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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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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4일 00시 34분 등록

이곳 괴산 여우숲으로 떠나오기 전, 양평에서 텃밭 농사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농사는 정말 서툶 그 자체였습니다. 200평 남짓이나 되는 땅을 삽 한 자루로 일궈보겠다고 아내와 딸에게 호기를 부렸다가 뙤약볕에 몸은 지치고 손에는 온통 물집이 잡혀 결국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터 바로 아래에 홀로 사시는 예순 넘은 원주민 아주머니가 그 모습을 지켜 보다가 손을 내밀어주셔서 밭 일구는 일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경운기에서 엔진부분이 있는 머리를 뚝딱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경운기 앞머리에 쟁기를 달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끙끙대며 쟁기를 꺼내와서 일러주신 요령대로 결합해 보려 했으나 쉽지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나를 물러서게 한 뒤 쟁기를 결합하셨는데 그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순조롭고 신속했습니다. 청년 남자의 힘으로도 옮기고 결합하기 어려운 쟁기를 아주 쉽게 뚝딱 결합하시더니 시동을 걸어 운전을 하시고 순식간에 밭을 갈아 엎더니 밭고랑을 만들어내셨습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요령을 깨쳐야지 힘만 쓰자고 덤비면 지쳐서 농삿일 못하는 법이오!”


그 뒤 십년의 세월을 살면서 나는 그 아주머니가 하셨던 말씀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특히 삶의 한 축으로 삼고 있는 숲 강의 영역에서도 나는 아주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 애써왔습니다. 숲을 이해하고 느끼는데 있어서 학교의 정규 과목으로 공부했던 내용들이 거의 기억나지 않고 심지어 특별히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사람들에게 숲을 읽고 전달하고 느끼도록 돕는 안내 행위도 혹시 그렇게 전달력과 지속력이 없으면 어쩌지 자주 고민해 왔습니다. 어렵게 말하거나 힘만 잔뜩 들어간 안내가 아닌, 하나의 체험이나 하나의 은유만으로도 가슴을 일렁이게 할 방법을 찾아보려 애써왔습니다.


그리고 그 비법을 은유적 표현으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유치원이나 각급 학교 선생님들 중에 숲을 안내하는 역할에 관심이 많은 다양한 선생님들을 자주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나는 그 은유적 표현을 들려드리곤 합니다. “훌륭한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요? 저는 거미를 닮은 창의력을 가진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미는 거미줄의 재료를 어디에서 구할까요? 거미는 온갖 종류의 곤충과 벌레를 먹습니다. 거미줄의 재료는 바로 그 벌레와 곤충들입니다. 거미는 그 벌레와 곤충을 제 몸 속에서 버무리고 소화한 뒤에 누군가를 포획할 거미줄을 뽑아냅니다.


바람을 읽고, 곤충들이 날아다니는 길목을 읽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천적을 피할 비법까지 품어서 그물을 짭니다. 어떤 거미는 거즈처럼 고운 그물을 짜고, 어떤 거미는 방사형의 그물을 짭니다. 또 다른 어떤 거미는 그 가운데에 새를 피하기 위해서 X자의 장애물 표식을 실로 자아내 심어두기도 합니다. 대상을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미줄에는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높은 강도가 담겨 있습니다. 교과서, 혹은 어떤 책이나 누군가의 지식을 옮기는데 그치는 수준의 안내와 수업은 훌륭한 수업이 될 수 없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꼭꼭 씹고 더 깊이 사유한 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자아내듯 창의적으로 펼쳐낼 때 그 수업이 훌륭하다 하겠습니다. 자연을 안내하려면 내가 먼저 그 자연을 느끼는 자연이 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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