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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일 10시 40분 등록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A. 야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I. 저자에 대하여 / 카를 구스타프 융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1875~1961)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조가 무엇인지 알고 이를 지켜야 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철학은 자신의 궁극적인 사실 해석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주관적 원칙을 최대한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인간이 그렇게 될 때 궁극적인 진시도 그렇게 된다. (명언)

 

저서

 

1906(31) 연상 실험에 의한 진단 연구

1907(32) 조발성치매의 심리에 대한 연구

 

1912(37) 무의식의 심리학,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1916(41) 죽음에 관한 일곱 가지 설법

1921(46) 심리학적 유형

1928(53)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 정신의 에너지에 관하여

1929(54) 황금꽃의 비밀(리하르트 빌헬름 공저)

1941(66) 신화학 서론(케레니 공저)

1943(68) 무의식의 심리학에 관하여

1946(71) 전이의 심리학, 심리의 본질에 관한 이론적 고찰

1948(73) 심혼의 상징학

1951(76) 아이온, 자연 해석과 정신

1952(77) 욥에의 회답

1954(79) 의식의 뿌리에 관하여

1955(80) 융합의 신비

1957(82) 자서전(기억꿈사상)  1962년 출간

1958(83) 현대의 신화, 심리학적 입장에서 본 양심

1961(86) 무의식에의 접근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정신의학자가 되다

 

구스타프 융(이하 편의상 ‘융’으로 통일) 1875 7 26일에 스위스 북부 투르가우 주의 시골 마을 케스빌에서 개신교 개혁파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융 가문은 본래 독일 마인츠에서 살았지만, 이 유명한 정신의학자의 할아버지(역시 의사였고, 역시 ‘칼 구스타프’라는 이름이었던) 때에 스위스 바젤로 이사하여 이후로 스위스 국적을 갖게 되었다.

융은 바젤 근교의 클라인휘닝겐에서 성장했고, 11세 때에 바젤의 김나지움에 입학해서 중등 교육을 받았다.

회고록에 따르면 융은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예민한 기질의 소유자였고, 심령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거짓으로 신경증을 일으켜서 학교를 빼먹기도 했으며, 자신이 두 가지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로 목사인 부친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특이한 꿈과 환상을 체험하면서 점차 품게 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심은 훗날 그의 인생 행보를 결정한 요인이었다.

1895년에 융은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바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1896년에 부친이 사망함으로써 융은 대학에 다니면서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의무를 떠맡아야

했다. 1900년에 의사 자격시험을 앞두고 융은 정신의학자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의 책을 읽다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신의학은 아직 개척 중인 분야였으며, 의과대학에서 정규 과목으로 편입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융은 정신의학을 통해 본인이 관심을 갖는 정신과 자연이라는 두 가지 영역의 조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1900년에 대학을 졸업한 융은 취리히 의과대학 부설 부르크횔츨리 병원에 취업한다. 그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를

고안한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1857-1939) 밑에서 연구와 치료에 전념했다. 융은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자유 연상’ 기법을 개선한 ‘단어 연상’ 기법을 제안해서 주목을 받았고, 아울러 환자가 지닌 고통의 근본 원인이 되는 “다양한 생각의 집합”을 일컫는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고안했다(지금은 흔히 ‘열등의식’과 동의어로 여겨지지만,

모든 콤플렉스가 열등의식까지는 아니다).

1903년에 융은 엠마 라우셴바흐와 결혼했다. 스위스에서도 손꼽히는 시계 제조업자의 딸인 엠마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서 융의 연구에 독립성을 보장해주었다. 엠마는 훗날 프로이트와 서신을 교환하고 정신분석가로 활동할 만큼 지적이고 명석했기 때문에, 융에게는 이상적인 배우자 겸 동료 노릇을 해 주었다. 1905년에 융은 취리히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어 더욱 명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이 시기에 융은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난다. 바로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의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칼 구스타프 융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존경과 우정에서 시작되어, 사상적 갈등을 거치고, 결국 결별과 반목으로 마무리된 두 사람의 관계는 정신분석학은 물론이고 현대 지성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다. 일반적으로는 융이 프로이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갈등과 결별의 이유로 거론되지만, 히스테리 연구에 근거를 둔 프로이트의 이론과 정신분열증 연구에 근거를 둔 융의 이론은 애초부터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두 사람을 ‘사제지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프로이트와 만났을 당시에

융은 이미 정신의학 분야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중견 학자였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수많은 환자와 손님이 찾아왔고, 취리히 의과대학에서는 재학생 이외의 일반인 수강생도 많아 강의실이 초만원이었다. 따라서 비록 19년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융은 학자 대 학자라는 비교적 대등한 입장에서 프로이트와 교우할 수 있었다.

정신분석 운동의 초기에 융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을 읽고 나서,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온 이 새로운 이론이 자신의 고찰과도 상당 부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흥분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동조자가 되는 데에는

적잖은 위험이 따랐다. 융이 논문과 저서에서 프로이트의 입장을 지지하자, 주위의 동료들은 자칫 학계에서 매장될 수 있다며 충고를 빙자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융은 이렇게 응수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겠다.

