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미옥
  • 조회 수 14928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2년 10월 4일 18시 2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하사관에서 장교로 입신하는 게 꿈이었던 아버지와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소녀 취향을 갖고 있던 어머니 사이에서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로 길러졌다가 1886년 아버지에 의해 육군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참담한 시련의 시기로 묘사되고 있는 이 시절에 릴케는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들은 주로 감상적이고 미숙한 연애시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이러한 경향은 1896년 살로메와의 만남을 통해 크게 선회하게 된다. 특히 두 번에 걸친 러시아 여행과 스위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면서 얻은 깊은 정신적 영감을 바탕으로 초기시의 대표작 '기도시집'이 완성되었다. 그 밖에도 브릅스베데의 화가촌에서 하인리히 포겔러와의 만남, 1902년 파리 방문을 통한 로댕과의 만남은 '형상시집', '말테의 수기'의 집필 동기가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신시집'은 사물시의 결정으로서 로댕과의 만남에서 얻은 조형 예술 세계 체험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스위스 체류와 제1차 세계대전의 체험, 아프리카와 에스파냐 등지의 여행은 릴케 말년의 역작인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이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녹아들어 죽음으로써 삶을 완성하는 존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사람과 사물, 풍경과 만남에서 그 내면을 응시하여 본질을 이끌어내고자 한 그의 글쓰기20세기 독일 현대 작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1926년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참고 자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31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첫 번째 편지

당신에겐 단 한 가지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에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이 더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오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14 _ 일상의 언어로는 라는 사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오해를 면하기 위해 쓸 수 밖에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벙어리 생활도 익숙해지니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기기 시작한데다 가진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스스로를 변호하는 데 쓰는 사람들 역시 썩 흡족히 이해받으며 살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이었을 거다. 어차피 오해를 피할 수 없다면 구차하게 이 사람 저 사람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보단 차라리 그 에너지를 모두 모아 단 한사람,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라도 확실히 어필해보는 편이 승산있는 게임이라고 판단했다. 죽기 전에 오직 한 사람, ‘나 자신에게라도 흠뻑 이해받아 보겠노라는 소박하고도 무모한 꿈을 품게 된 것이다.

집중의 힘이었을 것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한 점을 응시하고 달린지 3년이 넘어가는 지금, 나는 전보다는 훨씬 깊이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사랑 또한 나날이 깊어져갔다. 누가 이해하고 누가 이해를 받는지, 또 누가 사랑하고 누가 사랑을 받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해와 사랑이 깊어지는 만큼 웃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를 둘러싼 외적인 조건은 무엇 하나 나아진 것이 없건만 무슨 이유로 세상이 이리 사랑스러워 보이는 걸까? 지난 3년 내게 일어난 그 마법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리도 좋은 것이라면 사랑스러운 이들에게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와 같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런 기적같은 치유사례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려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것이야말로 내가 받는 축복에 대한 가장 나다운 報恩法이 아닐까?

 

당신의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주제들을 구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소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과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 나름의 믿음 따위를 묘사하도록 해보십시오. 이 모든 것들을 차분하고 겸손한 솔직함으로 묘사하십시오 15 _ . ^^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보물을 손에 넣은 이후 달라진 삶에 대한 묘사 보물을 손에 넣는 과정에 대한 묘사. 이 글은 을 위해 소중한 팁이 될 듯하다.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러낼 만큼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 것 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15 _ 진정한 창조자’. 이리 거창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종의 프로세스를 거치고 나면 일상의 결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의 독자를 위한 글로 잘 정리해놓아야겠다.

 

내면의 전향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세계로의 이 같은 침잠으로부터 시가 흘러나오게 되면,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시가 좋은 시인지 아닌지를 묻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예술작품이 필연성에서 생겨났다면, 그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은 그것이 어디로부터 생겨났느냐는 그 생성의 뿌리에 있습니다. 그밖의 다른 기준은 있을 수없습니다 16 _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해의 센서를 마련해준 아픈 기억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 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로 거기서 들려오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답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그 운명을 받아들여, 그것을 짊어지십시오. 그 운명의 짐과 그 위대함을 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바깥세계로부터 무슨 보상이 올까 하는 물음은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창조자는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자신과 한 몸이 된 자연에서 구해야 하니까요 17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합니다 17

 

당신의 모든 성장과 발전을 조용하과도 진지하게 이어나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꾸만 바깥 세계만을 쳐다보고, 당신의 가장 조용한 시간에 당신의 은밀한 감정을 통해서나 답해질 수 있는 성질의 질문들에 대해 외부로부터 답을 얻으려 할 때처럼 당신의 발전에 심각한 해가 되는 것도 없습니다 18 _ 완전 동감.

 

두 번째 편지

 

어떤 다른 일에서보다도 특히 가장 심오하고 중요한 일들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우리 인간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기 위해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또 많은 일들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을 거두려면 여러 가지 일들의 전체 정황이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23 _ 절감한다. 다른 사람들이 에게 도움을 구하도록 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나를 향해 귀를 열도록 하는 것은 결코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내가 머금고 있는 메시지가 적절하며 또 충분히 숙성되었다면 이를 필요한 이들에게 옮겨주는 벌나비는 자연스레 모여드리라. 물론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늦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있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니? 어쩌면 이 시간이야 말로 평생에 다시 오지 않을 황금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괜히 조바심내느라 귀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차분하게 나의 절대 고객인 가족에게 몰두하도록 하자. 그러다가 영영 기회가 오지 않으면 어쩌느냐구? 아직도 우주의 시스템을 의심하는가? 은 나를 위해 가장 적절한 시간을 결콘 놓치실 리가 없으며 혹 그런 중요한 일을 그르치는 찌질한 신이 관장하는 우주라면 굳이 너를 바쳐 헌신하지 못함을 아쉬워할 것도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는가?

