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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9일 11시 53분 등록
 

서양의 지혜/ 철학이란 무엇인가

B. A. W러셀/ 정광섭 옮김


저자에 대하여

###<러셀의 생애와 사상>부분을 앞부분에 썼습니다.

20세기 거인 러셀 95세를 맞다

***러셀은 천재인가 광인인가? 상식적인 사람인가 비범한 사람인가? 흔히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들 한다. 어느 면으로 보면 천재적인 인간도 다른 면에서 보면 강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천재와 광인은 원래부터 정반대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평범한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공통적이다. (862P)

***러셀의 집안: 러셀집안은 헨리 8세 이래 오랜 전통을 이은 명문이다. 조부 존 러셀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진보적인 정치기로 영국에서 역사상 저명한 인물이며 훗날 초대 러셀 백작의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또 이 조부의 부인은 민트 백작의 딸이었다. 앰벌리부부의 큰 아들이 프랭크 러셀이고 그 다음 딸이 레이첼이엇으며 막내아들이 버트란드 러셀이다. 러셀집안은 대대로 영국의 명문 출신으로 평민의 피가 전연 섞이지 않았다. (868P)

***버트란드의 탄생: 1872년 신록의 향기 그윽한 5월 18일 웨일스의 트렐렉, 영국의 서남부를 흐르는 와이강에 가까운 집에서 태어낫다.

***버트란드 고아가 되다: 어머기가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낫다. 그로부터 18개월이 지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낫다. 아버지는 임종을 할 때 의사가 안고 잇는 러셀에게 다정하게 키스를 하며 “내 귀여운 아들아, 안녕”이라는 말로 고별을 하엿다. 그(871P0

***러셀은 3세부터 18세까지 15년동안을ㄹ 이 펜블럭의 조부모 집에서 보냇다.  러셀은 12세의 생일 날 할머니에게 성서 받았다. 그 속표지에 “군중이 하는 나븐 짓에 은둔하지 말라”는 글귀가 적혀 있엇다. 그는 이 성서를 평생 소중히 간직하엿으며, 이 말에서 받은 감명은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874P)

***러셀은 넓은 펜블럭 저택의 정원을 늘 혼자 산책하엿다. 그는 할머니에게 받은 청교도적인 교육에 의해 자기의 허물과 어리석음에 대하여 명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더욱이 같은 또래의 친구가 없기 때문에 말이 없고 내성적인 소년으로 성장하였다. (873P)

***러셀이 수학을 만난 것은 1883년 11세때이다. 그것은 아직 펜블럭에 함께 있던 형 프랭크가 그에게 유클리드 기하학을 가르칠 적부터였다. (874P)

***레셀은 지적 추구의욕은 수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학으로 발전하여 갔다. 그것은 조부 존의 서고에 있는 장서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는 틈만 있으면 서고로 들어가서 역사책으로부터 문학에 이르기까지 허기를 채우듯이 탐독하였다.

그는 바이런이나 테니슨을 비롯하여 많은 영국 시인들의 작품을 즐겨 읽엇지만, 특히 셸리를 발견한 그 기쁨은 너무나 컸다. (875P)

***러셀 케임브리지에 입학:1890년 10월, 러셀은 18세에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엿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케임브리지 안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으로 16세기에 창립한 뒤 베이컨, 뉴턴, 바이런, 테니슨 같은 대가들을 많이 배출하엿다. (877P)

***영국의 귀족이 평민출신과 결혼: 1894년 12월 13일 런던의 프랜드파 공회당에서 드디어 앨리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러셀은 22세, 앨리스는 27세엿다. 그는 귀족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딱지에 반항하여, 자기 배우자의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엿으나 결혼식은 퀘이커 격식으로 올렷다. (881P0

***독일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만나 그의 <자본론>을 독파하는 등 관심을 가졌다.  1896년 ,독일 사회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었다.

***1899년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하게 되엇다.

***러셀은 1910년 <프린키피어 마티마티커> 제 1권을 , 1912년엔 제 2권을, 1913년엔 제 3권을 출간하엿다.

불후의 명작 <프린키피어 마티마티커>는 어떤 책인가. 이것은 크게 나누면 철학적 분야와 수학적 분야로 나뉘고 러샐이 전자를 화이트헤드가 후자를 담당하엿다. d 책의 원래 목적은 순수 수학의 전체가 논리학적인 전제로부터 귀결하고 또 논리적인 명상에 의하여 정의되는 개념만을 슨다는 것을 나타나내는 것이다.(890P)

***러셀은 도보여행을 하는  낮에는 부드러운 칼라를 했으나 밤이 되면 어느 벽촌의 작은 숙소에서도 하이 칼라로 단정한 모습을 갖추었다.

그는 언제나 한꺼번에 네 잔의 차를 마시고 찻잔을 두 손으로 들고 손을 녹이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894P)

***1911년 러셀은 앨리스와 별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 별거생활은 10년간이나 계속된 것이다. (899P)

***러셀이 하버드대학의 기념강의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지 불과 몇 달 뒤에 일어난 제 1차 세게대전이 그의 생애를 크게 둘로갈라놓은 것이다. 대전이 일어난 후 러셀은 자기의 사상에 많은 오류가 있고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가 믿고 잇는 것처럼 합리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900P)

**프링스턴 감옥의 죄수 :일찍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을 강의하던 러셀이 이번에는 죄수생활을 하게 되엇다. 그가 호송된 것은 프링크스턴 감옥이고 그곳의 감옥등록부에는죄인 2917호, 성명 B러셀‘이라고 적혔다. 프링크스턴에 수감된 러셀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그의 독방은 형 프랭크의 아내인 엘맂베스의 옥바라지로 책상과 의자, 침대와 이부자리 등이 갖추어지고 서적이나 꽃도 들여와 불편함이 없엇다. 그의 독방은 보통보다 크기 때문에 1주일에 2실링 6펜스의 방갓을 치러야 했다.

그는 옥중의 일과를 작성했다. 그에 다르면 매일 4시간의 철학저술, 4시간의 일반독서로 되어있엇다. 볼테르에서 체호프에 이르는 일반독서와 프랑스혁명에서 티베트여행기까지이고 여기에 몇 가지 추리소설이 첨가되었다.

옥중의 러셀면회는 매주 동시에 세사람만 인정되엇다. 그래서 러셀은 친구중에서 서로 호흡이 맞을 것 같은 3인조를 고르는데 고심하엿다. 그리고 이런 면회자들이 오면 러셀은 그들과 뜰의 정자에서 마치 미국의 일등침대차라도 타고 있는것처럼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와 같은 러셀의 옥중생활은 우리의 보통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엇으나 그가 이 감옥에서 훌륭한 철학적 저술을 완성하엿다. 러셀은 이 4개월 반의 옥중생활에서 철학상으로 한 일은 ,수리철학과 서설>의 집필을 끝냈다는 것과 존 듀이의 ,실험논리학논집>에 대하여 자세한 서평을 썼다는 것이다.

러셀은 1918년 9월 전쟁 종결을 앞두고 석방되엇다. 옥중생활은 무엇보다도 러셀에게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실감하게 한 체험이엇다. 그가 감옥을 떠나기 직전에 쓴 글 가운데 다음의 구절은 마치 최상의 에세이라고 하는 ,자유인의 신앙>과도 비길마난 인간정신의 아름다운 증언의 하나일 것이다.

“심상(이미지)은 하나, 또 하나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알프스 산중의 새벽, 눈을 뒺비어 쓴 소나무 향기, 산의 목초지는 아침 안개에 반짝이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면 가르다 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아래에는 미친 집시의 웃음띤 눈매처럼 햇빛을 받으며 춤추고 번쩍거리며 지중해의 태풍, 짙은 쪽빛 바다, 저 멀리 아득히 코르시카 산들이 햇빛에 싸여보인다. 동화처럼 환상적으로.” (905~906P)


***러셀은 소련을 방문햇다. 그는 일찍이 독일에서 연구한 마르크스주의가 소련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관찰하려고 했다. 그는 공식대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때로는 의레적인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되도록 거리와 농촌으로 가서 일반 민중과 접촉하는데 힘섯다. 그리고 거기에서 기가 찾아낸 것은 민중의 비참한 가난이엇다. (909P)

***1920년 러셀은 도라와 함께 중국을 방문해 약 1년동안 강의를 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지냇다. 세게정세의 추세를 보며 중국이 장차 중요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을 재빨리 간파하였다. 그는 극동방문을 <중국의 문제>로 간행하엿다. (914P)

***러셀의 이 저작생활 중에서 가장 인간생활과 직결되는 남녀관게의 윤리, 결혼과 행복 등에 대하여 논한 것이 두가지 잇다. 그 하나는 <결혼과 도덕>이고 또 하나는 ,행복의 정복>이다. 특히 ,결혼과 도덕.이 그의 독자적이고 기발한 선풍적 인기가 주목을 끌게 되엇다. (920P)

***러셀의 저작 <게으름예찬론>은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자본주의는 자본가의 기업과 노동자의 노동에 의하여 발달한 것이고 그 당시로서는 근로와 절약은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직업윤리엿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 직업윤리를 떠나서 독주하게 되고, 노동자는 노동 r 자체에서 소외당하는 상태를 나타내게 되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그 뒤 대중사회라는 상황을 보이고 기계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노종시간을 단축하게 하였다. 이런 가운데 인간은 그 소외된 상황으로부터 극복을 노동시간 이외의 여가 속에서 찾아내려고 햇다. 이래서 노동과는 따로 새로운 여가가 현대적 과제로서 다루어지게 되엇다. (924P0

***비컨힐스쿨의 교육: 러셀은 보통의 퍼블릭스쿨에서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이 18세가 될 때까지 가정교사에 의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와 같은 일을 돌이켜 반성하면서 자기 아들은 세간의 일반학교에 입학시키려고 결심하엿다. 그렇지만 당시의 학교교육은 러셀의 교육적 양심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러셀은 1927년 피터즈필드에서 가까운 텔레그래프하우스 건물을 형 프랭크에게서 빌려 부인 도라의 협력을 얻어  비컨힐스쿨을 창설하엿다. 그의 근본 교육태도는 자유와 훈련의 적합한 조화였다. (929P)

**러셀은 현대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결함으로 경쟁의식이 지나친 점을 들었다. 원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쟁은 부득이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에 잇어서 경쟁은 어린이에게 안정을 빼앗고 또 공부의 진정항 기쁨을 앗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932P)

***비컨힐스쿨에서 교육상의 견해차이와 그 밖의 이유 때문에 러셀부부의 관게가 고였다. 두 사람의 이혼은 도라의 이혼소송에 의한 재판의 결과 정식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도라와 헤어진 러셀은 그 이듬해인 1936년에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그때 그는 64세엿다. 그 상대는 훨씬 전부터 그의 연구보조를 해온 매걸리 스펜스라는 여성이엇다. (934P)


****미국에서의 생활“ 1939년 9월 히틀러가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즉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 2차 세게대전이 일어낫다.

