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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9일 08시 24분 등록

 서양의 지혜, B.A.W. 러셀 / 정광섭 옮김/ 동서문화사

 

1.   저자에 대하여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러셀의 자서전 첫문장이다. ‘나의 인생은 무의식의 자기실현 역사다’로 생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융에 버금 간다. 러셀은 98세에 죽었다. 2년 부족한 한 세기를 살았다. 저 문장을 마지막 3년간 써낸 자서전에서 3권 분량으로 풀고 있다. 그는 4번 결혼하고 3번 이혼했다. 그의 마지막 결혼은 심지어 80세가 넘어 이루어졌다. 상세한 사연을 알기 전에도 사랑과 결혼에 대한 고민을 남보다 많이 했겠다 짐작되는 이력이다. 그는 엄청나게 긴 저서 목록을 남겼다. 책공장처럼 수학, 철학 책을 생산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지식에 대한 탐구욕은 끝을 보았다. 그는 1970 2 2일에 죽었다. 그 다음날 카이로에서 중근동의 위기에 대한 그의 성명이 대독되었다. 사회참여에 대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특별상을 받는 은퇴 원로가 아니라 그는 죽는 날까지 현역이었다. 놀라워라. 순수한 놀라움이 아니라 나는 다량의 질투와 시기가 함유된 감정을 느낀다. 이건 그의 4번의 결혼에도 그랬다. 쳇 누군 한 번 하기도 힘든 결혼을 4번씩이나. 여기에 분 나서 자서전을 대출했다. 읽어보니 그게 다 또 진실한 사랑에 기반한 거였다. 제기럴. 사랑에도 빈익빈 부익부인거야?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진다. 뜬금없고 가당찮고 당황스럽다.        

 

그의 얼굴이 궁금하다.  자서전이 헌정된 이디스와의 모습도 궁금하다. 80세에 결혼한 4번째 아내. 러셀의 연표를 읽어본 후에는 청장년이 아니라 노인이 된 이후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꼽고 싶어졌다. 근데 <행복의 정복> 책 표지로 쓰인 사진 속 행복해 보이는 여자는 누구일까? 그래서 나는 3장의 사진을 그의 프로필 사진으로 정한다. 뭐 어때 엿장수 맘이다

 

첫째, 버트런트 러셀의 캐리커쳐 (동서문화사). 평생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파이프와 빳빳한 셔츠 칼라가 보인다. 러셀은 이런 ‘wise old man’의 이미지다.

 

둘째, <행복의 정복> 책 표지. 표지사진 속 여자는 이 책의 출간연도를 고려하면 비건힐스쿨을 같이 운영했고, 그에게 아들과 딸을 낳아 준 두번째 부인일까? 이디스일까? 모르겠다. 이 두 사람은 행복해 보인다. 세번째 사진은 당연 이디스와의 사진이다

  

 

행복의 정복.jpg

 

 

피양육기(~20)

 

2살 때 엄마와 누이가 디프테리아로 죽고, 4살 때 아버지가 죽었다. 7살 많은 형 프랭크와 함께 조부모에게 보내어져 성장했다. 6세 때 할아버지가 죽었다. 어릴 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할머니와 넓은 대지가 딸린 조부모집이였다. 빅토리아 청교도식으로 살았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23세 어렸다. 아침 8시 이후에는 등을 대지 않는 양반이었고 손자의 생일에 성경책을 선물로 주었다. 그녀의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총리를 두 번 지낸 집안의 안주인이었지만 군대에 갔다가 발병해서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아들이 있었고, 요절한 아들부부의 손자 2명을 혼자서 양육 했다. 그녀가 러셀 유년의 안정감을 제공했다. 러셀은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준 적이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고 가정교사에 의해 공부를 배웠다. 고독과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형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러셀 11세때 알려주었는데 그는 수학에 대단히 매혹되었다. 크라마(속성학원)을 거친 후 1890(18)에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해 수학을 전공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오랜 세월을 두고

나는 평온을 찾아 애썼노라

환희를 맛보았고, 고뇌도 겪었노라.

