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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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원래 이름은 르네, 즉 '칼 빌헬름 요한 요셉 마리아 릴케’이다. 이 이름은 당시 성 하인리히 교회에서 태어날 때 받은 세례명이다. ‘르네’는 후에 평생의 연인이었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의 권유대로‘르네’를‘라이너’로 개명한 것이다. 그는 1875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아래 있었다.
아버지 요셉은 젊은 시절 장교로서 사교계의 화려한 삶을 꿈꾸었지만, 뵈멘 지방 철도국의 하급관리로 복무했다. 어머니인 소피 엔츠는‘피아’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비교적 좋은 가문 출신으로 명예욕이 많았던 것으로 기록한다. 두 사람은 남편의 직업인 하급 관리 직이 그녀의 사회적 욕망을 채워주지 못해 순탄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패배의식과 어머니의 불만으로 인해 늘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릴케를 낳기 전 첫 딸을 유산했는데, 그녀는 죽은 딸을 잊지못하고, 릴케가 태어난 이후에도 그 상실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릴케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릴케가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찍은 사진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가는데, 이 이유는 어머니인 소피 엔츠가 그녀의 상실감을 메워줄 대용물로 릴케를 키웠다는 해석이 분분하다. 그녀는 릴케에게 여자 옷을 입히고, 머리를 땋아주고, 소꿉장난을 하게 하며 남자 아이들과 노는 것 마저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의 이름 중간에‘마리아’를 넣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으로 사육되며, 상실감을 메워주는 대상이 된 상황을, 감정이 예민했던 릴케가 받아들이기에는‘폭력’으로 받아들여졌다.
1884년, 릴케가 아홉 살 되던 해, 결국 릴케의 부모는 이혼을 한다. 이혼의 상황을 아홉 살의 릴케는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20대 후반, 그가 쓴 시에 어머니에 대한 반항과 증오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아, 슬프구나. 나의 어머니가 나를 허문다
돌이 차곡차곡 나에게 쌓여
하루해가 큼직하게 움직이는 작은 집처럼 벌써 서 있다.
혼자뿐이었지
이제는 어머니가 오셔서 나를 허물고 만다.
그는 그가 지인에게 보낸 지인에게 어머니에 대하여 ‘바지저고리처럼 속이 텅 빈 망상적이고 역겨운’여인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그 자신이 보냈던 소년 시절을 ‘기나긴 불안과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표현 할 만큼 괴로워했다.
1886년, 11살이 된 릴케는 상 푈텐에 있는 군사기숙학교에 보내진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부모와 떨어져있어야 하는 기숙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그리고 1890년에는 메리쉬-봐이쓰키르헨의 고등군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릴케가 군사학교에 입학한 것은 아버지가 군인으로서 이루지 못한 꿈을 대리만족 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램때문이었다. 그는 훗날 그가 그 학교를 선택하게 된 것을 ‘최악의 모순 상황’이라고 회고하였으며, 자신은 그 학교에서 ‘웃음거리 약골’이었노라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이‘어린시절의 감옥’이라 불린 군사학교에서 퇴교한다. 그리고 중단한 학창시절의 기억은 남성세계에 대한 열등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일방적인 복종과 명령만을 강요당하는 군사학교를 그만 둔 릴케는 1891년 린츠에 있는 실업학교에 입학한다. 새로운 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그는 개인적으로 대학입학을 위한 인문 교육과정을 준비, 1895년에 대학입학 자격 국가시험에 합격한다.
이런 청소년기에 그는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 ( Die Weise von Liebe und 쌩 Cornets Christoph Rilke)>라는 시집을 발간한다. 이는 그가 몸담고 있었던 ‘프라하’ 라는 도시가 지니는 독특한 문화가 낳은 사회, 문화적 다양성과 그가 개인적으로 몸담아있는 학교에 대한 환경, 그리고 세대 대전 이후의 상황과 맞닿은 시대적인 분위기가 어울려, 억눌린 자아의식을 노래한 시집이었다. 이 책은 출간 되자마자 놀라운 호응을 보였다.
그는 프라하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권유에 법학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제껏 자신들의 욕망으로 이끌렸던 것에 반기를 들고, 자기만의 소심한 복수를 감행하기 시작한다. 법학 공부와는 거리를 두고, 예술사 강의를 들으며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 그는 발리 데이비드 뢴펠트 라는 소녀에게 첫사랑을 고백하지만, 작고 허약한 그에게 그녀는 관심이 없음을 알고는 실연하게 된다. 이 무렵, 그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읇은 <삶과 노래(Leben und Lieder, 1894)>를 출간하고, <기다림(Wegwarten)>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시집은 첫 번째 책에 비해 냉담한 반응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는 지속적으로 글쓰기에 몰입한다.
대학 첫 학기에 그는 대학생활의 체험을 담은 시집 <라렌 (Larenopfer)1895> 그리고 <꿈에 관을 씌우고 (Traumgekront) 1896>를 발간한다. 훗날 비평가들은 이 작품집들에 대해서 그의 시적인 역량이 한참 미흡하다고 판단했지만, 지속적인 그의 글쓰기의 노력은 자양분이 되었다. 이 무렵, 그는 지속적으로 시 작업을 함과 동시에, 수많은 강연, 독서 모이므 잡지 창간 등으로 말그대로 ‘시와 문학에 젖어 사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당시 유행하였던, 미학적 형신과 예술적 탐미주의에 젖어 보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사건 체험이나 기교주의에 빠져 장식적인 치장을 중요시여기는 등의 시 외적인 요소에도 심취한다. 동시에 괴테와 릴리엔크곤의 작품세계에도 빠져보기도하고, 당시 프라하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모리스 마텔링크의 문학에 빠져 그의 작품을 모방해보기도한다.
이러한 프라하에서의 문학에 빠진 삶은 그가 1896년 9월 뮌헨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성숙해 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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