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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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곳을 찾게 하는 기온이다. 경찰서 로비는 썰렁하다. 현관을 들어서니 커다란 수족관이 보이고 오른편에는 민원실이 있다. 이른 시간이라 민원실도 휑하다. 수족관 옆으로 몇개의 자판기가 놓여있고 다른 한 켠에 일자형 의자가 있다. 어느 곳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가운데는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왼편으로 작은 복도를 따라 뒷 건물로 이어지는 미로 같은 길이 보인다. 그 길로 들어서니 뒤편에 다른 건물로 통하는 입구가 나온다. 경찰서에 조사관을 만나러 가는 길은 낯설다. 아니다. 경찰서라는 곳 자체가 낯선 곳이다. 이곳을 일터로 나오는 사람말고는 낯설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종암동은 내게 익숙한 곳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발령을 받은 직장이 있었던 곳이다. 금강빌딩. 사무실이 있던 건물이름이다. 그 건물 맞은편에 종암경찰서가 있었다. 지금도 위치는 같다. 다만 당시의 경찰서는 이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사무실이 모자라서 구석구석 건물을 지었나보다. 대로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건물 뒷 편에도 건물이 빼곡하다. 우리가 찾아온 ***조사관의 자리는 뒷 편 건물에 있었다. 동행한 사람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작은 건물이 커다란 사람을 빨아들인다. 뒤돌아 나와 처음 들어선 건물의 수족관 뒷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몇 개의 자판기중에 커피자판기도 있었다. 요즘은 자판기가 한대만 있는 곳은 드물다. 커피, 음료수, 책, 과자등 다양한 자판기가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있었다. 150원을 넣고 밀크커피한잔을 얻었다. 똑같은 의자가 여러 개 붙어 있는 의자는 누워서 잠을 자도 괜챦을 만하다.
급기야 그 젊은이는 내 곁으로 와서 앉는다. 순간 몸이 움찔해졌다. 특별히 안 좋은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인상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낯선 사람이 곁에 오는 것이 편하지 않은 것은 본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나의 반응이 이상한 것은 아니리라. 젊은이는 이제 내게 말을 걸어보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자신의 가방을 뒤지더니 명함 한 장을 꺼낸다. 내게 내민다. 뭐하는 사람일까 나도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이른 시간부터 경찰서 민원실도 아닌 간이 의자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사람. 명함을 받아 들고 보니 젊은이의 직업은 기자였다. 수습기자. 경찰서 담당이란다. 종로경찰서와 종암. 청량리경찰서가 자신의 구역이란다. 일주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경찰서에서 전전 하고 있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나도 명함을 꺼냈다. **증권회사 ***부장 내 명함이다. 명함을 받아 든 젊은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몇 시간째 앉아서 책을 읽고 있어서 다른 경찰서에 가봐야 하는데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도대체 저 여자는 여기에 왜 있을까. 그 동안 자신이 보았던 사람들하고는 달라 보였다고 했다. 기자를 시작한지 몇 달이 되었지만 경찰서 로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자는 처음이란 것이다. 본능적으로 궁금해졌던 것이다. 뭔가 기사꺼리가 될까 싶은 생각에서 줄곧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부터 이곳에 앉아있던데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네…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신 분이 누구신데요?” “제 고객입니다” “네…? 증권회사 직원이 고객과 함께 경찰서에도 옵니까?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겁니까?” “네…제 고객이 사기사건 때문에 이곳에 와야 하는데 혼자서 오기가 그렇다고 해서 동행한 겁니다” “어떤 내용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고객의 개인적인 일이니 그것까지는 이야기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제야 젊은이는 내게 말한다. 그 고객이 돈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나는 웃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언제 입사했고 그 동안 경찰서에 드나들면서 어떤 일 들이 있었고…주저리주저리. 그러면서 혹시 인연이 되면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기고. 다른 경찰서에 가 봐야 하는데 나 때문에 늦었다고 했다.