1906년부터 1913년까지 융은 프로이트와 활발히 서신을 교환했으며, 1907 2월에 빈으로 찾아가 프로이트를 처음으로 만났다. “우리는 낮 한 시에 만났다. 그리고 열세 시간 동안 정말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융의 지지는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한편으로는 융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지닌 장점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유대인 위주의 정신분석 운동에 비()유대인인 융이 가담함으로써, 이 운동의 성격에 대한 오해가 줄어들 수 있으리라 기대한 까닭이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운동에서 융을 기꺼이 2인자, 또는 황태자로 인정하려는 의향을 드러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점차 입장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가장 첨예한 갈등은 프로이트의 성 이론에 대한 융의 비판이었다. “나는 꿈과 히스테리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프로이트처럼 어린 시절의 성적 외상(트라우마)에 유일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또 프로이트처럼 성을 과도하게 전면에 부각시키지도, 성이 심리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1909년에 융과 프로이트는 7주간 미국을 방문했다. 이 여행은 두 사람의 결별을 가속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서 융은 프로이트가 “진리보다는 개인의 권위”를 더욱 앞세운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프로이트의 이론이 일종의 도그마와 개인숭배로 변질되었다는 점에 거부감을 느꼈다. 프로이트 역시 융이 종교나 신비주의 같은 미심쩍은 “고대의 잔재”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 1910년에 융은 국제 정신분석 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지만, 양쪽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1913년에 이르러 융과 프로이트는 마침내 결별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사적인 관계를 모두 중단하기로 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융도 “더 이상 당신과 함께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시인했다. 이후로 프로이트는 융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피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 결별을 오랫동안 아쉬워했다는 증언이 있다. 융 역시 프로이트의 사상에서 받은 영향을 기꺼이 인정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없었더라면, 나는 (심리학 분야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의 열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독자적인 정신의학 이론의 전개

 

프로이트와의 결별은 융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1913년에 융은 오래 몸담았던 취리히 의과대학에서 사임했고, 학문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일시적인 고립에 빠져들었다. 융은 “방향상실 상태”인 동시에 “완전히 허공에 떠 있는 느낌”으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그는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신비 현상을 체험했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에는 대규모 재앙에 대한 환상을 보았으며, 유령을 목격하거나 의미심장한 꿈을 꾸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때부터 융은 영지주의와 연금술의 연구에 몰두했으며, 무의식의 본질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기 안의 또 다른 인격의 목소리를 듣고, 만다라를 치료의 도구로 응용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융은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까지 들여다보는 작업을 수행했고, 그 부산물로 여러 권의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기록을 얻게 되었다. 이런 기록 가운데 하나를 읽어보는 특권을 누렸던 한 친구는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융은 그 자신이 걸어 다니는 정신병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병원의 최고 의사이기도 했다.

융의 이론에 내재된 이중적인 성격은 아마도 그의 관심이 평생 동안 심령과 과학으로 양분된 까닭이었을 것이다.

의사인 동시에 신비체험자였던 그는 과학의 방법만으로는 쉽게 규명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가 인간의 내면에 들어있다고 확신했다. 그 새로운 세계를 규명하려는 후반기의 저서는 종종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인상을 주기 때문에, 융은 종종 과학자를 빙자한 공상가로 오해되곤 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에 대해서도 융은 정신의학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해명을 시도했다.

1922년에 융은 취리히 호수 인근의 볼링겐 마을에 땅을 구입하고, 수도나 전기 같은 편의시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소박한 별장을 지었다. 설계와 공사에 직접 참여하여 33년간 증축을 거듭한 볼링겐 별장은 융의 사상적 발전과 업적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나아가 그는 동양학자 리하르트 빌헬름이 번역한 [황금 꽃의 비밀(太乙金花宗旨)]를 읽고 연금술의 의미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으며, 여러 차례 아프리카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유럽 이외의 문화와 사상에 대한 관심을 넓혔다.

 

나치 동조자라는 비난과 말년

 

1933년에 히틀러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 프로이트를 비롯한 여러 정신의학자들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학계에서 퇴출되고 망명을 떠나야 했다. 반면 융은 스위스 국적에 비()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명성을 유지하며 활동을 펼쳤다. 이후 독일 학계가 노골적인 친()나치 입장으로 선회하자, 그 일원인 융도 자연스레 나치 협력자, 또는 반()유대주의자로 여겨졌다. 여기서 비롯된 비난은 지금까지도 융의 이력에 그늘을 드리운다.

융이 나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유대인에 대해서 오해의 여지가 있는 발언을 남긴 것도 사실이며, 독일 학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칫 나치에 악용될 수 있는 빌미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 놓고 융을 반유대주의자나 나치 동조자로 모는 것은 속단이다. 나치의 서슬이 시퍼렇던 1939년에도 융은 프로이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프로이트라는 이름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정신사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름”이라고 추모사를 발표할 정도로 신의를 지켰다.

융의 반유대주의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융은 미국의 앨런 덜레스를 도와 OSS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융은 나치 수뇌부의 심리 상태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으며, 특히 히틀러에 대해서는 궁지에 몰릴 경우 자살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전쟁이 끝나고 논란이 일자 융은 “내가 나치이거나 나치였다는 것은 악명 높은 거짓말이다”라고 단언했지만, 이후로도 그의 행적에 관한 악의적인 소문은 그치지 않았다.

