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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일 11시 48분 등록

기억꿈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A 야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1.   저자에 대하여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저자 조사를 따로 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사람인지는 자신이 직접자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사람 카를 구스타프 융은 아니다. 독특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좀 미안해진다. 그가 평생 감내했을 외로움에 한 숟갈 더하는 듯 해서. 그는 자서전 내기를 꺼렸다. 자신의 학문적 저작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죽은 후에 공개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참으로 당황스럽게도 이것은 외적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내적사건의 기록이라고 초장부터 엄포를 놓고 있다. 자서전을 읽어봐도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의 상식적인 외적 사건을 알 수가 없단다. 어제는 어떤 노총각의 신상명세를 들었다. 가을 타느라 센티멘탈해진 그에 대해 애정을 가진 소개자는 그가 착한사람 임을 강조했다. 답답했다. 그를 어떤 아가씨에게 소개를 하자면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하다. 나이는 몇 살이고, 어디 살고, 직업과 학력, 간단 호구조사, 경제력까지 알면 좋다. 저자조사는 그래서 외적사건에 주력한다. 융이 동시성, 원형, 집단무의식에 대해 말한 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했다면 융은 그걸 더 깊이 파 내려간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MBTI를 공부하면서 그 성격유형론이 융의 이론에 기반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정신과의사였다.

 

태어난 곳과 연도, 부모, 공부는 어떻게 했고, 아내와 자식들, 제자들과의 관계, 저서는 무엇일까? 책의 왼날개를 읽는다.

 

1)스위스 북동부 케스빌에서 1875년 태어났다. 1961 85세를 일기로 퀴스나흐트에서 죽었다.

2)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목사집안에서 태어난 여자였다.

3)공부한 과정

바젤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한 뒤 취리히대학교 부설 부르크휩츨리 정신병원에서 심리분석치료를 통해 자신의 정신치료법을 확립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학계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연구를 이해하고 확증했으며 1907년 이후에는 공동작업을 하기도 해 프로이트의 후계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성격과 견해 차이로 인해 5년만에 결별했다.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융은 어린시절부터 경험한 강렬한 꿈과 환상 등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연구하면서 신화와 역사, 연금술 등에 심리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서 집단무의식 이론이 나왔는데 이 개념은 원형이론과 결합되어 종교심리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융의 업적은 오늘날 심리학 뿐만 아니라 종교와 문학 등 인문 전 분야의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년에 융은 역사를 꿰뚫어보는 시사논평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4) 저서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

황금꽃의 비밀

정신의 에너지에 대하여

심리학과 종교

심리학과 연금술

아이온

욥에의 회답

인간과 상징

 

아내와 자식들, 제자들과의 관계는 나와있지 않구나. 나머지는 이 자서전을 읽으면서 알아가면 되는구나.

 

어쩐 일인지 귀에 익은 옮긴이 조성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나온다.

 

1592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시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논문 <삼위일체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로 학위를 받았고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을 응용한 마음의 비밀강연회를 학교, 기업, 각종 단체 등에서 수십 차례 개최했다. 1971년 소설 [만화경]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으며, 1985 [라하트하헤렙]으로 제9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창작활동을 재개했다. 1991년 중편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제 1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야훼의 밤], [왕과 개], [통도사 가는 길], [욕망의 오감도], [우리 시대의 사랑],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 [한경직 평전], [유일한 평전]을 저술했으며 번역서로 [삼국지 (10, 모종간)], [악마를 찾아내는 46가지 방법] [예수의 일기] 등이 있다. 현재 숭실대 문예착작학과 교수로 있다.

 

옮긴이의 약력도 만만치 않다. 법을 전공했는데 신학대학원을 나왔고, 종교색이 있어 보이는 제목의 소설을 다수 썼고 문예창작학과 교수란다. 그가 융의 자서전을 번역한 게 어울린다.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유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은 융이 직접 썼다. 뒤의 말년의 사상도 그렇다. 나머지는 편집자인 야페와의 대담을 통해서 그녀가 묻고 그가 대답한 걸 정리한 후 융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옮긴이 서문 자서전 문학의 백미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 너는 누구냐 / 자연과 사원 / 두 인격의 어머니 / 악의 기원 /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생활 /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 꿈의 분석 /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 필레몬과의 대화 /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 카르마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푸엡믈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환상들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 융합의 신비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 단일성과 무한성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편집자의 말 - A 야페

카를 구스타프 융 분석심리학의 개념 및 용어

찾아보기

 

2)     장점과 보완점

 

(1)   , 환상, 동시성의 예가 풍부하게 나와 있다. 인류의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파이오니아의 발자취를 보면서 황홀하였다. 처음에는 그가 보는 환상과 꿈을 주황색과 그린색으로 표기를 해 볼까 싶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나온다. 그래서 그는 외로왔다. 그가 외로움을 감당하면서 자신을 통해 알려지는 것에 yes 하면서 따라가고 그걸 드러내었기 때문에 인류 전체가 이득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원형, 집단무의식 개념을 처음 발견한 이의 모험담이 나와 있다.

 

(2)   신에 대한 충심을 알 수 있다. 나는 비기독교인이지만 그가 서너살 무렵에 꿈으로 꾸고 예순여섯살이 될 때까지 비밀로 간직했던 남근상 꿈, 그가 가진 신에 대한 의문을 포기하지 않고 잠잠히 참구해나간 것은 대단한 정진력이었다.   

 

(3)   문장이 아름답고 독특하다. 그의 문장의 독특함은 아마도 그가 직접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또한 오랫동안 그의 항아리 안에서 숙성된 것이어서 이리라. 문장이 아름답기 보담은 그의 생각방식이 아름다운 것 같다.

 

(4)   보완점이라기 보담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거니 한다. 너무 어렵다. 특히 그가 직접 썼다는 만년의 사상 편 (대극과 통합/ 원형, 그 역동적 에너지)이 어려웠다. 

 

(5)   외적사건 중 중요한 부분, 결혼 아이들에 대한 것이 빠졌다. 그들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일테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서 아주 중요했을 이런 부분이 모두 빠져있어서 아쉬웠다.