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에 러셀은 옥스퍼드에서 <언어와 사실.이라는 제목으로 연속강의를 하고 나서, 퍼트리새부인과 함께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갓었다. 그리고 나서 1944년까지 꼬박 6년간을 미국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미국에서 지낸 이 6년간이 그의 일생에서 가장 파란많고 불행한 시기가 되었다. (935P)

***러셀은 뉴욕시립대학으로부터 공식초청을 받았다. 이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임명하여 논리학, 수학기초론, 과학방법론 등을 중심으로 강의를 담당하도록 하려는 것이엇다. 그런데 러셀의 뉴욕시립대학 교수취임발표에 대하여 반대운동의 불길이 솟아오른 것이다. 유명한 ‘버트란드 러셀사건’이다. (937P)

***러셀은 미국에서 안팍으로 모진 역경에 시다리면서도 그 의기는 결코시들지 않앗다. 아무리 고난과 불행에 바져있어도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940P)

***파란많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걸작이 <서양철학사>이다. 그의 논리는 극히 명쾌하고 그 문체는 참으로 유려한 언어로 설명되어 있다. 러셀의 문장은 대표적인 명문이라는 말을 듣는다. (941P0

***1944년 초에 러셀은 전시하의 영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다. 모교인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그를 다시 부른 것이다. 미국에서 화물선을 타고 전쟁 속의 대서양을 출발한지 3주가 지나서야 고국땅을 다시 밟을 수 잇었다. (942P)

***러셀은 40대에 확고한 명성을 얻엇지만 제 1차 세게대전에서의 반전운동과 미국에서의 불행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거의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오랫동안 세상에서 다돌림을 당하고 사상적 배덕자라는 비난을 받앗다. 얼마전까지 반역자로 몰렷던 러셀은 드디어 시대의 총아가 되엇다. 1950년 영국국왕으로부터 수여받은 최고 영에의 메리트훈장이엇다. (943~945P0

***1950년 러셀에게 노벨문학상의 수여가 결정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강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그 정신적 병페인 바람직하지 않은 모든 욕구를 심리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본적인 것으로써 의식주 등 생존에 필요한 욕구, 소유욕, 경쟁심, 허영심, 권력욕 등이 있고 그 박에도 자극 애호심이나 공포심, 증오 따위가 있다. 그럼 이런 것들을 치료할 처방전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불우하게도 밑바닥까지 전락,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고립무원한 처지가 되엇던 러셀은 이제 시대의 각광을 받아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1952년 러셀의 나이 80세때, 그는 이디스 핀치와 네 번째 결혼을 하엿다. 그녀는 월프레드 스콘 브랜트의 전기를 쓴 저자이고 17세기에 미국으로 간 유서깊은 뉴잉글랜드의 오래된 가문 출신으로 프린모어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949P0

****러셀은 이디스와 결혼하고 나서 약 10년간 핵무장 반대운동과 저작활동을 더욱 활발히 펼쳐나갔다. 그리고 그의 저작활동은 지금까지의 오랜 사상적 편력을 일단 집대성하는 일과 도 하나 문학과 창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엿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새로운 창작과 서설분야의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950p)

***러셀은 이제 90세에 가깝다. 러셀은 한시도 일에서 더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타임>, ,맨체스터 가디언>, <뉴욕 헤럴드 트리뷴> 세 가지 신문을 보고 딱딱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하루에 한 편이 추리소설을 읽는다. 그가 추리ㅗ설을 읽는 것은 옛날부터 이어온 투쟁적 본능을 해롭지 않은 방법으로 충족하는 배출구로 삼기 위해서였다. (957P)

***러셀은 자유주의의 모든 국민도, 공산주의의 모든 국민도 다 함께 가장 기본적인 자유, 곧 살아남기를 선택하는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살아남는 자유가 러셀의 평화사상에 핵심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963P)

***러셀은 세게평화운동의 상징으로 추앙을 받았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는 세게평화운동에 나서는 일을 생애의 마지막 역할로 생각하고 모든 정력을 그 해결에 쏟았다.

러셀의 평화운동은 1961~1962을 경게선으로 큰 발전을 보였다. 이 무렵부터 동서양의 대립이 급격히 노골화되어 상호불신이 점점 깊어져갔기 때문이다. (965P)

***1961년을 맞아 러셀은 부인과 함게 스스로 대중의 진두에 서서 핵무장반대의 연좌데모를 감행하엿다. 정부는 이것을 묵묵히 방치할 리가 없다. 그는 국방성 현관 앞에 앉아있다가 체포되어 1주일동안 감방신세를 지게 되엇다. 100인위원회는 핵무장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969P0

***러셀은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버트란드 러셀 평화재단’을 조직하여  ‘베트남 공동연대동맹(1966년)의 일을 하기로 했다. (970P)

***러셀은 철학임과 동시에 과학자였다. 이것은 그의 세계관을 독특한 것으로 하엿다.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은하계의 항성 가운데 더 작은 행성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천문학자가 사진 원판 위에서 인정하는 점은 그에게는 몇 십 만 광년이나 덜어진 방대한 성운의 상징이다. 공간의 막대함과 시간의 영원함은 모두 그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그 마음은 어떤 의미에서 공간, 시간과 마찬가지로 막대하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았던 거인 러셀의 인생관은 아마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를 주었다고 할 것이다. 그는 인생에 대하여 항상 미래지향적이었으며 결코 과거에 부당하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가 언제까지나 정신적으로 젊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인생에 대하여 전향적인 이 자세에서 비롯되엇다고 할 수 잇다. 러셀은 인생을 강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974P)

***러셀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사고방식에 따라 움직이며 인생을 추구하엿다. 그는 회의론자처럼 사색하고 신자처럼 행동하는 근대인이며, 강한 의지와 정열을 가지고 언제까지나 일을 계속하는 인간이엇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서전.을 집필, 전 3권을 출간하엿다. (978P)

****1970년 2월 2일 밤, 러셀은 웨일스의 자택에서 인플루엔자 때문에 오랫동안 빛나던 생애를 마감하였다. 이 거인이야말로 다가올 좋은 시대를 열기 위해 열렬히 싸운 투사였다. (978P)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문장


제 1장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비극에서는 강력한 정감과 열정에 뒤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늘 동정이 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하나의 카타르시스, 즉 정서의 두 가지 면, 즉 질서 바르고 합리적인 면과 제어할 수 없는 본능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세계를 변혁시킬 수가 있었다. 니체는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저인 것이라고 불렀다. 어느 것이나 그 중 한 가지만으로는, 그리스 문화가 비상하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방에서는 신비적인 요소가 초고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이 이와 같은 신비적 요소의 매력에 사로잡히지 않은 이유는 과학적인 이오니아학파(밀레토스학파)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맑은 심정으로 만으로는, 신비주의와 마찬가지로 지적혁명을 일으킬 수강 벗다. 필요한 것은 진리와 미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이다.

열정적이지만 냉정한 호기심, 즉 탐구에 쏟은 강한 호기심이야말로 고대 그리스인에게 사상 유례없는 지위를 부여했던 것이다. (23~24P)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 사는 것이 아니고 사회 속에서 산다는 의미이다. 가장 원시적인 수준에서도 그 어떤 조직이 따르는데 여기에서 질서의 관념이 나온다. 질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적인 질서이다. (24P)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해담이 아니라 제기된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밀레토스학파는 그 명성을 떨칠 만하다. 호머를 낳은 이오니아 역시 과학과 철학의 요람이었던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호머의 종교는 그 성격상 올림푸스의 신들과 관계가 있었고, 또 줄곧 그러했다. 신비주의의 무게가 사회를 조금도 압박하지 않을 경우, 과학적 사변은 진보한다. 그런데 그 뒤의 여러 그리스 철학파는 다소 신비주의 쪽으로 나아갔으나 그들이 모두 밀레토스학파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늘 잊어서는 안된다.  (32P)


****피타고라스학파의 신념에는 오르페우스교적 요소가 있었지만, 그들이 믿는 최대의 신은 아폴로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이 아폴로적 성격이 유럽의 합리주의의 신학과 동양의 신비주의를 구별해 주기 때문이다.(39P)


****헤라클레이토스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조화는 겉으로 나타난 조화보다 뛰어나다.” 사실 조화로운 존재가 간과되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은 서로 어긋난 것이 어떻게 자신과 일치하는지를 모른다. 그것은 활이나 현악기처럼 반대로 작용하는 장력이 서로 조화된 것이다.’(41P)

****헤라클레이토스의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다”라는 말을 이와 같은 논리적인 뜻에서 해석해야지 군사적인 격언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 견해에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하나의 새로운 근본적인 물질이 필요하다. (41P)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에 의해 우리는 대립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한 상태에 있는 서로 다른 본질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이런 의미를 내포하는 말 가운데 가장 놀랄 만한 것은 “선과 악은 하나이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선악은 하나요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리막길이 없는 오르막길은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의 관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선의 관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42P)


***델포이는 아폴로신을 숭배하는 중심지였는데 이 신은 빛과 이성의 힘을 대표한다. 고대의 전설에 따르면 아폴로는 암흑을 상징하는 신화적 파행 동물 피톤을 퇴치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공적을 기념하여 델포이에 신전을 세웠다고 한다. 여기서 아폴로는 그리스 정신이 성취한 위업을 수호했다. 이와 함께 아폴로의 그리스 정신이 성취한 위업을 수호했다. 이와 함께 아폴로의 숭배에는 정화의식과 결부된 윤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아폴로신은 피톤에 승리할 때의 독기를 씻어야 했고, 이제 신은 피로 더럽혀진 인간들에게도 희망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죄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아폴로의 또 다른 주요 신전은 이오니아인의 종교적 중심이었던 델로스 섬 위에 서 있었는데 한때 델로스 동맹 자본의 본거지였다. (59P)


****피타고라스 수학의 또 하나의 커다란 유산은 소크라테스가 수용하여 더욱 발전시킨 이데아의 이론이다. 상상은 할 수 있어도 정확한 도형은 그리 수 없다. 현실의 그 어떤 도형도 마음속 이미지의 충실한 모사일 뿐이다. 이것이 후기 피타고라스학파의 이론 가운데 하나인 그 유명한 이데아 이론의 요지이다. (67~68P)

***피타고라스가 현을 조율하여 어떻게 조화의 원리를 발전시켰던가는 우리가 이미 살펴보앗다. 영혼은 육체의 하나의 조화이며 영혼은 육체의 잘 정돈된 상태의 함수이다. 육체의 조직이 무너지면 육체는 분해되고 영혼도 분해된다. 우리는 영혼을 악기의 현으로 보고 육체를 현이 감겨있는 악기의 몸통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만일 몸통이 부서지면 현은 느슨해지고 조율된 음을 잃는다. 이 견해는 이 문제에 관한 초기 피타고라스학파의 관념과 전적으로 모순된다. 피타고라스는 영혼의 윤회를 믿었던 반면 후기 피타고라스학파는 육체가 죽으면 동시에 영혼도 틀림없이 죽는다고 보았다. (68p)


***기하학의 우너리는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에 있는 돌기둥에도 응용되었고 일찍이 없었던 조화와 균형을 겸비한 건축물이 탄생했다. (73P)


****프로타고라스의 유명한 말에서 알 수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존재하는 것에는 존재하는 것의 척도이다.” 이와 같이 각자의 의견은 그 자신에게는 진리이며 서로 다른 의견은 진리에서 결정할 수 없다. 프로타고라스는 실용주의 창시자이다. (84P)


제 2장 아테네

****그리스 철학에서 가장 위대한 세 사람은 모두 아테네와 연관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곳에서 태어났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곳에서 배우고 가르쳤다. (88P)


****소크라테스는 국가종교를 신봉하지 않고 청년들을 가르쳐 타락사킨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다. 이것은 엉터리 고발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가 그와 충돌한 이유는 그가 귀족정당과 결부되어 있고 이 정당에 그의 친구나 제자 대부분이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현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델포이의 신탁이 언젠가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고 말햇기 때문이다. 그는 이 신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결국 그는 신탁의 뜻을 이해했다. 신만이 현명하며 사람의 지혜는 쓸모없는 것이며 자기처럼 자신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지헤자인 체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폭로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이 때문에 그는 가난한 사람이 되엇지만 그는 신탁에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려 애썼다. (95P)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반감이 사라질 때까지 몇 년동안 여행을 하고 다녔다. 그는 기원전 387년에 아테네로 돌아와서 학원의 기반을 닦았다. 이 학술의 터전은 아테네 서북에서 떨어진 숲 속에 건립되었다. 이 땅은 전설의 영웅 아카데모스의 이름과 관련이 있어서 이 학원을 아카데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카데미는 중세 이후에 발달한 대학의 시초였다. 아카데미는 학교로써 900년 이상이나 유지되었다. 이것은 고금을 막록ㄴ하고 이런 종류의 그 어떤 학원보다도 오래되었다. 아카데미의 과목은 수학, 2차원 및 3차원 쌍방의 기하학, 천문학, 음향 또는 화성학이 기본교과 과정이었다. 피타고라스학파와 깊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수학이 크게 강조되었다. 이 학교 입구에는 이 과목이 싫은 사람은 누구나 입학을 삼가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 이들 과정의 교육에는 10년이 걸렸다. (98~99P)


***초기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학생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k서 거의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20년동안 아카데미에 출석했다. 플라톤은 한 번도 교과서를 쓰지 않았고 항상 자기 철학을 하나의 체계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100P)