광기와 마주쳤고,

외로움에 떨었노라.

심장을 갉아먹는 고독의 아픔도 알았노라

그러나 끝내 평온은 찾지 못하였노라

 

이제 늙어 종말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그대를 알게 되었노라

그대를 알게 되면서

나는 희열과 평온을 모두 찾았고

안식도 알게 되었노라

그토록 오랜 외로움의 세월 끝에

나는 인생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노라

이제 잠들게 된다면

아무 미련 없이 편히 자련다.

 

네 번째 부인 이디스에게 바친 헌사다. 98세에 죽은 러셀이 95년부터 쓰기 시작한 자서전에 나온다. 그녀는 그 때 쉰 살이었다.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었는데 결국 성공 했나 보다. 다행이다. 사랑을 품은 채,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죽을 수 있다니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하는 사람은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여러 번 할 수도 있다고 했지. 엘리자베쓰 퀴블러로스 씨가 <인생수업>에서. 이렇게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된 건 그의 생애가 남들보다 길었다는 것하고, 그가 2세 때 어머니를,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조실부모한 채 조부모에게서 양육된 것이 영향이 있을까, 아님 부와 여러 가지 가용자원이 많았던 영국 귀족가문의 풍습인가? 궁금한 부분이다. 조실부모, 특히 어머니를 일찍 상실한 생애초기 경험을 가진 이들의 사랑을 선택하는 부분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이야기를 읽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나의 관심사다. 그보다 7살이 많았던 형 프랭크 역시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기록하고 있다. 러셀은 자신이 사랑을 갈망한 이유가 외롭지 않고, 기쁨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앨리스, 도라, 페트리샤, 이디스와 결혼했다. 앨리스는 캐임브리지 대학에 가기 전 '내가 성년이 되기 전에 그녀가 결혼해버리면 어쩌지?' 걱정했던 5살 연상의 이웃집 누나였다. 할머니가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해서 손을 써서 그를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 직원으로 발령냈지만 그는 돌아와 그녀와 결혼했다. 22살 때였다. 유전적 질환을 걱정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하고 결혼을 했다. 39살에 별거를 시작해서 49살에 이혼했다. 그가 49살에 결혼했던 도라는 그에게 존과 케이트를 낳아주었고 같이 비건힐스쿨을 경영했다. 학교경영 과정에 생긴 의견차이로 1935년에 이혼한 후에도 1939년까지 도라는 이 학교 일에 관여했다. 아이들은 버트란드 러셀이 키운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페트리샤와 미국에서 있을 때 다른 대학들에 취직이 안되는 동안 서양철학사를 집필했고, 그 때 아이들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페트리샤는 그의 조수(비서)였던 여자였고, 1936 64살에 결혼해서 다음해에 둘째 아들 콘래드를 낳았다. 이들은 시칠리아 여행을 같이 갔다가 따로 귀국했다. 76살에 이혼했다. 이디스는 평전을 쓰던 작가였고 그와 마찬가지로 애연가였다. 그는 22, 49, 64, 80살에 결혼했고 대부분 10년 이상 함께 살았다. 한 결혼의 자연스런 주기는 25년쯤 가나? 일부일처제가 자연적인 원리에 안 맞고 100년 살면 4번 결혼하는 게 맞는 건가? 아니면 이건 러셀 개인적인 특성 때문인가? 궁금했다.      