 

진지한 것들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반어적인 태도는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거나, 아니면 그것은 더욱 견고한 수단으로 강화되어 당신이 당신의 예술을 다듬을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도구들 중의 한 지위를 차지할 것입니다 24

 

내게 지금까지 창작의 본질에 대해, 즉 창작의 깊이와 불멸성에 대해 가르침을 준 이름들을 들으라고 한다면, 내겐 단 두 개의 이름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위대하고도 위대한 작가 야콥슨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재 생존해 있는 예술가들 중에서 필적할 사람이 없는 조각가 로댕입니다 25 _ 이 편지를 쓴 날이 19034, 그리고 3년 후인 19064월 릴케는 사소한 일로 갈등이 생겨 그토록 존경하던 로댕과 헤어지고 만다. 기대가 깊을수록 실망도 크기 때문이려나?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세 번째 편지

 

운명이라는 것은 한없이 다정한 손길에 의해 이끌려 각각의 실들이 다른 실과 나란히 놓이기도 하고 수백의 다른 실들과 함께 엮어지기도 하는 경이로운 커다란 직물과 같습니다 29

 

미학적인 비평의 글은 되도록 읽지 마십시오. 그런 종류의 그들을 무감각하게 각질화되어 생동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편파적인 견해이거나, 아니면 교활한 말장난일 뿐입니다. 이러한 말장난의 경우 하루는 이 견해가 이겼다가 다음 날이 되면 정반대의 견해가 승리하기 일쑤입니다 30 _ 인간에 대한 품평도 마찬가지 일 듯.

 

당신은 늘 당신 자신과 당신의 느낌이 옳다고 생각하십시오 30

 

당신의 생각이 주위로부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제 스스로 자라나도록 두십시오. 그와 같은 성장은, 모든 진보가 그렇듯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뻗쳐 나와야 하며, 그 무엇에 의해서도 강요되거나 재촉당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산달이 되도록 가슴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상과 느낌의 모든 싹이 완전히 자체 속에서,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속에서 완성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고 나서는 깊은 겸손과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명료함이 탄생하는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이것만이 예술가답게 사는 것입니다 31 _ ok!!

 

예술가는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일도 없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요. 그러나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조용히 여유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내게 고맙기만 한 고통 속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가 모든 것이라고! 32

 

뜨겁게 살면서 뜨겁게 시를 쓴다 32

 

예술적인 체험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적인 체험과 비슷합니다. 성적인 체험에서 느끼는 그 고통 및 황홀경과 말입니다. 성적인 체험에서 느끼는 그 고통 및 황홀경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는 동일한 동경과 쾌감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2 _ , 가장 명징한 合一의 상징

 

창조적 개인이 처하게 되는 가장 힘든 시험들 중의 하나. 그는 언제나 자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미덕에 대해서 의식하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는 자신의 미덕이 지닌 순진성과 순결성을 빼앗지 않게 될 테니까요 33

 

이 세상에는 완전히 성숙하고 순수한 성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충분히 인간적이지 못한 성의 세계, 다시 말해서 오로지 남성적인 성의 세계만이 있을 뿐입니다 33

 

그는 인간이 아니라 오로지 남자로서 사랑을 하기 때문에 성에 대한 그의 감정 속에는 무언가 편협한 것, 거칠어 보이는 것, 악의에 찬 것, 시간에 종속된 것, 비영속적인 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34 _ 어떤 관계든 궁극적으로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니 그래야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데멜의 예술에 존재하는 위대한 면을 보고 깊이 즐길 수는 있는 일입니다. 다만 그의 세계에 너무 빠져 자신을 잃거나, 간통과 혼돈으로 가득 차 있어 걱정스럽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세계의 신봉자가 되지만 않으면 됩니다 34 _ 본질을 간파하는 통찰력과 확고한 자기확신이 없고는 불가능한 경지.

 

네 번째 편지

 

삶에 대한 당신의 그 아름다운 관심 39

 

당신은 참으로 젊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작을 앞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가슴속에 삶을 특별히 행복하고 순수하게 짓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쪽을 향해 매진하십시오. 그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커다란 신뢰로 맞아들이도록 하세요. 그것들이 당신의 의지에서 나올 때, 즉 당신의 내면의 어떤 욕구에서 나올 때에는 그것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40 _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요. 릴케!

 

당신 자신을 통해, 즉 당신 자신의 성격과 방식을 통해, 당신 자신의 경험과 어린 시절과 힘을 통해 성에 대한 완전히 고유한(관습과 도덕에 물들지 않은) 관계를 획득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을까, 당신이 지닌 가장 훌륭한 재산인 성에 대해 스스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41

 

육체적인 쾌감은 감각적인 체험으로서...그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크고 무한한 경험이며, 세계에 대한 인식이며, 이러한 모든 인식의 충만이자 꽃봉오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나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경험을 오용하고 낭비하고 자신들의 삶의 따분한 곳을 긁어줄 자극 정도로나 생각하고 그리고 최고도의 절정을 집중이 아닌 기분풀이 정도로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41

 

고독한 사람은 동물과 식물들이 뽐내는 모든 아름다움이 사랑과 그리움의 조용하고 지속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42

 

