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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9일 10시 11분 등록

서양의 지혜

버트런트 러셀 / 정광섭 옮김

 

1. 저자에 대하여

1872년 5월 18일 영국 웨일스의 와이 강 기슭 트렐렉에서 성운의 모습이라 여겨질만한 한 사람이 태어났다. 바로 버트런트 러셀이다. 그의 조상은 영국의 대표적인 귀족 베드퍼드 공작, 조부는 빅토리아 왕조의 총리를 두 번이나 지낸 존 러셀 백작이다. 아버지는 앰벌리 자작, 어머니는 캐서린이다. 그는 5세 이전에 어머니와 누나, 아버지의 죽음을 겪는다. 형과 단 둘이 남아 4세 때 조부모에게 맡겨진다. 18세까지 14년동안 조부모 집에서 보낸다. 참고로 러셀 집안 사람들이 학구적이고 내향적인 성품인데 반해 외가 사람들은 활동적이고 외향적이었다. 그의 형인 프랭크는 외가를 닮아 펜블럭 저택(조부모의 집)의 폐쇄적인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 반대로 러셀은 친가의 기질을 이어받아 얌전하고 학구적이었다.

11세에 그는 처음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웠다. 그리고 16세에 크라마(속성학원)에서 공부했다. 18세에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고, 수학을 전공했다. 22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 주재 영국대사관 명예직원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그 때 여자를 만났다. 바로 첫 부인인 앨리스 피어솔 스미스다.

24세 때부터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의 삶은 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나이와 책을 분류해서 한번 살펴보자.

나이

24세

『독일 사회민주주의』

28세

『라이프니츠 철학의 비판적 해설』출간, 『수학의 원리』의 저작에 착수

30세

『자유인의 신앙』, 『러셀의 이율 배반』

31세

『수학의 원리』 상권 출간(하권은 내지 못함

38세

『프린키피어 마티마티커』(수학의 원리) 제1권, 『철학평론집』출간.

40세

『프린키피어 마티마티커』제2권 출간, 『철학의 모든 문제』출간

41세

『프린키피어 마티마티커』제3권 출간.

42세

『외계의 인식』『철학에서의 과학적 방법』출간

44세

『전쟁 중의 정의』, 『사회재건의 원리』출간

45세

『정치의 이상』출간

46세

『수리철학 서설』, 『정신분석』집필. 『자유에의 길』출간

47세

『수리철학 서설』출간

48세

『볼셰비즘의 이론과 실천』출간.

49세

『정신분석』출간

50세

『자유사상과 관료적 선전』출간, 『중국의 문제』출간

52세

『볼셰비즘과 서양』, 『어떻게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가』, 『과학의 미래와 문명 파괴의 위협』출간

53세

『상대성의 ABC』『나의 신념』

54세

『교육론』출간

55세

『물질분석』『철학개론』『러셀선집』

56세

『회의 평론집』출간

57세

『결혼과 도덕』출간

58세

『행복의 정복』출간

59세

『과학적 전망』

60세

『교육과 사회질서』

62세

『자유와 조직』

63세

『종교와 과학』『게으름 예찬론』

64세

『평화에의 길』

66세

『권력론-새 사회분석』

68세

『의미와 진리의 연구』

73세

『서양철학사』

76세

『인간의 지식, 그 범위와 한계』

77세

『권위와 개인』

78세

『반속 평론집』/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81세

『교외의 악마』

82세

『윤리와 정치에서의 인간사회』, 『저명인의 악몽』

84세

『자전적 회상』

85세

『정열의 회의자』

86세

『버트란드 러셀의 베스트』, 『회의의 의지』, 『러셀, 흐루시초프․\델레스의 중요 서간집』

87세

『나의 철학의 발전』,『상식과 핵전쟁』,『위기의 철학』,『신사와 학자와 악당』

88세

『서양의 지혜』, 『버트란드 러셀, 본심을 말한다』

89세

『사실과 허구』『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

91세

『인생의 여러 문제』, 『정치의 이상』,『무기 없는 승리』

92세

『베트남에서의 전쟁과 잔학행위』

95세

『자서전』『베트남 전쟁범죄』『러셀 기념 논문집』『버트란드 러셀의 보존 기록 문서류집』

96세

『자서전』제2권, 『침묵의 죄에 항거하여』『베트남전쟁 범죄재판의 전기록』『윌슨 씨, 두려움 없이 베튼마문제를 러셀에게 말하다』

97세

『자서전』제3권, 『삼가 버트란드 러셀님에게』출간.

 

정말 대단하다. 말이 필요 없다.

 

나는 러셀에 휴머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았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러셀은 인생을 어떻게 봤을까? 그는 인생에 대하여 항상 미래지향적이었으며, 결코 과거에 부당하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가 언제까지나 정신적으로 젊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인생에 대하여 전향적인 이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러셀은 인생을 강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인간의 존재를 강물에 비겨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처음에는 작고, 좁은 둑 사이를 흘러가고, 세차게 바위에 부딪쳐,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그 사이에 차차 강폭은 넓어지고, 둑은 뒤로 물러가 물살이 훨씬 완만해지고, 마침내 어느새 바다로 흘러들어감으로써 아무 고통도 없이 개인적 존재를 소멸시키게 된다.

오늘날과 같이 인간이 소외된 상황에서 인류가 살아갈 희망을 잃고 있을 때, 인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전진할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에너지가 외계에 대하여 흥미를 촉진함으로써 인간을 그 불행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이다. 러셀은 인간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중시한다.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구비해야 할 성격으로, 러셀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이 생명력 곧 바이탤리트(vitality)이다. 그가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완벽에 가까운 건강을 유지한 것도, 젊은이 못지 않은 활력으로 평화운동에 몸을 바칠 수 있는 것도 그가 무한한 생명력을 지녔던 증거이다.

러셀의 인생에 대한 사고방식은 생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한, 이 적극성과 창조성 그리고 건설성에 의하여 그의 인생론은 지탱이 된 것이다. 인생론이란 인간의 이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인생론은 희망과 이상에 결부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가능성을 탐구하여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하나 또는 몇 가지를 선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러셀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사랑의 능력을 얻어 나아가서 전인류의 갖가지 웅대한 희망의 능력을 건설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인간의 가능성에 큰 신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혁혁한 광채에 빛나는 대전당을 건설하여, 거기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가진, 가능한 한 찬란하고 위대한 것이 그늘에 가려지지 않은 빛을 발하여 사람들의 감정을 기쁘게 하고, 사상을 명석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p12 우리는 한 사람의 철학자를 무시하기 전에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철학자 뿐만 아니라 우린 타인을 무시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의 사정은 어떤지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

p15 마지막으로 우리는 철학의 한 가지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수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논증을 위해 수의 과학이라고 사전적 정의를 내려줄 수 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술이라면, 질문자가 설령 수학을 모른다고 해도 그 사람은 쉽게 이 진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명확한 지식이 존재한다면 어떤 분야에서든지 이런 식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은 정의 내릴 수 없다. 어떤 정의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이미 철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나타난다. 철학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철학을 하는 것이다. 옛날사람들이어떻게철학을했는지보여주는것이이책의주된목적이다.

책의 서문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 내 책의 목적!

p15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과학은 어떤 해답을 주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은 점쟁이가 이미 준비한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탐구하고 때때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과업이다.

p16 결국 철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제1장 소크라테스 이전

p18 오늘날의 철학과 과학은 그리스인이 발명한 것이다.

그리스의 위대함.

우리가 역사적인 존재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 오늘날의 철학과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린 ‘그리스’로 가야 한다.

p18 둑이 터진 것 같은 이 지적 활동을 낳은 어머니, 곧 그리스 문명의 발흥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눈부신 사건 중의 하나이다. 이와 같은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불과 200년이라는 짧은기간에 그리스인들은 예술, 문학, 과학 및 철학 분야에서 서양 문명의 총체적 기준을 정하는 갖가지 걸작들을 놀라울 정도로 연이어 탄생시켜 나갔다.

p18 철학과 과학은 기원전 6세기에 밀레토스의 탈레스에서 시작되었다.

p22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것은 그리스 정신의 긴장 상태를 상징한다. 한편에는 질서 바르고 합리적인 면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제어할 수 없는 본능적인 면이 있다. 전자는 철학, 과학, 예술을 낳았고, 후자는 풍년 기원과 결합된 비교적 원시적인 종교 속에 나타난다. 이 요소가 호머에서는 잘 제어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p23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하나의 카타르시스, 즉 정서의 세척이라고 한 말은 옳다. 결국 그리스인의 성격에 두 가지 면, 즉 질서 바르고 합리적인 면과 제어할 수 없는 본능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세계를 변혁시킬 수가 있었다. 니체는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어느 것이나 그 중 한 가지만으로는, 그리스 문화가 비상하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p24 그리스어로 ‘사색’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무엇인가 ‘보고 돌아다닌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p24 서양의 문명은 그리스에서 나왔지만, 2500년 전 밀레토스에서 시작된 철학적, 과학적 전통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이 점에서 서양의 문명은 다른 위대한 몇몇 문명들과는 다르다. 그리스 철학의 바탕에 있는 근본 사상은 로고스이다. 이것은 특히 ‘말’과 ‘규칙’을 뜻한다. 이와 같이 해서 철학적 추론과 과학적 탐구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 결부에서 나오는 윤리의 가르침은 지식을 선으로 보지만, 이때 지식은 사심이 없는 탐구의 결과이다.

p25 살아남는다고 하는 문제는, 첫째로 인간이 자연의 힘을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27 최초의 과학적 철학자들이 밀레토스에서 생겨났다.