***철학자란 무엇인가?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다. 철학자란 진리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미 자체를 사랑한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꿈을 꾸고 있으므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눈이 깨어있다. 미술애호가가 의견만을 갖는 대신 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지식에는 대상이 있어야 하므로 그것은 존재하는 무엇이어야 한다. 지식은 고정되고 확실한 것, 즉 오류가 없는 진리이다. (105P)


***교사의 역할은 학생이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능력이 아니다. 능력은 개인의 노력과 이들 노력에 방향을 제사할 수 있는 좋은 지도자의 도우믕로 얻어야 한다. (118~119P)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도 최초의 전문 철학자였을 것이다. 18세 때 아버지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미에 있는 플라톤 밑에서 공부하도록 아테네로 보였다. 그는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기원전 384년에서 347년에 걸친 약 20년가량 아카데미의 일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학교 리케이온을 창립했다. 리케이온은 근처에 있는 아폴로 리케이오스 신전의이름을 딴 것 

인데 그 이름의 의미는 이리를 죽인 아폴로였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학급을 맡아 강의를 했고 거실이나 정원을 걷거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습관에서 리케이온의 가르침은 소요학파 또는 돌아다니는 일파의 철학으로 아려지게 되엇다. (142~143P)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의 취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영혼에 대한 그의 이론에 관해서 몇 마디 할 필요가 있다. 그는 플라톤에게서 삼분설(三分設)을 빌려온다. 그는 식물적 영혼, 감각적 영혼, 이성적 영혼에 대해 말한다. 그중 식물적 영혼은 모은 생물에 속하며, 모든 생물에는 신진대사가 있다. 감성은 동물과 인간에 속해있고 식물에는 속해 있지 않은 반면 이성은 특별히 인간에게 속한다. 이성적 수준에 서야 비로소 윤리학이 나타난다. 식물은 단순히 식물다운 생활을 할 뿐이며 동물은 단순히 동물답게 살아갈 뿐이다. 육체에 단일성을 주는 영혼은 육체라는 질료의 형상이다. 영혼은 육체적인 죽음이 올 때 존재하지 않는다. 단 이성 자체는 불멸한다. (167P)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를 하는 시와 사건을 말한ㄴ 시를 구별하고 있다. 이것은 서사시와 극시로 나누는 일이다. 극예술의 기원은 종교의식과 관련된 낭송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이 오르페우스 신앙의식에서 외우는 약간의 주문에서 시작되엇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비극라는 말 자체는 염소의노래를 뜻하며 이 동물은 오르페우스를 상징한다. 희극은 그 이름이 제사의 노래를 뜻하는 것처럼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술의 신 디오네소스의 환락에서 나왔다. (176P)


***비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감을 세탁해서 영혼을 깨긋하게 하는데 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카타르시스’를 뜻하는데 자기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대리 경험하면 영혼은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비극에는 치료적인 의도가 있다. 이 용어는 의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177P)


***수학이 문제의 단순성과 구조의 분명성 외에도 미를 창조하기 위한 그 어떤 여지를 준다는 것은 아마도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인은 언어상으로 시대착오를 감히 저지른다고 해도 날카로운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다.(186P)


제 3장 헬레니즘

****알렉산더 대왕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그리스 세계는 공세로 전환햇다. 기원전 334부터 324년까지 불과 10년동안 페르시아 제국은 마테도니아의 젊은 정복자의 손에 넘어갔다. 그는 그리스인에게 한탄 마케도니아의 군주에 지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그리스 문명을 짊어질 사람으로 보았다. 그는 일개 정복자가 아니라 개척자이기도 했다. 대왕이 군대를 이끌고 간 곳은 어디에서나 그리스 도시를 건설하고 그리스 방식으로 경영햇다. 이들 그리스적 삶의 중심에서 본래의 그리스나 마케도니아의 식민자들이 그 땅의 사람들과 융합해 갔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인에게 아시아 여인과의 결혼을 권고하고 자기도 주저하지 않고 실천했다. 그는 페르시아 왕녀를 두 사람이나 아내로 삼았다. 마케도니아인의 정복은 그리스의영향의 전파자로서 한층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스 문명은 넉넉히 아시아로 스며들었다. (189P)


***과학적 연구의 중심지는 아테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졌다.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새로운 도시 중에서 가장 빛나는 도시이면서 전세계의 학자와 저술가가 만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리학자 에라토스테네스도 얼마동안은 대도서관의 사서 주임이었다. 유클리드는 수학을 가르쳤고, 아폴로니오스도 마찬가지였고 아르키메데스도 이곳에서 배웠다. (191P)


***기원전 342년 아테네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에피쿠로스는 18세 때 사모스에서 아테네로 나왔고, 그 뒤에 곧 소아시아로 건너가 거기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에 매려되었다. 30tpk 조금 지났을 무렵 그는 학원을 세웟으며 이것이 기원전 307년부터 기원전 270년 그가 죽을 때까지 아테네에서 계속되었다. 이 학원은 그가 가옥 부지 내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외부의 복잡한 세게와의 충돌로부터 고립하려고 했다. 평생 에피쿠로스는 가벼운 병이 따라다녔으나, 이에 지지 않고 몸을 단련시켰다. (196P)


****에피쿠로스에게 최선의 선은 쾌락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선한 삶은 불가능하다. 문제의 쾌락에는 정신적 쾌락은 물론 육체적 쾌락도 들어간다. 정신적 쾌락은 육체적 쾌락을 관조하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그 이상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197P)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신봉햇다는 점에서 유물론자였다. 영혼도 일종의 특별한 물질이며 그 분자는 육체의 구성원자와 섞여 있었다. 감각이란 대상에서 나온 것이 영혼의 원자와 서로 충돌한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죽음이 일어나면 영혼의 원자는 육체와의 연관을 잃고 산산히 흩어져 원자로 살아남긴ㄴ 하지만 이미 감각 능력은 없다. 이와 같이 해서 에피쿠로스는 죽음의 공포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죽음 자체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종교를 크게 반대했지만 신의 존재는 인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고 해서 좋게 되는 것도 나쁘게 되는 것도 아니다. (199P)

****폭군은 개인이 소유하는 외적인 모든 것, 생명까지도 빼앗아갈지 모르나, 남에게 양보할 수 없는 내적인 소유물, 즉 미덕만은 빼앗을 수 없다. 따라서 외적인 재물의 거짓된 요구를 물리치면 인간은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202P)


***에픽테토스는 프리지아 사람으로 아마도 60년 태생일 것이다. 우리는 이름만 듣고도 그가 노예엿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젊엇을 무렵 노예의 신분이엇을 때 받은 학대로 절름발이가 되어 몸이 전체적으로 쇠약해 있엇다. 자유의 몸이 되자 에픽테토스는 90년까지 로마에서 가르쳤는데 이때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그를 다른 스토아학파의 학자들과 함께 추방했다. (205P)


**** 스토아학파의 대작가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은 반대로 황제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21년에서 180년까지 살았다. 그는 역대의 로마 황제 중에서도 가장 개방적이었던 숙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양자가 되엇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61년에 제위를 이어받아 여생을 제국을 위해 보냇다. 시대는 자연 및 군사상의 불안에 싸여 있었으나 황제는 제국 국경으로 침입해오는 야만족이 로마의 패권을 위협하는 것을 억제하는데 끊이없이 노력하고 잇엇다.

그리스어로 씌여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 <명상록>은 오나전한 형태로 올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것은 시간이 나는 대로 군무나 공무 때 잠깐의 틈을 타서 철학적 명상을 매일 기록한 것이다. (206P0


***문화적으로 로마는 거으 차용문화엿다. 로마 세계의 기술, 미술, 건축, 문학, 철학은 상당히 솜씨있게 그리스의 훌륭한 표본을 모방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로마인은 성공햇지만 그리스와 알렉산더대왕은 실패한 분야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대규모적인 정치와 법률과 행정 분야다. 여기에서 로마는 그리스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210P)


*****고대의 사상가들이 현대 철학자보다 훨씬 더 어렵게 부딪힌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오늘날의 철학자는 과거의 전통에 의존할 수가 있는데 반해 고대 그리스 철학제에게는 으지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의지의 대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스인 탐구자들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해야만 했다. 새로운 화법도 만들어내야 했고, 전문용어도 일상 회화의 재료에서 따와 만들어야 했다. (219P)


***그리스인의 실패가 뛰어난 지력에서 생긴 일종의 자만심때문이엇다고 하면 로마인은 상상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리스 정신과 로마정신의 차이는 그리스의 신전과 후기 로마의 바실리카 회당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인의 손에 들어오면 그리스의 지적 유산도 그다지 섬세하고 우아한 것이 되지 못한다. (220P)


***그리스 철학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의 운동이다. 정신을 무지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목적이엇다. 그리스 철학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세계에 접근해야 한다고 제시햇다. 그 수단은 로고스이며 그 동경은 ‘선’의 형상하에 지식을 추구하려고 한 일이다. 서양문명의 지적 틀 속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모두 그리스 사상가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 (220P)


제 4장 초기 그리스도교


***로마의 전통은 14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후에 다시 나타났고 게르만의 전통은 16세기의 종교 개혁과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중세의 철학은 여전히 교회와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223P)


****유대인의 신인 여호와는 처음에 셈족의 ‘신’으로서 ‘자신의’종족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이 ‘신’과 함께 다른 종족을 통괄하는 신들도 있었다. 이 시대에는 내세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종족의 지상 운명을 인도하는 존재였다. 그는 질투하는 신이어서 자기 종족이 자기 이외의 신들을 반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225P)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바치라는 예수의 조언은 유대인의 이런 고집의 전형적인 한 에이다. 언뜻보면 타협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신과 황제의 동일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228P)


****1세기 이후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전적으로 서로 다른 대립 종교로 대치하게 되었다. 서방에서 그리솓교는 유대인 배척 감정을 무섭게 불러 일으켰고, 그 결과 유대인은 그때부터 사회의 변두리에 살면서 19세기 해방에 이를 때까지 박해와 착취를 당했다. 그들은 회교 제국 특히 에스파냐에서 번창했다.....1948년 유대인은 닷 ‘약속의 땅’을 점령했다. (229P0


***마호메트는 예수가 자기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예언자라는 것을 인정했는데 나중에 그리스도 환영설을 채택했다. (231P)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국가의 종교로 삼앗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시간은 세 겹의 현재이다. 현재라고 부리ㅡ기에 어울리는 현재는 진실로 있는 오직 하나뿐이다. 과거는 현재의 기억으로서 살아있고 미래는 현재의 기대로서 살아잇다. 이 이론에는 나름대로의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시간에 대한 주관적 성격을 인간의 정신적 경험의 일부로 강조하는 데에 있다. 인간은 창조된 존재로서 정신적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241P)


***사회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에는 그 어떤 상호작용이 잇다. 미신적 전통은미신을 가지지 않는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할 것이다. 진취적 기상보다 금욕을 높이 평가하는 전통에서는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는 건설적인 정치적 조치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246P)


***유스티아누스황제는 충실한 정통파 신앙인이었다. 그의 치세 초기인 529년 그는 아테네의 아카데미를 페쇄하라고 명령했는데 그것은 아카데미가 고대 전통의 마지막 본거지로 살아남아 있엇기 때문이었다. 532년 콘스탄티노플의 성소피아 사원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인의 손에 들어갈 때까지 비잔틴 교회의 중심이엇다. (249P)


***서방의 수도원 제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베네딕투스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베네딕트파 수도회의 이름이 생겼다. 그는 480년에 귀족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로마 귀족 게급의 안일함과 사치 속에서 자랐다. 20세 청년이었을 때 자신이 받은 교육의 전통에 대한 심한 반발에 고통을 받아 3년동안 동굴의 은둔자로 생홣T다. 520년 그는 몬테카시노에 수도원을 설립했다. 이곳이 베네딕트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설립자인 베네딕투스는 회원에게 빈곤과 복종과 순결의 맹서를 요구하는 교파의 회칙을 만들었다. (251P)


제 5장 스콜라학파

***로마의 중앙 정권이 쇠퇴함에 따라 서로마 제국의 여러 나라들도 미개 시대로 빠져 유럽은 전반적인 문화의 쇠퇴기로 들어갔다. (256P)

***안셀무스는 신의 존재의 존재론적 증명을 고안한 사람으로서 철학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신은 최대의 사고 대상이므로 존재가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70P)


***마호메트가 선언한 새로운 종교는 몇 가지 점에서 신약성서에 첨가된 신비주의를 떨쳐 버린 채 구약성서의 엄격한 일신교로 돌아갔다.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그도 우상을 금했으나 그들과 달리 포도주의 사용까지 금했다. 이슬람교의금지령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271P0

***페르시아에서 마호메트의 가르침은 과거의 종교적이고 사고적인 전통으로 충분히 배양된 땅으로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이슬람 문화는 시리아에서 일어낫지만 이윽고 페르시아와 에스파냐에 집중하게 되엇다. 페르시아에서 이슬람교는 인도의 수학을 가까이햇고 원래 인도의 것이라고 불려야 할 아라비아 숫자를 도입햇다. 페르시아의 문명은 피르다우시와 같은 시인을 몇 사람 낳았고, 13세기 내내 몽고가 침입해 왔는데도 높은 예술 수준을 유지했다. (273P0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의 가르침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위에 확립하려고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인된 교리가 되었으며 대학에서나 다른 학교에서 모두 이를 가르치고 잇엇다.