쾌감이나 고통보다도 훨씬 크고, 의지나 반항심보다도 훨씬 힘찬 그들의 필연적 욕구에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42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생식력은 단 하나뿐입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창조 역시 육체적인 창조에서 비롯하며 육체적인 창조와 본질을 같이하기 때문이지요. 다만 정신적인 창조는 육체적인 쾌감의 좀 더 은근하고 좀 더 황홀하고 좀 더 지속적인 반복일 따름입니다. “무언가를 낳고 만드는 창조자가 된다는 생각은 이것을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실현하는 위대한 작업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사물들과 동물들이 보내주는 수 천번의 동조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창조를 즐기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까닭은 거기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수백만의 잉태와 분만의 기억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창조적인 생각 속에는 수천의 잊혀진 사랑의 밤들이 되살아나 그 생각을 숭고함과 큰 기쁨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러므로 밤마다 서로 만나 넘실대는 쾌락 속에 얼싸안은 연인들은 진지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달콤함을, 즉 앞으로 태어날 한 시인의 노래를 위한 깊이와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인은 이 세상에 나와 말로 다할 수 없는 환희를 노래할 것입니다. 그 연인들은 미래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들이 방황하며 사랑에 눈에 멀어 끌어안고만 있다고 해도 미래는 다가오기 마련이고, 새로운 인간은 소생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의 얼핏 우연처럼 보이는 것에도 그 밑바닥에는 법칙이 눈을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43 _ 그러고 보면 아이를 만들고 낳아 기르는 과정과 영감을 모아 엮어내 길러내는 과정은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조급할 것 없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나면 안다. 뜻한 시기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조바심치느라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바보같은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간엔 차분히 엄마가 될 준비를 했어야 했다. 다른 생명을 품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차분히 정리해 보고 이를 감당하기 위한 채비를 했어야 했다.

혹 열심히 준비하고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어쩔 거냐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만약 엄마가 될 준비를 정말로 충실히 할 수 있었다면 그 시간 자체가 이미 충분한 선물이 되었으리라고. 어떤 형태가 되었든 내게 주어진 운명을 훨씬 깊이 해석해낼 수 있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다가오는 삶을 훨씬 알차게 꾸려낼 수 있는 힘을 얻었을테니까. 그러니 정말 잃을 게 없는 투자인 셈 아니겠는가?

지나치게 계획대로 인생이 진행된 탓에 합당한 준비없이 엄마가 되고 나서 겪었던 당황스러움을 돌이켜보자. 그게 어디 그리 추천할 만한 경험이란 말인가? 출산이라는 기쁨으로 포장된 엄청난 책임을 이미 두 번이나 체험했던 너라면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너와 세상을 깊이 사랑하는 은 결코 준비되지 않은 네게 감당 못할 책임을 지게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네가 충분한 준비를 마치고 나면 준비된 일꾼을 일없이 놀게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는 것도.

 

세계의 위대한 개혁은, 아마도 남자와 처녀가 모든 그릇된 감정과 혐오감에서 벗어나, 서로 반대되는 존재로서 상태를 찾지 말고 같은 형제자매로서, 이웃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연대하여 그들의 어깨에 부과된 어려운 성을 소박하고 진지하고 끈기 있게 함께 짊어지고 나아가는 데 있을 것입니다 45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이 만들어내는 고통을 당신의 아름답게 울리는 비탄으로 견디도록 하세요 45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성장의 뒤쪽에 처져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십시오. 그리고 그들 앞에서 확실하고 태연하게 행동하도록 하고, 당신의 의심으로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 것이며, 그들이 이해 못할 당신의 확신이나 기쁨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지도 마십시오. 당신 자신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고 해도 조금도 변하지 않을, 그들과의 그 어떤 소박하고 진실한 공통점을 당신이 먼저 찾으세요. 당신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사랑하고, 당신에겐 친근하기만 한 고독을 두려워하는 나이든 분들에게는 관대하게 대하세요 46 _ 현재의 내게 매우 적절한 조언. 고마워요. 릴케!!

 

노인네들에게 충고를 요구하지 말고 그들의 이해도 기대하지 마세요. 하지만 마치 유산처럼 당신에게 남겨진 그들의 사랑은 믿으십시오. 바로 이 사랑 속에 힘과 축복이 들어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당신은 아주 멀리 가기 위하여 굳이 이 축복으로부터 벗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46

 

직업의 굴레로 인해 당신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의 삶이 제약을 느끼는지, 그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십시오 46 _ 돌이켜보니 직장이 내게 특별히 고약한 장애는 아니었다. 만약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직장은 훌륭한 현장으로서 기능해주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니 문제는 직장 그 자체가 아니라 내게 지켜야 할 또 다른 현장, 즉 가정이 있었다는 상황이었다.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현장에 속하면서는 나의 진정한 필드인 내면을 가꿀 여유를 만들어낼 재간이 없었다. 직장 vs 가정. 3년 전의 나에게 직장 대신 가정을 선택하도록 종용했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내게는 너무나도 낯설었던 가정을 내 필생의 현장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던 사람이 만약 내가 낳은 아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원망을 씻어 내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기에 적어도 내게는 황무지가 분명했던 가정을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인 약속의 땅으로 일구어 낼 힘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내 어찌 엄마라는 이름의 굴레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신의 고독은 당신에게 아주 낯선 상황 속에서도 당신을 위한 의지처이자 고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바로 고독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당신의 모든 길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47 _ 릴케가 말하는 고독眞我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고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자아말이다.

