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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일 09시 59분 등록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 A. 아페 편집, 조성기 옮김



1. 저자에 대하여 


 <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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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1875726일 스위스 투르가우주 보덴 호숫가 케스빌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살 때 그의 부모는 일시적으로 별거한 상태였다. 이때 남근상 모양을 한 신의 꿈을 꾸었다. 네살 때에는 바젤에서 클라인 휘닝겐으로 이사를 한다. 일곱살 때는 질식발작을 수반하는 가성후두염을 앓았다. 아홉 살때 누이 동생이 태어났다. 열한살 때 바젤의 김나지움에 입학하고 신의 관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열두살 때에는 신경증 발작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그에게 결정적 사건이 된다. 거대한 똥 덩이리 체험도 이 때 한다. 열 네살에 생애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엔틀레부호에서 휴양을 하고 루체른을 둘러봤다. 열일곱 살에에 쇼펜하우어와 칸트 등의 철학서 탐독을 시작했다. 스무살에 스위스 바젤 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스물 다섯살에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취리히 대학교 부속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 그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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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 여덟살에 연상실험과 함께 고유한 과학적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서른 살에 조발성치매(정신불열병)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고 취리히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서른 네살에 프로이트를 처음 만났다. 프로이트가 융을 만나기 위해 취리히에 방문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 메사추세츠주 클라크 대학 초정으로 7주 간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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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프로이트, 스탠리 홀, 카를 융이다. >



이때 프로이트의 발작을 본다. 서른 여섯에 학문적 출세와 내적인격과 직면하는 실험간의 결정적 갈등을 일으키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내적인격과 직면하는 실험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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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다섯번째 (맨앞) 카를 융의 아내, 그 뒤에 카를 융, 융 왼쪽에 프로이트가 있다.>



 서른 여덟살에 자신의 무의식 이미지에 몰두하여 내적 탐험을 시작한다이때가 1913년인데 이 탐험은 1917년까지 5년간 하게 된다. 내적 탐험 기간 동안 이탈리아 라벤나 여행도 가고, ‘적극적 명상에 대해 처음 기술하기도 했다

 마흔 다섯 살에 첫 번재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다. 그때부터 여러 나라 여행을 다녔는데, 미국여행을 통해 푸에블로 인디언과 만나기도 하고, 아프리카 여행도 두번식 다녀온다

 쉰 네살에 사색과 탐구를 통해 자기의 개념에 도달했다. 쉰 일곱살에는 신문에 발표한 [피카소론]으로 취리히 시로부터 문학상 수상했다. 예순 세살에 인도여행을 간다. 캘커타 대학 25주년 기념 축제에 참가했다. 예순 아홉에 발이 부러지고, 심근경색을 일으키며 죽음을 체험했다. 그리고 칠십대에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여든 살에 아내 에밀리가 죽었다. 그리고 195782세때부터 내가 지금 읽은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든 네살에 그 유명한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신을 압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융은 196166일 퀴스나하트 시의 자택에서 짧은 와병 후에 영면했다

 

<개인적 평가

먼저 그의 생애가 내가 생각하기에 짧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기뻤다. 그리고 즐거웠다. 그러나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아니, 이해한 부분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가 인간이 삶을 살 때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챘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참으로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다. 융은 자기 실현의 개념을 피력했고,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삶을 산 학자이자, 작가이며, 한 인간이었다

 나는 융을 교육심리학을 배울 때 알았다. 그때 나는 프로이드는 아주 오래된 사람이고 카를 융은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프로이드 학문은 아주 오래됐고, 카를 융의 학문은 신생 학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를 자세히 알아보니 프로이드와 불과 19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데 프로이드는 노인처럼 느껴지고 카를 융은 젊은이처럼 느껴진다. 그의 자서전을 읽는 내내 나는 그의 시절을 쫓아가면서 어린 융, 청소년 융, 대학생 융을 보았다. 그리고 읽는 내내 그를 젊은 한 청년으로 인식하고 읽어 내려갔다. 이유는 모르겠다. 책에 그가 나이들었을 때 사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젊은 사람의 생각처럼 느껴졌다. 용기 있는 선택의 경험을 써내려갔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주에도 이 책을 다시 읽을 것이다. 이번 주에는 그의 생각보다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투명한 벽을 가진 사람으로 꿈 하나 꾸고 싶은 생각이 든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옮김이 서문

p7 융 자서전에는 어떤 설명도 없이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인도어, 스위스 사투리 들이 막바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카를 융이 여러가지 언어를 구하할 줄 알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부분이다. 언어의 장벽을 얼마나 뛰어 넘고 죽을 수 있을까. 내가 할 줄 아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봤다.)


p8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그와 같이 자기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 만하다


p9 카를 융은 일생 동안 종교적인 주제에 매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섣불리 신에게 접근했다가는 어떤 위험스런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그렇게 위험스럽긴 하지만 신은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위대한 위험인 것이다

 카를 융은 죽기 2년 전 BBC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 기자가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의 시청자들은 융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p11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p12 인간은 자신을 무엇과도 비교해 볼 수 없다.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나도 무한한 신성으로부터 떨어져나왔지만, 어떤 동물이나 식물 또는 돌에도 대비해 볼 수 없다. 오직 신화적인 존재만이 인간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결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터이나, 기껏해봤자 그런 것을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인간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한 생애의 이야기는 어떤 지점, 즉 그 사람이 기억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p13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엄밀히 말해 나의 생애에서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무상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적 체험들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나의 꿈과 환상들이 포함된다


p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p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01 검은 옷을 입은 남자 

p25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p31~33 목사관은 라우펜성 근처에 홀로 외롭게 서 있었다. 교회 관리인 농가 뒤쪽으로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중략)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두려움으로 식은 땀에 젖어 있었다.

(남근상 꿈. p34 (꿈 해석)그 남근상의 추상적 의미는, 그것이 스스로 남근이 발기되듯 수직으로 보좌에 서 있다는 사실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초원의 구멍은 아마도 무덤을 의미할 것이다. 무덤 그 자체는 일종의 지하사원이고, 그곳의 녹색 커튼은 초원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 커튼은 녹색식물로 뒤덮인 지구의 신비를 나타내는 셈이다. 그 양탄자는 붉은 피였다./ 카를 융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던 꿈)


p34 아무튼 그 꿈속의 남근상은 보통은 언급되지 않는 지하의 신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나의 젊은시절 내내 그런 의미로 남아 있었는데, 누가 주 예수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해서 말할 때마다 다시 생각나곤 했다. (중략) p35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p36 그 꿈에서도 본질적인 것은 기묘한 상징적 치장과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는 놀랄 만한 해석이었다


p37 어린아이에게 익숙한 천진성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모든 멍텅구리는 뭔가 아주 거북스러운 것을 빨리 없애버리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검은 남자’ ‘사람을 잡아먹는 것’ ‘우연’ ‘회고적인 해석에 대해 헛소리를 늘어놓고 싶은 유혹을 느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따. , 이들 점잖고 쓸모있고 건장한 사람들은 나에게 낙천적인 올챙이들처럼 여거진다. 그 올챙이들은 아주 얕은 빗물웅덩이에 가득 모여들어 햇볕을 받으며 즐겁게 꼬리치고 있으나 바로 다음날에 웅덩이가 말라버릴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때 무엇이 내 안에서 말을 한 것일까? 누가 뛰어난 문제제기를 표현하는 발언을 한 것일까? 누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함께 섞어, 나의 후반기 생애를 격렬하기 그지없는 폭풍으로 채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제공했단 말인가? 하늘과 땅 양쪽에서 온 그 낯선 손님 이외에 그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유년시절의 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따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훌발을 한 것이었다


02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p42 그런 시간이면 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나의 그 원초적 계시(남근상 꿈을 의미함)’와 이 책(<<오르비스 픽투스>>, 그림이 들어 있는 어린이용 라틴어 교재)이 연관되어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결코 누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정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어머니가 나에게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주었다. 어머니가 이교도들이라는 말을 할 때 가벼운 경멸투의 그 어조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의 계시를 듣는다면 깜짝 놀라며 거부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상처를 자초하고 싶지는 않았다.