토마스의 <신학대전>의 위대한 체게는 지적 노력의 기념비이다. 서로 다른 견지가 언제나 분명하고 공정하게 기술되어 잇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적을 볼 때 토마스는 철저하고 지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283P0


****아마도 가장 위대한 중세의 종합적인 사고는 단테의 저서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신곡>을 썼을 당시, 중세는 실제로 해체되어가고 있엇다. <신곡.은 지옥과 연옥을 지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여행인데, 이 여행에서 우리는 여담과 비유의 형태로 중세사상의 개관을 볼 수 잇다. 단테는 1302년에 고향 플로렌스에서 추방되엇지만, 당시 상대 당파가 일으킨 시민 폭동의 끝없는 전진과 후퇴속에서 블랙 겔프당을 지지햇고 단테자신도 제국의 직분에 대한 강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중세의 생활은 걱정이나 미신이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질서정연했다. 사라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지위가 정해지고 봉건 영주에게 충성을 바쳐야 햇다. 국가 전체는 세분되고 여러 등급으로 분류되어 절대로 변경할 수 없엇다. (300P)


***그리스사상에는 죄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인에게 인간은 물려받은 개인의 무거운 죄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스인에게는 s속죄나 구원과 같은 문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리스인의 윤리적인 사고방식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비형이상학적이다. 그리스 철학은 신학적인 문제에 부딪히지 않았고 따라서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세속적이엇다.(307P)


***가능한 한 종교의 교의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스콜라철학은 가끔 비상한 창의성과 예리한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런 과업이 거둔 원대한 결과는 르네상스 사상가들이 이어받아 후세에게 전해 준 언어적 도구를 섬세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스콜라철학이 이룩한 과업 가운데 아마도 가장 귀중한 일일 것이다. (310P0


제 6장 근대철학의 융성

***중세의 쇠퇴기에서 17세기의 거대한 파도에 이르는 과도기에는 중대한 움직임이 네 가지가 한층 눈에 띄게 된다.

첫째는 15, 16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이다. 단테는 아직도 중세풍의 사고방식에 저어 잇었지만 그래도 대중의 언어를 수단으로 라틴어를 모르는 세상사람들을 문장어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고 있었다. 고대인이 관심을 가진 세속 문화의 부활은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나타났으며, 이는 중세시대의 성직자가 누리던 전통이 단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는 중세의 무대는 오직 신에게만 정신이 집중되어 있엇지만 르네상스의 사상가들은 오히려 인간에게 흥미를 보이고 잇엇다. 이와같은 사정에서 새로운 문화운동은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르네상스가 직접적으로 인생관 전반에 영향을 준 데 반해 휴머니즘운동은 사상가와 학자의 영역에 머물러 잇엇다.

세 번째는 북쪽나라들에서의 휴머니즘 운동은 루터의 종교개혁과 동일한 시대에 일어나는데 이것이 중세세계를 바꾼 커다란 세 번째 힘이다. 야망에 불타고 황금에 굶주린 교황의 세력은 너무나도 강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은 로마 교황청의 명렬한 반대와 비난을 받았다.....종교개혁운동은 억지로 분열되어 국가 단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방 그리스도교는 분열 된 채 머물러 잇다. 개신교는 휴머니즘 양행 덕분에 보편적인 성직자라는 개념을 수립했다. 모든 사람은 신과 직접적인 접촉 관계에 있고 그리스도에게는 교황도 사제도 필요없다는 것 이었다.

네 번째 중요한 발전은 오컴의 비판으로 시작되는경험적 연구의 부활에서 직접 나왔다. 이어지는 두 세기 동안에 과학분야는 위대한 진보를 이루엇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의 재발견이엇다. (312~314P)


*****인쇄술은 낡은 질서에 비판적인 새로운 정치 학설을 보급시키는 수단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 학자들에게 고대인의 저서를 몇 판이고 찍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것은 고전 자료의 광범위한 연구를 촉진하여 일반적인 교육수준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316P)


***지식이 더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지구에 대해 지난날보다 더 올바르게 보기 시작햇다. 이것은 신세게 발견의 항해가 서양의 기력과 모험심에 새로운 돌파구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햇다. 모험에 찬 이 업적은 조선과 항해기술이 개선되고 고대의 천문학에 복귀한 덕분에 가능하게 되었다. (316P)


***니콜로 미키아벨리는 피렌체의 변호사 아들이엇다. 그의 정치권력은 1494년에 메디치가가 피렌체에서 추방되었을 때 시작되엇다. 이 도시가 당시의 악덕과 부패에 단호히 저항한 도미니크파 겨혁자인 사보나롤라 세력 아래로 들어간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엇다.유명한 <군주론.을 로렌츠 2세에게 바쳐 메디치가의 총애를 얻으려고 햇지만 잘 되지 않앗다. 그는 1527년에 세상을 떠낫다. 이때가 황제 카를르 5세의 용병대가 로마를 약탈한 해엿다. <군주론>의 가르침은 덕있는 지배자가 되는 길에 대해서 충실하게 조언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정치권력의 획득에 유용한 흉계가 몇 가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대문에 미키아벨리적이라는 말은 어느 wjde 비열하고 경멸적이라는 뜻을 띠게 되엇다. (322P0


***마르틴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파의 수도사였으며 신학교사였다. 면죄부를 판다는 천한 행동이 그에게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격렬한 도덕적 고통을 주었다. 1517년 그는 명확하게 의사를 표명하여 유명한 95개 조문을 선언하고 이 문서를 비텐베르크의 교회문에 붙였다. 교황에 도전할 때 그에게는 새로운 종교를 수립하겟다는 생각은 없엇다. 독일의 봉건 제후와 지배자들이 편들기를 시작하여 종교개혁은 로마 교황의 음험한 권력에 대한 독일인의 정치적 반역이 되었다. (333~334P0

***프로테스탄트라는 말 자체는 1529년에 황제가 보름스의회의 조항을 재도입하려던 황제의 기도에 항의하여 개혁파 종교를 지지하는 사람이 낸 호소에서 나온 말이다. (334P0

***개신교는 세계종교가 아니어서 극가 정치 지배자의 보호가 필요했다. 프로테스탄트의 성직자는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들과 같은 권력이 없었으므로 어느 누구 못지않게 커다란 해를 끼칠 만큼 구속력을 갖지 않앗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종교다툼이 쓸모없고 끝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36P)


***피타고라스적인 음정에서 들을 수 있는 협화음이, 건축, 설게에서 볼 수 잇는 규정이라는 것이다. 괴테가 나중에 건축을 음악이 동결된 것이라고 말했을때 르네상스 건축가에게는 이것이 문자 그대로 그가 경험한 사실에 대해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비레의 원리는 인체의 구조와 사람들의 도덕적 존재의 조화된 기능에서도 발견할 수 있엇다. 이것은 직접적이고 신중한 피타고라스학설이다. (338P0


***아리스타코르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처음으로 부활시킨 사람은 코페르니쿠스엿다. 폴란드의 성지자였던 그는 젊엇을때  남쪽 이탈리아로 가서 1500년에 로마에서 수학을 가르쳣다.

가톨릭교도와 루터파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결렬한 적의를 갖고 받아들엿다. 여기에 바로 종교 자체는 아니지만 적어도 종교조직을 의지하고 잇는 권력주의의 원리를 뒤엎으려고 하는 새로운 반 독단주의 운동의 단서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341P0


***천문학에서 갈리레이는 태양중심설을 취했고, 더 나아가 몇 가지 중요한 발견을 햇다. 네덜란드에서 막 발명된 망원경을 완성해서 그는 많은 사실을 관측하여 천게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잘못된 생각을 결정적으로 논파했다.

망원경은 수성의 위성들을 밝혓고 이행성들의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서 모행성 주위를 회전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밝혀졋다. 이러한 모든 발견은 오랫동안 품어온 편견을 뒤집엇고 정통 스콜라 철학자는 망원경을 비난했다. 망원경이 이와 같이 그들의 독단의 잠을 깨웟기 때문이엇다. (345P0


****갈릴레이는 정통 신앙과 충돌해야만 햇다. 1616년 그는 종교 재판소의 비밀회의에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너무나 완고하게 보엿기 때문에 1633년 그는 다시 법정에 끌려나갓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는 평화를 위해 자기 주장을 철회하여 이후부터는 지구가 음직인다는 모든 생각을 버리겟다는 약속을 햇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명령대로 햇지만,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고 혼자 중얼거렸다고 한다. (346P0


***홉스는 14세때 옥스퍼드로 들어가 고전을 배웟다.

그는 감정을 운동으로 설명햇다. 감정의 자연상태에서는 만인은 평등하며 저마다 남을 희생시켜 자기를 보존하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만인과 만인이 겨루는 전쟁 상태가 존재한다고 홉스는 생각한다. (354P0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 태생의 유대인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는 유대인 사회를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정통신앙의 한계안에 머무를 수가 없엇다. 스피노자는 성서의 모든 저주를 짊어지고 회당을 쫓겨낫다. 천성적으로 약간 내성적이엇기 때문에 그는 그 후 완전히 고립하여 치눅의 작은 모임속에서 조용히 살면서 렌즈를 닦아 생게를 유지하고 철학상의 명상에 잠겻다. 사람의 눈을 피해 살았는데도 그의 명성은 급속히 올라갔다. 이들 심취자들 중 라이프니츠가 가장 중요햇고 두 사람은 헤이그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1673년 파라타인 선재후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교수로 지위를 스피노자에게 주려고 햇지만 그는 정중하게 거절햇다. (364~365P)


***라이프니츠는 아버지가 대학교수로 있던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낫다. 일찍부터 그는 날카롭고도 비판적인 재능을 보여주엇는데 15세에 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배우고 2년 후에 졸업하여 예나대학에서 법률을 배웠다. 20세때 라이프치히 대학에 법학박사의 학위를 신청했지만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허락받지 못햇다.

라이프니츠는 1673년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파스칼이 발명한 게산기를 기초로 하여 그의 독자적인 계산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엿다. (378P)


제 7장 영국경험론

***종교개혁의 결과로 유럽북부에서는 정치와 철학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새로운 사상이 태동햇다. 이것은 종교 전쟁과 로마를 추종햇던 시기의 반동으로 영국과 네덜란드에 집중되었다. (388P)


제 8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계몽운동은 본질적으로 보면, 자유로운 지적활동을 재평가하는 것익고 문지 그대로 암흑이 지배하고 잇던 곳에 널리 빛을 비치는 것이 목적이엇다. 그것은 헌신적으로 강력하게 추구되는 일은 잇어도 강렬한 감정을 좋아하는 생활방식은 아니었다.

***낭만주의 운동과 게몽운동의 관계는 어느 면에서 아폴로적인 태도와 대조되는 디오니소스적 태도를 상기시켜 준다. 이것은 르네상스와 함게 나타난 이상화된 고대 그리스의 개념에 뿌리를 둔다. 18세기의 프랑스에서 그것은 정서의 숭배운동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은 합리론 사상가의 약간 차갑고 초연한 객관성을 반대하는 움직임이엇다. (427P)

***장자크 루소는 스위스 출생으로 18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사상가가 된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을 고무시켯고 낭만적인 세대에 영향을 주게된다.