 

다섯 번째 편지

 

그래, 이곳에는 다른 곳보다 아름다운 것이 더 많지는 않아. 그리고 여러 세대를 두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경탄을 사고 수선공의 손에 의해 수선되고 보완된 이 모든 물건들은 아무 것도 아냐. 아무런 감정도 가치도 없는 것들이야. 하지만 사실 이곳에는 많은 아름다움이 있어. 어딜 가나 아름다운 것들 천지이거든 51 _ 바로 이 깨달음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여기가 아닌 거기를 꿈꾸어 왔던 나였기에 거기로의 여행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다녀오고 났다니 비로소 여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비해 전혀 모자랄 것 없는 이미 그 자체로 온전한 여기.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만들어내듯 52

 

우리는 점차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영원성과 우리가 조용히 동참할 수 있는 고독이 담겨 있는 아주 적은 수의 사물들을 알아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52

 

겨울 내내 그곳에 묵으면서 위대한 고요를 즐길 작정입니다. 이 같은 고적함이 내게 마음씨 좋고 유능한 시간의 선물을 선사해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53

 

여섯 번째 편지

 

고독은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위대하며 견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의 누구에게나 고독을 버리고 아무하고나 값싼 유대감을 맺고 싶고, 마주치는 첫 번째 사람, 전혀 사귈 가치조차 없는 사람과도 자신의 마음을 헐고 하나가 된 듯한 느낌에 빠지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56 _ 가장 경계해야할 것. 반드시 더 나쁜 상태로 몰아넣고 만다는 걸 굳이 더 확인해야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바로 이러한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 어른들이 중요하고 대단해 보이는 일들에 얽매여 분주하게 돌아다닐 때 어른들의 너무나 분주한 모습과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서 우리가 느꼈던 고독, 바로 그런 고독을 느껴야 합니다 57

 

직업은 그 자체로 굳어버려 삶과 아무런 관련을 맺지 못하고 있다 57 _ 본래 직업은 삶과 적극적으로 관련된 것이었다는 의미.

 

왜 우리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의 세계의 깊은 곳으로부터 그리고 그 역시 일이요 지위요 직업인 자기 자신의 고독의 드넓은 공간으로부터 낯선 것들을 바라보듯 바라보지 않을까요? 57 _ 역할과 입장이 생겼기 때문이겠지. 그것 자체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일시적인 역할과 입장을 떠나 본질에 입각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고 있지 않으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 떠맡은 역할때문에 삶 자체가 훼손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분명히 하고 싶다.

 

당신이 가슴속에 지니고 있는 세계를 생각하십시오 58

 

당신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당신의 모든 사람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당신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그 일에만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당신의 입장을 해명하느라고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당신에게 그러한 입장이라는 게 있기나 한가요? 58 _ 내 시간을 장악하려는 사람들에게 단호할 필요가 있다. 한 번의 무례를 용인해주면 그 다음부터는 마치 당연한 권리인 양 착각하는 부류의 사람들. 얽히면 얽힌 만큼 피곤해진다. 경계와 거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비켜가는 게 상책이다. 40이 가까운데 아직 익히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그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한없이 100에 가깝다. 가르치면 되지 않냐구? 무슨 정신나간 소리. 그럴 능력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는 걸 잊지 마라. 이것만 지킬 수 있어도 3년 공부가 헛되지 않을 것.

 

그런대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듯한 직업들은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로 속이 드넓고 확 트여서 진정한 삶을 가능케 해주는 위대한 것들과 교류할 수 있는 직업이란 없습니다 59

 

당신이 장교로서 경험해야 하는 일들은 설사 당신이 다른 직업을 택했다 하더라도 거의 비슷하게 느낄 만한 것들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어떠한 직업도 갖지 않고 사회하고만 약간의 독자적인 접촉을 꾀하려 한다 해도, 당신의 그 옥죄는 듯한 느낌은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59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사물들 쪽으로 접근해 보십시오. 사물들은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도 당신을 위한 숱한 밤들과, 나무들 사이로 그리고 수많은 땅 위로 부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직도 사물들과 동물들은 당신이 관여할 만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당신이 어렸을 때와 똑같은 모습들입니다.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표정이지요.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당신은 다시 그 고독한 어린 아이들 속에 다시 살 수 있을 겁니다. 어른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품위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60 _ 어른이란 본질과 상관없는 것들로 심하게 훼손되어 자연을 잃어버린 존재의 상징일 것입니다. 의 이유는 아마도 여전히 자연으로서의 스스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테고요. 그렇다고는 해도 당신도 역시 순수한 자연일 수 없을테니 인공자연’,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을테지요? 만약 당신이 자연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면 의 방법을 써보세요. 당신의 자연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수월하게 거두어내고 그들과 교감하며 당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신의 그리움에 의해 착각에 빠진 것 61 _ 피그말리온이 떠오른다.

 

왜 당신은 신이란 다가오는 자, 영원으로부터 그 도래가 임박한 자, 미래의 존재, 우리가 그 이파리인 한 나무에 열릴 마지막 열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신의 탄생을 앞으로 다가올 시간 속으로 위치시켜 놓고서 당신의 인생을 위대한 잉태의 역사 속의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하루처럼 살고자 하는 당신의 뜻을 막는 것이 그 무엇입니까? 61

 

시작하기 위해서는 신은 당신에게서 바로 그러한 삶의 불안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성탄절을 즐겁게 보내십시오. 바로 이처럼 당신이 처해 있는 전환의 시기가 당신의 가슴속의 모든 것들이 신을 짓는 작업을 하고 있는 순간들인지도 모릅니다 63

 

일곱 번째 편지

 

자신의 작품을 남이 쓴 글씨체로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당신에겐 중요하고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67

 

자연 속의 모든 존재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자라며 자신들을 방어하고 또 안으로부터 제 특징을 만들어내며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리고 어떠한 저항에라도 맞서면서 그와 같은 고유성을 지키려고 합니다 67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그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 중에서 가장 힘든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최후의 과제이며 궁극적인 시험이자 시련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작업입니다. 다른 모든 작업은 사랑이라는 작업을 위한 준비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68

 

사랑이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강도 높고도 심오한 고독이니 것입니다 68

 

아직 순화되지 않은 존재, 마무리되지 않은 존재, 아직 독립하지 못한 존재끼리의 합일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69

 

사랑은 개인이 성숙하기 위한, 자기 안에서 무엇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즉 상대방을 위해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숭고한 동기입니다 69 ★★ _ 아이에게 더 나은 인생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사랑은 부모 자신의 인생에 대해 돌아보며 스스로 최선의 존재가 되기 위한 숭고한 동기입니다.