(카를 융이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어린아이 같지 않은 생각, 그 생각을 스스로 조절하여 발설하지 않았다는 것이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내가 만약 융과 같이 특별한 꿈을 꾸고, 계시를 받는다면, 나는 커밍아웃을 했을까? 아니면 그냥 현실에서의 삶을 선택하고 잊으려고 햇을까? 아마 후자를 선택했을 것 같다. 하지만 융은 그러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살고, 무의식 세계도 마음껏 누렸다. 엄청난 조절력을 가졌다.)


p45 그 유년시절에 나는 시골학교 학우들과 사귀는 동안 발견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집에 있을 때와는 달라졌다. 나는 그들과 장난도 치고 집에서는 결코 생각도 못했던 그런 일을 스스로 꾸미기도 했따. 물론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도 온갖 것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로서는 나의 변화가 학우들의 영향 탓이라고 여겨졌다. 그들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되도록, 어찌해서든지 나를 유혹하거나 강요했다


p47 나 자신의 불확실성은 기묘하고 매혹적인 어둠의 느낌을 동반하고 있었다

 내가 심취했던 유년시절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와, 계속 굴러가며 점점 더 멀어져가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장소에서 억지로 몸을 돌려야만 했다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유년시절의 영원성이 번개와도 같이 내게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영원성이 의미하는 바는 곧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분명해졌다. 나 자신과의 불화와 거대한 세계 속에서의 불확실성은 나로 하여금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어떤 조치를 하게 했다


p49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p51 이러한 회상을 함으로써,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훨씬 나중에 낱낱이 살펴본 아버지의 장서에는 그러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아버지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음이 입증된 셈이었다


p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학창시절)

01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p59 여든세 살의 나이에 지난날의 기억들을 적어나가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어떤 연광성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각 뻗어나간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p60 수학시간에는 심한 불안을 느꼈다. 선생은 대수가 아주 자명하다는 식으로 큰소리를 쳤지만, 나는 아직 수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수는 꽃이나 동물, 화석도 아니었다. 수라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헤아림을 통해 생겨나는 수량에 불과했다. 혼란스럽게도 이 수량은 이제 소리를 의미하는 문자로 대체되어, 말하자면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이상하게도 급우들은 이 수들을 다룰 줄 알았으며, 자명한 것으로 여겼다. 아무도 나에게 수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못했고, 나는 그러한 의문을 조리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나의 어려움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수란 양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해 온 추상적인 개념이다. 수는 물체의 수량등을 나타내는 거이고, 수를 표시하기 위한 기호가 숫자다. 예를 들어, 사과 한 개, 자동차 한 대, 강아지 한 마리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사실들이나, 이 사실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개념을 뽑아 이를 1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이 사과, 자동차, 강아지는 아니며 또한 위에서 아래로 그어진 선분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수의 종류는 자연수, 정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복소수 이렇게 있는데, 이 수들은 방정식의 해를 구하기 위해 생겨났다. 자연수는 자연에서 발견한 것이라면 (몇 개인지 수량을 나타내기 위해) 음수는 ‘x+1=0’의 해를 구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트 2와 같은 숫자는 x^-2=0의 해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넓이가 2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결국 그것이 대수적 문제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니, 왠지 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해야하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문명과 수학, 철학과 수학, 수에 대한 꿈 꾸고 싶다. 환상도 보고 싶고)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격앙시켰던 것은 a=b, b=c이면 a=c가 된다는 그런 공식이었따. 확정된 정의에 의한다면, ab와 다른 것을 가리키므로 별개의 것이며 b와 똑같이 취급될 수 없는 것이었다. c 역시 말할 필요도 없었다. 등식을 다루는 경우에는 a=a, b=b 등으로 말해지는 것인데, a=b는 즉각 거짓말이나 속임수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카를 융이 어렸을 때 느꼈던 감정이길 바란다. 수학은 다른 두개를 같은 것으로 만드는 등가적성질을 가지고 있다. ab는 어떤 수 집합에 들어 있는 원소를 뜻한다. 즉 자연수라는 집합에서 ab를 꺼낼 것인데, ab는 모두 자연수 어떤 값이다. 따라서 a1이라고 해서 b1을 제외한 자연수 중에서 꺼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둘 다 자연수 전체집합이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a=b라는 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지적 도덕성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건 카를 융이 이것은 확정된 정의에 의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융이 수학을 배우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과 수학적 개념을 피아제가 말하는 평형화에 성공했다면 조금 달랐을까?)


p62 내가 적절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는데도 어찌하여 수학과 관계를 맺지 못했는지, 그것은 한평생 나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수학에 대해 나 자신의 도덕적인의혹은 나로서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p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02 너는 누구냐?

p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p70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집주인을 가리키는 말인 듯함)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18세기에 사는 노인으로, 조임쇠가 있는 신발에 하얀 가발을 쓰고 높고 오목한 뒷바퀴들이 달린 마차를 타고 다녔다. 그 바퀴들 사이에는 좌석 하단부가 용수철과 가죽띠 위에 얹혀 있었다


p72 , 나는 두 시대를 살고 있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결과에 혼란을 느끼고 깊이 숙고하게 되었따


p73 이 세상은 나에게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막연한 위험과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p84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이미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내가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기 위해 심지어 나쁜 일을 하고 저주받을 일을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원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부디 제발, 그 비밀에 대해 뭔가를 아는 누군가가 어디에 있어야 할 텐데, 어딘가에 진리가 있어야 할 텐데


p85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03 자연과 사원

p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말로는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체험, , 믿음. 체험하고, 알면, 믿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융은 아는 것에서 끝냈다. 신을 믿냐고 한 질문에 신을 안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믿음을 어떤 연속선 상에 놓지도 않았고, 속하는 집합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것 같다. 과연 인간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기나 한 것일까? 나는 하나님이 계심을 안다. 더 명확한 말인 것 같다. 믿는다는 말보다도 더 강력하고 확정적이다. 융이 사용했던 단어 안다라는 말을 곱씹어 보게 되는 부분이다.)


p88 내가 비난을 받는 모든 것은 나를 화나게 했으나, 나 자신을 돌아볼 때 그 비난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아주 조금 알고 있었고, 그 조금 알고 있는 것마저 모순되었기 때문에 선한 양심을 가지고는 어떤 비난도 거부할 수 없었다


p89 물론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더 나은 표현을 쓰면, 결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보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93 내게 일어난 바와 같이, 하느님은 자신의 압도적이고 충격적인 의지를 무력한 인간들에게서 철저히 실현되도록 할 수 있는 존재다


04 두 인격의 어머니 

p95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p96 그 해답을 나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느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내 생애에서 그것을 실현해야만 될 것처럼 여겨졌다.