1750년이 되어 비로소 루소는 작가로서 세상에 알려졋다 . 같은 해 디종의 아카데미는 학문예술이 과연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왓는가라는 문제로 현상 논문을 모집했다. 루소는 명쾌한 논증으로 ‘아니다’라고 답하여 상금을 차지햇다.

1762년 교육론 ,에밀.과 그의정치 이론이 담긴 <사회계약론>이 세상에 나왓따.

낭만주의 운동의 형성에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 것 중 하나가 루소가 이성에 반하여 감정을 옹호한 것이다. 특히 이것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새로운 길로 출발시켜 고대인의 철학 전통을 이어받은 토마스주의의 학설과 명확하게 구별지었다.

루소는 10세대 아버지가 실종된 후 유랑의 연속이엇다. 태어나자 마자 어머니와 사별한 루소는 가정생활이라는 것을 알지 못햇다. 후에 무구한 어린시절의 소중함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하숙집 하녀와의 사이에 태어난 다섯 아이들은 고아원에 맡겨진다.

루소는 1762년에 <에밀>을 완성하였다.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성장하는 한 아이가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루소는 아이를 자연인 상태로 키우는 방법을 부모들에게 제안한다.

<사회게약론.은 루소의 이론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433~436P)

***임마누엘 칸트는 동프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평생동안 고햐에서 멀리 떠난 일이 없엇다. 그는 젊엇을 때이 가정 교육으로 경건주의를 줄곧 지녓고 이것이 그의 전반적인 삶의 방식과 윤리적인 저술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중 한 사람이다. 사람은 경험과 이성을 통해서만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55년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철학강사의 지위를 획득했다. 1770년 논리학과 형이상학 교수로 승진하여 죽을 땎자ㅣ 이 자리에 있엇다. 칸트는 극도로 금욕적이지 않앗으나 매우 예의 범절이 바르고 근면한 삶을 보냇다. 그의 습관은 매우 규칙적이엇기 때문에 이웃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추엇다고 한다. (443P)

***키에르케고르는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17세에 그곳 대학에 들어갓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상경하여 직종을 농업에서 상업으로 바꾸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41년에 그는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케에르케고르는 어떤 사상 체계로도 개인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햇다.

***쇼펜하우어는 볼테르와 영국을 동시에 존뎔하고 있던 단치히 상인의 아들이엇다.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인 그는 인간의 본질에 있는 비합리적인 힘으로써의 의지의 역할을 논하엿다. 그에 의하면 의지에 존속되지 않은 지식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예술뿐이며, 예술만이 비합리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1809년 쇼펜하우어는 괴팅ㅇ겐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처음 칸트의 철학을 접했다. 그후 그는 바이마르에서 괴테와 가까이 지내며 인도 신비주의연구에 착수햇다. 1819년 그는 베를린 대학의 강사로서 강의를 시작햇다. 쇼펜하우어는 젊어서 그의 철학적 견해에 도달햇다. 주요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셰계>는 1818년 저자가 불과 30세 되던 해에 세상에 나왔다.

쇼펜하우어는 기질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엇다. 딸서 그는 행복은 손에 닿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햇다. 그가 말년을 침울하게 보내고 있을 때 그의 저서는 인정을 받고 재정사정도 조금 좋아졋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고통에 찬 이런 상태의 해결은 불교의 신화에서 구해야 한다. 우리의 고통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의지의 작용이다. (472~474P)


제 9장 공리주의 이후

**18세기 동안,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영주나 대지주가 목양업이나 농업을 위해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일)은 극에 달햇다. 과거 수세기동안 귀족이 자기 용도로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는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엇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많은 농민들이 특권을 침해받고 새로운 생계터전을 찾으로 도시로 쫓겨나갓다. 이들은 새로운 공장에 흘러들어갓다. (481P0

**찰스 다윈은 멜서스의 <인구론>에서 자연도태의 원리와 생존경쟁이라는 관념을 얻엇다. 유기체의 증가율의 기하학적 속도와 이에 이어 일어나는 경쟁을 논할 때 다윈은 <조으이 기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맬서스의 이론을 동식물의 세게 전체에 다양하게 적용한 것이다. 이 경우, 식량의 인공적 증가도 신중한 결혼 사숙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정된 생호라수단을 구하여 이와 같이 만인이 마음대로 싸울 경우 승리는 주위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이 차지다. 이것이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이다. (494P0

***찰스 샌더스 퍼스는 미국의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이며 퍼스는 프래그머티즘의 창시자로 논리는 철학의 기초라고 생가갛였다. 만년에 퍼스는 암투병과 생활고에서 처했으나 윌리엄 제임스 등의 친구들의 도움에 의지하였다.

퍼스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낫다. 아버지는 하버드대학의 수학교수엿고 퍼스 자신도 이 대학에서 배웟다. 두 번에 걸친 스년동안의 강의를 제외하면 퍼스는 ks 번도 대학교수의 자격을 얻은 일이 없엇다.

퍼스의 주장에 의하면 “특수한 진리의 듯에 대해서 어떤 진술이라도 진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결과는 수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술은 그 어떤 미래의 행동 가능성과 모든 상황에 다라 적절학 행동하려고 하는 기절의 형성이 인정해야 한다. 진술의 뜻인 이들의 실제적인 결과에 있다고 한다.


제 10장 현대철학

****19세기 후반의 특징은 현대의 지적 풍조에 영향을 끼친 새오운 발전이다. 우선 산업시대 이전에 기초를 갖는 낡은 생활방식이 붕괴되었다. 기술의 힘이 엄청나게 신장되엇기 때문에 생활은 이전에 비해서 매우 복잡해졋다. 19세기의 지적생활의 도 다른 새로운 특징은 예술과 과학이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자들이 보엿던 경향과는 대조적이다.

****앙리 베르그송은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지능과 직관의 구별은 베르그송에게는 공간과 시간 사이의 평행한 구별과 관련된다. 지능은 세게를 분해 또는 분석하는 것으로 무시간적이며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작용한다. 언어의 어원적인 뜻에서 실천적인 것 사이에 이전의 대비를 사용하면 지능이란 이론적인 것이다.

베르그송의 시간론은 기억에 대한 그이 설명과 연관되어 잇다. 기억상에서 의식적 정신은 과거와 현재와의 그 어떤 교류를 생각해 낸다. 현재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데 반해서 과거는 이미 활동하고 잇지 않다. 이 말은 그가 다른 곳에서 지속을 위해 버리려고 애쓰고 있는 수학적 시간을 바로 갖어한느 r서이다. 활도에 대한 진술이 의미를 가지려면 과거와 현재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543P)

***프로이트는 망각 작용을 이것과 매우 비슷한 억압의 기구와 결부시킨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서워 잊어버린다. 우리는 쉽게 잊는 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회상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정신분석학이 의외로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어보다도 성행동과 그 억압을 솔직하게 인정한 데 있엇다. 그러나 이런 사정에서 정신분석학은 별로 열리지 않은 사람들의 만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547~548P)

***야스퍼스의 실존주의 철학은 관념론적 형이상학을 거부하지만 세 가지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헤겔이 뜻한 변증법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칼 야스퍼스는 처음에 심리학, 특히 정신병리학 문제에 관심을 둔 것을 게기로 철학으로 전환햇다. 그의 철학연구의 중심에 서는 것은 인간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그의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560P0

****사르트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실존주의의 대표적 지도자로 세게이 이름을 알렷다. 그는 자기의 자유를 의식하면 사람은 불안을 갖게되고 그 불안에서 불성실로 피난한다고 생각하였다.

사르트르는 철학 논문뿐만 아니라 소설도 섰다. 소설 속에서 그의 실존주의적 생각은 실존주의의 실로 wndy한 일면인 행동의 요구와 대결하는 인물로 표현되어 잇다. 소설이라는 문학적 매체는 인간을 궁극적으로 고찰하는 수단으로서 나무랄데 없다.

사르트르의 경우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실존주의적인 관점은 극한까지 가지고 갈 수 잇다. 인간은끊임없이 자기 운명을 선택한다. o인 삶에는 전통과의 연관성도 없고 지나간 사건과의 연관성도 없다. 마치 모든 새로운 결단이 어떤 절대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불쾌한 진리에 겁을 먹은 사람들은 세계를 합리화하여 안정을 구하려고 한다. 이점에서 과학자도 종교신자도 일치한다.

사르트르는 라이프니츠나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앗으며 관념론적 철학자가 이어받은 합리론적 필연 개념을 마음 속으로부터 반대한다. (563~564P0

***비크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설명 중 ‘언어유희’라는 직유를 도입햇다. 이 견해에 다르면 어느 언어의 현실적 용법은 하나의 유희, 예를 들면 장기놀이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이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고 허용되는 수에도 제한이 잇다.

비트겐슈타인은 프레게와 러셀의 이론을 이요하여 쇼펜하우어의 현상 세게를 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힘섰다. (574P0


철학이란 무엇인가

제 1장 현상과 실재

***촉각에 관해서 생각할 때도 비스산 곤란이 생긴다. 테이블은 언제나 딱딱한 느김을 주므로 우리는 테이블이 압력을 버텨 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느끼는 감각은 우리가 어느 정도 세게 테이블을 미느냐 또는 몸의 어느 부분으로 미느냐 하는 것에 의해서 좌우된다. 아마 그 모든 감각은 그 성질에 의해서 야기된 것일테지만 그 성질이 그 감각들에 실제로 나타나 있지는 않다. (589P)

***버클리도 라이프니츠도 실재한ㄴ 테이블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버클리는 그것을 신의 마음 속의 관념이라고 한 데 반해 라이프니츠는 정신의 집합체라고 말하고 있다. (592P)


제 2장 물질의 존재

***애초에 우리가 독립되어 존재하는 외적 세계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된 것은 논증에 의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외적 세계를 떠올림과 동시에 이 신념이 이미 우리 자신 속에 있엇다는 것을 깨닫게 되므로, 이것을 본능적인 신념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599P)


제 3장 물질의 본성

***과학적인 물질의 세게에서는 색깔이나 소리 같은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각이나 촉각이 도달하는 공간 또한 결여되어 잇다. 물질이 어떤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과학에서는 본질적인 것이지만 그 물질이 존재하고 있는 공간이 우리가 보거나 느기는 공간과 엄밀하게 같을 수는 없다.

첫째 우리가 보고 있는 공간은 우리가 촉각에 의해서 얻는 공간과 같지가 않다. 우리가 보고 잇는 것에 어떻게 접촉하느냐 우리가 접촉하고 잇다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를 배우는 것은 단지 유년시대의 경험일 qsn이다. (603P)

****우리의 감각자료는 시각의 공간이든 촉각의 공간이든 또는 그 밖의 감관이 줄 수 잇는 더 막연한 공간이든 우리의 사적인 공간 속에 놓여있다. 만약 과학이나 상식이 가정하는 것처럼 물적 대상이 잇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하나의 공적인 물리적 공간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물리적 공간에 잇는 물적 대상의 생대적 위치는 사적인 공간에 있는 감각자료의 상대적 위치와 다소나마 대등해야 한다. (604P0


제 4장 관념론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자명한 이치가 아니라, 사실은 잘못된 일이다. ‘안다’는 말은 여기서 두 가지의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 첫째의 사용법에서는 오류에 대립하는 종류의 지식에 적용된다. 즉 우리가 아는 것이 ‘참’이라는 뜻, dfl의 신념, 확신, 즉 판단이라고 불리는 것에 적용되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 의미에서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지식은 ‘진리’의 지식이라고 해도 좋다. 두 번째 사용법에서는 ‘안다’는 말은 사물의 지식에 적용된다. (614P0


제 8장 아프리오리한 지식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근대 철학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인정받는다. 그의 일생동안 7년 전쟁과 프랑스 혁명이 있엇지만 그는 동프로이센 쾨니이스베르크에서의 철학강의를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다. 그의 가장 두드러진 공헌은 이른바 비판철학의 창시였다. (642P)

 참고)아프리오리: 인식이나 개념이 후천적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에 논리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부여된 것. [비슷한 말] 선천적.