1944년에 융은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고, 심근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그 와중에 그는 임사체험을 경험했으며,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차라리 이 상태로 세상을 하직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황홀감을 느꼈다. 1947년에는 두 번째 심근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졌지만, 건강을 회복한 다음부터는 다시 활발한 연구에 돌입했다. 1948년에는 취리히에 C. G. 융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욜란데 야코비(1890-1973)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1915-1990) 등은 융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말년의 저서 중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분석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아이온](1951) [욥에게 보내는 답](1952), UFO 현상을 집단무의식의 발현으로 해석한 [현대의 신화](1958), 융 사상의 입문서로 유명한 [인간과 상징](1961) 등이 유명하다. 82세 때인 1957년부터는 5년간 집필 및 구술을 통해 자서전을 만들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이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자서전은 융의 생애와 이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비 체험에 대한 증언을 담았고, 그의 사후인 1961년에야 간행되었다.

1955년에 취리히에서는 80세 생일을 맞이한 융을 위해 대대적인 축하 행사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 해 말에는 반세기 넘게 해로한 부인 엠마가 사망하면서, 융도 급속히 노쇠의 기미를 보였다. 1961 6 6일 저녁, 칼 구스타프 융은 퀴스나흐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 융의 묘비에 적힌 문구는 언젠가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상기시킨다.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자, 융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분을 믿는 게 아니라, 그분을 압니다.

 

융과 분석심리학

 

1913년의 어느 강연에서 융은 자신의 이론을 ‘분석심리학’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블로일러의 ‘심층심리학’과 대비되는 개념이었다. 프로이트가 ‘개인무의식’의 규명에 열중했다면, 융은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차원의 ‘집단무의식’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마음은 여러 층으로 나뉜다. 우선 의식에 해당하는 자아(, 또는 에고)가 있고, 그 아래에 개인무의식(‘그림자’가 있는 곳)과 집단무의식(‘아니마’와 ‘아니무스,’ ‘원형’이 있는 곳)이 있고, 마음의 맨 한가운데에 바로 ‘자기’가 있다.

분석심리학의 핵심은 ‘개성화 과정,’ 즉 자아가 무의식의 여러 측면을 발견하고 통합하는 “무의식의 자기실현 과정”이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개인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모습, 즉 ‘페르소나’를 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다른 인격적 측면이 무의식 속에 억압되면, 그렇게 억압된 만큼의 보상을 치러야 한다. 이처럼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균형이 깨지면 히스테리와 정신질환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꿈을 통해 우리는 평소에 몰랐던 무의식의 여러 측면을 접한다. ‘그림자’는 무의식에 들어 있는 자아의 어두운 면, 또는 다른 면이며, 대개 의식이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성격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투사’ 작용을 행한다. 그림자와 유사한 것이 ‘아니마’와 ‘아니무스’이다. 아니마는 남성의 내부에 있는 여성적 경향의 인격화이며, 아니무스는 여성의 내부에 있는 남성적 경향의 인격화이다. 우리는 그림자와 아니마/아니무스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우리 의식에 통합시킬 수 있다.

융의 이론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은 바로 ‘집단무의식’과 ‘원형’이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라고 융은 설명했다. 또한 원형은 “집단무의식의 내용”이며, 그 중에서도 “고대의, 또는 원초적 유형, 즉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보편적 이미지”를 뜻한다. 원형은 칸트의 물자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원형의 이미지는 우리가 알 수 있다. 가령 ‘모성/부성,’ ‘영웅’ 같은 것이 그런 원형의 이미지이며, 신화나 민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기실현의 최종 단계인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이 온전하게 통합된 것을 말하며, 우리의 의식을 일컫는 ‘자아’보다는 더욱 큰 개념이다. 융은 이것을 ‘자기원형’이라고 불렀으며, 그 궁극의 형태는 신(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과도 유사한 개념이라고 간주해서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자기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경우에는 사람이 자칫 개인지상주의나 자아팽창에 빠져서 결국 과대망상을 품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융은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를 의미하는 ‘동시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융의 사상 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심리학적 유형론이 아닐까. [심리적 유형론](1921)에서 융은 두 가지 유형(내향성, 외향성)과 네 가지 기능(사고, 감정, 감각, 직관)을 범주로 성격 구분법을 제안했다. 물론 이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진료의 편의를 돕는 도구에 불과했지만,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921년에 미국의 심리학자인 캐서린 브릭스와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 모녀가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널리 응용되는 마이어-브릭스 유형지표(MBTI)도 바로 융의 개념을 토대로 한 것이다.

 

융의 이론에 대한 평가

 

융의 이론은 임상적인 차원에서 출발했다.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단어 연상을 통해 콤플렉스의 존재를 확인했고, 무의식의 영역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도 더 넓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계속된 탐구를 통해 그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원형,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 자기)을 하나씩 접하면서 그 성격을 파악해 나갔다. 비록 물리적 증거까지는 없었지만 융은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서, 그리고 비정통적인 접근까지 불사해 가면서 그 존재를 규명했다.