 

1)     감동적인 장절

 

(1)   그의 일생을 지배했던 유년시절의 꿈을 보면서 나의 유년시절을 회상해본다. 그는 이 꿈을 아내와도 나누지 못하고 예순다섯까지 비밀로 간직한 채 추구해갔다. 화두를 잡고 있는 수행자처럼 평생 참구했다. 그건 새로운 세계로 그를 이끄는 마스터키와 같았다. 그의 고독이 아름답고 고맙다. 인신공양 아름다운 불빛을 쪼이며 나의 유년에도 이런 꿈이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31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 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목사관은 라우펜성 근처에 홀로 외롭게 서 있었다. 교회 관리인의 농가 뒤쪽으로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꿈에서 나는 그 초원에 서 있었다. 한순간 나는 거기서 테두리가 쳐져 있는 컴컴한 직사각형 구멍이 땅바닥에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 구멍으로 다가가서 그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돌계단이 저 밑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무서운 마음으로 머뭇거리면서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밑바닥에는 녹색 커튼으로 가려진 둥근 아치형 문이 하나 있었다. 그 커튼은 방직된 직물이나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듯 크고 묵직하여 무척 호화로워 보였다. 그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나는 커튼을 옆으로 밀어젖혔다.

희미한 빛 가운데 길이 10미터 가량 되는 장방형 방이 눈에 들어왔다. 둥근 천장은 돌들로 꾸며져 있었고 바닥 역시 포석들로 덮여 있었다. 중앙에는 붉은 양탄자가 입구에서 낮은 단까지 걸려 있었다. 단 위에는 말할 수 없이 화려한 황금보좌가 놓여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붉은 방석이 보좌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웅장한 보좌로 동화 속 임금의 보좌 그대로 였다.

그 위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그것은 천장에 거의 닿을 정도로 거대한 형상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나무기둥인 줄 알았다. 그 직경은 50~60센티미터 가량 되고 높이는 4~5미터쯤 되었다.

그 형상은 기묘하게 조립되어 있었다. 피부와 살아있는 살로 만들어졌으며, 꼭대기에는 얼굴도 머리칼도 없는 둥근 공 모양의 머리 비슷한 것이 붙어 있었다. 다만 정수리에 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눈은 미동도 하지 않고 위쪽만 응시하고 있었다.

창문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데 방은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그 형상의 머리 위에는 어떤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형상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보좌에서 내려와 나에게 기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깥에서인 듯 위에서인듯 들려왔다. 어머니가 외쳤다. “자 그를 좀 보라구. 저것이 사람을 잡아 먹는 것이야.”

 

35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83 남근상에 꿈에 관해서는 내가 예순다섯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다른 체험들은 아마 아내에게 말했을 것이나, 그것도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린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이것들에 관한 엄격한 금기가 있었다. 나의 청년시절 전체는 그 비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비밀로 인하여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졌다. 오늘날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이미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2)   1인격, 2인격의 묘사가 재미있다. 특히 아들이 어머니의 제2인격을 분리해서 듣고 관찰하는 게 즐겁다. 이 사람이 특별히 예민해서 그걸 알아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외적인 인격과 속사람의 인격이 다를 때가 있다. 융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제2인격을 니체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되었다고 말했다. 나의 제 1인격과 제2인격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숙제를 준다.  

 

91 나의 전 생애에 걸친 제1인격과 제2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2의 인격은 내 인생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3)   대학전공을 결정하게 하는 두 가지의 꿈이 재미있다. 그는 자연과학 쪽을 선택한다. 나중에 정신과를 선택하게 되는 계기 또한 그의 표현에 의하면 계시라는 우연에 의해서다.

 

164 나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 첫번째 꿈에서 나는 라인강변을 따라 펼쳐진 울창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작은 언덕처럼 생긴 봉분으로 올라가 그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 뒤 놀랍게도 나는 선사시대 동물의 뼈와 맞닥뜨렸다. 이것이 나의 흥미를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자연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도 나는 숲 속에 있었다. 숲 속에 수로가 뻗어 있었고 가장 음침한 곳에 빽빽한 덤불 숲으로 둘러싸인 둥근 연못이 보였다. 그것은 둥글게 생긴 동물이었는데 다채로운 색깔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무수한 세포 혹은 촉수처럼 생긴 기관들로 형체가 이루어져 있었다. 직경이 약 1미터나 되는 거대한 방사선충이었다. 이 장엄한 생물이 맑고 깊은 물 속 은밀한 장소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누워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말할 수 없이 놀랍게 여겨졌다. 그것이 나의 지식욕을 강하게 불러일으켰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깨어났다. 이 두 개의 꿈이 나로 하여금 자연과학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 점에서는 나의 회의가 사라졌다.     

 

(4)   여행지의 기록이 아름답다. 특히 신의 창조에 참여하는 중인 푸에블로 인디언, 도시에서 있었던 박람회에서 보고 여행을 작정했던 아프리카의 기록이 그러했다. 내 마음이 울리는 여행지에 대해 생각하는 숙제를 준다.

 

(5)   어린시절의 놀이(탑쌓기, 돌놀이)를 하면서 자신을 잊고 많은 저작을 냈다. 그가 만들어가던 고성의 사진을 보았다. 나도 어린 시절에 하던 놀이를 재현해 보고 싶어졌다. 그러면 나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될 것 같다.

 

(6)   융의 만다라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나의 만다라를 모아서 그 의미를 새겨보고 싶어졌다. 나도 꿈에서 둥근 원형 형상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런 일종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 – 칼럼 내용으로 다루기

 

356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만다라 그림들은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자기, 즉 나의 전체성이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만다라 이미지들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중요한 표지로 여겨졌고, 나는 그것을 값비싼 진지 다루듯 했다. 나는 그것이 어떤 핵심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꼈고, 그 기간에 자기에 관한 생생한 개념을 얻게 되었다.

 

(7)   환상, 꿈 등 무의식 세계를 다루는 융 자신이 가설한 이승의 발판에 공감갔다. 하루키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가 달리는 이유가 바로 홀로 있음이 주는 내상을 치료하고, 세계와의 연결을 복원하기 위해서라고 읽었다. 카메론도 작가들에게 신체적 활동이 필수적인 이유를 비슷하게 설명했다.   

 

 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물론 나는 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낯선 내면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대극으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무의식 내용은 나를 정상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과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사실들이란 내가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고 환자를 도와주어야 하며, 내게는 처와 다섯 아이가 있고 퀴스나흐트 제슈트라세 228번지에 살고 있다는 등이었다.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프롤로그 :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26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지만 나는 그 당시 흔한 습진으로 고생을 했다. 부모의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어두운 전조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1878년의 나의 병은 아마 부모의 일시적인 별거와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 어머니는 여러 달 동안 바젤의 병원에서 지냈는데 추측컨대 그녀의 병은 결혼생활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당시 어머니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친척 아주머니가 나를 돌봐주었다. 어머니의 오랜 부재로 나는 무척 힘들었다. 