***우리의 모든 아프리오한 지식은 본래부터 심적 세계에도 물적 세게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관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것들은 명사 아닌 품사에 의해 이름 붙은 것, 즉 성질이나 관계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방 안에 잇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존재하고 내 방도 존재한다. 그러나 ‘안에’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러나 분명히 ‘안에’라는 말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와 내 방과의 사이에 있는 관계를 가리킨다. (647P0


제 10장 보편에 관한 우리의 지식

****어떤 사람의 지식에 관해서 말하자면 특수와 마찬가지로 보편도 직접지에 의해서 알려지는 것, 기술에 대해서만 알려지는 것, 직접지에 의해서도 기술에 의해서도 얼려지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우리는 직접지에 의한 보편의 지식을 고찰해 보겟다. 먼저 희다, 붉다, 검다, 달다, 시다, 소리가 크다, 단단하다 등등의 보편, 즉 감각자료로 예시되는 성질을 우리가 직접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흰 헝겊을 볼 때 우선 직접적으로 알 수 잇는 것은 그 특수적인 헝겊이지만 많은 수의 흰 헝겊은 봄으로써 우리는 그 모든 것에 공통된 순백을 쉽사리 추출할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순백을 직접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보편은 감각적 성질이라고 불린다. (657P)


제 12장 진리와 허위

***1) 진리에 의한 우리의 이론은 그 반대물인 허위의 존재도 허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실패했다. 그들은 우리의 사고가 모두 진리가 되어야 할 이론을 만들었으나 이때 제일 난감햇던 것은 허위를 받아들일 장소를 발견하는 일이엇다.

***2) 만약 신념이 없다면 진리는 허위와 상관적이라는 의미에서 허위도 진리도 잇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일로 여겨진다. 만약 단순한 물질의 세게를 상상한다면 그런 세게에 허위가 존재할 수 여지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사실’이라 불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진리는 허위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불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진리는 허위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의미에서 어떠한 진리도 거기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3) 신념의 진위는 신념의 범위 박에 잇는 어떤 것에 항상 의존한다는 점이다. 진위가 신념의 성질이라 하더라도 신념과 다른 것의 관계에 의존하는 성질이므로 신념의 내재적 성질에 의존하지는 않는다.(670P0


***마음이 진리나 허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은 금방 알수 잇다. 마음은 신념을 만들어내지만 신념이 일단 만들어지면 기차를 놓치지 않는 경우처럼 믿고 있는 사람의 능력이 미치는 미래의 사항에 관계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음은 그 신념을 진리로 만들거나 허위로 만들지 못한다. 신념을 진리로 만드는 것은 사실이나 예외적인 경우는 제외하고 이 사실은 결코 그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포함한 것이 아니다. (676P0


제 14장 철학적 지식의 한계

***철학이 지향하는 비판은 이유없이 거부할 것을 결정하는 비판이 아니라 확실한 것 같은 지식 하나하나를 낱낱이 고찰하고 그 고찰이 끝났을 때도 여전히 지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보류해 두는 비판이다. 사람이란 틀리기 쉬우므로 거기에 약간의 오류의 위험성이 남아잇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철학이 오류의 위험성을 적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다. (692P)


제 15장 철학의 가치

***철학의 가치는 대부분 그 불확실성 자체 속에 찾아야 한다. 철학과 인연이 없는 사람은 상식이나 나이 또는 국적에 대한 습관적 신념, 또는 신중한 이성의 협력이나 동의 없이 자기 마음속에 자라온 확신 등에서 유래한 편견에 갇혀 평생을 보낸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세게가 명호가하고 유한하고 뻔한 것이 되어 버리기 쉽다. 그들은 흔한 대상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미지의 가능성은 경멸적으로 거부한다.

***우리의 생활이 위대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면 우리는 어덯게 해서든지 이 감옥, 이 투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는 한 가지 길은 철학적 사색을 하는 것이다. 철학적 사색은 매우 광범위하므로 우주를 적대하는 두 진영-친구와 적, 돕는지와 적대하는 자,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고 전체를 공평하게 관찰한다. 철학적 사색이 순수하면 우주에 있는 인간 이외의 것이 인간과 같은 종류라고는 증명하지 않는다. 지식의 획득은 모두 자기의 확대인데 이 확대는 지식을 직접 구하지 않을 때 가장 잘 달성된다. (696P)

***철학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철학은 문제에 대한 명호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어떤 명호가한 해답도 진리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철학은 문제 자체를 위해서 연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철학이 사색하는 우주의 위대성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 또한 위대해지고 우주와의 통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우주와의 통합이야말로 마음의 최고선인 것이다. (698P)



행복의 정복

머리말

**독자들에게 공개하는 행복의 비결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는 그것이 모두 다 나 자신의 경험과 관찰에 의해서 확인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그대로 실행햇을 때는 언제나 나 자신의 행복을 증대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불행으로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많은 남녀중에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기 불해의 실상을 잘 알게 되고, 그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확실히 있을 거라고. (701P0

제 1장 불행의원인

1.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갖가지 불행의 원인은 물론 일부는 사회제도에 있지만 일부는 개인의 심리 자체에 존재한다. 하기야 심리 또한 적잖이 사회제도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703P)

***나의 목적은 문명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나날의 불행, 그리고 뚜렷한 외적 원인이 없는데도 도무지 달아날 방도가 없는 견디기 어려운 불행에 대해서 하나의 구제법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내가 믿는 바로는 그런 불행은 대부분 그릇된 세계관, 잘못된 도덕론, 나쁜 생활습관에 기인하며 그런 것이 인간의 것이건 모든 행복이 궁극적으로 읮ㄴ하고 있는 사물에 대한 욕구를 망가뜨려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소 나는 보통 어느 정도의 행운만 있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의 전환이야말로 행복을 달성하는데 바람직하다고 충고하고 싶다. (704P)


***내가 말하는 ‘죄인’이란 실제로 죄를 저지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죄라는 것은 우리가 정의하는 의미에 따라서 모두가 저지르는 것도 되고, 아무도 저지르지 않은 것도 된다. 이런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부정에 빠져 있으며 거기서 치유되는 일이 없다. (706P)


***자기에 관한 것 이외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칭찬할 만한 인간이 아니다. 남도 그를 칭찬할 만한 사람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상일에 대한 유일한 관심사가 세상에서 칭찬받는 데 있는 인간은 도저히 목족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도취자는 죄악감에 지배되고 있는 인간과 똑같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좁혀가는 것이다. (708P)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은 매력적이기 보다 힘을 원하며 남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두려움을 주려는 점에서 자기 도취자와는 다른다.

알렉산더대왕도 그 심리 상태는 이런 정신병자와 같은 유형이었다. 하기야 그런 정신병자가 꾸는 꿈을 실현할 만한 재능을 갖고는 있었다. 그렇기는 하나 자기의 꿈을 끝가지 실현할 수는 없엇다. 왜냐하면 성공하면 할수록 꿈의 규모가 커져 갔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위대한 정복자라는 사실이 뚜렷해졌을 때 자기를 신으로 만들려고 했다. 과연 그는 행복한 인간이었을 까? 그가 주정뱅이엿다는 것, 미친 듯이 노여워하고 흉포했다는 것, 여자에 대해 냉담했다는 것, 자기를 절대 신성시할 정도로 오만했다는 것들은 그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708~709P)


***불행한 인간은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기가 불행하다는 것을 언제나 자랑한다. 그것은 마치 ‘꼬리를 잃은 여우’의 자랑과 같다. 만일 이 여우와 같은 경우라면 고리가 없는 편이 낫다고 자랑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새로운 꼬리를 갖게 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것이 불행을 고치는 길이다. (710P)


2. 바이런적 불행

바이런은 이렇게 읖ㄹ었다.

“예 사상의 찬란함이 무딘 감정의 쇠퇴와 더불어 잃어져 갈 때,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세상이 빼앗아 버리는 기쁨에 견줄 수는 없노라.“


***언제나 미래에만 희망을 걸고, 현재에 가진 것 이외에는 모두 미래가 가져다 주는 것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은 좋은 습관이 아니다. 부분 속에 전체가 없다면 전체 속에 가치가 있을 까닭이 없다.... 나는 살아서 내 인생을 갖고 있다. 나의 아들은 내 뒤를 이어 그의 인생을 갖는다. 그의 뒤는 그의 아들이 이어받는다. 이 모든 것 속에 비극을 낳는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716P)


***사랑을 높이 평가하는가를 간단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첫째, 연애 자체는 환희의 원천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것은 연애의 최대 가치는 아니더라도 그 이외의 가치에 비하면 본질적이다.

둘째, 연애는 음악이라든가 산 정상에서 보는 해돋이라든가, 보름달 아래의 바다 같은 모든 최고의 쾌락을 더 북돋워준다. 그러기에 연애는 높이 평가되지 않으면 안된다. 또 연애는 자아의 딱딱한 껍질을 깰 수가 잇다. 왜냐하면 연애는 일종의 생물학적 협력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마다가 사랑의 감정에 불타는 것이 상대방의 본능적 욕망을 채우는데 필요하다.

연애는 협력이 가져다주는 감정 중에서 가장 일반적이며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다. (721~722P)


***연애는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맞는 식물처럼 우리의 생명을 보다 새롭고 산뜻하게 한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성관계에는 이러한 감정이 있을 수 없다. 순간적인 쾌락의 물결이 지나가면 피로와 혐오와 허무감의 찌꺼기가 남을 뿐이다. 연애는 대지의 생명의 한 부분이지만, 사랑이 없는 섹스는 섹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740P)


***확실히 왕자들이나 그들의 슬픔을 다룬 고전적인 비극은 우리 시대에는 맞지 않다. 우리의 인생관이 퇴페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나전히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이제 어느 한 개인을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간주할 수 없게 되어 버렷기 때문이다.그런 인물만이 비극적 정열을 가질 권리가 있고 나머지 전부는 이 소수의 위대한 인물을 낳기 위해서 악착같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할 수가 없게 됐다. (723~724P)


***이 세상에 자기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빈들거리고 있는 모든 우능한 청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싶다.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쓰지 않도록 노력해 보게. 현실사회에 나가게나. 해저도 좋고 보르네오의 임금님도 좋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노동자도 좋으니까 하여튼 무언가 되어 보게나. 인간의 가장 원시적이고 육체적인 욕구가 당신들의 에너지를 깡그리 빨아먹어 버릴 만한 생활 속에 뛰어들어보게나.”(725P)


3. 경쟁

***인생의 즐거움을 가장 방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 그러면 그는 대답할 것이다. “생존경쟁이다” 그는 정말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할 것이며, 어느 의미에서는 진실이다.

여기서 쓰는 생존경쟁이라는 말은 실은 성공을 위한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경쟁을 하고 있을 때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내일 아침을 먹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이웃사람들 앞에서 으스댈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725~726P)


***성공은 확실히 행복을 위한 하나의 요소는 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만일 다른 모든 요소가 희생된다면 그 희생은 너무나 비싸게 매겨진 것이다. 이와 같은 불행의근원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실업계 일반에 널리 퍼져 있는 인생관에 잇다.


4. 권태와 자극

****권태라는 것은 인간 행동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상당히 등한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 권태가 인류 역사의 면면한 흐름을 통해서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권태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감정이다. 철창 안에 갇혀있는 동물도 때로는 나른해져서 여기저기를 왓다갓다 하거나 하품을 하기는 하지만 자연 상태에 있는 동물이 권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한 의욕이 억압될 때 권태가 생겨난다. 그것은 꼭 즐거운 일이 아니더라도 무방하며 날마다 경험하는 일상적인 일에서도 얼마든지 잇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권태는 쾌락이 아니라 자극이다. ....권태는 인간이 농경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작되엇다. 하기야 이때도 수렵시대의 자극을 즐길 수 있었지만 말이다.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된다. 스무 살 대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이 끝장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나는 78년을 살아왔지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인생의 자본을 낭비하는 것은 금전의 자본을 낭비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에 필요한 요소는 권태에 내포된 요소이기도 하다.

 *** 권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도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모든 인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욕구를 표시햇다. 미개인들은 백인종의 술맛을 처음 맛보았을 때, 오랫동안 시달려 온 권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전쟁, 학살, 박해 등은 모두 권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엇다. 따라서 권태는 도덕가에는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왜냐하면 적어도 범죄자의 태반은 권태를 두려워하는 데서 생기기 때문이었다.