p101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마치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랏으나, 그 목소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것 같았고 그 상황에 들어맞는 내용을 정확하게 말했다


p104 그때 삼위일체에 관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나의 관심을 끄는 뭔가가 있었다.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적 모숨을 지니고 있는 문제였는데, 그 모순이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게 되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해결받지 못한 부분이다. 나도 교회에서 교리 공부를 꽤 하는 편인데, 삼위일체에 대한 정확한 답은 얻어보지 못했다. 그저 믿는 것 뿐이다. 하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 우리 마음에 오신 분이시다. 동시에 하나님이시다. 내가 알고 있는 삼위일체이론이다. 그럼 결국 예수님의 12제자는 하나님과 3년을 함께 생활했던 것이 된다. 그들은 신과 함께 3년을 지냈던 아주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 복잡하다.)


p109 사람은 하느님에 관하여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나는 하느님과 대성당에 대한 그런 착상을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세 살 때 꾸었던 꿈은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나의 의지보다 강한 의지가 그 둘을 나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그럼 자연이 내 안에서 그랬던 것인가? 그러나 자연은 창조주의 의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것과 관련하여 악마를 고소해봤자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악마 역시 하느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만이 실재였으며 파괴하는 불이요 형언할 수 없는 은총이었다


05 악의 기원

p111 나는 그로부터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견해가 나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종교란 하느님이 나와 함께 이루는 그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것은 하느님 편에서의 행위로 나는 다만 거기에 맡겨져 있을 뿐이었다. 하느님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종교는 인간 편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과 같이 거의 알지 못하는 그 어떤 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찾기 위해서 하느님에 관해 더 많이 알아야만 했다. 나는 비더만의 <하느님의 본질>이라는 장에서, 하느님은 인간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될 수 있는 인격으로서, 그리고 또한 세계를 포괄하면서 세계를 전적으로 초월하는 고유의 자아로서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15 나 자신은 하느님이 인간이나 짐승이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잔인한 만족감을 느낀다고는 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느님이 대극의 세계를 창조하여 하나가 다른 것을 잡아먹도록 하고 인생이 죽음으로 향한 탄생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자연법칙의 놀라운 조화라는 것은 가까스로 통제된 혼돈과 거리가 먼 듯이 보였고, 미리 예정된 궤도를 따라 별들이 빛나는 영원한하늘은 단지 질서와 의미도 없는 우연성의 집합처럼 여겨졌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조화로운 성좌는 실제로는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성좌는 단지 임의적인 결합에 지나지 않았다


06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p128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숙고하는 가운데, 내가 이전에 그 금지된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할 때 그와 같이 단호하게 강요되었던 그 다른 사념들과 지금 나의 생각들이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무렵 나는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사이의 차이점을 잘 보지 못하고, 2의 인견의 세계를 나 자신의 개인적 세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 자신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거기 있다는 의미심장한 느낌이 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별들과 끝없는 우주의 장엄한 세계의 숨결이 나에게 닿는 것 같았으며, 또한 오래전에 죽었으나 아직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몰래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급전은 누멘(Numen : 신성한 힘)의 후광에 둘러싸여 있었다.


p134 나는 쇼펜하우어의 음울한 세계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으나 그의 문제해결 방법까지는 찬성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의지라는 말이 사실은 신과 창조주를 뜻한다는 것과, 그가 이를 맹목적이라고 일컫는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 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을 요구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쇼펜하우어의 견해에 대해 거리낌을 갖기 않았다. 나는 그 견해가 사실에 의해 증명된 판단이라고 여겼다


p138 실제로 모든 화급한 문제들은 일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릴 적 비밀이 그러했듯이, 신의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무엇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 안에서 두 세계로 나누어진 분리를 지양하려는 나의 노력이 저지되고 마비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를 보통의 일상적인 존재로부터 무한한 신의 세계로 밀어넣는 사건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은 나에게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07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p139 한편으로는 사실에 기초를 둔 진리들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에 강한 흥미를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교종교사와 관련된 모든 것에 매료 되었다


p143 나는 제2의 인격을 없애버리려고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학교나 친구들 앞에서는  제2의 인격을 잊을 수 있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2의 인격은 사라졌다


p144 2의 인격이 임시휴게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에게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2의 인격 안에서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천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상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제1의 인격이 반항하여 자기가 행동하기도 하고 행동을 야기하려고도 했으나, 당분간은 해결할 수 없는 분열에 처해 있었다. 보아하니 나는 기다리면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08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p149 점점 더 새로운 깊고 먼 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다가 마침내 나는 산꼭대기에 서게 되었다. 산소가 희박한 익숙지 않은 새로운 공기 속에,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조망 가운데 그렇게 서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세계다. 나의 세계, 고유한 세계요, 그 비밀이다. 이곳에는 선생도, 학교도, 해답 없는 문제도 없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도 있는 곳이다.’ 


p154 대극의 충돌로부터 내 생애 처음으로 체계적인 환상이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것은 단편적으로 나타났는데, 내 기억이 맞는 한, 그 환상의 근원은 아마도 나에게 깊은 충격을 준 한 가지 경험에 있는 듯했다


p156 ‘정신이란 물론 내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으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주 희석된 공기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겼다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01 파우스타와 요한복음

p169 <<파우스트>>속에는 내가 직접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생동하고 있었다.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는 나에게 낯설었는데, 그보다 더 낯선 것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구원자였다. 이에 반해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의 살아 있는 등가물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해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러한 통찰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적 안정감과 인류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다. 나는 더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며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나 이를테면 잔인한 자연의 희롱물도 아니었따. 나의 대부요 보증인은 위대한 괴테 바로 그 자신이었다


p170~171 나는 제1의 인격으로서 공부, 돈벌기, 책임, 분규, 혼란, 과실, 복종, 패배 들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를 향해 밀려오는 폭풍은 시간이었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가면서도 동시에 쉼없이 나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것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속으로 탐욕스럽게 끌어들인다. 우리는 단지 앞으로 돌진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잠깐 동안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과거는 무서울 정도로 바로 여기에 실재하며, 충분한 해답으로써 몸값을 치르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끌고 가버린다

 그 당시 나의 세계관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나는 나의 길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외부로, 제한된 세계 속으로, 삼차원의 어둠속으로 이끌려 가고 있음을 인식했다


p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그런데 가족정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시대정신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게 무의식적이다. 이 가족정신이 전반적으로 동의를 표시할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세계확실성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신이 많은 것과 대립하여 스스로 어긋나버리면 세계불확실감이 생겨난다


p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연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이와 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그 부분을 나의 개인적인 용어로 2의 인격이라고 일컬었다. 그것인 한낱 개인적인 흥밋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 서양 종교에 의해 입증되었다. 서양 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 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02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p181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들은 강아지처럼 눈먼 벙어리로 태어나서,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아주 적은 빛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그 빛이 그들이 더둠어나가는 어둠을 밝혀줄 수는 없다. 그리하여 내가 알고 있는 신학자들 중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을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만일 그들이 그 빛을 보았다면 신학적인 종교를 가르칠 리 만무했다. 그 신학적 종교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신에 대한 체험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주지 않고 믿기만을 요구했다


p181~182 나는 유물론자들이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정의를 믿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불쌍한 아버지가 비를 피하려다가 낙숫물을 뒤집어쓴 꼴이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신의학자들은 물질에도 인간정신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p185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나에게 몹시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낡은 시대의 한 조각이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것을 느꼈다. 다른 한편, 그 무렵 남자다움과 해방감이 조금씩 내 안에서 싹텄다