 

융합과 헌신과 모든 종류의 유대는 마지막에 올 궁극적인 것으로서, 이것에 도달하기에는 지금까지의 우리 인간들의 삶이 아직도 충분치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69 _ 아직 聖化되기엔 이르다는 말씀!!

 

이 반씩 부서진 존재의 더미를 그들은 유대라고, 실제로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행복이라고 또 그들의 미래라고 부르지요. 따라서 그들 각자는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며 나아가서 앞으로 그들에게 다가올 다른 많은 사람들을 잃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드넓은 공간과 많은 가능성을 잃는 것이며, 조용히 오가는 예감에 찬 것들을 포기하고 그 대신 결실도 없는 당혹감을 사는 것입니다 70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서로의 경계를 짓기도 않고 구별하지도 않게 된 그들이,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고유성을 더 이상 지니지 못하게 된 그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들로부터, 이미 막혀버린 고독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71 _ 완전 동감!!

 

우리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어려운 작업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요구들은 그 덩치가 너무 큰 것이어서, 초심자에게 불과한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약 이것을 견뎌낸다면, 다시 말해서 우리의 현존재의 가장 진지한 진지성을 가려버리는 모든 쉽고 경박한 놀이에 자신을 잃는 대신에 이러한 사랑을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으로서 그리고 수련기간으로서 받아들인다면, 우리 다음에 올 세대들은 약간의 진보와 마음의 경감을 느낄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이것만 해도 커다란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3 _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나다운 유산

 

처녀와 부인들은, 그들이 새롭고 고유하게 발전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저 잠깐 동안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남성들의 방식의 모방자가 될 것이며 남성들의 여러 직업들을 그대로 반복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불완전한 과도기가 지나가고 나면, 여인들이 그처럼 수없이 많이 변장을 했던 것이 결국에는 남성의 잘못된 영향으로부터 그들 자신의 가장 고유한 본질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이들의 내면에는 삶이 훨씬 직접적이고도 생산적이고 훨씬 신뢰감 있게 머물며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훨씬 성숙하고, 자신의 육체의 열매의 무게에 눌리며 삶의 표면이 아래쪽으로 들어가보지 못한 가벼운 남자들보다 훨씬 인간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음에 틀림없습니다...줄곧 고통과 굴욕을 견뎌온 이 여자라는 인간은 자신의 외적인 지위의 변화를 통하여 단지 여자일 뿐이라는 인습을 떨쳐버리는 날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자라는 인간이 가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남자들은 그때가서 깜짝 놀라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언젠가 여자들의 명칭이 더 이상 단순히 남성의 반대쪽을 나타내지 않고 그 자체로서 무언가를 나타내는, 즉 보충과 한계가 아니라 삶과 존재를, 즉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생각게 하는 처녀들과 부인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전이...사랑의 체험을 더 이상 남자 대 여자의 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다 인간적인 사랑- 한없이 사려가 깊고 그윽하며, 묶고 푸는 것이 멋지고 분명한 사랑-은 우리가 지금 온갖 노력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사랑을 닮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인격)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사랑입니다 75 ★★★ _ 여자라는 인격의 발달 목표 및 과정. 여자가 남자를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중의 하나가 바로 엄마라는 역할 체험이 아닐까. 내가 만약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자가 될 수 없게 한 운명에 대한 피해의식을 벗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릴케에 의하면 엄마가 되지 않고도 인간이 되는 처녀들의 케이스도 있다는 애긴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여덟 번째 편지

 

미래가 한참 나중에 가서 일어나기 앞서 우리 가슴속에서 모습을 바꾸어 존재하기 위한 것입니다 82

 

우리가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더 조용해지고, 더 인내심을 갖고, 더 마음을 열수록, 새로운 것은 그만큼 더 깊고 더 확실하게 우리의 가슴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만큼 더 훌륭하게 우리는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그만큼 더 많이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 됩니다. 그러다가 미래의 어느 날 그것이 이루어지면’ (즉 그것이 우리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로 가면), 우리는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그것과의 친근감과 가까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낯선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것이었던 것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83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깥으로부터 우리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83

 

미래는 확실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84 _ 동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는, 어떤 새롭고 예측 불허의 체험을 마다하려는 우리의 소심한 마음도 거기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이 세상의 그 어느 것 하나, 이를테면 불가사의한 것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사람만이 상대방에 대한 관계를 무언가 생동감 있는 것으로서 체험하고 또 그 자신의 현존재의 샘물을 남김없이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86 _ 아직은 아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데 방해가 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나와 가족.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 이 두 개의 물동이가 안정적으로 채워지고 난 이후 그 다음을 욕심내도 결코 늦지 않다. 아니 늦는다고 하더라도 아쉽지 않다.