 

 

지식에 대한 탐구욕

 

그의 저서 목록으로 증명할 수 있다. (< >은 저서 [ ]은 논문) 캐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수학에 대한 논문으로 봉인을 뗀 후부터 죽을 때까지 거의 책을 내거나 논문을 썼다. 그는 요절한 천재가 아니어서 타이핑하기에도 팔이 아플 만큼 매년 만들어냈다. 4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을 거치면서도 개인사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의 저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투옥되어 있을 때 일주일에 올 수 있는 접견인이 3명이어서 그들 사이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지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명단을 짜느라 즐거워했고 그 기간에 두 권의 책을 썼다. 미국에 가서 대학에서의 강연이 취소되었을 때에 그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서양철학사>를 썼다. 강건한 사람이다. 관심사가 처음에는 수학에서 출발해서 논리학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결혼과 가족 같은 일상 철학으로, 볼세비즘과 반전 반핵 세계문제에 관심을 표명한 학자로서의 이력이 해걸이가 없는 저술 이력에 드러난다. 그의 저서 목록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아흔 넘어 낸 단편소설집 두 권이다. 그 안에는 그가 쓴 추리소설도 있다. 그는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단다. 재미있는 양반인 듯 하다.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유쾌하고 진지한 눈빛이 떠오른다. 그가 49세에 첫 아들을 낳은 후 51세에 딸, 65세에 둘째 아들, 생물학적인 친자들을 낳듯 목주름이 깊이 잡힌 후에 출산한 책들이 훨씬 많다. 언제부터 노인이라고 해야 할까? 끊임없이 사랑하고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고 활동하는 그에게 은퇴나 쇠퇴가 있었나? 팔십청춘이라는 말이 그에게는 어울린다.

 

1895(23) 논문 [G. 하이만의 과학적 사고 법칙과 원리에 관한 비평]

1896(24) <독일 민주주의>[기하학의 아프리오리][기하학의 논리][수와 양에 대하여]

1897(25) 박사학위 논문 [기하학의 토대에 관한 소론]

1898(26) [유클리드 특유의 공리는 경험적인가] 파리 간행된 잡지 형이상학과 도덕개재

1899(27) [기하학의 공리] 발표

1900(28) <라이프니츠 철학의 비판적 해설>

1901(29) [질서관념과 시간 및 공간의 절대적 위치]

1902(30) 에세이집 <자유인의 신앙><러셀의 이율 배반>

1903(31) <수학의 원리> 상권

1905(33) [지시에 대하여]

1906(34) [논리학의 모순]

1908(36) [계형이론에 근거한 수학논리학], [조건과 합의]

1910(38) 화이트헤드와 공저 <크린키피어 마티마티커> 1, <철학평론집>

1911(39) [기초논리학의 철학적 중요성], 부인 앨리스와 별거 시작

1912(40) <프린키피어 마티마티커> 2,  <철학의 모든 문제>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관계에 대하여]

1913(41) <프린키피어 마티마티커> 3

1914(42) 미국에서 <외계의 인식><철학에서의 과학적 방법>, [숙지의 성질]

1916(44) <전쟁 중의 정의>, <사회 재건의 원리>, [2] <전쟁, 공포의 소산]

1917(45) <정치의 이상>

1918(46) <수리철학의 서설>, <정신분석><자유에의 길>

1919(47) <수리철학 서설>

1920(48) <볼세비즘의 이론과 실천>

1921(49) <정신분석> 앨리스 부인과 이혼하고 도라 블랙과 재혼

1922(50) <자유사상과 관료적 선전> <중국의 문제>, [미개국의 사회주의], [물리학과 지각]

1923(51) <산업문명의 장래><원자의 ABC>

1924(52) <볼셰비즘과 서양><어떻게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가><과학의 미래와 문명 파괴의 위협>,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1925(53) <상대성의 ABC><나의 신념>

1926(54) <교육론>

1927(55) <물질분석><철학개론><러셀전집>, 비건힐스쿨 창건

1928(56) <회의평론집> [물리학과 형이상학], [나의 결혼], [미국의 새 철학], [과학과 교육], [회의주의 가치]

1929(57) <결혼과 도덕>

1930(58) <행복의 정복>, [마음의 건강과 학교], [현대 결혼에의 입문], [머리와 꼬리], [남자는 자식을 원하는가], [지금부터 40], [종교와 행복]