(밀레토스의 탈레스 : 논리적인 진보 지식이 아일랜드의 물질주의에 전해진다. 탈레스는, 모든 사물을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으나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p28 (탈레스는 이집트의 경험적, 실용적 지식을 바탕으로 최초의 기하학을 확립하였다.)

그가 기하학에서 삼각형의 닮은꼴에 관한 정리를 세웠는가의 여부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나 탈레스가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는 데 사용하는 이집트식 경험법을, 바다위의 선박의 거리나 그 밖의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의 거리를 재는 데 사용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일들로 볼 때 그는 기하학의 규칙이 일반적으로 무엇에든지 적용할 수 있는 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보편성에 대한 관념은 독창적이며 그리스적이다.

p32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해답이 아니라 제기된 문제이다.

p33 철학자들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 그들이 살고 있던 도시의 국가 종교와 충돌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운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립적인 정신을 갖는 사람에게 닥치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p34 철학상에서 이 새로운 정신의 선구자는 사모스 태생의 피타고라스였다.

p35 한편 피타고라스학파는 과학적인, 그중에서도 특히 수학적인 전통을 낳았다. 피타고라스 이론의 진정한 계승자들은 수학자들이었다. 오르페우스의 부활에서 생기는 신비적 요소에도, 피타고라스학파의 이러한 과학적 측면은 실로 종교적 관념 때문에 그다지 왜곡되지는 않았다. 과학 자체는 종교적 성격을 띨 수 없다. 비록 과학적인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일이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p35~36 피타고라스학파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영향에서 나왔을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이른바 음정의 단순한 수적 관계를 발견했다. 현을 조율하여 그 길이를 반으로 줄이면, 1옥타브가 높은 음이 난다. 마찬가지로 길이를 3/4로 줄이면 제4도의 음이 나오고, 2/3으로 줄이면 제5도의 음이 나온다. 제4도의 음과 제5도의 음은 하나가 되어 1옥타브, 다시 말하면 4/3*3/2=2/1가 된다. 이리하여 이들 음정은 2:4/3:1에 해당한다. 조율된 현의 세 음정은 세 가지 생활방식이 비교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여전히 사변(思辨)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만, 조율된 현이 그 후 그리스 철학 사상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균형의 의미에서 조화의 관념, 대립하는 높낮이의 조율, 윤리학상의 중용 또는 중도의 개념, 네 가지 기질설, 이 모든 것은 결국 피타고라스의 발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상의 대부분은 플라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p36 음악상의 발견이 ‘모든 것은 수’라는 관념과 서로 통했다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와같이우리주변의세계를이해하기위해서는사물에서수를찾아내야한다.일단수적구조만파악하면,우리는이세상을지배하게된다.이는실로중요한개념이다.

p42 우리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말은, 우리의 존재의 단일성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후에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존재는 하나의 끊임없는 생성이라는 것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강물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오늘 템스 강에 들어갔고 내일 다시 들어간다면, 내가 들어간 강은 같은 강이지만 물은 같지가 않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에 의해 우리는 대립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한 상태에 있는 서로 다른 본질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p44 지혜를 쟁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사물의 기본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p45 지혜란 만물에 공통된 이 기본 공식을 파악하는 데 있다.

이 보편적인 공식, 즉 로고스는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에 눈이 어둡고 마치 각자가 자신들이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와 같이 이 공통된 공식은 여론과는 인연이 멀다.

p50 헤라클레이토스 : ‘사람의 성격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날카로운 통찰은 2000년 후에 프로이트에 의해 증명되었다.

p52 만물을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 : 세계는 ‘흙, 물, 공기 불’로 이루어졌다는 엠페도클레스의 설은, 그로부터 2000년 후에 그려진 중세이 회화에 표현되었다.

p54 엠페도클레스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추종자인 크로톤의 의사 알크마이온에게서, 건강은 상반되는 구성 요소의 올바른 평형 상태며, 질병은 그 중 어느 하나가 우세해질 때 생긴다는 이론을 이어받았다.

p58 그리스인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기 때문에 같은 시대의 아시아인들과는 전혀 달랐다. 아시아에서 신으로 여겨지는 법률이 지배자의 권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데에 반하여, 그리스인들은 법이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어떤 법률이 시대에 부합되지 않으면, 대중의 합의로 이를 개정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법률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한, 사람들은 법률에 복종해야 했다. 이 준법 정신의 고전적인 예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의 사형 선고를 받고 도망갈 것을 제의받았을 때, 이를 거절한 데서 여실히 나타나 있다.

p60 올림픽 경기는 그리스인들이 육체에 가치를 부여한 살아있는 표시였다. 이것은 조화를 강조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인간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가지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모두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p66~67 피타고라스의 수의 이론

수는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단위는 점으로 표시되어 공간적 차원을 갖는 것으로 여겨졌다. (중략) 이 문제의 요점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극한점에 가까운 유리수의 근사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이론은 근대의 극한점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동일하다.

p68 후기 피타고라스학파는 영혼에도 조화의 개념을 적용시켰다. 이 견해에 따르면 영혼은 육체의 하나의 조화이며, 영혼은 육체의 잘 정돈된 상태의 함수이다. 육체의 조직이 무너지면 육체는 분해되고 영혼도 분해된다.

p74 제논의 논증 중에서 운동에 대한 네 가지 역설이 가장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도 파르메니데스 이론을 간접적으로 옹호한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자기 이론으로는 운동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 더 좋은 것을 제시할 책임이 있었다. 이 논증은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불리한 조건이 주어진 경주를 할 경우, 아킬레우스는 결코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거북이 경주로의 조금 앞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그 후 아킬레우스가 거북의 출발점까지 달려가도 거북은 그보다 약간 앞으로 가 있다. 아킬레우스가 이 새로운 지점까지 다시 뛰어갔을 때 거북도 또 약간 우세한 지점에 있을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 있었던 위치에 도달할 때마다 느린보 거북은 앞으로 가 버린다. 물론 아킬레우스는 점점 거북에게 접근하기는 하지만, 거북을 결코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p74~75 이 결론의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시하기란 어렵지 않지만, 이 논증이 피타고라스학파의 단위에 대한 학설을 반대하는 이론으로써 아무런 결함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p78 우리 주위의 변화하는 세계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 근거 자체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 설명의 본질이다.

-> 이 의문에 마지막으로 해답을 준 인물은 밀레토스학파의 사상가 레우키포스였다. 그의 이론은 일자와 다자의 타협이다. 레우키포스는 무수한 구성 분자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그 하나 하나는 파르메니데스의 구체와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고, 단단하고, 분할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원자’, 곧 자를 수 없는 것이었다. 원자는 끊임없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을 움직이고 있다. 원자는 모두 같은 구조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으나 모양은 다를 수 있다. ‘원자적’이라고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수학적으로는 점유하는 공간을 무한히 분할할 수 있다. 원자가 보통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작기 때문이다. 이제 그 생성 또는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세계가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것은 원자의 재배열 때문이다.

p86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 사색에 잠긴 고독한 인물의 모습이 나체인 것은, 인간이 내성적이며 자의식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제2장 아테네

p92 ‘선’, 윤리 용어 정의, 중용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이들 의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주어지지 않았으나, 이들 의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식을 구하려는 일이다.

p93 ‘아이러니(irony)’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인데,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영어에서의 ‘삼가서 하는 말(under statement)’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으며, 아는 것은 무한한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단

우리가 이런 점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마음 속에서 우러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p95 신만이 현명하며, 사람의 지혜는 쓸모없는 것이며, 자기처럼 자신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크라테스) 그래서 그는 지혜자인 체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이 때문에 그는 가난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신탁에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려 애썼다.

p95~96 소크라테스는 법정을 향해서 자기의 의무는 국가와 충돌하는 위험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탐구하라는 신의 명령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이 태도는 우리에게 분열된 충성의 문자가 그리스 비극의 커다란 주제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는 국가의 등에(gadfly)라고 말하고, 언제나 자기를 인도하는 마음 속의 소리에 대해 언급한다. 이 내면의 소리는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금지는 해도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는 않는다.