03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p192 나는 그리스도를 전면에 내세워 그를 하느님과 인간의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유일한 인물로 만드는 견해에 대해 동조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이런 견해는 그리스도가 죽은 후에는 그를 낳았던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대신할 것이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견해와도 전적으로 모순되었다

(무슨말이지 이해가 힘들다.)


p193 나는 철학 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p197 대개 전문적인철학도들이 가장 격렬하게 니체를 배척했다


p198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니체를 닮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을 느끼며 주춤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를 주위로부터 고립시킨 그 비밀에 있어 비슷한 데가 있을지도 몰랐다. 누가 알겠는가? 니체가 내적인 체험과 통찰을 가지고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해 말하고자 했으나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분명히 그는 기인이었따. 아니면 적어도 그런 사람으로 여겨졌고 자연의 놀림거리라고도 생각되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 자신이 또 하나의니체처럼 인식 될 수도 있따는 가능성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p199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이제 나의 제2의 인격은 차라투스트라였다. 물론 이것은 두더지의 훍두둑을 몽블랑산에 비교한 격이긴 하지말 말이다


p200 그는 제2의 인격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세상에다 그것을 거리낌없이 앞뒤 재지도 않고 밝혀버렸다. 그는 자신이 겪은 황홀경을 함꼐 느끼고 모든 가치의 전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리라는 유치한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교양있는 속물들을 찾아냈을 뿐이었다. 우스운 비극처럼 니체 자신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알지 못했고, 신들린 사람으로 주변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p201 <<파우스트>>가 나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차라투스트라>>는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그 문은 오랫동안 철저하게 닫힌채로 있었다. 나는 소 두 마리가 도깨비마법에 걸려 그 머리들이 동일한 고삐에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한 늙은 농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의 어린 아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농부가 대답했다. “얘야, 그런건 말하는 게 아니란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따. 이런 점에서 순지한 사람은 동료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모욕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작가, 신문기자, 또는 시인들에게만 그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허용할 뿐이다. 나는 새로운 관념이나 단지 특이한 측면까지도 오직 사실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사실들은 남아 있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책상 밑에 버려져 있지 않고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만나게 되고, 그는 자기가 찾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04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p211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p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인격과 치료자 인격간의 대결이다


p217 나는 나의 숙명을 정말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자서전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어야만 했느냐에 관해 환상을 엮어나간다든지 생애를 위한 변명을 쓰는 그런 잘못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01 환자들

p224 아무튼 심리학에는 명백한 진리가 거의 없다


p226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재료의 탐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p231 연상에 관한 연구 덕분에 나는 그후 1909년에 클라크대학으로 초빙되었다. 그 대학에서 나의 연구에 관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와 같은 시기에 나와는 별도로 프로이트도 초빙되었다. 명예 법학박사학위가 우리 두 사람에게 주어졌다

 미국에서 내 이름이 ㅇ라려지게 된 것은 역시 연상실험과 심리전기실험 때문이었다


p235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p237 나는 정신의학의 주요과제는 병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그때까지는 그런 것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직업에 들어선 셈이었다!


p241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 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p243 겉으로 보게 되면 정신병 환자에게서는 비극적인 붕괴만이 보인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환자 영혼의 다른 측면의 삶을 보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자주 환자의 외관에 속는다


p246 그녀의 환상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상태, 즉 정신병이 생기고 말았다. 그녀는 이를테면 지구 밖 세상에 존재하며 인간들과는 접촉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멀리 우주공간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날개 달린 악마를 만나게 되었다


p247 그후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02 꿈의 분석

p248 정신치료와 분석은 인간 개체가 그러하듯 다양한 법이다.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나로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해결책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p249 나의 분석에서는 이론적 전제들은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체계적인 것을 멀리하고 있다. 나에게는 각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환자에게 각각 다른 언어가 필요한 법이다

 결정적인 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또 다른 한 인간과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은 일종의 대화이며 여기에 당사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분석가와 환자는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된다. 의사도 무언가 할 말이 있고 환자도 마찬가지다

 1909년에 나는 이미 잠재적 정신병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p251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중대한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의사는 그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p252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 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세심한 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자기자신을 환자와 마찬가지로 관찰해야 한다


p253 꿈은 의식적인 태도에 대한 보상 바로 그것이다


03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p259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인들은 질투심이 많아 남편의 교우관계를 깨뜨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한 부인들은 자신들이 남편에게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p260~261 이러한 경험에서 중요한 점은 원형적인 상황(이 사례에서는 죽음이라는 사오항이지만)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의식이 내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미 그날 저녁 내내 보통 때의 기분하고는 유난히 달리, 이상하게도 마음이 어수선하고 신경이 예민했던 것이다


p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게 너무나 좁은 정신적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p267 내적 체험의 모험, 즉 영적인 모험은 많은 사람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정신적인 실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파문에 해당한다


 p269 행운이든 불행이든 세상의 관심을 끌어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상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혹은 전례가 없는 발전과 재앙을 두루 겪은 사람들을 의사는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게 다른 사람들이 모든 삶을 바치기까지 끝없이 열광할 만한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있다그러나 이러한 재능이 기묘하고도 꺼림칙한 정신적인 기질 속에 뿌리박고 있어, 우리는 그것이 천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단편적인 발달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회적 평지에서 살맏르이 만나게 되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영혼의 자원들이 사실 같지 않은 황당한 상황에서 꽃을 피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p272 나의 환자들과 피분석자들은 나를 인간적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여, 그것에 관한 본질적인 것들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로서는 유명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01 이론적인 불화 

p279 그가 나를 초대하여 19072월 빈에서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오후 1시에 만나 열세 시간 동안이나 그야말로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프로이트에 견줄 수 없었다.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내가 보니 그는 무척 총명하고 예리하며 어느 면에서나 괄목할 만한 사람이었다


 p281 “친애하는 융, 성이론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십시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모시오, 우리는 성이론을 가지고 하나의 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보루(堡壘) 같은 것 말입니다.” 그는 열정에 넘쳐서 말했는데, 그 말투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아,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겠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해다오!”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보루교리와 같은 단어들이었다. 왜냐하면 교리, 즉 논의할 필요도 없는 신앙고백은 오직 의심을 단번에 눌러버리려고 할 때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학적 판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개인적인 권력충동과 관계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우리의 우정에 결정적으로 금이 가게 하는 충격이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과학적 진리는 얼마 동안만 만족스러운 가설이미 모든 시대에 걸친 교리는 아니었다


 p283 만일 심리학이 없고 구체적인 대상들만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실제로 하나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갖다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시 말해 심리학적 경험의 영역에서는 긴박감, 불안증, 강박증 등이 조금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불안과 양심의 가책, 죄책감, 강박증, 무의식성, 본능적 충동 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피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게 된다


 p287 동양에서는 니르드반드바(Nirdvandva : 양쪽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따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p288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이럴진대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이 너무도 적은 심리학적 사실들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덧없을 정도로 작은 의식이 어떤 것을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02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p295~297 (카를 융의 꿈) 2층집. 2층 로코코양식, 거실. 1층 중세풍, 지하 1층 로마시대, 마지막 동굴 원시문화 


