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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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기 연구원 김도윤(인센토)님의 글입니다.
탐험을 멈춰서는 안 되네.
그 탐험의 끝에서 우리는
출발했던 곳에 도달할 테지
그리고 처음으로 그 곳을 알게 될 테지. - T. S. 엘리엇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어린 시절, 그 곳에 머물 때는 미처 몰랐던, 아릿하고 향긋한 속살로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그 동안 조금 지쳤나 봅니다. 바쁜 일상에선 무심코 지나쳤는데, 잠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니 마치 집 나간 고양이 마냥 여기저기 헤어진 구석이 눈에 띕니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가는 오후, 아내와 함께 바다가 보이는 산을 올랐습니다. 저 멀리 흐릿한 산등성이 너머 9월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남해 바다가 붉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 환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제 영혼 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소록소록 되살아나네요.
동네 앞 좁은 운하를 쉴 새 없이 파고들며 뒤척이던 새파란 물살, 평화롭게 반짝이던 오전의 은빛 바다, 햇살이 노곤한 어느 봄날의 유채꽃밭, 가끔 창문을 덜컹거리며 울리던 요란한 뱃고동 소리…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피가 되어 흐르고 있는 영혼의 풍경임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여행을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갖지 못한 것들로 가슴 아파하고, 뼈아픈 실수를 되새기며 밤새 뒤척입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꿈과 냉엄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깨달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러다 어느새 그나마 덜 넘어진, 익숙한 길로만 다니고 있는 좁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인 윈델 베리는 말합니다. "두 종류의 뮤즈가 있다. 하나는 영감을 속삭이는 뮤즈이고 다른 하나는 잊을만하면 나타나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야'라고 일깨우는 현실적 뮤즈다. 이는 형태의 뮤즈이기도 하다. 형태라는 것은 우리를 가로막는 방해 요인이 되고 의도한 길을 가지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진정한 작업을 시작한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열리는 것이다. 좌절하지 않았다면 몰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냇물은 장애물에 부딪쳐야 노래한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깊은 의문을 품고, 갖가지 장애물 부딪히면서 자신의 껍질을 벗어나가는 것인가 봅니다. 그렇게 다른 이들과는 차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하고 오롯한 영혼을 찾아나가는 길고도 짧은 여정입니다.
언제가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겠죠. 그때까지는 다시 열심히 '장애물'에 부딪히며 노래해야겠습니다. 이렇게 길이 막혔을 때, 다시 돌아와 자신의 시작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곳… 그것이 고향의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산 너머 따스한 오후 햇살이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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