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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08시 3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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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일이 끝나자, 시계는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숙소로 가서 잠을 자기에는 너무도 피곤한 하루였다. 사무실 3층에 있는 숙소로 올라갔다. 창문을 열었다. 조금 전 보았던 미생물이 살고 있는 반응조가 보였다. 사방이 조용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만 홀로 불을 켜고 어두운 산을 밝히고 있었다. 이전에는 어둠 속에 혼자 있지 못했지만, 현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익숙해졌다.

 나는 숙소 벽에다 현미경에서 찍은 미생물 사진들을 붙여 놓았다. 무섭게 생긴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예뻐하는 친구가 아스피디스카였다. 나는 그냥 '아스피'라 불렀다. 아스피 사진이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자리에 눕자마자 나는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 누가 나를 부르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스피가 날개 짓을 하며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현미경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 아름답다"

 그러자 아스피가 대답했다.

 "고마워, 난 네가 더 아름다워"

 "아냐, 난 보잘것없는 똥쟁이야, 똥물이나 뒤집어쓰는 실수투성이. 너처럼 자유롭게 날지도 못해"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 모습이 아름답다고 한 것은 네가 처음이야, 사람들은 징그럽다고 말하거든"

 그의 날개 짓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현미경 렌즈에서 너의 눈을 보았어, 따뜻했어"

 "나도 그래, 너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았어, 마치 거울을 보듯이 말이야"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마음이 문이 열린 거야"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모든 미생물은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너도 이제 한마음이야. 나를 생각하고 있으면 언제나 너의 마음 속에 있을 거야, 나를 찾으면 내가 그 곳에 있을 거야" 문득, 나는 거미줄이 떠올랐다.

 "거미줄에 글자가 보였어, 무엇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

 "그 대답은 네가 가지고 있어" 그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현미경 속에 미생물들이 보이지 않을 때, 조심해!" 그의 목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누군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김반장이었다.

 "똥쟁아, 일어나라 해 떴어" 아직도 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어제 늦게까지 일한 모양이구나, 소장님이 찾으시니깐 정신차리고 사무실로 내려와"

 ", 알았어요" 조금씩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10

 

 현장으로 들어오는 폐수량이 계속해서 증가했다. 처음에는 분뇨가 들어왔다가 점점 농도가 높은 축산폐수가 반입되었다. 신 소장과 김 반장은 오랜 회의 끝에 폐수처리가 잘 되는 곳에서 분해 능력이 좋은 미생물을 받아오자는 결론을 내렸다.

 "미생물 상태가 이대로 지속되면 큰일이야" 신 소장은 연거푸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한기사 생각은 어때?, 튼실한 미생물들이 필요하지?"

 ", 지금 관찰되는 것으로 봐서는 폐수량을 줄여야 하는데, 그러면 공사기간이 늘어나서 힘듭니다"

 "다른 곳에서 미생물을 받아서 넣어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곳 현장에서 3시간 정도 거리인데, 김 반장과 함께 다녀와"

 "문제는 분뇨차를 직접 타고 다녀와야 하는데, 괜찮겠지?" 김반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똥쟁아, 지난번에 똥물 세례 받고 이번에는 똥차까지 타보네"

 '저 놈의 주둥이를 닫아버릴 방법이 없을까'

 

 

 점심을 먹고 김반장과 함께 분뇨차에 올라탔다. 분뇨차는 녹색 탱크 위에 푸른색 뱀을 얹고 도로 위를 달린다. 분뇨차 주변에는 차들이 붙지 않는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열려진 창문도 금새 닫아버린다. 똥이 떨어져 묻을까, 냄새가 차 안으로 들어올까, 노심초사다.  차들은 서둘러서 방향 등을 반짝거리며 차선을 바꾼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아니어도 신속하게 양보해주는 차들이 고마운 것 보다,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김반장은 익숙한 상황인 듯 양보해주는 차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김반장의 웃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분뇨차에 앉아 있는 동안, 김반장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 동안 궁금했던 그의 삶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김반장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 년에 쉬어본 날이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지내왔다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이내 한 숨을 내쉬었다. 일에 대한 욕심으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었고, 4년 전에 중학생 딸 아이의 갑작스런 가출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고 했다. 몇 일 뒤, 아이는 돌아왔지만 결국 별거를 하게 되고, 지금도 아내와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창문 밖 홀로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잠시 뒤에 뒷주머니에 수첩을 꺼내고는 함께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세 식구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펴 있었다.

“딸 아이가 벌써 대학생이야, 요즈음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산다

“어때, 이쁘지?"

 김반장의 왼쪽 팔을 붙잡고 활짝 웃고 있는 딸아이의 얼굴을 엄지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가운데, 김반장은 차츰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미생물은 분뇨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분뇨차를 타고는 식당에 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야 했다. 휴게소는 저녁 식사를 먹으러 온 차들로 붐볐다. 김반장은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대형 버스 옆에 주차했다. 차문을 열고 내리려는데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 승객이 경멸의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머리에 누런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재수없게! 옆에다 주차하고 그래, 어휴 냄새야!

