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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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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일 09시 56분 등록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난데 없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말에 머리가 하얘지던 경험처럼.

어색하다, 너에게 자유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질문에 그렇게 데면데면할 수 없었음을 느꼈던 것처럼.

 

숱한 산행과 한 때는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고 청춘의 피를 쏟아 붓기도 했던 산이었다. 내 발목을 부러뜨렸고 손가락을 꺾어 버렸고 죽음의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했던 산이 이제는 낯설다. 나는 산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곳에서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악우들의 잔정을 나누었고 생사를 같이 하며 죽음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던 기억이 여전히 새파랗게 살아 있다. 아찔한 바위와 거대한 빙벽을 향한 두려움과 동경은 아직도 내 피를 거꾸로 흐르게 한다. 그런데 오늘, '나에게 산은 무엇인가'라는 느닷없는 스스로의 질문이 내 머릿속을 한동안 어지러운 싸이렌 소리로 채웠다. 

 

그랬던 산이 뜬금 없는 질문 하나로 이렇게 낯설어 질 수 있음이 어이없다. 나를 지배하는 사유와 육신이 '나'인지 '나'가 아닌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 허가 찔리는 느낌이다. 내 안의 자유가 내 의지의 소산인지 환경이 주는 제약의 결과인지 알지 못하고 '너의 자유를 말해보라'는 요구에 유구무언의 상황과 같음이다. 내 사유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은 산에 대한 내 마음인가. 스스로 했던 질문인가. 산은 나에게 어색하고 난데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높은 암벽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자일의 춤을 잊을 수 없고, 눈보라 치는 봉우리, 어둠 속에서 저 멀리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한 줄기 텐트 불빛의 기억을 지우기 힘들다는 것을. 만년설에 시커멓게 타버린 얼굴, 부르터진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활짝 웃어주던 악우의 미소를 잊지 못함을. 그래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내 심장을 뛰게 만들기도 했지만 나를 때려 눕히기도 했고, 나를 달 뜨게 했지만 나를 쓰러뜨리기도 했던 산으로. 친구도 되어주었다가 범접할 수 없는 신성으로 엎드리게 만들기도 했던 그곳으로 말이다. 사랑했고 미워했고 동경했고 분노했다. 그래, 어색하고 난데 없었던 이유는 'a=b라는 모순된' 공학적 의미로는 도저히 해석하기 힘든 갈등과 미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내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색함 속에는 나에게 '자유'와 '나'라는 가치에 필적할 등가(等價)의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겠다.

 

나는 산을 붙들고 내 모든 질문을 던지려 한다. 소유와 속도에 미쳐가는 세상에 희미한 메아리 한 자락 지르자. 차로 3시간이면 갈 길을 30일을 걸어간 자의 아둔함이 제 인류의 원형이었음을 각인 시켜보련다. 자본과 신기술의 파괴적 전진이 결국 삶을 절단 내고야 마는 사태를 산은 알려 줄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묻어둔 무수히 많은 졸렬한 삶들에게 히말라야의 눈부신 아침을 이야기 하자. 제 자신이 평범함으로 똘똘 뭉쳐 있음을 자괴하는 개인에게 일갈하자.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 그 원형의 삶이 산과 숲과 나무에 있음을 이야기하자.

 

그래 이것이야말로 세계다. 나의 세계, 고유한 세계요 그 비밀이다. 이곳에는 선생도, 학교도, 해답 없는 문제도 없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도 있는 곳이다.’

 

IP *.162.1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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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2 10:57:14 *.41.190.211
'나의 세계, 고유한 세계요 그 비밀이다. 이곳에는 선생도, 학교도, 해답 없는 문제도 없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도 있는 곳이다.’

재용아! 이 말 이  너의  참 마음인게지?

맞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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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07:14:07 *.194.37.13

그 원형의 삶이 산과 숲과 나무에도 있지만, 더 큰 삶은 나무 밑 뿌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너의 내면은 어떠한 나무들의 뿌리 못지 않게 튼튼하고 건강하다.

그래서, 너의 글은 울창한 숲이 될 것이요, 아름다운 산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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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3:28:50 *.210.80.2
악우? 재용에게는 전우에 버금 가는 도반의 경험이 있군요 기대하고 있어요 재용처럼 산을 사랑하는 이가 해 주는 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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