(*등에 : 등에과 벌레)

p99 아카데미의 과목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전통적 과목과 비슷했다. 수학, 2차원 및 3차원 쌍방의 기하학, 천문학, 음향 또는 화성학이 기본 교과 과정이었다. 피타고라스학파와 깊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수학이 크게 강조되었다. 학교 입구에는 이 과목이 싫은 사람은 누구나 입학을 삼가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들 과정의 교육에는 10년이 걸렸다.

(플라톤이 창립한 아카데미 :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암기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고, 필요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장려되었다.)

p100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이성의 빛에 비추어, 혼자서 사물을 생각할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 그는 일반적으로 세계는 너무 복잡해서 이것을 짜맞추어 미리 생각한 학문적 틀에 끼워넣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p110 이데아론이 피타고라스에서 나왔다고 하는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앞에서 이 이론이 수학에서 대상을 증명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수학자는 삼각형에 대해 정리를 확립할 때, 실제로 어떤 도형을 종이 위에 그릴지는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도형은 어느 것이나 수학적 고찰을 벗어나는 불완전한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열심히 정확한 직선을 그리려 해도, 그것은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완전한 직선은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형상이 느낄 수 있는 대상의 질서와는 다른 존재의 질서에 속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p115 플라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은 교육이 의외로 만능약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내 줄 뿐이다.

p118 그리스의 철학자가 참다운 교육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이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일이다.

p119 그러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능력은 개인의 노력과 이들 노력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지도자의 도움으로 얻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이란 교사의 인도를 받으면서 혼자 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영혼이 육체 안에 있기도 하고, 육체 없이 존재하기도 한다면, 배우는 지식은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답식의 논법이 중요하다.

p120 참다운 교사는 절망적인 학생을 만나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실제로 교사와 학생 모두 노력을 기울여랴 한다는 것이 교육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p121 소크라테스에게 교육이란 넓은 뜻에서 영혼의 치료였다.

p124 이성적인 원과 동물적인 원이 교차하는 부분이 인간을 의미한다.

p127 가설을 세우는 방법 : A, B, C 는 의미 있는 것으로서 소생 되어야 할 형태들이다. 그런데 H는 C를 구하지 못하고, X는 H를 파괴한다. 따라서 H2는 형태들을 구하는 가설이다.

p130 이 대화편의 제목이 된 테아이테토스는 산술과 기하학 두 분야에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2차 방정식을 산출하는 일반적 방법을 발명하여 정육면체의 이론을 완성했다.

p137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잘못 파단하여 오류를 당할 수 없거나 불가사의하므로 독자는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해결법을 알면 이 정도의 문제는 이해할 수 있다.

p139~140 플라톤은 현대 과학 최대의 전통적 선구자로 나타난다. 모든 물체를 기하학에 환원할 수 있다는 견해를 분명하게 밝힌 인물은 데카르트이고, 그 방법은 다르지만 아인슈타인도 그랬다. 플라톤이 사물을 네 가지 기본 원소에 국한시켰다는 것은 물론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규제이다. 이와 같은 선택을 한 이유는 당시에 이런 사상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하려고 한 것은 현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하기 위해 이 관점에 대한 ‘로고스’, 즉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었는데, 그가 사용한 가설은 수학적이다. 우리도살펴본것처럼세계는궁극적으로수에의해사고할수있다는것이플라톤이받아들인피타고라스학설의일부였다.이와같이우리는물리적설명을위한수학적모형을갖게된다.방법상이것이야말로오늘날수학적물리학의목표이다.

p141 수학자의 말을 들어보면, 수는 형상이나 자갈과는 다르다. 그것은 두 개의 거의 중간의 것이다. 수학자가 합한다는 것은 더해지는 것이 모두 동일하기만 하면, 특정하지 않은 한 종류의 물건, 즉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좋다. 이 모든 것은 프레게와 후에 화이트헤드와 내가 내린 수학의 정의에 의해 매우 분명하게 들어난다. 예를 들어, 3이라는 수는 세 개가 한 짝을 이룬 것을 말한다. 이 짝은 사물의 한 종류이다. 다른 기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2라는 수는 두 개가 한쌍을 이룬 것으로 두 짝은 한 종류의 사물이다. 한 종류의 세 짝과 두 짝은 더할 수 있지만, 3이라는 수와 2라는 수는 더할 수가 없다.

p142 아카데미의 새 교장 스페우시포스는 플라톤의 수학적 경향에 강한 공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수학 이론을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했고 가장 싫어했다.

p146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검토하기가 힘들다. 이유는 그것이 그의 저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며, 분명한 증거가 조금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이른바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지 않았다는 것에 처음부터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형이상학’이란 문자 그대로는 ‘물리학의 뒤’라는 뜻일 뿐이다.

p149 변화는 실체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 이 실체는 차례로 현실이 되어 가는 일련의 성질을 잠재적으로 품고 있다. (가능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

p150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의 분명한 한 가지 특징은 증명의 관념이다.

하나의 명제를 증명하는 과정에는 논증의 구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훨씬 이전에 이루어지고 있던 일이었다.

형식을 갖지 않은 논리란 없다는 것을 바로 강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p153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과학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술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는 그것을 공리라고 불렀따. 공리는 설명되자마자 명확하게 이해되기만 하면, 반드시 경험을 거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과학적 탐구의 과정보다도 오히려 일련의 과학적 사실의 진술과 관련이 있다.

p154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리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마음에 두었으리라고 여겨지는 것은 기하학이다. 이것은 그가 살았던 당시에 체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따. 아리스토텔레스와 유클리드 사이에 놓인 세월은 불과 수십년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에 기하학만큼 내세울 수 있는 단계에 이르던 과학은 전혀 없었다. 여러 가지 과학을 그 어떤 계층 질서로 배열할 수 있다는 사상은 당연히 이런 사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수학은 최고의 위치에 있다. 천문학은 수학 다음이다. 천문학이 관찰하는 운동을 밝히기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155 논리학은 존재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존재하는 것을 아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p158 탈레스 시대부터 누구나 자기는 세계의 참다운 움직임을 마침내 발견했다고 생각했으며, 이와 같은 기분으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p160 현시점에서 미래에 일어날 일에 거는 희망이 우리 행동의 동기가 된다. 이것은 동물에도 해당되고, 식물까지도 해당되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이때 분명히 합목적성은 생물학적, 사회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시시한 것은 아니다.

p167 윤리적 문제는 우리가 인간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물을 때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목적을 이성적 영혼의 행복에 두고, 이것 또한 이것대로 연속적으로 덕에 의해 움직이는 자주적 이성 활동의 삶을 암시해 준다고 보았다.

영혼은 합리성, 민감성, 그리고 자양분이라는 재능을 지녔다. 사람은 이 재능들 중 셋을, 동물은 둘을, 식물은 하나를 지닌다.

p175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예술은 모방이다. 그의 분류는 우선 음악과 무용과 현대적 의미에서의 시를 한 묶음으로 놓고, 그 밖의 것에 그림과 조각을 분리한다. 모방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방식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시가 서로 구별된다. 모방이란 무엇인가는 한 번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이 관념은 물로 이데아론 이래 귀에 익은 것으로, 거기에서는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을 모방한다고 한다.

p177 비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감을 세탁해서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카타르시스’를 뜻하는데, 자기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대리 경험하면 영혼은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비극에는 치료적인 의도가 있다. 이 용어는 의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피부병 자체의 치료, 즉 일종의 정신병리학적 예방 접종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비극의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공포와 연민이 항상 우리를 따라다녀야 한다는 것이 기정 사실처럼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옳은 말일 것이다.

p178~179 철학 문제가 과학적 탐구를 하면서 나오는 것을 필연적이다. 특히, 수학이 그렇다. 피타고라스 시대부터 산술과 기하학은 그리스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점에서 수학이 특히 중요시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수학 문제는 단순 명확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풀기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뜻으로 볼 때는 수학이 단순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수학의 일반적인 문제는, 예를 들어 생리학 문제 같은 것과 비교하면 단순하다. (중략)수학에서는, 비록 수학적 논증이 실제로 논쟁의 표적이 되는 일이 많고 오해받는 일이 흔히 있다고 해도, 증명의 기능은 다른 과학에 비해 분명히 뛰어나다. 셋째, 수학적 논증의 결론은 일단 올바르게 이해되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략) 수학은 수 이외의 사실로 비교할 필요는 없다. 이 확실성 때문에 모든 시대의 철학자는 수학이 어느 분야에서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의지가 될 만한 뛰어난 지식을 준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중략) 소크라테스에 이르러서 수학이 보편적인 일반 이론으로 발전한 데 반해, 플라톤의 경우에는 또다시 수학 분야에 국한되고 만다.