'지들이 싼 똥을 더럽지 않고 남의 똥은 더러운 가 보다'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더 더러웠다.

‘뭘 보니, 니들은 똥 안 싸니 속상했다

 밥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멀찌감치 앉아서 밥 먹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누런 빵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마치 똥을 머리 위에 얹고 밥 먹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김반장 얼굴에 밥풀이 튀었다.

 

 

 김반장은 피곤하다며, 운전대를 나에게 맡겼다. 밤 늦은 남해안 고속도로는 군데군데 가로등만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한적한 곳이어서 잠이 쏟아졌지만 바람이 분뇨차를 차선 밖으로 밀어낼 기세였다. 조금씩 차가 흔들릴 때 마다 머리를 흔들며 잠을 쫓아냈다. 이런 상황도 모른채 김반장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내리막길 커브길 이었다. 차선 중앙에 희미한 빛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면서 깜빡깜빡 거리며 다가오는 느낌이 불길했다. 바람은 더 세차게 불었다.

 '차에서 나오는 전조등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본능적으로 헤드라이트에 손이 갔다. 올리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도로 중앙에 뒤집어진 중형차 한대였다. 온 몸으로 강력한 전류가 흘렀다. 심장이 미친듯했다.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너무 세게 밟았는지 차가 휘청거렸다. 사고 차 앞에 멈춘다는 것은 이미 늦었다. 반사적으로 핸들을 우측 갓길 쪽으로 급하게 돌렸다. 뒤집어진 차를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제서야 김반장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차문을 열고, 사고 난 차량을 바라보았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뒤집어진 차는 흔들거렸고, 그 밑에서 사람의 손이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앞서가던 차량이었다. 김반장은 앞으로 가서 다른 차를 세우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사고차량으로 달려갔다. 피 묻는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끌어내고 있는 김반장을 뒤로 하고, 나는 도로 위를 달렸다. 2차 추돌을 막아야 했다. 김반장과 운전사를 함께 살려야 했다. 사고차량과 10M 간격을 두고는 멈춰 서서 윗옷을 벗었다. 옷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겨울 바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내리막길 고속도로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미친 듯이 옷을 흔들며 소리쳤다.

 “멈춰요!, 멈춰!

 버스 한대가 멀리서 상향 등을 비추며,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소리는 가슴을 콩알만큼 오그라트렸다. 앞서 내가 그랬듯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을 힘껏 내밀었다. 손 끝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어제 꿈에서 보았던 '아스피'가 떠올랐다. 순간 바닥에서 발이 떨어진 느낌과 함께 버스의 브레이크 소리가 멈추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버스 기사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미쳤어, 죽을려고 환장 했구만"

 버스 기사는 안전벨트를 풀고 버스 출입문을 열었다. 버스 승객들도 함께 내렸다. 조금 전 휴게소에서 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 어깨 너머 뒤집어진 차량을 보고는 그제서야 위급한 상황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모두들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나는 다시 버스 뒤로 뛰어갔다. 다음 차를 세워야 했다.

 누군가 내 뒤를 따라 오는 것 같았다. 휴게소에서 본 누런 빵모자를 눌러 쓴 사람이었다다른 승객들도 내려서는 나와 김반장을 도와주었다. 그 뒤로 십 여대의 차량을 세운 뒤에야 경찰이 도착했다.

 “내가 운전했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죽거나 병원에 있었을 텐데 김반장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사고 수습을 마친 경찰관이 버스 승객들과 함께 서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뒤집히면 대부분이 2차 충돌이 나는데 정말 천운입니다.

 경찰관의 이야기를 들은 버스 승객들이 나를 보며 박수 쳤다. 갑작스런 환호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런 빵모자 쓴 승객이 다가와서는 내 어깨를 잡았다.

 

 

'하라' 글자 앞에 보이지 않았던 '' 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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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08:41:42 *.217.210.84

메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 보면 네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아마 읽어 봤을거야.

비단 물뿐이겠나 싶어.

일에 미쳐있다보니 어느날 딸이 가출을 하고...정신을 차렸다.

돌아오는 딸과 가까워지지 않는 아내. 피로 연결된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의 미세한 차이가 사실은 아주 크더라.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과제가 인생에 젤로 큰 과제라는 생각이 들어.

신체건강 마음건강 관계건강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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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1 20:42:51 *.70.11.118

꼭 읽어보겠습니다. 누님,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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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0 13:25:49 *.114.49.161

파우스트에 나왔던 저 말 '너 참 아름답구나' 을 미생물과 주거나 받거니 하네요. 

엄지로 사진을 쓸어보는 김반장이 그 장면에 또 있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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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1 20:45:27 *.70.11.118

현미경을 보고 있으면 미생물이 저에게 말을 걸어와요,

혼자 외로울 때 그 녀석들과 대화할 때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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