그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융은 항상 프로이트의 광휘에 적잖이 가려진 느낌을 준다. 물론 활동 시기나 업적이나 명성에서 프로이트가 더 먼저인 것은 사실이며, 한때 융이 프로이트 학파에 소속되었다가 독립함으로써 사제관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융은 프로이트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신예 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융을 프로이트를 계승한 2인자로 치부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양쪽에 대한 비교가 사상적 특색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긴 하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제공했다면, 융은 무의식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양화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억압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적인 요소로 간주한 반면, 융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집단의 무의식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가정함으로써 무의식이 오히려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창조적인 기능을 발휘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해방을 도모했다면, 융은 무의식과의 화해를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융의 이론이 처음부터 끝까지 각광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며,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사상이 “도처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쳤다고 한탄하곤 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범성욕주의로 비난을 받았듯이, 융의 이론도 비과학적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특히 신화와 종교는 물론이고 영지주의, 연금술, 만다라, 도교, 주역, UFO에 대해 연구한 글은 워낙 모호하고 불투명해서 갖가지 해석과 오해를 불러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비하자면 융의 이론은 뚜렷한 체계나 개념을 잡기가 힘들다고 평가된다. 정신의학자 앤터니 스토는 프로이트에 비해 “융이 이처럼 도외시된 것은 그가 자신의 사상을 쉬운 용어로 잘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있는 사실을 기술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견해를 제시할 뿐입니다.” 융은 자기 이론이 (프로이트의 경우처럼) 도그마로 변질되지 않게끔 포괄적 이론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개별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만을 도모했다. “나는 자주 나의 정신치료법이나 분석방법에 관해 질문을 받는다 (...) 치료법은 각각의 사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그의 이론이 개인적 경험을 넘어 보편적 이론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융의 이론에 담겨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 사람들도 많았다.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융과 함께 ‘동시성’ 이론을 연구했고,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조지프 캠벨은 융의 이론을 종교와 신화 연구에 적용하여 대중화시켰다. 정신과의 임상 치료에서부터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융의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자주 논의되고 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본 인물인 “그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로렌스 반 데어 포스트)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칼 구스타프 융, <기본 저작집>, 9, 2001-2008; <회상, , 그리고 사상>, 1989; <사람과 상징>, 1995; <기억, , 사상>, 2007; 이부영, <분석심리학>, 1978; 에드워드 암스트롱 베넷, <한 권으로 읽는 융>, 1997; 게르하르트 베어, <카를 융: 생애와 학문>, 1998; 이부영, <그림자>, 1999; 게르하르트 베어, <>, 1999; 앤터니 스토, <>, 1999; A. 새뮤얼 (), <융 분석비평사전>, 2000; 매기 하이드 (), <>, 2002; 데이비드 테이시, , 2008; 디어드리 베어, <>, 2008.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기억 꿈 사상

 

옮긴이 서문 - 자서전 문학의 백미

 

P8 이 책은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이다.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으므로 거의 융 자신의 집필로 이루어진 저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특징은 야페가 쓴 서문의 한 구절로 요약할 수 있겠다.

 

P8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精髓)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P9 ‘나의 인생은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출처] 북No.11 - 카를 융 '기억 사상'|작성자 jackieyou

 [출처] 북No.11 - 카를 융 '기억 사상'|작성자 jackieyou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P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인격의 가장 짚은 구심점-옮긴이) 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P13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 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그것은 숫자상으로만 보면 거창한 현상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내가 젊은 의대생이었을 때 이러한 사실을 이미 깊이 느꼈는데, 내가 그 시기 이전에 파멸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P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하여 나의 생애는 외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빈약한 편이다. 나는 외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P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P21 그러나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 하는 것 같았다.

 

P26 그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P27 이런 소녀의 유형이 나중에 내 아니마(Amima)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P37 이러한 유년시절의 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 이를테면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 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다.

 

P46 그 담 앞쪽에는 비탈이 나 있었는데 거기에 약간 솟은 돌 하나 가 박혀 있었다. 그 돌은 나의 돌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종종 그 톨 위에 앉아 생각의 유희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라고 말하며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 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P50 이와 같이 비밀을 소유한다는 것은 당시 나의 성격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것을 내 이른 소년시절의 본질적인 요소, 즉 내게는 가장 뜻깊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남근상 꿈에 대해서도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제수이트 역시 말해서는 안되는 신비로운 영역에 속했다. 돌과 함께 있었던 그 작은 나무인형은 아직 무의식적이며 유치하긴 하나 그 비밀을 형상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P52 그것은 아트마빅투생명의 숨결’, 창조적인 충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P52 그 모든 것은 사실 외투에 싸여 카스타속에 감추어져 있는 일정의 카비르(kabir: 위대한 신들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때는 소인으로, 어떤 때는 거인으로 묘사되며 창조적인 것, 생명의 발생과 관계가 있음)로 여겨진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P53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P56 나는 나의 부모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걱정과 염려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연민을 느꼈으나,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로 연민이 생기지 않았다.