p181 유클리드는 이집트 왕한테서 기하학을 알기 쉽게 몇 시간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수학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유명한 말로 응답했따. 그러나 수학이 실제로 조금도 이용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학의 문제가 실제 문제에서 나오는 일은 그다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특수한 이론의 시작을 파내려간다는 것과, 이 이론을 그 자신의 진가에 입각해서 다룬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잘 구별되지 않는다. 유클리드가 수학상의 발견의 사회적 의미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의 결점을 비난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p186 결론적으로, 수학이 문제의 단순성과 구조의 분명성 외에도 미를 창조하기 위한 그 어떤 여지를 준다는 것은 아마도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제3장 헬레니즘

p193 마케도니아 청년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했다. “햇볕이 가리지 않게 거기서 물러나 주시오”가 그의 대답이었다. 알렉산더는 뼈저리게 깨달아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기회주의적인 생활 태도로, 취할 일이 있으면 양손을 벌리고 취하지만 기회가 사라졌다고 해도 불평하지 않고, 즐길때는 즐기지만, 운명의 장난은 냉소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가르침이 이와 같이 발전해서, ‘시니컬(cynical)‘이라는 말이 저 불명예스러운 의미를 띠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운동으로서 키니코스 철학은 여우언히 계속될 만큼 그렇게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p197 에피쿠로스에게 최선의 선은 쾌락이었따. 이것이 없으면, 선한 삶은 불가능하다. 문제의 쾌락에는 정신적 쾌락은 물론 육체적 쾌락도 들어간다. 정신적 쾌락은 육체적 쾌락을 관조하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그 이상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적 삶은 이것을 어느 방향으로 향한다 해도 자유다. 우리는 어느 정도 우리의 관조의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데 반해서, 육체적 삶은 대개 우리에게 강요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신적 쾌락이 유일한 이점이 있다. 이와 같은 견지에 서서 덕이 있는 사람은 쾌락을 추구하는 데 신중하다.

p206 그러나 박해는 항상 박해자의 약점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사회가 확립되면, 이단자를 박해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국가 안에서 역할을 다할 의무가 있따. 이 때문에, 윤리면에서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자유 의지와 결정론에 대한 어려움이 강조된다. 전반적인 스토아학파의 관점에 서면, 사람의 덕이나 악덕은 남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적인 문제라는 것은 우리가 살펴본 대로이다. 그러나 사회적 인간관에 서면, 각자의 윤리적 성질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매우 분명하게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p207 그리스는 세계의 지적 작업장이었으나, 자유 독립 국가로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한편, 그리스의 문화 전통은 멀리, 그리고 널리 전해져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서양 문명에 남겼다.

p211 그리스 전통 중 불경하고 기이한 성격은 헬레니즘 시대의 타락과 결부되어 고대 로마의 미덕을 저하시키는 데 다소의 역할을 했다. 특히, 해외 발전의 도래와 함께 많은 재물이 로마에 흘러들어오자 그것은 더욱 심해졌다. 순수한 그리스 영향은 힘을 잃어 특히 로마 시의 귀족 계급에 속하는 소수의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이와 동시에 신비적 특색이 여러 가지 미신적 신앙과 풍습을 보급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의 운명에 충분히 만족하지 않고, 자기의 힘에 자신을 잃게 됨에 따라, 비합리적인 힘은 우세를 나타냈다.

p215 플로티노스의 삼위일체 : 절대자(E), 철학적 정신 또는 ‘마음’, 그리고 끝으로 영혼. 그리스도교의 이론은 이 삼위일체 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p218 사람들은 ‘고대’ 세계의 철학적 노력의 흔적을 돌아보고, 그리스 정신이 총괄적 문제를 식별하는 데 대단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철학의 시작은 어려운 문제에 머리를 갸웃거리는 일이라고 플라톤은 말했다. 놀라움을 느끼는 이 능력이야말로 초기 그리스인이 이상할 정도로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탐구와 조사라는 일반 개념도 서양 철학을 형성한 그리스인의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물론 항상 힘든 일이지만, 서양 문명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리스적인 정신적 윤리에 입각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특색 중 또 하나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목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진리는 대단한 것은 아니라 해도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신성한 분위기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언어와 의미 전달이 매우 강조되었따. 하기야 거기에는 신비적 요소도 몇 가지가 있고, 그것도 훨씬 초기에 있던 일이다.

 

제4장 초기 그리스도교

p224 서방을 지배하게 된 그리스도교는 그리스와 동방의 종교가 섞인 혼합종교를 어느 정도 포함한 유대에서 나온 것이다.

p225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교도 신은 백성을 선택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종교에서 선택된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두 종교는 모두 신의 천지 창조에서 시작하여 무엇인가 성스러운 종국으로 나아간다는 같은 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메시아는 누구고, 메시아는 무엇을 이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몇 가지 있었다. 유대인들은 구세주가 앞으로 그들에게 지상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나사렛의 예수를 구세주로 받들고 있었다. 다만, 그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의 정의의 개념을 이어받아 이것을 이웃을 돕는 지도 원리로 삼는 동시에, 교리에 대한 주장까지 이어받았다. 후기 유대교나 그리스도교는 모두 본질적으로 신플라톤주의적인 내세의 관념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내세에 대한 그리스의 이론은 철학적이고 누구나가 간단히 이해할 수 없는 데 반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내세에 대한 관념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었다. 이 관념은 의로운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악인은 지옥의 불로 떨어진다며 그 속에 인과응보의 요소를 확실히 밝혔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개신교의 교리와는 다른 교리다.

p234 세 사람 중 마지막 사람인 아우구스티누스만이 철학자였다. 암브로시우스는 교회 권력의 대담한 주창자로, 국가와 교회 관계의 기초를 닦았으며, 이것이 중세기 내내 지속되었다. 히에로니무스는 처음으로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해 펴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과 형이상학에 사고를 집중했다. 종교 개혁에 이르기까지의 카톨릭교의 신학적 뼈대는 거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만들었고, 개혁된 종교의 지도원리도 아우구스티누스가 만들었다. 루터 자신도 아우구스티누스파의 수도 사제였다.

p238 죄의식은 구약성서 초기에는 국민적 결함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차차 개인의 오점으로 보게 되었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이러한 역점의 변화는 중대했다. 제도로서의 교회는 잘못을 저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죄를 범한 일이 있는 사람은 개개의 그리스도 교도였다. 개인적인 면을 강조한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선구자다. 카톨릭교에서는 교회의 기능이 유일하고 중대한 생명선으로 여겨지기에 이렀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양쪽이 다같이 중대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저주를 받은 죄 많은 존재로, 교회의 조정이 있어야만 구제된다. 그러나 종교 의식을 지켜도, 덕이 있는 삶을 보내도, 구원은 얻을 수 없다. 신은 선하고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구원을 준다는 것은 호의지만, 주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비난할 수는 없다. 나중에 이 예정설의 가르침을 유연성 없는 신교파 신학이 채택했다. 한편, 마니 교도가 주장한 것처럼 악을 실질적 원리가 아니라, 나쁜 의지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은 개혁된 종교가 이어받은 귀중한 가르침이었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책임 개념의 바탕이 된다.

p241 그리스인의 관점은 당연히 범신론으로 끝난다. 이 범신론에 입각하면, 신은 세계다. 이와 같은 사상의 경향은 어느 시대에서나 신비주의적 편향이 강한 사람들을 끌어당겼따. 이 견해를 가진 가장 유명한 대표적 철학자는 스피노자이다.

p246 사회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에는 그 어떤 상호 작용이 있다. 미신적 전통은 미신을 가지지 않는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할 것이다. 진취적 기상보다 금욕을 높이 평가하는 전통에서는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는 건설적인 정치적 조치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철학 문제는 그 배후에 있는 역사적 학식의 모든 재료가 없어도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사를 보는 관점은 대부분의 의문이 이전에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과거에 현명한 해답이 제시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있다.