 p298 (꿈 해석) 집은 일종의 마음의 이미지, 즉 그때까지의 무의식의 부가물을 수반하는 당시의 의식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은 나에게 분명했다. 의식은 거울로 나타나고 있었다. 거실은 고풍스러운 양식이었음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1층은 무의식의 제1표면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깊이 내려갈수록 풍경은 점점 더 이상해지고 어두워졌다. 동굴 속에서 나는 원시문화의 유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나의 내부에 있는 원시인의 세계, 의식이 다다를 수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는 세계였다. 선사시대의 동굴을 인간이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기 전에는 대개 동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인간의 원시적인 마음은 동물의 혼의 활동과 가까이 접하고 있다


p300 나의 꿈은 이와 같이 일종의 인간정신의 구조적 도식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정신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전적으로 비개인적인 성질의 어떤 것을 가정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딱 들어 맞는것이었다. 그 꿈은 나를 지도해주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처음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정도로까지 확증되었다그 꿈은 개인정신의 밑바닥의 있는 선험적이고 집단적인 것에 대한 최초의 암시였다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p301~302 나는 고대신화학과 원시인의 심리학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p306 나의 전조재는 진부한 생활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도 있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을 찾고 있었다


 p308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 한 버릴 수 없다. 완전히 이성적인 삶의 영위란 경험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대개 불가능하다. 특히 신경증 환자처럼 본성이 그와 같이 비이성적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p310 나는 고독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소위 친구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미리 곰곰이 따져본 점이었다.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과 나의 확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희생장이 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따. 이러한 통찰로 나는 다시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나의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말이다


 p311 프로이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의 꿈을 무의식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p312 철학적으로 성찰해보면, 오늘날의 문화의식은 무의식개념과 거기에 따르는 결과들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세기가 넘게 무의식과 직면해왔으면서도 말이다. 우리 정신의 존재가 두 개의 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통찰은 여전히 장래의 과제로 남아 있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01 신화와 환상

 p316 오늘날 인간은 어떤 신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기독교 신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너 자신은 그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 아니오! 나는 그 신화 속에서 살고 있지 않소.” “그럼 우리는 이제 아무런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그렇소. 우리는 이제 아무런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오.” “그러면 무엇이 너의 신화인가? 너는 어떤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여기에 이르자 내 마음이 편치 않아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중단했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고 만 것이었다

(첫 오프 수업 때 했던 작업이 생각난다. 미네르바와 겨뤘던 이라크네 신화를 뽑았다. 신과 대결해서 지지 않는  실력을 가진 이라크네. 나는 어쩌면 능력이 출중한 무언가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 신과 겨뤄도 지지 않는 능력을 가진 능력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나의 신화다. 나는 과연 내 신화를 완성할 수 있을까? 그럴려면 가장 시급한 것인 굿바이 게으름이다.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글쓰고, 연구하는 것이 습관화 되야 한다. 매일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지 알면서도 하지 못한다. 실행이 답인데, 답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까? 힘내자!)


 p327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신과의사로서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감행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미지들이 나를 자기들 것으로 삼았을 위험성이 있었다


02 필레몬과의 대화 

p336 그는 내게 설명하기를, 내가 나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의 견해로는 그 생각들이 숲속의 짐승이나 방 안에 있는 사람, 공중의 새처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당신이 방 안에서 사람들을 본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이 그 사람들을 만들었다거나 당신이 그 사람들에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차츰 나에게 정신적인 객관성, ‘마음의 진실을 깨우쳐주었다


 p342 그는 자신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의 평가에 의해 살았따. 이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로 인하여 그는 확신이 흔들렸고 아니마의 속삭임에 마음을 열어놓고 말았다. 아니마의 말은 대게 유혹하는 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교활함을 지니고 있다

결정적인 것은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03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p344 나는 그 많은 환상이 든든한 토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내가 우선 인간적인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현실이란 과학적인 이해를 의미했다. 무의식이 내게 가져다준 통찰을 통해 나는 구체적인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과제의 요점이 되었다


 p345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마아깆고 말 것이다.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일이다


 p347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토록 방황하고 침체되어 있던 때이긴 했지만, 내가 체험한 모든 것은 나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됨을 나는 항상 알고 있었고 삶의 의미를 폭넓게 채우고자 노력했다. 나의 좌우명은 도전에 맞서 싸워라!’ 였다


 p350 오늘날 내가 과거를 돌이켜보고 환상에 관해 작업하던 시절의 체험을 생각해보면, 그 작업이 소명과도 같이 나를 압도하며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환상이 이미지 속에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과도 관계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써 내가 나 자신에게만 속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그후로 내 인생은 보편성에 속하게 되었다


 p353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p357 대략 1918~1920년에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단일형의 발달도 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시작단계에서나 있는 일이고, 그 뒤에는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내게 확신을 주었고 차츰 내적 평안이 회복되었다


 p361 프로이트와 헤어졌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떨어질 것을 알았다. 그 무렵 프로이트를 넘어서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이럴 때 그런 꿈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은혜의 작용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내가 그 무렵 체험하여 기록한 것을 과학적 작업의 그릇 속에서 추출해내기까지 따지고 보면 45년이나 걸렸다. 젊은이로서 나의 목표는 학문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 용암의 흐름을 만났고, 그 불길의 열정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원료인 셈이었다. 나의 작업은 그 뜨거운 물질을 우리 시대의 세계관에 접목시키는 일이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한 시도였따. 그 최초의 환상과 꿈은 불에 녹아 흐르는 현무암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단단해져 돌이 되었고, 나는 그 돌을 다듬을 수 있었다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세부적인 것은 단지 보충하거나 명료하게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휩쓸었던 자료들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데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01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p365 우선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하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p372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이것은 물론 나에게는 바람직한 발견이었다

 이것으로 내 무의식의 심리학은 역사에서 대응물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p373 원초적 이미지와 원형의 본체가 내 연구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78 나의 연구에서 본질적인 점은 일찍부터 세계관의 문제에 간여하고, 심리학과 종교적 문제의 대결을 다뤄왔다는 것이다


 p382 그 시대에 신적인 카이사르에 의해 구현된 로마제국의 막강한 권력은, 수없이 많은 개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자주적인 삶의 방식과 수없이 많은 개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자주적인 삶의 방식과 정신적인 독립성을 빼앗긴 세계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개인이나 문화공동체도 비슷한 위협, 즉 대중화의 위험에 처해있다그리하여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 재림의 가능성과 거기에 대한 희망이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고 환상을 보았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이 취한 형태는 과거에서는 비교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고, ‘기술시대의 전형적인 아이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미확인비행물체(UFO) 현상의 전세계적인 확산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02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p388~389 욥은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예표다. 그리스도와 욥은 고통의 관념으로 서로 연결된다. 그리스도는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이며 욥 역시 그러했다. 그리스도의 경우 이 세상의 죄악이 고통의 원인이며, 기독교인의 고통은 거기에 대한 일반적인 응답이다. 어쩔 수 없이 이 죄악은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이 세상과 죄를 창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숙명적 고뇌를 스스로 짊어져야 했던 하느님에게 있다


 p395 여러 신의 힘으로 인간은 창조주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즉 인간의 세계인식 면에서 창조를 폐기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인간은 지상에 있는 온갖 고등생물을 방사능으로 없애버릴 수 있다. 세계 소멸의 관념은 이미 부처에 의해 그 단초를 갖게 되었다. 피할 도리가 없이 노쇠, 질병,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사슬은 큰 깨달음으로 끊어진다. 그리하여 존재의 환영은 소멸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은 이미 심상치 않게 가까이 다가온 미래의 문제를 예언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 꿈은 인간세계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생각과 징후, 즉 피조물이 그의 창조주를 근소하지만 결정적으로 능가한다는 관념을 드러내고 있다

 p397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그 글들은 내가 살아온 동시대 세계에 대한 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ㅇ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따.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p398 오늘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찍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토록 성공을 거둔 것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奔流)로 휘말려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된다.)