 

늘 어려운 쪽을 향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서 우리가 우리 삶을 이룩해나간다면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낯설어만 보이는 것도 우리에게 더없이 친숙하고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87

 

우리 삶의 모든 용들은 언젠가 우리들의 아름답고 용기 있는 모습을 보고자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공주들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무서운 것들은 그 가장 깊은 본질에 있어서는 우리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난관에 빠진 존재들인지도 모릅니다 88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으며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을 뿐더러 당신을 손에 꼭 쥐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삶은 당신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그 무엇이든 동요와 고통과 우울을 배척하려 하십니까? 이러한 상태들이 당신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당신은 정말로 모르시나요? 88 _ 이제 알아요. 그리고 믿어요. 릴케!

 

당신은 환자처럼 인내심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회복기에 있는 사람처럼 확신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지금 상태는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당신은 자신의 몸 상태를 감시해야 할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병이든 의사가 손을 쓸 수 없이 마냥 기다려야 하는 많은 날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병을 치료할 의사로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보다도 바로 이것, 즉 가만히 기다리는 일입니다 89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부터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그것을 그냥 일어나는 대로 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과거를 너무 쉽사리 질책의 눈길로 되돌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과거는 지금 당신이 마주치고 있는 그 모든 것에 나름의 몫을 갖고 있습니다 89

 

나쁜 행동을 표현하는 명칭이 종종 한 인생을 망쳐놓은 경우를 봅니다 90 _ 그러니 말 조심하자.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말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말자.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나는 이제 그 인생이 위대한 것을 넘어서 더 위대한 것을 꿈꾸는 것을 봅니다. 바로 이 이유로 인해서 그 인생은 힘들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또한 그 인생은 성장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91

 

당신을 이렇게 위로하려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나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 역시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뒤쳐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91

 

아홉 번째 편지

 

당신이 한 말들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타고난 회의적 기질이라든가 외적인 삶과 내적인 삶을 조화시키지 모하는 당신의 무능력, 그 밖에 당신을 압박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예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것들 뿐이니까요 95

 

마음속에 늘 충분한 인내심을 지니십시오. 또한 소박한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어려운 것을 더욱 더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당신의 고독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고는 삶이 당신에게 벌어지는 대로 놔두십시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삶은 어떤 경우에도 옳습니다 95

 

잘 훈련만 시킨다면, 당신의 회의도 당신의 훌륭한 특질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면 회의가 파괴자에서 당신의 가장 훌륭한 일꾼중의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마도 회의는 당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든 일꾼 중에서 가장 현명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96

 

열 번째 편지

 

큰 믿음과 끈질긴 인내심을 가지고 그 웅장한 고독이 당신에게 작용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뿐입니다 101 _ 내면의 목소리가 네게 들려주는 소리를 믿고 따르라. 제대로 들은 것이 분명하다면 안에서 본 그림은 반드시 밖에서도 볼 수 있게 되리니.

 

나는 당신이 그처럼 굳건하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실존을, 다시 말해 당신의 호칭과 제복과 직무를, 그 모든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어느 정도 제한된 현실적인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그런데 그처럼 제한된 현실적인 것 역시 마찬가지로 고립된 적은 수의 병사들로 이루어진 부대의 상황에서는 진지성과 필연성을 띠게 되며 군인이라는 직업이 갖는 표피성과 시간 때우기의 성격을 넘어서서 깨어 있는 헌신을 의미하고 또한 독자적인 주의력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계발시켜 줍니다 102 _ 아이와 집이라는 명징한 실존이 내게 예술이 되는 과정도 꼭 이러하였으리라.

 

예술 역시 삶의 한 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아가느냐에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술을 준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비현실적이거나 예술적인 직업들보다는 차라리 현실적인 직업을 갖고서 우리는 예술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102 _ 엄마’. 지구상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예술 친화적인 직업. 결국 이 글 전체는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예술가 지망생을 위한 편지였던 거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연보

 

릴케는 어머니의 지나친 종교적 가식성에 끝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103 _ 모자간이란 이리도 꼬이는 수가 있는 인연이구나.

 

남편의 직업상의 실패가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소녀 같은 허영에 들떠 있던 릴케의 어머니에게는 참아내기 어려운 실망의 근원 104

 

초기의 출간물들에 대해 릴케는 나중에 자신의 미숙함을 이유로 후회한다 106 _ 완전 이해됨!!

 

살로메는 바로 릴케 자시니 꿈꾸던 유명한 저술가였고, 게다가 세상일과 정신세계에 밝았으므로 릴케는 자연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맨 처음에는 두 사람 사이는 단순한 애정관계에 지나지 않았으나, 점차 정신과 영혼을 나누는 벗의 관계로 발전한다 107 _ 남자 대 여자의 관계에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승화했다는 의미? 꼭 이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아니 그들은 정말 그런 관계의 진화를 거친 걸까? 적어도 살로메의 입장에선 이 관계는 처음부터 인간 대 인간의 관계였을 듯하다. 어쩌면 살로메 입장에서 그 관계는 처음부터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22살의 혈기 왕성한 릴케로선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평생 동안 우정관계를 유지하며, 루는 릴케의 삶의 여러 사적 문제에 있어서 어머니와 같은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 107 _ 루에게 이런 여유가 있었던 건 진짜 엄마역할을 면제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나정도 스케일의 인간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도량을 가진 인물이었던지.

 

<피렌체 일기>는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루 살로메에게 인정받아보려던 시도의 하나였다 108 _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충고를 남긴 릴케도 어쩔 수 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던 거다. 처음부터 가이드 없이 개별행동은 위험하다. 릴케가 5년 후 후배 시인에게 그런 충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살로메라는 훌륭한 가이드와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개인적으로 살로메가 릴케에게 더 이상 자신의 인정 없이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는 바로 그 점이 가장 그녀다운 매력이 아닐까?