 

P59 ‘주 예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차츰 불가능해지기는 했지만, 열한 살 때부터신의 관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 했다. 그것은 모순이 없는 듯이 여겨졌으므로 어쨌든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신은 나의 불신감으로 어수선해지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신은 검은 예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림 속 에서 화려한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과 매우 친밀한 주 예수도 아니었다.

 

P63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나를 둘러싼 광대한 세계 앞에서 느끼는 왜소감은 내 마음의 의욕상실뿐만 아니라 일종의 은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것들이 학교를 극도로 싫어하게 만들었다.

 

P63~64 열두 살은 나에게 참으로 숙명적인 해가 되었다. 1887년 초여름 어느 날, 나는 방과후 12시 무렵 대서당 과장에 서서 같이 학교를 다니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소년이 나를 한 대 때리는 바람에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보도 경계석에 머리를 부딪혀 그 충격으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반시간가량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얻어 맞는 순간, 번개같이 한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너는 더 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P64 그후 나는 학교로 다시 가야 할 때가 되면 그 즉시 기절하기 일쑤였다. 부모가 숙제를 마무리하라고 재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반년 이상이나 학교를 쉬었다. 그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몫이었다.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고, 몇 시간이고 공장에 잠길수도 있었으며, 어디든 물가와 숲 속에서 가만히 있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다.

 

P65 나는 바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P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Neurose)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차츰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건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P68~69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나의 내부에 '권위자'가 자리잡았다.

 

P70 그러나 동시에 이런 뚱뚱하고 무식한 멍청이가 감히 ‘나를 목욕했다는 사실로 인해 분노에 사로잡혔다. 내 는 단지 성장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문이며, 권위자요, 직위와 위엄을 갖춘 사람이여, 나이 든 남자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현실과는 그토록 대비가 되었으므로 나는 곧바로 나 자신의 분노를 억제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그러면 너는 누구냐 너는 마치 자기가 대단하다고 내세우는 악동처럼 반응하고 있구나!

 

P70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집주인을 가리키 는 말잇듯함-옮긴이)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P74 생각에 구멍이 뚫리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P77 그들은 하느님이 원치 않는 일을 행함으로써 최초의:!"n- 범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하느님이 그들 안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P79 내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를 의식하게 된 대략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통일성과 위대함, 그리고 초인성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었다.

 

P80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 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는 내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느님은 세상 저 위 높은 곳에서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부터 거대한 똥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새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대성당의 벽들을 모조리 부수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스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내가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P84 그 책들을 모조리 탐독했으나 그것으로 현명해지지는 않았다. 나는 또다시 이 사람들도 모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P85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P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알아야 한다.'

 

P89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더 나은 표현을 쓰면 결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보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91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p96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는 것을 내가 행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확신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결정적인 일에서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게 되었다.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그곳'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나는 시간을 초월해 있었다. 나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있었으며, 그때 답을 준 자는 아미 항상 있었고 지금도 항상 있는 존재였다. '다른 인물'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심오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피 흘리는 전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극도의 황홀경이었다.

 

P101 ‘진정한 인직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체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마치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으나, 그 목소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것 같았고 그 상황에 들어맞는 내용을 정확하게 말했다.

 

P104 삼위일체에 관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나의 관심을 끄는 뭔가가 있었다.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적 모순을 지니고 있는 문제였는데, 그 모순이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게 되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렸다.

 

p10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은 인간적이 아니다. 그는 인간적인 것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위대한 존재다. 하느님은 자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위대한 위험이다.

 

P110 성찬식의 실패? 그것은 나의 실패였을까? 나는 매우 진지하게 성찬식을 준비하고 은총과 계시를 체험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 세상에!  나는 교회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 다른 모든 사람의 신앙으로’ 부터 떨어져나왔다. 그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떨어졌다. 그것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

 

P111 나는 그로부터 종교란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12 하느님은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의 자아였다. 그것은 나 자신이 나의 정신적 · 신체적 표현방식으로서의 자아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P113 나에게는 자아라는 요소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 1제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있었다.

 

P113 유감스럽게도 자아는 덕과 재능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덕과 재능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면 시샘하면서도 경탄했다.

 

P115 하느님이 대극의 세계를 창조하여 하나가 다른 것을 잡아먹도록 하고 인생이 죽음으로 향한 탄생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P116 하나님이 지선이라면, 그가 창조한 세계와 피조물이 왜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패하고 비참하단 말인가?

 

P121 악마가 본래부터 악했다고 생각한 다면우리는 명백한 모순, 즉 이원론에 빠져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악마도 원래는 선한 것으로 창조되었으나 그의 오만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다고 가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은 그것이 설명하려고 하는 악이 이미 자만심 이라는 악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 지적을 일고 대단히 흡족했다. 그밖에 악의 기원은 설명되지도 않고 설명되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것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그 말은 그도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숙소하고 싶지 않는 뜻이었다. 악과 그 기원에 관한 항목은 둘 다 시원하게 밝혀주는 것이 없었다.

