고 있으니 사과나무입니다. 문득 묻습니다. 나는 무슨 나무일까 ? 예쁜 가을 사과를 보며 한때 나는 사과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과수원에 심어져있는 나무를 보는 순간 싫어졌지요. 작은 키에 잔뜩 가지를 벌려 낮게 드리도록 변형된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붉은 낙락장송을 보고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외로워 보여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고고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저 한 그루의 벚나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꽃으로 온천지의 봄을 화사하게 알리다가 버찌를 잔뜩 달고 봄을 보냅니다. 여름 내내 푸르게 서 있더니 가을이 시작되면 벌써 단풍이 듭니다. 삽시간에 단풍이 들더니 삭풍이 불면 와르르 떨어져 가장 빨리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봄에 다시 그 화려한 존재로 피어납니다. 봄이 되면 나는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벚꽃 피는 일주일을 기다렸던지요. 나는 내 삶이 벚나무이기를 바랍니다.

 

나무가 그렇듯이 사람도 제각각 저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원효와 의상은 비슷한 시대에 태어나 한국 불교의 두 기둥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날 때부터 다른 두 구루의 나무였습니다. 두 사람이 당으로 법을 구하기 위하여 유학을 가면서 생긴 '해골바가지의 물' 사건은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인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에피소드입니다. 진골 귀족 출신이고 반듯하고 냉철한 의상은 그까짓 해골바가지 물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당의 화엄종 2조 지엄에게서 배워 귀국한 후, 교단을 만들고 화엄을 전교하고, 해인사, 부석사, 화엄사등 10대 사찰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효는 다릅니다. 잠결에 마신 그렇게 달던 해골바가지 속의 물이 깨고 나 실상을 보니 욕지기 나는 물임을 알고 홀연 '마음의 밖에 법이 없음'을 깨닫고 유학의 길에서 돌아섭니다.

 

어머니가 일을 가다 산기를 느껴 길가 밤나무 아래서 원효를 낳았습니다. 그 밤나무를 그래서 사라수라고 부릅니다. 출생부터가 낮은 곳에서 태어난 원효는 사건이 생길 때 마다 이리저리 휘둘리며 깨닫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의상을 사모한 산동의 아름다운 처녀 선묘는 죽어서 용이 되어 의상의 귀국길을 지켜주다 영주 부석사 선묘각 속의 영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의상은 사랑조차도 반듯한 스님답게 단정하게 합니다. 그러나 원효에게 사랑은 폭풍입니다. 그는 그저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인의 살맛을 보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파계하여 요석궁의 요석 공주를 취하여 설총을 낳게 됩니다. 의상은 늘 꼿꼿하고 원효는 늘 흔들립니다. 그래서 의상은 법사가 되고, 원효는 대중의 삶 속으로 깊이 스미는 토착 불교의 '새벽'이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은 원효를 성사(聖師) 라고 불러 높였지요. 계율과 선악 따위는 이미 그 위대한 삶 속에서 다 녹아 버렸습니다.

 

사람은 생긴대로 살게 마련입니다. 밤나무는 밤나무의 삶을 살고 감나무는 감나무의 삶을 삽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저 매일 열심히 자라 해마다 더 많은 밤과 감을 생산해 냅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의상이 원효여서도 안되고 원효가 의상이어서도 안됩니다. 원효는 원효여야하고 의상은 의상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에 맞는 삶입니다. 제 생긴대로 살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위로는 없습니다. 직장에서 또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 내기 위해 모두가 다 똑같은 연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디에 있던 가장 자기다울 때 가장 풍성하게 기여하게 마련입니다. 좋은 감나무인데도 열심히 자신을 키워 감을 주렁주렁 달지 못하는 감나무가 있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

삶에는 정해진 아무런 목적도 없습니다. 삶의 유일한 목적이 있다면 삶 자체입니다. 여행의 목적은 여행의 목적지에 닿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체인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결실만을 위해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감나무를 키운 주인의 마음이지 감나무의 마음은 아닙니다. 좋은 삶 그 자체가 훌륭한 결실인 것입니다.

 

추석길 오가며 감 열린 것을 보면  한번 물어 보시지요.   내가 만일 나무라면 어떤 나무일까 ?

 

주(註)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라는 말은 화엄경에 나온다.

'마음의 밖에 법(法)이 없는 것을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네' 라는 말은 원효가 의상에게 한 말로 '송고승전'(宋高僧傳) 의상 전기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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