 

제5장 스콜라철학

p256 7세기에 들어가자마자 유럽이 갑자기 암흑 속으로 던져졌다가, 4세기 후에 거기에서 빠져 나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고전적 전통의 영향은 비록 약간 불안정하고 한정된 것이었다 해도 어느 정도 살아 있었다.

p266 당시의 교회를 둘러싼 큰 문제가 두 가지 있었는데, 성직 매매의 풍습과 독신의 문제였다. 둘 다 어떤 면에서 그동안에 발달해 온 사제직의 지위와 연관이 있다. 사제는 종교상의 기적과 권능을 다스리는 사람이었으므로, 차차 세속적인 문제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영향은 사람들이 그 권능을 진짜라고 믿는 한 효력이 있었다. 중세 전체를 통해서 이 신념은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일단 권위의 맛을 알면, 일반적으로 좀처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유리한 지위에 선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강력하고 유력한 도덕적 전통이 없으면, 그들은 딴 생각을 하여 남의 돈을 착복할 것이다.

p277 종교적 열정이 십자군 운동에 공헌한 원동력이었는지는 모르나, 경제적 동기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p277 스콜라 철학은 하나의 운동으로 결론이 사전에 제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 철학과는 다르다. 그것은 정통 신앙의 궤도 내에서 작용해야 한다.

p285 한편, 토마스주의 방식은 일원론적 존재관을 가지면서, 인식 작용의 영역에서는 이원론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인식의 근원이 가정된다. 첫째는 여전히 우리에게 이성이 있고, 이것은 오관의 경험에서 사고의 양식을 얻어온다. 스콜라 철학의 유명한 공식에, 지능은 감각의 경험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있다. 게다가 거기에는 지식의 독립된 근원으로서의 계시도 있다. 이성이 합리적인 지식을 낳는데 반해서, 계시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준다. 사물 중에는, 전적으로 이성 밖에 놓인 것도 있어서, 이들을 파악할 때는 계시의 힘을 빌려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 그룹에 속하는 것은 오성을 넘은 신앙 개조와 같은 종교적 교리라는 특이한 관점이다. 신의 삼위일체성이나 부활과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이의 실례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는 계시를 통해서 자기를 맡기는 일이 있지만, 합리적 근거에 입각해서 변증법적으로 확립되는 수도 있어서 여러 가지로 이 명제를 증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중략) 아퀴나스에게는 계시의 진리는 자의적이며, 이성과 계시 사이에 모순이나 충돌이 없고, 따라서 철학과 신학 사이에도 대립은 없지만, 사실상 한쪽이 다른 쪽에게 남몰래 상처를 입히고 있다. 이성이 사실을 처리할 수 있는 곳에서는 계시가 덤이며, 계시가 사실을 처리할 수 있는 곳에서는 이성이 덤이다.

p290 프란체스코 수도회 학자 집안 출신인 로저 베이컨은 형이상학적 사고와 대조되는 경험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영향으로 중세풍의 사고방식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p291 성직자들이 사실상 거짓말이라고 알고 있는 문제에 관해 포고를 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손을 빼든가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권리도 없는 입장에서 싸움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계시는 변증법적 목록에 기재되지 않아야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사람들은 삶을 과학적 연구에 바치고, 동시에 신에 대한 각종 신념을 품을 수 있다. 토마스주의자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을 별도로 하고라도, 이와같은 증명을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약화시키고 있다. 종교적 신념 쪽에서 보면, 이것은 이성의 규준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며, 어떤점에서영혼은자기가좋아하는것에자유롭게충성을다한다는것을의미한다.

p298 아마도 가장 위대한 중세의 종합적인 사고는 단테의 저서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신곡>>을 썼을 당시, 중세는 실제로 해체되어 가고 있었다.

p300 종교의 힘이 사람들의 행동을 억압하는 걱정의 근원이 되었지만 교의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고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하자, 그 영향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p301 각 나라 국어가 번성함에 따라, 교회는 철학과 과학의 지적 활동에 대한 지배력을 어느 정도 상실했다.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생긴 탐구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어느 정도의 회의주의와 어울려, 사람들의 마음을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하거나 바꾸도록 가르쳤다. 이와 같은 경향은 모두 14세기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테는 이것을 표현하지 않고 있다.

p302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신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

(지금의 나와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쩌면 중세를 살다 지금 14세기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p307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주요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면,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인에게 인간은 물려받은 개인의 무거운 죄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그리스인에게는 속죄나 구원과 같은 문제는 전혀 없었다.

p308 인간이 신앙을 가진 뒤, 신앙 규율을 준수하는 것은 신의 은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첫걸음을 내딛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된다.

 

제6장 근대 철학의 융성

p312~314 중세의 쇠퇴기에서 17세기의 거대한 파도에 이르는 과도기에는 중대한 움직임 네 가지가 한층 눈에 띄게 된다.

첫째, 15, 16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이다.

둘째, 휴머니즘이라는 문화운동이다.

셋째,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넷째, 오컴의 비판으로 시작되는 경험적 연구의 부활에서 직접 나왔다. -> 과학분야는 위대한 진보를 이루었다.

p314~315 공업 기술의 응용면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둔 과학은 다른 종류의 위험을 만들어 냈다. 인간이 적당히 노력해서 적용하기만 하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 공업의 커다란 진보는 많은 머리와 손의 협력에 달려 있으며, 새로운 계획을 시작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자기 힘이 무한하게 보인다. 이 모든 계획이 인간의 노력을 수반하고 인간의 목적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자칫 잊기가 쉽다. 이 영역에서 현대 세계는 한도를 넘을 염려가 다분히 있다.

p316 인쇄술의 발견이 논의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그 축복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하는 것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허위도 진실처럼 간단히 인쇄되어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 놓인 재료를 군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언론과 비판의 자유가 있어서, 인쇄 문자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마음껏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유가 없으면, 우리는 차라리 문맹으로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대는 이제 인쇄술만이 매스컴의 강력한 수단이 아니므로, 이 문제는 한층 심각해졌다. 무선 전신과 TV가 발명된 이후, 보통 그런 자유가 쇠퇴할 염려가 없다면 끊임없이 경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식이 더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지구에 대해 지난날보다 더 올바르게 보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세계 발견의 항해가 서양의 기력과 모험심에 새로운 돌파구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p317 상반되는 두 가지 경향은 새로운 견해를 낳는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능력과 창의성에 자신감이 넘쳐, 인간은 이제 무대의 중앙에 선다. 그러나 동시에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는 그다지 당당한 것이 못 되었다. 무한한 공간이 철학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독일인 추기경 니콜라스 쿠자누스의 저술에 잠깐 나타났고, 다음 세기가 되자,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서 구체적으로 설며오딘다. 이와 마찬 가지로, 세계는 수학적인 틀에서 수립된다는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오랜 견해가 되살아난다. 이들 모든 사변에 의해서 사물의 현존 질서는 뒤집혀지고, 교회와 세속의 낡은 권위는 다같이 세력을 잃었다. 교회는 이단의 전파를 억제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잘 되어가지 않았다. 1600년, 조르다노 브루노가 종교 재판에서 화형 선고를 받은 일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전에도 가끔 있었던 것처럼, 현존 질서를 수호하는 사람들은 전복될까 두려워하여 감히 이견을 품는 사람에게 잔인한 선고를 내렸따. 그러나 이 판결은 오히려 현존 질서를 유지할 지위가 얼마나 불안전했떤가를 나타내고 있었다. 정치 분야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권위가 차차 나타나 세습하는 지배 권력은 더욱더 한정되어 갔다.

p320 르네상스 운동의 선두주자는 피렌체이다. 아테네 이외의 그 어느 곳도 이 정도로 균형을 이룬 예술가나 사상가를 낳은 곳이 없었다.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는 그중 몇몇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은 모두 피렌체 사람이었으며, 나중에 출현한 갈릴레이도 마찬가지였다.

p321 르네상스로 인해, 사람들은 교회의 교리 체계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여러 가지 고대 미신으로부터 구출되지는 못했다.

p328~329 에라스무스의 영향이 가장 오랫동안 인상 깊게 남은 분야는 교육이다. 인본주의 학문은 최근까지 서유럽식 사고 방식이 성행하고 있는 곳은 어디서나 중등 교육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 점에서 그의 문학 및 교육 활동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그는 출판자로서 자신의 저서에는 반드시 원전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아카데믹한 전문가보다는 오히려 광범위한 독자 대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국어로 글을 쓰지 않았다. 라틴어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그는 여념이 없었다.

p338 비례 수학은 우주의 구조를 푸는 만능 열쇠를 제공한다.

p339 이와 같이 사물의 수적 구조를 파악했기 때문에 인간은 환경에 대한 새로운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 어느 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인간을 신에게 가까이 가게 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신을 최고의 수학자로 보고 있었다.

p342 케플러는 천문학을 더욱 크게 발전시켰는데, 그는 젊은 시절에 티코 브라헤 아래서 배운 적이 있었다. 케플러는 관측 기록을 면밀히 조사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원궤도가 반드시 만족하게 현상을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궤도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중략) 마지막으로 태양에서 떨어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대한 회전 주기의 제곱비는 모든 행성이 동일하다는 것도 알았다. 이것이 ‘케플러의 세 법칙’으로, 이들은 코페르니쿠스 연구의 지침이 되어 있떤 피타고라스 학설과는 근본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다.

p343 케플러가 밝힌 행성 운동 : 케플러는 행성 궤도를 수학으로 해명하고, 관측만으로 행성 운동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p347 역학을 표현하는 수학적 수단은 미분법의 수많은 형식 가운데 하나인 미분 이론으로, 이것 또한 라이프니츠가 뉴턴과 관계 없이 발견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은 크게 발전한다.

p350 베이컨의 귀납법, 관찰을 강조한 점은 지나친 전통적 이성주의에 대한 해독제로서 귀중했다.

p351 인간이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오류에 대해 베이컨의 설명은 그의 철학 가운데 가장 빛난다. 우리는 네 가지 타입의 정신적 약점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것을 ‘우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다. 희망적 생각이 그 한 예일 것이다. 특히,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으로 큰 질서를 자연 현상에 기대하는 것이 그렇다. 다음에는 ‘동굴의 우상’이다. 이것은 각 개인적인 왜곡을 말하는 것으로 그 수는 무수하다. ‘시장의 우상’은 정신이 언어에 현혹되기 쉬워지는 경향 때문에 야기되는 오류로, 특히 철학에 유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은 체계나 사상의 유파에서 일어나는 오류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에 대한 예로 든다.

p356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이 두 가지 영향을 받고 이를 융합시켜 고대인과 같은 장중한 새로운 철학 체계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그는 마땅히 근대 철학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다.

p358 데카르트는 이성 자체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만, 이성을 잘 사용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다를 뿐이다.

