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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일 10시 26분 등록

A Dangerous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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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999년 12월 3일 상담을 해 주시던 영옥 소장님을 만났다.

아마 그 만남은 융이 프로이드를 만난 만남보다 더 중요한 만남이었을 것이다.

이유는 나는 내담자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갔고, 그녀는 지푸라기가 아닌 강력한 동아줄이었다.

그 이후 나는 그녀가 조금씩 내려주는 동아줄을 잡고 힘겹게 올라왔다.

사실 나는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제 살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야말로 소풍길이었다.

아니 첫사랑의 애인을 만나러 가는 설레임이 더 맞을 것 같다. 상담이 어느 정도 진행 되었을 무렵...

 

 

문득 영옥 소장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내가 여자였으니 망정이지 남자였다면 아마도 나를 무척 사랑하게 되었을 거라고...”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그녀는 내가 충분히 좋아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이유는 그녀 앞에 서면 발가벗긴채 서 있을지라도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며 알게 되었다.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적절한 관계들.

우리나라에도 간간이 알려지고 있는 진료실안에서의 여러가지 스캔들.

 

 

공부를 하고 있던 5월 어느 날,

Dangerous Method 개봉 소식에 눈이 번쩍 띄었다.

더구나 팔팔이 공부 하반기에 융의 자서전이 있었다.

융과 프로이드 그리고 한 여인에 관한 스캔들을 다룬 영화 “Dangerous Method.”

나는 과제를 올린 어느 월요일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A Dangerous Method'는 1904년 8월 17일,

사비나 슈필라인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부르코 횔츨리 정신병원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은 성(性)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 그

리고 성(性)도착증 정신질환을 앓았으나 훗날 아동정신과 전문의가 된

실존인물 사비나 슈필라인의 비밀스런 관계를 조명한 작품이었다.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그동안 폭력과 기괴함, 성욕 등으로 대변되는

본능적인 소재들을 독특하게 풀어낸 것을 감안할 때 실존 인물을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궁굼증을 자아내게 했다.

 

존 커의 원작소설 '가장 위험한 방법 (A Most Dangerous Method)'을 각색한

크리스토퍼 햄튼의 희곡 '토킹 큐어 (Talking cure; 대화치료)'를 영화화한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융이 프로이트가 고안해낸 대화 치료법으로 사비나 슈필라인을 치료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각인시킨다.

 

정신질환으로 스위스 취리히 정신병원에 오게 된 사비나 슈필라인.

당대 획기적인 치료법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대화 치료법을 응용하는 정신과 의사 융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육체적인 학대를 통해 성적 만족을 느끼게 된 병적인 심리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융은 그녀와 가까워지면서 묘한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이성으로 본능을 억제한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건 오아시스를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물을 마셔요"라는 자유연애주의 정신분석학자

오토 그로스 박사의 조언으로 인해 융은 본능에 따르게 되고 슈필라인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슈필라인의 성적 만족을 위해 그녀를 때리던 융 역시 그녀를 학대하면서 성적인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은밀하면서도 거침없던 그들의 관계는 환자와의 부적절한 소문을 염려한 프로이트의 질책으로 인해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면서 프로이드와 결별한 이유는 이론적인 차이와 더불어 프로이드의 책망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슈필라인은 의사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과 융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으로 괴로워하지만,

융은 자신의 후원자이자 내조자인 부인 엠마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에게 작별을 고한다.

 

칼 구스타프 융은 취리히대학교 부설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단어연상검사를 연구하여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당대 획기적인 치료법인 정신분석학적 대화 치료법을 제안한 프로이트는 융에게 있어 존경의 대상이었다.

융은 이때 프로이트 이론을 접하면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고,

프로이트 역시 융을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고 이를 정립시켜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론적인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되고, 오해와 질투로 인해 결별을 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인 이 이야기는 프로이트가 융이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 주길 바라는 과정에서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히스테리 환자와 일반인들에게 심리적 원인이 어린 시절의 충격적 경험인 성(性)이라고 주장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융이 받아들이지 않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유일한 의미를 (性)에 부여할 수 없으며, 성(性)이 심리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융은 자신의 학설을 분석심리학으로 명명하며 프로이트와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선택했다. 반면 프로이트는 심리학이 과학이 아닌 미신(신비주의)으로 빠지는 것을 자제하기 위해 심령현상이나 종교적인 것을 믿는 슈필라인과 융의 학설을 인정하지 않고 과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 확립을 지향한다.

 

 

이 영화에서 프로이트는 융과 지속적인 교류와 서신을 통해 학설을 나누고

슈필라인과의 사적인 관계를 반대하며 모든 일에 감정을 배제한 채 냉철한 이성의 잣대를 유지한다.