1931(59) <과학의 전망> [나의 신조], [유년기의 자유토론]

1932(60) <교육과 사회질서> [마음의 변혁]

1934(62) <자유와 조직>, [나는 왜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결혼과 자식], 비건힐스쿨에서 손뗌

1935(63) <종교와 과학>, <게으름 예찬론>, 도라와 이혼

1936(64) <평화에의 길>, 퍼트리샤 스펜스와 세 번째 결혼

1937(65) [민주주의의 장래], [검증에 대해], 둘째 아들 콘래드 출생

1938(66) <권력론-새 사회 분석> [과학과 사회제도], [교육의 목적], [심리학과 논리학의 관련]

1939(67) [행복이란 무엇인가], [근대 세계에 있어서의 지성의 역할],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

1940(68) <의미와 진리의 연구>[자유와 정부], [산타야나의 철학], [바이런과 근대 세계]

1941(69) [헤겔의 역사철학]

1942(70) [국제대학의 제안], [인도의 실정]

1944(72) [전후 아시아에서의 서양의 지도권], [영국과 미국은 우호국이 될 수 있는가], [국제적 시야의 교육]

1945(73) <서양철학사> [영미의 국가주의], [어떻게 하면 원폭 전쟁을 피할 수 있는가?]

1948(76) <인간의 지식, 그 범위와 한계>, 페트리샤와 이혼

1949(77) <권위와 개인>

1950(78) 노벨문학상 수상, <반속평론집>

1952(80) [과학의 사회적 영향] 이디스 핀치와 네 번째 결혼

1953(81) 단편소설집 <교외의 악마>

1954(82) <윤리와 정치에서의 인간사회> 두번째 단편소설집<저명인의 악몽>

1956(84) <자전적 회상>

1957(85) 국제연합에서 과학상 수상 [역사의 이해], [토요평론 명작집], [나는 왜 그리스도 교인이 아닌가], 앨런 우드 러셀평전 {정열의 회의자> 출간

1958(86) <버트런트 러셀의 베스트><회의의 의지><러셀, 흐루시초프, 덜레스의 중요서간집>

1959(87) <나의 철학의 발전><상식과 핵전쟁><위기의 철학><신사와 학자의 악당>

1960(88) <서양의 지혜><버트란트 러셀, 본심을 말하다>

1961(89) <사실과 허구>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

1963(91) <인생의 여러 문제><정치의 이상><무기 없는 승리>

1964(92) <베트남에서의 전재오가 잔학행위>

1967(95) <자서전> 1, <베트남 전쟁점죄><러셀 기념 논문집><버트란드 러셀의 보존기록 문서류집>

1968(96) <자서전>2, <침묵의 죄에 항거하여><베트남전쟁 범죄재판의 전기록><윌슨씨 두려움 없이 베트남문제를 러셀에게 말하다>

1969(97) <자서전> 3, <삼가 버트란드 러셀님에게>

1970(98) 2 2, 사망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

 

오지랖이 좀 있는 양반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점점 넓어졌다. 우선 그의 본업인 수학에서 철학으로 범위를 넓혀 가며 저서를 냈다. 소련과 중국을 방문하고 나서 볼세비즘과 중국에 책을 통해 관심과 의견을 표명하였다. <행복의 정복><종교와 과학><게으름 예찬론> 등 철학의 영역을 확대했다.   

  

두 번 하원의원에 입후보했던 것은 그의 집안이 정치가집안이어서 인 듯 하다. 그의 조부도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참정권을 따게 했던 이였다. 러셀은 1907(35) 하원의원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1923(51세때) 두번째로 노동당 후보로 입후보했다가 낙선했다.

 

1916(44)에는 반전운동과 징병 반대운동으로 벌금형을 받고 메임브리지 대학에서 해고되었다. 1918(46) 주간지 트리뷰털에 게재한 논문 [독일의 평화제의]에 미군을 비방한 내용이 있다고 하여 재판 끝에 유죄를 선고 받고 6개월 동안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수리철학 서설> <정신분석>을 집필했다.  