 

26 그 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 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감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31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 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목사관은 라우펜성 근처에 홀로 외롭게 서 있었다. 교회 관리인의 농가 뒤쪽으로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꿈에서 나는 그 초원에 서 있었다. 한순간 나는 거기서 테두리가 쳐져 있는 컴컴한 직사각형 구멍이 땅바닥에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 구멍으로 다가가서 그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돌계단이 저 밑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무서운 마음으로 머뭇거리면서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밑바닥에는 녹색 커튼으로 가려진 둥근 아치형 문이 하나 있었다. 그 커튼은 방직된 직물이나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듯 크고 묵직하여 무척 호화로워 보였다. 그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나는 커튼을 옆으로 밀어젖혔다.

희미한 빛 가운데 길이 10미터 가량 되는 장방형 방이 눈에 들어왔다. 둥근 천장은 돌들로 꾸며져 있었고 바닥 역시 포석들로 덮여 있었다. 중앙에는 붉은 양탄자가 입구에서 낮은 단까지 걸려 있었다. 단 위에는 말할 수 없이 화려한 황금보좌가 놓여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붉은 방석이 보좌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웅장한 보좌로 동화 속 임금의 보좌 그대로 였다.

그 위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그것은 천장에 거의 닿을 정도로 거대한 형상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나무기둥인 줄 알았다. 그 직경은 50~60센티미터 가량 되고 높이는 4~5미터쯤 되었다.

그 형상은 기묘하게 조립되어 있었다. 피부와 살아있는 살로 만들어졌으며, 꼭대기에는 얼굴도 머리칼도 없는 둥근 공 모양의 머리 비슷한 것이 붙어 있었다. 다만 정수리에 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눈은 미동도 하지 않고 위쪽만 응시하고 있었다.

창문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데 방은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그 형상의 머리 위에는 어떤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형상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보좌에서 내려와 나에게 기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깥에서인 듯 위에서인듯 들려왔다. 어머니가 외쳤다. “자 그를 좀 보라구. 저것이 사람을 잡아 먹는 것이야.”

 

35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42 이런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은 한편으로는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 연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유년시절의 깊은 고독감과도 연관이 있었다. 누이 동생은 나와 아홉살 차이가 났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놀았다.

 

43 내 부모는 각각 따로 잤고, 나는 아버지 방에서 잠을 잤다. 어머니방 문에서 으스스한 기운이 뻗어나왔다. 밤이면 어머니는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신비로웠다. 어느날 밤 나는 어머니방 문에서 흐릿하게 빛을 내는 모호한 형상 하나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44 그 무렵 나는 질식발작이 수반되는 가성후두염을 앓고 있었다….심인성 동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신적인 분위기가 질식할 지경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린아이에게 심인성 동기가 된 것은 부모의 불화였을 거다.

 

45 유년시절에 나는 시골학교 학우들과 사귀는 동안 발견한 것이 한 가지였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집에 있을 때와는 달라졌다.

 

48 온갖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다시 말해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거나 나의 예민한 감정이 상했을 때, 혹은 아버지의 흥분하기 쉬운 성격이나 어머니의 병약함으로 내가 침울해졌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싸서 침대에 뉘어놓은 남자 인형과 곱게 칠해진 미끄러운 그의 돌을 생각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때만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종종 몰래 꼭대기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50 남자 인형의 에피소드는 내 유년시절의 정점이었으며 종결이기도 했다 그것은 1년 정도 계속되었다. 그후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되기까지는 그 사건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51 남자 인형은 외투를 입은 고대의 작은 신으로 많은 옛날그림 속에서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 그의 의술로 모든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될까 두려워 제우스가 그를 벼락으로 죽여버림) 옆에 서서 그에게 두루마리 하나를 읽어주고 있는 텔레스포로스였다. 이러한 회상을 함으로써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훨씬 나중에 낱낱이 살펴본 아버지의 장서에는 그러한 정보를 담은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아버지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음이 입증된 셈이었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66 10분 뒤에 나는 기절발작을 일으켰다. 나는 의자에서 떨어질 뻔 했으나 몇 분이 지나자 상태가 다시 좋아져 공부를 계속 했다. “빌어먹을. 줄도 따위는 하지 않을거야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결심대로 밀고 나갔다. 그렇게 15분 가량 지나서 두번째 발작이 일어났다. 이것도 첫번째 발작과 마찬가지로 지나갔다. “, 이제 정말로 너는 공부해야만 해나는 꾹 참아냈ㄷ. 한 시간 후에 세 번째 발작이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발작을 이겨냈다고 느낄 때까지 한 시간을 더 공부했다.

갑자기 나는 이전 몇 달의 상태보다 나아진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발작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문법책과 연습장을 가지고 매일 공부했다. 몇 주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학교에서도 더 이상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이를 테면 그 사건에 끼워진 것에 불과하며 내 편에서 그 사건을 간교하게 조정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67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72 나는 두 시대에 살고 있고 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78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였다. 이와 같은 생각이 나를 지독한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하느님이 자신이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의도했는지 아닌지 잘 몰랐다. 나는 계시를 구하기 위해 기도할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하느님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이러한 곤경으로 밀어 넣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방치했다. 나는 하느님이 의도한 대로, 스스로 혼자서 출구를 찾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81 내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는 체험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의지로, 아버지는 아주 그럴 듯 이유를 대며 깊은 신앙심을 내세워 그 의지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성서의 계명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았다. 아버지는 성서에 씌어있고, 조상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느님을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인간의 용기를 시험할 때 하느님은 비록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하느님은 용기에 대한 그런 시험에서 악한 어떤 것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도록 당신의 전능함으로 이미 보살피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면 그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또한 아담과 이브를 그러한 방법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그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느님은 그들이 복종하는가를 알기 위해 그렇게 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종교적 전통으로는 내가 거부하고 싶은 것도 나에게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은총을 가져다 준 것은 복종이었다.

 

83 남근상에 꿈에 관해서는 내가 예순다섯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다른 체험들은 아마 아내에게 말했을 것이나, 그것도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어린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이것들에 관한 엄격한 금기가 있었다. 나의 청년시절 전체는 그 비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비밀로 인하여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졌다. 오늘날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이미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91 나의 전 생애에 걸친 제1인격과 제2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2의 인격은 내 인생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91 나는 그런 식으로 하느님에게 다가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왜냐하면 나는 체험을 통해서, 은총은 오직 하느님의 의지를 철저히 실현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97 경우에 따라 어머니라면 가능할 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어머니도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특히 나를 찬탄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좋지 않았다.