존경과 우정으로 출발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1912년 융이 프로이트의 의견과 크게 다른 내용의

'무의식의 심리학'을 출판하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융은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한다.

그런 만큼 이 영화에서 프로이트와 융의 팽팽한 심리대결을 기대하는 건 당연하지만 두 사람이

1906년 첫 번째 만남을 갖고 의기투합했다가 1912년 서로 단절하기까지의 과정은 연극처럼

두 사람의 대화로만 전개되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물론 성도착증을 앓았으나 프로이트와 융과의 만남을 통해 아동정신분석의가 된 슈필라인은

 몸을 사리지 않는 여배우의 열연으로 각인 되었다. 미모를 감추고 시종일관 신경증에 시달리는 불안하면서도

초췌한 모습과 과감한 노출연기로 슈필라인의 내면을 부각시켜 연민을 안겨 주었다.

특히 프로이트 역의 남자배우는 프로이트와 흡사한 분장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융과 슈필라인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평면적인 캐릭터로 축소되어 인명사전에서 읽은 만큼 만 그려졌다.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정신분석학의 모든 경계를 지우고 인간 정신을 자유롭게 연구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사랑과 여인에 있어서 아픈 삶을 살았던 융의 고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승전결의 고전적 이야기 구조에 기대지 않고 뭔가 다른 방법으로 융의 고뇌를 표현하려고 한 것 같긴 한데

영화를 볼 땐 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어슴푸레한 인상만 남을 뿐 융이 어떤 치열한 고민을 했는지 잘 모르겠던 부분이

이번에 자서전을 읽으며 확연히 그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어머니보다 스무살이나 많은 친척 아주머니가 나를 돌봐주었다.

어머니의 오랜 부재로 나는 무척 힘들었다.

 

그 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친구를 믿었다가 그들로 인해 실망하기도 했지만, 여성들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없는 동안 하녀도 함께 나를 돌봐주었다.

마치 그녀가 우리 가족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만 속해 있는 듯 싶었다.

그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신비한 것들과 내게는 알려지지 않은 방법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소녀의 유형이 나중에 내 아니마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1913년 의사와 결혼한 슈필라인이 러시아로 떠나기 전

융이 마지막으로 남긴 대사처럼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당신을 향한 사랑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어.

좋든 싫든 내가 누군지 알게 해 줬어.

그 사랑은 내 것이 되어야 해."

 

IP *.9.18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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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2 11:24:57 *.41.190.211

아,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 !

오늘 셀리의 글은 오랜 숙성을 거친 와인의 맛 처럼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게 해 주는 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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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12:56:01 *.120.78.130

DVD로 세린은 봤다고 합니다.

한번 보시면 융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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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2 17:28:36 *.68.172.4

영화 한 편을 이렇게 제대로 분석한 글을 읽을 줄이야. 영화 감독이 이 글 읽으면 무서움을 느낄 듯.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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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12:56:28 *.120.78.130

ㅋㅋ  다 레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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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06:42:13 *.194.37.13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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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13:05:07 *.120.78.130

순서가 무에 상관이 있겠니? 융에대한 이해가 풍부해질 수 있담 좋은거겠지?

어제 똥 이야기 쓴 조선일보를 봤는데..어제일자. 동화이야기긴 했어

아무래도 똥 이야긴 어린아이들이 관심이 많은 듯 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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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3:41:17 *.210.80.2
저는 루브르전을 슬라이딩ㅇ
로 보고 광해를 보며 왜 이게 임원교육용으로 좋다했을까 생각했어요 샐리언니의 행보를 잘 봐뒀다가 눈길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가듯 한참 뒤에 제가 가요 댄저러스 메써드 입력완료 앞으로도 언니의 화려한 문화계 종횡무진 기대되어요 풍부하게 하는 촉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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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12:58:33 *.120.78.130

콩두도 사람을 up 시켜주고 위로해주는 묘한 에너지가 있어서 좋다 ~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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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6:44:44 *.62.164.91

저도 지난주에 dvd로 봤어요. 책을 읽고보니 더 재밌더라고요. 

자서전엔 나타나지 않은 융의 그녀가 실존일까요?

인간에 대하여, 우리에  대하여, 다른 부분을 알아가니 재밌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는 ㅎㅎ

언니 글은 늘 문화와 연결되어 있어 좋아요. 

2012년은 팔팔이 해가 맞는듯. 우리가 읽으면 영화, 전시, 오페라 할것 없이 다 나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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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12:59:39 *.120.78.130

실존이라는데?

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 같애. 현실에도 이미 있는 일들이고..

하하 아마도 우리가 그런 것에 촉을 세우고 있으니 더 잘 보이는걸게야...

집중하는 것은 커지게 마련이니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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