 

1927년에 두번째 부인 도라와 함께 창건했던 비건힐스쿨은 일종의 대안학교였다. 두 자녀를 그 학교에서 같이 교육했다. 몇 가지 문제로 인해 폐교하였다. 도라는 러셀과 이혼한 후에도 몇 년간 이 학교 일을 계속 보았다.

 

1945(73) 어떻게 하면 원폭 전쟁을 피할 수 있는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평화유지를 위해 미국이 소련보다 우세한 병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48(76)에는 BBC방송에서 강연하면서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최대한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54(82)에는 원자, 수소폭탄 금지를 방송으로 세계에 호소하였다. 1961 (89)에는 평화행진의 대열 안에서 국방성 현관 앞 핵무기 반대 연좌데모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히로시마 데이의 기념집회를 개최하였고 두번째로 체포되었다. 영국 전역의 핵기지와 미군기지에 대한 연좌 항의데모를 지도하였다. 1963(91)부터는 베트남전 반전 운동을 전개했다.

 

 

저자에 대한 개인적 평가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흘러가버린 강물 위 뱃전에서 해 보는 각주구검, 뒷북은 그와 코드가 영 맞지 않다. 그는 태양처럼 날마다 다시 떠오른다. 긴 세월을 살기도 했지만 그가 스스로 요약했던 삶의 세 영역, 사랑, 지식,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남 몇 배의 삶을 살았다. 유클리드수학에 매료되었던 11살의 소년이 성장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철학을 했다. 나중에는 인류 전체의 문제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행동하는 철학을 했다. 나는 그가 직선적으로 사고하고, 조실부모와 유년기의 고독 등 어려울 수도 있는 여건인데도 그것이 자신을 휩쓸지 않고 한 부분으로만 자리를 주며 움직여 가는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왔다. 그가 써낸 긴 저서목록이나 노벨상, 결혼과 이혼이력보다 이런 점이 내게 울림이 컸다. 철학이 그에게 이런 걸 하도록 했나? 그게 좀 궁금하다. 그러니까 철학이 행동을 포함하고 있는 건지가 궁금한 거다. 또 하나는 수학자였는데 철학자가 되었다 이것들이 어떻게 연관되는 건지 궁금하다.   

 

 

1.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전체 10부다. 시대순으로 전개한다. 이 글의 전개방식에 대해 저자가 머리말, 프롤로그, 그리고 맺음말에 해 놓은 말이 있다.

 

철학사를 서술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나는 철학사가 전적으로 해설적이어서, 이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저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해설에 어느 정도의 비판을 더해서, 철학상의 논의가 어떻게 나아갔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12p)

 

비전문가에게, 아니 학자에게도 때로는 방관하는 태도로 전체를 훑어보는 것이 어느 정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개관이 필요하고, 특히 단 한 사람의 생각을 통한 개관이 필요하다. (575p)

 

이 책의 목적은 탈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서양 철학의 개설과 아울러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역사적 상황을 상기시켜 주는 몇 가지 일들을 말하고자 하는데 있다. 이 설명에 대해 도움을 얻기 위해서 인물과 장소와 문서의 삽화를 모아서 같이 실었는데 가능한 한 이에 해당하는 시대의 자료에서 고른 거이다. 또 설명에 도움이 될 만한 한 가지 시도를 했는데,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언제나 흔히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철학 사상이라는 것을 번역해서 도형으로 만들고 기하학적인 은유를 사용해서 전달하려고 했다. 도형에 의한 설명은 잘 할 수만 있다면 특수한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이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11P)

 

머리말

프롤로그

1장  소크라테스 이전

2장  2장 아테네

3장 헬레니즘

4장 초기 그리스도교

5장 스콜라철학

6장 근대 철학의 동향

7장 영국 경험론

8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9장 공리주의 이후

10장 현대철학

맺음말

 

