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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8일 10시 33분 등록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스위스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어릴때부터 심령현상에 관심이 많았고 사춘기때는 기독교

신앙의 회의로 부친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꿈과 환상을 체험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이것이 훗날 그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다양한 생각의 집합이라는 의미로콤플렉스라는 단어를 고안하고, 그의 심리유형

은 캐서린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 모녀의 MBTI (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계발하는데 근간이 되기도 했다. 23

무렵 융은 의사로서의 장래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가난한 집안 환경은 공부만을 염두에 둘 수 없는 상황

이었다. 공부를 위해 빚을 져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내과로 진로를 결정할 즈음에 크라프트 에빙(Kraft_Ebing)

책을 접하고, 저자가 정신병을인격의 병이라 일컫는 글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호흡을 해야 할 정도로 흥분한 상태

가 된다. 그리고 그는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정신/

자연)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당시 융의 결정은

교수나 친구들에게는 실망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융은 그들이 나를 바보 취급했다고 회상한다. 그들의 반응은 어쩌면 당

연한 것이다. 내과의사로서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코 앞인데 엉뚱하게 정신의학 같은 하챦은 것을 하려고 하는 어리석

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스스로도 무척 유혹적이었다라고 토로한다. 융은 38세에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8년간

강의해온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당시 그는 앞에 펼쳐진 학문적인 출세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내적 인격 즉보다

높은 이성의 길을 좇아 무의식과 직면하는 실험, 그 흥미 있는 과제를 서서히 밀고 나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심사 숙고한 끝에 학문적 출세의 길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무의식과의 실험이 끝나기

까지는 내가 공중 앞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

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히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353)

 

20088월 나는 울람바토르행 비행기를 탔다. 회사에서는 나의 휴가에 대하여 아무런 말이 없다. 사실 별로 하는 일도 없던 터라 누가 뭐라 할 게재도 아니었다. 집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집에서 말이 없는 것은 나의 여행이 못마땅하다는 무언의 압력이다. 각반을 친구에게 빌리고 헬멧은 내 것을 챙겼다 말을 타러 가는 길이다. 사실 말을 타러 간다기보다는 초원의 바람을 맞으러 간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나는 조용히 인천공항에서 몽골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친구의 메시지가 들어온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미지의 세계로…GO GO’

 

82년2월1 아직 미성년이던 나는 부모의 동의서를 받고서야 취직이 되었다. 졸업전이라 교복을 입고 검정스타킹에 검정구두를 신고 출근을 했다. 모든 업무가 손으로 진행되던 시절이다. 타자를 치고 주산을 놓고 원장을 기입하고 시재를 맞추고 어설프게 시작한 나의 사회생활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야간대학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지속된 일은 나름 성과를 가져다 주었다. 넉넉한 월급 덕에 돈으로 힘들지 않았고, 보통의 기준으로 좋은 직장이었다. 남녀차별이 있던 시절에 남자들과 비슷한 시기에 승진도 했다. 그럴듯한 동네에 지점장이 되었다. 금융기관의 꽃은 지점장이라고들 한다. 지점장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숫자가 인격인 회사에서 늘 우수한 인격을 보여주었다. 지점장으로 4년 남짓. 그 동안 소소한 일들은 있었지만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2008년 봄 사장이 바뀌었고 회사는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본래 정치적이지 않은 나는 회사사정과 관계없이 지점을 꾸려가고 있었다. 2008년6월2 아침출근길에 본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이른 시간이라 좀 의아해하면서 본부장을 만나러 갔다. 커피를 한잔 하는데 어렵게 말을 꺼낸다. 오늘 발령이 있을 거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얘기인즉 지점 민원건을 문제 삼아 강등발령이 날 거라는 이야기이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당시의 내가 그랬다. 본부장이 말하는 민원은 일상적인 일이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관리책임을 물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본부장은 조금 기다리면 다시 복귀될 거란 위안의 말도 잊지 않는다. 지점 직원의 고객과 분쟁건이다. 특별한 이슈가 될만한 일이 아니라서 최선을 다하고 있던 터이다. 그것을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아직 결론도 나지 않은 민원을 가지고 발령을 내는 경우는 없다. 내가 그 건에 개입된 것도 아니었고 금전사고가 일어날 일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이해는 가지 않는 처사이다. 그날 오후 늦게 발령이 났다. 말이 필요 없다. 회사는 발령장 한장이 직원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곳이다. 지점직원들은 연판장을 돌리는 의리까지 보여주었다. 생각도 못한 발령이었지만 일단 자리는 옮겨야 하는 일이니 주말에 짐을 쌌다. 내가 옮겨 앉은 지점은 합병한 회사의 영업부였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리만 있었다. 일도 없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심 억울함이 없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을 삭히느라 그랬는지 둘째아이를 출산하면서 있던 치질이 도졌다. 몸이 아프다고 대신 말을 해주고 있었다. 몸에 칼을 댔다. 상처는 도려내면 아물게 마련이다.

