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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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펜을 들어라
그저 그런 생이고 기반 없는 작가이므로 세상에 선보일 첫 이야기를 써내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어설프게 읽어 내린 남의 사상이나 철학, 사유, 지식들을 가져와 내 글에 슬그머니 밀어 넣고 내 것인 양 하는 것도 거북살스럽다. 말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아 적절한 주장이 없고 두서 없이 중언부언 하는 바람에 훌륭한 인용구가 오히려 조악한 글 가운데 군계일학이 되어 버린다. 아직 준비가 덜 되고 공부가 부족하여 '작가'라는 아이덴티티는 언감생심이다. 신화에서도 이런 어설픔을 엄중히 경고하고 경계하라 일렀다. 준비되지 않은 자가 신을 알현했을 때의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예가 드물지 않았다. 일개 사냥꾼에 지나지 않는 악타이온이 달의 여신 디아나를 훔쳐보고 결국 사슴이 되어버렸고 태양신의 태양수레를 끌다 벼락을 맞고 불덩어리가 되어 떨어진 파에톤이 그랬다. 모르긴 몰라도 나 또한 이와 같이 일천한 채로 작가 양 한다면 어느 순간 유피테르가 나타나 내 삶에 어떤 번개를 내리칠 지 모를 일이다. 불안장애를 겪고도 남아야 할 터.
그렇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써야겠다. 생각의 한편은 이렇다. 세련된 사유나 철학, 지식들이 세상을 지배하지는 않(았)고 미끈한 문체라야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법은 없다. 외려 이러한 문화적 권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아마추어적 광기가 세상의 '보편'이 설명하지 못하는 '개별'을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긴 대로 지껄일 수 있는 것은 천박함이 아니라 다양성에 기댄 가능성이 아니겠는가. 혼을 빼놓는 프로 명강사의 강연은 그 감흥이 채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눌한 시골 촌로의 촌철살인은 생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쓰기로 한다.
하지만 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막막하다. 깊지 못한 내 삶과 얄팍한 지적 수준이 우선 시작도 전에 발목을 잡아챈다. 이때 깊은 쉼 호흡 몇 번이 필요하다. 부끄럽고 두렵지만 한 번 해보자는 전의를 위해, 무릎이 벌벌 떨리지만 눈 딱 감고 내딛을 그 한 발을 위해. 그래, 세상에 나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첫 이야기는 나 자신이다. 나의 이야기를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적 스토리를 애써 지어내지 않아도 되고 잡히지도 않는 존재의 근원을 헤매는 철학적 사유도 필요 없는 나, 비루하고 자랑할 것 없지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내 자신의 이야기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면 내 지각이 있고 난 다음부터 나를 가장 뜨겁게 휘어 잡았던 산을 벗어날 순 없을 터다. 그래서 '나의 산'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그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산'이 있다. 나는 쓰기로 했다. 나 자신에 대해 쓰기로 했고, 나의 산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세히 알고 있는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닌 인간,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나의 이야기에 담겨지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넘은 산들을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영원히 말하여 질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아마 이것이 나에게 '가장 높은 산'이 되지 않겠는가. 만년설의 새하얀 준봉들 사이에서 단번에 압도당했던 만큼의 짓누름에 숨이 막혀 온다. 이제 시작인 것 같기도 하다. 다소 자기기만적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스스로 묘사해 봄으로 다음 주 이 칼럼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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