2)   장점과 보완점

 

한 페이지가 1/3의 그림과 2/3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 그림들은 해당 철학자와 관련된 그림이나 동상, 또는 저서의 첫 페이지거나 수학적 기호로 본문을 요약한 것이거나 했다. 글자 줄이 짧아서 속독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도 안구를 많이 굴리지 않고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림은 본문 이해를 도우면서 철학이 딱딱하고 재미없고, 허황된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희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그림들은 러셀이 아니라 다른 박사가 넣은 거라고 했다. 찾는데 전문적인 식견과 공이 드는 고급정보였다. 일종의 시청각교육이 되었다. 

 

이 책 <서양의 지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고전인 서양철학사의 보급판쯤 되는 책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로 개괄되어 있다. 모든 학문은 개론으로 시작된다. 건축학개론, 특수교육개론, 철학개론개론 과목은 대개 노교수님이 가르친다. 가장 잘 알면서 쉽게 가르칠 수 있는 학자가 그 학문 전체에 대한 첫인상을 담당한다. 이 책은 쉽게 큰 흐름을 짚어주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읽어가다가 이해가 안되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이해한 것은 20% 남짓하다. 절반쯤 지난 다음에는 이해를 포기했다. 그냥 외국어 리스닝하듯이 읽었다. 책을 묶은 끈이 떨어지도록 반복해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옛사람의 독서에 대한 정성을 생각했다. 정민선생님의 글에서 본 어떤 이의 일화였다. 유득공이었던가? 글이 이해가 안되어 읽고 또 읽어댔던 이였다. 이해하는 걸 포기한 뒤 귀담아듣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읽어가니 편했다. 러셀 특유의 짧고 명징하고 힘있고, 재기가 넘치는 문장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번역의 문제인지, 철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택도 없이 부족함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일거다. 러셀은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건데 수학으로 철학을 설명하는 사유 체계가 어려울 때가 있었다.   

 

3)   감동적인 장절

 

(1)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자는 무엇인가? 철학책을 왜 읽는가? 왜 철학공부를 하는가? 질문의 대답으로 추정되는 것들

 

15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과학은 어떤 해답을 주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은 점쟁이가 이미 준비한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탐구하고 때때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과업이다.

 

16 이 모든 것이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실험실에서 실험하여 해결할 수는 없다. 독립적인 정신에 대한 문제들은 일반적인 특효약을 조제해 주는 약제사의 말에 의존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질문에 철학자가 해답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연구할 때,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제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철학을 다루는 방법이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철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32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해답이 아니라 제기된 문제이다.

 

85 철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로부터 철학 일반에 대해 이사하게 여기면서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였다. 사람들은 온화하고 관대해 보이는 철학자들을 해롭지 않은 바보, 또는 꿈을 꾸듯 걸어다니면서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괴짜로 취급하거나, 사람들의 현실 문제라든지 분별 있는 시민들이 신경써야 할 문제에 관심 없는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철학적 사고는 기존 습관이나 관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늘날 철학자는 인습과 전통을 뒤집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과 견해에 무조건 동의하지 않는 비타협자로서 차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246 철학적인 문제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사를 연구할 필요가 있을까? 한 시대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시대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가? 분명히 앞에서 말한 견해대로라면, 사회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에는 그 어떤 상호작용이 있다. 미신적 전통은 미신을 가지지 않는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할 것이다. 진취적 기상보다 금욕을 높이 평가하는 전통에서는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는 건설적인 정치적 조치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철학적 문제는 그 배후에 있는 역사적 학식의 모든 재료가 없어도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사를 보는 관점은 대부분의 의문이 이전에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과거에 현명한 해답이 제시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있다.

