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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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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8일 00시 00분 등록

*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김미영 님의 글입니다.

 

남편, 학원에 언제까지 나간다고 했지?

어? 글쎄. 언제더라? 음……. 이번 달까진 가봐.

뭐할지 정한거야?

아니, 몰라.

뭐야? 괜찮은 거야?

 

잊고 있었다. 남편이 또, 실업자가 된다. 생각하면 답답하고 답도 없고 해서 지우려고 애썼나보다. 남편 속이 더 시끄럽겠지 싶어서 말도 아끼다, 그러다 남의 일처럼 잊고 지냈더랬다. 그새 내 일이 되어버렸는데도 말이다. 몇 달 전, 지나가는 소리로 한 걸 기억하고 있던 친구가 오히려 걱정이 태산이다. 에구, 미안해라.

 

그냥 내가 벌지 뭐. 지금 하는 일 계속 해야지. 힘들어. 힘든데, 매일 그만두고 싶은데, 어떡해? 할 수 없잖아. 해야지. 미련하게 살아야지. 마흔 넘게 지금까지 이러고 온 거보면, 미련한 거 이것도 내 재능인 것 같아. 그러니 그냥 살아야지 어쩌겠어. 이젠 별로 화도 안 나고 그러네. 도 닦였나봐. 남편은 역시 참 고마운 사람이야, 그치?

 

삶에는 이런 계산도 있대. 죽기 전에 한 번 더 사랑하고 싶다거나, 이것이 마지막일 테니 맘껏 사랑해보자거나. 물론 한때는 그랬지. 에게 이게 뭐야, 고작 이게 다야, 그럴 리가 없어, 영화 같은 로맨스는 아니더라도 이건 아니지, 얘랑 아니라면 어딘가 있을 거야, 찾고 말겠어, 그랬지. 하지만 지금의 난 후자야. 지금 이 사랑, 잘하고 싶어. 그냥 그러고 싶어.

 

내가 피렌체에 왜 그토록 가고 싶은지 알아? 그때, 처음 그곳에 갔을 때, 한나절밖에 머물지 못했기 때문이야. 유럽의 다른 도시들 다 놔두고 유독 피렌체만 다시 가고 싶은 웃기는 이유라고. 내가 그런 애더라니까. 제대로 해보지 못한 걸 붙잡고 살더라고. 사랑이라고 다르겠어? 그리고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사랑하게 된다는 거, 그렇게 좋은 게 공짜일리 없잖아.

 

‘좋아해’와 ‘사랑해’의 차이, 알아? ‘좋아해’는 웃는 날이 많고, ‘사랑해’는 우는 날이 많대. 나 이 얘기 듣고 멍했었어. 정신 차리고 가만히 나를 돌아보니까 아차 싶더라고. 그러고 보면 나 지금 사랑하고 사는 거 맞아. 근데 이 눈물이, 음, 어떤 맛이냐면, 반짝반짝 빛나는 맛이야. 아, 내가 진짜 얘를 좋아하는 거 맞구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구나, 뭐 그런.

 

우리 남편, 그 사람, 참 착해.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야. 그래서 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힘들 수밖에 없어. 고쳐보려고도 해 봤지. 시어머니도 못한 걸 내가 하겠다고 덤볐다가 감당 못하고 포기했지만 말야. 그건 내 몫이 아니더라고. 내 몫은 선택뿐이었어. 싫으면 관두거나 있는 그대로 살거나. 그래서 독한 맘, 먹어봤지. 아프지도 않고 아깝지도 않은 잘려나간 손톱같이 외면할 수가, 없더라고. 어쩔 수 없었어. 들고 있으면 팔 아픈데 내려놓으면 맘이 아픈, 그런 사람이더라고. 아웅다웅 싸우다가 그 사이에 나이만 더했지 뭐야.

 

너무 걱정 마. 네게 괜한 얘길 해서 미안하네. 잘 되겠지 뭐. 아님 말고. 내가 선택했으니 내 선택, 내가 감당해야 하지 않겠어? 그것도 또 내 재능이잖니. 그나마 다행이지? 참, 오늘 아침에 남편이랑 무슨 얘기 한 줄 알아? 우리가 돈을 쌓아놓고 산다면 어떨까 물었더니 글쎄 지금처럼 친하게 지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더라. 이 결핍이, 우리에겐 선물인 모양이야. 가끔씩 우연찮게 배달되는 인생의 택배, 뭔가 또 도착했네. 어쩌겠어, 받아야지. 그리고 잘 풀어봐야지.

 

이 나이에 징징거리기엔 너무 쪽팔리잖아.

 

- 김미영 mimmy3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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