01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p407 시간은 어린이다. 어린이처럼 놀며 장기를 둔다. 어린이의 왕국. 이것은 우주의 캄캄한 곳을 두루 다니며 별처럼 깊은 곳에서 빛나는 텔레스포로스다. 그는 태양의 문에 이르는 길, 꿈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인도한다


 p413 우리가 내적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을 동시성현상이라고 한다


02 카르마

 p420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가장 깊이 움직인 것은 선과 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의 대극문제였다


 p421 그리하여 사람들은 발전의 역사가 아직 전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현재에 사는 대신 미래에 살며, 황금시대가 오리라는 터무니 없는 약속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점점 깊어지는 결핍감과 불만,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행

01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p431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짐을 가볍게 하고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점점 더 속력을 올리며 여행을 재촉하고 있다. 그들은 중량의 상실과 이에 따른 공허를 열차, 기선, 항공기, 로켓과 같은 성과물의 환상으로 보상하고 있다. 이런것들은 빠른 속력으로 인해 유럽인으로부터 존재의 지속성을 더욱더 빼앗아가고, 더 나아가 유럽인을 속도와 폭발적인 가속도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다른 현실로 옮겨놓는다


 p434 나는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


 p436 아랍문화와의 만남은 확실히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격정적이고 기분대로 살아가며 생 그 자체에 한층 가까이 있으면서도 성찰을 모르는 이러한 인간존재가 우리 안에 있는 저 역사적 층에 강력한 암시효과를 주었다. 그 역사적 층은 우리가 이제 겨우 극복했거나 최소한 극복했다고 믿고 있는 그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빠져나왔다고 착각하는 어린시절의 낙원과 같아서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또다시 무너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발전에 대한 맹신은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과거로부터 멀리 뗴어놓을수록 더욱더 유치한 미래의 꿈에 매달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02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p441 비평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대상의 외부에 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 관점은 특히 그 성격상 어떤 다른 학문분야보다도 훨씬 주관적인 경향을 가진 심리학적 사항들에 아주 유용하다


 p450 우리가 이것을 우리 자신의 삶의 근거, 즉 우리의 이성이 짜내는 인생의 의미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것이 얼마나 빈약한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순전히 질투심으로 인디언의 순진함을 슬쩍 비웃고 우리가 그들보다 영리하다고 여기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빈약하며 쇠락한 가운데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한다.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p452 우리 기독교 신앙도 그밖의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행위나 그 행위의 특수한 형식이 하느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다. 예를 들면 예배의식이나 기도, 혹은 ㅇ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도덕적 행위를 통하여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실현’, 주술적 강요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압도적인 작용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에게조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개인을 형이상학적 요소를 지닌 위엄에까지 이르도록 고양하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무의식적인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만한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03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p457 인간은 창조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다


 p464 내가 이 일화를 언급하는 것은 얼마나 미묘한 방식으로 원형에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우리 세명의 남자가 그렇게 모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는 이 두명 외에 도 한명의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청했었다. 그러나 그는 여건이 맞지 않아 함께 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것으로 충분히 무의식 혹은 숙명의 배열이 이루어졌다. 삼위일체의 원형이 드러났고, 이러한 원형의 역사에서 언제나 반복하여 나타나듯이, 그것은 네 번째를 불러들였다


 p483 곧이어 나는 내가 겪은 수많은 경험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천의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새로운 인상들을 받아들이고 한없는 생각의 바다를 포용하는 나의 능력이 쉽게 바닥을 보인 것은 괴롭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모든 관찰과 체험의 내적 연관을 확인하기 위해 그것들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만한 것들은 모두 기록했다


04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p488 반면에 나는 소위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모두 피했다. 내가 그들을 피한 것은 나 자신의 고유한 진리로 만족해야만 했기 때문이며, 나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은 받아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성자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의 진리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나에게 도둑질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으니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 더군다나 유럽에서 나는 동양으로부터 아무것도 차용할 수 없다.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하고, 나의 내면이 말하는 것이거나 본성이 내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


 p490 이에 반해 나는 자연과 정신의 이미지에 대한 생생한 관찰을 고수하고 싶다. 나는 인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지도 않으며 나로부터도 자연으로부터도 그러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내게는 형언할 수 없는 경이이기 때문이다. 자연, 영혼,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활짝 피어난 신성처럼 여겨진다.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에게 존재의 최고의미는 오직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그것이 원래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이제는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하는 데 있지 않다

 나에게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 물론 그러한 참여가 나에게 무척 어렵게 여겨지는 경우도 생길 것이고,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할 수 없는 그럴듯한 구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무능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내가 아마도 본질적인 어떤 것을 단념하고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찰하게 된다. 나의 부적격성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인식은 적극적인 행위의 결여를 대체한다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바로 그의 집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p500 낮이 잊어버린 신화를 밤이 계속 이야기하고, 의식이 평범하게 만들어버리고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축소시켜버린 그 거대한 모습들을 시인이 다시금 일깨우고 선견지며응로 살려낸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또한 변화된 모양으로사색적인 사람들에 의해 다시 새로 인식되는 법이다. 위대한 과거의 것들은 우리가 착각하듯 죽지 않고 단지 그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모양은 작기만 힘은 강력한위장된 카비르가 새 집으로 옮겨간다


05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p505 특히 세례가 실제적인 죽음의 위험과 결부되어 있는 통과의례라는 주목할 만한 견해에 대해 토론했다. 그런 종류의 통과의례는 죽음과 부활이라는 원형적 사고를 통해 표현되는 생명의 위험과 결부되어 있었다. 그와 같이 세례 또한 본래는 적어도 익사의 위험을 암시하는 실제적인 잠김이었다


p510 1949년 이미 고령에 이르러 내가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로마여행)을 뒤늦게 해보려고 했으나, 차표를 사자마자 나는 기절해버렸다. 그후로 로마여행 계획은 단호히 접어두고 말았다


환상들

01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p516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겠다. 나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라고 말이다. ‘는 이를테면 남아 있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잇었다. ‘(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이런 체험은 나에게 극도의 결핍감을 안겨 주면서도 동시에 커다란 만족을 주었다. 내가 요구하거나 원하는 것은 더이상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나 자신 또는 나의 인생이 어떤 것과 역사적으로 관련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게 되리라 또한 확신했다. 나는 무엇이 내 이전에 있었고 왜 내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내 인생이 어디로 계속 흘러갈 것인지 알게 될 것이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자꾸만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단편, 앞서거나 뒤따르는 본문도 없이 책에서 잘려진 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인생은 긴 사슬에서 가위로 잘려진 것처럼 보였고, 많은 물음은 해답이 없는 채로 남았다. 무슨 이유로 그와 같이 진행되었을까? 왜 나는 그런 가설들을 가지고 왔는가? 나는 그것으로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 결과가 무엇인가