권태가 전적으로 나븐 것만은 아니다. 권태는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그 하나가 건설적인 권태요, 다른 하나는 파괴적인 권태이다. 건설적인 권태는 마약이 없는 곳에서 생기고, 파괴적인 권태는 활기에 넘친 행동이 없는 곳에서 생긴다. (736P)


***자극이 너무 병적인 갈망을 일으키고 너무 많으면 지치게 된다. 그러므로 권태를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의 불가결한 요소일 수 있으며, 이는 반드시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명작일지라도 반드시 지루한 대목은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일생에도 재미가 없는 때가 있는 것이다. (737P0


****삶에 진지하고 건설적인 뜻을 품고 있는 젊은이들은 권태를 참고 견딜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자진해서라도 참아낼 것이다. 권태를 참아내지 못하는 세대는 보잘것없는 세대가 되어 버릴 것이며, 자연의 섭리에서 부당하게 벗어난 인간들, 즉 꽃병 속의 꽂꽂이처럼 나날이 생명력이 시들어가는 세대가 될 것이다. (739P0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슨 행동을 하든 간에 우리는 이 대지의 아들이며, 생명도 이 대지의 한 부분이다. 인간도 동물이나 식물과 마찬가지로 대지에서 영양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대지의 생명은 리듬이 아주 느리다. 대지에 있어서 가을과 겨울은 운동 못지 않게 주요하다. 아이들에게나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대지의 리듬과 일정한 접촉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육체는 오랫동안 이 리듬에 적응해 왔으며, 종교는 부활절 축제에서 이 리듬을 보여 주었다. (739P)


***현대의 도시인들이 느끼고 있는 권태는 대지의 생명에서 멀지감치 떨어져 나간데서 비롯된다. 그것은 마치 사막을 건너는 순레자와 같이, 인생을 무덥게 하고 먼지투성이로 만들고, 도한 목마르게까지 한다.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누릴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권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가닭은 권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권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더 나븐 권태의 희생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행복한 생활이란 조용한 가운데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740P)


5. 피로

***질서정연한 마음이란 어떤 문제를 밤낮으로 산만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야 할 때만 적절히 생각하는 어떤 통제력을 뜻한다. 곤란하거나 걱정스러운 문제를 결정해야 할 경우에는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최선을 다하여 생각한 끝에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743P)


***자기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될 때 걱정은 소멸된다. 나는 대중 앞에서 연설을 많이 한 축에 속한다. 처음에는 솔직한 심정이지만 두려웟던 게 사실이엇다. 이런 두려운 생각이 연설을 서투르게 햇다. 한때는 청중 앞에 서는 것이 어쩌나 불안하던지 강연을 하기 전에 발목이라도 부러졌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또 강연을 마치고 나서는 청중들의 반응이 어떨까 하여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에 심신이 모두 피로했다. 그러나 점차로 나는 강연을 잘하건 못하건 간에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엇다. 그것이 이 광대무변한 우주에 변화를 일으킬 리가 없다고 나 자신에게 타일럿다. (743P)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은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대하지 않으며, 더구나 성공과 실패란 어찌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이 못된다. 인간은 커다란 슬픔 소에서도 헤어날 수가 있기 마련이다. 인생의 행복에 종지부를 찍을 것처럼 보이는 고민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그라져 나중에는  그토록 심각했던 번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작 중심적인 생각을 초월하게 되면 인간의 자아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744P)


***무의식에 대한 의식의 작용은 정신건강상 매우 주용하며 만약 이성적인 확신이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령 지금 어떤 불행이 돌발한다고 하더라도 그쯤은 두려울 것이 없다고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만 의식적인 확신에 머물러 있는 한은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하고 악몽 같은 일이 생겨도 막을 수가 없다.

나도 상당한 양의 힘과 강도를 집중시킨다면 의식적인 사고를 무의식 속에 심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대부분의 무의식은 한 때는 매우 감동적이고 의식적인 사고였던 것이 차차 의식의 밑바닥에 갈리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밑바닥에 깔린 것은 의식적으로 해결할 수가 있다. 이런 방법을ㄹ 쓴다면 무이식 중에 유익한 일을 많이 하도록 유도할 수가 있다. (745P)


***이것은 공포를 피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고민은 공포의 한 형식인데, 여러 가지 공포에서 피로가 발생한다. 공포를 느끼지 않는 훈련을 쌓은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 별로 피로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공포는 우리가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은 위험이 있을 때 생기며, 이것이 우리에게 해로움을 끼치게 된다. 이따금 우리는 무서운 생각이 들며, 사람 나름이기는 하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포의 그림자가 스며든다. (746P)


***한낱 개인으로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관습과 제도를 마음대로 개선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완고한 도덕주의자들이 만들어 영속시키려는 생활에 대항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인생은 더 깊은 만족을 주는 기쁨이 없을 때 자극의 힘을 빌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자극에서 오는 쾌락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분별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분수를 지키고 건강과 일을 방해하는 쾌락에 빠지는 것을 삼가야 한다.(748P)


6. 질투

****불행의 가장 커다란 원인 가운데 하나는 질투일 것이다. 질투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감정 속에 가장 깊이 뿌리박고 있는 감정 중 하나이다. (749P)


***추문을 좋아한다는 거도 바로 이와 같은 일반적인 적의의 발로이다. 다른 여성을 헐뜯는 욕설은 그 증거가 하찮더라도 모두 김방 믿어 버린다. 고상한 도덕도 이와 같은 목적에 도움이 된다. 도덕적으로 어긋난 행동을 많이 한 여자를 시샘하고 그 죄를 벌주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특수한 형태의 미덕, 즉 도덕에 어긋낫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벌을 줘도 괜찮다는 식의 미덕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보상이기 때문이다. 즉 질투심에 굶주린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이다. (750P)


***인간성의 모든 특질 가운데서 질투가 가장 불행하다. 시샘이 많은 인간은 남의 불행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벌만 피할 수 잇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질투 그 자체에 의해서 스스로 불행에 빠져드는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기쁨을 맛보지 못해도 남에게서 그 사람의 이점, 자기도 갖고 싶은 이점을 빼앗으려고 한다. 만일 이런 감정이 마구 번지게 되면 결과적으로 모든 장점을 잃게 되고 나아가서는 가장 유용한 기술마저 잃게 된다. (751P)


***다행히도 인간의 속성 중에는 그것을 보충하여 주는 감정, 즉 찬미의 감정이 잇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증대하고 싶은 사람은, 찬미의 감정을 증진시켜서 질투를 줄이도록 해야 한다. (751P0


***질투에 대해서는 어떤 치료법이 있을까?

성자에게는 무아(無我)라는 치료법이 잇다. 하기야 성자라 하더라도 다른 성자를 절대로 질투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성 시메온 스틸리테스가 만일 다른 성자들이 자기보다 더 가느다란 기둥 위에 더 오랜 세월 서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면 과연 진심으로 기뻐했을지 의심스럽다. (752P)


****질투는 사실 절반은 정신의 결함, 절반은 지적 결함의 한 발로이다. 그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비교의 관계로만 볼 때 나타난다. 적절한 요법은 정신의 훈련이다. 다시 말해서 쓸데없는 것은 생각지 않는다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결국 뭐니뭐니 해도 가장 심한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남의 행복이다. 만일 내가 질투를 고칠 수만 있다면, 행복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 할 것이다. (754P)


***만일 여러분이 영예(榮譽)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나폴레옹을 부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시저를 부러워하고, 시저는 알렉산더를 선망햇다. 그리고 아마도 알렉산더는 헤라클레스를 부러워했을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헤라클레스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이엇다. (754P)


***여러분이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눈앞에 놓인 즐거움을 즐기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해버린 아마도 온전히 착각일 것이다. 사람과의 무익한 비교를 하지 않는 일이다. (754P0


***질투를 줄이는 방법 가운데 본능을 만족시키는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얼핏 보기에 순전히 일과 관련해서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성적(性的)인 원인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결혼생활이 행복하고 자식에 관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자기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자식을 기를 만한 힘이 있다면 자기보다 돈이 많다든가 자기보다 성공했다고 해서 공연히 남을 시샘하지는 않는 법이다. (757P)


***질투는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이고 또 그 가져다 주는 결과가 무서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질투는 부분적으로 영웅적인 고통의 표현이다. 그것은 아마도 보다 좋은 휴식의 장소, 즉 죽음과 파멸을 향해서 맹목적으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자기 고통의 표현일 것이다. 이 절망에서 빠져나올 올바른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일찍이 현대인이 자기의 지성을 향상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감성을 넓히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를 초월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우주의 자유를 획득할 줄 알아야 한다. (758P)


7. 죄의식

***양심의 가책을 받는 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것일까?

‘양심’이라는 말 속에는 사실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잇다. 그 가운데서 가장 단순한 것은 들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759P)


***죄의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훨씬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 즉 무의식적인 심리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한테서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위식의 수면 위로는 떠오르지 않는다. (760P0


**죄의식의 좋은 생활의 원인이 되기는커녕 완전히 그 반대이다. 죄의식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열등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사람은 불행할 때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요구를 하기 쉬운 법이며, 그것이 행복한 인간관계를 방해하기 쉽다. 또 인간은 열등감을 가졌을 때 자기보다 뛰어나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적의를 품기 쉽다. 자기보다 뛰어나 보이는 사람을 칭찬하기는 어렵지만, 미워하기는 쉽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일반적으로 불쾌한 인간이 되고 점점 더 자기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게 된다. 남에게 너그럽고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 사람에게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훌륭한 행복의 원천이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남에게서 호감을 얻기 때문이다. (765~767P)


***자기 속에 갇혀 있는 것만큼 우울한 일은 없고, 주의나 에너지를 박으로 돌리는 것만큼 유쾌한 일은 없다. (768P)


***어떤 종류이든 도취를 필요로 하는 행복은 가짜이고 불충분한 행복이다. 정말로 우리의 마음을 만족시켜주는 행복은 우리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시켜준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일에 대해서 충분히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769P)


8. 피해망상증

****만일 이 원칙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피해망상의 적절한 예방책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신의 행위 동기는 스스로 생ㄱ가하듯 그렇게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둘 것, 둘째 자기의 공로를 과대하게 평가하지 말 것, 셋째 자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만큼 다른 사람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넷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박해하겟다는 생각을 할 만큼 자기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할 것.  (774P)


***'자기의 공로를 과대하게 평가하지 말 것'에 대해

우선 어떤 사상과 감동을 표현하려는 충동을 느꼈기 때문에 작품을 쓰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갈채를 받기 위해서 쓰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는 일이다.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스스로의 재능을 평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평가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자신의 가치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겠으나 그 고통은 한계가 있으므로 그것을 넘어서면 행복한 생활을 맛볼 수가 있을 것이다. (776P)


*** 자기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적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망상에 빠진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갖고 있는데도 밤이나 낮이나 자기에게 해를 끼치려 하고 있다고 단정한다. (777P)


9. 여론에 대한 공포

***견해가 다르므로 어떤 특정한 취미와 확신을 가진 사람을 어떤 특정한 사회에서는 인간의 찌꺼기처럼 생각하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매우 많은 불행이 일어나며 청년들 사이에서는 특히 그렇다.(779P)


***세상에서 고립된다는 것은 단지 고통의 원천일 뿐 아니라, 적대적인 주위에 항거하여 정신적 독립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그리고 십중팔구는 자기 자신의 논리적 결론에 따르기를 주저하게 된다. (779P0


***일반적으로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간에 너무 지나치게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투옥을 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한은 원칙적으로 세상의 의견을ㄹ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서까지 세상에 따른다는 것은 불필요한 죄악에 굴복하는 일이며, 행복을 철저하게 방해받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매우 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취미와는 전혀 다른 즐거움에 돈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단지 이웃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려면 훌륭한 자동차를 가져야 하고, 근사한 만찬회를 베풀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동차를 살 만한 능력이 충분하더라도 그보다는 여행을 하거나 훌륭한 서재를 갖거나 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보통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ㅣ (785P)


***고의로 세상의 방식을 경멸하거나 거기에 반항할 필요는 없다. 고의로 경멸한다는 것은 오히려 거꾸로 그 경멸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고 정말로 세상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강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되는 동시에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다. 게다가 인습에 별로 굽실거리지 않는 남녀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가 누구나 다 똑같이 행동하는 사회보다 훨씬 재미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개인의 성격이 저마다 개성있게 발휘되면 여러 가지 특색 있는 타입이 보존된다. 그리고 새로운 타입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타입의 사람이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의 복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786P)


***세상의 눈을 두려워하는 공포감도 다른 모든 공포처럼 압제적이며 성장을 저해한다. 이런 종류의 공포가 강력히 작용하고 있는 동안은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성취되기 어렵다. 게다가 참된 행복을 성취시키는 데 필요한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기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들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생겨야 하는 것이지, 어쩌다가 이웃이 되었거나 친척이 되었거나 하는 사람들의 우연적인 기호나 희망 같은 것으로 정해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행복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문제이다. (787P)


제 2장 행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1. 아직도 행복은 가능한가

***혼자서 명상을 하거나 외국여행을 다녀오거나 혹은 우리집 정원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세상은 결코 불행한 일로만 가득 차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도니다. (788P)


***자기 자신을 낮게 평가하면 성공을 거두었을 때 대개 스스로에 대해 감탄한다. 그와 저안대로 자기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실패했을 때 경악하는 일이 허다하다. (790P)


***근본적인 행복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른바 사람과 사물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에 존재한다.