 

평신도가 보통 하루 일곱 번 정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기도...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예술 행위의 종교적 치열성을 강조하고, 나아가서 자신의 작품이 통상적인 시집으로보다는 성경 같은 종교서적처럼 독자의 손에서 떠나지 않고 읽히기를 바란다 111

 

인생의 계절에 따라 읽는 릴케의 편지

 

루 살로메, 톨스토이, 로댕, 발레리 등의 중요한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창작의 매 시기마다 개성 있는 독특한 시세계를 만들어냈다 123

 

평생을 모름지기 순순한 시인의 자리를 지키려는 열망에 끌리어 삶과 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숱한 모순의 삶을 살다간 그 124

릴케는 작업을 향해 무한대로 열려 있는 저녁 및 밤 시간과는 달리 하루 중의 오전 시간을 편지 쓰는 시간으로 잡아 평생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쓰면서 살았다 124

 

저는 편지를 아직도 인간들 사이의 가장 멋지고 풍요로운 교제 수단으로 생각하는 구시대풍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125 _ 동감!!

 

편지 쓰기는 그에게 그 자신의 사고의 편린들을 상대방에게 토로하는 마당이 되어 주었다. 특히 편지라는 표현 수단은 외적 발산과 행동보다는 내면성에 경도된 그의 소질 및 세계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독한 한 개인인 그에게 인간적인 소통을 가능케 해주었으며 시적 창조가 침묵과 고갈의 궁지에 빠졌을 때 창작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연습의 장이 되어주었다 125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03년부터 1908년까지(28~33) 인생과 문학과 관련하여 자신의 고민을 물어 온 카푸스라는 문학 지망생에게 보낸 총 10통의 편지로서 릴케가 세상을 뜬 뒤인 1929(21년만에) 카푸스에 의해 한권의 책으로 출간 되었다 126

 

예술을 향한 열망과 현실적 삶 사이의 방랑의 과정 126

 

사랑과 성, 고독, 죽음, 예술 그리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존재 이유 등의 문제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생각을 펼쳐 보이고 있는데, 그와 같은 테마들은 사시 당시의 릴케가 이미 성취한 것이라기 보다는 외적인 계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스스로 되뇌어 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편지를 처음 썼을 때의 릴케의 나이는 28살이었기 때문이다 127 _ 이 글이 읽을 만한 가치를 갖게 된 것은 28살의 릴케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던 생각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지어낸 그의 삶 덕분이다. 만약 그가 릴케로서의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면 그가 제아무리 그럴 듯한 말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굳이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이 만들어낸 행동만이 온전히 나에 속할 뿐임이 다시 한번 분명해지는 순간이 아닌가?

 

그에게 있어서 참된 것은 쉬운 것 혹은 가벼운 것에 매달리지 않고 어려운 것 혹은 무거운 것을 향하는 데 있다 127

 

사랑에 있어서는 소유를 배제한 소유하지 않는 사랑의 개념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여성을 남성을 위한 하나의 보충물로 보는 사회적 인습을 파괴하려는 그의 여성해방의식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그 근저에는 모든 외적인 방해물들로부터 자신의 예술세계를 방어하려는 독특한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 128

 

우리의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사랑입니다 128

 

고독을 강조하는 그의 생각의 바탕에는 하나의 개체로서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식이 숨어 있다 128

 

모든 것의 자체 목적성에 대한 존중은 릴케의 기본적인 자세 129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인생, 나의 아내,

나의 개, 나의 아이라고. 하지만

인생, 아내, 개 그리고 아이의 이 모든 것이

맹인처럼 손으로 더듬어 볼 뿐인

낯선 형상들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129

 

그는 신을 기독교적 전지전능의 신으로 바라보지 않고 미래에 생겨날,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언젠가 궁극적으로 현시될 존재로 표현한다 129 _ 그에게 이란 인내와 믿음으로 자기라는 질료에서 찾아내야할 궁극적 존재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현존재를 되도록 폭넓게 생각하여 그 속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통합적 세계관 131

 

제도권을 떠나 국외자로서 진정한 자리를 찾아 자신의 삶을 마치 수도사처럼 추구해간, 혹은 추구하려 한 시인의 각고의 인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이 같은 그의 자세는 젊은이들이 품게 되는 삶의 모든 고민들을 풀 수 있는 하나의 보편화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31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잠시 진지한 성찰을 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그러한 성찰이 또 하나의 훌륭한 시인을 낳을지도 모른다 132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이나 인생의 고민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충고자의 역할을 하면서 매년 판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인의 필독서.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한 릴케의 마음의 소리는 늙고 젊음을 떠나 인생의 매 계절마다 우리에게 찌는 듯한 고뇌의 열탕 속에서도 참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처럼 시원한 기운을 선사해주리라 믿는다 133

 

3. ‘내가 저자라면’ 

 

저는 편지를 아직도 인간들 사이의 가장 멋지고 풍요로운 교제 수단으로 생각하는 구시대풍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10통의 편지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의 깊이가 엄청나다. 릴케가 왜 편지라는 매체에 그리 집착했었는지 너무나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름의 흥취가 있기는 하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한계가 있다.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글이라면 한 눈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당황할 것 없이 자신의 리듬에 따라 곱씹어 소화할 수 있지만 말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듣는 이 입장에선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 아닐 수 없고, 혹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머릿속의 안개를 한방에 걷히게 해줄 만큼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즉석에서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궁금증을 차근차근 다 해결해주는 친절한 상대를 만났다 해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은 속이 시원할 수 있으나 그사이에 원래 이야기는 그 흐름을 잃게 마련이니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모두 바짝 긴장하지 않고는 그저 그런 수다의 경지를 넘어서기가 쉽지가 않다. 게다가 눈앞에 상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메시지를 냉정히 소화하기 보단 감정에 휘말리기가 쉽다. 그러니 대화란 깊은 메시지를 주고 받기엔 그다지 유용한 의사소통법은 아닌 듯하다.