 

100 어머니의 두 인격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유년시절에 어머니에 대해 불안한 꿈들을 꾸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낮에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였으나 밤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 했다. 그 시간 어머니는 이상한 동물이기도 한 예언자처럼 곰의 동굴에 사는 여사제처럼 보였다. 고태적이고 잔인했다. 진리와 자연과도 같이 잔인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자연의 마음(인간 본성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본성 고유의 지혜를 의미하여 사물을 거침없이 말하는  특징이 있다.)’라고 불러왔던 그것의 화신이었다. 

내 어머니도 이럴 때가 있다. 거두절미 단도직입

 

106 나는 빵을 먹었다. 예상했던 대로 맛이 없었다. 포도주는 아주 조금만 맛보았는데 묽고 시큼했다. 상품의 포도주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107 나는 종교입문의 정점에 있었으므로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08 이 성찬식이 나에게 치명적인 경험이 되었다는 사실을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공허하게 지나갔으며 좀더 심한 말로 하면 그것은 일종의 손실이었다.

 

111 내가 찾고 있는 것, 다시 말해 독자적으로 깊이 생각하여 쓴 저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1869년에 간행된 비더만의 <기독교 교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 깊이 생각하여 자신의 견해를 소신있게 펼쳐나간 듯 했다. 나는 그로부터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의 견해를 갖기, 그걸 쓰기가 중요하구나. 융의 책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왔다.

 

116 그 무렵 어머니, 즉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너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한 번 읽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 책은 내 마음에 기적의 향유처럼 흘러 들어왔다.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여기에 악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완전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방해하는 힘을 가진 적대자와 피로 계약을 맺기까지 한 자가 있구나

 

118 나는 그 책을 읽고 파우스트가 일종의 철학자였으며, 철학에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으로부터 진리를 위한 개방성을 분명히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3 여기서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내용은 한동안 오래 중단되기는 했으나 수년에 걸친 사색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제2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야말로 자못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것을 조사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그의 서재를 몰래 이용했다.

질문이 먼저 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독서가 있다.

 

124 학교에서 뻔한 사실들에 대해 불필요하게 장황한 설명을 함으로써 흥미를 잃게 한 책들을 빼놓고 읽었다.   

 

127 나는 이제 낙인이 찍혔고, 특이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도 있었던 모든 길이 막혀버린 것을 느꼈다. 나는 깊은 실망과 모욕감으로 선생에 대한 복수를 맹세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내가 작문을 베끼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격분시킨 것은 그들이 나를 사기꾼으로 추정하여 나를 도덕적으로 망하게 했다는 점이었다.

다음 시간에 또는 계속 우수한 작문을 써냄으로써. 최고의 복수는 성공 또는 행복이다. 최고의 경쟁력도.

 

131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131 돌은 존재의 끝없는 신비, 영혼의 진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나는 돌과 나 자신이 서로 유사하다고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 그 양쪽에 다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133 헤겔은 난해하고 거만한 문체로 나를 겁먹게 해서 나는 노골적인 불신감으로 그를 대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언어구조 속에 갖혀 그 감옥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몸짓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133 나의 탐구가 가져다 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138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40 김나지움에 다니는 동안 나는 매주 목요일 이 친척어른 집에서 점심을 먹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나는 점심뿐만 아니라 이따금 식탁에서 성숙화고 총명하고 지적인 대화를 들을 수 있는 다시없는 이점으로 인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것이 일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커다란 경험이었다. 내 주위에는 누군가가 학문적인 대상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은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그런 것을 요구해보기도 했으나, 아버지는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불쌍한 아버지가 내적인 의혹으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여 맹목적인 믿음만을 주장했다. 그는 그 믿음을 쟁취해야만 했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강요하려고 했다.

 

144 나는 교회와 거리를 두면 둘수록 더욱 마음이 편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르간과 합창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교회공동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쉽지 않았다. 교회공동체라는 말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습관에 따라 정기적으로 교회에 가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보다 서로 교제하는 유대관계가 약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물론 그다지 고결하지는 못했으나 그 대신 훨씬 호감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지녔고, 신자        들보다 더 사교적이고 명랑하고 따뜻하면서 진실했다.

 

147 나는 다양한 작은 술잔에 너무나 고무되어 예기치 않았던 전혀 새로운 의식상태로 옮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는 더 이상 안과 밖이 따로 없었고, 나와 타인, 1인격과 제2인격, 조심스러움과 소심함도 없었다.

 

151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성자인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의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어떻게 성자와 함께 살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성자는 은둔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은둔처는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생각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즉 가족들은 한 집에 살고 나는 다른 곳, 집에서 약간 떨어진 막사에 사는 것 말이다. 나는 그 오두막에 수많은 책과 책상을 갖다 놓고, 불을 피워 밤을 굽기도 하고 불 위의 삼각받침에 수프통을 걸어놓을 것이다. 성스러운 은둔자로서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대신 나 자신만의 개인예배처를 갖게 될 것이다. 

10대에 했던 이 생각을 그는 나중에 실현했구나.

 

152 말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운명적인 이상한 감정에 싸이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막 내 앞에 나타났는데도 마치 우리가 하나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걷고 있구나. 나는 그녀를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누구지? 그녀는. 이 책에는 사랑과 아내, 자녀들에 대한 것이 생략되어 있어 융의 일생의 전모를 알 수가 없다. 분명 그가 애인이나 아내를 만났을 때,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날 때 어떤 영향들이 있었을 텐데 그 모두가 빠져있어 아쉽다.