 

575 책을 한 권 숙독하는 것만으로는 그 범위가 아무리 넓어도, 독자가 전문가가 되는 일은 없다. 실제로 단지 읽는 것만으로는 제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깊어지지 않는다. 지식의 습득 외에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이 자기 것이 된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진지한 숙고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사의 한 가지 변명이기도 하다. (맺음말)

 

577 이상에서 우리는 철학적 사고의 또 하나의 유력한 동기에 이른다. 이제까지 우리는 철학 연구의 대상인 과학과 과학 작용의 전반적 원리에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로서의 안간은 세계에 대한 발견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또 하나의 과제는 세계 안에서 행동하는 것이다. 과학적 측면은 수단과 관련되고, 여기에서 리는 목적과 관계하고 있다. 인간은 주로 사회적 본성 때문에 윤리적 문제에 직면한다.

 

580 내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참다운 윤리적 원리는 특정한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명한 차이를 보이는 한 가지 특징은 지식에 관한 것이다. 내가 말하고 있는 지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확실히 구별된 지식이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소크라테스의 견해에서는 지식이 선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으며, 우리는 이 이론을 너무나도 합리론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여기에 바로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하나의 점이 있다. 사람이 총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무한히 작다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실로 거리낌없이 인정하고 있는 점이다. 결국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정한 탐구야말로 선이다. 이것은 피타고라스에서 유래된 윤리적 측면이다. 추구자와는 관계없다고 생각되는 탈레스 시대로부터 과학 운동의 배후에 있는 윤리적 원동력이었다.

 

580 이와 같이 탐구자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자기 연구의 독립된 대상을 될 수 있는 대로 추구하는 것이 연구자가 할 일이다. 자기가 발견한 것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든 교란하든 상관 말고 탐구해야 한다. 마치 윤리적 원리에 사람들이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탐구의 결과는 우리의 감정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한편 윤리적인 의미에서 발견을 활용한다는 문제가 있다.

 

580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자기가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보류시키는 자유를 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히 공정한 탐구가 또 하나의 선으로 여겨지는 자유와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용은 탐구가 왕성하게 되는 사회에서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탐구자를 진리가 이끄는 대로 가게 하는, 유로운 사회의 위대한 추진자이다. 이 정도까지라면 누구나 여기서 문제가 도어 있는 선에 공헌할 수 있따.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모든 일에 관해서 같은 의견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억지로 조성된 비평이 가로막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증 받을 수 있다. 인간에게 성찰하지 않는 삶은 정말로 살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2)   인간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유토피아를 향한 꿈이 내 마음을 흔든다. 연구원 1학기 때 앙드레 보나르의<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을 때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왜 그렇지? 나는 좀 생물학적이고 손에 만져지는 걸 좋아라 한다. 근데 이 책에서는 르네상스에서 다시 플라톤으로 회귀했다고 플라톤을 강조하고 있다. 러셀의 논조대로 인도, 설득되고 있는 듯 하다. 러셀은 서양철학에서의 그리스철학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연구원 1학기 그리스로마 신화인 <변신이야기>, 호메로스 <오딧세이아>, 앙드레 보나르 <그리스인 이야기> 3, 그리스비극을 읽었던 것, 그리고 르네상스가 일어난 시기 이탈리아에 대한 윌 듀란트 <문명 이야기> 김용규씨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 이 책에 크로스된다. 이렇게 사전지식들, 어딘가 본 적 있는 안면 있는 이름들이 늘어나는 것이 즐겁다 

 

91 그는 기원전 470년경에 태어났다. 아테네의 시민인 그는 돈이 거의 없었는데도 애써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즐거움은 친구들이나 남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이었고, 아테네 청년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피스트와는 달리 그 대가로 돈을 받지는 않았다.

 

92 가는 남들이 보기에 흉한 꼴을 하고 있었고 몸을 치장하는 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고리는 너덜너덜 했고, 구겨지고 늘 맨발이었다. 무엇을 하든지, 그는 절제했고, 육체에 대한 놀랄만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막상 마시게 되면 동료들이 모두 취해서 쓰러져도 그만은 비틀거리지 않고 마실 수 있었다.