 

릴케에게서 받은 열통의 편지는 편지가 이런 나의 갈증을 해소하는데 얼마나 유용한 소통법인가를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 친구 엄마들과 보내는 시간이 드라마틱하게 늘어났다. ‘오늘 저녁 반찬은 뭘로 해야할지 모르겠다거나 누구네 엄마가 어쩌구 누구네 아이가 어쩌구하는 소재에 그럴싸하게 맞장구를 치기가 만만치 않았으니 어찌어찌하여 모임의 주제가 으로 흘렀을 땐 일어나 만세 삼창이라도 부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내 마음이 그러했으니 어떻게든 분위기를 붙잡아두려고 나도 모르게 안간힘을 쓰기도 했겠지. 그런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엄마 자신과 아이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는 엄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얼마나 성실히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겠는가? 여기까지는 나무랄 데 없는 진행이었는데...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네트워크는 자연스레 점조직의 모습을 띠게 되었고, 디테일만 조금씩 다를 뿐 같은 내용의 드라마를 몇 번이고 듣고 또 들으며 역시 비슷한 반응을 천연덕스럽게 재연해야하는 난처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더 좌절스러운 것은 이놈의 대화라는 것이 아무리 시간을 들이 퍼부어도 좀처럼 진도가 나갈 줄을 모른다는 것. 그녀들의 고민에 너무나 공감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아이 친구 엄마 기분을 상하게 했다간 우리 아이에게 혹여라도 해가 되지 않을까하는 어미의 소심증에 이래저래 추임새도 넣고 거들기도 하다보면 어느샌가 이야기는 이름 모를 산에서 조난을 당하고 마니, 그녀들 입장에서도 수확이 없기는 별반 다를 것도 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내 품을 빠져나간 피같은 시간들은 대체 누구를 위한 제물이었단 말인가? 이쯤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받은 릴케의 편지.

 

그녀들을 정말로 돕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이젠 그만 중심을 잡고 당신자신으로 돌아 오십시오.  당신 역시 고독으로만 충만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6개월 당신이 보여준 헌신은 '기적'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아니었다면, 아이에 대한 어미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녀들의 아픔에 대한 진한 공감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노력'이었음을 나는 압니다. 한번은 체험해 볼 가치가 있는 노력이었다는 것도요. 하지만 이젠 그만 당신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당신께서 가장 분명히 느끼고 있을 겁니다.  당신을 믿어주는 그녀들을 정말로 위한다면 이젠 가장 당신다운 모습을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요?

 

그녀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편지에 담아보세요. 기왕 자기의 기록을 만든 팀에겐 각자의 사례를 바탕으로 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보내고, 새로 시작하는 팀은 진행하는 과정에서 궁금한 사항을 그때 그때 받아 정리해 주는 겁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그녀들에게 새로운 어휘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감정이입은 텍스트가 자기 이야기로 이해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자신들이 표현했던 어휘로 설명해줘야 상황에 직면하는데 저항이 덜하기도 하구요.  그러니 2012기년 하반기 세상이 당신에게 준 미션은 당신의 언어를 그녀들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것인 셈이 되겠네요.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통역이 아니라 번역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지금은 글에 집중할 때입니다.  바로 그것만이 모두를 살리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당신 자신에 대한 신뢰를 보여줄 때라는 것도.

 

 

더없는 믿음을 담아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IP *.1.160.49

프로필 이미지
2012.10.06 05:27:49 *.128.229.197

오,  재미있게 읽고 있구나   책 갈피 마다 그 속에서 너를 찾아 보려는 시선이 좋다. 

프로필 이미지
2012.10.06 08:04:23 *.226.203.100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32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file [1] id: 깔리여신 2012.10.02 4440
1631 기억, 꿈, 그리고 사상 [1] 레몬 2012.10.02 2412
1630 #22. 기억 꿈 사상_카를 융_Review 한젤리타 2012.10.02 3172
1629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file [13] 장재용 2012.10.02 5634
1628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file 세린 2012.10.02 4543
1627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Review [2] 학이시습 2012.10.02 4822
1626 # 22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file [3] 샐리올리브 2012.10.02 4804
1625 #22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서연 2012.10.02 3851
1624 기억꿈사상 - 카를 융 콩두 2012.10.02 3306
» [고전읽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2] 미옥 2012.10.04 14928
1622 #23. 기억 꿈 사상_카를 융_Review_두번째 [1] 한젤리타 2012.10.07 3118
1621 사기열전2 -김원중 id: 깔리여신 2012.10.08 4604
1620 #23_카를 융 기억 꿈 사상. 두번읽기 [14] 서연 2012.10.08 4232
1619 회상, 꿈 그리고 사상 2 레몬 2012.10.08 2272
1618 (두번읽기) 기억꿈사상 - 칼 융 file [1] 콩두 2012.10.08 4615
1617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자서전) 두번읽기 file [5] 장재용 2012.10.08 6622
1616 #23_카를 융 기억 꿈 사상. 두번읽기 file 샐리올리브 2012.10.08 3422
1615 [두번 읽기]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세린 2012.10.08 2663
1614 기억 꿈 사상. (두번읽기) file 학이시습 2012.10.08 3164
1613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 한 데까지 올림. 이번 주는 쉬겠습니다. [1] 레몬 2012.10.16 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