 

154 대극의 충돌로부터 내 생애 처음으로 체계적인 환상이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157 이와 같이 환상에 빠져 수개월을 매우 즐겁게 지내다가 결국 싫증이 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환상이라는 것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164 나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 첫번째 꿈에서 나는 라인강변을 따라 펼쳐진 울창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작은 언덕처럼 생긴 봉분으로 올라가 그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 뒤 놀랍게도 나는 선사시대 동물의 뼈와 맞닥뜨렸다. 이것이 나의 흥미를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자연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도 나는 숲 속에 있었다. 숲 속에 수로가 뻗어 있었고 가장 음침한 곳에 빽빽한 덤불 숲으로 둘러싸인 둥근 연못이 보였다. 그것은 둥글게 생긴 동물이었는데 다채로운 색깔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무수한 세포 혹은 촉수처럼 생긴 기관들로 형체가 이루어져 있었다. 직경이 약 1미터나 되는 거대한 방사선충이었다. 이 장엄한 생물이 맑고 깊은 물 속 은밀한 장소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누워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말할 수 없이 놀랍게 여겨졌다. 그것이 나의 지식욕을 강하게 불러일으켰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깨어났다. 이 두 개의 꿈이 나로 하여금 자연과학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 점에서는 나의 회의가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학 학과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결혼상대, 이직, 출산 여부까지 결정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166 이제 정말 괴로운 문제에 당면했는데 그것은 어디서 대학공부에 필요한 돈을 구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단지 그 일부를 마련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바젤대학에 장학금을 신청했으며 부끄럽게도 나는 그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내가 부끄럽게 여긴 이유는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테면 모든 윗사람, 즉 유력한 분들이 나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윗분들에게 그러한 친절을 기대해본 적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착하고 단순소박한 아버지에 대한 좋은 평판 덕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168 괴테에게도 제2의 인격은 하나의 실재였다.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무렵 다소 충격적으로 깨달은 바지만 <파우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요한복음> 그 이상의 으미를 지나고 있었다. <파우스트> 속에는 내가 직접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생동하고 있었다.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는 나에게 낯설었는데, 그보다 더 낯선 것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구원자였다. 이에 반해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의 살아있는 등가물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해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러한 통찰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적 안정감과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다.

 

169 이 무렵 나를 놀라게 하면서도 용기를 북돋워준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다. 어떤 낯선 거리에서 밤중에 나는 거센 폭풍을 맞받으며 힘들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게다기 짙은 안개가 가득 끼어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작은 등불을 들고 양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내가 이 작은 등불을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갑자기 내 뒤에서 뭔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검은 형체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무서웠지만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나의 작은 등불을 밤과 바람을 뚫고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170 이 꿈은 나에게 심오한 계시와도 같았다. 그때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 빛을 지키고 그 투철한 생명력(2의 인격-옮긴이)을 뒤돌아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쪽은 다른 종류의 금지된 빛의 영역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폭풍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으면 폭풍은 끝없는 어둠의 세계를 나를 밀어놓으려고 기를 썼다.

 

174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말보다는 주위 분위기의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것들에 대해 훨씬 더 잘 반응한다. 어린아이는 그 분위기에 무의식적으로 적응한다. 즉 어린아이 마음 가운데 보상적인 성격의 상호작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175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은 내 무의식이 자극을 받아 만들어내고 있던 기이한 보상적 산물들과 아버지의 전통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 나에게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77 그는 결혼생활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선행을 베풀고는 그 결과 대개 기분이 언짢았고, 곧잘 부아를 내곤 했다. 부모는 두 사람 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무척 노력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자주 다툼이 일어났다. 이러한 어려움들이 나중에 아버지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신앙이든 운동하는 사람이든, 뭐든 아름다운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들, 결혼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함께 사는 사람과 화목하게 사는 것만큼 많은 에너지를 주는 일은 없는 듯 하다. 반대로 여기서 에너지를 받지 못하면 이것만큼 황폐하게 하는 일도 없다.

 

179 아버지는 누군가와 말다툼을 해야만 했으며 가족과 자기 자신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왜 그는 그런 싸움을 모든 피조물의 비밀스러운 창조자이며 세계의 고통에 대해 실제로 책임이 있는 단 한 분인 하느님과 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은 불가사의하고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는 저 꿈들 중 하나로 아버지에게 대답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느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조차 그런 꿈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 일은 그렇게 일어났다.

 

180 나는 아버지가 자시의 운명에 꼼짝없이 매여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외로왔고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 주변에는 구원의 말을 해줄 만큼 신뢰가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기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충격을 받고 화까지 치밀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교회와 그 신하적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는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아버지가 하느님에게 직접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막아버리고는 의리없이 아버지를 버리고 말았다.  

 

185 한번은 어머니가 나를 향해서인지 주변 공기를 향해서인지 제2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지금 돌아가셨구나그 말은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너에게 방해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185 그 무렵 남자다움과 해방감이 조금씩 내 안에서 싹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아버지방으로 옮기고 집안에서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머니방에게 생활비를 일주일마다 나눠주어야만 했다. 어머니는 절약할 줄을 몰라 금전을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신뢰하지 않는다. 아버지 사후에 가족의 대표주자가 되었던 장남들도 이런 심리상태를 가질까? 엄마의 남편 또는 관리자가 된 듯한 느낌? 

 

186 나는 궁핍한 시절을 굳이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러한 시절에는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언젠가 여송연 한 통을 선물로 받은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 여송연은 일요일에만 한 대씩 피웠기 때문에 1년이나 피웠다. 회고하건대 대학시절은 나에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정신적으로 활기를 띠었고 또한 우정을 나누는 시기였다.

 

197 다음 임상학기는 너무나 바빴기 때문에 전공과 거리가 먼 다른 분야를 넘나들 시간이 거의 없었다. 단지 일요일에만 칸트를 공부할 수 있었다. 나는 또한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도 열심히 읽었다. 니체는 이미 얼마동안 독서계획에 들어있었으나 마음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껴져 읽기를 망설였다.

 

198 아주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니체를 닮을 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을 느끼며 주춤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를 주위로부터 고립시킨 그 비밀에 있어 비슷한 데가 있을 지도 몰랐다. 

 

199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이제 나이 제2 인격은 차라투스트라였다. 물론 이것은 두더지의 흙두둑을 몽불랑산에 비교하는 격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의심의 여지 없이 병적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제2인격도 병적이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공포감에 젖게 했다.

 

199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2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204 그 방은 후두나무로 만든 둥근 식탁이 놓인 우리집 식당이었다. 그 식탁은 친할머니가 혼수로 가져온 것인데 그 당시 이미 70년이나 되어 낡아 있었다. …갈라진 데는 접합한 부분도 아니고 완전 통나무판이었다.

 

205 빵바구니가 들어있는 서랍에서 한 덩어리의 빵과 그 옆에 놓인 빵 자르는 칼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칼날이 온통 부러져 있었다.