그날은 오전내내 경찰서 로비에서 책을 읽는 일로 보냈다.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에 나의 고객은 나왔다. 경찰서 옆에 커다란 건물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나는 된장찌개 그분은 김치찌개…사무실에 돌아와보니
2003년 겨울. 나의 작은 사무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몇 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다. 사회적인 이슈가 될만하게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이 망가질 때다. 자산의 자산가치가 반 토막이 나고 일간지 일면을 장식할 만큼 시장이 망가지면 사무실은 소란스러워진다. ‘피 같은 내 돈’을 언급하며 사람들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떤 대화보다 사람의 기질이 잘 나타나는 것이 돈에 관한 대화이다. 몇 가지의 정보를 알게 되면 그 고객과 나와의 관계형성이 어떤 모습일지가 어렴풋하게 그려진다. 좋은 고객, 나쁜 고객 기준이 선다. 좋고 나쁨은 그 사람의 인간성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기준이다. 그러니 기분 나빠하지는 마시라.
지점장으로 처음 대면하는 고객이었다. 불만고객이다. 185센티가 넘는 키에 부산사람 특유의 사투리, 그리고 거친 말씨. 그가 가지고 있는 이력. 뱃사람. 나의 작은 외모가 처음으로 불편했던 날이다. 아니다. 조금 컸으면 하는 바램이 있던 날이다. 아주 가끔 변명의 여지가 없으면 땅이라도 꺼져버려서 사라지고 싶지만, 그도 여의치 못하면 ‘한대 맞고’ 상황 종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설득이 되지 않을 때 또는 설득할 수 없을 때 드는 생각이다.
며칠을 고객과 실랑이를 하면서 우리는 다시 리스크를 선택하는 결정을 한다. 다시 선택한 결정이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고객과의 관계는 끝이다. 헤어짐을 전제로 한 선택이었다. 다행히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경찰서에 동행을 요청하고 응하는 사이가 되었다. 10년이 되어간다. 이제 그 고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따리를 모두 풀었다. 가족사에서부터 현행법에서 풀어야하는 과제가 있는 부분까지. 쉽지 않은 일이다. 혹시…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자산과 치부를 모두 드러내는 일. 내가 쌓은 신뢰가 한 몫을 했을 텐데…딱히 어느 부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스트리아 테플리체에서 이 두 천재가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괴테는 ‘오스트리아 황후는 예술에 대하여 훌륭한 생각을 지니고 있으므로 존경한다’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에 베토벤은 조금 격한 말투로 ‘귀족 따위가 당신이나 나의 귀한 예술에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응수했다. 그 뒤 두 사람이 거리를 산책하고 있는데, 저편에서 황후가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오는 것이 보였다. 이에 괴테는 길가로 비켜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했으나, 베토벤은 혼자 무표정하게 걸어갔다. 그러자 황후와 귀족들이 길을 내주며 베토벤에게 인사를 했다. 베토벤이 괴테에게 말했다. “당신도 이제부터는 저런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말고, 저런 사람들이 경의를 표하게 만드시오.” 테플리체에서의 네 번의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이러한 기질 차이 때문에 관계를 지속하지 못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 괴테가 느낀 베토벤이다. 니체가 쓴 ‘독일 음악에 관하여’에 나오는 대목이다. –즐거운 지식 255쪽-‘
니체는 말한다. ‘각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신의 입으로부터 나와 인간에게 이야기된 것으로서는 거의 악의에 가까운 요구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을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가끔은 정말 자신을 모르겠다 라고도 토로한다.
2500년 전 사람들이 ‘고대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고, 현재의 사람들이 세계4대 성인으로 추앙하는 사람 소크라테스’ 그가 가장 현명한 사람인 이유는 델포이신전의 신탁에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니체나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빌자면 ‘자신을 아는 사람은 없다’가 진리에 가까운 듯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알아본다. 물론 모든 것이 잘 맞는 것은 아니겠다. 잘 맞는 다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이라는 다른 표현일 것이다. 물리적, 정서적 어떤 것으로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사람들은 내게 물어본다. 요즘 좋은 투자상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추천종목을 어떤 것이 있나요? 사람을 보면 돈이 많이 있는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나요? 나의 대답은 “모른다”이다. 단답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투자자마다 그에게 맞는 상품이 있다. 맞는 스타일이 있다. 내가 구비하고 있는 상품 중에 맞는 것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단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장황해지는 것이 나의 한계이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답을 찾을 가는 것이 투자이고 재무설계이다. 넓게는 인생설계이다.
서로의 기질이 맞지 않으면 네번의 만남이 끝일수도 있고 10년의 만남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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