 

지점장으로 있는 동안 고객관리를 놓지 않고 있었다. 실질은 그랬지만 고객을 나에게 등록하지는 않았다. 이는 내 계산으로 관리할 고객이 없다는 의미이다. 발령받은 지점에 출근을 해보니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있는 나의 현실이 보였다. 그룹 내 증권회사 두 개가 합쳐졌고 사장은 타 증권사에서 부임했다. 당연히 자신의 자리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다툼이 일어나고 그 가운데 나 같은 경우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 같은 일은 나의 경우만 그런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말 재수가 없으면 아무 상관없는 짱돌이 날라와서도 산통을 깨는 것이 직장인의 삶이기도 하다.

 

다시 원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회사원이다. 그리고 영업을 하는 사람이다. 지점장이라는 자리는 관리직이고 그 의미는 회사의 정책에 따라 추풍낙엽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다. 본래의 나는 관리직이기 전에 영업을 하던 직원이다. 물론 지점장으로 있는 동안에도 그 일을 놓치 않고 있었다. 생각해본다. 일을 계속할 거라면 지금부터는 내가 갑이 되어야 한다. 갑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남들이 보기 좋은 지점장에 목멜 일이 아니라 영업을 하면 된다. 영업직원은 숫자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고객이 있으면 누구도 나에게 갑의 행세를 할 수 없다. 갑이 되는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는다.

 

발령이 있던 다음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회사에 같이 근무하던 직원이었는데 지금은 타 증권사에 임원으로 있는 분이다.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점심식사를 같이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분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신다.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를 했다. 같은 일을 할거면 회사를 옮겨보는 것은 어떠냐고 하신다. 일단은 그럴 생각을 해보지 못한터라 말미를 받아두었다. 왠만하면 넘어진 자리에서 넘어진 땅을 짚고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었다. 또 하나의 마음이 일어났다. 나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동안 회사의 그늘에서 잘 지냈다. 내게 실력이 있다고 하면 새로운 자리에서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26년을 근무한 회사에서는 모든 것이 익숙하다. 고객확보도 더 용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위험을 감수해보기로 했다. 비록 떠나는 뒷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무엇인가 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울람바토르에 내려 하루를 묵고 다음날 푸르공을 타고 12시간이상을 이동하여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매일 보던 사방이 지평선인 초원에 내렸다. 낮에는 초원을 말과 함께 달리고 밤이면 지평선과 하늘뿐인 초원에 누워 안드로메다와 속삭였다. 말위에서 맞는 바람에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초원에 지천인 솜다리도 보고, 온 세상을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지나온 시간들을 그곳에 묻어 두고 서울로 돌아왔다.

 

20089월 신입사원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제 회사를 옮긴지 4년차이다. 아직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른다. 다만 나는 오늘 갑으로 산다. 누군가의 눈에는 나의 삶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무엇이 아까운지 몰라도 아깝다고도 한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지나간 나의 선택은 익숙한 곳에서의 떠남이었다. 떠남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고 나는 자유를 얻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에는 기회비용이란 것이 있다. 무엇을 기회비용으로 사용할지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지. 늘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무엇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면서 살아갈지는 선택해야 하고 그것에 따르는 책임도 기꺼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 삶이다. 보통의 자서전과는 많이 다른 책이었다. 두 번을 읽었으나 어렴풋하게라도 그 사람이 잡힐지 말지 하는 정도이다. 심오함이 나의 능력으로는 가 닿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융의 선택에는 박수를 보낸다. 가난한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자신의 관심사로 진로를 정하고 또다시 대학교수로의 탄탄대로를 벗어 던지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떠남 후에 만남은 나에게 여유로운 삶을 선물해주었다.

동물의 삶보다는 식물의 삶이 분주하지 않아서 좋고, 을乙의 삶보다는 갑甲의 삶이 여유로워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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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8 20:21:15 *.62.160.225
와 굉장한 글이네요. 늘 그렇지만 서연 언니의 글은 매우 정갈하고 침착한데 그렇게 갈아낸 칼로 사람 마음을 단 칼에 베는 힘이 있습니다. 융의 자서전을 나름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으나(2번째는 그리 열씜히는 안읽었음 자만해서;;) 서연 언니가 잡아낸 포인트는 못잡아냈어요. 갑자기 융이 무척 좋아집니다. 서연 언니 만큼이나요.@,@ 가지않는 길을 갈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포기한 기회비용들을 주변에서 끊임없이 상기시킬 때면 간혹 괴롭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용기를 따라오고 스스로의 선택을 믿었기에 오늘 내가 서연 언니와 만나고 팔팔이와 변경연이 만날 수 있었던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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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09:03:05 *.9.188.229

우리 조금만 더 지나면 무경계에서 여유로워지면 좋겠지?

동물이나 식물 , 갑과 을의 경계에서 벗어나기...뭐 이런 생각을 해봤다.

언젠가 서연과 함께 울람바토르에나 가야겠는걸? ...안내해 줄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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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10.09 21:45:53 *.85.249.182

땅에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다시 재도전하려는 그런 강단은

오디에서 나옵니까?

그 갸녀린 몸엔 강철로 된 고래 힘줄 같은 뭔가가 있나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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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0 09:46:43 *.114.49.161

선택은 기회비용을 감당하는 것이로군요. 떠남이 새로운 만남의 전제조건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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