 

213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 저녁, 나는 오랫동안 열망했던 사치스러운 소원을 이루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 간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런 과도한 낭비를 할 만한 경제적인 여우가 없었다. 그러나 골동품을 팔아서 번 돈이 아직 얼마 남아 있어 그 돈으로 오페라 구경도 하고 뮌헨과 슈투트가르트 여행도 할 수 있었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221 취리히대학 정신병원인 부르크휠츨리에서의 수년간은 나의 수련기간이었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의 중심주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하는 화급한 의문이었다. 그 의문은 그 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였으며, 나의 동료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정신의학 강의가 목표로 하는 것은 병든 인격에 관해 소위 추상화를 하고 진단과 증상의 기록, 통계로 만족하는 정도였다. …환자들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진단하여 도장을 찍으면 그것으로 일은 대충 끝나는 것이었다.

 

225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는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재료의 탐색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때로는 연상검사가 길을 열어줄 때도 있다. 또한 꿈의 해석을 통해서나 환자와 오랫동안 끈기있게 인간적으로 접촉함으로써 그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233 나는 일종의 기습공격을 가하기로 결심했다. 그도 모르게 그의 어머니에게 그가 알코올중독으로 회사직책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서를 발급해주었다. 그를 해고해야한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나의 충고를 따랐고, 아들은 물론 나에게 몹시 화를 냈다. 여기서 나는 보통 같으면 의사의 양심으로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만 셈이다. 그러나 환자를 위해서ㅡㄴ 그 책임을 내가 져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후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벗어났고,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킬 수가 있었다.  

 

234 그녀는 살인범이었으나 거기에 더하여 그녀 자신을 또한 살해했다. 그런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236 임상적 진단은 어떤 방향 설정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이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240 그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성서 한 장을 읽도록 정해주어야만 했다. 그 다음에 올 때는 거기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나는 이런 일은 14일에 한 번씩 7년 가량 했다. 처음에 나는 물론 이 역할이 좀 기이하게 여겼으나, 얼마 후에는 그 연습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녀의 주의력이 활발하게 유지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녀는 무의식의 붕괴된 환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지는 않게 되었다. 

 

 

241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248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249 결정적인 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또 다른 한 인간과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은 일종의 대화이며 여기에 당사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분석가와 환자는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된다. 의사도 무언가 할 말이 있고 환자도 마찬가지다.

정신치료에서는 어떤 방법의 적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정신의학 연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 자신은 정신치료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기까지 오랫동안 일해야했다. 1909년에 나는 이미 잠재적 정신병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50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바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 교육분석에서 의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250 또한 교육분석은 실제적인 삶의 한 부분이지 무조건 암기하여(문자 그대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교육분석에서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나 치료사는 나중에 그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물론 이른바 작은 정신치료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본래의 분석에서는 환자와 의사 모두 그 전인격이 대상이 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을 바치지 않고는 치료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았을 때 결정적인 것은 이사가 자기 자신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보느냐 아니면 스스로를 자기 권위로 씌워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중대한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때 의사는 그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253 나는 의사로서 환자가 나에게 어떤 소식을 가져오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환자가 나에게 무엇을 예시하는가? 환자가 나에게 아무것도 예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공격목표가 없는 셈이다.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53 모든 치료자는 제3자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다른 관점도 가지게 된다. 교황 자신도 고해신부를 두고 있다. 나는 분석가들에게 늘 이렇게 충고한다. “고해신부 역할을 해줄 아버지 같은 사람이나 어머니 같은 사람을 가지도록 하시오여성들은 그런 일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 여성들은 대개 뛰어난 직관과 정확한 비평력을 지니고 있으며 남자의 비밀스러운 의향을 간파할 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의 아니마가 꾸미는 음모까지 꿰뚫어볼 수 있다.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남편이 초인이라고 확신하는 부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럼 여자는 남자 분석가를 가져야 하나?

 

 

 257 여기서 우리는 비전문가의 분석이라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나는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정신치료를 배워서 시행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잠재성 정신병의 경우에는 그들이 잘못 짚기가 쉽다. 그러므로 나는 비전문가가 분석가로 일하더라도 전문적인 의사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전문 분석가가 일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생기면 즉시 전문의에게 문의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정신치료를 시행하고 스스로 분석을 받은 비전문가들은 그래도 뭔가를 알고 어느 정도 치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거듭 확인했다. 게다가 정신치료를 활용하는 의사들도 그 수가 결코 충분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직무는 아주 긴 기간의 철저한 수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교양이 요구된다.

 

259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는 특히 환자 편에서 전이가 일어난다든지 의사와 환자 간에 다소 무의식적인 동일시가 일어날 때에는 때때로 심령심리학적 성질을 지닌 현상이 야기될 수도 있다.

 

259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인들이 질투심이 많아 남편의 교유관계를 깨뜨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한 부인들은 자신들이 남편에게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268 그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적인 반응이었다. 이 사례에서는 환자와 함께 가야한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제약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박신경증에 걸린 것이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본성에 의해, 바로 강박신경증을 통해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270 오늘날 소위 신경증 환자들 가운데는 이전 시대라면 신경증 즉 자기 자신과의 분열을 겪지 않았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신화에 의해 조상들의 세계와 여전히 관련을 맺고 잇고, 그리하여 단지 바깥에서 보는 자연이 아닌 실제로 체험하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면했을 것이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276 특히 나에게 흥미를 일으켰던 것은 신경증심리학에서 유래된 억압기제라는 개념을 꿈의 분야에 적용한 점이었다. 나는 단어 연상실험에서 억압현상과 자주 마주쳤기 때문에 이것은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환자는 어떤 자극어에 대해서는 연상어를 전혀 떠올리지 못하거나 반응시간이 무척 길어지곤 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러한 연상장애는 자극어가 정신적 상처나 갈등을 건드릴 적마다 일어났다.

 

279 1907 2월 빈에서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오후 1시에 만나 열세 시간 동안이나 그야말로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으로는 어떤 사람도 프로이트에 견줄 수 없었다.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282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항상 비종교성을 강조해온 프로이트가 일종의 교리를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또는 그가 잃어버린 질투하는 신 대신에 성욕이라고 하는 또 다른 강압적인 형상을 슬쩍 바꿔넣는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287 프로이트가 성욕이 신성한 힘이며 그것은 일종의 신이면서 악마라는 심리학적인 진리를좀더 고려했으면 생물학 개념의 한계에 갇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니체도 인간존재의 바탕을 좀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면, 아마도 감정의 과잉으로 세계의 가장자리 밖으로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294 나는 파당의 지도자가 되어 실제로 짐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결코 달갑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일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며 나의 지적 독립성을 희생할 수도 없었다….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거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295 그가 사생활에 관해 좀더 상세한 정보를 나에게 제공해준다면 꿈의 해석이 더욱 풍성해지겠다고 말했다. 나의 말에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 더욱 풍성해지겠다고 말했다. 나의 말에 프로이트는 기묘한 시선, 의심이 가득 담긴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프로이트는 개인적인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사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320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었을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 무렵 나는 벽돌로 집짓는 놀이에 열중했다. …놀랍게도 이런 기억들이 일종의 감격과 함께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성인이 된 남자와 열한 살 소년을 서로 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 번 더 살아보는 수 밖에 없다.