02 융합의 신비

p523~524 나는 낮에는 괴로웠고 신경이 완전히 지쳐 있었다. 온갖 것이 나를 부아나게 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물질적이고 너무나 난폭하며 말할 수 없이 답답하고, 공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제약되어 있으며,확인할 수 없는 목적에 매여 인위적으로 좁아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진실인 것처럼 믿게 하는 최면력 같은 어떤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들의 무가치성을 분명히 인식했는데도 말이다. 사실 나는 그때부터 이 세계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인생이란 그것을 위해 이미 마련된 삼차원의 세계체제 안에서 전개되는 존재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p525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아무것도 더이상 시간으로 쪼개질 수도 없고 시간개념에 따라 측정될 수도 없었다. 그 체험은 우선 하나의 상태, 즉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감정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제와 동시에 오늘과 내일 존재한다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다른 것은 너무도 분명한 현재이며,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이미 끝난 일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그래도 하나였다. 감정이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시작하는 일에 대한 기대와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지나간 일의 결과에 대한 만족이나 실망이 모두 포함된 하나의 총체, 다채로운 전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빠져들어 있으면서도 완전한 객관성을 가지고 지각하게 되는 형언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였다


p527 하지만 사람이 개성화의 길을 가는 중에, 즉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과오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원만해지지(융은 인생에서 완전성보다 원만성을 추구하기를 권함) 않을 것이다


p528 나는 또한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온갖 평가를 뛰어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옳으냐 그르냐 하는 범주는 항시 존재하지만 그것은 구속력이 없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존재가 주관적인 평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가 또한 존재하는 생각으로서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도 전체성의 현상에 함께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01 꿈과 예감

p532 요즈음의 비판적 이성은 다른 많은 신화적 관념뿐만 아니라 사후의 삶에 관한 관념도 없애버린 듯하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오늘날 인간이 대부분 오로지 그들의 의식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들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지식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가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p535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심지어 그것으로 하나의 견해를 짜내려고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 견해가 언제나 하나의 가설로 남고, 그것이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p536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마치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범위를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의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02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p545 인간 본성에 제한없는 지식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적절한 시간의 상황에서만 의식에 의해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짐작된다. 그는 아마 여러 해 동안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품고 지내다가 나중 어떤 순간에 그것이 참으로 깨달아질 것이다


p549 평면에 입체를 투사하거나 그 반대로 입체에서 사차원의 형태를 구성해내는 것과도 같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 삼차원세계에서 정해진 원리를 이용한다. 수학이 경험을 뛰어넘어 관계에 관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표상들을 논리적인 원리에 따라 경험적인 자료들, 예컨대 꿈의 진술을 근거로 그려내는 일은 훈련된 상상의 본질에 속한다. 이때 이용되는 방법은 내가 명명했듯이 필수적인 진술이다

 그것은 꿈의 해석에서 사용하는 확충의 원리로, 단순한 자연수의 표시로써 아주 쉽게 설명될 수 있다

 1은 첫째 수사로서 하나의 단위이다. 그런데 그것은 또한 단일성’, 하나인 것, 전일, 유일무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것은 수사가 아니라 철학이념이거나 원형이며 신의 속성, 단자다. 인간의 이성이 이런 진술을 하는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지만 오성은 1이라는 관념과 거기에 포함된 의미에 의해 한정되고 그것에 묶여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위적인 진술이 아니라 1이라는 수의 본질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필수적인 진술이 되는 것이다


p550 나는 우리 이성의 수학적 진술(본래부터 이미 존재하는) 이외의 다른 진술들도 그 자체를 넘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가리킬 수 있음을 인정하고 싶다. 나는 그런 진술의 예로서 쉽게 일반적인 동의를 얻거나 눈에 띄게 번번히 출현하는 환상현상과 원형적 모티프를 생각한다


p551 수학 방정식이 어떤 물리적 현실에 해당하는지 우리가 모르듯이, 신화적 현실 또한 어떤 정신적 현실에 해당하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가열된 가스의 교란운동을 다스리는 방정식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꼼꼼하게 조사하기 오래 전에 제시된 것이다. 아주 오랜 옛적부터 어떤 잠재의식적 과정의 진행을 표현하는 신화소가 있었지만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부분!!) 


p551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p555 죽음은 역시 무섭도록 가혹하다. 여기에 사람들이 속아서는 안된다. 물리적인 사건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인 사건으로서 더욱 그러하다. 한 인간을 빼앗기고, 냉혹한 죽음의 정적만 남는다. 더이상 어떤 관계성도 맺을 희망이 없다. 모든 다리는 파괴되었다. 사람들이 오래 살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인간은 삶의 한가운데서 저승으로 끌려가고, 쓸모없는 인간은 늙도록 살아남는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잔인한 현실이다. 죽음의 야만성과 전횡성은 사람들을 비통하게 만들어, 사람들은 자비로운 하느님도 없고 저으이나 선도 없다고 단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하나의 즐거운 사건으로 여겨진다. 영원의 관점에서 죽음은 일종의 결혼이며 융합의 비의다. 영혼은 이를테면 자신에게 결여된 반쪽에 도달하여 통합을 이루게 된다. 그리스의 관들에는 그 희열이 무희들로써 묘사되었고, 에트루리아 무덤들에는 향연으로 표현되어 있다. 경건한 유대 신비주의자 시몬 벤 요카이가 죽을 때 그의 친구들은 그가 결혼식을 올린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지방에서 만령절에 무덤으로 소풍을 가는 풍습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죽음이 본래 하나의 축제라는 지각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03 단일성과 무한성

p559 우리보다 훨씬 오래되고 무척 분화된 정신문화를 지닌 나라, 즉 인도에서 재생의 관념은, 우리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한 분의 구주가 있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생각이다. 교양있는 인도인은 우리가 그들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거기에 신경쓰지 않는다. 동양적 존재의 정신적 특성에 어울리게 출생과 죽음의 연속은 끝없는 현상이요, 목표도 없이 계속 굴러가는 영원한 운명의 수레바퀴로 여겨진다. 사람은 살고 인식하고 죽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오직 부처에 이르러 목표에 관한 관념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를테면 지상적 존재의 극복인 셈이다


p560 나는 양쪽 다 옳다고 생각한다. 서양인은 외향적인 경향이 강하고 동양인은 내향적인 경향이 강한 듯하다. 서양인은 의미를 투사하여 객체에 의미가 있는 듯이 추정한다. 동양인은 그 의미를 자신 속에서 느낀다. 그런데 의미는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는 법이다


p562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그것은 내가 오로지 고심 끝에 인식하게 된 초개인적인 인생과제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조상이 이미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p571 우리는 무의식의 산물에서 만다라 상징, 즉 통합성을 묘사하는 사위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가 통합성을 묘사할 때 바로 그와 같은 형상들을 사용한다. 우리의 기초는 자아의식, 즉 자아를 중심점으로 하는 빛의 영역이고 그것이 우리의 세계를 표현한다. 거기서 우리는 비밀에 싸인 어둠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런데 그림자 같은 그것의 흔적들이 얼마만큼 우리의 의식에서 야기되는지, 또는 그것이 얼마만큼 고유의 현실성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피상적인 관찰은 의식이 그 원인이 된다는 가정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무의식의 표상들은 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현실과 자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들을 단지 일종의 주변현상으로만 보고 있다


p57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모를 때는 개인적인 소유로 생각하고 있는 이런저런 지위들 때문에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고집할 것이다. 아마도 나의 재능이나 나의미모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는 한정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제약을 받는 듯이 느낀다. 그리고 이것은 질투와 시기를 낳는다. 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이미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이 가치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기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p573 인간에게 가장 큰 제약은 자기 자신이다