수학은 그에게 그 연역의 확실성을 주었으나, 그는 아직 연역의 올바른 사용법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탁상 위의 학문을 버리고 여행을 시작했지만, 풍습이 철학자의 의견만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그는 자기를 통찰해서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고 마음을 굳혔다. 이어서 나오는 것이 앞서 말한 난로가에서의 추억담이다.

p359 우리가 빠뜨린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항상 철저하게 대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대수학을 기하학 문제에 적용했을 때 사용한 방법으로, 이와 같이 해서 오늘날의 해석기하학이 생겼다. 해석기하학을 철학에 응용하는 것은 나이를 더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데카르트는 느꼈따. 윤리학에서 우리는 딜레마 상태에 있다. 그것은 과학의 서열상 마지막에 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삶에서 바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실용적 기준에서 가장 좋은 생활 조건을 줄 만한 잠정적인 행동법을 채택한다. 그 결과 그는 자기 나라의 법률이나 관습을 지키고, 자신의 종교를 믿기로 결심한다. 일단 어떤 행동을 하려고 결정하면, 결단과 인내를 가지고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운명에 도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기를 억제하고, 자기 희망에 사물의 질서를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사물의 질서에 맞추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데카르트는 철학에 전념하기로 마음먹는다.

p359 데카르트의 방법은 형이상학으로 나가자, 저절로 그가 일관되게 품은 회의로 이끌려간다. 오감의 증언은 불확실하고,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수학은 의문의 여지는 없으나, 역시 수학까지도 의심해야 한다. 신이 우리를 일고나되게 헤매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의심하는 자가 인정하는 것도 자기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기본 공식,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바탕이 된다. 여기에 바로 형이상학의 분명한 출발점이 있다고 데카르트는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자기가 하나의 생각하는 존재며, 자연적 실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따라서 마찬가지로 육체와도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이제 더 나아가 신의 존재에 이르러, 본질적으로는 그 존재론적 증명을 되풀이한다. 신은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분명한 관념에 대해서 우리를 속일 수는 없다. (중략)

p361 데카르트 철학은 이와 같이 사고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출발점으로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 후 합리론과 경험론 두 진영의 유럽 철학에 영향을 끼쳤다.

p365 스피노자 : 사람의 눈을 피해 살았는데도, 그의 명성을 급속히 올라가, 그는 그 후에 많은 유력한 심취자와 편지를 교환하게 되었다. 이들 심취자들 중에 라이프니츠가 가장 중요했고, 두 사람은 헤이그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피노자의 저술은 많지는 않지만, 전에 거의 볼 수 없었을 정도의 집중력과 논리적 엄밀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신과 종교에 관한 그의 견해는 시대를 훨씬 앞질러 있었기 때문에, 그 윤리상의 이론을 구성하는 데는 엄격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시대나 그 후 100년 동안에도 죄악의 괴물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그의 최대 저서인 <<윤리학>>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죽은 후까지 출판 할 수 없었다.

p379 라이프니츠가 완전한 과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신뿐이라고 말할 때, 이미 암암리에 알았던 거싱다. 합리론적인 사상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이탈리아의 대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의 저서에서 볼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설명은 비코를 포함해서 신을 두려워하는 모든 그리스도 교도가 받아들일 만한 것이다.

비코에게는,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조건은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기본적으로 공식화하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즉 만들 수 있는 것밖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사실이라는 말을 그 원래 뜻으로 이해한다면 진리는 사실과 같다고 말함으로써 이와 같은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사실과 같다는 이론은 매우 중요한 결과를 미친다. 무엇보다 그것은 수학적 진리가 확실히 인식되는 이유를 제공한다. 인간스스로가추상적이며자의적인방법으로규칙을세워서수학을만들었기때문이다.우리는수학을문자그대로만들었기때문에이해할수있다.동시에비코는수학에의해서우리는합리론자가생각하고있을정도로,자연에대한지식을증가시킬수없다고생각하고있다.그는수학은추상적이라고생각했기대문이다.그가말하는추상이란말하자면경험으로부터물방울처럼떨어진다는뜻이아니라,자연과유리된것으로어떤점에서는인간의마음이만들어낸임의적인구성물이라는뜻이다.

p380 그러나 사상이란 가끔 그 영향을 의식적으로 보지 않고 느낄 수 있다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비코의 저서는 그다지 널리 읽힌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처락의 많은 발전의 싹을 품고 있다.

p385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언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언어를 분명하게 규정된 계산의 규칙으로 보는 극단적인 합리주의자의 관점으로, 이는 널리 퍼져 있는 분명하고 명확한 관념이 언어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라이프니츠의 방식이다. 이와 반대되는 방식은 완성된 그대로의 자연의 언어를 전달의 적절한 수단으로 보는 한편, 형식화하는 시도를 왜곡으로 보고 거부하는 비코의 방식이다.

 

제7장 영국 경험론

p389 사회적, 지적 분야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 사상은 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약간 막연한 이 말은 상당히 확실한 특징을 몇 가지 보여준다. 첫째,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신교적이었지만, 칼빈주의식으로 좁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훨씬 신교적이며, 각 인간이 독자적으로 신과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층 발전된 것이었다. 게다가 완고한 신앙은 장사에는 좋지 않았다. 자유주의는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키고 있던 신흥 중산층의 소산물이기 때문에, 귀족정치와 군주정치의 특권층이 지배하는 전통에 반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기본적인 경향은 관용이었다. (중략)

p396 로크에게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로크와 비슷한 것 같다. 내가 확신하지 않으면 알고 있다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나는 어떤 것도 확신을 갖기 힘들어 하고 있다. 나는 아는게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 100% 확신이 드는 것이 없다. 한가지 있다면 내가 지금 숨쉬고 있다는 것과 나는 언제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다. 그런데,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확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p400 듣기에 이상한 일이지만, 로크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뉴턴의 광범위한 정복과 결부되어 있다. 뉴턴 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결정적으로 폐기시키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로크의 정치 이론도 기발한 점은 없지만, 왕구너신수설을 부인하고 스콜라 철학의 자연법을 근대의 조건에 맞도록 변경하여, 새로운 국가관을 수립하려고 했다. 이 노력이 얼마나 과학적이었는가는 나중에 일어난 사건에 미친 영향에서 엿볼 수 있다. (중략) 독립선언문 중 “우리는 이들 진리를 자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구절에는 원래 제퍼슨이 초안에서 사용한 ‘신성하고 부정할 수 없는’이란 어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프랭클린이 이를 ‘자명한’으로 대체한 것도, 로크의 철학적 언어를 흉내낸 것이다.

p411 로크가 말한 관념 이론은, 심각한 많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신이 감각 인상밖에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때 버클리으 비판은 제1성질과 제2성질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설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p420 흄은 이 인과성 논의를 맺으면서,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규칙’을 몇 가지 정하고 있다. 첫재, 원인과 결과는 공간과 시간에 인접해야 한다. 둘째, 원인은 결과보다 먼저여야 한다. 셋째,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일정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이어서 나오는 몇 가직 규칙에는 밀의 규칙을 예시한다. 넷째, 우리는 동일한 원인이 항상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고 배웠는데, 이 원리는 우리의 경험에서 나온다. 이 결과에서 이어지는 다섯째, 몇 가지 원인이 동일한 낳은 경우, 이들 원인은 무엇인가 틀림없이 공통적인 것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섯째 규칙을 추론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과의 차이가 원인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나머지 두 규칙은 여기서 우리가 고찰할 필요는 없다.