이게 아티스트 데이트다!!! 나도 어린 시절 즐긴 놀이를 해봐야겠구나. 

 

321 그러는 동안 내 어린시절 꿈에 나온 지하의 남근상이 생각났다. 이런 관련성은 나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날마다 점심을 먹은 후 날씨만 좋으면 나는 집을 지었다. 식사를 마친 직후부터 환자가 올 때까지 그렇게 했다.

 

323 10월에 내가 혼자서 여행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환상이 나를 압도해버렸다. … 끔찍한 재앙이 벌어지고 있었다. 엄청난 황톳빛 물결과 물에 떠내려가는 문명의 파편들, 헤아리 수 없는 수천의 수검을 보았다. 어느새 바다는 피바다로 변해있었다. 이 환상은 한 시간 가까이나 지속되었다. 나는 혼란스럽고 역겨워지면서 나 자신의 연약함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두 주가 지났을 때 똑같은 상황에서 다시 그 환상이 찾아왔다. 피바다로 바뀌는 장면이 더욱 끔찍했다. 내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잘보라, 이것은 정말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1차 세계대전의 환상. 그는 영혼이 맑은 사람. 우리 안에는 이런 이들이 있다.

 

325 나는 자주 흥분되어 내 감정을 요가로 제어해야만 했다. 그러나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경험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요가는 내가 안정되어 무의식과 더불어 다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을 때까지만 했다.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자마자 나는 감정제어를 풀고 환상의 이미지와 내부의 소리가  새롭게 말하도록 했다.

 

326 감정을 이미지로 바꾸는 그만큼 다시 말해 감정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만일 내가 감정에 나 자신을 맡겼더라면 무의식의 내용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328 내가 나 개인 뿐만 아니라 나의 환자를 위해서 이러한 모험을 자청해서 한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게 했다.

 

332 환상을 붙들기 위해서 나는 자주 하강을 상상했다. 한번 깊은 곳에 이르기 위해서 심지어 몇 번이나 시도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었다.

 

334 그러한 꿈속의 방황에서 사람들은 흔히 젊은 처녀와 동행하는 노인을 보게 된다. 많은 신화적인 이야기에서 그런 짝의 예들이 발견된다.

 

334 나의 환상 속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엘리야와 살로메 외에 제 3의 형상, 즉 크고 검은 뱀이 있었다. 신화에서 뱀은 영웅의 대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335 나는 그를 필레몬이라 불렀다. 필레몬은 이교도로 그노시스파의 색조를 띤 이집트적 헬레니즘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그의 형상은 한 꿈속에 처음 나타났다.

 

339 이 내 때 안의 소리가 있었다. “이것은 예술이예요.” 나는 매우 놀랐다. 나의 환상이 예술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341 나는 매일 저녁 글쓰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아니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그녀는 나의 환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성실한 글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적어놓은 것을 아니마가 왜곡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걸 가지고 책략을 쓰지도 못할 것읻. 이와 관련해서 보면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될 수 있는 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물론 나는 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낯선 내면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대극으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무의식 내용은 나를 정상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과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사실들이란 내가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고 환자를 도와주어야 하며, 내게는 처와 다섯 아이가 있고 퀴스나흐트 제슈트라세 228번지에 살고 있다는 등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려는 이유다. 직업이 이런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은 자명하다. 나는 방학 때나 연후에는 효율이 너무나 떨어진다.

 

349 영혼, 즉 아니마는 무의식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은 사자 집단과의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무의식은 신화적인 죽음의 나라즉 조상의 나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351 그 무렵 나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하면서 미워했다.

 

356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만다라 그림들은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자기, 즉 나의 전체성이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만다라 이미지들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중요한 표지로 여겨졌고, 나는 그것을 값비싼 진지 다루듯 했다. 나는 그것이 어떤 핵심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꼈고, 그 기간에 자기에 관한 생생한 개념을 얻게 되었다.

 

357 대략 1918~1920년에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단일형의 발달도 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시작단계에서나 있는 일이고, 그 뒤에는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한다.

 

361 내가 그 무렵 체험하여 기록한 것을 과학적 작업의 그릇 속에서 추출해내기까지 따지고 보면 45년이나 걸렸다. 젊은이로서 나의 목표는 학문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361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세부적인 것은 단지 보충하거나 명료하게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휩쓸었던 자료들을 보다 정료하게 다듬는 데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368 내가 잘 모르는 그 부속건물은 내 인격의 일부, 즉 나 자신의 한 측면이었다.

 

376 물리학에서도 에너지와 그것의 여러 가지 표현, 즉 전기, , 열 등에 관해 말한다. 심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심리학도 일차적으로 에너지를 취급한다. 말하자면 강도의 측정, 양의 많고 적음을 다룬다. 그런데 나타나는 형태는 무척 다양할 수 있다.  

 

390 신학자들은 자연과학적 사고, 특히 심리학적 사고를 알지 못한다. 분석심리학의 자료에서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진실, 즉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서도 흔히 서로 일치하는 진술이다.

 

397 내가 여기서 나의 저술에 관해 개략적으로 살펴본 것은 물론 요약에 불과하다. 사실 더 많이 이야기하든가 아니면 더 적게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이 장은 내가 하는 다른 모든 이야기와 같이 즉석에서 말한 것이며 순식간에 생겨난 것이다.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 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 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그 글들은 내가 살아온 동시대 세계에 대한 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403 외딴 방에 나 혼자 있다그곳은 사색하고 환상에 몰두하는 은신처였는데 대개 환상은 매우 불쾌한 것들이고, 사색은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영적 집중의 장소였다.

내가 사는 집에도 반드시 갖고 싶은 공간

 

413 최우선적으로 동시성 현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가 내적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을 동시성 현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의 체험에 구체적으로 상응하는 사건이 있었다.