 

P123 나는 광범위하게, 어떤 체계도 없이 희곡, , 역사 그리고 나중에는 자연과학서도 읽었다. 독서는 재미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편안하게 기분전환이 되도록 해주었다. (123)

 

P124 딴 사람들은 정말 모두 다른 곳에 잇는 듯했다. 나는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 문제에 관해 나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어디서도 대화의 접촉점을 찾을 수 없었고, 그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소외감과 불신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 것들도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129 내 마음 깊은 곳을 암시하는 모든 것은 나에게 고통이 되었다. 책을 읽고 도시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내가 지금 현실로 인식해 가고 있는 것들은 시골에서 나와 더불어 성장해온 세계상과는 다른 사물의 질서에 속한다는 인상이 더욱 강해졌다. 그 세계상은 작은 마을의 강과 숲, 동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그 마을은 햇빛이 비치고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고 모호한 것들로 가득한 밤의 어둠에 감싸이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히 지도 위의 장소가 아니라. 비밀스러운 의미들로 채워진 지정된 신의 세계였다.

 

P133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체험이 문제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제 그들은 논리적인 근거에서 그와 같은 동물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 모양대로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논중으로써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P136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P144 2의 인격이 임시휴게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에게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2의 인격 안에서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있었다. 그리고 나 지신은 천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상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P145 간은 해결할 수 없는 분열에 처해 있었다. 보아하니 나는 기다리면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르 지켜보아야만 했다.

 

P156 '정신'이란 물론 내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주 희석된 공기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P158 식물도 나의 관심을 끌긴 했으나 그건 과학적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식물은 뽑아서 말라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오직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스러운 의미, 일종의 신의 뜻이었다.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름다운 시간 대학시절

 

P165 왜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P166 ‘결코 따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나의 신조였다.

 

P167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수학!),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중성 등이었다.

 

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P178 나는 아버지가 이런 모든 기회를 잡아서 자신의 상태와 투쟁적으로 대결하지 않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P180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에 꼼짝없이 매여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외로웠고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P181 그것은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주지 않고 믿기만을 요구했다.

 

P193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P194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 그러한 가능성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몇 배나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깊이와 배경을 획득하게 되었다.

 

P197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P202 나는 수중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이전보다 더 경험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

 

P208 이것은 전적으로 커다란 체험이었으며, 나는 이전 철학을 모두 지양하고 나로 하여금 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P210 저자는 정신병을 인경의 병이라고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P211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P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P217 결굴 인간이란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P219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상으로 향한 글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P221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P235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239 이제까지 정신병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이 돈' 것들만은 결코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P241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P247 그후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p248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P251 의사가 자가 자신과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P251 의사는 피분석자로서 부석이 바로 자기 자신과 관계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P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한다.

 

P260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P270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P276 ‘억압기제라는 개념을 꿈의 분야에 적용한 점이었다.

 

P279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p285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그러한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자신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었다. (284)

 

p285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 무엇에 홀린 사람이기도 했다.

 

P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P295 그 말속에 이미 우리 관계의 종말이 예시된 셈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P300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을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도 못하는 것이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P312 문화의식은 무의식개념과 거기에 따르는 결과를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세기가 넘게 무의식과 직면해왔으면서도 말이다. 우리 정신의 존재가 두 개의 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통찰은 여전히 장래에 과제로 남아 있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P313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문을

 

P316 나는 꿈을 다룰 때 이와 같은 방식을 꿈해석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 꿈이 의도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P316 “무엇 때문에 모든 문을 열려고 하는가?”

 

p327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

 

P331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를 영웅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지크프리트로 나타난 셈이었다.

 

P339 “이것은 예술이에요.”

 

P339 아마도 나의 무의식이 내가 아닌 어떤 하나의 인격을 이루었고, 그것이 자신만의 고유한 견해를 말로 표현하는가 보다.”

 

P341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P343 무의식의 이미지를 의식에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아니마다.

 

P345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업이나 수항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그것은 오류와 불확실의 길, 그리고 오해의 길이라고 간주된다.

 

P351 사람들은 이미지들이 그대로 떠오르도록 하면서 거기에 대해 무척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만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심하지 않는다. 거기서 윤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은 더구나 하지 않는다.

 

p353 내가 대학교수가 되든 안 되는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교수직을 버린다는 것은 물론 괴로운 일이었다. 숙명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여러 면에서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었고, 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다른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P354 ‘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보았을 뿐이었다.

 

P356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356)

 

P356 나의 만다라 그림들은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자기, 즉 나의 전체성이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P361 최초의 환상과 꿈은 불에 녹아 흐르는 현무암과 같은 거이었다. 그것이 단단해져 돌이 되었고, 나는 그도을 다듬을 수 있었다.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가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세부적인 것은 단지 보충하거나 명료하게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흽쓸없던 자료들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p365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그런 증거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내 생각을 증명할 수가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연금술과의 만남은 나에게 결정적인 경험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때까지 부족했던 역사적 기반을 나에게 제공해주었기 때문이었다.

 

P372 내 무의식의 심리학은 역사에서 내용물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P373 의식의 심리학은 개인의 생활에서 이끌어낸 자료로도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

 

p374 나 자신도 그와 같은 꿈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한 살 때부터 착수해온 '주요과업'이 있었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모든 것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설명되며 나의 모든 연구는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다.

 

p390 물리학자가 원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성질을 가졌다고 말하거나 그 모형을 그린다고 해서 그가 영원한 진리를 표현하고자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P393 “이제 내가 너를 가장 높은 현재 속으로 인도하겠다.

