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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8일 10시 18분 등록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 236p)

 

 

이 문장을 보며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가정은 사연으로 작동합니다.’

브라질에서 남편을 도와 목회를 하며 가족치료학을 전공한 도은미 사모의 세미나 제목이었다.

그녀 역시 한도 많고 탈도 많은 가정에서 태어나 15세에 브라질에 이민을 가 우여곡절 끝에 상담 공부를 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난 늘 늦게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잘 모르겠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우리의 만찬은 그나마 토요일 저녁이나 주일 저녁이었다. 그것이라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난 대학교 2학년 이맘때 학교 채플 앞을 지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아! 우리 집은 엄마가 우리들을 혼자 키우셨네? ” 우리 4남매의 양육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는 생각이 난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왜 그렇게 바쁘셨지?

 

난 1999년부터 상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내담자로 나의 아버지와의 화해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의 사연’에 대해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랬다. 평양이 고향이신 아버지는 6.25가 일어나기 몇 년 전 아마도 해방되고 얼마 안되어서 남으로 내려오셨나 보다.

이유는 지주라는 이름으로 핍박받는 친할아버지 할머니께서 “ 네가 먼저 내려가 있으면 전답을 정리해서 내려갈테니..

그 때까지 동생을 데리고 내려가서 잘 보살피거라.”

 

 

이 한마디에 16세의 소년은 전대에 금덩어리 하나와 할아버지 증명사진을 차고 남하 한 것이다.

아버지가 마흔이 넘었을 무렵부터 우리 집엔 없던 사진이 걸렸다.

그것은 아버지와 붕어빵으로 닮은 할아버지 사진이었다.

우리는 큰 시험이 있거나 가끔 큰 일이, 큰 행사가  집에 있으면 꼭 할아버지 사진에 절을 하곤 했다.

 

아버지의 피난민 아닌 피난 생활과 고달픈 더부살이는 그 때부터 시작이었으리라.

아버지는 우리에게 고모할머니가 되는 댁에 기거를 하셨나보다.

그런데 그 생활을 상상해 보니 직장이나 일을 마치고 빨리 들어가고픈 집은 아니었을 게다.

그래서 밖에서 한 두잔 걸치시고 아버지 친구들과 어울리시다 보면 아마도 늦은 귀가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결혼하고 그런 귀가의 습관은 계속 될 수도 있는 것이고...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버지의 소년 시절이 떠올라 한없는 가여움과 안쓰러운 연민의 정이 떠올랐던 기억이 내게 있다. 16살이래야 중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이런 가슴아픈 사연이 울 아버지한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사연을 일찍 알았더라면 내게 아버지를 이해할 능력이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삶의 희노애락을 겪고 나니 아버지를 이해할 사연을 들을 귀도 열렸고, 안보이던 내면의 힘이 작동 했던 것일 게다. 사람들의 사연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어느 누구하나 같은 사람이 없다.

하물며 쌍둥이의 사연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 236p)

 

이런 글귀, 사연에대한 인식은 이미 융이나 이전의 정신의학자들 생각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은 정신의학이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간 것에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야 했다고 이야기 했다.

 

정신의학이 마침내 정신병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나는 늘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 241p)

 

가정은 사연으로 작동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개개인에게 작동되는 것이 경험과 사연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그 사람의 사연을 알 때 오해는 한 순간 이해로 바뀜을 경험한다.

인간의 경험, 인생의 사랑, 고통, 기쁨등을 담고 있는 사연. 사연을 알 때 사람의 관계가 풍성해짐을 경험한다.

우리는 융의 사연을 기억, 꿈 사상을 통해 들어 본 것이다. 그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세계적인 정신의학자가 될 만한 싹이 있었던 것일까? 를 책을 보며 생각했다. 사실 잘 모르겠었다.  그러나 융에 대해 풍성해졌다.

 

융에대해 공감되었던 부분은  종교와 하나님과 치열한 갈등선상에 있었던 점이고 

그가 여행을 통해 더 깊은 내면의 성찰을 했다는 점이었다.

융을 읽으며 난 언젠가 홀로 아주 오랫동안 여행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융의 프에블로 인디언 이야기를 들으며...나에게도 꼭 그럴 날이 꼭 오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받는다.

 

나와 나의 여행 동반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깊은 고통을 동시에 지닌

아프리카 원시세계를 문이 닫히기 전에 체험하는 행운을 누렸다.

나는 아직도 원시 그대로인 땅에서 ‘신의 평화’를 만끽했다.

나의 해방된 정신력은 큰 기쁨을 안고 태고의 광대한 곳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 470p)

 

 

나도 진정 ‘신의 평화’를 만끽하고 싶다.

더불어 나의 해방된 정신력으로 큰 기쁨을 안고 태고의 광대한 곳으로 역류하고 싶다.

그래서 내 안에서 작동되는 사연을 낱낱이 분석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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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08:24:12 *.217.210.84

도은미. 셀리가 이야기하는 선생님 같은 경험을 하고있는 나를 본다.

지난 오프과제하면서 처음으로 나의 유년시절을 아주 잠시 혼자의 생각으로 펼쳐보았지만

그때 그시절에 알았다고 해도 지금의 이해력을 갖고 있지는 못했을 것 같은 마음은 사실이야.

내가 이만큼 커서 알게되고 마음으로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는 거니까.

어머니로 부터 간간이 전해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다라서...지금은 함께할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그냥 내가 유추해보는 수밖에 없지만, 어머니의 행간에 있는 의미를 이제 조금씩 읽을줄 아는 나이가 된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긴밀해질수 밖에 없는 이유도 그사람의 사연을 알게되면서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서이겠지.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는데 그것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많지 않은듯.

점점 그렇겠지. 사람들은 마음의 빗장을 여는것에 많이 인색해져가고 예전 같은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면서 치유가 됐을텐데...그런 관계맺음이 어려워지니 상담치료가 비지니스로는 엄청나게 큰 시장이 될것 같음.

그대의 역할이 점점 커지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음.

이는 정작 슬픈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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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09:00:37 *.9.188.229

그치? 슬픈일이지만...

문경가서 잠시라도 더 나를 들여다 보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는 중...

역시 행님은 부지런하다. *^^*

 

우리가 나이가 들긴 들은게야

행간의 의미를 넉넉하게 알아 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된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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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0 12:17:16 *.114.49.161

융의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상담자, 코치로서 저 말이 많이 와 닿으셨군요.

언젠가 여행 꼭 가게 되실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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