 

419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넘겨진 비개인적인 카르마가 가족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는 조상들에게 숙명적으로 던져졌으나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물음에 내가 대답해야 하며, 지나간 세대가 완성하지 못한  채 남긴 것을 내가 완성하거나 계승해야만 할 것 같이 늘 여겨진다.

 

여행

 

433 드디어 태양의 동살이 퍼지고 그때 무에진(회교 기도사)의 아침기도 시간 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는데 그 소리가 내 마음을 깊이 흔들어놓았다.

듣고싶다.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 하잔

 

439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이 또한 싹튼다. 휠덜린

 

443 우리는 여기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나는 오래 생각에 잠겼다.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가 진정한 백인의 모습을 나에게 묘사해준 셈이다.

 

450 그는 태양의 아들로 그의 생명은 우주론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그는 모든 생명의 아버지요 보존자인 태양이 날마다 떠오르고 지도록 돕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우리 자신의 삶의 근거, 즉 우리의 이성이 짜내는 인생의 의미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것이 얼마나 빈약한 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53 내가 런던에서 웸블리 전람회를 찾았을 때 영국 통치하에 있는 민족들의 빼어난 전시물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나는 가까운 장래에 적도아프리카를 여행하리라 마음먹었다.

 

458 그럼 내가 당신에게 충고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선생도 아시다시피 이곳은 인간의 나라가 아니고 신의 나라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걱정 말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그러고는 인사도 없이 일어나더니 이쪽으로 몰려오는 흑인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말은 체험의 진수임이 분명했다. 이곳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 맨 위에 있고, 그리하여 의지와 의도가 아니라 신비한 섭리가 맨 위에 있는 것이었다.

 

467 여자는 샴바(단감자, 아프리가수수, 옥수수 등의 경작지)’와 소위 동일화되었다. 여자는 아이, 염소, 닭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바로 그 둥근 오두막에 함께 살고 있었다. 그것이 여자에게 품위와 자기 확신감을 주었다. 여자는 강력한 동업자인 셈이었다. ‘여성의 평등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동반관계가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원시사회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여자가 바라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충분히 잘 조절되고 있다.

 

469 여주인은 공공연히 아무 문제 없이 지금 여기 존재하는 자, 즉 남편의 진정한 임시 처소였다. 문제는 그가 여기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자신의 전체성 속에 존재하면서 짐승떼와 함께 돌아다니는 남편의 자기장의 중심이 되고 있느냐 하는데 있는 것 같았다.

 

475 많은 종족들이 아디스타를 숭배하고 있다고 했다. 아디스타는 처음 떠오른 순간의 태양의 가리키는 말이다. 오직 그 순간에만 태양은 뭉구신이 된다. 붉고 푸른 서쪽 하늘에 처음 나타난 가느다란 황금빛 초승달도 신이다. 그런데 오직 그 순간에만 신이고 다른 때는 아니다.

보고 싶다.

 

478 그 순간 아는 어느 사원에 들어와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것은 하루 중에서 가장 거룩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 장엄한 광경을 식을 줄 모르는 감격으로 아니 더 낫게 표현한다면 무궁한 황홀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484 싸움터의 병사들은 전쟁에 관한 꿈보다는 고향 꿈을 훨씬 많이 꾸었다. 정신과 군의관들은 어떤 병사가 전쟁장면 꿈을 너무 많이 꾸면 그를 전선에서 떠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그는 외부의 인상들에 대한 정신적 저항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491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 결코 그 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그의 집을 덮칠 것이다.

 

495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509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여행을 했고 로마에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도시의 인상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느꼈다. 이미 폼페이만 해도 벅찼는데, 그 인상들은 나의 수용능력을 거의 넘어섰다.

 

환상들

 

521 그 여러 주 동안 나는 기묘한 생체리듬 속에서 살았다. 낮에는 대부분 우울했다. 나는 수척하고 여위어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저녁 무렵이 되면 나는 잠이 들었고 잠은 대략 자정까지 이어졌다. 그러고는 잠에서 깨어나 한 시간 가량 깨어 있었는데 이 때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되었다. 나는 황홀경이나 엄청난 축복의 상태에 있는 듯 했다.

 

526 병을 앓은 후 나에게는 왕성한 연구시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많은 주요저작이 그후에 비로소 출간되었다.

 

527 그런데 나는 병을 통해서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527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536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 줄 수도 있다. 동시성 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들을 생각해보라.

 

539 내가 인생경험에서 그 사례들을 말한 바 있는 자연발생적인 예지, 초공간적인 지각 같은 수많은 경우 외에도 정신이 때때로 시공간적인 인과율을 넘어서 작용하고 잇다는 증거들이 있다. 그리하여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인과론이 다함께 불완전하다는 점이 판명된다.

 

547 많은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자기 자신의 가능성에 미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생존시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생존시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생전에 습득하지 못한 의식성 부분을 죽음에서 얻으려고 요구하게 된다.

 

549 나의 아니마가 그녀에게 부과된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 개의 장이 특히 어려웠다.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 / 단일성과 무한성 부분이다.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부분도 어려웠다.

 

588 만다라는 원형상이며 그 존재는 수천년에 걸쳐 확인되었다. 그것은 자기의 통합성을 나타내거나 심적 토대의 통합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신화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안에 육화된 신성의 출현이다.

 

590 나는 여기서 만다라의 가장 단순한 기본형인 원 모양과 가장 단순한 (생각으로) 원의 분할, 즉 사각 또는 십자가를 생각한다.

 

619 의사로서의 경험뿐 아니라 나 자신의 생활이 끊임없이 나에게 사랑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거기에 대해 가치있는 답변을 할 수 없었다.

 

회고

 

623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625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동안 일어난 것들이야 말로 그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629 나는 인간에게 경이로운 것들을 경험했고 스스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러나 나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은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말

 

633 나에 관한 책은 항상 일종의 숙명적인 사건이었다. 거기에는 무언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나 자신으로 하여금 미리 어떻게 쓰도록 한다든지 미리 계획을 세우도록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자서전도 지금 벌써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어린시절의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하나의 필수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일을 하루라도 중단하면 그와 동시에 불쾌한 신체적 증상이 따라온다. 그러나 내가 그 작업을 하면 금방 그 증상은 사라지고 머리가 아주 맑아진다.

 

638 내게 어떤 의미가 있고 먼 추억처럼 다가온 관계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가장 깊은 내적인 삶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닫혀 있는 문을 세상의 눈앞에 열어젖힌다는 것은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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