 

P394 인간은 시적인 소명 앞에서도 결행을 유보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가의 자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유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할 수 없다면 그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p398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p 388 상처 입은 자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듯이 치료 자는 자신을 치유한다.

 

,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p402 그 탑에서 내가 누린 휴식과 재생의 느낌은 처음부터 매우 강력했다. 그곳은 나에게 모성적인 장소 같은 의미가

있었다.

 

p405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P422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422

 

P423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도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P424 나는 제2의 인격 안에 살면서, 생겨났다가 사자지는 생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행

 

p427 나는 유럽인들을 한번 외부에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느 모로 보나 생소한 환경 속에서 유럽을 보고 싶었다.

 

p431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p452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실현' 주술적 강요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압도적인 작용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에게조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개인을 형이상학적 요소를 지닌 위엄에까지 이르도록 고양하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p495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를테면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P508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환상들

 

p516 ''(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이런 체험은 나에게 극도의 결핍감을 안겨 주면서도 동시에 커다란 만족을 주었다. 내가 요구하거나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P524 인생'이란 그것을 위해 이미 마련된 삼차원의 세계체제 안에서 전개되는 존재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p525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아무것도 더 이상 시간으로 쪼개질 수도 없고 시간개념에 따라 측정될 수도 없었다. 그 체험은 우선 하나의 상태, 즉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감정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528 생각이라는 존재가 주관적인 평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가 또한 존재하는 생각으로서 억압되어서는 안된다. 그것들도 전체성의 현상에 함께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p532 선입견은 정신적인 삶이 풍성하게 나타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손상을 입힌다.

 

p534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p535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p540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인과론이 다 함께 불완전하다는 점이 판명된다

 

p558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세계가 없다면 정신은 교조주의에 갇혀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p573 오로지 삶의 공간을 넓히고 합리적인 지식을 어찌해서든지 증가시키는 데만 관심을 두는 시기에는 자신의 단일성과 유한성을 의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단일성과 유한성은 동의어다. 이것 없이는 무한성을 지각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의식화라는 것도 없다. 단지 군중과 정치권력의 열광에서 표출되는 그런 것과 망상적 동일시가 있을 뿐이다.

 

만년의 사상

 

p578 이미 기독교 초기에 성육신 관념은 '우리 속의 그리스도'라는 관념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로써 무의식의 통합성은 내적 체험의 심리영역으로 엄습해왔고 인간에게 통합적인 형상을 예감하게 했다.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창조주에게도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p579 빛에는 창조주의 다른 측면인 그림자가 따른다.

 

p580 중독 대상이 알코올이든 아편이든 또는 이상주의든 그 어떤 형태의 중독이든 똑같이 모두 악에서 나온다. 우리는 선악의 대극에 더이상 이끌려서는 안 된다.

 

p584인류의 반은 그럴듯하게 꾸며낸 신조에 의지하고, 나머지 반은 상황에 대처하는 신화의 결핍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P586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위를 받아들인다.

 

p588 사람들은 우리가 중요한 시대적 전환점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그것이 핵의 분열과 융합이나 우주 로켓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P 591 과학적 의식은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럼으로써 과학은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p592 하지만 내가 신화적으로 표현할 경우에도 마나’ '데몬' ''이 무의식이라는 말고 동의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런 용어들을 사용한다.

 

 p595 창조주가 자신을 의식했다면 그는 의식을 가진 피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과 피조물을 생산해내는 데 수백만 년을 소비한 지극히 우회적인 창조과정이 목적지향적인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p601 비밀결사는 개성화의 이르는 과정의 중간단계다. 사람들은 자신을 분화시키는 일을 아직은 집단적인 조직에 맡기고 있다. ,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P602 그는 홀로 걸어갈 것이며 동반자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P 602 내적 다양성은 그를 자기 자신과 불화하게 하고 외부세계와의 동일성에서 옆길로 빠지게 만든다.

 

P615 모든 이해와 모든 이해의 대상은 정신적인 것 그 자체이며, 그만큼 우리는 온통 정신적인 세계에 어쩔 도리 없이 갇혀 있다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P619 우리는 소위 가장 깊은 뜻에서 우주 창조의 근원인 사랑의 희생제물이거나 수단과 도구다.

내가 사랑이라는 말을 따옴표 속에 넣은 것은 그 말이 단지 열망, 선호, 총애, 소원등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고 개체보다 우월한 전체, 하나인 것, 나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부분으로서의 인간은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P623 어떤 사람이 강에서 한 번 모자로 물을 가득 퍼냈다고 하자.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 강물이 아니다.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P624 고독이란 주변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P625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P626 나는 많은 사람에게 심한 타격을 가했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알아차리기가

무섭게 그 상황은 나에게 끝장이 되고 말았다. 나는 나의 환자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에 대해 참을성이 없었다.

창피스럽게도/ 어떤 힘이 우리 심장을 앗아간다. / 천상에 있는 모든 것은 제물을 요구하므로./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 좋은 일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휠덜린)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P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 동안 일어난 것들은 그야말로 기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데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P629 나는 내 고집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어리석은 많은 일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다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 대해 실망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했다. 나는 인간에게서 경이로운 것들을 경험했고 스스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러나 나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은 너무나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알지 못하게 된다.