이러한 의식성에서 나는 나를 유한하면서도 영원하며 이것이면서도 저것으로서 경험한다


p574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에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거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 볼 수 있다


만년의 사상

01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p580 모든 인간 판단의 불완전성은 우리의 견해가 어느 때나 옳은 것이냐 하는 회의가 들게 한다. 우리도 잘못된 판단에 굴복할 수 있다. 우리가 도덕적 평가와 관련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윤리적 문제는 이 사실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선과 악이 상대적이라고 해서 선악이라는 범주가 가치가 없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도덕적 판단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며 특유한 심리적 결과가 뒤따른다. 다른 데서 내가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행해지거나 의도되거나 생각되는 온갖 잘못은 세계가 우리를 위해 돌아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마음을 응징할 것이다


p588 심리학적 관점에 한해서 보면, 신의 표상은 심적 토대에서 현시된 것이며 이제 심한 분열의 형태로 의식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분열이 세계정치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벌써부터 이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 눈에 띌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원 모양으로 보이는 자발적인 통합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정신 내부의 대극의 합을 묘사하고 있다. 이에 속하는 것은로, 1945년 초기에 시작되어 널리 퍼진 미확인비행물체에 관한 소문을 들 수 있다


p593 신화는 결국 유일신교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전능하고 선한 신 곁에 영원한 어둠의 적수를 지금까지 두고 있는 (공적으로는 부인된 가운데) 이원론은 포기해야 한다. 신화는 쿠자누스의 철학적인 대극복합과 뵈메의 도덕적 양가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하나의 신에게도 그에게 마땅한 통합성과 대극의 합이 보증될 수 있을 것이다


p596 우리가 우주에서의 인간실존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하나의 관념을 가진다면, 다시 말해 마음의 통합성, 즉 의식과 무의식의 협력이 이루어지게 하는 근원인 그러한 관념을 가진다면, 신화적 진술에 대한 욕구는 충족되는 셈이다. 무의미는 생의 충만을 방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뜻한다. 의미는 많은 것을 거의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도록 해준다

 

p597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도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아니라 신화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삶을 계시해주기 때문이다


02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p606 모든 에너지가 대극에서 생성되듯 마음도 역시 활동성의 필수 전제조건으로 내적 양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이미 헤라클레이토스가 인식한 바와 같다.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이 양극성은 모든 생명체에 내재한다. 걸핏하면 깨지기 쉬운 자아의 통일성이 이와 같은 강력한 조건에 직면해 있다

 

p608 의식보다 먼저 존재하며 의식을 규정하는 원형들은 실제적인 역할로 출현한다. 다시 말해 본능적 의식 토대의 선험적 구조형태로 나타난다. 원형들은 물() 자체를 결코 표현하지 않고 단지 형태만을 표현한다. 사람들은 그 형태 속에서 원형을 관조하고 이해한다


p617 원형적 진술들은 본능의 전제조건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 진술들은 이성적으로 논증된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반론으로 제거될 수도 없다. 그것들은 예전부터 세계상의 일부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세계상이란 제리 브륄이 적절하게 명명한 대로 집단표상인 것이다. 확실히 자아와 그의 의지가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아가 하고자 하는 것은 대개 자기도 모르는 방식으로, 원형적 과정의 자율성과 누민제에 의해 몹시 방해를 받게 된다. 원형적 과정을 실제적으로 고려하면 종교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 종교가

심리학적인 관찰방식을 감당하는 한에서 말이다


03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p618 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은 성찰의 영역 이외에 그보다 더 넓게 뻗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만큼은 넓은 또 하나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영역에서는 합리적인 이해와 표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것은 에로스의 영역이다. 고대의 에로스는 의미심장하게도 일종의 신으로, 그 신성이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리하여 그것은 이해되거나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p620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깊게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회고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아마도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되었다.


01 비밀로 가득 찬 세계

p623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


옛날에는 하느님을 대면하여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왜 그렇지 못합니까?”

 “오늘날에는 그럴 정도로 허리를 깊이 굽힐 줄 아는 사람이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강물을 길으려면 허리를 얼마만큼은 굽혀야 하는 법이다


p624 나로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나의 고독은 어릴 적 꿈의 체험과 함께 시작되었고, 내가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할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p625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는 마음속으로 예상되는 일뿐만 아니라 그외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p627 아마도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이 필요로 하고 동시에 훨씬 덜 필요로 한다고 말이다. 다이모니온이 작용하고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너무 가깝고 너무 멀다. 다이모니온이 잠잠해진 곳에서만 사람들과 중간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02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p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아마도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p630 인생을 충분히 보아온 노인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 지능의 어떤 단계에서도 이 유형이 등장하며, 그것이 늙은 농부든 노자와 같은 위대한 현인이든 동일한 유형이다

 노년이란 그런 것이면서 또한 하나의 제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주 많다. 식물, 동물, 구름, 낮과 밤, 그리고 인간 속에 있는 영원한 것 등이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편집자의 말

p633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p637 이러한 긍정과 부정 사이의 갈등은 그가 죽는 날까지 결코 수그러든 적이 없었다. 항상 회의의 찌꺼기가 남아 잇었고, 미래의 독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p639 융은 자기 자신을 그 무엇보다도 의사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치료에 있어서 종교적인 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이것은 마음이 자율적으로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관념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마음이 원래 종교적이라고 하는 그의 인식과 일치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많은 신경증이 마음의 이와 같은 근본적인 특성을, 특히 인생 후반기에 무시하는 데서 연유하고 있음이 융에 의해 밝혀졌다


p643 “내 생애의 가치가 어떤가 스스로 질문해본다면, 몇 세기의 사상을 놓고 나 자신을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그래, 내 생애도 뭔가 의미가 있구나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의 사고방식으로 평가한다면 내 생애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들 가운데 표현된 비개인성과 역사적 연속성의 감정은 융에게 특징적인 것이었다




3. 내가 저자라면

 편집자의 말을 보면 융은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직접 집필하고 싶어했고, 집필했음이 나온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전 생애, 특히 그가 생이라고 믿고 있는 내적 체험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 있겠다. 가치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럴 힘과, 능력이 된다면 좋겠다

 처음 그의 초기 생애는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유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로 잘 구조화 되어 있고, 내용도 그의 흐름이 맞았다. 물론 나의 인식 방식이 년도나, 뚜렷한 구조화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잘 연결되지 않았던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인 뼈대로 보면 잘 구성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뼈대가 희미해진다. 물론 년도별로 의사생활 했을 때, 프로이드와 만난 것,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내적 탐험 시기, 그리고 여행 그리고 인생의 후반으로 나누었지만, 인생 초기만큼 구분을 뚜렷하게 해놓지 않았다. 이것도 구분이 뚜렷했다면 읽는 독자가 더 쉽게 그의 생애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융의 사상과, 경험, 생각들이 내 책에 어떻게 씌여질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그는 수학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이 아주 짧지만 몇군데 보인다. 오늘은 그가 어린 시절 가졌던 의 개념에 대한 컬럼부터 써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방정식에 대한 것도 꼭 참고해서 나의 언어로, 그리고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수 있는 언어로 변화시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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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 한 데까지 올림. 이번 주는 쉬겠습니다. [1] 레몬 2012.10.16 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