 

제8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p427 낭만주의 운동과 계몽 운동의 관계는 어느 면에서 아폴로적인 태도와 대조되는 디오니소스적 태도를 상기시켜 준다. 이것은 르네상스와 함께 나타난 이상화된 고대 그리스의 개념에 뿌리를 둔다. 18세기의 프랑스에서 그것은 정서의 숭배 운동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은 합리론 사상가의 약간 차갑고 초연한 객관성을 반대하는 움직이이었다.

p428 낭만주의자들은 효용성을 버리고, 미적 기준에 의존했다.

p429 낭만주의는 특히 시인 사이에 지지를 받았다. 가장 유명한 낭만주의자는 아마도 바이런일 것이다. 바이런은 완전한 낭만주의자가 될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기존 인습에 대한 반역이 있고, 공공연한 무시와 멸시가 있고, 앞을 가리지 않는 대담함이 있고, 고귀한 행동이 있다. 그리스의 자유를 위해, 미솔롱기의 늪지에서 죽는다는 것은 고금을 통틀어 최대의 낭만적 제스쳐였다.

p434 1750년이 되어 비로소 루소는 작가로서 세상에 알려졌따. 같은 해, 디종의 아카데미는 ‘학문 예술이 과연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왔는가’라는 문제로 현상 논문을 모집했다. 루소는 명쾌한 논증으로 ‘아니다’고 답하여, 상금을 차지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문화는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러운 욕망을 가르치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욕구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아테네를 반대하여 스파르타를 좋아했다. 그는 과학은 속되고 나쁜 동기에서 나왔다고 해서 이를 비난했다. 문명인은 부패하고 있다. 진실로 덕을 가진 사람은 고귀한 야만인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불평등론>>(1754)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p438 칸트는 위대한 철학 저서를 통해 재물이 아닌 명성을 얻었다. 만년에는 정신력이 쇠퇴했지만, 쾨니히스베르크 사람들은 그를 자랑으로 여기고, 그가 세상을 떴을 때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철학자로서 이 정도의 영예를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칸트의 저서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데, 이 모든 주제는 언젠가 그가 강의한 것들이었다.

p445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 <<도덕적 형이상학>>에서 논의되는 윤리설을 간단히 고찰해보자.

의지는 행동이 인식의 이론적 과정돠 대비된다는 뜻에서, 실천적이라고 한다. 이론적과 실천적이라고 하는 두 말의 뜻은 각기 보는 일과 하는 일을 결부시켜서 그리스어 자체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경험내용이 결여된 순수하게 형식적인 원리만 남는다. 이것을 칸트는 정언적 명령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또다시 이성을 실천적으로 사용할 때, 이것을 이론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의 아프리오리의 종합 명제에 대응하는, 혼성된 개념이 나온다. (중략) 따라서 윤리의 최고 원리는 다음과 같은 정언적 명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의지를 인도하는 원리가 보편적인 법의 바탕이 될 수 있도록 항상 행동하라.”

p446 칸트의 윤리학의 바탕에 있는 정언적 명령이 형식 원리라는 점에서 우리는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이것은 이론적인 이성권에 속할 수 없다. 그것은 현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p452 독일의 관념철학은 헤겔의 손에서 최종적인 체계적 모양을 갖추었다.

p453 헤겔의 저술은 모든 철학 문헌 가운데에서도 가장 난해한 것 중에 하나이다. 이유는 논제의 성질 때문만이 아니라, 저자의 문체가 서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은 선명한 은유가 나와 개운한 기분이 들지만, 이것도 전체의 모호함을 줄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헤겔의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 사이에 칸트적인 구별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모든 인간 노력의 역사와 그 역사적 성격이 크게 강조된다.

p463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헤겔은 ‘절대자’가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견해로 볼 때 항상 사건 후에 생기는 철학 세계를 수립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이것은 <<법철학>> 서문에 인상적으로 표명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닥쳐오지 않으면 날지 않는다.”

p465 이 세상은 신성한 과학이 속해 있는 세계가 아니고, 우리의 세계 이외의 세계는 우리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관념론 체계는 가짜 개념이다.

p468 “최고의 윤리적 존재는 자기이며, 의지 결정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선택을 통해 인생을 창조한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결혼은 가장 중요한 개인적 결단 중 하나이다.

p470 한편 이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과대평가하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헤겔은 이성을 너무 존중해서 이성이 우주를 낳을 수 있다는 오류에 빠졌다. 키에르케고르는 정반대 의견을 내어, 이성은 우주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과학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낭만주의 최고의 원리와도 일치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낭만적인 삶의 방식을 외부 영향의 변화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라고 엄격하게 비판하지만, 그는 철저한 낭만주의자이다. 실존적 사고 양식을 가정하는 원리 자체가 이미 혼란에 빠진 낭만주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473 쇼펜하우어는 이 의지를 철저하게 악으로 보고, 삶에 고통이 반드시 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에게 지식이란 헤겔처럼 자유의 원천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근원이다. 이와 같이 쇼펜하우어는 합리론 체계의 낙관론 대신에, 행복이 깃들 수 없는 아주 어두운 견해를 가지고 있다. 성 또한 그에게는 악한 것이었다. 생식은 단순히 고통의 희생자를 새로 낳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여자 혐오증은 이 견해와 관련된다. 그는 이런 점에서 여자의 역할이 남자의 역할보다도 지나치게 과정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행복이 손에 닿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가 말년을 침울하게 보내고 있을 때 그의 저서는 인정을 받고 재정 사정도 조금 좋아졌다.

p474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결국 세계와 세계의 분쟁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라면, 니체(1844~1900)은 이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의 생각을 요약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일반적인 뜻에서의 철학자가 아니며, 자신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을 남기고 있지도 않다. 어쩌면 그는 문자 그대로의 귀족적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특히 하려고 했던 일은, 가장 뛰어난 인간, 즉 성격이 가장 건전하고 가장 힘찬 인간을 최상위로 밀어 올리려는 것이다.

p476 쇼펜하우어가 비관주의적 결론에 도달한 데 반해, 니체는 낙천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p478 니체가 무엇보다도 싫어한 것은 새로운 기술과 함께 성장한 새로운 형태의 대중의 출현이었다. 그에게 사회의 올바른 기능은, 귀족적 이상을 달성하는 위대한 소수인의 못자리 역할을 다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작은 물고기에 고통이 일어나도, 그에게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국가에는, 플라톤의 <<공화국>>의 이상국가와 다분히 공통된 점이 있다. 그는 전통적 종교를 노예 도덕의 지주라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자유인은 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인간형이다. 노예 도덕의 진부한 실례를 그는 그리스도교에서 들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내세에서의 보다 좋은 삶을 향한 희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관주의적이고, 온유함이나 동정과 같은 노예의 냄새가 나는 덕목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그너가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치우쳤기 때문에, 니체는 이전에 존경할 만한 친구로 여겼던 이 작곡가를 공격하게 되었다. 그의 영웅 숭배론을 보자면 맹렬하게 여성을 멸시하는 태도를 볼 수 있고, 여자를 재산처럼 다루는 동양의 풍습을 변호한다. 이 점은 니체 자신이 여성을 잘 다루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제9장 공리주의 이후

p485 모든 사람에게 읽고 쓰고 셈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사회 문제가 처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이 훌륭한 기능이 산업사회를 올바르게 운용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중략) 문제가 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제를 올바르게 다룰 수 없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p489 사회 비판에서 벤담은 18세기 유물론과 같은 선상에 있고, 훗날 마르크스가 줒아한 것을 대부분 예시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희생 도덕은 지배 계급이 자기 손으로 가진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해 부과하고 있는 정교한 속임수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희생을 기대하면서도 자기는 아무런 희생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에 반대해서 벤담은 공리주의를 주장한다.

 

p492 쾌락이란 바라는 것이라고 정의한 경우와 같이 평범한 의미를 제거한다면, 비록 욕망이 충족되어 실제로 내가 쾌락을 얻는다 해도 내가 바라는 것이 쾌락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옳지 않다. 게다가 거기에는 내가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을 대, 내가 이 욕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것이 나의 삶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가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p494 다윈의 저서 중 독창적인 점에서 훨씬 떨어지는 것은 진화론이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낙시만드로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윈이 한 일은 자신이 자연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자상한 사실을 대량으로 공급한 일이었다. 진화를 인정하는 그의 논증에는 고르지 못한 점이 있지만, 위대한 밀레투스학파의 논증보다는 확실히 바탕이 튼튼하다. 그러나 다윈주의 이론에 의해서 진화의 가설은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의 토의라는 넓은 무대에 올랐다.

 

p503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비록 역사의 변증법적 진화의 이론과 별로 맞지 않아도, 결국은 훌륭한 일이다.

 

p504 마르크주의 철학은 19세기가 낳은 위대한 마지막 체계이다. 그 호소력의 크기와 영향 범위는 주로 그 행동 게획의 혁명적 요소뿐만 아니라, 그 유토피아적 예언의 종교적 성격에 의존하고 있다.