사람에게 갖는 호의적인 관심이란 일종의 애정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탐욕스럽다든가, 소유하고 싶다든가 상대편으로부터 언제나 강한 반응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후자와 같은 경우는 흔히 불행의 원천이다.

행복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는 관심은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아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발견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또한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이나 그들에게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 내겠다는 갈망없이 관심과 기쁨의 공간을 열어주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797P0


**행복의 비결은 이렇다. 즉 자신의 관심사를 될 수 있는대로 넓히는 것, 그리고 관심을 끌만한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가능한 한 적대적인 반응이 아니라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798P)


***인생이라는 잔칫상에 앉은 사람들도 인생이 베풀어주는 좋은 것들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태도를 봉니다. 지금 말한 여러 가지 식사태도 가운데서 ‘건강한 식욕을 가지고 식사를 시작하여 기쁜 마음으로 먹다가 충분히 먹엇다 싶으면 멈추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음식물과 공복의 관계는 꼭 인생과 열의의 관계와 같다.

식사에 따분함을 느끼는 사람은 바이런적 불행의 희생자에 해당된다. 의무감으로 식사를 하는 병자는 금욕주의자에 해당된다. 대식가는 방탕자와 맞먹는다. 식도락가는 인생의 쾌락 가운데 절반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고 비난하는 까다로운 인간에 해당된다. (799P)


***마음이란 참으로 이상한 기계여서 주어진 재료를 정말 깜짝 놀랄 방법으로 짜 맞출 줄 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재료가 없으면 무력해진다. 게다가 소시지 기게와 달라서 그런 재료를 스스로 획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부에만 주의를 돌리고 있는 사람은 그의 관심을 끌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에 반해서 외부에 주의를 돌리고 있는 사람은, 어쩌다가 자기의 영혼의 살펴볼 기회를 얻었을 때, 그 내부에 최고로 흥미 있는 온갖 요소가 말끔히 분류되어 아름다운 패턴으로 또는 세상을 위해서 유익한 패턴으로 재구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801P)


***어떤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그 지역의 특징적인 것들을 본다. 그곳 지역색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사귄다. 역사적으로 나 사회적으로나 재미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본다. 그 지역 특산물을 먹고 그곳 풍속과 말을 익힌다. 그리고 정겹게 나눌 즐거운 추억거리들을 잔뜩 지니고 돌아온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모두 다르겠지만 인생에 대해 열의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이점이 많다. 불쾌한 경험이라도 그에게는 도움이 된다. (802P)


*****대식가에 대해서는 별로 칭찬하지 않는다. 그런데 독자는 혹 우리가 여태 우리가 칭찬해 온 열의 있는 사람이란 이 대식가와 별로 차이가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옛사람들은 절제를 본질적인 미덕의 하나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도 낭만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동댕이쳐 버렷으며, 사람을 압도하는 정열이 설령 바이런 시의 주인공들처럼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이라 하더라도 찬미받앗다. ....... 대식가는 먹는 쾌락을 위해서 다른 쾌락을 모두 희생시켜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인생의 모든 행복을 감소시킨다. (804P)

****먹는 것 이외에도 많은 정열이 도가 지나쳐 버리는 수가 있다.  조세핀 황후는 의복에 관해서 바로 대식가와 다름없었다. 처음에 나폴레옹은 그녀의 옷값을 지불해 주었다. 그러다가 차츰 심하게 잔소리를 하게 되었고, 결국 그녀에게 절제를 배워야 한다고 말햇다. 그리고 이제 안ㅍ으로는 계산서의 액수가 적당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때는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재단사의 다음 계산서가 그녀에게 전해졌을 때 그녀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 묘안을 생각햇다. 그녀는 육군대신을 찾아가서 전쟁을 위해 마련해 둔 자금으로 그 대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햇다. 대신은 그녀가 자신을 면직시킬 만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하라는 대로 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제노바를 잃엇다. 이 이야기는 여자가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옷에 대해 얼마나 강한 집착을 보이는지를 드러내는 일화로,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의 에로 작절하다 하겠다. (804P)


****대식과 건강한 식욕 사이에는 어떤 뿌리 깊은 심리적인 차이가 반드시 있다. 어떤 욕망에 다른 전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과도하게 탐닉하는 사람은 대개 마음 깊숙이 뿌리박힌 고민이 있어서 그 어떤 공포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음주광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사람들은 잊기 위해서 마신다. (806P)


3. 애정

****열의가 결여되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감정은 다른 무엇보다도 열의를 촉진한다. (810P0


***애정에는 두 가지가 잇다. 그 하나는 인생에 대해 적극적인 열의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표출이고 또 하나는 공포의 표출이라고 생각된다. (814P)


***애정을 배제시키는 야심은 일반적으로 인류에 대한 노여움이나 증오심 때문에 생긴다. 그것은 젊을 때의 불행, 성인이 된 뒤의 불공평한 삶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

너무나 강한 자아는 감옥 같은 것으로 만일 이 세상의 즐거움을 충분히 얻으려면 그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순수한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이 자아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온 사람만이 얻는 특권 가운데 하나이다. 애정은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애정을 받았으면 풀어놓아야 한다. (816P)


4. 가족

**부모는 우리가 자기의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다른 누구와 함께 잇기보다도 부모와 함께 있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827P)


5. 일

***일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기술이고 하나는 건설이다. (833P)


6. 일반적인 관심사

***피로와 신경의 긴장은 불해의 원인이다. 이런 현상이 생기면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없는 일에는 흥미를 거의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사소한 일 때문에 그의 의식은 편안한 상태가 되지 못하며 이러한 일들은 제각기 근심 걱정의 요소를 갖게 된다. 잠재의식적인 사고가 차츰 지헤를 성숙시키지만 의식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쉴 새가 없다. 그러한 흥분의 결과 총명을 잃고 초조해지고 균형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839P)


***이 세게는 비극적인 일, 희극적인 일, 영우적인 일, 기아한 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런 구경거리에 흥미가 없는 사람은 인생이 베푸는 소중한 특권을 하나 포기하는 셈이다. (841P)


****광신은 본래 인생의 다른 목적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한두 가지의 목적만을 추구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손해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러한 광신적인 기질에 대한 예방법으로는 우주에서의 인간의 삶과 그의 위치를 큰 그림 속에서 인식하는 길박에 없다. (841P0


**** 정신의 위대성을 잠시라도 느껴본 적이 잇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닥치게 될지 두려워하면서 사소하고 자기 본위적이고 별 것 아닌 일들 대문에 괴로워하는 스스로를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우주의 온갖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신다. 그는 스스로와 인생과 세게를 가능한 한 거짓없이 바라볼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생명이 순간적이고 아주 작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한편 개인의 정신 안에는 우주가 지니고 있는 모든 가치가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ㅇ다. 그리고 마음속에 세계를 비춰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우주만큼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를 환경의 노에로 만드는 공포에서 벗어나면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이 외적인 생활은 우여곡절에 부딪히게 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843P)


***불행이 닥쳐왔을 때 이것을 잘 견디어 나가려면 행복할 때 관심의 범위를 넓혀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현재의 감정이나 연상을 잊어버리게 하는 인식처를 마련해 놓을 수 있다. (844P)

****활기와 열정이 있는 사람은 어떤 불행이 닥쳐오더라도 인생에 대한 흥미로 이를 극복해 나갈 것이며, 그의 세상은 한 번의 상실이 치명적인 것이 될 정도로 좁지도 않을 것이다. 한 번의 또는 서너 번의 타격으로 쓰러지는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증거로 찬탄받을 만한 일이 못된다. 오히려 생명력이 결여된 것이므로 통탄해야 할 일이다. (844P)


7. 노력과 단념

****행복은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운이 좋아서 잘 익은 과일처럼 입안으로 뚝 떨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이 책을 <행복의 정복>이라고 이름 붙였다. 사실 이 세상은 피할 수 있는 불행이나 피할 수 없는 불행, 그리고 병이나 심리적인 갈등, 나아가서는 투쟁이나 빈곤, 악의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행복하고자 한느 사람들은 자기에게 엄습해오는 무수한 불행의 원인과 싸우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845P)


****대개의 사람들은 부자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성격 좋은 사람들도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신경질적인 정열을 갖고 있어서 조용하고 규율바른 생활을 참을 수 없을 만큼 따분한 것으로 여긴다. 건강의 축복만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며 결혼도 변함없는 행복의 원천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모든 이유로 해서 행복은 신이 남녀에게 주신 선물이라기보다 오히려 노력의 성과이다. 내적이든 외적이든 행복을 위해서는 노력이 커다란 역할을 해야 한다. (845P)


***체념이란 자기 자신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고통스럽겠지만 결국은 진실과 정면으로 만서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려는 자가 빠지기 쉬운 절망이나 환멸등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게 된다. (851P)


8. 행복한 사람

***행복은 분명히 부분적으로는 외부 환경과 관계가 잇고 또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851P)


***불행한 사람은 대체로 불행한 신조를 선택하고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신조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참된 원인은 아주 다른 곳에 있는데도 저마다 그 행복이나 불행을 신조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852P)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흔치 않다. 우리 자신을 가두는 격정은 최악의 가옥이다. 그와 같은 격정 주에서 가장 공통적인 것은 공포, 질투, 죄악감, 자기 연민, 자만, 욕망 등이다. 이 중에서 욕망은 우리자신에게 집중된다. 외부 세계에 대한 참된 흥미는 없고, 있는 것은 다만 자기가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자기의 자아를 관찰하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뿐이다. (852P)


**행복한 사람이란 객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애정을 갖고 폭넓은 흥미를 가진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그와 같은 흥미와 애정을 통해서 그리고 그 흥미와 애정이 이번에는 거꾸로 자기자신을 다른 많은 사람들의 흥미와 애정이 이번에는 거꾸로 자기 자신을 다른 많은 사람들의 흥미와 애정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기의 행복을 확실하게 만든다. (853P)


****행복한 인생은 놀랄 정도로 선한 인생과 닮았다. 지금까지 도덕 전문가들은 자기 부정에 지나친 중점을 두면서 엉뚱한 부분을 강조하고 말앗다. 의식적인 자기 부정은 오히려 사람을 자기 몰입적으로 만들어서 자기가 무엇을 희생했는가를 생생하게 떠올려 준다. 그 결과 궁극적인 목적에서 마저 거의 언제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필요한 것은 자기 부정이 아니라 외부로 돌려진 흥미이다. (854P)


***모든 불행은 어떤 분열, 즉 통합하지 못한 데서 생긴다. 의식하는 마음과 의식하지 않는 마음 사이에 조화가 부족하면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자기와 사회가 객관적인 흥미와 애정의 힘으로 결합되지 않으면 양자 사이에는 통합을 이룰 수 없다. (855P)


***최대의 환희는 생명의 흐름과 그렇게 깊고도 본능적인 결합이 일어날 때 발견되는 것이다. (856P)


러셀의 생애와 사상

***이 부분은 ‘저자에 대해서’ 앞부분에 적어 두었습니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자’를 존경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주의를 기울여서 평생을 사색하면서 산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이다.

이 책을 통해서 <행복의 정복>을 읽게 된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그리고 러셀의 인생론인 <러셀의 생애와 사상>도 뜻밖의 수확이다. 부록처럼 붙여놓은 <행복의 정복>과 <러셀의 생애와 사상>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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