P630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만약 무의미성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면, 더 높은 정신발달 과정에서는 인생의 의미 충족성이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아마도 양쪽이 다 진실일 것이다.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노자는 빼어난 통찰력을 지닌 사람의 모범이다. 그는 가치와 무가치를 보았고 경험했으며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고유한 존재로, 인식할 수 없는 영원한 의미로 돌아가기를 바랐던 사람이다. 인생을 충분히 보아온 노인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

지능의 어떤 단계에서도 이 유형이 등장하며, 그것이 늙은 농부든 노자와 같은 위대한 현인이든 동일한 유형이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의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낮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편집자의 말

 

P631 그는 망원경으로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온통 어지러웠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별자리처럼 보였다.

그는 세게 속에서 감추어진 세계를 그의 인식에 보태였다. –콜리지

 

p634 “내 안에 무언가가 심금을 울렸습니다. 거기에 마음이 기울어 내가 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만년의 사상이라는 장이 생겨났는데, 그 글에서 그는 아마도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가장 깊은 자신의 사상들을 말하고 있다.

 

p635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기치가 있는 것이었다.

 

p636 나는 자서전적 정보에 관해 질문을 받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나의 기억자료 속에 어떤 객관적인 문제들이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네. 그 문제들은 아마도 좀더 자세히 검토할 가치가 있을 걸세. 그리하여 나는 그 일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한 후에 마침내 결심을 했네. 최소한 내 인생의 최초의 기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일을 이뤄내기 위해 그 외 다른 책무는 멀리 하기로 말일세.

 

p636 항상 그랬듯이 내 인생에서 모든 외적인 것은 우연한 것이고, 오직 내적인 것만이 실체성이 있으며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숙명적이네.

 

p637 이러한 긍정과 부정 사이의 갈등은 그가 죽는 날까지 결코 수그러든 적이 없었다. 항상 회의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고, 미래의 독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P642~643 나의 생애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글로 써온 내용의 정수이며 그 반대가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와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노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자서전'은 단지 소문자 (i) 의 윗 점, 즉 전체를 완성하는 최의 한 점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II.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카를 융의 자서전 형식을 빌어 자신이 살아온 동선을 잘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

어릴적부터 예민한 그의 감수성 때문에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고민하고, 번민하면서

그의 길을 외롭게 걸어간 사람이기도 하다. 융은 그의 책에서 고독이 무엇인가?’를 묻고 답한다.

고독이란 주변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이 책은 자기 관찰을 통해 자기 탐구를 가장 잘 보여주는 휼륭한 책이라고 생각 된다.

내용의 구성은 유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 로 성장기를 보여주고, 사회의 직업인으로써

그가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과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 중심으로 구성 되어 있다.

-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       프로이드와의 만남.

-       내안의 여인 아니마

-       연금술을 발견하다

다음으로는 그의 명성에 걸 맞는 학자로써의 완숙미를 만들어 낸 기억들이 정리 되어있다.

-       , 내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       여행

-       환상들

마지막은 그가 인간으로서 솔직한 마음으로 미지의 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       사후의 삶에 관하여

-       만년의 사상

-       회고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말한 노자의 글을 인용 하면서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은 너무나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알지 못하게 된다’.라고 술회 하고 있다.

 

내용의 구성은 어린 유년 시절부터 세상과 관계하면서 그의 기억 속에 떠 오르는 것은

아래와 같다.

최소한 내 인생의 최초의 기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일을 이뤄내기 위해 그 외 다른 책무는 멀리 하기로 말일세

 

참으로 귀중한 이야기를 해 준 대목이다. 세상과 직면한 일 들 중에 그가 최초의 기억들을 객관적으로 관찰 했던 일은 나의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가 되었다.

 

사부님의 배려(커리큘럼에 차주 2번 읽기에 이 책이 포함 됨)로 나는 다시 '나의 내적 탐험'을

위해 이 책을 다시 보기로 마음을 정 하고 다음주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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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 [고전읽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2] 미옥 2012.10.04 14928
1622 #23. 기억 꿈 사상_카를 융_Review_두번째 [1] 한젤리타 2012.10.07 3118
1621 사기열전2 -김원중 id: 깔리여신 2012.10.08 4603
1620 #23_카를 융 기억 꿈 사상. 두번읽기 [14] 서연 2012.10.08 4232
1619 회상, 꿈 그리고 사상 2 레몬 2012.10.08 2272
1618 (두번읽기) 기억꿈사상 - 칼 융 file [1] 콩두 2012.10.08 4615
1617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자서전) 두번읽기 file [5] 장재용 2012.10.08 6622
1616 #23_카를 융 기억 꿈 사상. 두번읽기 file 샐리올리브 2012.10.08 3422
1615 [두번 읽기]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세린 2012.10.08 2663
1614 기억 꿈 사상. (두번읽기) file 학이시습 2012.10.08 3164
1613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 한 데까지 올림. 이번 주는 쉬겠습니다. [1] 레몬 2012.10.16 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