 

p510 탐구는 어떤 종류의 불만이나 불안에서 생기는 것으로, 그 목적은 불안을 주는 영향이 제거되는 휴지 상태를 획득하는 데 있다.

퍼스의 주장에 의하면, 특수한 진리의 뜻에 대하여 어떤 진술이라도 진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결과를 수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술은 그 어떤 미래의 행동 가능성과 모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려고 하는 기질의 형성이 인정해야 한다.

 

p513 제임스에 의하면, 우리는 자의식을 물질 세계의 대상과 마주보고 있는 하나의 실재물이라고 하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p516 철학이 애초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을 때부터 수학은 늘 철학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사였다. 과거 200년 동안의 진보는 이것을 눈부시게 확증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와 뉴턴이 미적분학을 공식화했기 때문에, 18세기에는 수학상의 발명이 둑이 터진 것처럼 넘쳐났다. 그러나 수학의 논리학적 기초는 올바르게 이해되지 않았으며, 근거가 희박한 관념 몇 가지가 상당히 이용되고 있다.

 

p517 근본적으로 무한소는 원래가 수학이라는 벽장의 모든 비밀 중에서도 가장 곰팡내 나는 것 중 하나이다. 그것은 이와 비슷한 피타고라스학파의 단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논이 피타고라스의 이론을 어떻게 폭로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근대로 들어와서는 무한소 이론에 고나한 비판적 논평도 철학자로부터 나왔다.

 

p517 수학에서는 엄격한 시대가 19세기 초두에 시작되었다. 최초의 맹공을 가한 인물은 프랑스의 수학자 오귀스탱 루이 코시(1789~1857)로, 그는 극한에 대한 체계적 이론을 수립했다.

 

칸토어 이론 참고 (518~519)

 

제10장 현대 철학

p528 교육은 보통 특권적이거나 독점적이었지만, 그 후 대부분 이런 특권은 무시되고 말았다. 오늘날 통용할 수 있는 기준은 단 한가지 유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뿐이다. 이것 또한 다른 종류의 하나의 특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p529 라틴어는 키케로 시대부터 르네상스까지 학자, 사상가, 과학자의 언어였다. 가우스는 19세기 초기에 라틴어로 곡면에 관한 유명한 저서를 썼지만, 이것도 이미 약간은 진기한 일이었다. 오늘날 어느 분야의 탐구자라도, 자기 전문 분야에서 진행되는 일을 책에 남기고자 한다면, 모국어 이외의 언어를 두서너 가지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이제까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근대어가 결국 라틴어가 가졌던 이전의 기능을 다해야 할 것이다.

 

p531 과학적 노력의 범위가 거대해지면, 윤리적 성격을 띤 새로운 사회 문제가 생긴다. 과학자의 발견과 발명은 원래 윤리적으로는 아무 색깔이 없다. 이 문제는 발견이나 발명은 우리에게 좋게도 나쁘게도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러한 경고를 모조리 알린 후, 우리는 우리 시대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명의 전체 역사상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사태를 맞았을 때, 꿈과 진취성 넘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세상을 정상으로 되돌리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에 일어났던 상황과는 다른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 100년 동안, 서양은 사상 유례 없는 중대한 변혁을 겪었다.

 

p542 최고 형태의 본능은 직관이며, 직관은 세계와 직접 일치하고 있는 어떤 정신 활동이다. 지능은 경험을 왜곡하지만, 직관은 경험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

 

p547 프로이트는 망각 작용을 이것과 매우 비슷한 억압의 기구와 결부시킨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서워 잊어 버린다. 우리는 쉽게 잊는 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회상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p552 수세대에 걸쳐 사람들을 움직였던 지도적 관념은 진보의 관념이었다. 세계는 그때보다도 더 뛰어나고 더 개화된 상태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더욱이 서유럽은 온정이 넘치는 주인으로서 군림하고,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정치적․기술적으로 여기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가지 점에서 이 세계관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양은 정치적으로나, 공업이 주는 물질적인 힘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우세했다. 이상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넘치는 자신감과, 신도 지보편이라는 감정이었다.

 

p554 진보 사상에 의해 움직여진 이 시대 사람들에게, 확신을 갖고 앞날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정황은 안정되어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장래를 하나의 전체로 보는 것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계획은 전적으로 개인 문제였다. 사람은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사회적 지위와 몸의 안녕을 얻는다. 보통 인간적인 삶을 살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추세로 기품이 있고 책임도 중요시하는 개개의 시민이 자선을 베풀고 자발적인 원조를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회 복지의 규정에 대한 첫발을 내디딘 것은 묘하게도 비스마르크로, 그는 일종의 노동자 건강 보험을 도입했다. 이것은 반대당인 사회주의자를 앞지르기 위한 것이었다.

 

p557 이와 같은 광범위한 진보 발전은 여러 면에서 매우 빨리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없게 되었다. 우선 국제 간의 커다란 분쟁이 이전의 세기에 널리 퍼졌던 안정감을 어느 정도 뒤엎고 말았다. 전세기처럼 사물을 장기적으로 본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동시에 국가의 활동이 이전에는 개인의 것이었던 행동의 자유를 심하게 빼앗게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중략)

 

p563 사르트르 : 프랑스의 철학자․작가. 실존주의의 대표적 지도자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자기의 자유를 의식하면 사람은 불안을 갖게 되고, 그 불안에서 ‘불성실’로 피난한다고 생각했다.

 

p571 머지않아 시작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 이전에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뭉르 필요가 있다.

p576 중대한 몇 가지 점에서 서양의 철학적 전통은 동양 정신의 사고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을 제외하면, 하나의 문명에서 철학의 움직임이 과학적 전통과 손을 잡고 나아가는 것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인의 진취적인 기상에 독자적인 활약 무대를 주는 것이다. 이 이원적 전통이야말로 서양 문명을 형성해 왔다.

 

p577 탐구의 대상인 세계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의 잘못과 착각을 만들어 내고, 때로는 자기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어떤 신념이 옳다고 해도 이 신념은 우리에게 쾌락이나 위안을 주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무한한 재원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그를 만족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세상에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은행이나 법정은 전체적으로 그들처럼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탐구의 발견물이 때로는 오류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발견이 주관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류는 적어도 범죄자를 필요로 한다고 말해도 옳을 것이다. 자연 자체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 자연은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명제를 공식화하면서 오류에 빠진다.

 

p580 남은 문제는 진리의 추구가 좋은 일이라는 이 윤리적 원리를, 우리가 어떻게 취해야 하는가이다. 분명히 우리 모두가 반드시 과학적 탐구에 종사할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경우에 판단을 중지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자기가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보류시키는 자유를 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히 공정한 탐구가 또 하나의 선으로 여겨지는 자유와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용은 탐구가 왕성하게 되는 사회에서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탐구자를 진리가 이끄는 대로 가게 하는, 자유로운 사회의 위대한 추진자이다. 이 정도까지라면 누구나 여기서 문제가 되어 있는 선에 공헌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모든 일에 관해서 같은 의견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억지로 조성된 비평이 가로막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증 받을 수 있다.

 

인간에게 성찰하지 않는 삶은 정말로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차례

머리말

프롤로그

제1장 소크라테스 이전

제2장 아테네

제3장 헬레니즘

제4장 초기 그리스도교

제5장 스콜라 철학

제6장 근대 철학의 융성

제7장 영국 경험론

제8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제9장 공리주의 이후

제10장 현대 철학

맺는말

 

 러셀의 『서양의 지혜』는 서양의 지혜를 시대순으로 나열했다. 인물을 설명하고, 그 인물이 주장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서로 영향 받은 철학자들, 같은 시대에 살면서 서로 대립되었던 사상가들을 보여줬다. 그리고 전체적인 사회 흐름을 물 흐르듯 소개했다. 물론 사건 중심의 서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읽는 시간이 조금 권태롭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수학’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서 이해하는게 쉬웠지만 철학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는 어려웠다. 그리고 수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늘 문제를 풀어야만했었다면 수학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개념인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어려워 할 수 밖에 없는 학문임이 이해됐다. 또한 나도 수학적 사고를 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표시를 해두기도 했는데, 나의 책을 쓸 때 어떤 기본적인 것들은 이 책에서 많이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저자라면 사건 중심의 서술을 해서 더 재미있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맺는 말에서 저자가 이야기 했듯이 총론의 성격을 띠었고, 워낙 서양 철학의 역사가 길고 철학자도 많기 때문에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다보면 더 방대한 양이 되겠지만 말이다.

 아쉬웠던 점은 번역이 더 잘 되었다면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오타도 많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문장이 있어 그점이 아쉬웠다. 내 글은 좀 더 매끄러운 문장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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