 

96 그러고 나서 친구들을 향해 이제까지 일어난 일은 악이 아니라고 말했다. 죽음은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그것을 꿈을 꾸지 않는 잠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세의 삶으로, 거기에서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르페우스나 무사이오스나 헤시오도스나 호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그들은 질문을 했다고 해서 결코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기독교에서 본 듯 한 얼굴. 그 이전의 철학에 젖줄 또는 본을 대고 있음을 알아채게 되는 것을 볼 때 재미 있었다. 이 책 바로 앞에 읽은 철학자 김용규씨의 <>을 상기하게 된다. 그 때 일자, 삼위일체, 토마스 아퀴나스와 안셀무스, 아우구스티누스 이름을 들어두었지. 다시 읽어봐야겠다. 러셀과 김용규씨는 관점이 좀 다르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감동스러워한 건 <신>에서 본 적 있어 구면이라는 사실이지 그 개념 자체는 아니다. 어쩌나. 할 수 없다.  

 

201 초기 스토아 철학자의 저서로, 단편적인 것 외에는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단 이들을 서로 연결해서 그들의 가르침을 적당히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제논의 큰 관심은 주로 윤리적인 것이었던 모양이다. 스토아 철학자의 철학 전체를 통해서 중심적 관심을 이루고 있던 가장 중요한 논점 가운데 하나는 결정론과 자유 의지의 문제다. 

 

207 스토아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남겨진 제1원리의 문제에 대해서 연역 절차에서 출발하는 명확하고 자명한 본유관념(생득관념)의 이론을 내놓았다. 이 관념은 중세 철학을 지배했고, 몇 사람의 근대 합리주의자에게도 채택되었다. 그것은 데카르트 방법의 형이상학적 기초기도 했다.

 

215 플로티노스의 형이상학의 중심적 가르침은 삼위일체론이다. 이것은 일자와 누스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세가지는 우선과 의존의 이 순서로 나열된다. 이를 논함에 앞서 이 이론이 신학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리스도교적이 아니라 신플라톤적이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4)   거대한 권위에 문제제기를 했던 루터의 종교개혁

 

333 마르틴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파의 수도사였으며, 신학교사였다. 면죄부를 판다는 천한 행동이 그에게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격렬한 도덕적 고통을 주었다. 1517년 그는 명확하게 의사를 표명하여 유명한 95개 조문을 선언하고, 이 문서를 비텐베르크성의 교회 문에 붙였다. 교황에 도전할 때 그에게는 새로운 종교를 수립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시끄러운 문제에는 외세에 대규모적인 금전상의 기부를 해야 한다는 정치 문제 제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루터가 1520년 교황의 파문 교서를 당당하게 불태울 때까지, 이 문제는 이제 단순히 종교개혁의 문제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독일의 봉건 제후의 지배자들이 편들기 시작하여, 종교개혁은 로마 교황의 음험한 권력에 대한 독일인의 정치적 반역이 되었다. 1521년 보름스 의회 이후 루터는 10개월 동안 몸을 숨기고 모국어로 된 신약 성서를 펴냈다.      

   

(5)   인간이 빠지기 쉬운 오류에 대한 베이컨의 설명

 

351 인간이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오류에 대한 베이컨의 설명은 그의 철학 가운데 가장 빛난다. 우리는 네 가지 타입의 정신적 약점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것을 우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다. 희망적 생각이 그 한 예일 것이다. 특히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으로 큰 질서를 자연 현상에 기대하는 것이 그렇다. 다음에는 동굴의 우상이다. 이것은 각 개인적인 왜곡을 말하는 것으로 그 수는 무한하다. 시장의 우상은 정신이 언어에 현혹되기 쉬워지는 경향 때문에 야기되는 오류로 특히 철학에 유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은 체계나 사상의 유파에서 일어나는 오류다. 베이컨은 아리스테텔레스 철학을 이에 대한 예로 든다.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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